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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임재 기쁨 - 안식과 기쁨을 주는 그리스도의 임재와 행복한 동행
찰스 스펄전 지음, 유재덕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19세기 설교의 황태자라고 불렸던 스펄전 설교 책이다. 스펄전은 이 책에서 우리의 죄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리스도의 희생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에 거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썼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친히 그 몸으로 담당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으로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고난을 받으셨고 죽으셨기에 개인적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지속적으로 담당하셨다.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어린양으로서 세상의 죄를 담당하셨다. 거룩한 사역을 시작한 날부터, 그리고 그 이전부터 주님은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p. 20) 주님의 이러한 희생으로 인해서 우리는 완벽하게 해결함을 받았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한 거룩한 믿음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때문에 희생당하시고 부활하셔서 완벽하게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그분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런 주님께서 우리에게 임재하신다. 그런데 주님의 임재가 처음에는 우리로 하여금 두렵게 만든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와 허물들이 그 분 앞에서 낱낱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베드로처럼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5:8)“라고 고백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지나면 주님의 방문은 우리에게 달콤한 위로를 누리게 하신다.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임재가 현실적이고 영적으로 임하기를 바란다. 카톨릭는 미사를 집례하면서 주님의 임재는 실제적으로 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육신에 의지해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기에 실제적인 임재는 하늘에 존재할 뿐이다. 우리는 영적이면서도 획일적이지 않는 예수님의 실제적인 임재를 믿는다. 영적이라는 것이 비현실적인 뜻이 아니다. 우리의 영혼이 주님의 임재를 실제적으로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님께서 임재하면 우리의 당장의 상황은 바뀌지 않지만 우리는 어느 때보다 그 무엇보다 평안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하루하루가 우리에게 안식일이 되고, 식사는 성찬식이 외고, 가정이 성전이 되고, 지상이 천국으로 바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연약하여서 이러한 주님의 임재를 항상 느끼지 못한다. 어떨 때에 우리는 그런 것을 느끼고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첫 번째는 힘에 겨울 때다. 그럴 때는 바벨론 포로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노예로 있었을 때 해방시켜주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며 위로를 얻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임재의 기쁨을 주셨을 때를 기억하는 것이다. 또 난처할 때는 주님을 향해 길을 가면 된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없다.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느끼는가? 주님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세실만큼 섬세하신 분이시다. 그러기에 우리는 가장 작은 짐까지도 주님께 맡길 수 있다. 여러 가지 상황들이 주님의 임재의 기쁨을 사라지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언약하셨고 그것은 그 어느 누구도 철회시킬 수 없다. 주님을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했다”
임재의 기쁨을 우리가 계속해서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결해야 한다. 정결하다는 것은 천사처럼, 영광스러운 성인들처럼,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아버지처럼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유다를 제외한 모든 제자에게 주저하지 않고 “온몸이 깨끗하니라”(요 13:10)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약점도 많았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을 갔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이 정결하다고 했다. 우리도 온전하지 못하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정결하다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의 정결함은 이 현재의 시간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의 현재 상태나 조건은 모두 깨끗하다. 이 즐거움은 우리의 인정 여부에 달린 것이므로 지금이라도 우리의 기쁨이 흘러넘치게 하자. 주님은 우리가 죄에서 구원해서 영광과 행복을 누리게 하신 것처럼 교회를 바라보는 것을 기뻐하신다. 이 땅의 교회도 우리의 모습처럼 분명 허물과 죄가 많다. 주님은 그런 것에 대해서 주저하지 않고 죄를 꾸짖으신다. 주님은 경건하지 않는 세상만큼이나 교회의 죄를 혐오하신다. 하지만 아가서를 통해서 주님은 교회를 칭찬하신다.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이 표현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임금은 사랑이 충만하지만, 합리적인 생각을 넘어설 정도는 아니다. 임금의 말에는 진실이 담겨져 있다. 그러기에 예수님의 신부된 교회는 사랑스럽고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는 것이다. 우리의 행위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분의 전적인 사랑 안에서 말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의 벌레와 같은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이 소중한 교제에 대해 눈물 어린 진정한 감사와 사랑으로 응답할 수 있을 뿐이다.
19세기의 설교지만 지금도 여전히 위로가 도전이 되기에 설교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들을 수 있는 것 같다. 폭포수처럼 흐르는 놀라운 은혜를 이 책을 통해서 경험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