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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에 나타나는 정신 이상에 걸린 등장인물들

Psychopathische Personen auf der Bühne (1942 [1905-1906])

막스 그라프 박사는 1942년 『계간 정신분석』에 실린 논문을통해서 1904년 프로이트가 이 논문을 썼으며, 자기에게 선사했다고 밝혔다. 이 논문은 프로이트에 의해서 출판된 적이 없다. 논문에 헤르만 바르의 글이 언급되어 있는 것을 보면, 이 글이 쓰인 연도에 대해서는 약간의 착오가 있었던 듯하다. - P135

무대 위에 나타나는 정신 이상에 걸린
등장인물들

아리스토텔레스 시대 이래로 극(劇)의 목적은 관객의 마음속에 <공포와 연민>을 불러일으켜 <감정을 정화(化)>시키는 데 있다고 생각되어 왔다. - P137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일차적으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분명 <울분을 풀어냄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지워 버리는과정일 것이다. 그럼으로써 얻어지는 즐거움은 완전한 감정의 해소에서 비롯되는 안도감이나 위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 즐거움이 다른 한편으로는 감정 해소과정에 수반되어 일어나는 성적 흥분과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 P137

여기서 관심을 가진 관객이란 경험이 적은사람, 스스로를 그 어느 의미 있는 일도 일어날 수 없는 가엽고불운한 존재로 느끼는 사람, 세상사의 중심에서 자신의 인격으로 꿋꿋하게 서고자 하는 야망을 이미 오래전부터 일찌감치 거두어들인 사람, 그래서 더더욱 모든 일을 자신의 욕망에 따라 느끼고 행동하고, 해결하고 싶어 하는 사람- 간단히 말하면 바로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 P138

더 나아가 관객은 자신의 생명은 <하나밖에 없는 것이라는 사실과,
역경에 맞선 그런 영웅적 투쟁을 <단 한 차례> 벌이다가도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 P138

극 이외에 창작의 다른 형식들에서도 즐거움의 향유를 위한 전제 조건은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어떤 형식보다도 서정시는, 옛날 한때 춤이 그랬던 것처럼 다양한 종류의 강렬한 감정이 분출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해 왔다는 의미에서 즐거움의 향유라는 목적을 충실히 이루어 온 셈이다. - P139

그러나 극은 감정의 가능성을 더욱 깊이 탐구한다는 점에서, 불행의 전조(前兆)에도 즐거움의 형태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그래서 갈등을 겪는 주인공을 묘사하고, 더 나아가 패배로 괴로워하는 주인공을 (피학적인 만족속에서)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문학 형식과는 다르다.  - P139

그러므로 어떤 형식으로 주어지든 고통은 극의 주제이며, 그고통을 통해 극은 관객들에게 쾌락을 약속한다. 이제 우리는 극이라는 예술 형식의 첫 번째 전제 조건에 도달한 셈이다. 극은 관객에게 고통을 불러일으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과, 만족을 줄 수있는 가능한 방법을 통하여 관객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공감적 고통을 보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현대 작가들은 바로 이와같은 규칙을 제대로 따르지 못하고 있다). - P140

정신적 고통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는 주로 그 고통을 유발하는상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정신적 고통을 다루는 극은그 고통의 원인이 되는 사건을 보여 주어야 한다. 보통 극이 그사건의 전개에서 시작되는 것이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일부 극에서, 가령 「아약스」²나 「필록테테스」에서처럼 원인이 되는 사건보다는 정신적인 고통이 먼저 소개되는 경우도 있긴 한데, 그런 경우는 분명히 예외에 속한다.

2 소포클레스의 비극으로, 아약스 Ajax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의영웅이다. 트로이 전쟁 시 아킬레스의 시신을 구했지만 그 아킬레스의 갑옷이 오디세우스에게 돌아가자 질투심 때문에 자살하고 만다. - P141

그러나 필요한 전제 조건이여실히 드러나는 또 다른 경우를 우리는 개인 사이의 갈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런 경우가 바로 <성격> 비극이다. - P142

<종교>, <사회>, <성격>극 등이 고통으로 나아가는 행위의전개 영역에서 본질적으로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우리는 극의 전개상 또 다른 영역을 고려해 볼 수 있다. 바로 <심리>극이다. 심리극에서는 고통을 유발하는 갈등이 주인공의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 P142

그러나 고통의 양상에 따른 극의 종류가 여기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경험하고, 또 그로부터 우리가 즐거움을 이끌어내는 고통의 근원이 거의 동등한 두 의식적인 충동 사이의 갈등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의식적인 충동과 또 하나의 억압된충동 사이의 갈등에 있는 경우, 심리극은 정신 병리학적 극(사이코드라마)으로 바뀌게 된다. - P143

이 경우에는 단 한 차례의 억압 행위를 가해도 예전부터 억압되어 온 충동을 완전히 억제하는 것이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신경증 환자에게는 억압의 힘이 거의소멸 직전에 있다. 말하자면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지속적인 억압이 필요하다. - P143

그러므로 극의 주제가 될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갈등이 신경증 환자에게서만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라도 극작가는 단순히 해방의 <즐거움>만을 촉발시킬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반발심>도 불러일으켜야 할 것이다. - P143

 『햄릿』은 이 글의 논의와 관련하여 중요한 듯이 보이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1) 주인공이 원래부터 정신병 환자는 아니다. 다만 극에서 행위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정신병 환자가 되었을 뿐이다. (2) 주인공 내면의 억압된 충동은 우리 모두에게서 마찬가지로 억압되어 있는 그런 충동들 가운데 하나다. - P144

 (3) 의식 속에 떠오르려고 애를 쓰는 충동은, 우리가 그것이 무엇인지 아무리 분명하게인식하려고 해도, 뭐라고 정확히 이름 붙일 수가 없다는 사실이바로 이 작품과 같은 예술 형식의 필요 전제 조건이다. 따라서 관객들에게서도 역시 이 과정은 회피된 관심 속에 이루어지게 되며,
관객은 벌어지고 있는 일을 자세히 살펴보기보다는 자신의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만다. - P144

다른 많은 정신병적 등장인물들이 현실 생활에서처럼 무대에서도 아무런 공헌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앞의 세 가지 전제조건을 무시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신경증 환자의 갈등은 그것이 완전히 고착(固着)된 경우에 우리가 처음 마주하게 되면, 그 갈등을 전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 P145

더욱이 이것은 우리에게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억압을 처음 제시할때 특히 필요한 작업이며, 무대 위에서 신경증을 다루는 데 햄릿보다도 한 단계 더 발전된 양상을 보여 주게 될 것이다. - P145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대중들의 신경증적 불안정, 그리고 관객들의 반발심을 피하고 그들에게 사전 쾌락을 제공할 수 있는 극작가의 능력만으로도 무대 위에 등장하는 비정상적인 인물들에게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의 한계를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 P146

작가와 몽상

Der Dichter und das Phantasieren (1908[1907])

이 글은 원래 1907년 12월 6일에 빈 정신분석학회 회원이자출판업자인 후고 헬러 Hugo Heller가 제공한 장소에서 90명의 청중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다. 이 강연의 모든 내용이 처음 실린곳은 1908년 초 새로 창간된 베를린 문학 잡지인 ‘신평론NeueRevue』이었다. 글의 주된 관심은 「그라디바』에 관한 연구에서도언급되고 있는 몽상에 관한 것이다. - P147

작가와 몽상

문외한인 우리는 문학을 창작하는 특별한 사람들이 과연 어디서 소재를 가져오는지, 또 그 소재를 통해 어떻게 그토록 우리를사로잡을 수 있고, 우리로서는 생각조차도 불가능해 보이는 감동들을 어떻게 우리의 가슴속에 불러일으키는지 - 가령 아리오스토에게 그 유명한 질문을 했던 추기경의 심정이 되어 매우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 P149

즉 작가들은 자신들의 특이성과 인간의 보편적인 본질을 구분하는 거리를 그들 스스로도 기꺼이 좁혀 보려고 한다.
모든 인간 속에는 시인이 숨어 있고 마지막 인간이 사라질 때 마지막 시인도 사라진다는 점을 누누이 우리에게 확인시켜 준 이들은 문학인 자신들이었다. - P150

라 오히려 현실일 것이다. 유희 세계에 모든 감정을 집중시키면서도 아이는 현실과 자신의 유희 세계를 구별할 줄 알 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의 가시적이고 만져서 알 수 있는 사물들을 상상적인 대상과 상황들과 연결 짓는 것을 좋아한다. 어린아이의 <놀이>를 <몽상>에서 구별시켜 주는 것 역시 바로 이러한 연결 고리다.

창조적인 작가는 결국 놀이를 하는 아이와 동일한 것을 하고있다. 그 역시 몽상적 세계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고, 그 세계를 진지하게 여기고 있다. - P150

 언어는 재현될 수 있는 유형의 대상과 연관되어 있을 것을 요구하는 상상적 글쓰기의 형식에 Spiel(놀이)이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있는것이다. 이 단어는 Lustspiel(희극), Trauerspiel(비극)이라는 말들속에 들어 있고, 이러한 극들을 공연하는 사람을 Schauspieler(배우)라고 부른다.²

2 프로이트는 여기서 독일어의 복합 명사들 속에 공통으로 들어 있는 요소를 추출함으로써 자신의 논거를 세우려고 한다. 독일어의 희극Lustspiel, 비극 Trauerspiel, 배우Schauspieler 등의 단어들 속에는 실제로 놀이나 행위를 뜻하는 Spiel이라는 단어가공통으로 들어가 있다. Spiel이라는 단어에 각각 <쾌락>을 뜻하는 Lust, <슬픔>을 뜻하는 Trauer 등의 단어가 합성되어 있고, 배우 Schauspieler의 경우에는 <바라보다>라는 뜻의 Schau가 Spiel에 결합된 것이다. 영어에서는 익히 알려져 있듯이 극작품을 지칭할때 a play라고 한다. 프랑스어에서는 독일어와는 달리 jouer un role (역을 한다. 어떤역으로 출연하다), jouer une comédie (희극을 공연한다)라고 표현한다. - P152

현실과 유희 사이에 존재하는 또 다른 유사성을 밝히기 위해양자의 대립적 관계에 대해 조금 더 언급해 보자. 아이가 성인이되어 더 이상 놀이를 하지 않게 되고, 또 몸소 체득한 것을 통해 수십년 동안 현실을 이해하려고 정신적으로 노력을 기울인 이후라고 해도 그가 어느 날 현실과 유희의 대립을 다시 무너뜨리는 어떤 정신적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 - P151

사춘기를 지나 청년이 되면 놀이를 중단하여 언뜻 보기에는 그가 놀이에서 얻을 수 있었던 쾌락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적 삶이 어떤 것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는 한 번 경험한 쾌락을 포기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없다는 사실 또한 알 것이다.  - P153

어린아이의 놀이는 욕망들에 의해 인도된다. 좀 더 정확히 말해 아이의 인격 형성에 도움을 주는 욕망, 즉 자라서 어른이 되겠다는 욕망에 의해 인도된다. 아이는 <어른인 것처럼> 놀며, 어른들의 삶에서 배운 것들을 놀이에서 모방하게 된다. - P153

이들은 신경이 극도로 예민한 자들로서 의사를 찾아가 고백을 해야만 하고, 의사가 정신적 치료를 통해 원상태대로 회복시켜 주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어서 그들의 몽상까지 털어놓곤 한다. 우리가 가장 정확한 지식을 얻는 것은 바로 이곳인데, 우리를 찾아온 환자들이 건강한 사람들의 입을 통해 들을 수 있는 것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 P154

오히려 두 방향의 빈번한 일치를 강조해야 할 것이다. 수많은 성당의 벽화 속에서 흔히 모서리 한구석에 그려져 있는 기증자의 얼굴을 볼 수 있듯이, 마찬가지로 우리는 대부분의 야망적몽상의 어느 후미진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 한 귀부인을 만나게되는데, 이 여인을 위해 몽상가는 업적을 쌓아야만 했고, 또 자신의 모든 성공은 이 여인의 발아래 바쳐지기 위한 것이었다. - P155

그러나 이러한 상상 행위의 결과들, 즉 몽상들, 모래성들, 비몽사몽 등을 언제 어디에서나 고정불변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것들은 오히려 변화무쌍한 삶의 여러 인상 속에서 형성된 것들이고, 개인적인 상황이 변화할 때마다 같이 변화하며, 또매번 우리가 흔히 <시대의 각인>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자국들을덧붙이게 된다. - P155

이제 몽상의 몇 가지 특징들을 알아보자. 행복한 사람들은 몽상을 좇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오직 만족을 모르는 자들만이몽상을 좇을지도 모른다. 충족되지 못한 욕망은 몽상을 움직이는힘이고, 모든 몽상은 욕망의 완결이며 동시에 만족을 주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보정(補?)이다. - P154

그러나 이들은 그 자신들이 지향하는 두 가지 주된 방향에 따라 무리 없이 두 그룹으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자신의 격을 높이려는 야망과 관련된 욕망이고, 다른 하나는 성적 욕망이다. - P154

그러나 이러한 상상 행위의 결과들, 즉 몽상들, 모래성들, 비몽사몽 등을 언제 어디에서나 고정불변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것들은 오히려 변화무쌍한 삶의 여러 인상 속에서 형성된 것들이고, 개인적인 상황이 변화할 때마다 같이 변화하며, 또매번 우리가 흔히 <시대의 각인>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자국들을덧붙이게 된다. - P155

(전략), 이 상황이 욕망이 충족되는 상황, 더 정확히 말해 백일몽 혹은 몽상인 것이다.
이 욕망은 현재의 계기와 과거의 기억에서 출발해 욕망이 시작되었던 기원의 흔적들을 정신 활동 속에서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시간을 가로지르는 욕망의 도화선이 요컨대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시간대를 꿰뚫고 있다. - P156

몽상에 대해서는 이 외에도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장 간략한 몇 가지만을 지적하고자 한다. 신경증과 정신 이상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들을 형성하는 것은, 다름아니라 여러 몽상이 모였을 때 그로부터 몽상들이 얻게 되는 지배적인 지위이다. - P156

나는 몽상과 꿈의 관계에 대해서도 그냥 지나쳐 버릴 수가 없다. 우리가 밤에 꾸는 꿈들도 역시 이미 꿈의 해석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 것처럼 이와 같은 몽상들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⁵

5 『꿈의 해석』 참조. - P157

만일 이런 지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가 꾸는 꿈의 의미가 많은 경우 불분명한 채로 남아 있다면, 그것은 수치스러워서 우리 자신에게도 숨겨야 하고, 또 이런 이유로 해서 억압되고 무의식 속으로 밀려나야만 했던 욕망들이 밤에도 낮처럼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 P137

몽상에 대해서는 이쯤 해두기로 하고, 이제 문학 창조에 대해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과연 우리는 정말로 문학 창조자와 대낮에 꿈꾸는 자>를 아무 주저 없이 비교할 수 있고, 또 그의 창조를낮에 꾸는 꿈과 견주어 볼 수 있을까? - P157

이 이야기꾼들의 창조 속에는 다른 무엇보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모든 이야기들은 흥미의 중심에 주인공이 있고, 이 주인공을 위해 작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 내려고 한다. 또한 작가는 마치 특별한 섭리라도 지닌 듯이 주인공을 보호하려고 한다. - P158

이러한 자아 예찬식 소설들이 지니고 있는 또 다른 특징들 역시 동일한 친족 관계에 포함시킬 수 있다.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여자들이 남자 주인공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낮에 꾸는 꿈의 한 요소로 볼 수 있다. - P159

우리는 많은 문학 작품들이 단순하기 짝이 없는 백일몽의 모델과 매우 먼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가장 극단적인 변형들이 일련의 전이 과정을 거쳐 동일한 모델과 관련을 맺을 수 있다는 우리의 추측을 지워 버릴 수없다.
흔히 <심리> 소설이라고 부르는 작품들 속에서 나는 주인공이라는 단 한 인물만이 그 내부에서부터 묘사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적이 있다. - P159

 심리 소설의 특이성은 전체적으로 볼 때 아마도 현대의 작가들이 자신을 관찰하면서 자아를 여러 개의 부분적인 자아들로 나누는 경향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 P159

창조적인 작가들과 꿈꾸는 자들을 동일시하고, 또 문학 창조와 낮에 꾸는 꿈을 동일시하는 우리의 논리가 어떤 의미를 지닌다면,
무엇보다도 이 논리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이론으로서 풍요성을 입증해야만 할 것이다. - P160

무(無)에서 시작되는 자유로운 창조가 아니라 기성의 익숙한 소재들을 재가공한 소설들이 있다. 이제 우리가 그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는 소설들로 다시 돌아가 보자. 같은 모델에 기초한 소설들이라고 해도 작가에게는 여전히 모델을 선택하고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자신의 개인적 성향을 드러낼 수 있는 여지가 주어지고, 또 흔히 모델과 상당히 거리가 먼 소설들이 태어나게 한다. - P161

독자들은 문학 창조에 대해 말할 것처럼 제목을 정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문학 창조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오히려 몽상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 P161

 나는 여기서 몽상에 대한 연구에서 출발해 문학 창조자들의 소재 선택에 관련된 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단지연구자들에게 자극을 주고 권유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문제, 즉 어떤 과정을 거쳐 작가가 우리에게 정서적 충격을 주게 되는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할 수가 없었다. - P162

한 개인과 다른 사람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수많은 장벽들과 관련된 이러한 거부감을 넘어서서 줄거움을 줄 수 있는 바로 이 기교 속에 아마도 진정한 시학(詩學)이 존재할 것이다. 이 기교는 두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 P162

내가 보기에 문학 창조자들이 제공하는 쾌락은 이와 같은 사전쾌락의 속성을 지니고 있고, 또 문학 작품이 고유하게 갖고 있는 쾌락이란 우리의 영혼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긴장들이 해소됨으로써 발생하는 것 같다. 문학 창조자들을 통해 우리 역시 스스로의환상을 즐길 수 있게 되는데, 이 사실 또한 문학 작품이 생산해 내는 결과들 중 하나일 것이다 - P163

8 프로이트는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에서 이 <사전 쾌락>과 <상여 유혹>의 이론을 농담에 적용시키고 있다. 그리고 「나의 이력서」(프로이트 전집 15, 열린책들) 제6장에서는 창작 과정과 연관시켜 이 이론을 논하고 있다. 쾌락은 독자가 마치 실제의일인 듯 상상의 상황 속으로 들어갔을 때만 얻어지는 정신적 움직임에서 나오므로, 이쾌락은 비록 그것이 상상의 유혹이지만 유혹을 당했을 때 일종의 덤으로 얻어진다. 따라서 육체의 움직임이 수반되지 않는 쾌락이므로, 다시 말해 행동 이전에도 가능한 쾌락이므로 사전 쾌락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두 개념을 프로이트는 농담에도 적용했고,
또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프로이트 전집 7, 열린책들)에서도 분석한 바 있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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