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독서에 속도가 붙지 않는다.

날이 너무 좋아 꽃들이 피고 지는데 엉덩이가 들썩거려 책을 붙들고 앉아 있을 수 없다고 해야겠지만,

그런 것은 아니고~--;

책을 조금만 집중하여 읽을라치면 눈이 침침하여 브레이크가 걸리기 때문이다.

 

요번에 읽은 책 '길버트 그레이프'는 영화로 먼저 보고 책을 집어들게 되었다.

휴일 낮 텔레비전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EBS에서 해주는 이 영화를 만났다.

이 영화를 본건 조니 뎁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때문이었는데,

강렬한 인상이 남았었다.

 

 

 

길버트 그레이프
라세 할스트롬 감독, 조니 뎁 외 출연 /

에스엠픽쳐스(비트윈) / 2001년 1월

 

 

 

 

길버트 그레이프
피터 헤지스 지음, 강수정 옮김 /

호메로스 / 2014년 4월

 

그 기억으로 읽은 책인데, 영화보다 훨씬 좋았다.

영화에서는 아무래도 조니 뎁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집중되다보니,

그리고 대부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그렇듯이 생략이 많이 되어,

어떤 부분은 뉘앙스를 읽어내는 것으로 짐작해야 했다면,

책은 길버트 그레이프가 화자이다 보니,

그의 속마음을 섬세하게 표현하는데,

그 상황을 심리학적인 통찰로 그려내고 있다.

 

이렇게 재밌는 책인데 진도를 쑥쑥 빼서 읽을 수가 없었는데,

글자 크기가 작아도 너무 작은 거라,

책에서 글자들을 꺼내다가 뻥튀기하여 집어넣었음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책 뒷표지를 보면 '뉴욕타임스'를 인용하며,

"독창적이란 이런 것이다. ㆍㆍㆍㆍㆍㆍ피터 헤지스는 읽는 사람의 공감대를 건드리는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

라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심리적 장치들에 치중하다 보니,

개연성이나 핍진성 면에서 조금 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동생 어니는 지적장애아라고 하는데, 그려내기는 자폐아나 시한부인생처럼 그려낸다.

지적장애는 말 그대로 지적으로 부족할 뿐이지,

그것과 살아가는 데는 하등관계가 없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나 방패막이가 필요했다면, 다른 설정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 이런 마음을 엿보기라도 한듯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형이 점점 작아지는 거야."

 "그래?"

 "맞아. 형이 점점 작아지는 거야. 오그라들어."

 가끔은 멍청한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소리를 하기도 한다. 어니마저도 내가 쳇바퀴에 갇혔다는 걸 알고 있다.

 나는 시계를 차고 다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지만 바로 그때, 모자란 동생이 내 가슴에 칭칭 동여맨 붕대를 무심히 뜯어낸 그 순간, 다시 어니가 뭐라고 쨍알거렸다. (15쪽)

얼핏 보기엔 어니의 통찰력처럼 보이지만,

어니에게서 그런 통찰을 이끌어낸 것은 길버트이다.

 

"보비, 지금 몇 살이지?"

"스물아홉!"

"이런 짓 하기엔 우리 나이가 좀 많은 것 같지 않아?"

나를 바라보는 보비의 빨간 머리가 바람에 흩날렸다. 입술을 다물고 카레이서처럼 핸들을 꽉 쥐더니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라고 소리쳤다.(126쪽)

누군가는 이런짓이라고 표현하는 일이 누군가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산다는 일은 누구에게는 가슴 두근거리는 설레임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겐 그날이 그날 같은 날들의 연속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가슴이 두근거리기 보다는 그날이 그날 같은 날들의 연속이 좋다.

 

눈이 침침해진다는 건,

막무가내로, 앞만 보고 내달리던 삶에 일종의 브레이크라고 생각하면 위로가 된다.

 

요즘은 형제ㆍ자매나 남매도 별로 없고 외동이가 많아서,

이 책을 권한다면 좀 지루해 할 수도 있겠지만,

가장이라는 책임감에 가슴이 막히거나,

가족 속에서의 역할 분담이나 관계가 버거울때 읽어보면 좋겠다.

내겐...뭐라고 딱 꼬집어 얘기할 수는 없지만 묘하게 위로가 되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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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8-04-16 12:23   좋아요 0 | URL
전 이 영화 너무 너무 슬펐어요.
원제의 eating이 무슨 의미일까, 그때만해도 이해를 못했었는데 누가 알려주더라고요. bothering 과 같은 뜻이라고요.
눈이 침침한게 단지 시력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저도 근래 깨달았는데, 어떤 종류의 안경을 써도 예전처럼 밝게 보이지가 않아요. 노화의 문제인거죠 ㅠㅠ

양철나무꾼 2018-04-16 12:3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슬펐어요.
영화에서는 슬픔을 뉘앙스로 감지했다면, 책은 구체적이라고 해야할까요.
영화에서는 길버트가 먹는 것에 대해서 별다른 걸 느끼지 못했다면,
책에서는 먹는걸 거부한다는 인상을 받았었습니다.

절판본 제목 중에 ‘누가 길버트 그레이프를 초조하게 하는가‘가 있었는데,
그건 아니지 싶어서,
eating이 의미하는게 뭘까 싶었었는데, 이렇게 해소가 되는군요.
감사합니다, 꾸벅~(__)

2018-04-16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4-16 1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4-16 22:32   좋아요 0 | URL
핍진성... 소중한 단어 첨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문학, 예술, 과학철학 등에서 진리에 가깝거나 흡사한 정도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양철나무꾼 2018-04-17 09:03   좋아요 0 | URL
핍진성이란 단어, 저도 김연수 ‘소설가의 일‘을 통해 처음 만났어요.^^
솔직히 제 글이 꼼꼼히 읽을만한건 없는데,
꼼꼼히 읽어주시다니 오히려 제가 감사드려야죠~^^

shinok 2018-04-27 09:25   좋아요 1 | URL
어렸을적 너무나 강렬했던
그 영화로 ... 디카프리오도 조니댑도 잘 모르는 시절 그냥 보며
온전히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지만 슬펐고, 이상하게 잘생겼던 형과 귀염성 짙은 동생
그리고 거동이 불편했던....그래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되었던 그.... 기억속 영화를 아주아주 오랜만에 끄집어 내주셨습니다.
그래서 더 반가운...
몰랐던 단어도(핍진성) 찾아보고 알게되어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봄날 만끽하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요즘 출근하는 길에 돋아나는 새싹들이 어쩜 그리 어여쁜지요... 얼마나 힘들게 대견하게 이렇게 올라왔는지...))

양철나무꾼 2018-04-27 11:44   좋아요 0 | URL
shinok님, 반갑습니다~^^
저는 다 커서...ㅎㅎ,
얼마전 영화를 보고난 후 책을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영화대로 책은 책대로 다 좋더군요.
봄날 벚꽃잎은 벚꽃잎대로 철쭉꽃 이파리는 철쭉꽃 이파리 대로 다 좋듯 말이죠.

남북정상회담이 있는 경사스러운 날,
이렇게 경쾌한 댓글이라니, 넘 좋은 걸요~^^

Nussbaum 2018-05-12 12:25   좋아요 1 | URL
오랜만에 다시 본 영화인데, 마치 엄청 친했던 친구를 다시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분명 같은 배우들이 같은 동작과 대사를 했을 터인데 마치 다른 동작과 다른 대사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 신기했습니다.

아마 내 눈이 바뀌어서 그랬겠죠. 이젠 20대 초반처럼 날카롭지도 못하고 그냥 느릿느릿한데 오히려 느릿한 시간들이 더 눈에 잘 들어오는 걸 보면 시간은 참 많은 것을 바꾸어 놓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양철나무꾼 2018-05-14 10:26   좋아요 0 | URL
이 영화 각본을 수업에 활용하기 위해 썼었다죠.
그걸 다시 소설로 만들었을테구요.
저는 영화를 다시 보진 못했고,
영화로 한번 소설로 한번 봤는데,
소설이 더 좋았었습니다.

때로 어떤 것들은 흐릿한 눈으로 보아야 더 잘 보이고 정겨운 것 같습니다.
그게 시간이 흘러 흐린 눈이든, 아님 눈물로 흐린 눈이든 말예요.^^

 
라틴어 수업 - 지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동일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책상 위에 이 책을 올려놓았더니,

지나가던 직원이 보고는,

'이젠 라틴어까지 배우려는 것이냐'며 혀를 끌끌찬다.

그 직원이 보기에도 내가 여러 언어를 건드리기만 하는 꼴이 기가 찼었나 보다.

내가 펼쳐놓기만 하고 수습을 못할 정도로 오지랖이 넓기는 하지만,

그 어렵다는 라틴어에 함부로 손을 댈 정도로 들이대지는 않는다.

'라틴어수업'이라는 제목을 빙자한, 한동일이라는 분의 삶의 흔적, 발자취 정도 되겠다.

 

사실 이 책이 처음부터 재밌지는 않았다.

아주 반듯하게 잘 정리되어 있어서 바른생활 교과서를 보는 느낌이었달까.

책을 읽어나가면서 예전 강의 내용을 정리한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입말과 글말은 체감 온도가 확실히 다르구나 하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책의 중반쯤을 읽다가 문득 저자의 양력이 떠올랐는데,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일뿐만 아니라, 신부님이셨던 것이다.

이 분이 사제복을 입지 않고 일반 복장을 하셔서 그런걸까.

깨달을 새가 없었는데,

문득 문득 성직자 같은 이미지가 엿보였었는데,

성직자였다.

책의 후반부쯤 일반 복장을 하는 이유가 나온다.

 

강의에서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책에서는 라틴어 공부 자체보다는,

우리가 알고있는 단어나 숙어의 의미나 뉘앙스 같은 걸 알기 쉽게 풀어낸다.

라틴어가 갖는 언어적 특성 따위가 배어있는 인생론에 가깝다.

 

그런 라틴어의 특성으로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측면을 든다.

우리가 사용하는 '삼가주시기 바랍니다',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은 법률적 표현인데,

'하지 마라', '주의해라'와 같은 명령형이 아니라 행동의 주체인 상대방을 존중하고 있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 수평성을 가지고 있는 라틴어가 로마인의 사고와 태도의 근간이 되었을 거라고 한다.(45쪽)

 

'라틴어의 고상함'을 얘기하면서는,

문학적, 언어적으로 뛰어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언어를 제대로 사용하여 타인과 올바른 소통이 가능한데,

라틴어가 그런 언어라고 얘기한다.

정작 메시지를 읽지 않고 그 파장에 집중하여, 오해가 생기고 소통이 되지않기도 하니까 말이다.

이 말은 곧 나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이 책이 재밌지 않았던 이유는,

공부하는 노동자라고 표현하는 부분과,

공부를 습관이라면서 꾸준히 공부하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이게 좀 구태의연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한때 너무 공부만 했고,

그리하여 엉뚱(=엉덩이가 뚱뚱)하기론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않을 자신이 있는데,

하지만 다시 공부를 하라면 그건 또 완전 싫다, ㅋ~.

 

그러면서 '하비투스'라는 말의 유래에 대해 들려준다.

'습관'이라는 뜻 외에도 '수도사들이 입는 옷'이라는 의미도 있는데,

수도사들은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기도를 하고 노동을 하고 식사를 하고,

하루 일과를 마치고 모두 일괄적으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여기서 '습관'이라는 뜻이 파생되었단다.

 

공부하는 습관에서 그치지 않고,

필요한 순간에 에너지를 쏟아붓기 위해 스스로의 리듬을 조절하는 걸 중요시하는데,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할 줄 아는게 좋은 두뇌나 남다른 집중력보다 더 중요하다고 얘기하는게 좋았다.

 

가장 좋았던 것은 내가 해야 할 일을 그냥 해나가야 한다고 하는데,

모든 일을, 내지는 모든 공부를 자신이 다 할 수 있다고 하고 깔고 앉아 뭉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쩔 수 없는 일과 내가 할 일을 구분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었다.

 

라틴어의 뜻을 설명해주는 것도 쏙쏙 들어왔는데,

'Sacer(사체르)'라는 단어에 '거룩한'이라는 뜻과 '저주받은'이라는 뜻도 있는 양가적인 감정을 가진 단어라는 것이다.

가끔 만나게 되는 '거룩할지어다'라는 말이 '저주받아라'라는 욕설을 담고 있다는 것이 의외였지만,

몰랐던 그 말의 뉘앙스를 명쾌하게 알게 되어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이었다.

 

꾸준히 산책을 하고 자신을 돌아본다는 점.

공부도 꾸준히 하지만,

시간을 정해놓고 꾸준히 산책을 한다는 데서 나름대로 자신만의 삶의 기준을 만든달까, 하는 느낌을 받았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는 마치 폭발 직전의 폭주 기관차처럼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하지만 삶에는 간이역 같은 휴게소가 필요합니다. 제 경우에는 상처가 오히려 그런 간이역 같은 휴게소가 되어주었습니다. 멈춰 서서 제 안을 들여다보게 해주었으니까요. 그래도 때로는 '이 간이역 그만 좀 나왔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합니다. 아픈 건 아픈 거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이 간이역을 지나고 또 지나면 제가 닿을 종착역도 어디쯤인가 있을 겁니다.(259쪽) 

 

이러저러한 라틴어 격언을 맛보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지금의 내 마음가짐과도 닮아서 좋다 싶었던 건 이 문장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날에 겪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272쪽)

 

malo가 인도 유럽어로 '나쁜'을 의미한다는데,

그럼 내가 좋아하는 재즈보컬리스트 '말로'도 그러한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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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4-10 16:00   좋아요 0 | URL
라틴어가 많은 유럽어의 모어가 된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저도 라틴어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가지지만 현실은 쉽지 않네요 ^^:)

양철나무꾼 2018-04-12 08:54   좋아요 1 | URL
전에 나폴리4부작을 읽으면서 이탈리아는 라틴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싶었었는데,
한동일 님의 이 책을 읽으면서 왜 그런가를 알 수 있어 좋았습니다.
라틴어 한번 배워보세요, 멋있으실거 같아요.
전 공식에 딱딱 들어맞는 그 점이 잼날것 같지만.
현살의 저는 라틴어는 고사하고 일본어도 히라카라에서 늘 제자립니다~--;

서니데이 2018-04-10 16:03   좋아요 0 | URL
이 책 제목이 라틴어 수업이라서, 라틴어교재라고 생각하셨나봐요.
저는 책 내용소개를 먼저 읽어서 그렇지는 않았지만, 아마 제목부터 보았으면 그렇게 생각했을지도요.^^;
여긴 바람이 정말 세게 불어요.
양철나무꾼님도 즐거운 오후 보내세요.^^

양철나무꾼 2018-04-12 08:59   좋아요 1 | URL
아마 저 직장동료는 제가 일본어를 배우겠다고 여러가지 책을 (공부는 안 하고) 사들인 것을 보아서 더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엊그제 집에 가면서 깜. 놀.했지 뭐예요.
차 바퀴가 도로면에 붙어있는게 아니라 날아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보니까 인천 쪽은 더 심했나 보더군요.
오늘은 언제 그랬냐는듯 평화로운 아침입니다~^^
 
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지음, 메이 옮김 / 봄날의책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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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이 책이 삶을 살아가는 얘기일 줄로 알았다.

살아가면서 병을 얻게 되고,

그 병을 얻은 채로 치료받고 회복되는 과정에 관한 책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아픈 몸을 살다'라는 제목도 참 그럴 듯 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저 아픈 몸으로 살아가는 얘기가 아니다.

저자는 자신이 의사라는 특수한 신분인 채로 아프게 살아가는 것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아니 절대적으로 일반인의 입장이라고는 할 수 없다.

 

자신이 병에 걸리게 되어, 검사(?)-이 책에는 조사라는 말로 나온다.-를 받고, 화학적 요법을 취하고, 그런 과정에서 대하게 되는 의사와 의료인들, 그런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자신이 어떤 느낌을 받았고, 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이건 저자가 의사였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었던 것이지,

아니 지금 이 책을 통해서 라도 뭐라고 투덜거릴 수 있는 것이지,

일반인이었으면 꿈도 꿀 수 없는 부분이었다.

 

이 모든 얘기를 이끌어 나가기 이전에,

저자가 미국 의사라는 것과,

미국의 지독한 의료보험제도에 대해서 한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그는 살아 남아 지금 70세가 넘었다.

 

내가 이렇게 얘기하는 이유는,

바다 건너 미국이라는 나라의 의료보험제도나 의료윤리 따위가,

그게 한명의 의사이자 환자 입장에서 어떻게 느껴졌는지 따위가, 궁금한게 아니고,

지금 현재 이 땅에서,

병이 걸렸거나 병이 나서 아픈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에 한번쯤 주목했으면 싶어서 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번역을 한번쯤 애기할 수 밖에 없겠다.

이 책에 나오는 용어들이 어렵거나 생소한 단어는 아니지만,

의학 용어가 되는 순간 다른 뉘앙스로 해석되는 것들이 있다.

여러가지가 있지만 하나만 예를 들자면 '사회적 역사'라고 번역한건 social history 정도 될 것 같다.

이런 경우 영어를 우리말로 번역하는 것만으론 부족한 것 같은데,

영어를 곧이 곧대로 해석했을때와,

의학용어로 취급하여 그 규칙대로 번역했을때,

그 뜻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때문에 이 책의 내용들은 좀 모호하게 둥글려진 느낌이 든다.

 

또 한가지 영어권 번역을 하면서 종종 문제가 되는,

무생물 주어에 관한 문제,

여기선 질환을 주어로 놓아 능동과 수동의 문제로 번역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앞에서 언급한 의사는 "이건 조사가 있어야겠네요"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이 무대 중앙을 차지하고 이루 이어질 드라마의 각본을 짰다. 내 몸 안에 존재하는 한 인간은 그저 수동적으로 관람만 하도록 객석으로 보내졌다.(88쪽)

 

위 문장은 좀 아이러니컬 한데,

주어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조사를 해봐야겠네요'라고 할 수 있을텐데...

'조사가 있어야겠네요'가 되는 순간,

주체조차 모호해져서,

말을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조사'에 있어서는 얼마든지 모호한 존재가 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살아있는 몸이 아픈 몸이 되는 순간, 생물(=생명체)이 무생물이 되는 듯 여겨진다.

 

암튼 이 책에는 아픈 사람들이 겪게 되는 많은 감정들이 나온다.

그리고 이 감정들은 저자 아서 플랭크는 의사여서이면서 동시에 아픈 사람이어서 경험하고 크게 체감했을 감정들이다.

다른 아픈 사람들은 겪지 못했을 감정이라는게 아니라,

일반인들은 수동적으로 당하는 입장이어서 자각하기 힘들었을 수 있을테니까 말이다.

미국의 경우라서 그런것인지,

저자 아서 프랭크가 의사여서 자신의 질환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었던 것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내 주변의 얘기는 아닌것 같다.

내 주변에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많은 경우 병 앞에선 소심해질 수밖에 없고,

본인이 느낄때쯤엔 일이 많이 진행되어 버려 손 쓰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다.

 

이책에서 읽을만 했던 부분은 '개정판 후기'였다.

 

의료종사자들이 언제 좌절감을 느끼고 언제 자부심을 느끼는지 들었고, 이들의 옹졸한 면과 고귀한 면 모두를 관찰했다.

ㆍㆍㆍㆍㆍㆍ

심하게 아픈 환자에게는 의료인들의 말과 행동 전부가 처방되는 약과 수술만큼이나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의료인들의 업무는 대부분 너무 빡빡하게 짜여 있어서 이들이 환자의 혼란, 두려움 그리고 자존감 있는 인간이고자 하는 분투에 민감하게 마음 쓰기 어렵다.(237쪽)

 

이 책은 질병의 연구나 의료윤리 따위의 목적으로 쓰여지진 않은 것 같다.

'질병과 회복의 영적인 차원'이라고 했는데,

우리 말로 옮기면 간증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내가 원했던 것과는 약간 다른 종류의 책이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의 뭔가 특별한 의료서비스와 처우 따위를 원했던 게 아니라,

아픈 사람이 사회에서 또는 병원에서 어떻게 치료받고 위로받으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

뜬구름 잡는 식으로가 아닌,

우리의 현실과 의료제도에 맞는,

보다 적절한 무엇인가를 원했었던 것 같아서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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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3-27 17:33   좋아요 2 | URL
병원의 군기문화에 길들여진 의료인들은 마음이 병든 환자입니다. 후배들을 괴롭히는 의료인들은 후배의 말 못하는 고통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런 의료인들이 진료 받는 환자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양철나무꾼 2018-03-28 09:44   좋아요 1 | URL
음~, 너무 많은 부분을 아우르는 얘기라서 쉽게 답하기가 어렵네요.
게다가 제가 필드에 있는 사람이라서 더 그런 것도 있고 말이죠.

이 책에서는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는지, 가 아니라,
이 사람이 의사이니까,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적당한 거리두기에 힘을 주어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3-28 08:42   좋아요 2 | URL
자신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이를 바라본다는 것은 의사라는 직업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일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절실한 무엇인가가 저자에게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양철나무꾼 2018-03-28 09:51   좋아요 2 | URL
이 분은 필드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는 아니었던 것 같고,
의료사회학, 의료윤리학 분야의 연구의였었던 것 같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자신이 환자인채로 환자를 본다는 것은,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환자였을때의 경험을 살려 저술을 하고 강연을 하는 것은 또 별개인것 같습니다.

프로필 사진이 바뀌었네요.
연의 어린이 표정이 참 풍부해요.
환한 것이 봄이 제 마음에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3-28 09:5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아이여서인지 얌체공처럼 튀네요. 재미있으면서도 그게 생명력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서니데이 2018-04-10 13:56   좋아요 0 | URL
오늘은 어제보다는 기온이 많이 올라갔고, 따뜻한 바람이 세게 부는 오후예요.
제가 사는 곳에는 지난주부터 바람이 조금 더 세게 붑니다.
점심 맛있게 드셨나요.
양철나무꾼님, 즐거운 오후 보내세요.^^

양철나무꾼 2018-04-10 14:45   좋아요 1 | URL
어제보다 날씨가 따뜻해진 건 알겠는데,
점심 시간에 웅크려조느라 바깥세상 얘길 듣지못했네요.
그 동네 바람이 세게 분다구요?
울 서니데이 님 날라가면 안 되는데...^^

점심은 입맛은 없으나, 끼니에 이름을 정하느라 먹었습니다.
입맛 없다고 하기엔 좀 많이 먹었습니다~ㅅ!^^

서니데이 2018-04-10 14:50   좋아요 1 | URL
네. 날아가지 말라고 조금전에 긴급재난문자 왔어요. 바람 불어서 위험하대요.^^;
많이 드시고 기운 내셔서, 오늘 저녁에는 더 맛있는 저녁밥도 꼭 드세요. ^^
 
꽃 밟을 일을 근심하다 창비시선 417
장석남 지음 / 창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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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이 좋아 잠깐 바람을 쐬러 나갔더니,

거리에 이쁜 화분을 놓고 피는 트럭이 있더라.

'이쁘네~'하고 잠시 넋을 놓고 있는 사이 똘똘한 애들은 다 골라가 버리고,

약간 어정쩡한 애들만 두개 남은거라,

그 두 개를 가져오며 봄맞이를 했다고 잠시 뿌듯하였다.

나는 시인 장석주와 장석남을 혼동한다.

그들의 문체라던가 시풍을 혼동하는게 아니라,

사람 이름 한끗을 혼동한다.

이 시집도 '주'인지 '남'인지 잘 모르고,

그래, 누구라도 상관없다...하면서 집어들었는데 알고보니,

내가 좋아하는 장석남이었다.

 

여린 눈을 가졌고,

꽃 밟을 일을 근심하는 시인.

 

아니나 다를까, 시집의 뒷표지에서 소설가 '권여선'은 그를 이렇게 얘기한다.

한때 그는 망명한 자였고 앓는 자였고 숨죽여 우는 자였으리라. 내가 그를 알기 전의 일이다. 내가 아는 그는 술 퍼먹고 무언가를 묻는 자였다. 그의 질문은 사소하여 철학적이었다.

내가 읽은 그는 시 속에서 웅얼웅얼 답하는 자였다. 그의 대답은 절박하여 미학적이었다. 삶과 시를 오가며 그는 자해하듯 자문자답하는 자였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질문과 대답의 꽃겹 속에 갓 태어난 노인이, 노파의 얼굴을 한 연인이 있었다. 시인이 아닌 그를 나는 상상할 수 없다. 이제 그는 꽃 밟을 일을 근심하는데 이미 밟아놓은 후다. 그는 죄지은 대장장이, 녹아도 사라지지 않는 쇠를 응시하는 자이다. 이토록 사뿐하고 육중한 몸의 문답이 있을까. 이토록 눈부신 울화가, 이토록 뉘엿뉘엿한 돌파가 있을까. 아무도 이 어눌한 생을 사할 수 없으리라. 그러니 영원히 쓰라고, 나는 근심스레 말한다.

 

이런 권여선의 뒷표지 글로도 충분히 좋은데, 해설은 신형철의 그것이라 더 좋다.

 

전에 '뺨에 서쪽을 비치다' 때도 느꼈던 것인데,

꽃밟을 일을 근심하였을 그의 섬세함이 느껴져서,

그게 철학이나 어쭙잖은 선문답의 형태를 띤게 아니라서,

묘한 설레임으로 한걸음 다가가게 되는 지도 모르겠다.

 

좋았던 시가 여럿인데,

춘분인 어제 읽었던 '입춘 부근'이라는 시도 좋았다.

이 시의 일부분은 시집의 제목이 되기도 하였다.

 

입춘부근

 

끓인 밥을

창가 식탁에 퍼다놓고

커튼을 내리고

달그락거리니

침침해진 벽

문득 다가서며

밥 먹는가,

앉아 쉬던 기러기들 쫒는다

 

오는 봄

꽃 밟을 일을 근심한다

발이 땅에 닿아야만 하니까

 

이 시는 내게 생존으로 읽혔다.

끓인 밥을 창가 식탁에 퍼다놓은 것도 그러하지만,

밥을 먹느라 앉아 쉬던 것일지도 모를 기러기를 쫒는 행위로 이어진다.

먹는다는 건 살기 위한 일이지만,

삶이라는 건 발을 땅에 붙이고 있어야 이어지는 실존적인 일이 아닐까.

 

그 근원에는,

꽃만 피고지는 때가 있는 것이 아니라,

기러기도 철새여서 머물고 날때가 있는 것이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피어날 꽃들에 마음 환해지지만,

날아가는 기러기를 아쉬워하는 것 또한, 입춘부근, 그 무렵이다.

 

또 좋았던 시는 '파란 돛'

시는 좀 어려웠지만,

색깔의 선명한 대비가 느껴져서 좋았다.

 

파란 돛

 

바다는

어디서부터 가져온 파도를 해변에, 하나의 사소한 소멸로써

부려놓는것일까

누군가의 내부를 향한 응시를

이 세계의 경계에 부려놓는 것일까

 

바다는 질문만으로 살아오르고

함성을 감춘 질문인 채 그대로 내려앉는다

우리는 천상 돛을 하나 가져야겠기에

쉬지 않고 사랑을 하여

파란 돛을 얻는다.

 

'오래된, 오래되었다는 고백'도 좋았다.

 

오래된, 오래되었다는 고백

그에게 남은 말은 없고

 

서서히,

선반의 백자 항아리에 먼지가 앉듯이

말을 꺼내게 될 것인데

약간의 분홍빛이 섞인 억양으로

 

솟은 어깨에 펼쳐진 빛무리와

머릿결의 갑작스런 쏟아짐에 머물다가

종내 그에게 남는 말은 하나도 없이

나의 입술은 풀입처럼 마르고

날고기처럼 피 흘리리

 

이 밖에도 좋은 시가 많았다.

'사랑에 대하여 말하여주세요'도 좋았고,

'다섯켤레의 양말'은 오랫동안 입안에 굴려가며 읽었다.

시각적 잔상이 청각적으로, 아니 공감각적으로 바뀌는 묘한 경험을 했다.

 

늘 내뱉는 말은 조심해야지 하면서도 손으로 써내려가는 문장들은 자연스레 둥글려지는듯 조심성이 없다.

내 조심성 없음을 가지고, 시인은 몸서리 치는 듯 하다.

 

다섯켤레의 양말

 

각색 양말을 빨아 방바닥에 널어놓고

나도 모르게 짝을 맞춰 그리해놓고

나는 그리해놓았다

전에는 없는 일이라 핸드폰으로 찍어놓고

나는 흐뭇하다

 

나의 디자인, 이 구성진 디자인

궁상각치랑 우 도레미 도레미

썰물에 낚시를 드리우고 내 낚시에 끝까지 걸려들지 않던 어린 날

참으로 아름답던 다섯마리 물고기의 유영을

나의 방바닥에서 본다

 

그러나 오, 다섯켤레의 혀들

나는 내 혀가 지은 죄 때문에 내 혀를 끊을 용기는 없었다

내 혀는 나를 말하지 않을 때가 많았다

내 혀는 자주 나의 것이 아닌 것

내 손이 써나가는 문장을 차라리 내 혀라 말하고 싶지만

세상은 혀끝에서만 머문다

 

양말 다섯켤레가 각 다섯 방향으로 널려 있다

나의 혀와 살아온 날들의 교감들이

또 미래의 그림자 같은 족적들이

수십만석의 농업으로 나를 닦아세우고 있는

이 만다라의 순간이 나는 싫지만

꼼짝할 수 없고 염주를 꿰 돌리며

양말을 빨고 난 후의 그 땟국몰이 혹

욕조 바닥 가장자리에 남아 있을 것을 염려한다

그것마저도 혀가 되리라

 

참으로 아름답던 다섯마리 물고기의 유영을

나의 방바닥에 풀어놓고도

나는 몸서리를 친다

 

이봄,

난 아지랭이를 밟을 일도 없으면서 날아오를 것 마냥,

꽃이 채 피기도 전에 꽃 밟을 일을 근심하는 것이,

마냥 수선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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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8-03-22 19:36   좋아요 1 | URL
‘이쁘네~‘ 하고 넋을 놓고 있는 사이 똘똘한 놈들은 다 골라가 바리고. ㅎㅎㅎ 제가 저런 스탈이라 크큭 웃었어요. 그래도
데려오신 것들도 충분히 이쁘고 봄봄합니다!

양철나무꾼 2018-03-23 17:44   좋아요 0 | URL
우리 찌찌뽕인거예요?ㅎㅎ
그렇죠?
봄은 그렇게 그렇게 오려나 봅니다.

그나저나 완전 기분 좋은 하룹니다.
저녁엔 MB구속 기념 파뤼를 해야겠어요~^^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 - 감정 오작동 사회에서 나를 지키는 실천 인문학
오찬호 지음 / 블랙피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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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밤에 텔레비전을 이리저리 돌려보는데,

이경규가 김새론이라는 어린(?) 여배우에게 이런 얘기를 해주는 거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이런 의미였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 그걸 생각하고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게 좋다.

 

이건 어느 사회에나 어느 집단에서나 통용되는 규칙인데,

우리는 때로 너무 타인을 의식한다.

 

알라딘 서재 이곳도 마찬가지이다.

독서에 열중하다 보면 관계가 소홀해진다.

관계에 치중하다보면 타인을 너무 의식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독서의 진도가 더디다.

 

이럴땐 타인을 의식하는 걸 버리고,

내 자신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때때로 아주 불편한 책들이 있다.

내겐 인문서적이나 사회과학서 따위가 때로 그러한데,

이 책도 그 연장선에서 불편했다.

 

그 이유는 내용을 잔뜩 벌여만 놓고, 어떤 해법이나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

사회현상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는게 아니라, 본인의 관점에서 얘기한다.

거기다가 미주를 조목조목 달았는데,

그냥 봤을땐 엄청 자상한것 같은데,

이 미주란 것이 책 뒤에 한꺼번에 나오고,

이 참고서적이나 자료를 읽지 않으면 두루뭉술 알겠어도,

명확하게 의미파악이 되지 않는다.

이쪽으로 더듬이를 열어놓고 어느정도 꾸준히 공부를 해야 내용이 이해되겠다.

 

제목은 '하나도 괜찮지 않습니다'라고 하는데,

프롤로그부터,

우리가 변하면 우리는 행복해진다. 좋은 사회를 희망한다면 스스로가 나쁜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이 그 시작이지 않겠는가.(13쪽)

라고 하고 있는데, 사람들 개개인을 변화시키려 하는 것이 너무 추상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범한 서민들은,

스스로가 나쁜 사람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법률이나 규칙들, 우리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어떤 사회적인 것들이,

그렇게 약속되고 통용되어 자신도 모르는 새에 그렇게 흘러가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흘러가 버리는 조류에

그렇게 편승하게 되고, 

무덤덤히 그렇게 되버리는 것이다.

 

잘못된 것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감정의 오작동으로 분류하는데,

이게 과연 평범한 서민들의 문제일까.

평범한 서민 개개인의 문제이기 이전에 사회적 조류가 그렇게 형성되는 것이 아닐까.

 

PART 1의 일례로 드는 것들이, '백 번을 물어도 노키즈존은 혐오다' 같은 것들이다.

사람들은 '배제되어 마땅한 사람'을 일상에서 증오할 것이고 이렇게 고립된 누군가는 강력히 저항하게 된다. 약자의 저항은 강자가 만든 세상의 질서에 부합할 리가 없으니, 이는 약자를 향한 지금까지의 혐오가 정당화되는 증거가 된다. 사람의 행동이 아닌 사람 자체를 함부로 통제할 수 없는 이유다.(35쪽)

라고 하고 있는데,

어찌보면 그럴듯한 이 문장은 객관적 오류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약자는 '키즈를 데리고 존에 들어가는 사람'이 아니라,

존에 갔다가 그 키즈로 인하여 마음을 상하게 되고 불편을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행동이 아닌 사람 자체를 함부로 통제할 수 없다며 여러가지 예를 드는데,

그래서 노스모킹존이 있는 것이고,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지 않는 것이다.

 

사회규범이 어떻고 백날 논쟁만 해서는 소용이 없다.

그리고 이런 사회현상의 해법을 개개인에게 돌리고 강요해서는 안된다.

개개인과 사회가 어울려 함께 방법을 모색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이 글의 앞으로 돌아가 이경규와 김새론의 대화를 기억하고 이 부분을 읽으면 느낌이 새롭다.

이책은 PART 1에서 절대적 죄의식이 부족한 우리들의 민낯을 비판하고, PART 2에서는 세상이 자신을 흉볼 것을 두려워하는 수치심 많은 인간들의 강박을 다루고 있다. 막연히 서양처럼 살자는 게 아니니 오해 말고 '우리'가 어떤 덫에 걸려 있는지 짚어 보자는 취지였음을 알아줬으면 한다.(235쪽)

 

이 책은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나'부터 변하자'는 일종의 사회학적 자기계발서랄까...

하고 말꼬리를 흐리고 있지만,

사용법은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해법은 제대로, 제때 성찰하며 사는 거다. 나중이 아니라 당장 해야 한다. '어떻게'가 고민일 때, 이 책이 기억났으면 한다.

 

하지만, 현실의 나라면 글쎄~--;

되는대로, 여력이 있을 때 천천히...정도가 될 것 같다.

그리고 또 그렇게 살아도 이 책에서 말하는 행복에서 그리 많이 비껴가진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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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8-03-22 19:30   좋아요 1 | URL
모든 것을 개인의 탓이라고 꾸중하는 문화에서 살아와서 그런지, 그 비슷한 소리를 들으면 괜한 반감이 생깁니다. 인용해주신 부분을 두어 번 읽었는데 쉽게 읽히진 않네요. ㅋ 아마도 쉽고도 재미진 책을 보고난 뒤라 그런건가 봐요?!? 헤헤

양철나무꾼 2018-03-23 17:42   좋아요 0 | URL
쉽게 읽히지 않으셨다는 것은 제가 인용을 이상하게 해서 그럴 거예요~--;
이 책에서 얘기하려는 것과 제가 이 책에서 읽고싶었던 것 사이에 거리가 좀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그렇게 얘기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이런 사람도 있고 하면서 자위하게 되더군요.
혹 님에겐 좋을 수도 있는데 제가 안내를 잘못한 건가 죄송하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