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의 빨간 노트 - 내 식탁 위의 소울풀 레시피
정동현 지음 / 엑스오북스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며칠 전 결혼 기념일이었다.

결혼기념일이 뭐 대단한건 아니어서 그냥 넘어가도 무방하지만,

아들이 있을땐 패밀리 레스토랑을 다녔던 터라,

추억이 돋는고로,(표현을 일부러 가볍게 해봤다, ㅋ~.)

패밀리 레스토랑은 가지 못하고,

그냥 이름 난 레스토랑에 다녀왔다.

주문을 하는데 고기의 굽기 정도를 묻지 않길래,

남편이 예약하면서 미리 주문을 넣어놨으려나 짐작을 했고,

그래도 낭패를 보면 안 되겠다 싶어 고기를 웰던으로 구워달라고 했다.

그런데 웬걸 이베리코 돼지고기여서 다 바싹 구워져 나온단다.

속으론 돼지고기를 이렇게 비싼 돈을 주고 먹을 필요가 있나 따위의 생각을 했지만,

겉으론 '정식은 분위기로 먹는 거지' 라고 하며 남편을 향하여 한껏 공치사를 해주었다.

 

결국 맛도 모르고 먹었고,

제일 맛났던 것은,

후식으로 나온 내가 이름을 아는 티라미슈 케잌 손가락 마디 만큼과

오후에 먹으면 밤잠을 이룰 수 없어 자제하는 아메리카노 한잔이었다.

 

그리고 정동현 님의 '그릇을 비우고 나면 많은 것이 그리워졌다'를 읽으며 기억해둔 '셰프의 빨간 노트'를 읽었다.

 

이 책엔 여러가지 요리들이 나오는데,

내가 이름을 아는 경우도 있었고,

처음 들어본 이름도 있었다.

이름을 들어봤더라도 나라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면 거의 다른 요리가 된다고 봐야한다.

 

여기서 스테이크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데,

정동현 님의 꿀팁대로라면 난 촌놈 대접은 따논 당상이다.

물론 저 날은 돼지고기여서 덜 민망했지만,

아무리 고급 부위를 시켜도 난 피 보는 게 싫어 웰던으로 주문하는 부류이니까 말이다.

 

굽기 정도에 따라 이런 재밌는 표현이 나온다.

물론 온도계를 쓰면 정확하게 구울 수는 있겠지만 한 번에 스테잌크를 200장씩 구워내야 하는 스테이크 하우스에서는 한가한 소리다.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보는 수밖에 없다. 지글거리는 고기를 맨손으로 계속 누르다 보면 손가락도 스테이크와 함께 익는 거 같다. 아기볼처럼 말랑말랑하면 레어, 발 뒤꿈치처럼 단단하면 웰던이다. 미디엄, 미디엄 레어는 그 사이 어디쯤이다. 그나마 얇은 고기면 그럴듯한 비유가 되겠지만 고기 두께가 5센티미터 넘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감과 경험으로 판단해야 한다.(73쪽)

암튼 웰던은 최소 20분은 걸리고, 주문이 밀리는 건 다 웰던 때문이고 하는 얘기가 계속 된다.

뭐, 하지만...

난 앞으로도 고기를 먹을 일이 있으면 돼지고기보다는 소고기를,

그것도 웰던으로 먹겠다.

발뒤꿈치처럼 단단하고 질긴 고기를 먹는 것이, 피를 보고 피 비린내를 맡는 것보다 내 정신 건강엔 나으니 말이다, ㅋ~.

 

글을 재밌게 잘 쓴다.

삼겹살 콩피를 처음 먹었을 때 느꼈던 환희와 충격은 아직도 강하게 내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그것은 전통과 열정과 집착이 만든 맛의 환희였다. 조리와 요리, 평범함과 비범함의 차이를 증명하는 작품이었다. 지금도 그때 생각이 나면 "셰프란 모름지기 말이야"하면서 친구들에게 삼겹살 콩피 만드는 과정과 맛에 대해 신나게 썰을 푼다. 그런데 눈치 없게 "우리도 한 번만 맛볼 수 없을까" 묻는 인간이 꼭 있다. 콩피를 만드는 그 지난한 과정을 듣고도 말이다. 그런 부탁을 하는 이가 남자면 나는 이렇게 응대한다.

"그냥 구워 먹어, 인마."(88쪽)

 

지난 번 책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것인데 글을 잘 쓰는데,

계산에 의해 짜맞춘 것처럼 단정하다.

정동현 님과 개인적인 경험이 달라서 어떤 문장이 나올지까진 몰라도,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식으로 글을 끝맺게 될 지는 예측 가능하다.

지난 번 읽은 글이 나중에 쓰여진 것이고,

이번 글이 먼저 쓰여진 글인데,

이 글을 읽고나니,

글의 끝맺음을 예측하는 맛으로 '그릇을 비우고 나면 많은 것이 그리워졌다'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어졌다.

 

남편이 내게 강추하는 메뉴 중 하나가 양고기이다.

난 어릴 적 경험에 없는 음식은 시도해 보지도 않는 경향이 있는데,

양고기가 그렇다.

먹어보지 않았으니 식감은 알 수 없고,

짙은 향 때문에 시도해 보지도 않았다.

이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오는 걸 알면 남편은 완전 좋아하겠다.

이런 양고기의 고품격도 모른 채 난 양고기는 아냐, 라며 손사래부터 치면 나만 손해다. 전통 있는 모든 음식에는 깊은 풍미와 미묘한 매력이 있다.(95쪽)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내가 그의 책을 읽은 건 이런 따뜻한 문체 때문이다.

이런 따뜻함이 그가 의도한 것이라고 해도,

이런 미괄식 문장을 원했다고 해도,

내가 이 글에서 얻으려고 했던 게 따뜻한 온기라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

 

내가 살던 마카롱 빛깔의 그 산동네는 이제 관광객이 북적이고 영화 로케이션 장소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화려한 색의 집에서 무채색의 인생을 살아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샤걸의 그림 속 파스텔 톤 색들이 아름다운 것도 그 뒤를 조용히 받치고 있는 침묵의 음영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행복해서 마카롱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우리 안에 밝음이 필요하기에, 조그만 행복을 원하기에, 그 작은 것을 입 안에 넣는지도 모른다.(255쪽)

 

예전엔 쿨한 문장이 지적으로 보여 그런 글들에 열광했던 것도 같은데,

언제부턴가 적당한 온기를 지닌 따뜻한 문장이 좋아진다.

쿨한 문장은 나누다 보면 자칫 미지근해지기도 한다.

따뜻한 문장은 나눌수록 더 따뜻해진다.

 

'셰프의 빨간 노트', 이 책은 '내 식탁 위의 소울푸드 레시피'라는 부제를 달고 있어서,

내 소울푸드는 뭘까 잠깐 생각해보았다.

어쭙잖게 한때는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 식품을 소울푸드라고 했던 적도 있는데,

이젠 그 정도는 아니다.

예전처럼 먹는게 즐겁지 않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먹으면 힘이 나는, 나를 일으켜 세우는 음식이 있는 것도 안다.

언제 기회가 될지 모르겠지만,

다음엔 나의 소울푸드를 한번 털어놔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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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2 16: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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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2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9-12-02 17:35   좋아요 0 | URL
예, 한번 올려주세요. 양철나무꾼님의 소울푸드요.

양철나무꾼 2019-12-05 12:52   좋아요 0 | URL
소울푸드는 추억인데,
추억 돋아서 아프다지만,
언젠가 가슴에 빨간 약 바른 듯 올릴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싶습니다.

전 언젠가 님 서재에서 보았던 대나무 찜기에 담겼던 만두였나, 송편이었나...가 떠오릅니다.
참 정갈했었는데...^^

수이 2019-12-02 18:33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소울푸드 궁금해요. 저도 귀 쫑긋.

양철나무꾼 2019-12-05 12:54   좋아요 0 | URL
수연 님, 오래간만이예요.
어쩜 댓글도 이리 재치발랄하답니디까?^^
귀 쫑긋이라니.
이뻐요~^^

단발머리 2019-12-02 19:41   좋아요 0 | URL
저도요... 저도 양철나무꾼님 소울푸드 이야기 듣고 싶어요^^

양철나무꾼 2019-12-05 12:56   좋아요 0 | URL
추억 속의 소울 푸드는 인스턴트 식품이나 간편 식품 위주인데,
이 참에 함 소울을 재정비 해보려구요.
소울도 예전 같지 않고,
식성도 바뀌어서요.
단발머리 님의 소울푸드 얘기도 궁금합니다~^^

북프리쿠키 2019-12-02 21:12   좋아요 0 | URL
이 글을 읽다보니 적당한 온기를 지닌 따뜻한 사람이 그립네요~

양철나무꾼 2019-12-05 13:32   좋아요 1 | URL
갑자기 신영복 님의 글이 생각나요.
감옥살이 중 겨울엔 옆 사람의 온기가 고맙게 느껴지는데,
여름엔 옆사람의 체온이 증오로 다가온다고 했던가요?^^
그런 의미로 봤을때 여름보다 겨울이 나은건가요?
개인적으로 전 더위는 잘 안 타는데, 추위는 엄청 타거든요~^^

Nussbaum 2019-12-02 22:17   좋아요 0 | URL
오늘은 날이 꽤 차갑게 느껴졌는데 몸과 마음이 따뜻해졌다니 다행입니다.

양철나무꾼 2019-12-05 13:34   좋아요 1 | URL
오늘도 좀 추운데, 낼부터 주말까진 더 춥대요.
내복도 챙겨입고 옷도 껴입고.
따뜻한 차 같은 것도 손에라도 쥐고 있어야 겠어요~^^

2019-12-20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7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30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6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교유서가 산문 시리즈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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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동백꽃 필 무렵'이란 드라마가 끝났다.

정적이 싫어 텔레비전을 배경으로 틀어놓는 경향이 있어서,

그 드라마도 처음엔 배경이었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빠져들어 버렸고,

마지막회는 열광의 정도를 대성통곡으로 표현하며 봤다.

 

남들이 감동을 하는 대목에선 나도 같이 감동을 했으니 차치해 두기로 하고,

유독 공감을 했던 대목은 제시카와 강종렬의 대화였다.

인스타그램(?)을 하던 제시카는 부럽다는 소릴 듣고싶어했는데,

사람들이 힘내라는 댓글은 재빨리 달더라는 그 대목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도 자존감이 충만했을 때는 사람들의 말을 오해하거나 곡해하는 일이 없었다, 아니 적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사람들의 말을 내가 듣고싶은대로 듣고 살았다.

그런데 작년에 그 일을 겪은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사람들이 나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동정할 것 같아서,

그들이 해주는 위로에 어떻게 적절하게 화답해야 할지 몰라서 한걸음 뒤로 물러나고 마음의 문을 닫아걸어 버렸다.

 

이 책은 알라딘 서재에 들어올때마다 곳곳에서 리뷰가 많이 눈에 띄어서,

게다가 내가 읽은 리뷰가 하나 같이 다 좋아서 찾아 읽게 되었다.

막상 책으로 읽으니,

좋았으나 아주 좋지는 않았고, 맹숭맹숭 했으나 흠을 잡을 만큼 맹숭맹숭한 맛은 아니었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지나고 나면 슬픔은 더러 아름답게 떠오(6쪽)'른다고 했는데,

난 아직 슬픔의 한 가운데 있어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나 보다.

 

어떤 글들은 읽는 독자의 추억과 맞물려 맛이 배가 되기도 덜해지기도 하나본데,

이 책에 나오는 추억들을 호들갑을 떨며 공감하는 세대들은 노안으로 책을 멀리하거나 산문집은 안 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표제작 '참 괜찮은 눈이 온다' 속의 날은 이런 날이었다.

위로가 필요해서 찾아온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 나는 나보다 오랜 세월을 산 사람의, 내가 겪지 못했던 삶을 들어줄 만큼 성숙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어른인 척하느리 그 사람과 마주앉았다. 함께 술도 마셨다.(57쪽)

안으로 움추러들지 않고,

위로가 필요해서 누군가를 찾아온 사람이라면,

나보다 오래 산, 성숙한 사람 따위가 필요한게 아니라,

단지 들어줄 귀가 필요한게 아니었을까.

 

때론 위로나, 충고 따위를 해주는 사람이 아닌,

그냥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술잔을 기울일 누군가가 필요한 법이니까 말이다.

 

잘 읽었다.

내 자신을 북돋우고 다잡는 이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자신이다.

 

 

아마도 누군가에겐 추억이라고 부르는 그것들이, 내겐 어느 순간 정지되고 유폐되었다.

더 이상 과거를 추억하며 살지 않는다.

반짝이지 않고  눈 내리기 전의 가라앉은 잿빛 하늘이라도 머리 위로 이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려 애쓸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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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9-11-26 18:23   좋아요 0 | URL
그냥 제목과 표지가 이뻐서 사 두긴 했는데 아직 읽지는 않았네요.

양철나무꾼 2019-11-26 18:32   좋아요 1 | URL
문장도 아름답고,
문체도 퍼석거리는것 같으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제가 그동안 님의 전작들을 두루 섭렵하여 짐작하는데,
아마도 어린시절 추억이 떠올라서,
또는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눈물바람 하실 수도...^^

2019-11-27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29 1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8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1-06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걷는 사람, 하정우
하정우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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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라면 치를 떨 정도로 싫어하는 내가 이 책을 왜 집어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래도 '북플'의 '독보적'이라는 서비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난 번 '하정우, 느낌있다' 때도 좋았기에, 이 책도 그러하리라는 생각이 플러스 되어서.

아무려나 읽다보니 참 좋아서 남편에게,

"이 책 좋다. 읽어볼래?"

하고 권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이,

"그래서 걸어 보겠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어?"

였다.

나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하며 얼버무렸더니 남편 왈,

"'좋다'는 느낌만으론 좀 약하지 않어?

  행동의 변화로까지 이어져야 좋은 책이쥐~!"

라며 내심 나의 변화를 기대 종용했지만, 뭐~(,.)

 

이젠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겠다.

걷기를 좋아하게 될지 어떨지는 일단 걸어봐야 알테지만,

내가 말한 "이 책 좋다"의 원천은 하정우라고...

이 책을 읽는 내내,

하정우도 나와 같이 간난신고를 겪은 사람으로 여겨졌고,

그가 건네는 한마디 한마디가 수선내지 않고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아 참 좋았다.

 

걷기를 비롯한 모든 운동을 싫어하고, 여행도 그닥 좋아하지 않는다고 얘기하면,

사람들은 내가 너무 침체되었다며 운동이나 여행 등 훈수를 둔다.

내가 에너지를 소모하고 비축하는 방식이 달라서,

운동이나 여행따위로... 좋고 기분전환이 되고 삶의 재충전을 하질 않는다고 하면,

대게 게으르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내지는 '니가 그 정도로 중환자는 아니지 않느냐'고 하며 북돋우려 든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내 삶의 방식을 자랑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사람마다 보폭이 다르고, 걸음이 다르다. 같은 길을 걸어도 각자가 느끼는 온도차와 통점도 모두 다르다. 길을 걸으면서 나는 잘못된 길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조금 더디고 험한 길이 있을 뿐이다.

그저 내가 지나온 길, 내가 갖고 있는 일상의 매뉴얼이 누군가에게 아주 약간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혹여 쓸 만한 것이 티끌만큼이라도 있어 참고해주신다면 감사할 따름이다.(서문, 11쪽)

그런데, 이 책은 '서문'에서부터 이렇게 얘기하니 내가 설레발을 치지않을 수가 있나.

다름을 인정하는 삶이란 멋지다.

 

기분을 전환하는 법은 저마다 다르다. 마음 편한 사람과 수다를 떨기도 하고, 평소보다 많은 양의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시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방법들은 확실히 즉각적인 효과가 있지만, 부작용이 따른다. 장기적으로 보면 건강에 해롭거나, 내 기분은 바꿔주지만 다른 이에게 민폐를 끼치며 상대의 기분을 구겨버리는 것이다.

이럴 때 나는 부작용 걱정 없는 걷기를 선택하는 편이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추워지면 외투를 입는 것처럼 나는 기분에 문제가 생기면 가볍게 걸어본다. 누구에게나 문제없는 날은 없고 고민 없는 날도 없다. 고민이 내 머릿속에서 슬금슬금 기어나와서 어깨 위에 올라타고 나를 짓누르기 시작하면 나는 '아, 모르겠다. 일단 걷고 돌아와서 마저 고민하자' 생각하면서 밖으로 나간다.(31쪽)

기분을 전환하는 방법도 다르긴 하다.

난 반식욕 후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 잠을 잔다.

나는 이 방법이 상대방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안으로 움추리고 누워있을때, 누군가는 나의 그런 상태를 걱정하고 염려할 수도 있겠다.

 

'아, 휴식에도 노력이 필요하구나. 아프고 힘들어도 나를 일으켜서 조금씩이라도 움직여야 하는 거였구나.'

ㆍㆍㆍㆍㆍㆍ

내가 일을 좋아하는 만큼, 일을 오래하고 싶은 만큼, 휴식도 신경쓰고 잘 계획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일과 휴식을 어중간하게 뒤섞지 말고, 가만히 누워 있는 것을 휴식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 일이 바쁠 때 '나중에 몰아서 쉬어야지' 같은 얼토당토않게 핑계를 대지 않는 것.(57~58쪽)

일(=노동)과 운동은 다르다는 것을 아는 나로서 가장 찔렸던 구절은 '가만히 누워있는 것을 휴식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만히 누워있는 것을, 모든 생각마저도 내려놓는 것이 휴식이 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ㅋ~.

 

그리고 이 루틴이 습관으로 자리잡으면, 힘들 때마다 망설이고 고민하기보다는 이란 움직이게 될 것이다.

루틴의 힘은 복잡한 생각이 머리를 잠식하거나 의지력이 약해질 때, 우선 행동하게 하는 데 있다. 내 삶에 결정적인 문제가 닥친 때일수록 생각의 덩치를 키우지 말고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살다보면 그냥 놔둬야 풀리는 문제들이 있다. 어쩌면 인생에는 내가 굳이 휘젓지 말고 가만 두고 봐야 할 문제가 80퍼센트 이상인지도 모른다. 조바심이 나더라도 참아야 한다.(166쪽)

그러니 하정우의 루틴은 걷기이고, 나의 루틴은 반신욕 후 잠자기라는걸 받아들이면 쉬워진다.

나름대로의 루틴이 있다는 건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아도 좋다는 점에선 괜찮지만,

자칫 매너리즘에 빠질 수도 있으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생각을 멈출 줄 아는 것과,

항상 틀에 박힌 일정한 방식이나 태도를 취함으로써 신선미와 독창성을 잃는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은 엄연히 다른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보이지 않는 힘이나 주술 따위에 의지하는 것 같아서 되게 재수없게 들릴 수도 있는데,

난 사람에게서 나오는 어떤 기운이라는 것을 믿는다.

이 책에서는 '(언령言靈)이라고 표현하며 말에는 힘이 있고 혼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걸 말에만 적용시키는게 아니라 좀 확대시켜 인간 전체에 적용되는 아우라나 에너지 따위로 표현하고 싶다.

좋고 선한 기운일때도 있고 나쁘고 악한 기운일때도 있고 이렇게 저렇게 섞여 있을 때도 있다.

좋고 선한 기운만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어떤 에너지든 간에 강도에 따라서 내쳐지거나 북돋워지는 경험을 여러 번 한 나는,

하정우의 이 책을 통해서도 그러한 것들을 느꼈다.

 

그러면서 영화 '신과함께'의 대사를 인용하는데,

"그러니까 인터넷 댓글 같은거 함부로 달면 안 돼!"

는 하정우가 김용화 감독에게 강력하게 제안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악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난 지난 페이퍼에서 많은 분들이, 보이게 보이지 않게 공감과 댓글로 위로를 해주셨다.

그 위로들은 내게 혼자가 아니라는,

같이 보금어 안자는,

툭툭 떨고 걸어나아가 보자는 위로가 되었었다.

 

그 중 비밀 댓글 하나를 그 분의 동의도 없이 옮겨보자면 이렇다.

 

그럴게요.언제라도.

혼자 안을 수 없으니 우리는 함께 서로를 안아주겠네요.

서로를 안아주다, 참 포근합니다.

 

하정우를 빌리지 않아도 '독서'와 '걷기'에는 공통점이 있다.

인간은 걷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읽는 존재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하루 아침에 습관을 바꾸어 걷게 되긴 힘들지 모르지만 꾸준히 읽기는 해야겠다.

명제를 살짝 비틀어 보면 꾸준히 걷든지, 읽는 존재가 인간이라니 말이다.

이렇게 따뜻한 이들이 있는데,

내가 함께 또는 오롯이 걷고 읽지 못할 이유가 무어 있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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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5 16: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5 1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9-11-15 17:11   좋아요 0 | URL
걷는 존재, 읽는 존재, 거기다 쓰는 존재까지~ 이 세가지가 많이 닮아 있네요. 전 운동이랑 여행 그렇게 좋아하지 않고 게으르기까지 한데..
뭐 민폐 안 끼치면 되겠지예 ㅎ

양철나무꾼 2019-11-15 17:29   좋아요 1 | URL
오홀~!^^
저랑 찌찌뽕이시네요.
저도 뭐 님같은 생각을 하는데,
저는 환자들한테 맨날 노동과 운동은 다르다, 운동을 해라.
힘 안들고 돈 안들고 가장 좋은 운동은 걷기이다...노래를 한다는 거.
요번에 하정우 책으로 걷기찬양을 접했으니,
환자들한테 똑같이 리바이벌 할거 같아요~^^

blanca 2019-11-15 17:34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이 느끼신 그 공감의 지점이 저와 겹쳐요. 그죠. 하정우는 뭔가 겪었고 분명 뭔가를 알아요. 그래서 저도 이 책 너무 좋다,고 똑같이 남편한테 얘기했더니 ㅋㅋㅋ 책이 좋은 게 아니라 하정우가 좋은 게 아니냐는 듯한 눈빛을 받았어요. 그런데 우울감을 느끼거나 힘든 일을 통과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읽게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힘들면 사실 밥 먹고 자고 걷는 것조차 잘 안 되잖아요. 그 루틴을 미리 강화시켜놓는 데에 무릎을 쳤어요. 정말 잘 수도 없고 먹을 수도 없어서 이 일을 극복해내지 못할 것 같았던 시간들이 떠오르면서.

양철나무꾼님, 어떤 순간이라도 힘내서 끝까지 잘 살아봐요...

양철나무꾼 2019-11-18 14:34   좋아요 1 | URL
님의 이 댓글 보고 님의 서재 다녀왔어요.
님의 페이퍼를 보니 제가 쓰지 않고 생각했던 부분이랑 공감의 부분이 많이 겹치네요. 심지어 님은 체육에 치를 떨며 싫어하셨는데,
운동이라면 치를 떨 정도로 싫어했던 것도 겹치고요, ㅋ~.
남편한테 애기했더니 하정우가 좋은게 아니냐고 하는 부분도 그렇구요.

한가지 슬펐던 것은,
하정우를 읽으면서 ...그가 분명 뭔가를 겼었고, 뭔가를 안다는 것을...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선험적으로 안다는 거예요.
왜 그런거 있잖아요, 공감하지 못해도 좋으니...그 사람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요.

님의 마지막 댓글도 그런 의미에서 치열한 응원의 메시지로 들립니다,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19-11-15 18:23   좋아요 1 | URL
제가 읽지도 못하고 오늘 아침에야 반납한 책 <나는 당신이 오래오래 걸었으면 좋겠습니다>처럼 저는 ‘걷기‘책을 참 좋아하는데,
사실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하는 1인입니다. 독보적 서비스 때문에 제가 하루에 2,000보도 안 걷는 사람이란 것을 발견했구요.
걸어야 하는데, 걸어야 하는데.... 말로만 하고 있죠.

저는 하정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이 책도 눈여겨 봐왔는데, 양철나무꾼님 페이퍼 읽고 나니 서둘러 찾아 읽고 싶네요. 하정우의 ‘말‘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양철나무꾼님과 같은 부분에 밑줄을 치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구요.
오래오래 같이 걷고, 같이 읽어요, 양철나무꾼님~~~ 댓글로나마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어 마음이 참 따뜻하네요.
편안한 불금 되세요^^

양철나무꾼 2019-11-18 14:44   좋아요 0 | URL
하하하~, 독보적 서비스 때문에 제가 님의 두배 이상 걷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비록 제대로 걸은게 아니라, 종종 걸음으로 왔다갔다 하는것까지 카운트가 되는게 함정입니다.
암튼 글에서 만나지던 님은 되게 액티브 할 것 같았는데, 2천보도 안 걷는다니 의외이긴 하지만,
님만의 몸과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방법이 있으시리라 믿어 의심치않습니다.

밑줄 쳤던 구절을 이곳에 다 인용하진 못했어요.
왜냐하면 책 한권을 밑줄 쳐야할 것 같아서요.
하정우가 읽었다는 책들도, 자기계발서 빼곤 다 좋았습니다~^^

‘오래오래 같이‘라는 말...마음이 참 따뜻해지는 것이,
따뜻한 호빵보다 더 정겹습니다~^^
 
그릇을 비우고 나면 많은 것이 그리워졌다 - 삶의 모든 마디에 자리했던 음식에 관하여
정동현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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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에 대하여 / 이상국

오래 받아먹던 밥상을 버렸다
어느날 다리 하나가 마비되더니
걸핏하면 넘어지는 그를 내다버리며
누군가 고쳐 쓰겠지 하면서도 자꾸 뒤가 켕긴다
아이들이 이마를 맞대고 숙제를 하고
좋은 날이나 언잖은 날이나 둘러앉아 밥을 먹었는데......
남들은 어떻게 살던지,
아버지가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때로는 밥상머리에서 내가 지르는 호통소리에
아이들은 눈물 때문에 숟가락을 들지 못했고
그럴 때마다 아내는 공연히 밥알을 줍거나
물을 뜨러 일어서고는 했지
나는 가장이라는 이름으로 그렇게
나의 가족들에게, 실은 나 자신을 향하여
어떤 때는 밥상을 두드리고 숟가락을 팽개치기도 했지
여기저기 상처난 몸으로 그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끼 밥을 위하여 종일 걸었거나
배를 있는 대로 내밀고 다니다가
또 어떤 날은 속옷 바람에 식구들과 둘러앉아
별일도 아닌 일에 밥알이 튀어나오도록 웃던 일들을
그는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오래 받아먹던 밥상을 버렸다
그러나 그가 어디 가든 나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는 걸 나는 안다

 

언젠가 이 시를 읽다가 울컥하였다.

울컥한 이유는 식탁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은 모를, 밥상에 대한 정서와 상념이 고스란히 느껴져서 였다.

 

이 책을 읽는데 저 시가 생각났다.

생각을 많이 하는게 싫어,

감상에 빠지고 상념에 젓는게 두려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것들을 골라 읽는다.

그런 내게 음식에 관한 얘기만한 것이 없고,

이 책을 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암튼 재밌게 잘 읽었으나, 나의 의도와는 상반된 책이었다.

박찬일을 닮았으나 박찬일과는 다른 글맛,

정갈하고 깔끔하나 왠지 슬픔이 밀려와서 눈물을 눌러 삼키듯 그리 읽게 되는 글맛을 지녔다.

다 읽고 저자의 다른 책을 찾아 보니 '셰프의 빨간 노트'라는 책은 내가 가지고 있다.

 

프롤로그를 어린시절 살았던(?) 당구장 얘기로 시작해서 혹시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당구장과 짝을 이루는 음식, 짜장면에 대해서 내밀하게 털어놓는다.

급기야 명동 일품향의 유니짜장을 얘기하며 이렇게 표현한다.

단맛이 얌전한 고양이처럼 조용히 밑에 깔리고 짠맛은 그 위로 슬며시 발길을 올렸다. 고소한 맛이 진득한 질감을 타고 뭉텅이로 전해지면 남는 것은 입기에 까만 흔적뿐이다. 재료를 다듬는 정성이 탄탄한 기술을 만나고 생계라는 추진력에 올라탔을 때, 음식은 세금처럼 늦지않게 또박또박 나요며 종업원들은 경주마처럼 홀을 가로지른다.(79쪽)

난 유니짜장을 지인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성격이 워낙 급한 그는 짜장면을 씹지않고 후루룩 집어 삼켜서 잘 체하곤 했었는데,

재료를 곱게 다진 유니짜장을 먹으면 그나마 덜 체했다.

너무 잘게 좃아놓은 그 느낌을 나는 애정할 수 없었는데, 저자의 글을 보니 저런 철학이 숨어있었다.

 

서울대 경영학과 출신이라는 프로필도 그렇고,

대기업 유통회사를 다녔었고,

오랜 유학 후 다시 다니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글이 계산에 의해 짜 맞춘 것처럼 단정하다.

 

글에 등장하는 음식이나 재료들은 추억을 먹는 것이고 취향이니까 차치하고라도,

그가 그렇게 해외를 떠돌며 사서 고생을 했다는게 믿겨지지가 않는다.

 

이런 말을 하면 편견처럼 여겨지겠지만,

그동안 내가 만나온 서울대 출신들은 남달랐다.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게 느껴졌고,

저렇게 사서 고생을 할때에는,

머리가 나빠서 몸이 고생을 하는 차원이 아니라,

그의 거대한 꿈의 청사진에서 비롯된, 미리 계획된 것일데,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힘들게 산듯 여겨져서 하는 말이다.

 

계획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면 슬픔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것이 완벽했고,

마음가는대로 쓴 수필 같은 것이라면 그것도 그런대로 좋았다.

"주방에서 일하는 것 말고 바깥에서는 어떻게 지내?"

대답할 걸가 별로 없었다. 영어 수업을 듣고 밥을 먹는다고 말했다. "최근에 가본 레스토랑은 어디야?" 라고 다시 묻기에 몇 군데 이야기를 했다. 주방 밖 생활을 묻는 질문을 받았을때 이제껏 느꼈던 공허함과 황량함은 잠시, 예상치 못한 낯선 이의 관심에 마음 위로 가랑비가 내리는 듯했다. 오래 배를 곯다 하얀 밥 한 그릇을 마주한 것차람, 지친 나를 이끄는 두터운 손을 잡은 것처럼, 몸에 따뜻한 피가 돌았다.(223쪽)

그의 글을 두고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레시피에 관한 이런 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결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쓴 연애편지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 레시피의 형태를 취할 것 같다.

프로가 일하는 주방의 레시피는 요소 하나하나를 과학적인 방법론으로 검증하여 만들어진다. 추론적인 연역법과 경험적인 귀납법의 세계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요리를 넘어 현대 요리의 근간을 만든 요리사 에스코피에가 이룩한 철저한 통제와 체계라는 틀이 이룩한 접근법이다. 덕분에 요리는 손맛이라는 개인의 감을 넘어 학습될 수 있는 기술이 되고 손님은 늘 동일한 질의 '상품'을 맛벌 수 있다. 나는 그 체계 속, 싸구려가 아니라 인치별로, 용도별로 나눈 주물 후라이팬과 300도 이상 되는 열을 뿜는 가스오븐, 1도 단위로 조절할 수 있는 전기오븐 틈에 있었다. '본토' 김치 부침개 권위자의 의견 따위는 필요 없었다. 아시아계 마란 요리사에게 필요한 것은 말귀를 잘 알아먹는 머리와 하루 열다섯 시간이 넘는 노동에도 끄떡없는 신체, 싼 임금을 불평하지 않는 마음가짐이 전부였다.(263~264쪽)

 

내가 애정해마지않는 박찬일 님은 그를 만나면,

"뭐 그렇게 힘들게 살았어. 대포 한잔해."

라고 한다는데,

웬걸,

내 생각엔 대포가 아니라 작은잔에 담긴 술을 마실 것 같고,

안주도 없이 대충 마시는 대포 한잔이 아니라,

안주와 술의 조합을 과학적(?)으로 따져 마시자고 할 것 같다.

 

그의 글들도 충분히 훌륭하지만,

먹어본 적 없는 그의 음식에는 한없이 못미칠 것 같다.

글맛에 빠져 읽는 내내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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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호 2019-07-30 20:25   좋아요 1 | URL
나무꾼님 오랜 만입니다. 잘 지내시나요? 좋은 글을 읽고 행복하셨다니 제가 다 행복해 지네요. 요새는 글을 쓰기 위한 책을 읽을 수 밖에 없는 처지라 무턱대고 읽는 책이 그립네요.

양철나무꾼 2019-08-01 14:15   좋아요 0 | URL
방학을 하셔서 좀 한가해지셨으려나 했는데,
새로운 책을 내기 위해 여전히 글을 쓰시는군요~^^
저는 여름엔 장편 내지는 장르소설이지...하면서 책을 파는 편이었는데,
저조한 나날들입니다.
다시 무턱대고 읽을 수 있는 날들이 오겠죠.

님도 더운 여름 지치지 않도록 체력안배 잘 하시구요~!^^

북극곰 2019-08-08 15:31   좋아요 1 | URL
나무꾼 님, 잘 계셨죠?

인용해주신 시가 저도 참 와닿네요.
아빠 때문에 혼나서 운 적은 없는 것 같으나 ㅎ...
밥상에 앉아서 눈물 때문에 숟가락 못 드는 날이 있었던 것 같고.

나무꾼 님 늘 계셔주셔서 고마워요~!! (갑자기)




양철나무꾼 2019-08-16 08:18   좋아요 0 | URL
북극곰 님도 잘 계셨죠?
휴가를 좀 길게 다녀오느라 댓글이 늦었네요.
여름도 막바지네요.
남은 여름을 즐겨보자구요~^^

2019-08-12 17: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양철나무꾼 2019-08-16 08:21   좋아요 1 | URL
휴가를 다녀오느라고 댓글이 늦었네요.
저는 글을 마음가는대로 ‘휘리릭~‘ 쓰는 경향이 있어서,
마음이 꾸무룩 할때는 조심하게 되네요.
이젠 여름 막바지인것 같아요.
오늘 새벽에 바람에서 가을이 느껴지던걸요~^^

2019-09-04 1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09-11 19:26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 내일부터 추석연휴인데, 마음은 오늘부터 시작인 것 같아요.
명절 인사 왔습니다.
즐거운 추석명절 보내세요.^^

양철나무꾼 2019-09-16 09:24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님도 보름달처럼 풍성한 한가위 되셨죠?^^
저는 추석 음식을 많이 먹어 이 아침도 배가 빵빵하다는~, ㅋ~.

2019-10-11 2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22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16 0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22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22 22: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24 1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19-10-22 19:48   좋아요 1 | URL
잘 지내시는지 안부 여쭙고 갑니다^^
가을이네요.
건강 잘 챙기시구요.
기다리겠습니다^^

양철나무꾼 2019-10-24 11:49   좋아요 0 | URL
가을이라서 책읽을 여유가 좀 생기신 건가요?
이렇게 오래간만에 뵈도 반가운 사람들이 존재하는가 봅니다.
저는 그동안 좀 적조했습니다.

님도 건강 잘 챙기시구요.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계시니 언젠가는 돌아올 날이 있겠죠~^^

2019-10-23 18: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24 0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24 1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24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24 16: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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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4 17:2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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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24 1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0-26 0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늑대가 온다 - 늑대를 사랑한 남자의 야생일기, 2020 우수환경도서 선정도서
최현명 지음 / 양철북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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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북펀드 광고를 통하여 알게 된 책이다.

적립금은 남아 있으나 중압감이 있는 책을 읽느라 신간을 들이기에 버거워 하던 차에 북펀드 광고를 만났다.

내용이 솔깃하여 동참하였고, 책을 받아 읽었는데,

재밌어도 너무 재밌는 거라.

탁월한 안목이라며 자뻑을 하고 있는 중이다, ㅋ~.

 

사실 최현명 이 분이 누군지 몰랐고,

개인적으로 늑대에 대해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늑대는 물론이거니와 개나 고양이에도 전혀 관심이 없다.

싫어한다기보다는 무서워한다, 가 적절한 표현일텐데, 여기서 시시콜콜 밝힐 필요는 없을 것 같고,

'늑대를 사랑한 남자의 야생일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데,

생물이나 무생물을 의인화해가며 'ㅇㅇ을 사랑한~' 따위의 수식어가 붙는 것은 열정이라고 하기엔 흔한 일이라서 별다른 기대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이 책은  재밌었다.

'2002년 네이멍구를 찾았던 45일간의 기록'이라는데 하루도 안 빼놓고 차근차근 적어내려간 것도 흥미로웠고,

여행 중에 만나게 되는 사건(?)의 기록도 기록이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개인 심경의 변화나 내적인 갈등들을, 찌질하게 비춰질 정도로, 솔직히 써내려간 것도 좋았다.

 

내가 무엇보다 감명을 받았던 것은 어린 늑대들을 키우게 되면서 그들의 야성을 잃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는 대목에서 였다.

자신이 먹을 것도 여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늑대에게 양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 이상했던 부분이 있는데,

지금까지 본 늑대 중 흰 늑대나 검은 늑대를 본 적 있는가?

"계절별로 다르긴 하지만 흰색이나 검은색 늑대는 본 적이 없다."(35쪽)

 

'계절별로 다르긴 하지만'이란 수식어는 보호색 따위와 관련하여 늑대의 털 색깔이 바뀐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 같은데,

흰색이나 검은색 늑대를 본 적이 없다는데 '계절별로 다르긴 하지만'이란 수식어는 무의미해 보였다.

 

최현명 님의 늑대에 대한 애정도 애정이지만, 글 자체가 재밌었다.

닷새째 씻지 못했다. 마실 물도 얼마 없는데 차라리 잘 됐다 싶다. 닦고 씻는 것도 귀찮기만 하다. 생각해보면 평소에 내가 하루에 쓰는 물이면 이곳 사람들은 열흘뜸은 사용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 사람들이 "돈을 물 쓰듯 한다"고 하면 자린고비를 말하는 걸까!(72쪽)

읽다보면 어느새 동화되어 이들과 함께 늑대굴을 찾고 어른 늑대가 나타나길 염원하는 내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문장도 인상깊었다.

이게 쓰여진게 2002년의 일이고 보면, 뭐랄까, 글만으로 그의 내공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짐작컨대 서른아홉, 마흔 무렵이었을텐데 말이다.

정확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사람이나 동물은 물론이고 때론 식물들도 저마다 어떤 '기'를 내뿜는 듯하다. 잔뜩 긴장한 나의 몸놀림은 땀 냄새나 카메라 셔터 소리보다 더 동물들을 긴장하게 할 것이다. 여우 오줌 냄새를 맡은 사냥개처럼 마냥 헤집고 다니는게 능사가 아닌 것이다.(88쪽)

 

그래서일까, 나는 이런 인간적인 성찰들이 좋았다.

전문가는 과장하길 즐기고 일반인은 오인하기 쉽다.(112쪽)

 

집 떠난 지 22일째. 무슨 일을 하든, 그 시작과 끝 사이에는 절정의 시기와 침체기가 있기 마련이다. 개인적인 바이오리듬들도 때로 영향을 미치는데, 오늘은 컨디션이 영 엉망이다. 기대와 현실 사이엔 늘 거리가 있다. 단순히 현실이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언제나 기대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기대한 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125~126쪽)

 

그렇다고 인간적인 성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적인 성찰은 고뇌의 흔적으로 남아 아름답기까지 하다.

ㆍㆍㆍㆍㆍㆍ여우는 정작 나의 존재는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여우가 있는 쪽에서 나를 향해 불어오는 맞바람도 한몫했을 것이다. 내 바로 앞을 지나쳐가돈 녀석은 셔터 소리를 듣고야 나를 발견한다. 녀석은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추어 선다. 동그랗게 눈이 커지는 모습이 렌즈를 통해 고스란히 내 눈 안에 들어온다. 녀석의 영혼이 그대로 필름 안에 새겨진다. 나는 카메라를 이용해 사냥을 한 것이다.(194쪽)

 

이런 문장도 좋았다.

나는 속으로 이별 연습을 하고 있었는데, 할매는 오히려 점점 더 친아들을 대하듯 한다. 서울에서라면 나는 아파트에 틀어박혀 한 뼘도 안 되는 벽 너머에 있는 옆집 사람과 한마디도 하지않고 몇 년이라도 지낼 수 있다. 그만큼 나는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 나 역시 달라진다. 달라져야 버틸 수 있다. 여행을 하게 되면 눈 앞의 것만 보던 좁은 시야가 휠씬 넓어지게 된다.(325쪽)

 

나도 직장에선 수다스럽다고 할 정도로 재잘거리지만,

집에서는, 모처럼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한마디도 하지 않고 버틸 수 있다.

남편이랑은 재스츄어나 눈빛, 숨소리만으로 서로의 속내를 알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을 함께 했다.

굳이 말이 필요없다.

 

가장 깊게 와닿았던 것은 이 대목이다.

몽골의 초원이나 숲속을 헤매다보면 대자연 안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금세 깨닫게 된다. 사람의 손이 타지 않은 대자연을 낭만적인 눈으로 아름답게만 보는 것은 순진한 태도일 것이다. 저 자연 안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일지도 모른다. 자연 안에서 우리는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곳은 생태계라는 숨 막히는 질서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는 곳, 용서와 배려와 관용 따위는 처음부터 없는 곳이다. 잠자리가 모기를 잡아먹는 것부터 늑대가 사슴을 물어뜯는 것까지, 초 단위 분 단위로 사냥과 죽음이 벌어지는 곳이다.(374쪽)

 

이 대목을 읽고 다시 한번 깨달은 거지만,

우리는 때로 때때로 인간 중심의 가치관에 얽매여 산다.

자연 안에서 자유롭다는 것은 어쩜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사고방식일지도 모른다.

자연은 늘 그렇듯 스스로의 운행규칙을 가지고, 그렇게 그렇게 운용되어 가는 건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자연~스럽게 자연 앞에 '大'자 붙는 '대자연'이란 말이 떠오르고,

그런 대자연 속에서 인간은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자연~' 겸손해진다.

 

언젠가 읽었던 엘렌그리모 라는 피아니스트의 '특별수업'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엘렌 그리모를 강렬한 타건을 지닌 피아니스트정도로 알고 있던 내겐,

그녀가 키우던 늑대 이야기가 옵션 정도로 여겨졌었다.

 

한국과 일본 등지에서 늑대는 멸종되었단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엘렌 그리모의 늑대를 다시 한번 떠올랐는데,

인간 속에서 자라 야성을 잃어버린 그것을 계속 늑대라고 불러도 좋을지 생각해 볼 여지를 남겨주었다.

 

우연히 읽게 되었지만,

내겐 웬만한 소설책이나 동물의 왕국보다 재밌었다.

책의 뒷부분에 실린 사진 또한 별책부록이 아닌, 특별 선물 같다.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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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ssbaum 2019-06-24 19:26   좋아요 1 | URL
양철님 오랜만입니다. 글은 늘 보고 있었지만, 이렇게 또 댓글을 달기 위해 글을 여럿 읽는 것도 참 오랜만이네요. ^^

양철나무꾼 2019-06-25 09:29   좋아요 1 | URL
안녕하세요, Nussbaum님.
정말 오래간만이네요~^^

제가 언제부턴가 생각이 너무 많고 복잡하여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글을 일관되게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그런 경향이 농후하였지만서도, ㅋ~.)
점점 더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기능보다,
생각을 정리하는 기록적인 면이 강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글을 여러 번 읽으셨다니 민망한 마음이 더 크네요.

늘 꿈을 갖고 꿈을 향하여 나아가시는 님 멋져보여요.
응원하겠습니다~!^^

순오기 2019-06-24 20:04   좋아요 1 | URL
부지런한 양철님, 벌써 읽고 리뷰까지 쓰셨네요. 부지런하셔라~ ^^
최현명 선생님은 또 답사를 가셨는지 오늘 몽골에 함께 있다고 지인이 사진을 보내왔던데요~^^

양철나무꾼 2019-06-25 09:33   좋아요 0 | URL
순오기 님이 쓰신 페이퍼는 벌써 봤었지요~^^
최현명 님도 이젠 나이가 좀 되실텐데,
꿈을 향하여 정진하는 모습도 아름답지만,
그래도 이젠 건강에 신경쓰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순오기 님도 이 더운 여름, 지치지말고 건강하시길~!^^

순오기 2019-06-26 01:13   좋아요 1 | URL
네~ 감사해요. 무슨 일을 하든 건강이 젤 중요하죠!
최현명샘은 아직 젊으신데요~^^

양철나무꾼 2019-06-26 08:19   좋아요 0 | URL
ㅎ,ㅎ...오해의 소지가 좀 있는 댓글이었네요.
책을 읽다보니 최현명 님이 머무르셨던 ‘네이멍구‘라는 곳이 완전 리얼 야생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이젠 그런 고생은 안 하셨으면 좋겠다는 의미였는데 말예요~^^

순오기 2019-06-27 23:43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님~ 오해 아니고, 최현명샘 63년생이니 젊다고 한 건 웃자고 한 말이어요. 하루에 10번은 웃어야 좋대요!♡^^

2019-06-28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1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1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7 1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8 0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8 16: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9-07-25 23:40   좋아요 1 | URL
최현명 선생님은 우리나라 포유류 연구자 중에 제일 유명하신 분이지요.
강의를 그림 그려가며 하시는데, 그게 그렇게 멋있다고 하더라구요.
아쉽게도 저는 아직 강의를 들을 기회가 없었네요.

이 책을 장바구니 담아놓고 아직 구매를 못 했네요.
저도 빨리 받아서 읽어야겠어요.

양철나무꾼 2019-07-30 16:18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는 최현명 님은 이 책으로 처음 만났고,
그전에 어떤 사전 지식은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엄청 좋았고...앞으로 그분의 책이 됐던. 강의가 됐던,
기회가 된다면 또 접해볼 의향이 있습니다~^^

그나저나 엄청 덥습니다.
더위에 지치지 않게 기운 내자구요~^^

2019-07-27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30 16: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30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