사야마는 섬을 돌아다니며 여러 가지를 보여주었다. 이 섬에 관해 그는 모르는 게 없는 것 같았다.
"섬은 작아도 심오하지?"
사야마는 언제나 명랑하고 친절했다.
한편으로 수수께끼투성이 인물이기도 했다. - P287

그나저나 알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이 관측소는 무엇을 위해 세워졌나.
사야마 쇼이치는 왜 이런 곳에서 살고 있나.
단서가 될 만한 것 중 하나가 사아먀의 방에 걸려 있는 ‘해도‘였다. - P287

사야마는 해도의 섬들을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이 섬들은 존재와 비존재의 틈새에 있어. 하지만 현재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는 건 관측소가 있는 섬, 즉 우리가 사는 이섬뿐이야, 주위 섬들의 존재는 항상 유동적이야. 어떤 때는 존재하고 어떤 때는 존재하지 않아.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눈에 보이지 않는 군도‘라는 명칭은 옳지 않아. 보이지 않는 게아니야. 그게 보이지 않는 관측자에겐 정말로 존재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보일 때는 분명히 존재해서 상륙하는 것도 가능하지. 그게 다가 아니라고. 이 해역에선 그 외에도 여러 이상한 일이 벌어지거든. 가령・・・・・・" - P289

"이게 뭔지 알겠어?"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뇨.‘
"바다 위를 달리는 열차라고. 난 몇 번 본 적이 있어."
나는 나도 모르게 "앗" 하고 소리쳤다. 동틀 녘의 바다 위를달리는 열차가 뇌리에 떠올랐다. 수면에 반사되는 차창 불빛이생생하게 기억났다.
"그래, 네모 군도 그걸 봤군?" 사야마는 만족스레 말했다. "역시내 예상이 맞았어." - P290

취하면 사야마 쇼이치가 하고 싶어 하는 놀이가 있었다.
그 놀이를 ‘산다이바나시‘라고 하는 모양이다. 내가 서로 관계없는 단어를 세 개 내놓으면 사야마는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해 즉흥으로 이야기를 지어내는 것이다. 어떻게든 콧대를 꺽어보겠다고 지혜를 쥐어짜서 절대 연결될 것 같지 않은 단어를선택하는데도, 사야마가 갈팡질팡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 놀이를 되풀이하는 사이에 밤이 깊어졌다. 이윽고 나는 전망실로 돌아가 잠자리에 들곤 했다. - P291

2주 정도가 지났을 무렵이었다.
"네모 군, 내일은 드디어 모험을 떠나볼까."
"......어디로 말입니까?"
"자동판매기가 있는 섬을 한 번 더 조사해 볼 생각이야."
잔교가 있는 앞바다의 얄팍한 섬을 말하는 것이다.  - P292

나는 전망실로 올라갔다.
간이침대에 누워서도 ‘내가 얼마나 기뻤는지‘라는 사야마의말이 귓전에 계속 되살아났다. 무슨 뜻일까. 물론 내가 표류해온 것이 사야마의 고독을 달래준 면은 있을 것이다. - P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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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 주행용으로 빌릴까요?"
"해월은 진입 제한구역이어서 아무거나 하늘로 못 띄워 드론도 허가를 미리 받아야 돼. 귀찮으니까 이번엔 그냥 지상 도로로가자. 혹시 저녁 약속 있어?" - P45

해월까지는 정비되지 않은 도로가 워낙 많아 직접 운전해야하는 구간이 있었다. 가는 길은 아영이, 오는 길은 윤재가 운전을 맡기로 했다. 아영은 운전자 인식 장치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아영을 운전자로 인식하는 프로그램이 켜졌다. - P45

차가 도로를 달리는 동안 아영은 에티오피아 출장 준비와 얼마 남지 않은 정규 보고서 마감에 대해 윤재와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해월에 가까워질 무렵에는 당면한 문제, 모스바나에 대한 생각으로 다시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전화로 들은 건데, 담당자가 이상한 말을 했어."
"뭔데요?"
"해월에 귀신이 나온대."
"그게 무슨 뜬금없는 말이에요?" - P46

윤재는 일부러 호들갑을 떨고는, 음악을 끄고 라디오를 켰다.
철 지난 음악이 흘러나오는 채널들을 지나 라디오는 뉴스 채널에 고정되었다. 아영은 뉴스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방금 윤재가 한 말을 계속 생각했다. 도깨비불이라니, 뜬금없이. 혹시 모스바나에서 환각 물질이라도 뿜어져 나오는 건가. - P47

 수십 년 전 멸망한 도시인데 어디서 이렇게 시체 썩는 냄새가 나는 것인지 궁금했다. 알고 보니 야생동물들이 들어왔다가 고철 사이에 발이 빠져 나가지 못하고 죽는다고 했다. - P48

해월이 가까워질수록 심상치 않은 광경이 보였다. 들판과 언덕을 가릴 것 없이 보이는 곳 모두 덩굴들이 덮고 있었다. 잠시뒤 출입 금지를 의미하는 경고 벨트가 넓게 쳐진 지역에 도착했다. 해월의 복원 사업이 진행중인 곳이었다. - P48

경고 벨트 안쪽으로 맹렬히 자라난 덩굴들이 고철 쓰레기의산을 뒤덮어버렸다. 틈이 거의 보이지 않아 그 아래 있는 것들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 - P49

"이거 되게 징그럽네. 좀 기분 나쁘다."
윤재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 외의생물을 인격화하거나 감정이입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았지만,
자연을 관찰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불쾌해질 때가 있었다. 도대체 이런 생물이 어쩌다 생겨나게 된 걸까. - P50

"어떻게 막고는 있는데, 역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같아서요. 안 그래도 해월시 인근은 긴 가뭄으로 농가들의 피해가 아주 큰 상황이거든요. 물을 끌어오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 잡초 때문에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민원은 계속들어오는데 위에서 잡초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라고 방치하고,
그렇다고 우리가 손놓을 수는 없어서요. 하필 사람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해월 중심지에서 퍼지는 것도 의심스럽고요. 최악의경우 생물 테러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 P51

윤재가 말했다.
"만약 누가 마음먹고 벌이는 일이면, 범인을 특정하는 데에 저희가 도움을 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이런저런 정황을 파악할 수는 있겠지만 저희가 수사기관은 아니니까요. 생태학적인 추적도장기간 지켜봐야 의미가 있는 거고요. 어쨌든 인위적인 사건인지, 자연적인 상황에 의해 일어난 일인지 같이 조사해볼 테니 자료를 공유해주세요. 방제 대책도 좀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는지내부 의견을 구해볼게요." - P52

직원은 윤재의 이야기를 듣고 약간 맥이 빠진 것 같았다.
"김 연구원님이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네요. 아마 그건 해월의불법 회수 처리업자들에게서 들려오는 소문일 텐데, 조사할 가치는 없는 것 같아 일단 기록만 해두었습니다."
하지만 아영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소문이라면, 정확히 어떤......?" - P53

윤재는 깊이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렇지. 발광현상도 드문데, 게다가 파란색이면 더 그렇고. 내생각에는, 제보자들 말이 맞다 쳐도 모스바나 때문은 아닌 것 같아, 반딧불이라든가, 발광 미생물이라든가 그쪽이 좀더 가능성이 있지 않으려나. 모스바나가 증식했다고 해서 그게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잖아." - P54

스트레인저 테일즈에서 이상한 이야기를 잔뜩 읽은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왜 그런 꿈을 꿨는지 알 것 같았다.
무성한 덩굴식물과 푸른빛, 아영은 분명 그런 것을 보았다.
어린 시절, 이희수의 정원에서였다. - P55

사회의 집단 기억 속에서 더스트 시대의 고통이 흐릿해질수록, 현재부터 그 시대로 거슬러 오르는 학문 역시 힘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사람들에게 과학이란 더스트라는 재난 속에서 인류를 구한 위대한 기적이었고, 재건 이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도구였다. 그 외의 연구란 보통 사람들에게는 별 가치가 없었다. - P56

"아, 친한 할머니가 원예에 관심이 많으셨나봐요?"
"아뇨・・・・・・ 그분은 원예에 딱히 관심이 없었어요. 식물에 대해서는 아주 해박하시긴 했는데, 직업은 원래 정비사였어요."
"정비사? 그런데 식물을 잘 알아요?"
점점 연구원들의 표정이 의아하다는 기색을 띠었다.
"온유라고, 작은 도시에 살았거든요. 인천 근처에 있는데 대규모 실버타운으로 조성된 곳이요. 아시죠?" - P57

"좀 이상한 분이셨어요. 마치 다른 세계에서 온 사람 같다고 할까요. 어디서 온 건지 알 수 없었고, 아무도 그분의 과거를 몰랐어요. 마지막에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게 갑자기 사라지셨죠. 더스트 시대를 지나온 사람이었는데, 언제나 돔 바깥의 이야기를들려주셨어요. 돔 안쪽이 아니라, 돔 바깥에서 일어난 일들이요" - P58

아이들은 시선을 교환하더니 노인들 옆을 조용히 지나쳤고,
아영도 그 뒤를 머뭇거리며 따랐다. 귀를 기울여보니 "당신 집에가져다 걸어놔라, 무슨 권리로 이걸 버리냐" "무례한 놈들 쫓아낸 게 뭐가 나쁘다는 거냐" 하면서, 도대체 말만 들어서는 뭘 두고 다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 P59

집으로 돌아와 엄마에게 그 일을 이야기했더니, 수연은 말했다.
"오늘 그 앞에서 대학생들 시위가 있었거든. 거기 어르신들이심기 거슬린다고 경찰 부르고 난리가 났었나봐. 이희수 씨가 지나가면서 학생들 편들어준 거지, 뭐."
시위는 무슨 시위이고, 편은 왜 들어준 건지 아영은 하나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수연은 별다른 설명 없이 웃으며 말했다. - P60

온유는 더스트 시대의 잔해가 남아, 재건 이후로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곳을 대규모 실버타운으로 집중 개발한 지역이었다. 아영이 최근에 여기로 이사하게 된 것도 실버타운과 관련이있었다. 수연은 노인건강센터의 전국 지부를 관리하는 일을 했는데, 온유에 신규 센터가 문을 열면서 일 년간 개관 준비와 초창기 운영을 담당하게 된 것이었다. - P60

알고 보니 이희수는 실버타운의 노인들 사이에서 악명이 높았다. 노인들과 마주치기만 하면 오만 일로 시비가 붙어서, 제발좀 여기서 쫓아내라는 민원이 쏟아지게 만드는 주역이었다. 하지만 노인들은 그를 쫓아낼 수 없었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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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장
허무주의에 대한 두려움

마음을 생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에 대한 마지막 두려움은 그로인해 우리의 삶이 의미와 목적을 잃어 버리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유전자를 통해 자신을 복제해 내는 기계에 불과하다면,
만약 우리의 기쁨과 만족이 언젠가 촛불처럼 꺼질 생화학적 사건에 불과하다면, 만약 인생이 더 높은 목적을 위해 창조되지 않았고 고상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지도 않는다면, 계속 살아갈 이유란 무엇인가?  - P331

이 두려움에는 두 가지 형태, 즉 종교적 형태와 세속적 형태가 존재한다. 정교한 형태의 종교적 근심은 1996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청 과학원 회의에 보낸 「진리는 진리와 모순되지 않는다」에 명시되어있다.¹ - P331

11장 허무주의에 대한 두려움

1. 1996. 10. 22; L‘Osservatore Romano의 영어판, 1996. 10. 30. - P822

독립된 분야의 발견들이 "노력이나 조작 없이 진화론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황은 인간의 진화 과정 중에 한 차례 변화가 일어났는데, 그것은 과학이 관측할 수 없는 "존재론적 비약"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 P332

물론 아무리 무신론적인 과학자들조차도 냉담한 비도덕성*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뇌는 평범한 물질로 구성된 신체 기관이지만, 그 물질이조직된 방식은 즐거움과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감정적 유기체를 존재하게 한다.

*도덕에 어긋난다는 뜻의 ‘부도덕‘과는 달리 도덕과 무관하다는 뜻이다. - P333

 생후 1년 6개월 된 아이는 자발적으로 장난감을 주고, 도움을 제공하고, 우울해 보이는 어른이나 다른 아이들을 위로한다.⁵ 어떤 문화에서든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구분하고, 공정함을 따지고, 서로 돕고,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고, 잘못을 바로잡아야한다고 생각하고, 강간, 살인, 특정 형태의 폭력을 금지한다.⁶ 이 정상적인 감정의 존재는 우리가 정신병질자라 부르는 특별한 개인들을 통해더욱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 P335

5. Zahn-Wexler 21, 1992.
6. Brown, 1991.

어느 이론이 더 바람직하겠는가? 사고 실험을 통해 서로의 장점을비교해 보자. 만약 하느님이 인간에게 관대하고 친절하기보다는 이기적이고 잔인하게 살라고 명령했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겠는가? 종교에서 가치를 구하는 사람들은 이기적이고 잔인하게 사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도덕 관념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명령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로써 우선권을 부여할 가치는 우리의 도덕 관념에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다.⁸ - P335

8. Rachels, 1990.

 종교의 역사를 보면 하느님이 사람들에게 온갖 종류의 이기적 행동과 잔인한 행동을 명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미디안 사람들을 학살하고, 그 여인들을 유괴하고, 매춘부를 돌로 치고, 동성애자를 처형하고, 마녀를 태우고, 이교도와 불신자들을 살해하고, 신교도들을 창 밖으로 던지고, 죽어 가는 아이들에게 약을쓰지 못하게 하고, 낙태 시술 의사를 총으로 쏘고, 샐먼 루시디를 저격하고, 시장을 폭파하고, 고층 건물을 향해 비행기를 몰라고 명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히틀러도 자기가 하느님의 의지를 수행한다고 생각했다는사실을 상기해 보자.⁹ - P336

9. Murphy, 1999. - P822

그러니 누가 영혼의 이론이 마음을 신체 기관으로 이해하는 이론보다 더 인간적이라고 말하겠는가? 줄기 세포를 연구하면 간염이나 파킨슨병의 치료법을 발견할 수도 있는데, 그것이 "존재론적 비약을 통해
"영혼"으로 성장할 세포 덩어리이므로 연구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종교 운동에서 어떤 존엄을 볼 수 있는가? - P336

수잔 스미스는어린 두 아들을 호수 바닥으로 던질 때 "우리 아이들은 가장 좋은 곳에서 살 자격이 있고 이제 그렇게 될 것"이라는 합리화로 자신의 양심을 속였다.  - P337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이 주는 정서적 위안도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뇌가 죽을 때 우리의 존재가 끝난다면 삶은 목적을 상실하는가? 오히려 매 순간을 감각하며 사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소중한 선물이라는 깨달음보다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이다. - P337

왜 비종교적 사상가들은 생물학이 삶의 의미를 제거한다고 두려워하는가? 생물학이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을 탈색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 P337

(전략) 옥시토신으로 유전적 투자를 보호하려는 이유에서라면, 부모의 숭고함과 희생이 땅에 떨어지는가? - P338

우리의 모든 동기가 이기적이라는 생각 때문에 우울함을 느끼는 사람은 앨비와 똑같은 혼란에 빠져 있다. 궁극인 (자연 선택에 의한 진화의이유)과 근접인(‘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사는가?)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두 의미는 아주 비슷해 보이기 때문에 혼동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 P339

유전자는 비유적 동기자기 자신을 복제하는 것ㅡ를 가지고 있으며, 유전자에 의해 설계된 유기체는 실제적 동기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같은 동기가 아니다. 때로는 유전자의가장 이기적인 행위가 인간의 뇌에 이타적인 동기 진심에서 우러난,
무조건적인, 뼛속에서 우러나는 헌신성를 배선한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물려줄) 자식에 대한 사랑, (유전적으로 한 배를 탄) 충실한 배우자에 대한 사랑, (신뢰를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와 동지에 대한 사랑은 우리 인간의 경우(근접인의 차원)에서는 한계와 비난을 초월하지만, 유전자의 경우(궁극인의 차원)에서는 이기적 행동에 비유된다. - P339

왜 두 설명을 쉽게 혼동하는가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알 듯이 사람들은 때때로 이면의 동기를 가진다. 공적으로는 관대하지만 사적으로는 탐욕스럽고, 공적으로는 경건하지만 사적으로는냉소적이고, 공적으로는 플라토닉하지만 사적으로는 정욕에 사로잡힌다. - P339

유전자와 인간을 마음과 분리시켜 생각할 줄 아는 사람들도 우울함에 빠질 수 있다. 심리학에서는, 우리 경험의 여러 측면들은 뇌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에 따라 만들어진 허구이자 인공물이라고 가르친다.
빨강에 대한 경험과 초록에 대한 경험은 종류가 다르지만 그렇다고 이세계에 존재하는 광파의 종류가 다르지는 않다. - P340

이 개념을 유전자가 개인의 본질 또는 핵심이라는 보편적인 오해와 결합시키면 도킨스와 프로이트의 잡종이 탄생한다. 바로유전자의 비유적 동기는 개인의 깊고, 무의식적이고, 이면에 숨은 동기라는 개념이다. 그것은 오류이다. - P340

인간 본성에 대한 과학은 그와 똑같은 원리가 옳고 그름, 가치와 무익함. 미와 추, 성과 속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여겨진다. 그것들은 신경 활동의 산물이자, 우리가 두개골 내벽에 투사하는 영화이자, 뇌의 쾌감 중추들을 간지럽히는 방식으로서, 빨강과 초록의 차이만큼이나 객관적 현실과는 동떨어진 것이다. - P340

그러나 우리의 뇌가 특정한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갖추어졌다고 해서그 생각의 대상이 허구인 것은 아니다. 우리의 정신적 기능들 다수는 이세계의 실질적 존재들과 맞물리도록 진화했다. - P341

많은 수학자와 철학자들이 찬성하는 플라톤 철학의 숫자 개념에 따르면 수나 형체 같은 실체들은 마음과는 독립된 채 존재한다고 한다. 3이란 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꾸며낸 것이 아니다. 그 수에는 우리가 발견하고 탐구할 수 있는 실제적 특성들이 있다. - P341

실제로 황금률은 여러 시대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레위기」와 「마하바라타」*의 기자들, 힐렐,** 예수, 공자, 로마 제국의스토아 학파 철학자들, 홉스, 루소, 로크 같은 사회 계약론자들, 정언명령을 제시한 칸트 같은 윤리 철학자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¹³ 우리의 도덕 관념은 무리 속에서 무로부터 날조되었다기보다는 윤리학의 고유 논리와 맞물리도록 진화했으리라 추정된다.

*고대 인도의 대서사시이다.
**기원전 20~15년 이스라엘에서 활약했던 율법학자이다. - P342

13. Singer, 1981. - P822

그것이 인간의 사고 방식에 고유한 특성이라면 과연 얼마나 끔찍해질까? 우리는 인간의 조건에 대해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에 따라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두 가지를 더욱 자주 그리고 진지하게 숙고할수록, 그것은 마음을 더욱더 새롭고 강렬한 감탄과 경외로 채운다. 별이 총총한 하늘과마음 속의 도덕률이 그것이다." - P343

15장
신성한 체하는 동물

마음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 앞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큰 두려움 중 하나는 그것이 도덕적 허무주의를 낳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우익 비판가들의 말처럼 만약 우리가 신에 의해 고귀한 목적으로 창조되지 않았다면, 또는 좌익 비판가들의 말처럼 우리가 이기적 유전자의 산물이라면, 과연 무엇이 우리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비도덕적 이기주의자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겠는가?  - P417

사람들이 부도덕한 행동("살해는 나쁘다.")을 싫어하는 것("난 브로콜리가 싫어."), 유행에 뒤떨어진 것("스트라이프와 체크 무늬를 같이 입지 마라."), 경솔한 것("장거리 비행 때는 와인을 마시지 마라.")과 다르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사람들은 도덕적 규칙이 보편적이라고 느낀다. - P472

우리의 도덕 관념은 타인에 대한 공격을 부도덕한 행위를 예방하거나 처벌하는 한 방법으로 허가한다. 부도덕하다고 간주된 행동이 가령강간이나 살인처럼 어느 기준에서든 부도덕하다면 그리고 그 공격이 정당하게 집행되고 효과적인 예방책으로서의 기능을 한다면 문제가 없을것이다. 이 장의 요점은 인간의 도덕 관념이 정당한 의분의 표적이 될만한 행동들을 가려낼 수 있도록 보증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 P473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Jonathan Haidt)와 그의 동료들은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제시했다.² 대부분의 사람들은 즉시 줄리와 마크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단정했고, 그런 다음 그것이 왜 잘못된 행동인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유를 댔다. - P474

15장 신성한 체하는 동물

2. Haidt, Koller와 Dias, 1993. - P830

 결국 많은 응답자들이 "모르겠다.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인정한다. 하이트는 이 반응을 "도덕적 말막힘 (moral dumbfounding)"이라 부르고, 앞의 이야기처럼 불쾌하지만 아무에게도 피해가 없는 다른 각본들을 통해 이를 재차 확인한다. - P474

다수의 윤리학자들은 사생활의 중요성에 동의하는 성인들이 다른 지각 있는 사람을 해치지 않는 사적인 행위를 했다면 그것은 부도덕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의 행동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회 정책과 관련된 보다 미묘한 주장을 펼치며 앞의행동들을 비판하면서도, 정말로 극악한 행동들과 비교하면 그 정도는사소한 위반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 밖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러한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 P475

타인 비난(other-condemning) 감정경멸, 분노, 혐오은 사기꾼을 처벌하게 하는 작용을 하고, 타인 칭찬(other-praising) 감정감사, 고양시키는 감정, 도덕적 경외, 감동 은이타주의자에게 보상하는 기능을 한다. 타인 고통(other-suffering) 감정-동정, 공감, 연민은 어려운 수혜자를 도와 주는 기능을 하고, 자의식적(self-conscious) 감정죄의식, 수치, 당혹은 남을 속이지 않거나 속인 결과를 바로잡는 기능을 한다. - P475

자율성 - 공동체-신성의 3분법을 최초로 제시한 사람은 인류학자 리처드 슈웨더였다. 그는 비서구 전통에는, 도덕적 교화의 모든 증거를 간직하면서도 개인의 권리라는 서구적 개념은 발견되지 않는 신념과 가치관이 풍부하게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했다.⁵ - P476

5. Shweder 21, 1997.

상대주의자들은 도덕성의 세 영역을, 개인적 권리란 편협한 서구적관습일 뿐이고, 그에 따라 우리는 다른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공동체와 신성의 윤리들도 그와 동등하게 타당한 대안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의 증거로 해석할지 모른다. - P477

몇몇 학자들은, 학생들이 다른 문화의 가치관을 비판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왜 나치즘이 잘못되었는가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주목해 왔다.⁸ - P477

8. Cronk, 1999; Sommers, 1998; Wilson, 1993; C. Sommers, 1998, "Why Johnny can‘t tell rightfrom wrong," American Outlook, 1998. 여름, 45-47 - P830

사람들은 도덕성과 순결을 혼동하는데, 서양의 비종교인들도 예외는아니다. 1장에서 우리는 깨끗함과 더러움을 의미하는 많은 단어들이 또한 미덕과 죄악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보았다(순결한, 흠 없는, 더러운 등등). - P479

우리의 마음이 선과 깨끗함을 혼동하면 추악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인종 차별과 성차별은 종종 더러움의 원인을 피하려는 욕구로 표현된다. 인도에서 "불가촉" 천민을 멸시하고, 정통 유대교에서 월경 중인 여성들을 격리하고, 동성애자와의 일상적 접촉이 AIDS를 옮길까 두려워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흑인 차별 정책 하에 먹고 마시고 씻고 자는 공간을 분리하고, 독일에서 나치가 "인종 위" 법을 만든 것 등이그 예이다. 20세기 역사에 자주 출몰했던 문제 중 하나는, 어떻게 그렇게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 전시에 잔학 행위를 저질렀는가 하는 것이다. - P479

도덕 관념은 공정함, 신분, 순수함이 독특하게 혼합된 결과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도덕적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할 때 있는 그대로의 감정에 의존하는 것은 의심스러운 방법이 될 수 있다. 「혐오의 지혜(The Wisdom of Repugnance)」라는 유력한 논문에서 리언 카스(현재 조지부시 정부의 생명윤리위원회 의장)는 복제에 관한 문제를 논할 때에는 도덕적 추론을 버리고 직감에 의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P480

불가촉 천민과 접촉할 때, 유색인과 같은 샘물에서 물을 마실 때, 유대인의 피가 아리안족의 피와 섞일 때, 동의(同) 성인* 간의 남색 행위를허용할 때가 그 예이다. 1978년까지만 해도 (카스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체외 수정 또는 "시험관 아기"라 불렸던 신기술에 몸서리를 쳤다. 그러나 현재 그것은 도덕적으로 일반화되었고,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크나큰 행복을 선사하고 그들의 삶 자체를 지탱해 주는 요인이 되고 있다. - P481

합리적인 도덕적 입장과 근거 없는 본능적 감정이 다른 점은 전자의 경우 우리의 확신이 타당하다는 이유를 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왜고문과 살인과 강간이 잘못된 것인지 또는 왜 차별과 불평에 반대해야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반면에 왜 동성애를 억압해야 하는지 또는 왜 인종을 차별해야 하는지를 입증할 때에는 부당하고 피상적인 근거를 억지로 만들어야 한다.  - P481

도덕적 감정의 또 다른 특징은 스위치처럼 두 가지 상태로 전환될 수있다는 것이다. 도덕화와 비도덕화(amoralization)라 불리는 이 정신적 깜박임 현상은 최근 로진의 실험실에서 연구된 바 있다.¹³ - P481

13. Rozin, 1997; Rozin, Markwith Stoess, 1997. - P830

로진은 최근 들어 흡연도 도덕적 평가의 대상이 되었다고 지적한다.
담배를 피우는가 안 피우는가의 문제는 오랫동안 기호나 분별의 문제로취급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단지 흡연이 건강에 해롭다는 이유로 담배를 즐기지 않거나 기피했다. 그러나 간접 흡연의 피해가 밝혀지면서 사람들은 이제 흡연을 부도덕한 행위로 취급하고 있다. - P482

한편 많은 행동들이 비도덕화를 거친 결과, (사람들 눈에) 도덕적 결점이 아니라 생활 방식의 차이로 비치게 되었다. 비도덕화를 거친 행동의 예로는 이혼, 사생(私生, 또는 서출(庶出), 직업을 가진 어머니, 마리화나, 동성애, 자위, 남색, 오럴 섹스, 무신론, 비서구 문화의 모든 관습등이 있다. 이와 동시에 많은 고통들이 죄악의 대가에서 불운의 결과로재평가되었다. 과거에 노숙자들은 "부랑자"나 "떠돌이"로 불렸다. 성적접촉에 의한 질병(sexually transmitted diseases)도 예전엔 "성병(venerealdiseases)"이라 불렸다. 오늘날 마약 중독을 치료하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마약 중독이 부도덕한 선택이 아니라 일종의 질환이라고 주장한다. - P483

최근 수십 년 동안 비도덕화를 거친 모든 행동들을 보상하기라도 하듯 우리는 새로운 행동들을 도덕화하는 운동을 열심히 전개하고 있다. 속물 같은 실업가와 극단적인 청교도는 사라지고 보모 국가*를 위해 노력하는 운동가와 외교 정책까지 고민하는 대학가**가 그 자리를 메웠지만, 과거나 현재나 도덕화의 심리는 똑같다.


* nanny state. 정부 기관이 시민을 과보호하고 나아가 생활을 통제하는 복지 국가를 말한다.
** 대학가의 운동 단체들이 정부의 외교 정책까지 간섭하는 것을 가리킨다. - P4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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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모든 상처를 치유한다 - P13

5년 동안 프랜시스가 쓴 모든 글은 동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한때 프랜시스는 진지한 표정으로 웃기는 이야기를 곧잘 했었다. 그 유머는, 그리고 그 비꼬는 말투는 어디로 가 버린 걸까? - P14

프랜시스는 12학년 영어 과제로 이런 글을 썼다.
그날 아침 그 애의 방에 들어갔을 때 무언가가 지독하게 잘못돼 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 애의 몸이 중력을 거스른 곳에, 이상한 위치에 있었다. - P14

5년이 지나자 무언가가 달라졌다. 질문들이 목구멍에 걸려 있는 듯한 느낌이 사라졌다  - P14

5년이 더 지나자 프랜시스는 그 일에 대해 그렇게 많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어졌다. 몇몇 사람들에게가끔 꺼낼 수는 있었겠지만 말이다. 이제 그는 어떤 영화들을 피해야 하는지 알고 있고, 언니들과 함께 있으면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된다. - P15

내가 프랜시스를 만난 때는 그가 막 변화하기 시작할 무렵이다. 프랜시스는 이제 케이티의 죽음 때문에 항상 숨쉬기가 힘들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전에는그 애의 죽음이 내내 가슴 위에 올라앉아 두 무릎으로갈비뼈 사이를 짓누르는 것 같았는데 말이다. - P15

프랜시스와 나는 엘리자베스 스트리트를 따라 달리는시가 전차 안에서 케이티가 죽고 난 뒤의 몇 주에 관해이야기한다.
-무슨 기간이라고요? (프랜시스는 내 억양 때문에 잘 알아듣지 못했고, 전차 내부는 시끄럽다.)
-캐서롤 기간이요.
- 아, 전 좋았어요. 그 시간이 계속됐더라면, 휠씬 더 길었더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지금이 캐서롤 기간이었으면 좋겠어요. - P16

케이티가 자살하고 20일 뒤에 프랜시스가 제출한 12학년 문예 창작 과제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나온다.
그 애의 입에서 느껴지던 맛을 잊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그 애가 마지막으로 내쉰 숨결의 맛이 느껴진다. - P17

그가 나와 대화를 나누는 두 시간 동안 속상해하는 모습을 보인 건 딱 한번, 대화의 주제가 그해의 문예 창작 과제로 옮겨 갔을때다. 그해에 프랜시스가 쓴 글, 그리고 프랜시스와 같은 반이었던 다른 두 여학생- 그중 한 명은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이 쓴 글 이야기가 나오자 앤은 눈물을 참지 못한다. - P17

동유럽에 속하는 어딘가 (그곳이 어디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를 떠나 이 세계로 오면서 한 가지 느낀게 있다면, 우리가 와서 살게 된 이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세계에서는 언어의 힘이라는 게 느껴질 때가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그건 괜찮다.  - P18

어쩌면 완전히 엉뚱한 곳들만 들여다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보고 있지 않았던 어떤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은 자신의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언어로는 다룰수 없다고 스스로 판단한 이야기를, 자신의 심장 박동을 떠내서 과제로 제출하고 있었다.  - P18

모르는 게 당연하다. "11학년 아이들한테는 글로 쓰고 싶은 정말로 특별한 일이 있다면 12학년이 될 때까지 아껴 두라고 해요." 앤은 말한다. "그때가 돼서 어떤 진실에 관해 글을쓰면 그 일이 글이 되어 나오거든요. 그리고 아이들 대부분은 정말로 그걸 그때까지 아껴 둔답니다." - P19

프랜시스는 앤과의 영어 수업을 제외하고는 마지막 학년의 어떤 수업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다음 해에 12학년 영어를 배우게 된 아이들은 케이티의 동급생들이었고, 그 애들은 <룩 보스 웨이즈>와 완전히 거리를 두었다. 한편, 프랜시스네 반 아이들은 케이티가 죽은 뒤로 입을 다물었다. - P20

멜버른에 있는 또 다른 학교 교사인 모니크는 7학년 때부터 가르쳐 왔던 브린이라는 11학년 남학생을 자살로 잃었다. 프랜시스와 모니크는 서로 모르는 사이다. 앤 또한 모니크를 알지 못한다. 브린의 시신을 발견한 사람은 모니크가 아니었다.  - P21

 기억이 갑자기 덮쳐 오는 느낌이었다. 모니크는 브린에 대해 설명해 준다. 주니어 스쿨² 시절 학교대표, ‘개성 있고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아이‘, 외동이자 유일한 손주, 태국에서 불교 수도승들에 둘러싸여보낸 유년기. 너무나 교묘하게도 모두에게 작별 인사를하는 데 성공한 그 아이는 자기 장례식에서 틀 선곡표까지 짜 놓았다. - P21

티어스포피어스 Tears for Fears의 「미친 세계 Mad World」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말해 보세요 제가 주는 교훈이뭘까요?
제 속마음을 알아차려 보세요.
대화를 나누는 동안 모니크는 캐서롤 이야기를 꺼낸다. - P22

모니크가 캐서롤을 선호하는 타입이 아니라는 건 이제 분명해 보일 것이다.
그의 몇몇 친구가 가족을 잃었을 때, 그는 다른 사람들보다 2주 늦게 꽃을 보냈다. - P22

고등학교에서 애도를 한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일일까. 모두가 모두를 쳐다보고 있는 그곳에서 말이다. 거의 모두가 말도 안 될 만큼 연약하다. 친구들은 적들보다 자주, 그리고 더 전문적으로 당신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다. - P23

프랜시스는 12학년 때 좋은 성적을 받았다고, 그건 사실이라고, 하지만 그 해에 뭘 하며 시간을 보냈는지는전혀 모르겠다고, ‘그 일‘을 다시 떠올린 순간들만 기억에 남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잠깐, 여기서 프랜시스와나는 어제 처음 만나 막 대화를 시작한 사이라거나 그런 건 아니다.) - P24

그는 ‘엉망‘에 이어 ‘가짜‘라는 말을 한다. 우리는
‘가짜‘라는 말을 좀 더 깊이 파고들어 본다. 아마도 잘못 고른 말일 것이다. 프랜시스가 말하려는 건 그가 케이티를 보호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 P25

프랜시스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 주기를 바랐다. 나는 말한다.
-당신이 언젠가 쓰겠다는 그 책 말인데요, 논픽션이 될까요? 아니면 소설로 바꿀 생각인가요?
-아, 아뇨. 전 소설이 싫어요. 성적이 최악이었던 과목이 소설이에요. 대학에서 받은 성적 중에서 가장 낮은 점수였어요. 저는 항상 논픽션 쪽이었어요. 그리고 그 책은 그냥 회고록이기만 한 건 아니고………… 좀 더깊은 문제들도 섞어서 쓰고 싶어요. - P25

나는 프랜시스에게 잠깐 이야기를 들려준다. 형제자매를, 친구를, 자녀를 자살로 잃은 다른 사람들이 쓴 책들에 관한 이야기다.  - P26

남동생이 목을 매 자살한 존 니븐은 자살을 핵폭탄에 비유하는데,
"믿을 수 없을 만큼 강력한 반감기와 함께 연쇄 반응이따라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 P26

프랜시스가 고개를 돌리고 있다는 게 아니다. 언제 그 일을 직시할지는 그가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프랜시스가 그 책을 쓸 생각을 여전히 갖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 P27

"놀랄 만큼 예쁘고, 인기도 많고, 아무도 막을 수없고, 여기저기 참여하는 일도 많은 아이였어요. 엄청나게 똑똑하기도 했고요." 프랜시스가 말한다. "그리고 웃기기도 잘했어요. 연예인 같고 리더 같은 타입이었죠." - P28

케이티의 남자 친구가 자살한 다음날- 케이티 자신이자살하기 5주 전-케이티는 <오스트레일리안 아이돌>의 2차 예선 오디션에 참가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그날케이티가 보여 준 묘기는 뒤로 공중제비를 돌면서 원소주기율표 전체를 읊는 것이었다.  - P28

 남자 친구는 케이티보다 나이가 많았고, 더 이상 학교에 다니지 않았고, 직업도 없었으며, 케이티의 부모님은 그를 인정해 주지 않았다. ㅣ - P29

5월의 어느 날 저녁, 케이티와 남자 친구는 11학년 무도회에 함께 갔고, 그 뒤에 케이티가 관계를 끝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남자 친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한 대화가 케이티와 한 전화 통화였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 P29

케이티에게는 애도할 공간 역시 주어지지 않았다. 그의 자살로 케이티는 부서져버렸다. 케이티는 곧바로 자살 감시 대상자가 되었다. - P29

<오스트레일리안 아이돌> 오디션장의 카메라들은 케이티를 향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고있는 케이티. 총 여덟 시간이 걸린 녹화. 같은 반 학생이었던 누군가는 케이티에게 전화를 걸었던 기억을 이렇게 떠올린다. - P30

심지어 둘은 목소리도 비슷했다. "전 녹음된 제 목소리를 듣는 게 싫어요. 케이티랑 너무 똑같거든요. 꼭 그 애가 말하는 것 같아요." 눈부시고 오차 없는 닮음이 넷 모두를 엮어 놓고 있었다. - P31

 케이티에 대해 알게 된 그 여성은 시드니로 날아가 8시간 분량의 오디션 영상에서 케이티가 나오는 장면만 하나하나 잘라편집했고, 그렇게 만든 테이프를 프랜시스와 가족에게보냈다. 프랜시스는 그 테이프를 딱 한 번 보았고, 그 뒤로는 5년간 손도 대지 않았다. - P31

브린은 형제자매가 없었지만 친구는 많았다. S는 7학년이 끝날 무렵 브린의 학교에 전학 온 이후로 브린의 절친한 친구로 지내 왔었다. - P32

그날 S의 부모님은 집에 없었다. S는 할머니에게전화했다. 할머니가 집에 오셨다. 그 뒤로는, 특히 처음몇 주 동안은 기억이 흐릿하다. 꼭 가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S는 학교에 갔다. 학교는 그냥 가만히 있기에 좋은곳이었다. - P32

(전략), 우리가 브린을 잃었을 때 저는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장소에 있었던 것 같다고요. 그러자 실내가 조용해졌어요. 사람들이 고개를끄덕이고 있었고요. 무언가 말하기로 한 게 잘한 결정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죠." - P33

이후 몇 해 동안은 브린의 생일이되면 한 무리의 아이들이 모이곤 했다. 그들은 가끔 브린의 유골이 뿌려진 숲으로 피크닉을 가서 브린에 관한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 P33

모니크는 아이들이 몇 년 전에 자살한 남학생에대해 물으면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만약 교실로 걸어들어온 누군가가 경솔하게도 "아, 그냥 자살하고 싶네"
하고 큰 소리로 말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다른 학생들이 "쉿, 선생님 앞에서 그런 말 하면 안 돼" 하고 속삭일 것이다. 모니크 주위의 학생들은 알고 있다. - P34

"리사," 내가 말한다. 리사는 내가 학생들을 자살로 잃는 학교들에 대해, 또 그 이야기를 쓰고 싶은 내 마음에대해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눈 사람이었고, 이제 우리는친구가 되어 있다. "자살이 학교에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인가요?" - P35

"리사, 그런데 학교가 어떻게 어린 영혼들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을까요?" 나는 묻는다. "그 아이들은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모르고, 죽으면 끝이라는 것도모르고, 혼란에 빠져 있고, 가끔은 도움을 청하는 방법조차 모르잖아요. (후략)." - P35

연민. 그 말에 나는 놀란다.
"학교도 그런 연민의 감정을 가질 수 있어야 해요." 리사가 말한다. "학교 스스로에 대해서요. 그런 용서가 필요해요." - P36

연민과 용서, 그 두 단어는 ‘꺾이지 않는 마음, 힘을 합치기, 역경을 극복하기, 재건하기, 가치의 공유, 미래를 위한 비전‘처럼 여기저기서 요란하게 소리치는 구호들이나 ‘지역 사회‘처럼 지원금 신청서에나 나올 듯한 경직된 느낌의 단어와는 전혀 닮은 데가 없다. - P37

브린이 자살하기 몇 년 전, 브린의 학교에서는스티븐이라는 10학년 남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근처 기차역으로 가서 달려오는 기차 앞에 서 있었던것이다.

저는 기차역으로 가야만 했어요. 그 플랫폼에 서서 봐야 했죠. 그러고 나서 생각해 봐야 했어요. ‘어떤기분이었기에 그런 일을 한 거니?‘ 저는 기차가 들어오는 걸 지켜봐야 했어요." 어맨더는 말한다. "머릿속에 있던 그 끔찍한 이미지를 몰아내려고 애를 써야 했죠." - P38

브린이 생을 마감했을 ㅋ대눈 새로윤 교장이 부임한 뒤였는데, 그 새 교장은 자신의 감정이든 남의 감정이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강의실에 들어간 교사들은 일어난 일을 돌려 말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 진술해 놓은 글을 소리 내 읽었다. - P39

 심리학자 마디 휘틀라 Mardic Whitla가 오스트레일리아의 학교들을 위해 엮은 위기 관리가이드북은 ‘참사/위기‘라는 포괄적인 이름을 가진 사건들의 뭉텅이에서 ‘자살‘을 분리해 냈다. 자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위기가 되었고, 자신만의 장을 따로 부여받았다.  - P39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할 수는 없어요." 마디 휘틀라는 내게 말한다. "교장은 책임을 져야합니다. 부모들은 학교가 계획하고 있는 일을 알아야하고요." 여기서 부모들이란 살아 있는 학생들의 부모들을 뜻한다. - P40

이런 변화들은 자살을 비밀스럽게 다루는 태도로부터 한발 멀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학교 측은 또한자력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압박으로부터, 또한 너무 많은 문제에 포위당해 있다는 느낌으로부터도 멀어졌다. - P40

이 ‘관리‘라는 개념은 휘틀라의 책이 나온 지 3년뒤에 발행된 여러 권의 연방 보건부 지침서 속으로 온통 퍼져 나갔다. - P41

이런 일이 가능해졌다. 속삭임과 소문만이 가득한 학교에 입학했다가 모든 걸 드러내는 분위기가 된학교를 졸업한 다음, "오스트레일리아 정신보건부 장관이 ‘자살 생존자들의 이야기는 말해져야 한다‘고 주장하다"라는 뉴스 머리기사가 조금도 놀랍지 않게 느껴지는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것.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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