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 소설은 어떻게 쓰여지는가
정유정.지승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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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궁금증 하나,

나는 이 책이 인터뷰 집인지 궁금하다.

책의 구성방식이야 묻고 대답하는 형태를 취하니 '인터뷰 집'이 맞겠지만,

구어체가 아니라, 문어체를 구사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 발생할 수 있는 존칭이나 물음표, 느낌표 따위가 다 생략되고 팩트만 전달된다.

지승호 님의 물음에 대한 정유정 님의 답은 대화라기 보다 한편의 짧은 이야기나 소설 등을 연상시킨다.

일상적인 대화라고 하기엔 형태가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다.

예도 상세하게 들고 자료도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입말이 아니라 문어체라고 해도, 몰입하는 힘이 있다.

앞으로 쭈욱 빼서 내처 읽게 만든다.

긴장감이라고 해야 할까, 속도감이라 해야 할까.

 

고백할게 있는데 난 정유정 님의 작품을 하나도 읽은게 없다.

그런 내가 '소설은 어떻게 쓰여지는가'하는 작법서를 읽고 있으려니까 아이러니컬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내가 앞으로 소설을 쓰고 살아갈 일은 없어도,

정유정 님의 소설 발자취를 궁금해 할 수는 있으니까 말이다.

내가 그동안 정유정 님의 소설을 안 읽은 이유를 변명해 보자면,

무서운 이야기들을 안 좋아하기 때문이라고나 할까?

난 귀신이 등장하는 그런 무서운 이야기가 아니라,

주변에 있을 법한 일을 다룬 무서운 이야기에 약하다.

굳이 읽고 기나긴 여름밤을 공포로 지새울 까닭은 없지 싶었다.

 

이 책은 지승호 님의 인터뷰 집이라는 형식이어서 구입했고,

인터뷰 집이 소설의 내용을 담고 있으면 얼마나 담고 있겠으며, 무서우면 또 얼마나 무섭겠나 싶기도 했다.

공모전에 여러번 떨어졌다는 얘기도, 스티븐 킹을 필사했다는 얘기도 흥미로웠다.

 

만약 이게 서면 인터뷰가 아니라,

대면 인터뷰였다면,

어떤 식으로 인터뷰를 했는지,

인터뷰의 주도권은 누가 이끌어갔는지 궁금하다.

정유정 님이 삶을 엿볼 수 있고,

그간 어떻게 소설을 써왔는지를 엿볼 수 있는 작법서에 가깝다.

그런데 또 책을 진행해 나가는 방식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재미있는 소설집을 엿보는 것 같은 것이 흥미롭다.

 

소설은 크게 둘로 나눌 수가 있는데, 하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소설이고, 다른 하나는 경험을 하게 하는 소설이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정유정 님이 소설을 어떤 식으로 쓰는지 엿볼 수 있었고,

모든 사물이 그렇듯, 책도 한 가지 목적으로만 쓰이지 않는다. 마음의 양식도 되고, 때론 수면제도 된다. 내가 원한 건 수면제였다.(65쪽)

이런 구절도 좋았다.

 

소설을 쓰기 전에 던져봐야 할 말이 있다는데,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라는 것이고,

작가의 의무로 '진실을 말해야 한다' 하나를 꼽았다.

 

정유정 님의 글쓰기 비법 같은 것이 그후로도 쭉 등장하지만,

안 읽어본 소설들을 나중에라도 읽어보고 싶은 욕심에 때로는 스킵했었고,

이 구절이 좋았어서 옮겨본다.

 

  부사는 항생제 같은 거다. 한두 번은 확실한 효과가 있지만 자주 쓰면 내성이 생긴다. 가령, '너무'라는 부사를 습관처럼 쓰면 정말로 '너무'한 일에 썼음에도 전혀 안 '너무'한 일처럼 느껴진다. 문장이 야단스러워지는 면도 있고.

  나는 단문을 좋아한다. 속도감 있게 읽히고 의미가 분명하게 전달되니까. 문제가 있다면, 단문만으로는 긴 문단을 구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문장들이 따로 놀거나 모래알처럼 서걱거리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려고 접속사를 쓰다 보면 단문의 장점인 속도감이 사라진다. 단타 늑유의 힘도 줄어들고. 그렇다고 문단을 짧게 자르거나 행갈이를 해대면 서술 흐름이 거칠어진다. 한 호흡으로 달려야 하는 긴 묘사는 꿈도 꿀 수 없다. 내 해결법은 문장과 문장 사이에 리듬을 넣는 것이다. 도치법, 주어나 동사 생략, 단독으로 부사 사용하기, '은, 는, 이, 가'의 활용, 장문과 단문 섞어 쓰기 등등을 총동원한다. 랩을 하듯, 한 문단이 쑥 읽히도록.

  종결어미는 과거형을 기본으로 쓴다. 현재시제는 꿈이나 편지, 일기 등, 구별이 필요한 부분에만 쓴다. 소설은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서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시간은 흐른다. 불과 1초 전이라 해도 엄밀한 의미에서 현재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이건 개인적 취향인데, 감탄사는 웨난하면 쓰지 않는다. 대사에 쓰면 인물이 가벼워지는 느낌이고, 문장에다 쓰면 다음과 같은 느낌이 든다. 어때, 이 문장 죽이지!(233~234쪽)

이 책 말고도 어디선가 형용사와 부사 사용을 자제하라는 글을 본 것 같은데,

그게 어디인지 기억은 안난다.

헤밍웨이 였는지, 강원국이었는지 헷갈린다.

 

최고의 인터뷰어인 지승호 님답게 이런 질문들이장 좋았다.

 

지_ 하고 싶은 이야기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정_ 하고싶은 이야기가 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최고로 좋을 것이다. 그게 일치하지 않는다는 건, 의지와 능력이 대립하는 경우다. 내 경우 전자를 포기한다. 프로라면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할 수 없는 분야가 있다는 걸 인정하면, 포기 못할 것도 없다. 나는 SF를 좋아하지만 이야기할 능력은 없다. 그래서 이 장르는 독자로만 만족한다. 물론 처음부터 포기한 건 아니었다. 무엇이든 일단 덤벼보기는 한다. 이 일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알려면 일단 해 보는 것 말고는 길이 없으니까.

하고 싶은 이야기 대신 세상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옳지 않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로 인해 듣게 될 비난이나 비판도 당연히 작가의 몫이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으니 그게 어딘가. 세상에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251쪽)

 

책의 곳곳에서 스티븐 킹을 인용하는 걸 보면 스티븐 킹의 영향을 어지간히 많이 받았나 보다.

 

이런 부분은 책은 소설가가 자신이 쓰는 소설을 이야기 하는 책이지만,

누구든 자신의 삶에 적용시켜 볼 수 있겠다.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때로는 프로패셔널이란 이유로 막무가내로 주장하고 고집할 때도 하는 구나 싶어서 좋았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파리리뷰'와 인터뷰에서 한 말을 인용하는데,

그렇게 놓고 보니,

이 책의 인터뷰 방식이 파리 리뷰를 닮은 것도 같다.

이렇게 정유정 님을 시작으로 우리나라 작가들을 대상으로 '파리 리뷰'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재미있을 듯 하다.

 

뭐, 글을 쓸 것도 아니고,

소설을 쓸 것은 더 더욱 아닌 나로서는,

아주 좋았다고 할 수 없지만,

이 책이 계기가 되어, 그동안 미뤄왔던 정유정 님의 소설들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 의미있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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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8-07-20 17:38   좋아요 1 | URL
대담도 있겠지만 사전 또는 사후 지면 인터뷰를 병행하지 않으면 일케 밀도 있는 인터뷰집이 나올 수가 없겠지요
이런 방식의 소설론 독자를 위한 배려 같고, 흥미 있네요
역시 책보다 리뷰인 양철님의 글~
더운데도 꾸준히 독서하시는 것도 부럽습니다^^





양철나무꾼 2018-07-20 17:50   좋아요 0 | URL
저 이 책 읽으면서 다크아이즈 님이 계속 떠올랐어요.
님이라면 어떻게 소설을 쓰실까,
이럴때 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하나 하나 님과 대비해 보게 되더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 님께 강추 합니다~!^^

꾸준히는 하는데,
더워서 그런가 속도는 안 붙습니다.

제가 너무 너무 사랑하는 다크아이스 님,
날 더운데 지치지 않게 체력 안배 잘 하시구요.
기운 내세요~!^^

글쎄 2018-07-20 18:54   좋아요 0 | URL
읽고싶네요

양철나무꾼 2018-07-21 09:18   좋아요 0 | URL
트라이 투 해보세요.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nomadology 2018-07-20 22:52   좋아요 1 | URL
(스티븐 킹님께서)지옥으로 가는 길은 부사로 덮여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글은 아주 열심히 쓰고 계시지 않나요?

양철나무꾼 2018-07-21 09:2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nomadology님.
오래간만이십니다.^^

그러고 보니, 부사, 형용사를 자제하라는 말은 여러 사람이 했던 것 같습니다.
스티븐 킹도 강원국도 헤밍웨이를 읽었을테니, 헤밍웨이의 손을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 소심하게 말씀드려 봅니다.

전 스티븐 킹의 초기작들이 오히려 아주 좋았는데,
언제부턴가 잘 안 읽게 되더라구요.
조힐이라고 스티븐 킹의 아들도 고딕 소설을 쓰는데 좀 그렇더라구요~--;

AgalmA 2018-07-22 15:28   좋아요 1 | URL
부사, 형용사 자제는 거의 모든 작법서에서 금지하는 터라 어느 책이라고 언급하기도 뭐한^^; 전 그것들을 쓰는 걸 ‘너무‘! 좋아하고 접속사 남발, 질질 끄는 종결어미도 즐겨 써 제 문장을 보며 전설의 고향을 보는 듯해 난감 망연....

양철나무꾼 2018-07-26 09:28   좋아요 1 | URL
Agalma님~, 상심하고 지내느라 댓글이 늦었습니다.
지나친 상실감으로 판단 불가, 감정 남발의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저는 형용사는 조금, 부사는 아주 많이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같습니다‘ 같은 모호한 단어도 사랑하고 말이죠.
전설의 고향이라셔서 뜬금없이 생각난건데,
호러물을 안 좋아하지만 존코널리는 아주 애정하죠.
그런 의미에서 님도 제가 많이 애정한답니다~^^
 
오늘 너무 슬픔
멀리사 브로더 지음, 김지현 옮김 / 플레이타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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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정말 잘 쓴다.

그러니까 웹상에서 글을 써올리고 상담을 하고 했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글이 나랑은 안 맞는다.

글은 충분히 좋지만,

읽다보면 욕지기가 나오고 불편하다.

예전 같으면 이런 쪽으로의 간접 경험도 필요하다면서 꾸역꾸역 읽었겠지만,

이젠 그럴 필요를 못 느낀다.

 

구태여 글쓴이의 비밀들을,

(물론 인터넷에 게시하는 순간 비밀은 아니겠지만,)

글쓴이의 그렇게 은밀한 내면들을 알고 싶지도, 엿보고 싶지도 않았다.

 

글씨의 색깔도 흐리고,

글자 크기도 작고 해서 불편한데다가,

내용이 우리나라가 아니라 미국의 일이라서 그런건지,

내가 지극히 보수적인 사람이어서 그런건지,

완전 완전 완전 파격이라고 여겨졌다.

 

솔직히 '옮긴이 후기'를 봐도 뭐, 감흥 같은게 느껴지지 않았고,

책 뒷표지의 '록산 게이'의 추천글을 읽어도 공허하게 느껴질 뿐이다.

 

멀리사 브로더의 에세이들은 슬프고 불편하면서도 독창적으로 찬란하다. 지금 이 세상을 산다는 것이 어떤 일인지를 정직하게 밝혀주는 에세이들

 - 「나쁜 페미니스트」지은이 록산 게이

 

이젠 어떤 책들은 나와 맞지 않는다고 쿨하게 접어 치워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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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07-19 18:44   좋아요 3 | URL
맞지 않은 책을 쿨하게 접는 것도 전, 멋진 일인것 같아요.
저도 아주 최근에서야 그럴 수 있게 되었어요.
뜻모를 의무감에 꾸역꾸역 끝까지 읽었....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런데 맞지 않은 책이랑 페이퍼 제목은 너무 잘 어울리네요.^^

양철나무꾼 2018-07-19 19:37   좋아요 1 | URL
옛날에 우리나라 무가지 신문에 보면 켓우먼이라는 필명을 가진 분이 인생상담을 해주셨는데, 전 그 코너를 좋아했었어요.
이 책도 책소개만 보고 왠지 그럴 것 같았는데 전혀 상관없는 내용이더라구요.
좀 후회가 되기도 하지만 내 안목의 소박함을 탓항 밖에요~--;
제목이 쫌 잘 어울렸습니까?^^

북극곰 2018-07-20 14:07   좋아요 1 | URL
‘슬프고 불편하면서도 독창적으로 찬란하다.‘라는 말이 뭔가 숨기고 있는 듯 들려요. ㅎㅎㅎㅎㅎ ^^;;
근데 궁금하니까 도서관에 오면 서서 잠시만 훑어볼래요. ^^

양철나무꾼 2018-07-20 14:48   좋아요 0 | URL
이 여자가 겪었다고 하는 강박, 중독, 판타지, 정신 질환, 섹스, 사랑에 대한 얘기가 좀 충격적이었고,
내가 앞으로 살면서 어느 하나라도 경험하게 될 것 같지 않은 얘기라서 설득력이 부족했는지도 몰라요.
물론 앞으로 살아가면서 다른 것들로 힘들어 하며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결코 이 여자가 겪은 이런 방식은 아닐 거라고 장담해 봅니다.
내 주변에서 발생할 수도 있으려는지 모르겠지만, 인정하긴 싫고,
내가 겪는다고 하기엔, 너무 나이 먹고 고리타분하다고 해야할까요?

리뷰들을 보니, 저랑 정 반대로 위로 받고 치유 받았다는 의견도 많더라구요.
님은 또 어떻게 읽으실지 궁금합니다.
혹 보시게 되면 코멘트 남겨 주실거죠?^^

AgalmA 2018-07-22 15:35   좋아요 1 | URL
록산 게이 <나쁜 페미니스트> 책밖에 못 봐서 성급한 판단이겠지만 제가 좋아하는 문체나 성향이 아니라 인기 많은 페미니스트라 해도 록산 게이 다른 책 읽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요^^; 취향과 인상이란 이토록 넘사벽!

양철나무꾼 2018-07-26 09:34   좋아요 1 | URL
저는 록산 게이 ‘나쁜 페미니스트‘조차 못 봤어요.
페미니스트랑 그 저서들 간과할 수는 없지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들도 아닌것 같애요.
저는 내공이 부족한듯, 숨 고르기 중이예요~--;

mysyrius 2018-09-30 01:17   좋아요 0 | URL
상관없는 내용이 이 글의 묘미가 아닐지? 내가 할 수 없는, 내가 하고프지 않있던 또다른 전혀 “다른” 결국 “타인”의 글을 읽는데 그 슬픔에 내가 공감하는 일종의 아이러니, 나는 절대 나로거 고독하고 그 사람도 나랑은 전혀 별개의 존재인 그 거리만큼 인간적인, 그렇게 느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저는

양철나무꾼 2018-10-01 14:27   좋아요 0 | URL
그렇게 읽는 사람도 있고, 이렇게 읽는 사람도 있는 거겠죠.
저는 일단 작가를 이해할 수 없었고, 때문에 공감하기 힘들었습니다.

님의 댓글에 호응을 못해드려 죄송합니다~--;
 
끝없는 사람 문학과지성 시인선 512
이영광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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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은 '이영광'을 일컬어 '죽음을 흠향하는 시인'이라고 했단다.

그 정도로 죽음을 품고 있는 시인이라는 의미일텐데,
언제부턴가 그가 품고 있는 죽음이 삶의 저변으로서의 죽음, 삶의 밑거름으로서의 죽음으로 여겨져 좋았었다.

꽃이 진 자리에서 열매가 맺듯이,

죽음의 자리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곤 하니까 말이다.

나도 힘이 들때면 그렇게 이영광의 시집들을 읽으며 위로 받고 다시 일어서곤 했었다.

늘 위로받았다고는 하지만,

태양이나 공기 같아서 잊고 지내다가,

요번 시집을 통하여 각성하게 되었다.

 

시집은 원래 내달려 읽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는 것이라지만,

이 시집도 들인지는 쫌 되었지만,

시집을 들출때마다 베인듯 얽은듯 가슴 언저리가 쓰려와서,

한번에 다 읽어내지는 못했다.

지금 리뷰를 쓰고 있으나 오늘도 흡족하게 완독을 못할 수도 있겠다.

 

예민하고 까칠한 편이었던 나는 나이를 먹으며 제대로 무뎌지자고 작정을 한 경우인데,

상대방에게 다가갈 때 부딪히고 찌르지 않을 수 있도록,

나 자신부터 무뎌지고 너그러워지자 했었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다시 뾰족하게 벼려야 하는게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징역 살고 싶다'는 말이 아프게 와닿았다.

무인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것 같을 때면 어디

섬으로 가고 싶다

어떻게 사랑해야 할지 결별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어떻게 죄짓고 어떻게 벌받아야 하는지

힘없이 알 것 같을 때는 어디든

무인도로 가고 싶다

가서, 무인도의 밤 무인도의 감옥을,

그 망망대해를 수혈받고 싶다

어떻게 망가지고 어떻게 견디고 안녕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떻게 그만 살아야 하는지

캄캄히 다 알아버린 것 같은 밤이면 반드시,

그 절해고도에 가고 싶다

가서, 모든 기정사실들을 포기하고 한 백 년

징역 살고 싶다

돌이 되는 시간으로 절반을 살고

시간이 되는 돌로 절반을 살면,

다시는 여기 오지 말거라

머릿속 메모리 칩을 그 천국에 압수당하고

만기출소해서

이 신기한 지옥으로, 처음 보는 곳으로

두리번두리번 또 건너오고 싶다

 

'방심'이라는 시는 '방심'하고 있다가 '훅' 늘어오는 한방이 있었다.

방심

 

그는 평생 한 회사를 다녔고,

자식 셋을 길렀고

돈놀이를 했다

바람피우지 않았고

피워도 들키지 않았다

방심하지 않았다

아내 먼저 보내고 이태째

혼자 사는 칠십대다

낮술을 몇 번이나 나누었는데

뭐 하는 분이오, 묻는 늙은이다

치매는 문득 찾아왔고

자식들은 서서히 뜸해졌지만,

한번 오면 안 가는 것이 있다

그는 이제 정말 방심하지 않는다

치매가 심해지고 정신이 돌아온다

입 벌리고 먼 하늘을 보며, 정신이

머리 아프게, 점점 정신 사납게,

돌아온다 그는 방심이 되지

않는다 현관에 나앉아 고개를 꼬고,

새가 떠나면 구름이 다가올 뿐인

먼 하늘에 꽂혀 있다

꽃 지자 잎 내미는 산벚나무 그늘 밑

후미진 꽃들에 들려있다

그는 자꾸 정신이 든다

평생의 방심이 무방비로 지워진다

한번 오면 안 가는 것이 있다

저녁엔 퇴근하는 내게 또 담배를 빌리며

어쩨 왔던 자식들의 안부를 물을 것이다

뭐 하는 분이오 침을 닦으며,

결코 방심하지 않을 것이다

 

훅 들어왔던 구절은,

"새가 떠나면 구름이 다가올 뿐인/

먼 하늘에 꽂혀 있다/

꽃 지자 잎 내미는 산벚나무 그늘 밑/

후미진 꽃들에 들려있다"

는 구절이었다.

 

'마음1', '마음2'라는 시도 아팠다.

사실 내가 한쪽으로 접어 놓는 것들이 있는데,

세월호 관련한 것들이 그렇다.

일부러 못 본척, 못 들은척 무심해볼려고 해도 그건 가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부지불식간에 훅 들어오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지고 그러다 보면 그 슬픔 속에 침잠해버려 빠져나올 수가 없다.

'사월'도 내겐 그렇게 읽혔고,

'평행우주의 그대'도 그렇게 읽혔으며,

'수학여행 다녀올게요'도 그렇게 읽혔다.

어쩜 이 시집 속의 모든 시들이 그렇게도 읽힐 수 있겠다.

 

'기다'와 '깁다'가 중의적으로 쓰인 '무릎'이라는 시도 좋았다.

무릎

 

무릎은 둥글고

다른 살로 기운 듯

누덕누덕하다

 

서기 전에 기었던 자국

서서 걸은 뒤에도 자꾸

꿇었던 자국

 

저렇게 아프게 부러지고도

저렇게 태연히 일어나 걷는다

 

좋은 시만을 골라서 옮긴다고 하는데,

적다보니 시집 한권을 통째로 옮기게 생겼다.

 

우리는 공감을 표현할 때 '알것 같다'는 표현을 쓰곤 한다.

내가 상대방이 아닌데,

상대방의 맘 속을 들어가 본 것이 아닌데,

어떻게 알 것 같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런  시 한 편, 시집 한권을 읽는 일은,

시인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흠뻑 담금질 하고 오는 것이라서,

공감 할 수 있겠고,

자연스레 내 마음에 빨간 약을 바르고 자체 치유할 수 있는 회복력을 준다.

 

그러고 보면 꼭 긍정 에너지 만이 세상을 구하고 사람을 살리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고통과 슬픔도 밑바닥으로 침잠하려만 들지 않고,

한번씩 고개를 내밀고 숨을 쉴 수 있게 해주니까 말이다.

 

곁에 두고 한번씩 들춰볼 것 같고,

그러면서 살아가는 힘을 얻을 것 같다.

이 시집에서는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을 '사람'이라고 하는 것 같다.

'끝없는 사람'이란 끝없는 고통 속에서 살아나가는 그런 사람을 일컬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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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9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19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8-07-19 17:46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께서 <아웃 오브 아프리카>에서 말씀하신 이유로 저 역시 무인도에는 별로 가고 싶지 않네요. 차라리 시원한 동네 도서관에서 쉴 수 있다면, 더 행복하게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봅니다ㅋ

양철나무꾼 2018-07-19 17:57   좋아요 1 | URL
여름 휴가지로 고민 중이었는데, 동네 도서관 좋네요~^^

마당 평상에서 수박이랑 옥수수 먹으면서 보내는 꿈을 꿔봅니다~^^




hnine 2018-07-19 18:17   좋아요 1 | URL
웬지 문태준과 이영광 두분의 시에서 공통적으로 불교적인 색채가 느껴져요.
죽음은 모든 예술가의 벗어날 수 없는 주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양철나무꾼 2018-07-19 18:25   좋아요 0 | URL
문태준이 이영광을 언급하는 이 페이퍼를 쓸때만 해도,
둘을 연관시켜 생각해본적이 없는데,
님의 이 댓글을 읽고보니...두 분이 그렇게도 연결이 되겠네요.

문태준 님이 응축시키고 생략하시는 방법이라면,
이영광 님은 뭐랄까, 풀어 자세히 설명하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어요.

시인의 시를 읽고 알겠다, 공감하겠다 하면 안되는데,
이영광 님의 시들을 읽고는 공감 안 할 방법이 없달까요.

두분에게서 불교적인 색채라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 열린책들 세계문학 87
카렌 블릭센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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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미용실에 머리를 하러 갔을때,

그곳 텔레비전에서 해주는 동명의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갔었다.

처음엔 멋진 음악과 풍광의 조화에 넋을 잃었지만,

미용사가 내 머리를 감겨줄 때쯤,

텔레비전 화면 속에선 로버트 레드포드가 메릴 스트립의 머리를 감겨주고 있었는데,

그 장면이 야릇하게 매력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암튼 풍광이 아름답긴 했지만,

난 이 영화를 다큐멘터리라기 보다는 로맨스 영화라고 생각했었고,

책도 그러하리란 생각에 늘상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있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영화는 어떨지 몰라도, 이 책은 로맨스라고 하기 힘들다.

다큐멘터리 내지는 자서전 정도로 분류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다큐멘터리라고 놓고 봤을때 이 책은 너무 덤덤하게 아름답다.

덤덤하다고 하여 무미건조하지는 않다.

어떤 부분은 묘사나 서술이 만연체로 흐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날 그날 일기를 쓰는 것도 아니고,

일종의 회고록으로 봐야할텐데,

이 정도의 만연체는 애교가 아닐까 싶다.

긴 호흡으로 내처 읽기보다는 중간중간 숨고르기 하며 읽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영화는 로맨스에 초점이 맞춰지긴 했지만,

그것 또한 억지스럽지 않았던게,

데니스의 죽음과 관련하여서 수선 부리지 않고 극도로 자제하여 적어내려 가고 있는데,

이런 생략이 웬만한 슬픔이나 죽음의 묘사보다 처연하고 눈물이 났다.

내겐 좀 비장하게 느껴졌다.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카렌은 뭐랄까, 여장부 같은 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어떤 남작과 결혼하고 케냐로 이주하여 커피농장을 꾸려가는 과정도 그렇고,

별거를 하게 되고 이혼을 하고,

혼자 힘으로 17년 간이나 잘 헤쳐나간다.

커피 농장이 망하고,

메뚜기 떼의 습격을 받고,

이런 일련의 상황을 겪으면서 고국으로 돌아가,

소설을 쓰고 작품 활동을 하다가,

77세를 일기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강인하고 건강한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었고,

그런 그녀라면 충분히 천수를 누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솔직히 책 날개에 나와있는 양력만으로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1960년대 초반에 77세까지 살았다면 건강하게 살다 갔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렇다고 이 책에 껄끄러운 부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시대상이나 그녀가 처했던 위치 따위 때문에 더 그랬을 수도 있지만,

커피농장을 하는 카렌은 원주민과 공생을 하며 살아간다.

정작 카렌은 차별을 않는 척, 공정한 척 하는데,

이 책의 번역만 놓고 봤을 때도 어디엔 하인, 어디엔 노예라고 되어 있다.

선민 의식을 가지고 베푼 것처럼 적고 있는데,

그녀의 입장에선 그랬을지라도,

원주민에게 일종의 힘이나 권력으로 군림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하인들의 휴식이나 휴가와 황소를 쉬지않고 혹사시키는 것에 대한 감정 이입으로 볼때

논란의 여지는 있을 수 있다.

그녀는 생각지 못했을 수도 있고, 아니라고 해도 결국엔 또 다른 방법으로 착취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져 유쾌하지 않았다.

전쟁 중 다른 곳에 다녀온 하인에게도,

그 하인이 원하는 대로 나무를 돌보고 정원을 가꾸게 하지 않고,

요리사가 없다는 이유로,

자신의 요리를 해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구슬려 잡아놓는다.

 

원주민을 배려하고 진심으로 대했다고는 하는데,

꼭 그렇게만은 볼 수 없었고,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고 도움이 되는 법을 잘 알았던 듯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왈칵 하였던 부분은 없다.

감정이 천천히 차올라, 어느 순간 고인 부분이 넘치듯 그렇게 눈물을 흘렸는데,

백인이라면 편지에 예쁜 말을 써서 보내고 싶으면 이렇게 쓸 것이다. <나는 당신을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프리카인은 이렇게 쓴다. <우리는 당신이 우리를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않습니다.>(80쪽)

이 부분에서 한번,

그리고 아내가 있는 남자가 또 다른 젊은 아내를 들였다가 독살 당한 후에 또 한번이었다.

인내심 많은 노예 마리암모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조용히 뒤로 물러나 있었다.(269쪽)

에사는 숲의 큰 나무 아래 묻혔고 이슬람식으로 무덤에 벽을 둘렀다. 마리암모는 이제 전면에 나서서 밤공기 속에서 요란하게 곡을 했다.(271쪽)

 

일종의 춤판인, 은고마에 대한 이런 표현도 재미있다.

은고마에는 피리와 북뿐 아니라 소리꾼도 있었다.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소리꾼이 멀리서 초빙되어 오기도 했다. 소리꾼의 노래는 노래라기보다는 리듬감 있는 낭송에 가까웠다. 소리꾼은 즉흥 시인이었으며 기민하고 주의 깊은 춤꾼들과 더불어 즉석에서 노래를 지어냈다. 밤공기 속에서 소리꾼의 부드러운 노랫소리가 고조되고 젊은 춤꾼들의 추임새가 규칙적으로 끼어드는 소리는 듣기에 좋았다. 그러나 이따금 흥을 돋우는 북소리와 함께 노래가 밤새 이어지면 그 소리는 지루할 정도로 단조로워 단 한 순간도 더 들을 수 없을 것 같으면서도 그 소리가 멈추는 것 또한 견딜 수 없을 듯한 기이한 괴로움에 젖게 된다.(152쪽)

 

데니스에 관한 얘기는 의외로 무덤덤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런 구절을 읽다보면 이게 작가 카렌만의 슬픔을 표현하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서 데니스에게 말했다. 「자, 우리 쓸데없이 목숨 걸러 가요. 우리 목숨에 아무 가치도 없다는 게 바로 우리 목숨이 지닌 가치니까요.」

 

이런 구절은 오히려 겸허했다.

나는 인간이나 자연력의 눈에 보이는 개입 없이 저절로 움직이는 물건에 대해 불신감과 수치심을 표현하지 않는 원주민 노인을 본 적이 없다. 인간의 마음은 마법에 대해 마치 보기 흉한 것을 대하듯 외면한다. 억지로 마법의 효과에 관심을 갖게 될 수는 있을지라도 그건 마법의 내적인 작용과는 아무 관련이 없어서 마녀에게서 가마솥으로 마법의 약을 제조하는 법을 알아내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220쪽)

 

그 시대의 책은 어떤 존재였을지,

책에 대해 표현하는 이런 구절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책들을 싸서 상자에 넣고 그 상자들을 의자로도, 식탁으로도 사용했다. 책이 우리의 삶에서 차지하는 역할은 유럽에서 살 때와 아프리카에서 살 때가 다르다. 아프리카에서는 책이 삶의 한 부분 전체를 독차지하기에 문명화된 나라들에 있을 때보다 책의 질에 따라 느끼는 고마움이나 분노가 배가된다.(339쪽)

 

오래간만에 지루하고 심심한 책읽기였다.

하지만 때로는 이렇게 지루하고 심심한 책읽기가 좋다.

책에 목적이나 물성을 부여하지 않고,

그냥 읽는다는 행위,

그런 행위가 주는 묘한 해방감이 있다.

 

왜냐하면 아프리카에만 '아프리카로부터는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사는 세상 어느 곳이든, 지금 이 순간, 항상 무언가 새로운 것들이 생성하기도, 또 멸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때론 자극적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 지루하고 심심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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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7-19 17:45   좋아요 1 | URL
저는 <아웃 오브 아프리카>하면, 메릴 스트립과 로버트 레드퍼드 주연의 영화가 생각납니다. ^^:)

양철나무꾼 2018-07-19 17:51   좋아요 1 | URL
제가 장르소설은 즐겨읽는데, 로맨스 소설은 별로 잘 안 읽어요.
저도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영화로 보고 책으로 들였던거 같은데,
아직까지 못 읽었던 이유가 로맨스소설일까봐 였습니다.
책은 로맨스 소설이라기 보다는 다큐멘터리 급이라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아프리카의 풍광은 상상할 수 있고,
아프리카의 문화와 생활상 등을 느낄 수 있는 것이 괜찮았습니다~^^

cyrus 2018-07-20 07:18   좋아요 0 | URL
한 달 전에 EBS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방영했어요. 심야 시간에 방영된 거라서 끝까지 다 보지 못했어요. ^^;;

양철나무꾼 2018-07-20 08:56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알았다면 다시 봤을 거예요.
책이랑은 별개로,
다시 보고싶은 영화예요~^^
 

지금은 오지랖이 많이 줄었지만,

(아니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ㅋ~.)

한때 내 오지랖은 저고리 앞자락 정도로는 어림도 없고 9폭 넓은 치마로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

나와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나 일인데도 감정 이입을 잘했고,

그리하여 필이 꽂히면 어떻게든 내가 예측한 대로 흘러가야 직성이 풀렸고,

그러지 못할까봐 안달루시아가 됐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일들은 내가 어쩔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 예전처럼 일을 깔끔하게 해내지 못하고 후회만 하는 사람도 있었고,

배우자의 주취 폭력으로 불우한 가정도 있었고,

지금은 흔한 질병이 되어버린, 연예인 병이라고 불리우는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사람은 아이의 치아를 치료하는데 돈이 없다고 하여 보내줬더니,

중고 바이올린을 샀다고 자랑을 했었다.

 

그렇게 다른 사람을 향해선 오지랖을 떨면서,

정작 내 자신이 힘들거나 아픈건 알지 못했고, 알았더라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이젠...

다른 사람은 힘들때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난 힘들거나 아플때면 친구한테 얘기를 한다.

 

전후문맥을 따져서 조목조목 객관적으로 얘기하는게 아니라,

주관적으로 불쑥, 느낌이 떠오르는 대로 툭 툭 던져내는 식으로 얘기한다.

얘기를 하는 과정에서 감정이 한번 걸러져서 그런 것도 있지만,

친구에게 얘기를 하고 나면 속이 후련해져서,

내가 만든 안달루시아라는 지옥에선 탈출할 수 있다.

 

그런데 친구에게 얘기할 수 있는 건 어쩜 내 얘기를 건성으로 듣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친구가 진지하게 듣고 어떤 조언이나 처방책이라도 내놓으려 들었다면,

내 성격 상, 어쩜 알량한 자존심에 입을 닫아버리고 말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친구는 내가 얘기를 한다는 행위 자체가 카타르시스이고 힘이 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암튼 내가 이렇게 중언부언 얘기하는 이유는, 

지금 많이 힘들어 하는 친구에게 '어떤 식으로든' 힘이 돼주고 싶어서 이다.

처음엔 업무에서 비롯된 정신적으로 힘든 거였는데,

그래서 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 그 정도 힘들지 않은 사람이 있겠냐며 가볍게 접근했었는데,

이젠 그 스트레스가 육신을 쳐서 몸의 통증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친구 덕분에 그럴 수 있었듯,

친구 또한 몸의 통증으로 안으로 움추러드는 것이 아니라,

떨쳐내고 걸어나오기를 바래서 이다.

 

힘들 때 그 힘듦 속으로 침잠하는 것이 아니라,

흠뻑 담금질하여,

바닥을 치고 빠져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힘들때마다 친구가 그러했던 것처럼,

나도 무심한듯,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분위기를 바꾸어,

며칠전 무슨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는데,

김창옥이라는 사람이 무슨 강연을 하고 있는거라.

알고보니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목은 '폼나게 가자, 내멋대로'였고,

김창옥이란 사람은 성악과 출신의 유튜브 조회수 3000만의 스타 강사였다.

그날 강연 내용이 전부 다 맘에 들지는 않았는데,

여자를 30대, 40대, 50대로 나누어 공감을 표현하는 방식을 자신을 얼마나 허물고 망가트릴 수 있느냐, 의 문제인 것처럼 과장을 해서 그런 것이고,

그밖의 것들이나 내용들은 유머러스하고 재미있었다.

이쁜 말을 하는 사람이랑 모국어가 좋은 사람(여기서 모국어는 어렸을때 부모님이 들려주시던 언어)을 택하라는 말이 와닿았다.

돈을 내고서라도 일부러 찾아 들을 의향이 있다.

 

유튜브에, 김창옥 님의 강의가 올라와 있는 것으로 안다.

(링크==>https://www.youtube.com/user/4freeshow)

 

이런 책들도 내셨단다.

 

 

 

 

 

 

 

그런 의미에서 가볍게 접근하고 싶어 구입했는데,

아직 손도 못댄 책이 있다.

 

 

 

 오늘 너무 슬픔
 멀리사 브로더 지음, 김지현 옮김 /

 플레이타임 / 2018년 5월

 

 

'오늘 너무 슬플'때 들춰보려고 구입했는데,

말 그대로 아직 손도 못 댔다.

두께도 적당해서 가볍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앴는데,

글자 색깔이 파란색이나 하늘색 정도로 좀 흐린 편이고, 글자 크기도 너무 작다.

펼치기만 하면 나도 모르는 새에 눈을 찌푸리게 된다.

 

각자의 일들로 그렇게 그렇게 바쁜 세상이고,

어느 누구도 타인의 일상 따위엔 관심이 없는 세상이지만,

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을때 섣부른 위로나 조언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만히 귀 기울여 들어주고,

'여기까지 잘 왔다'고 등 두드리며 얘기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되어있지 않을까?

적어도 나는 그러하다.

그대도 그러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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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2 1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7-12 14:01   좋아요 1 | URL
위로가 되는 댓글 감사드립니다.

저도 해우소 같은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론 아웃풋만 있고 인풋이 없는 삶이란...
님의 말씀처럼 외롭고 쓸쓸한 외나무다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저는 그래서 이 무덤덤함이 관심없음의 그런 무덤덤함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덜 미치는 무덤덤함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던 거죠.
긍정적인 영향은 상관없지만,
내가 하는 말들로 상대방이 상처를 받거나 연연해 할 수 있는 그런 무게를 싣지 말자 싶었죠.

그동안 오지랖으로 상처입은 기억이 많아서 그런가,
아직도 내가 하는 말들이, 재스츄어가,
상대방에게 오지랖으로 남을까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을 택할 때가 있거든요~ㅠ.ㅠ

cyrus 2018-07-12 15:10   좋아요 2 | URL
저도 오지랖이 많은 편인데,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 적이 많았어요. 이러고 나면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 자책하게 되고, 마음이 무거워져요. 서로 대화가 통하면서 저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에게 잘 대해주려고 합니다. 어정쩡한 관계는 만들고 싶지 않아요. 예전처럼 친하게 지내기가 힘들어요. ^^;;

양철나무꾼 2018-07-12 15:56   좋아요 0 | URL
저는 제가 펼친 오지랖으로 그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고,
제 스스로 쓸데없는 자괴감으로 몸부림쳤던 적은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렇게 되먹은 사람이었던 거죠.
전 그 사람을 탓하기보단 내 자신, 자괴감으로 거기서 헤어나오지 못해 힘들었어요.

그러고보면 인터넷 시대의 공감이라는 건, 서로 대화가 통한다는건, 지극히 표면적인 건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표면적이라고 말하는 것과 님의 어정쩡한 관계는 어쩜 같은 건지도 모르겠구요.
그런 시대에 소통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게 되면, 완전 잘 대해주려는게 인지상정 아닐까요?^^

수이 2018-07-13 12:32   좋아요 2 | URL
저는 사이러스님의 넓은 오지랖 좋아요. 상쾌하고 든든해서. 그러니까 자책하지 마. 자책은 쇳덩이처럼 짓누르기만 하는 거 같아. (그러고보니 우린 어정쩡한 관계인가 아닌가 ㅋㅋ)

북극곰 2018-07-12 17:32   좋아요 1 | URL
안달루시아라는 말에 웃다가...
조금 다른 포인트지만, 저도 남 일에 너무 감정이입을 해서 감정적으로 소진되고 하는 사람인지라.ㅠ.ㅠ

나무꾼님이 옆에 계신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친구분한테 힘이 되면 좋겠어요.
진심으로 생각하고 계신 게 느껴져요.
힘들 때 빠져나오려고 너무 바둥거리지 않고,
님의 말씀처럼 차라리 몸에 힘을 빼고 푹 잠겼다 나오면 오히려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양철나무꾼 2018-07-12 18:22   좋아요 0 | URL
안달루시아는 원래 있는 지명인데 제가 맘대로 패러디를 한거예요.
스페인에서 관걔시설이 제일 발달된 지역이래요~^^
이렇게 님과 코드가 비슷해서 쉽게 공감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님의 글들이나 님이 읽으신 책들이 좋아보였나봐요~^^

친구는 아마 내가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될거예요.
실제는 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생각해야 내 마음이 편할테니까 말예요, ㅋ~.

전 전생에 어족이었는지,
한동안 잠수도 하고,
물에 담그고 잠기고 해야 힘이 생기던데,
몰라서 그렇지, 땅위에 사는 사람들도 제법 용왕님을 찾는 사람들이 있겠죠?

CREBBP 2018-07-13 21:06   좋아요 1 | URL
사실 친구에게나 배우자에게 고민을 얘기하는 건 상황을 해결해 달라고 부탁하는 게 아니라 카타르시스적 배출을 원해서가 아닐까 해요. 그냥 들어주고 맞장구쳐주고 편들어주고 때로 다독거려주고 ..(제 경우는 다독거리는 건 잘 못하는데 주화뇌동해서 당사자보다 더 감정이입해서 화내고 난리치는 게 문제)그걸로 충분하죠. 그런데 되도 않을 충고나 지적은 오히려 당사자를 더 기분나쁘게 한다는 사실을 얼마전에 알았어요. 저도 오지랍 떨지 않기로 나서지 말고 그냥 공감해주는 게 최고 같아요.

양철나무꾼 2018-07-14 09:1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어쩜 우리는 들어줄 수 있는 귀를 원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얘기를 하면서 상황을 객관화시키고 재정립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그런 거요.

저는 오지랖을 부릴때를 돌이켜보면,
상황을 제식대로 해결하려고 하고 충고를 아끼지 않는(?) 것 같아요.

너무 무심한듯 굴면 섭섭해할것 같고,
너무 감정이입하면 오지랖이 될 것 같고,
적절히 조율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