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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니카의 아이들
미치 앨봄 지음, 장성주 옮김 / 윌북 / 2025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하루아침에 누군가로부터 자유를 침해 당하고, 살던 집에서 쫓겨나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서로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게 된다면? 일상이 무너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생존하는 것 자체가 버거운 하루하루가 이어져, 인간의 존엄이 파괴당하는 끔찍한 일들이 당연스럽게 자행된다면?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영화나 책들은 언제나 마음이 불편하고 아프다. 예전에는 이런 유의 소설을 일부러 멀리했으나 지금은 다르다. 과거에 일어난 일들로 하여금 우리는 작금의 세태를 돌아볼 수 있거니와 미래를 예측할 수도 있다. 무턱대고 이런 책들을 멀리할 것이 아니라, 후손들이 진실을 알아나가고 그 진실에 귀 기울이기를 바란다.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 권리가 있고, 비판하고 소리 내며 그건 잘못되었다고 떳떳이 말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니까.
라자르, 니코, 세바스티안, 파니는 그리스 살로니카에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바라는 건 딱 하나. 이 전쟁이 끝나게 해 달라는 것. 그들이 유대인이 아니었다면 잔혹한 일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까? 이제는 시너고그에서 예배를 드릴 수 없고, 기도조차 숨어서 해야 한다. 독일군이 모든 것을 약탈하는 순간에도 니코와 세바스티안의 할아버지인 라자르는 세상의 모든 선함에 대해 주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자고 한다.
1943년 어느 일요일 아침, 이날은 니코와 세바스티안의 집에서 몰래 수업이 열리는 날이었다. 유대인은 학교에 다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니코는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비밀 장소인 벽장에 숨어 있었는데, 하필 이때 무심코 숨은 니코의 행동은 걷잡을 수 없는 일로 번지게 된다. 이 벽장을 우연히 발견한 파니가 니코를 따라 같이 숨었던 일도. 니코는 벽장에서 숨은 채, 가족들과 생이별을 한다. 그 후로 다시는 부모님을 만나지 못했으니까.
벽장에 숨어 있다가 안전한다고 생각해서 나온 파니에게도 불행이 닥친다. 아버지가 눈앞에서 독일군에게 총살 당하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한 편, 세바스티안은 집에서 끌려나가기 전에 벽장에 니코와 파니가 같이 있는 걸 목격한 후 질투심에 사로잡혀 부모님에게도 끝내 니코의 행방에 대해 함구한다. 세바스티안은 남몰래 파니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page 161. ˝거짓말을 결코 하지 않던 그 소년은 1943년 살로니카의 기찻길 위에서 정직이라는 허물을 벗어버렸어요.˝
정직이라는 허물이라니. 이런 역설적인 표현이 또 있을까. 벽장에 숨어있던 니코는 어떻게 되었을까? 니코의 집을 빼앗은 독일군 장교, 우도 그라프는 벽장에서 니코를 발견하고 니코의 정직함을 이용하여 유대인들을 수용소에 보내고자 계략을 짠다. 뒤늦게 우도에게 이용당한 것을 알고 분노와 격분으로 휩싸여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니코. 이제 정직과는 거리가 먼, 거짓말로 점철된 인생을 살아가며 돌이킬 수 없는 그날로 여러 번 돌아간다. 자신이 사람들에게 했던 말. 자신이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말. 그토록 정직했던 바보 같은 자신을 원망하며 말이다.
page.249
˝니코는 부자가 됐어요.
세바스티안은 집착에 빠졌군요.
파니는 어머니가 됐고요.
우도는 스파이가 됐네요.˝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고, 우리 등장인물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니코는 어떻게 해서 부자가 되었을까. 세바스티안은 무슨 집착에 빠졌을까. 파니는 누구의 아내가 되었을까. 책의 후반부는 각자의 목표를 향해 꿋꿋하게 살아온 인물들이 겪는 일들과 사건에 대해 쉼 없이 달려간다. 그리고 과거 자신의 만행을 숨기고 여러 나라를 전전하며 신분을 숨기고 사는 우도 그라프의 행적에 대해서도. 우도는 쫓기는 와중에도 나치의 부활을 꿈꾸며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다. 뼛속까지 유대인을 무시하고 더럽다고 생각했던 우도의 마지막 운명은?
전쟁과 학살 속에 소리 없이 자행된, 유대인에게 닥친 비극을 여실히 보여주는 소설이다. 어떤 인종이 우세한지, 열등한지의 판단은 도대체 누가 하는 것이며 왜 죄 없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억압당하고 이용당해야만 했을까. 가슴 아픈 일들을 마주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나, 현재를 사는 지금도 우리는 그들의 슬픔과 희생을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