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김영민'은 사람들이 흔히'동무론'이라고 하는, '동무와 연인'이라는 책을 통하여  처음 만나게 되었었다.

그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한겨레21'에 연재되었던 것을 한권으로 묶어 책으로 낸 것이라는데,

철학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어렵지 않게 풀어내는 품과 '수식어'라 불리우는 형용사나 부사의 사용을 남발하지 않아서 글이 소박하면서도 투박하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들었었다.

 

 

 

 

 

 

 

 

 봄날은 간다
 김영민 지음 / 글항아리 /

 2012년 4월

 

 

요번에 책을 내셨다는 걸 좀 지나서 알게 되었고,

그랬던 터라 책의 내용까지 찬찬히 들여다볼 생각은 못하고 일단 책을 구하고 봤다,'봄날은 간다'

어째 제목부터가 그동안 접해왔던 철학서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딱딱한 것보단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게 낫지, 뭐~...

이런 말로 내 자신을 위로하기엔 제목부터가 너무 신변잡기적이었다.

앞의 몇 장을 들추다가 문체가 너무 낯설어, 내가 아는 그 '김영민'이 맞나 책 겉장 앞날개의 프로필을 한참 들여다 봤다.

철학자가 '봄날' 운운하며 날씨나 자연을 들먹이는 것부터가 생경하기만 했는데,

내용이 신변잡기 위주인 걸로도 부족해서 길이까지 짧은 것들이 많아...

그런 길이의 글로는 철학자 아니라, 철학자 할아버지라도 생각을 논리정연하고 체계적으로 펼쳐나가기 힘들것 같았다.

과연 글들이 날 것은 아닌지, 풋내가 나는건 아닌지, 뜸이나 들었는지, 상상력이 이리저리 널뛰기를 하는건 아닌지, 지나친 생략으로 심한 비약이 되어버린 건 아닌지, 익기를 놔두었다가 물러버린건 아닌지, 나의 걱정이 기우가 되길 바랄 뿐이었지만 솔직히 그마저도 종 잡을 수가 없었다.

 

처음엔 수필집을 읽는 기분이었다.

어느 부분까지 최대한 편안한 자세로 누워 설렁설렁 넘기다가 이내 자세를 고쳐 앉았고,

두번, 세번 거푸 읽고는 '서문'으로 되돌아가 다시 시작했다.

내 곁의, 치자꽃에 물드는 것은 운명이다. 그 운명을 값싼 낭만주의로 벗겨낼 수 있으리라고 믿는 것은 허영이다. 그러므로 내 물듦을 가장 낮게 예찬하는 것은 (R.지라르의 말이 아니라도) 겸허한 개종이다. 오직 그 개종에서야 치자꽃의 진정한 향기는 다시 피어오른다!

 

 

 

나는 너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말보다 빠르게 살아가고 있지 않다면 그 말은 다시 허영이다. 그래서 그렇게 살아갈 수 없음을, 오직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서 증명하는 것만이 유일한 개종이다.

 

내 선물은, 마치 내 편지처럼, 네게 너무 쉽게 전달되거나 영영 전달되지 않는다. 그 사이 선물은 온통 오해이거나 허영일 뿐이다. 그러나 내가 살아가는 방식 그 전체가 하나의 선물로서 (어느 순간, 휘영청!) 떠오를 때에만, 그 선물은 자신을 잊은 채 고스란히 네게 도착한다.                                                          ('치자꽃'  전문)

내가 두번, 세번 거푸 읽고 자세까지 고쳐 앉아 가며 다시 읽은 글은 '치자꽃'이다.

이 말은 곧 행동이나 실천이 동반되지 않은 말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고, 그걸 여기서 '허영'이라고 얘기한다.

 

나는 너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말보다 빠르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그럭저럭 너 없이 살아간다는 거다.

결국 빠다 발린 말(= 감언이설)이었고, 위 문단의 표현을 따르자면 '허영' 또는 '오해'이다.

행동이나 실천이 하나도 약속될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은 저렇게 위험한 일인데,

그래도 한번쯤 감언이설을 꿈꾸는 걸 보니, 내 운명은 치자꽃에 물드는 것이든지 값싼 낭만주의 쯤은 두눈 질끈 감고 극복해 낼 수 있다는 배포인가 보다~--;

 

3. 산책은 술보다는 차(茶)와 같아, 혼자 걷는 게 좋다. 물론 혼자 걸으면서 '생각'을 하라는 게 아니다. 혼자 하는 생각은 대개 비생산적일 뿐 아니라 종종 자익적(自溺的)이다. '공부'하지 않는 이들에게 오히려 '생각'이 많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산책의 요체는 오히려 생각과 의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라는 거울의 바깥으로 몸을 끄-을-며 외출한다.

동무들과 나누는 산책의 기쁨도 결코 적지 않다. 하늘과 나무와 바람에다가, 다정하고 서늘한 대화까지 섞인다면 인생의 천국을 따로 구할 노릇이 아니다. 하지만 역시 요체는 중용인데, 말이 걸음을 죽여도 곤란하고, 걸음이 말을 놓쳐도 안 된다. 다변(多辯)인 자는 말수를 줄여야 하고, 눌변인 자는 걸음에 의지해서 입을 벌릴 수 있다.

  

3-1. 그러면 동무가 아니라, 연인과 산책할 수 있는가? 내 답변은 '노'(努)! 즉 그저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 연인과 더불어 산책하기 어려운 것은, 우선 연정은 욕심이지만 산책은 의욕이기 때문이다. 양보, 눈치 보기, 그리고 들뜸은 모두 산책에는 치명적이고, 연정이란 무릇 의도의 옹두리에 얹혀 근근이 성립하는 것이니, 산책이라는 그 허소의 길과 어긋난다.                                     ('산책, 극히 실용적인 지침들' 중 부분)

그가 '봄날은 간다'며 우리에게 무덤덤하게 들려주고 있는 얘기는 언뜻 보기에는 붓 가는대로 쓰여진 신변잡기 위주의 글을 가장하고 있지만, 그런 글에서도 자연의 이치는 배어나오고 있다.

방심하고 잊고 있다가, 어느 순간 극도로 절제된 문장을 만나게 되고...

거기서 인생과 인간이라 불리우는 것들의 존재의 의의를, 다시말해 자연의 이치를, 소위 '철학'이라고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흔히 철학자들이라고 하면, 어려운 철학사상이나 철학이론 들로 중무장한 사람들을 얘기하는 줄 알았다.

세종대왕은 백성을 어여삐여겨서 쉬운 한글을 만들었다지만,

철학자는 어려운 철학사상이나 철학이론을 일부러 어려운 철학용어를 써서 구사하는 사람인줄 알았다.

원어로 된 철학 사상이나 사람이름을 따라읽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던 난,

철학용어를 쉬운 우리 말로 풀어쓰는 건 엄두 내기 힘들더라도,

예를 일상 생활에서 찾아보는 건 어떨까 싶었다.

 

적당한 쉬운 말이 없다면 자연에서 일례를 찾아 연관시켜서 생활에서 터득하게 하려 노력한다.

일상에서 깨닫게 되고, 깨달은 연후에야 비워내게 되는 그런 방법을 택하게 된다.

 

일상, 자연과 철학을 연결하는 그 비워냄의 매개가 그에게는 걷기로 대표되는 '소풍'또는 '산책'이다.

 

ㆍㆍㆍㆍㆍㆍ

인문은 한 치 타인을 포섭하지 못한 채 제 그림자 주위를 실없이 돈다. 볼테르의 생각과는 다르게, 지식은 심오한 방식으로 도덕을 불러오지 못하며, 선의와 계몽은 심오한 방식으로 동무를 불러오지 못한다.

 

'동무'는 무엇보다도 그 '폐허'를 피하는 길이었지만, 적조했던 동무 셋을 만나 맥주를 마시는 오늘, 다시 동무보다 빨리 달리는 폐허의 속도를 무력하게 바라볼 뿐.                  ('동무'보다 빨리 달리는 '폐허' 중 부분)

 

계속 신변잡기 위주의 일상, 또는 자연만을 얘기하나 보다 했는데...어느 순간에 홀연히 본심을 드러낸다.

아무래도 그는 '인문'이 타인을 포섭하고 설득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는 듯 하고,

스스로 눈높이를 낮추고 벽을 허물어 일상으로 대중 속으로 다가오려 한다.

그 일련의 노력 과정이 '산책'으로 나타난다고 보면 되겠다.

그러니, 눈높이를 낮추고 벽을 허무는 그 '비워냄'의 노력이 '산책'이 될 수 있는 연유이다.

 

그녀가 내 사랑을 증명하라고 하였다. 차가운 달을 보면서 먼 길을 홀로 걸었다. 길은 무서운 곳이다. 길 위에 놓인 몸이 먼저 알아채기 때문이다. 길의 기하학 위로 좌표 속의 사랑이 증명될수록 그녀는 점점 멀어진다. 식(蝕)이다! 증명하고 죽을 텐가? 아니면 길이 되시려는가?   ( '식(蝕), 혹은 사랑을 증명하지 않는 법(1)' 전문)

연정은 욕심이기 때문에, 연인과의 산책은 그저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는데...

노력은 시간이 개입된 일이고, 연정이 그렇듯이 사랑도 몸이 먼저 알아채는 것이 인지상정인것은 어쩔 수 없다.

사랑을 증명하라는 그녀 너머로 차가운 달이 보인다.

왠지 모르게 '달도 차면 기운다'는 말이 생각나고,

'시간이 좀 먹느냐?' 던 말도 생각난다.

시간을 좀 먹듯, 차고 이우는 달을 바라보며 사랑을 증명하지 않는 것이 사랑을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식(蝕), 혹은 사랑을 증명하지 않는 법(4)' 에서 시간의 벌레(蝕)와 함께 과거 속에 기억을 양도하거나, 부지런히 욕망하다가 벌레처럼 죽는 길...둘 중 하나라고 하였고 난 부지런히 욕망하는 '버러지(蝕) 과'인가 보다~--;

왜? 나의 사랑은 머리나 마음이 아닌 몸이 먼저 알아차리고 반응하는 걸 보면 말이다.

적어도 나의 사랑은 몸으로 하는 것인가 보다.

 

암튼 나는 이 책의 저자 '김영민'의 가는 봄날을 스토킹 하였나 보다.

그는 오전 11시쯤 일어나 저녁 해질 무렵에 산책을 나갔다가 하루 일식을 한다.

일식의 반려로 차를 한다.

독신이다.

(여기서 독신은 제도로서의 혼인 여부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일종의 장소이므로 장소를 대하는 방식에 의해 독신의 질이 결정된다고 한다.)

 

나는 나의 봄날이 가는 걸 아쉬워 하진 않는다.

다만 눈높이를 낮추고 벽을 허물고 비워내지 못한건,

그리하여 늘 욕심내고 더 많이 사랑하려 한건 후회하여야 한단다.

왜 증명하고 죽어야 하는가?

사랑하다가 죽는 방법도 있는데 말이다.

 

오랫만에 읽는동안 우아하게 말하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 책이고,

솔직히 말하면 변덕이 죽끓듯하며 읽었던 책이다.

 

 

언젠가 썼던 '동무와 연인'의 리뷰도 있어서 옮겨 본다.

 

 

 

 

 

 

 

 

 동무와 연인 
 김영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3월

 

류종열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세상을 새로운 모습으로 바꿀 수 있도록 그노력을 함께 하는 사람을 '동무'라고 생각했던 나는,

이 책의 제목 <동무와 연인>을 놓고 한참 생각을 했다.

 

'서문'의

'동무는 불가능한 것을 가리킨다.

가능하지만, 오히려 타락했으므로, 닿을 수 없으므로 가능해진 사연들을 일컬어 연인이라고 부른다.

가족을 버리지 않으면 스승을 따를 수 없었던 경험처럼, 스승 혹은 그 지평으로서의 도움의 가능성을 증명해주는 세속의 덕으로 우리 모두는 친구를 구하고 연인을 사귀며 가족을 얻어 다시 세속에 보은한다.'

를 보고,

저자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어버린 나는...

뭘 이렇게 길고 구구절절히 얘기해 놓았나 싶었으나,

<한겨레21>에 한동안 실렸던 글들이어서 이내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들을 요약해 보면,

  • 동지:이성적 일체감(말)
  • 친구:정서적 일체감(몸)
  • 동무:이성적 일체감 + 정서적일체감(말+몸)

동지나 친구라면 몰라도, 동무가 되기위해선 둘 중 어느 하나만을 갖곤 충족시킬 수가 없는데...

몸으로 맺어진다는 게, (어릴 적 부터 친구가 아니구선)...

동성 간이라면 좀 힘들다는 얘기다.

왜냐하면? 동성애자가 되니까.

→그래서 '동무는 불가능한 것을 가리킨다'라고 서문에서 얘기한다.

그리고, 이성의 경우는 연인이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는 데...

영원을 맹세하지만, 영원한 경우는 거의 없는고로...결혼 후에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면 '불륜'으로 불리운다.

→그래서 '가능하지만, 오직 타락했으므로, 닿을 수 없으므로 가능해지는 사연'이 되는 것 같다.

 

결국,저자는 문장화하지 못하지만,최선은 동무,차선은 연인이라는 얘기다.

 

이러면서 여러가지 관계설정이 나오는데...

일반적인 '이성관계'에서 여자들은 육체로만 승부하려 했기에 '연인'밖에 될 수 없었고,

<보부아르와 사르트르>의 경우

'보부아르가 두려워 한 여자는 육체로 승부하는 여자가 아니라,'지적반려의 자리'였다.'

에서 알 수 있듯이...

'몸으로 맺어진 관계'즉 성욕 이후를 슬기롭게 극복하여 '지적반려'에까지 이르렀으므로 동무라고 불러도 무방하겠다.

이책에서는,

<볼테르와 에밀리 샤틀레>의 경우도 동무의 범주에 집어넣었는데...그들의 말년을 제법 자세히 알고 있는 나로선 찬성하기 힘든 부분이다.

 

동성의 관계에서도,

<부처님과 가섭>의 염화시중의 미소나,

<유영모와 김흥호>의 관계처럼,

동성애가 아니고도 동무가 될 수 있었던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다.

 

이런 사제 관계에서,

육체적인 관계를 극복하고 상대를 인정하고 배려하기에,

'동무'에 다다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프로이트와 융>의 관계처럼 배신자가 될 수도 있다.

 

-무릇 아버지는 죽여야 하고,스승은 능가해야 제맛이다-

이걸 동무론 제1義라고 얘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이 책이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은, 동무와 연인의 구별과 나열에 끝나지 않고 이상향을 제시하기 때문인 것 같다.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타성에 젖어,

'연인의 살이 고기肉로 느껴질 때에도 그 고기를 다시 살로 되돌리는 법은 오직 말 밖에 없다.'

라고 얘기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말이 통하게 되기까지 기다리고, 기다려 주고 하는 배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그대를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기다려 달라고 목놓아 부르짓는 김광석을 한번 떠올리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책을 읽은 느낌은...이정도로 정리하여야 하겠다.

'동무'가 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그 불가능함을 뛰어넘어 '동무'가 된 경우엔 박수를 쳐주어야 하지만,

그외 경우에는 그냥 적당히 몸과 마음을 보대끼며 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타락자라는 지탄을 받을 것이다.

이 책에 롤랑 바르트의 <사랑의 단상>중 내가 좋아하는 바로 그 구절이 인용되고 있어 옮겨본다.

 

언어는 살갗이다.ㆍㆍㆍㆍㆍㆍ나는 그 사람(연인)을 이 말 속에 둘둘 말아, 어루만지며, 애무하며 이 만짐을 얘기하며, 우리 관계에 대한 논평을 지속하고자 온 힘을 소모한다.

 

 

 

 

 

 김광석 - 다시 부르기 1,2 [재발매] [2CD]
 김광석 노래 / 씨제이 이앤엠 (구 엠넷)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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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놀 2012-06-16 03:13   좋아요 0 | URL
사람 몸을 빌어 태어났을 때에는 즐겁게 살고,
몸이 기운을 다하고 흙으로 돌아가면 넋으로 예쁘게 사는 길도 있겠지요..

하늘바람 2012-06-17 10:49   좋아요 0 | URL
봄날은 간다 영화가 생각나네요.
그 영화 오래오래 기억에 남고 다시 봐도 마음에 여러가지가 남았는데
같은 제목으로 책이 나왔네요.
그러게요 이제 우리 봄은 아니죠
하지만 언제나 봄처럼 싱그럽게 살아요 님.

2012-06-20 23:46   좋아요 0 | URL
흠. 그러고보면 양철님은 어디서 이렇게 양질의 책들을 잘도 찾아내어 읽으시는지! 김영민님의 이 책, 예기치 않게 참 좋군요. 철학자의 수필인데, 여느 시보다 더 시예요.!
+ 이 페이퍼의 양철님 글도 좋아요. 기분이 상큼해졌습니다.
 

"왜 얼굴이 시든 꽃 같애?"

나를 향하여 그런 비유를 한 아주머니를 향해 한껏 눈을 흘겨 보았다.
"엄마는 비유를 해도 시든 꽃이 뭐야, 시든 꽃이...

 내가 활짝 피었던 꽃이라도 되어야 어제 내린 눈, 비에 시들어 열매 맺는다고 하지...

 요며칠 내 잠이 좀 부족하기로 시든 꽃이라니 너무 심한 거 아녜요?"

"무슨~?

 눈 내리고 바람 몹시 불어 잠 못자는 건 어제지...오늘은 날만 쾌청이구만, 젊은 처자가 왜 잠을 못 자?"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날이 너무 좋다.

어제는 4월에 눈이라니, 하늘에서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눈으로들 보고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면,

오늘은 하늘에서 벚꽃잎 정도라도 날려주었으면 그럴 듯하게 날씨가 좋다.

어젠, 참 이상하게...하늘에서 날리는게 눈인데도, 벚꽃이 흩날리며 시작하던 일본 영화 '4월이야기'가 생각났었는데,

오늘은, 참 이상하게...날이 너무 좋은데도, 박정현의 이 노래를 계속 흥얼거리게 되는지 모르겠다~ㅠ.ㅠ

 

 

바람에 지는 꽃


진홍의 꽃잎 바람에 지네
풀빛 마음 가는 시간에 지네
영원하단 약속들은 슬픔 속으로 지네
눈을 떠도 꿈을 꾸는 나
나의 눈가에 가득 젖어 드는 건
눈물처럼 미움처럼 돌아오지 않는 그


흘러 흘러가네 떠나가네
난 변해가요 원망마요
꽃잎처럼 지는 마음에 부는 바람
가네 난 떠나가요 미련없이
난 변해가요 미련없이
늦은 여름 저녁 바람은 가슴이 멍든 긴 한숨같아

눈 감아도 보이는 사람
그의 모습에 젖어드는 건
그리움에 더 이상은 기다리지 않을 나
흘러 흘러가네 떠나가네
난 변해가요 원망마요
꽃잎처럼 지는 마음에 부는 바람

가네 난 떠나가네 미련없이
날 놓아줘요 미련없이
이미 돌이킬 수 없어요
바람에 지는 꽃은
흘러 흘러가네 떠나가네
난 변해가요 원망마요
꽃잎처럼 지는 마음에 부는 바람

가네 난 떠나가네 미련없이
날 놓아줘요 미련없이
늦은 여름 저녁 바람은
가슴이 멍든 흘러 흘러가네 떠나가네
난 변해가요 원망마요
꽃잎처럼 지는 마음에 부는 바람
 

언젠가 읽었던 '권남희'님의 '번역에 살고 죽고'의 한 구절이 생각 났다.

일본어 번역가로 살고있는 권남희 님의 삶을 그녀 특유의 재치있고 경쾌한 문장들로 그려내고 있는데,

번역과 관련된 여느 얘기나 자료들보다는...이 구절, 그러니까 무라카미 류의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는지 아는가』를 번역한 후 썼다는 역자 후기가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번역에 살고 죽고
  권남희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4월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는지 아는가』를 번역하는 동안의 일이었다.

 한 여자아이가 사랑에 빠져 힘들어했다.

 언제 이 사랑의 끝이 올까 불안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 아이에게 막 번역한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는지 아는가』의 내용 일부를 들려주었다.

 "파일럿의 가장 큰 불안은 비행기가 추락하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다. 알코올을 많이 하는 사람의 가장 큰 불안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면 어떡하나 하는 것이다. 그러나 파일럿은 실제로 비행기를 추락시킴으로써, 알코올을 많이 하는 사람은 실제로 알코올 중독자가 됨으로써 그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

 번역이 끝날 즈음에 여자아이는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랑을 끝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탈고를 하는데 왠지 눈물이 났다. 그녀의 사랑이 슬펐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서 호랑이굴에 들어가는 것과 불안을 떨치기 위해 불안 속에 몸을 던지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고흐가 왜 귀를 잘랐는지 아는가』를 읽은 독자들이 후자의 어리석음을 범하는 불상사가 없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마 무라카미 류는 불상사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할 것이다.(195쪽/ 권남희, 번역에 살고 죽고)

왜 이렇게 눈물이 나고 슬픈건가 모르겠다.

 

나도 열매 맺을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기 위하여 시들어 봐야 하는 모험을 감수해야만 하는건 아닌가?

지금 안고 있는 불안을 통과하기 위해, 불안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지, 불안을 떨어내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닌가?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건 호랑이를 잡든지 호랑이에게 잡히든지 둘 중 하나이지, 애초에 호랑이 굴로부터 도망치는 건 고려대상이 아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건 지독한 편견이지 싶다.

지레 겁먹고 회피하려 하지 말고 일단 통과하고 보는거다.

 

이런 저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차에 접하게 된게 조선 시대 수필문학의 백미라고 일컬어진다는 '심노숭'의 '눈물이란 무엇인가' 란 글의 일부인데,  '이명옥'이 쓴 '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란 책에 나온다.

 

"눈물은 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마음(심장)에 있는 것인가? 눈에 있다고 하면 마치 물이 웅덩이에 고여 있는 듯한 것인가? 마음에 있다면 마치 피가 맥을 타고 다니는 것과 같은 것인가? 눈에 있지 않다면, 눈물이 나오는 것은 다른 신체 부위와는 무관하게 오직 눈만이 주관하니 눈에 있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마음에 있지 않다면, 마음이 움직임 없이 눈 그 자체로 눈물이 나오는 일은 없으니 마음에 있지 않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만약 마치 오줌이 방광으로부터 그곳으로 나오는 것처럼 눈물이 마음으로부터 눈으로 나온다면 저것은 다 같은 물의 유(類)로써 아래로 흐른다는 성질을 잃지 않고 있으되 왜 유독 눈물만은 그렇지 않은가? 마음은 아래에 있고 눈은 위에 있는데 어찌 물인데도 아래로부터 위로 가는 이치가 있단 말인가?" (김영진 옮김,《눈물이란 무엇인가》, 태학사)

 

 

 

 

 

 

 

 

 

 나는 오늘 고흐의 구두를 신는다
 이명옥 지음 / 21세기북스(북이십일) /

 2009년 7월

 

 

심노숭이야 조선시대 사람이라니까 낯설다고 치지만, 이명옥 님은 '그림 읽는 CEO'로 만난 적이 있는데도...

그때까진 글이 이렇게 착착 휘어감기는 줄 몰랐다.

어쩜 지금 내가 겪으면서 건너가고 있는 인생의 간난신고에 관한 그림과 글이라서 남다른지도 모르겠다.

완벽한 미녀는 허상이지만 그렇다고 지레 체념할 필요는 없다. 아름다운 여자가 되는 방법은 현실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니까. 미국의 국민소설로 사랑받는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첫 장을 펼치면 미인이 되는 비법이 적혀 있다.

스칼렛 오하라는 미인은 아니지만 그녀의 매력에 한번 사로잡히게 되면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라고 느껴진다.

그렇다. 평균치의 용모를 절세미녀로 성형하는 비법은 바로 매력이다.(157쪽)

 

예술은 삶과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삶과 함께 버무리고 녹여낼때 진정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닐까?

작가 이명옥님의 말에 동의하기 힘든 부분이 꼭 한 군데 있었다.

사랑도 공부가 필요하다 부분이었다.

여기서 공부가 노력과 비슷한 의미로 씌였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사랑을 한다는 건, 이미 눈멀고 귀먹었다는 얘기인지라...노력이나 공부 따위 개인의 의지가 개입될 여지가 없다는 얘기다.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것이라서, 아무런 대책이나 준비가 없는 어쩔 수 없고, 어쩌지 못하겠는것이 아닌가 말이다.

 

샤갈의 그림 '생일'을 예로 들어, 중력을 거부하는 유일한 방법은'사랑'이라고 얘기한다.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둘의 지금 기분이 날아오를 듯 하다는 걸 알겠지만...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내게도 어느새 그런 날아오를 듯한 황홀함이 전해져 오는 것 같지만...

그림 밖의 얘기를 전해듣고 약간 깨는 느낌이었다.

이 그림 속의 남자 화가 샤갈이 스물한 살 때, 이 그림 속의 아름다운 여자 벨라는 화가 샤갈보다 여덟 살 아래인 열세 살이었단다. 유대인 보석상의 딸이라는 신분 상의 차이는 차치해 두고서라도 말이다. 하지만 샤갈이 그때 남겼다는 일기를 보면, 나이나 신분 차이 따위로 그들을 갈라놓을 수 없는 무엇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벨라의 침묵도, 벨라의 눈도 모두 내 것이다. 그녀는 마치 나의 어린 시절과 현재, 미래까지 훤히 꿰뚫어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녀는 오랮전부터 나를 지켜보면서 내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생각들을 읽었던 것 같다. 나는 직감적으로 벨라가 내 아내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기에, 이일호의글과 그림 '화염경'을 빗대어서 '사랑을 공부해야 한다'는 의견에 살을 입히고 확장시키고 발전시켜 나간다.

 

형체가 없는 영혼은 늘 자신의 몸을 그리워한다. 제몸을 느끼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몸과 포개져야 한다. 사람은 영혼의 빈틈을 메우려는 몸부림이다. 영혼의 빈틈에는 죽음의 공포가 도사리고 있고, 살과 살 사이에서 두려움과 한희가 대립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살과 살 사이의 빈틈을 없애려고 맹렬하게 요동친다. 하늘에서 백만 송이, 천만 송이, 억만 송이의 장엄한 꽃비를 내리게 한다. 내 몸이 네 몸 속으로 들어갔는데도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내가 너인지 네가 나인지의 구별조차 할 수 없는, 남녀간의 사랑은 영겁회귀를 노래하는 화엄세계의 춤인 것이다.(이일호의 '화염경' 부분, 183~4쪽)

 

사랑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뜬금없이 웬 공부?'하면서 손사래부터 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공부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왜? 인격을 완성하고, 삶의 지혜를 터득하고, 살아 있는 매 순간이 기적이며 축복임을 절감하는데 사랑 만한 스승은 없을 테니까.(185쪽)

 

오히려 내가 묘한 감동을 받았던 것은,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달을 응시하는 두 남녀>란 그림이었다.

 

 

살아가면서 때론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어떤 말로도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고, 때론 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입다물어야 하는 말들도 있게 마련이다.

저 그림을 보면서, 말 안하고도 소통할 수 있는 또 다르 방법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는데,

그건 뭐랄까...감동을 일부러 전하고 공감을 억지로 도모하려는 것이 아니라,

같이 한방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번지고 스며 물들어 향기나 냄새 따위가 충분히 배어나는 느낌이었다.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충만한 느낌.

참고로 그림 속의 그들은 화가 부부란다.

 

저런 그림을 볼때마다...그런 생각으로 멈칫한다.

상대와 진심으로 소통하고 싶다고 간절하고 절절하다가도,

어느 만큼, 얼마만큼 활짝 열어젖히고 내어보이는 것이 진정한 소통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 것이다.

저렇게 말 안하고, 말 줄임표 속에, 침묵 속에 많은 것들을 내포하고 있는 저런 경우라면...

난 상대의 말줄임표의 이면을 기꺼히 그리고, 충분히 존중해 줄 수 있겠다.

말줄임표와 더불어 내가 요즘 예뻐하는 문장 부호는 쉼표의 하나인 '반점(  , )' 이다.

누군가는 저걸 매력적인 콤마라고 표현하기도 하더구만.

 

올챙이처럼 날씬한 꼬리가 달렸는데,

그 꼬리가 한쪽으로 살짝 쏠렸구.

머리통은 통통한게 동글동글하고 이쁘구.

쌔까만 머리통과 몸통이... 환장하게 이쁘구.

 

그 콤마 하나가 꼭 앞뒤 단어들 사이의 긴장감을 살짝 풀어 주는 느낌이 든다.

한참은 아니어도,

온전히는 아니어도,

살짝 쉬었다가 갈 수 있는 여유...

 

그리고 이런 제목의 책을 발견해서 구입했다.

 

 

 

 

 

 

 

 

 콤마, 씨
 강정 지음, 허남준 사진 / 문학동네 /

 2012년 2월

 

 절대로 <보태는 말>을 '신형철'이 써서라고는 할 수 없다, ㅋ~.

 

"시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몸에서 그 사람과 함께 다시 태어난다." 강정은 이 책의 첫 글에 이렇게 적어두었다. 이 책을 설명하는 문장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지만 조금 덧붙여 볼까. 한 편의 시가 강정이라는 몸을 통과해 한 편의 산문이 되고 있는 작은 신비 앞에서 나는, 이를테면,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식이 그 어머니의 전생을 얘기해주는 상황의 이상한 시간 구조 같은 것, 혹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서는 자신에게 있다고 믿어 본 적도 없는 욕망을 상대방을 통해 문득 실현하는 순간 같은 것을 생각했다. 강정과 시인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프랑스의 비평가 장 벨맹 노엘의 표현을 사용하자면, "서로 상대방의 욕망을 빌리는" 일 같다. 비슷한 일이 이제 이 책의 저자와 독자 사이에서도 벌어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책을, 사랑을 나눌 때의 속도로, 천천히 읽어야 한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나랑 닮은 사람을 거울 삼아, 내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다는 것은...

좀 힘들고 아프지만,어떤 의미로든 의미있는 일이다.

그리고 잘 통과하였을때, 어떤 의미로든 성장하고 성숙할 수 있을 것이다.

거울에 비추어, 내가 No라는 대답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떤 물음에 대한 대답이...때론 Yes가 될 수도 있고, 또 No가 될 수도 있다.

그게 거절이나 거부는 아닌데...꼭 refuse랑 연관시키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제 머리로는 알아먹었으니, 체화하여 받아들이기만 하면 될터인데...

머리로는 받아들일 수 있는데, 생경하여 낯설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암튼, 나의 거울 노릇을 한 이에게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매번 창피하고 미안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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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mssim 2012-04-04 21:46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
마음이 아픈 것도 즐기시라고 하면 ...너무 무리한 애기가 되는 건가요?
오래 가지만 않는다면 슬픔도 때로 힘이 될 때가 있더라구요.
좀 더 명징하게 허리를 세울 수 있는...
정성드린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cyrus 2012-04-04 23:29   좋아요 0 | URL
제가 좋아하는 샤갈이랑 프리드리히 그림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여기 대구도 여전히 싸늘한 바람이 불기는 하지만 꽃이 활짝 피고 있는 중이랍니다.
하지만 어제 강풍이랑 비가 오고나니 이제 막 피었던 꽃잎들이 금방 땅으로 떨어져있더라고요.
마침 페이퍼에 올리신 박정현의 노래가사처럼요.

파란놀 2012-04-05 03:14   좋아요 0 | URL
삶이 얼마나 넓고 깊은가를 '배우라'는 뜻이겠지요.
이렇게 '배우'다 보면, 시나브로 사랑이든 무어든 스스로 깨우치겠지요..

차트랑 2012-04-09 10:44   좋아요 0 | URL
사람들로하여금 쌈박질을 하게하는 고흐의 그 구두로군요..
거의 너덜거리는 수준의 저 구두 한켤레를 두고
쌈박질이라니...예술의 세계는 매트릭스입니다ㅠ.ㅠ


차트랑 2012-04-09 10:46   좋아요 0 | URL
저의 서재를 다시 방문하시는 불편을 덜어드리고자
이쪽에 댓글의 댓글을 드립니다 양철나무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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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철학의 탈주를 우선 읽어보아야 할 듯 합니다 ㅠ.ㅠ
푸코, 들뢰즈, 라캉, 데리다 그리고 알튀세르...
이런~ ㅠ.ㅠ
특히, 비철학적 철학을 요주의해야 할 것 만 같다는...
정말 마음에 안드는 프로이트와
마음에 쏙~드는 맑스를 통과하는 골치아픈 동굴탐험^^도 병행.
역시 마음에 안드는 헤겔선수도 끼워드려야...
스노볼이 따로 없군요 ㅠ.ㅠ

서양철학은 정말 머리를 지근거리게 한단 말씀이에요ㅋ
그러나 흥미를 결코 잃지않게 한다는 강점도 있습죠 ㅠ.ㅠ

그나저나 투사능력이 탁월한 강신주님~^^
이분 역시 요주의 인물이시라는...

양철나무꾼님께서 방문해주신 결과 이거 이거...
읽을거리 엄청 던져주시는걸요^^
고미숙선수가 들뢰즈를 언급할때면
멀쩡하던 머리가 갑자기 빙빙@@~

한동안 아짤아찔한 현기증을 경험하게 되나봅니다..
이런걸 두고 베리굿~ 현상이라고요^^
고맙습니다 양철나무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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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고마운 마음을 전해드립니다 양철나무꾼님~

차트랑 2012-04-09 11:04   좋아요 0 | URL
한 말씀만 더...
(이거 굴비는 엮어대는 군요...바람직하지 앓은 거라던데...ㅠ.ㅠ)

'사랑도 공부하 필요하다' 저는 이 말씀에 공감~^^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것이라 대칙이나 준비 같은거 이딴거 할 수 없다는 말에 동감^^

문제는 교통사고가 난 이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고처리를 어떻게 하느냐...이거거든요.
이때부터 진짜 공부가 필요한 것이라고 저는 이해하고 싶습니다.
그 사랑을 놓칠 것인가...지켜갈 것인가...

첫사랑에 흔히들 실패하는 이유는
(물론 성공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경험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경험이 없으니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위해
공부하는 것 처럼, 공부를 하시라는...뭐 그런 뜻 아닐까요?? ㅠ.ㅠ

죄송합니다 ㅠ.ㅠ
그리고 박정현의 노래 잘 들었습니다
좋아요 이노래...

마녀고양이 2012-04-10 11:55   좋아요 0 | URL
사랑도 공부해야 한다는 말에, 나는 절대 공감과 동감.
 

한때 몰려오는 잠을 쫓기위해 커피를 들이붓고 살았었다.

커피를 하도 마셔대서 내 몸이 피가 아니라, 커피로 이루어진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커피 덕분에 몰려오는 잠은 피할 수 있었지만, 항상 쓰린 속 때문에 얼굴을 찡그려야 했다.

내가 중국의 미인 '서시'정도의 용모라면 찡그린 얼굴을 트레이드 마크인양 내세운다지만 그도 아니고...

손발은 거무죽죽 식은땀이 나고 심지어 수전증 환자처럼 달달 떨어댔다.

이제 세월이 흘러 커피로 잠을 쫓지 않아도 되는데, 여전히 커피가 들어가면 말똥말똥이다.

될 수 있으면 커피, 코코아, 초콜릿 등을 멀리 하려고 하는데...

어느새 중독인지, 있으면 안 먹고도 잘 지나갈 수 있는데, 없으면 불안한 것이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그런가 내게 커피 선물은 끊이질 않는데,

작년에는 그 진한 유럽 커피를 두 블럭이나 보내주신 분이 계셨었고,

철철이 녹차를 가져다주시는 분이 계시고,

누군가 커피 취향이 똑같다고 기분 좋아하자 엊그젠 족히 1년은 먹고 죽어도 좋을 만큼의 커피를 보내주셨다.

 

 

 

 

 

 

 

 

 

 외로워서 완벽한.
 장윤현 지음 / 쌤앤파커스 /

 2012년 3월

 

이 책은 제목이 예뻐 아무 생각없이 집어들었다.

때문에 내용이나 문장이 이토록 내 마음에 들지는 미처 몰랐다.

저자 '장윤현'이 누구인지 몰랐고, 제목 '외로워서 완벽한'을 좀 촌스러워서 예쁘다고 생각했었다.

책을 펼치고, 책날개 안쪽에서 이 책의 저자 '장윤현'이 장윤현 감독이라는 걸 알았다.

난 '접속'을 시작으로 '텔 미 썸띵' '황진이''가비'까지는 봤고, '썸'은 못봤다.

다작을 내는 감독은 아니지만, 자기 색깔을 가지고 있는 호감가는 감독이었다.

하지만, 영화가 좋았다고 영화대본을 직접 쓴 사람이 아닐 수도 있는데,

글까지 좋아야 한다는 법은 없는데...글도 영화만큼이나, 아니 영화보다 훨씬 좋았다.

 

그걸 두고 장윤현은 <프롤로그>를 빌어 이렇게 겸손하게 얘기한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때는 느낄 수 없던 자유도 있었다. 영화는 절대 자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ㆍㆍㆍㆍㆍㆍ그런데 문자는 달랐다. 원래 계획보다 더 길어진 문장, 더 디테일한 설명, 더 근사해 보일 법한 문구 등을 맘껏 써도 예산 초과라 비난하는 이가 없었다. 멋졌다. 영화를 만들 땐 느끼지 못한 자유를 아마 나는 과하게 누렸던 것 같다. 문장을 다지고 깎아나가는 과정보다는, 속에 있는 말을 맘껏 외치는 자유만 취한 듯도 싶다. 송구할 따름이다.(12쪽)

 

그건 커피였다. 그동안 내가 마셔왔던 커피와는 달랐지만 분명히 커피였다. 쓴맛과 달콤한, 전혀 다른 두 맛이 과하게 섞여 있었지만 맛있었다. 나의 첫번째 부다페스트 커피였다. 문득 볼에 닿는 햇볕의 따스함이 느껴져 카페 창밖을 내다봤다. 맑은 하늘이 보였다. 그제야 내가 처음으로 부다페스트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새, 봄이었다. 아직 쌀쌀했지만 햇살 속에서 따뜻한 부다페스트의 봄이 느껴졌다.(25쪽)

 

 쓴맛을 왈칵, 듬뿍 안겨준 뒤에 아주 인색하게, 아주 잠깐 달콤한 맛으로 윌해주는 에스프레소는 인생을 참 많이 닮았다.(34쪽)

 

이쯤만으로도 책 제목인 '외로워서 완벽한'은 커피를 마시기에 필요충분 조건이라는 걸 알겠다.

평범한 커피조차 그렇게 집중해서 마시니 참 맛있었다.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게 만약 커피가 아니라 술이었다면 <가비>라는 영화가 과연 존재했을지 모르겠다.ㆍㆍㆍㆍㆍㆍ하지만 그날 A씨 앞에서 마셨던 게 술 대신 커피여서 나는 앞에 놓인 음료를 한 모금 한 모금 공들여 음미할 수 있었고, 같은 수준의 교묘하고 욕심에 찬 말을 내뱉지 않고 꿀꺽꿀꺽 함께 삼킬 수 있었다. 그날 꿀꺽 삼킨 말, 커피 잔에 슬며시 버리고 녹여서 함께 마신 내 말이 <가비>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된 것이다.(50쪽)

그렇다.

술이라면 대담하고 용감무쌍해질수는 있겠지만, 욕심에 찬 말을 내뱉지 않고 끌꺽꿀꺽 함께 삼킬 수는 없었을 게다.

그러니 나도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선, 술이 아니라 커피를 마셔야 하리라.

 

지치고 힘든 일이 넘쳐날 때, 사람에게 상처를 받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 웅크려 숨고 싶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거울을 향해 웃는 것이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완벽히 즐거워 보이면 나는 안심한다. 내 스트레스와 상처가 다른 이에게 전염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아무에게도 내 슬픔을 떠넘기는 일은 없을 테니까.(53쪽)

이 사람, 참 나랑 닮았다.

나도 지치고 힘들고 또는 사람에게 상처 받아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 웅크려 숨고  싶으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자거나,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한 후 거울을 향해 웃어본다.

완벽할 순 없겠지만, 웃어보일 수 있으면 적어도 안심을 한다.

내 슬픔을 누군가에게 전가하는 일 따윈 없다는 거니까.

누군가는 보이지도 않는 글에서도 감정을 읽어내던데,

얼굴 표정을 보고 감정을 읽어내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위 글의 역의 논리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거울을 향하여 웃어보일 수 있다는 건 내 감정을 조절하여 상대방을 대할 수 있다는 거다.

적어도 내 감정이 상대방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거다.

내가 속으로 스트레스와 상처로 몸부림치더라도 다른 이와 글에까지 전염시키지 않고...겉으론 웃으며 사람을 대하고 글을 쓸 수는 있다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커피를 즐기는 이에게 반가움을 느끼는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잠시나마 내게 기대어 쉴 공간을 만들어주는, 자투리 여유를 제공하는 커피 한 잔. 그 작은 만족감에 기대는 이가 비단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발견하면 즐겁지 않겠는가. 나는 오늘도 커피에 살짝 기대어본다. 설탕을 타지 않는 에스프레소의 쓴맛을 즐기는 사람들과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길 꿈꾸며ㆍㆍㆍㆍㆍㆍ.(67쪽)

 

그래서 수많은 종류의 커피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커피를 이미 즐기고 있었다는 이가, 그리고 그 사실이 그리도 반가웠나 보다.

당근, 진한 유럽 커피는 아니다.

에스프레소는 접수 불가다.

에스프레소라면 물을 듬뿍 부어 아메리카노를 만들어야 하겠다.

 

그래도 취향은 독특한지라,

로스팅은 아니어도 홀빈을 갈아서 블랜딩, 드립 정도는 내가 직접하고 싶은데,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포터블로 가지고 다니는 커피 중에서 내게 '가장'이라고 생각하던 것이었다.

물론 그이가 물을 한강수로 부어 먹는지, 설탕과 프림으로 죽을 만들어 먹는지 까지는 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나 암울한 시대든, 행복한 시대든 사랑은 매한가지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사랑은 서로 몸의 온기를 나누고, 마음의 창고를 열어 마음을 부비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이다. 사랑은 결국 영과 육의 허기를 채우는 것인 셈이다.(139쪽)

 

사랑은 영과 육의 허기를 채우는 거란다.

난 둘 중 하나에 구태어 비중을 둔다면 육이 아니라, 영이지 싶다.

전에도 지나가며 얘기했었지만, 개인적으로 영혼의 허기를 채워주는 이른바 소울 푸드(soul food)라고 생각하는 음식은 차(tea)이다.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차나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반가움을 느끼게도 되고,

내가 좋아하는 차나 커피를 선물하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하기도 한다.

 

차와 커피가 마음을 표현한다는 걸 나는 몸소 느꼈었지만,

그래서 내겐 무엇보다 따뜻하고 큰 위로가 되기도 했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위로제 역할을 하는지 어떤지의 예를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조지오웰의 <위건부두 가는길>과 영화 <블루>가 그 중 하나이다.

조지오웰은 그들이 좀 더 싸고 건강에 좋은 채소나 과일, 오렌지 주스 대신에 차와 설탕에 많은 지출을 하는 것에 크게 놀란다. 하지만 그는 곧 사람의 마음이 작용하는 방식에 주목한다. 공산 노동자, 게다가 일감이 줄어 실업자가 된 사람에게 건강한 식생활이란 별 의미가 없다. 그들은 건강하게 더 오래 살고픈 마음조차 상실한 상태다.ㆍㆍㆍㆍㆍㆍ그 옛날, 커피와 차는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에게 위로제였다.(143쪽)

<1984>에서도 했었던 커피에 대한 언급을 <위건부두 가는 길>에선 위와 같이 하고 있다.

저 표현이 1984에서처럼 real일지 몰라도 씁쓸한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삶도 커피도 real이려면 다 씁쓸해야 한다는 말이 되려나? 끙~--;

 

영화 <블루>의 주인공 줄리도 마찬가지이다.

이 화상 치료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마음의 고통에 대한 은유 같다. 너덜거리는 화상 상처에서 새 살이 돋아나려면 먼저 그 환부를 긁어내는 아픔을 정신으로 견뎌내야 한다. 마음의 고통도 마찬가지다. 치유를 위해서는 자신의 깊은 상처를 바로 보고 그 부위를 정확히 가늠해내야 한다. 그 과정은 매우 아프고 힘들다. 그러나 그 과정을 묵묵히 견뎌내야 우리는 비로소 어른이 된다.(146~7쪽)

줄리는 타인의 온기를 빌려 상처가 치유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한 남자 곁을 떠난다. 하지만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은 아프고 견디기 힘들다. 무정한 이별 커피까지 남긴 뒤 그곳을 벗어난 줄리의 그 다음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녀는 급하게 걸어 나가던 중, 갑자기 돌담에 손등을 들이대 긁어나간다. 손등과 손가락 마디가 드르륵, 피나게 돌담에 긁힌다.

 줄리가 고통을 이겨내기 힘들 때 택한 두 가지 방식은 어른으로서 할 수 있는 몇 가지 안 되는 방법 중 고른 것이다. 어떤 모습의 자신이라도 사랑해줄 것이라 믿는 사람의 온기에 기대보는 것, 또 스스로를 상처내서 그 생생한 아픔으로 먹먹한 가슴의 통증을 잠시나마 잊는것. 어른이 고통을 다루는 방법은 그 두 가지 정도뿐이다. 타인에게 고통 전가하기, 떼쓰기는 통하지 않는다.ㆍㆍㆍㆍㆍㆍ엄살을 피우지 않고 똑바로 자기 상처를 들여다보는 것이 어른스럽고 나은 치유 방법인 건 확실하다. 하지만 여기에도 부작용은 따른다. 상처에 매달려 진을 빼고 난 뒤엔 감정마저 푸석하고 거칠어지기 십상이니까. 상처를 긁어내는 과정에서 유연한 마음까지 뭉텅 떨어져나가 버린 듯, 약간은 괴팍하고 무뚝뚝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150~151쪽)

오래전 봤던 영화가 잊혀지지 않는 것은 급하게 걸어나간 줄리가 돌담에 손등을 들이대 긁어나가는 저 장면 때문이었다.

손등에 상처를 내서 그 통증으로라도 가슴 먹먹함을 이겨내 보려는 노력으로도 읽혔고,

보이지 않는 가슴의 통증을 손등의 상처로 형상화시켜 보려는 마음으로도 읽혔다.

우리는 상처를 눈으로 보아야만 아픈 줄 아는 경향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가슴이 아프고 쓰린 것으로 상처를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가슴에 상처 입은 사람의 상처를 긁어내는 과정에서 유연한 마음까지 뭉텅 떨어져 나갔다고 한것으로 말이다.

암튼, 상처 입고 아프다는 것은 살아 있음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커피랑 관련되어 떠오르는 영화나 음악, 장소가 좀 더 있다.

짐자무쉬 감독의 '커피와 담배'라는 영화도 그 중 하나인데 이 책에서도 살짝 언급되고 있다.

기억나는 걸 얘기해 보자면, 이기팝과 톰 웨이츠가 이런 대화를 나누는 흑백 필름이다.

"금연해서 좋은 점이 뭔지 알아?"

"한 대쯤은 괜찮다는 거지."

 

또 하나, 바흐의 커피 칸타타.

 

Aria, 'Ei, wie schmeckt'
(아, 커피가 얼마나 달콤한지)

 

Ei! wie schmeckt der Coffee süße,
아, 커피맛은 정말 기가 막히지. 
Lieblicher als tausend Küsse,
수천 번의 키스보다도 더 달콤하고,

Milder als Muskatenwein.
맛좋은 포도주보다도 더 부드럽지.

Coffee, Coffee muss ich haben,
커피, 난 커피를 마셔야 해.
Und wenn jemand mich will laben,
누가 나에게 한 턱 내려거든, 

Ach, so schenkt mir Coffee ein!
아, 내 커피잔만 가득 채워주면 그만이예요.

그리고 워낙 유명한 곡, Bob Dylan의  'one more cup of coffee'

 

옛날에 대학로에 커피 칸타타라는 커피전문점도 생각난다.

난 이 무렵부터 원두커피를 마시기 시작했었는데, 깡통에 든 folgers 커피를 내려마셨었는데...

이 곳의 헤이즐넛 향에 넘어가 한때 커피를 향으로 마시던 때가 있었다.

 

커피잔이 똑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제각각이었는데, 커피잔만으로도 인테리어가 되는 것이 독특하고 참 예쁜 가게였다.

그런 의미에서 전에 이 책은 본전 생각나는 것이 좀 그랬다.

잔을 사진으로 찍어 올린 것도 아니고 저 표지처럼 잔잔한 일러스트의 향연이었다.

 

하지만, 장윤현의 <가비>가 나오기전까지...

뭐니뭐니해도 커피하면 빼놓을 수 없는 건...바로 이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게 이 영화를 두 번째 본 후로부터 문득문득 건조한 황사가 불어올때쯤이면 이 영화가 생각났고, 다시 꺼내 볼 때마다 사막의 모래 바람이 마음을 휩쓸었다. 사람이 그리워졌고, 누군가와 대화하고 싶어졌다. 그때마다 나는 건조해진 혀를 묽은 아메리카노로, 뜨거운 에스프레소로 적셔야 했다.(72쪽)

 

내게도 바그다드 카페 같은, 야스민의 커피포트 같은 마음이 있다면 좋겠다. 상대 마음의 농도를 헤아리고 내 마음을 진하게 내리거나 혹은 연하게 물을 타 표현하고 싶다. 내가 만든 영화에도 그런 마음을 담을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삭막하고 건조하기만 한 삶에서 당신 마음에 꼭 드는 커피 한 잔 같은 영화를, 때로는 따뜻하고 연하게 마음을 감싸고 때로는 독하고 진하게 머리를 깨우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리하여 관객과 소통할 수 있다면, 내마음 당신 마음에 맞추어 살아갈 수 있다면 더 바랄게 없을 것이다. (75쪽)

 

 영화가 자유로운 상상과 개성 있는 해석을 만들어내는 것은 어쩌면, 그것을 바라보는 동안 우리의 무의식이 감독의 무의식에 반응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타인의 고통을 헤아리고 위로하는 능력 역시 내 무의식 저편에 감취진 상처가 자극받는 데서 출발한다. 상처 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는 말은, 그래서 옳다.ㆍㆍㆍㆍㆍㆍ그리고 끝내는 내가 과연 다른 사람을 치유할 만큼의 상처를 받은 행운을 누린 적이 있기나 한지를 고민하게 만들어버린다. 차마 그 고민에 선뜻 대답할 수 없을 때, 나는 영화 속 바그다드 카페의 사람들이 부럽다.(82~83쪽)

 

O.S.T.'calling you'로 유명한 '영화 <바그다드 카페>

이 영화를 장윤현 감독은 상찬하고 있고, 자신의 영화 <가비>도 그럴 수 있기를 저와 같을 수 있기를 바란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와 영화 <가비> 그리고 영화 <가비>의 원작이 된 책<노서아 가비>까지를 두루두루 본 나로서 한마디 하자면, 책 '노서아가비'와는 또다른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  two thumb up해줄 수 있겠다.

 

예전에는 공감이나 소통은,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나 간접 경험만으로도 가능하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젠 이해하려는 노력이나 독서 따위의 간접 경험으로 안되는게 있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

사람의 삶이나 사랑 따위 본인이 고스란히 겪고, 통과하고, 경험해 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고

때문에 공감하거나 소통할 수 없는 어떤 것들이 있다는 걸,

때문에 위로나 치유 따위는 더 더욱 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는 걸 알겠다.

 

나는 도락의 절정이 그런 모습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탐닉에 빠져 허우적대기보다는 아예 끝까지 가버리지 않는 것, 아슬아슬한 경계선 안쪽에 멈춰 서서 그 끝을 아련히 그리는 경지가 더 윗길이라 여긴다. 무리하면 닿을 수 없는 것은 아니나, 손을 거두어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 바로 즐김의 최고 경지가 아닐까.(204쪽)

 

토메크가 그러했던 것처럼 사랑은 가만히 지켜봄으로써 생겨나는 것, 때때로 질투심에 사로잡히기도 하는 것, 그러다 어느 날엔가는 슬퍼하는 그녀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문득 고백할 결심을 하게 되는 것일지 모른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다. 사랑은 명사지만 누군가에게 고백하거나 전달할 때는 '사랑하다'라는 동사로 쓰인다. "사랑해." 그래서 그건 단단히 고정되어 있던 내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뜻, 당신에게로 움직여 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ㆍㆍㆍㆍㆍㆍ

그렇다면 커피 한잔 나누고 싶은 마음, 왜 사랑이 아니겠나. 어여쁜 당신을 위해 원두를 곱게 갈아 뜨거운 물로 커피 한잔 내려주고 싶은 그 마음 말이다. 그렇게 향긋한 커피로 당신의 지친 몸을 녹이고 위로하고 싶을 때, 그리하여 당신에게로 움직이는 내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역시 사랑에 빠진 순간일 것이다. (238~239쪽)

 

내가 그를 영화감독 장윤현 말고도, 작가 장윤현으로 인정하게 된 건 바로 이 구절 때문이다.

이 사람, 참 세세한 것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키는 묘한 재주가 있다.

그들은 커피의 이름이며 특징을 떠나 네가 가장 맛있는 방식으로 마시라고 말하곤 했다. 내 입맛대로 남의 취향을 조절하지 않고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 바로 사람을 대하는 기본자세임을,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남과 다른 내 취향을 인정해주는 것을 넘어, 그것을 세세히 기억해주기까지 할 때 우리는 감동하게 된다.(272쪽)

 

끝으로, 장윤현 감독의 <가비>의 모티브가 된 김탁환의 <노서아 가비>를 빼놓을 수 없다.

개인적인 생각이겠지만, 김탁환의 다른 작품만큼 완성도가 높은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심심풀이 땅콩이나 킬링타임용으로 한번 쯤 읽을만 하겠다.

 

'하여, 당신에게 커피는 무엇인지요?'

하고 누가 내게 묻는다면 난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책과 더불어, 수선 내지 않는 친구쯤이라고 대답할 수 있겠다.

여기서 친구라고 딱 못 박을 수 있는 그것이 아니라,

너무 거창하게 이름 붙이거나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좋은...그런 소박한 어떤 것이지만,

내게 있어서,

나에게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그토록 의미가 남다른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김탁환의 글답게 수려한 문장들이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바로 전에 읽은 장윤현의 감동에 비하면, 울림은 약하다.

사랑하는 사이에 왜 그런 거리를 두느냐고 묻는 이도 있겠다. 그러나 사랑은 사랑, 습성은 습성이다.

 

이 검은 액체가 전하의 혀끝에 닿는 순간을 상상하며 내 모든 감각을 깨우고 또 깨웠다. 사랑보다도 더 짙은…… 어떤 '지극함'을 배우고 익히는 나날이었다. (131쪽)

 

누군가 홀로 외로워하는 것을 보면 그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남을 웃게 만들 작은 재주가 있다면 그 재주를 몰래 쓰고 시치미를 떼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146쪽)

 

내가 전하를 떠나기로 마음을 굳힌 것은 이반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이유는 간단한데, 그건 내가 사기꾼이기 때문이다. 사기꾼은 진실해선 아니 되고 정직해선 아니 되고 일이 끝난 후 같은 곳에 머물러서도 아니 된다. 삶의 원칙을 바꾸면 큰 낭패를 보는 법이다. (192쪽)


따냐에게 뭔가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삶을, 사랑을...너무 일찍 알아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가열차게 살다보면 삶의 원칙 따위는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며,

때문에 삶의 원칙을 바꾸었기로 큰 낭패를 보는 법 따위는 없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난 책 속의 그녈 보며,

아직은 삶이나 사랑을 몰라도 되겠지...
그렇게 젊고 아름답고 건강할 때는그딴 걸 몰라도 되겠지...
그딴 건, 좀 더 자기 자신에게 구질구질하고 구차해질 때에나 필요한 거겠지...
지독히 외로워서 꺼이꺼이 허리를 접고 울어버릴 수밖에 없을 때에나 필요한 거겠지...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을 비틀면 이 모두가 다 부질없는 일이지 싶기도 하다.
내가 그대가 아니고,그대가 내가 아닌데...누가 누굴 이해할 수 있겠으며,

내가 그대가 아니고,그대가 내가 아닌데...상황의 펼쳐짐이 그림처럼 선명하더라도, 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닐진데, 보는 것만으로 다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봄이고, 좀 꾸물거리는 저녁이다.

이런 날 따뜻한 커피 한잔이 오히려 산뜻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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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30 18: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03-30 19:06   좋아요 0 | URL
이렇게 길게 쓰시다니...
추천값은 긴 글을 읽은 제가 받고 싶어지지만...
그래도 읽는 이보다 글쓴 이가 더 힘어들었겠으니 추천 눌러야 하겠죠? - 당근...

"거울을 향하여 웃어보일 수 있다는 건 내 감정을 조절하여 상대방을 대할 수 있다는 거다.
적어도 내 감정이 상대방에게 전염되지 않도록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거다."

좋은 글 보고 갑니다.

프레이야 2012-03-30 21:13   좋아요 0 | URL
님, 오늘 이곳에 하루종일 봄비가 내렸어요. 목련화가 만개해 비에 흠뻑 젖었어요.
창 밖으로 그걸 바라보며 블루베리 머핀과 함께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었어요.
이런 날은 정말 커피 한 잔이 술 한 잔보다 낫지요.
짐 자무시의 '커피와 담배', 바그다드 카페, 저도 무척 좋아하는 영화에요.
노서아 가비,에서 김탁환이 커피를 정의한 문장들이 새삼 떠오르네요.
커피는 아내같은 애인이다, 이런 게 있었죠. 무슨 말일까 알쏭..
근데 한의사가 제겐 커피가 맞지 않다고 딱 끊으라고 했는데 못 끊는다지요.^^

blanca 2012-03-30 21:26   좋아요 0 | URL
저도 너무 힘들때는 커피를 더 많이 마셔요. 속이 너무 쓰려서 끊어보다가 또 마시고 그렇게 참다 마신 커피는 더 소중해요. 제가 예전에 커피를 끊으려 하니 어떤 분이 " 이 좋은 걸 왜 끊어?"라고 반문했던 게 생각나요.

cyrus 2012-03-31 00:09   좋아요 0 | URL
저도 커피를 좋아해요. 요즘에는 공부할 때 단맛이 강한 카라멜 마끼야또를 많이 마시게되요,
커피도 너무 자주 마시면 위장에도 좋지 않다는데 거기에 단 커피만 마시게 되면 도리어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알면서도, 자주 마셔요 ^^;;


rosa 2012-03-31 11:33   좋아요 0 | URL
하여 제게 커피는 따뜻함이고, 행복이고, 여유로움입니다.^^
어제처럼 비 오고 바람 많이 부는 날에는 한 잔의 커피가 전해주는 따뜻함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거든요.
맛있는 커피를 마실 때는 절로 '행복하다'는 말을 내뱉게 되고
바쁜 와중에도 커피 한 잔을 먹기 위해 준비하는 그 시간과 커피가 부글거리는 소리를 들을 때의 뿌듯함이 좋습니다. 잠시나마 여유를 만끽할 수 있으니까요.
근데 전 쓰고 찐한~ 커피 좋아해요.^^
장윤현 감독의 책은 나중에 꼭 챙겨서 읽어보고 싶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샘 2012-03-31 15:04   좋아요 0 | URL
ㅎㅎ
'책과 음악과 커피가 있는 카페' 하는 방송 하나 하시죠^^
예전에 뭐, 방송반 하셨더더니, 케이블 정리만 확실히 배우신 건 아닌 듯...
멋진 페이퍼네요.
왠지 과거로 들어가는 문을 활짝 열어주는 느낌이랄까...

하늘바람 2012-04-01 11:50   좋아요 0 | URL
저도 속상하고 지칠땐 이불 뒤집어 쓰고 자는데~ 누군가는 잠이 오냐고 하지만요.
커피를 소재로 이렇게 길고 멋진 글을 쓰시다니 참 대단하세요 책과 음악과 영화와.블루의 줄리엣비노시, 바그다드 카페 참 좋아했는데. 모두 혼자본 영화라 더 와닿았는데 말이에요.
이상하게 저도 님께 커피를 선물하고 싶더라니. 그런데 일년드실 커피가 있으시다니~ 부러운데요.
전 요즘 커피를 자제하고 있어서 꾹꾹 참느라 죽을 지경이긴 합니다만.
오늘 같은날은 창 넓은 카페에서 김 모락모락 나는 커피 마시고 싶네요

2012-04-26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잘 지냈어요?

답장이 완전 늦어버렸죠?

손 글씨로 또박또박 적어 내려가준 이쁜 편지에 대한 답이 너무 늦어버렸어요.

게다가 성의없이 이렇게 메일로 뚝딱 해치우려 하다니, 두루두루 미안해요~ㅠ.ㅠ

호칭을 어떻게 할까 한참 망설였어요.

그동안의 호칭이 있지만...

내겐 늘 봄처녀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으니까 '봄처녀'?

설레임의 그 느낌을 살려 '삼월이'? 하다가,

새록새록 돋아나는 새순처럼 그대도 나도 경쾌하게 새로 시작하자 하는 의미로 'march'로 하기로 내맘대로 정했어요.

 

그랬군요, 마치.

참 힘든 겨울을 견뎌내고 맞이하는 봄이라서...이 봄이 더 새롭고 의미있겠어요.

마치 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도 지난 겨울 약간의 건강과 사람과 마음을 잃었고, 후회와 추억을 얻는 시간들을 보냈거든요.

그래서, 마치에게도 이 책들을 소개시켜 주고 싶어서요.

막 달콤하고 새로워질지도 몰라요, 후유증이라면요? 

어딘가로 떠나고 싶겠죠~^^

 

마치도 알테지만...책을 선물하는 건 좋아하지만, 책 선물 받는 건 좀 부담스러워 했었어요.

특히 출판사 관계자들에게 받는 책선물은 리뷰나 서평을 써야한다는 의무감에서 글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받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때문에 신간평가단 같은 건 꿈도 꾸지 않고,

누가 책을 선물해주겠다고 하면 정색을 하고 사양 해서, 여러번 오해도 사기도 하구요~.

 

그런 내가 이분이 가져다 주시는 책들은 전혀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데,

처음은 6, 7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첫 출근을 하고 채 일주일도 안됐을때였으니, 낯설기는 이 분이나 나나 마찬가지였을텐데...

잠깐 딴일을 하는 사이, 내 책상 위의 '장르소설'을 읽다가는 그냥 들고가 버리신거예요. 내참--;

당신이 읽던 또는 읽은 '바티스타 수술팀의 영광'을 팽개쳐 놓고, 내 책 '살인의 해석'을 들고 가버리신 거예요.

전화해서 당장 들고오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교양(?)을 지키느라 꾹 참고 가져오시라고 조곤조곤 말씀드리자,

"자, 자, 잠깐만~ 지금 클라이막스 거든. 딸깍!"

이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상황도 아니고...

내 책을 내 책이라고 해 보지도 못하고 '딸깍' 전화를 끊기고만 꼴이었죠~ㅠ.ㅠ

 

내 손을 떠났던 책들은 며칠만에 가지를 치고 새끼를 쳐 여러권으로 불어났고,

그 후로 여지껏 책을 바꿔가며 읽는 유일한 책친구예요.

근데 요번에 이 분이 가져오신 책 가운데 장르소설이 아닌게 한 권 끼어 있었어요.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변종모 지음 / 달 / 2012년 2월

 

 

4. 국경에 서서

ㆍㆍㆍㆍㆍㆍ

누구나 근본적인 것을 벗어나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이 삶인데 나는 자주 공허하다. 그 공허가 단순한 허무이거나, 그허무가 복잡한 외로움일지 모르지만 결국 모든 것이 예상에서 빗나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다. 일도 우정도 사랑도 그 무엇도 내 쪽으로 흘러주길 바라는 마음. 상대와 나의 중간에 두지 못하고 내 쪽으로 기울게 하는것. 그것으로 타인의 마음을 사려는 일. 나의 마음만 앞서 타인의 마음을 나에게 강요하는 일. 때로는 나의 배려가 타인에게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는데 내가 떠넘긴 것들에 행복해 하지 않는다고 자주 불행했다. 반드시 내 쪽이어야만 내 것인 줄 알던 시간, 나는 자꾸만 그 경계를 침범했는지도 모른다. 가지려고만 하고 나눌 줄 모르던 시절, 소유하려고만 하고 이해하지 않던 많은 날들이 물거품처럼 밀려온다.

마치 세상의 끝처럼 적막한 정오의 시간. 나의 뚜렷한 경계 없이 펼쳐진 국경의 끝에 서서 오래된 마음 하나를 넘긴다.

 있는 것을 그대로 두고 바라보는 일, 사실을 내 것으로 왜곡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 그래서 함부로 그것을 넘지 않는 일.

 사는 것은 결국 내가 나의 경계를 허무는 일이다.(60~61쪽)

 

윗 부분에 포스트잇을 '떡~ 하니' 붙여준 걸로 미루어 "금은 넘으라고 있는거야" 페이퍼 관련...

얼마전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았던 것 같고, 저런 대답을 들려주고 싶으셨던 모양이예요.

있는 것은 그대로 두라고...

그리고 내 안의 나를, 내 안의 경계를 먼저 허물라고...

그러면 상대도 자연 허물게 될거라고...

그럼, '금은 뛰어넘으라고 있는거야, 야호~ '이런 터무니 없는호기를 부리지 않고도

번지고 스미고 물들어 하나될 수 있을 거라고...

 

기실은 이 친구야말로 지금 인생의 가장 힘든 한때를 보내고 있거든요.

그동안 해오던 사업의 규모를 줄이고 줄이더니 이제는 정리하는 단계를 밟고 있거든요.

그 과정에서 몇번 나에게 툴툴 거렸었고,

그가 보기엔 매정하게( 내 입장에선 쿨하게)...내 본업은 진료와 치료이지, 위로가 아니라고 말했었구요.

"그동안 무수히 읽어 오신, 그리고 만들어 오신 책이 가장 큰 위로가 아닐까요?"

내가 덧붙였었던 당돌했던 말이 생각나서 씁쓸하게 웃자, 이런 말씀을 도인처럼 휘날리셨던 분이예요.

"서선생은 내 인생 후반기의 페이스메이커야.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선수 뿐 아니라 페이스 메이커도 중요해. 때문에 훌륭한 선수는 페이스 메이커를 관리할 줄 알지."

 

같은 날, 또 다른 책친구에게서 같은 책을 선물받았어요.

'화이트 데이, 사탕 대신'이라며 주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책을 읽기 전이라...

'내가 사탕보다 사탕 같은 문장을 더 좋아했었나?' 하고 툴툴거렸었죠.

한동안 감성 과잉의 글들을 의도적으로 멀리 했었죠.

나도 헤퍼서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고 해야할까?

앞에서 얘기했던 후유증으로 고생할까봐, 여행산문집은 기피 대상 1호였구요.

 

참, 저 서재 대문의 이름을 바꿨어요.

'잃어버린 마음을 찾아나서다'에서 'where is my mind?'로 바꾼 건

뭐, 심오한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가볍고 경쾌하게 가자는 생각에서 였어요.

그동안엔 마음이란 것이 꼭 내 안에 있어야 하는 것인데 그렇지 않아 찾으러 나서야 하는 어떤 것이었다면...

지금의 'where is my mind?'는

'마음아, 어딨니?'하고 기웃거리는 심심풀이 땅콩 정도.

자아나 정체성을 찾겠다는 심오한 의도에서가 아니라...'심심해, 나랑 놀자, 나랑 놀아줘...'하는 심정.

아님 말고...돌아서서 터벅터벅 걸어갈라치면,

어디선가 자다 일어나 부스스한 머리에, 반쯤 감은 눈을 비비고, 슬리퍼 대충 꿰고 저만치 뒤에서

"야!"하고 불러세우는 그런 편안하고 수더분한 이름의 'mind'

 

2. 그리운 것은 허물어져야 한다.

 

 

결국 이렇게 만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동안 당신과 나 사이에 머물렀던 한뼘의 간격은 얼마나 먼 것이었는지요. 우리 허물어버릴 것이 있다면 빨리 허물고 말죠. 괜한 오해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겼는지. 각자의 앞만 보고 서로 등 돌려 사는 동안 당신이 그리워했을 나와 내가 드리워 했을 당신은 더 이상 말하지 말기로 합시다. 이렇게 만나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 그때는 왜 그랬을까. 어차피 볼 거라면 하루빨리 만나지기를 바랍니다.(31쪽)

 

옛날에 교수님이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환자로 알게 된 사람이 세월이 지나다보니 다른 감정이 생겼다, 어떻게 해야 되겠냐?

파릇파릇했던 그때 대부분의 과 친구들은 '환자로 그만 만나자, 애인으로 만나자'를 택한다고 했었는데...

나와 또 한 친구만 '세상의 반은 남자(또는 여자)다, 환자로 알게 되었으니 치료가 우선이다'라고 대답했었어요.

그때 교수님은 나와 친구를 일컬어, 'mind를 옵션으로 들고 다니는 녀석들'이라고 하셨었구요.

그 후로 사람을 만날 기회는 많았지만,

언제나 다가오면 기다렸다는 듯 다가온만큼, 어쩜 그보다 좀더 물러나느라 바빴었죠.

 

그런 내가 좋다고 떠벌릴 수 있었던 건, 연예인이나 넷상의 인물들, 또는 외국에 나가 돌아올 기미가 없는 친구들이 고작이었어요.

연예인이 내 앞에 나타난 경우는 아직까지 없었고,

넷상의 인물들이나, 외국에 나갔다 돌아온 친구들을 만난 경우는 여러번 있었어요. 

하지만 내 상상과 기억 속의 인물들은 실제와는 큰 차이가 있었고...그걸로 끝이었죠.

아무 문제없었어요.

근데 요번에 약간의 문제가 생겼었어요, 내 상상과 실제가 차이가 전혀 없었던 거예요.

 

9. 부탁해.

 

"부탁이 하나 있어."

"뭔데요? 어려운 건 하지 마요. 알죠? 나 소심해서 거절 잘 못하는 거?"

"만약, 미국에 간다면 서부 101번 해안 도로를 꼭 한번 가봐. 그 길은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답고 처절한 길이야. 너도 그 길에 서며 나와 같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ㆍㆍㆍㆍㆍㆍ

무심하고 심심한 길은 때로 커다란 도시를 품었다가 때로 황량한 길을 내놓기도 했다. 이대로 계속 운전만 한다면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미치지 않았다. 아니, 허황된 풍경을 만날 때며 잠시 그풍경에 미치기도 했던 것 같다. 쉬지 않고 달린다면 사흘이면 끝까지 달려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아까운 길이었다.

 황홀한 석양이나 신선한 아침을 맞을 때면 행복했지만 인내심이 필요하기도 했다. 그 인내란 지루한 이 길 위에서 다시 외로워질 일과 그 외로움 끝에 있을 불안감 같은 추상적인 감정에서 오는 피곤함을 이제 그만 멈추고 싶다는 원초적인 것이기도 했다.(82~83쪽)

 

하늘에는 태양이나 별처럼 자체 발광하는 것들도 있지만, 달처럼 태양빛을 받아 반사하여 빛을 내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해가 싫었었어요.

저 잘난 맛에 홀로 반짝거리는 해가 싫었었던 게죠.그럼 햇빛은?

 

햇빛은 의료용으로 사용하기도 한대요.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빛 가시광선, 빨강 바깥 쪽의 적외선, 보라 바깥쪽의 자외선...이렇게 해서 의료용으로 사용한대요.

자외선은 멸균 기능이나 이런 걸로 사용해서 큰 문제가 없는데, 적외선이 좀 그렇죠.

한때 약장사라고도 하고, 의료기 라고도 하는 다단계업체에서 이 '적외선치료기'를 팔았었어요.

그래서 어르신들 계신 집에 가면 하나 씩 있는데, 얘의 열 발생 방식은 복사열 방식이예요.

복사열이 뭔지 잘 모르시는 어르신들은 뜨거워지지 않는다며,

가까이, 조금 더 가까이...하다가는 그을리는 것으로 부족해서 옷은 눌러붙고 수포가 생기는 burn을 입기 부지기 수.

흰 색 계통의 수건을 한장 덮어 주고 그 위로 빛을 쪼여주면 적당히 따뜻한 것이 괜찮은데,

우리가 '햇빛 = 햇볕 = 햇살'이라고 부르는 게 실은 이 원리이예요.

누군가는 둥글려 얘기하느라고 햇살은 '입자'라고 했던데,  안 그러고 '먼지 입자'라고 해도 괜찮아요.

내게 환자는 치료가 우선이었듯이, 해는 일종의 의료용이어야 한다는 논리여서 그리 로맨틱할 것도 없거든요~ㅠ.ㅠ 

 

4. 생각 속의 사람들

ㆍㆍㆍㆍㆍㆍ

"선배, 얼마나 다녀올 생각이에요?"

"글쎄, 일 년은 넘겠지?"

후배는 웃으며 덤덤하게 말했다.

"그럼 두 번 정도 못 본다고 생각하면 되겠네요? 우리 다녀와서는 좀 더 자주 봐요."

 그렇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잘해야 일 년에 한두 번 보는 것이 전부였다. 몇 번의 연락을 받은 끝에 선심 쓰듯 겨우 작별 인사를 하러 나간 자리. 그것도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뤄뒀던 시간을 만회하려는 얄팍한 계산이 있었는지 모른다. 떠난다는 이유로 용서 받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제봐도 좋을사람이라는 편리하고 이기적인 생각이 컸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대부분의 소중한 인연들을 우연히 길에서 스치는 사이보다 못하게 꾸역꾸역 이어나간다. 시간이 아닌 마음이 없던 것인지도 모른다. 산다는 것을 핑계로, 여유가 없다는 핑계로 정작 내 삶의 어느 한 부분들을 아름답게 채워준 것들을 외면하고 사는 일. 그것을 또 외면하고 나는 자주 아름다운 것들을 기대하며 길을 나섰다. 내 곁에 소중하게 여기며, 그 인연을 어찌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반짝하고 잠시 마주하는 것에만 열광한 채 늘 가슴에 두어야 할 것들을 머리로만 생각하며 살았다. 나는 자주 그런 식으로 내가 나를 소외시키며 살았다.가끔 먼 곳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만나도 허전했던 이유, 그것은 그곳에서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마땅히 생각해낼 수 없어서이기도 할 것이다.(115~116쪽)

 

가끔씩 헤어지시라! 조금 떨어져 그만큼씩 그리워하면서 서로의 간격을 넓혀 서로를 자유롭게 하는 것. 가까이 있음의 중요성을 알지 못함은 헤어져 있어보지 못함이다. 마음이여, 부디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시라. 그리움이 없는 사람에게는 결코 사랑도 없을 것이다. 구속이란 그리움의 간격 없음이 아닌가? 우리는 대부분 사랑이라는 것이 한 치의 간격도 없이 행해져야 완벽하다고 여긴다. 실수다. 그대가 아끼는 것을 조금만 멀리 두고 보라. 그리움의 간격이 필요한 것이다.

 너에게 더욱 밀착하려 했던 나의 마음이 너에게서 멀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미 너는 나의 곁에 없었다.(153쪽)

  

내가  참 나빴던 거죠.

난 그때 이도백하를 읊조리며, 옛사람을 걱정할게 아니라 상대방을 걱정했어야 했었던 거죠.

나는 이렇게 감정에 겨워 훌훌 떨어놓고 투정부릴 상대라도 있지만,

다 받아주고 들어주고도,

채워가질 수 없는 마음의 결여를 안고 사는 그를 걱정했었어야 했었던 거죠.

그걸 이제서야 깨닫고, 이제서야 미안하고, 이제서야 그 넓은 마음 씀씀이에, 다시한번 목이 메여요.

 

하지만, 마치.

내가 이 책에서 골라 읽어낸 한구절은 이거에요.

 

불염거(不染居)-있는 곳에 물들지 않는다.(227쪽)

너에게 물들지 않고 그리하여 내가 나에게 물들지 않기를.(229쪽)

 

그리고 새로운 책 한권을 펼쳤어요.

 

 

 

 

 

 

 

 

 

  사랑을 알 때까지 걸어가라
  최갑수 지음 / 상상출판 / 2012년 1월

 

 

#001

 데우다

여행은 마음을 ‘데우는’ 일이라고 써본다.

그러니까 여행의 온도는 37.2도 당신의 체온과 같아서
여행을 가는 건,

당신을 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의 기분 좋은 온도를 느끼는 일.

 

#002

정말로 아끼지 말아야 할 것

 

좋아하는 감정,

사랑한다는 고백,

이런 건 절대로 아끼면

안 되지.

 

#052

비법

 

ㆍㆍㆍㆍㆍㆍ나는 아무도 없는 사원을 맨발로 걸었고,

맨발에 닿는 돌의 감촉이 문득 차가워서ㆍㆍㆍㆍㆍㆍ

 아무도 없는 사원의 공기가 낯설어서ㆍㆍㆍㆍㆍㆍ

가만히 빈 봉투처럼 그 자리에 서 있곤 했지ㆍㆍㆍㆍㆍㆍ

그리고는 한 석상 앞에 멈춰 섰는데

ㆍㆍㆍㆍㆍㆍ

문득 외로워졌던가ㆍㆍㆍㆍㆍㆍ

이 아름다운 풍경 속에 혼자 있다는 게 오히려 외로워졌던가ㆍㆍㆍㆍㆍㆍ

그래서 이렇게 물었던가ㆍㆍㆍㆍㆍㆍ

외로움을 견디는 비법 같은 것이 있을까요ㆍㆍㆍㆍㆍㆍ

석상은 아마도 이렇게 대답했던가ㆍㆍㆍㆍㆍㆍ

글쎄ㆍㆍㆍㆍㆍㆍ 견디는 거ㆍㆍㆍㆍㆍㆍ 그냥ㆍㆍㆍㆍㆍㆍ

견디는 거ㆍㆍㆍㆍㆍㆍ그게 외로움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ㆍㆍㆍㆍㆍㆍ

나는 맨발로 서 있었고ㆍㆍㆍㆍㆍㆍ숲 위를 뛰어가는 원숭이들의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지.

나는 가만히 그 소리를 견디고 있었네.

 

어때요, 마치?

내가 왜 이 책 두권을 골랐는지,

이렇게 쓸데없는 얘기를 길게 늘어놓고 있는지...눈치 챘을거예요.

Tin woodman이 왜  tin woodman이겠어요?

근데요, 마치.

앞으로는 나에게만 말고, 이곳에 글을 올려줘도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좋고 이쁜 글을 나 혼자 보고 있으려니, 영 미안해서 말이죠~ㅠ.ㅠ

내가 좀 게을러야지, 내 답장 기다리다 그대 파파할머니 될까 두렵다~

암튼, 고마워요~

이 봄, 마치에게...또 나에게 어떤 March를 배경음악으로 선물해야 할까?^^

참, 보내주신 겉봉투의 주소로 이 책 두권 보낼게요.

 

 

 

 

 

 

 

 316 - P-1
 삼일육 (316) 노래 / Sail Music (세일뮤직)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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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 변종모 (A lie of yearning for nobody)
    from 512 2012-10-14 14:57 
    노련한 여행자의 솔직한 이야기.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한국에 돌아오면 제일 처음으로 읽고 싶던 책. 다른 몇 권의 책을 읽고 나서야 이 책을 집어 들었습니다. 친구 집으로 향하는 전철 안에서 몇 장을 읽고, 오랜만에 만난 녀석들과 술을 한잔 마셨습니다. 목구멍까지 술이 차올라 찰랑거렸으니, 어쩜 술 한잔이라 하기엔 좀 과할 정도였을지도 모르겠군요. ...
 
 
2012-03-12 1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3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03-13 11:33   좋아요 0 | URL
"가끔씩 헤어지시라! 조금 떨어져 그만큼씩 그리워하면서 서로의 간격을 넓혀 서로를 자유롭게 하는 것. 가까이 있음의 중요성을 알지 못함은 헤어져 있어보지 못함이다."- 이 글 읽으니 주말부부가 좋다는 어느 친구의 말이 생각나네요. 엉뚱하게도...ㅋ

사실 가까이 있어어 그 소중함을 모르는 것, 너무 많죠. 사람이나 물건이나...

잘 읽고 갑니다.

2012-03-13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3-14 0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난,
허기지면 음식을 찾지만,

영혼이 허기지면 책을 들입다파지만,

마음이 허기지면 사람을,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을 또 한없이 그리워 하게 된다.

 

시를 자주 읽고 가끔 외우기도 하지만...내가 개인적으로 가까이 하게 되지 않는 시인이 있는데, 류시화와 이병률이다.
류시화에 대해서는 노 코멘트이고,
이병률은 첫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한다'와 여행산문집 '끌림'을 읽었었는데,
그의 글 전반적으로 묻어나는 쓸쓸함의 정서를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가뜩이나 머리를 옵션으로 들고 다닌다는 소리를 듣는터라,

그렇게 감성 충만한 글들을 읽다보면 나도 어느새 feel 충만하여져 무뇌아 취급을 받을 것만 같아서 라고 해야할까?

암튼 이병률은 그렇게 내게서 한발자국 물러나 있었다.

 

 

 

 

 

 

 

 

 

 

 

 

 

 


얼마전 내게 시집을 몇권 선물해주시겠다는 분이 계셨다.
그 분이 골라주신 시집은 이병률의 '바람의 사생활', 정끝별의 '시심전심', 이영광의 '그늘과 사귀다'였다.
'바람의 사생활'을 고르신 이유는, 내가 좋아하는 '신형철'님이 해설을 하셔서라고 하셨고,

'시심전심'은, 내가 어디선가 정끝별을 좋아한다는 걸 본것 같은데...정끝별님이 직접 쓰신 시들은 아니니 내가 안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싶으셨단다.
이영광의 '그늘과 사귀다'는 절판이었다.
사실 정끝별님의 '밥'라는 시선집은 참 좋았지만, 요번 '시심전심'은 별로였었는데...
그 이유가 내가 고등학교 졸업이후로 쳐다보기도 싫어했던 그런 시 해석방식을 취하고 있어서 였다.
나는 가뜩이나 시뿐만 아니라 사물에 생명을 불어넣고 의미를 부여하고 의인화하는 걸 좋아하는데,
시를 갈갈이 나누고 헤쳐 분해하고 하는게, 로봇 분해 조립이나  과학상자 만들기같이 느껴져서 말이다.

(어찌되었건, '마음과 마음이 詩로 서로 통할 때'라는 부제는 참 멋지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내게 없는 시집들을 골라내기까지의 그 정성이 선물보다 고마웠다.

 

그동안 이병률의 시가 내게 겉돌았었던 것은 어쩜 시적자아가 여러명이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시적자아가 너무 여러명이다 보니, 어느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해야할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 얘기는 다시하면 어느 누구는 A라는 시를, 어느 누구는 B라는 시를, 또 누구는 C라는 시를...취향에 맞게 좋아할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어느 누구나 좋아할 수 있지만,
'어느 누군가'의 자리에 나를 대입시키면 그를 깊이 좋아하기는 좀 힘 들었었다.

 

예를 들면,

그의 첫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한다'의 주된 정서는 슬픔인 듯 보였었다.

 

 

벼랑을 달리네

 

문상 다녀오는 체감온도 영화 십육 도의 추운 밤

경사진 도로에서 차로 뛰어드는 여자를 보고 놀라 급히 차를 세우는데

뒷자리에 타자마자 '가양동 2단지'를 외치는

택시가 아니라 해도 슬프도록 코를 골며 잠을 청하는

화장품 냄새 술냄새 반에 전 난취의 여자

그래도 내리라 하지 않고 조심스레 몰 수 있었던 건

당신처럼 갈기갈기 사지가 찢긴 채

누군가 나를 데려다 눕혔으면 했던 의식을 부탁해왔기 때문이다

가양동 2단지 앞에 차를 세운 영하의 밤

잠든 여자를 깨운다 눈인사도 한마디 말도 없이

아무렇게나 벗어놓았던 목도리를 반듯하게 개어놓고

휘청휘청 아파트 단지 안으로 발걸음을 떼어놓는 여자

여자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한 건

나도 벼랑 끝에 살며 당신처럼 핏발의 냄새 풍긴 적 있기 때문이다

 

이상하게도 춥지 않다 싶게 집으로 되돌아오는 밤

무언가 하얗게 시야를 덮쳐 급히 차를 세웠더니

도로에 떨어져 휘날리고 있는 두루마리 휴지

인사 대신 남겨둔 여자의 목도리처럼

매운 바람 속에서 하얗게 몸을 풀며 구르다

놀라 멈춰 선 차를 감싸며 흐느끼고 있다

가지런히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차 안에서 눈 감을 수 있었던 건

나도 당신처럼 머리를 풀고 누군가의 품에 안겨

마지막인 양 파닥이고 싶었던 적 있기 때문이다

 

 

'벼랑을 달리네' 같은 경우...
그 슬픔이 추운건지, 슬픈건지, 흐느끼고 싶었던 건지, 파닥이고 싶었던 건지...어떤 형태로 표출된건지 애매모호하다.
그림으로 그리라면 그리겠는데,
말로 얘기하라면...글쎄, 이쯤되지 않을까?
"음, 슬픔은 슬픔인데~. 그게 추운건지, 슬픈건지, 흐느끼고 싶은건지, 파닥이고 싶은건지...는 나도 모르겠어...ㅠ.ㅠ"


근데, 요번에 읽은 '바람의 사생활'에서는 좀 바뀌어 있었다. 
제대로 몰입할 수 있었다.
그의 정서, '바람의 사생활'에 실껏 몰입할 수 있었다.

 

어쩜 시인은 그대로인데...
신형철의 해설 덕에 시인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신형철은 좀 관조적인 시선으로,
전지자나 선각자의 그것으로 이병률을 바라본다.

일부분만을 옮겨보면 이렇다.

기어이 사랑하며 살아보겠다 하는 마음과 이냥 헤어지고 죽어버리자 하는 마음이 번갈아 밀려왔다 밀려가며 파도를 만드는 것이다. 그 두 마음 중 어느 하나에 의지해 살 수도 있는 것이다. 앞의 일보다는 뒤의 일이 더 아픈 일이다. 이병률의 일들이 그렇다. 이 사내의 내해(內海)를 드나드는 파도는 어찌 그리 심해파(深海波)이기만 한 것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사내의 눈길은 어찌 이리 먹먹한 먹빛인 것인가. 그럴 수도 있는가, 그렇게도 살아지긴 하는가, 내내 물어가며 그의 시를 읽었다.
ㆍㆍㆍㆍㆍㆍ

 

'바람의 사생활'에서 그는 좀 바뀌었다.

그 슬픔이...추운건지, 슬픈건지, 흐느끼고 싶은건지, 파닥이고 싶은건지...는 모를지라도,

그 슬픔이 '적어도' 아픈거라는 건 안다.

그래서 '바람의 사생활'에서는 그 '슬픔'이 제 살을 헤집는 아픔인 줄 느낀다.
아픔을 전염시키고 싶지 않은 그는, 슬픔 또한 타인에게 전염시키려 들지 않는다.
여기서 자신을 객관화하려 하고, 타자화하여 바라보려 노력하고...그 바람에 시가 한결 깊어진다.

 

 

 

 

 

 

 

 

Smiling & Waving
이엠아이(EMI) /

2001년 7월

 

이 앨범은 절판이다.

이 앨범의 열한 번째 트랙에 실려 있는 곡이었는데, 알라딘엔 열 번째까지밖에 공개가 안됐다.
아냐 가바렉은 재즈의 거장 얀 가바렉의 딸이라는데,

얀 가바렉의 딸이 악기 하나 제대로 다룰 줄 모른다는게 놀라웠고,

독특한 목소리로 자기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한다는 점 또한 놀라웠다.

우와~ 나랑 동갑이라는데...이런 목소리, 이런 몸짓을 구사할 수 있다니...그 또한 놀랍다.

 

I won't hurt you-Anja Garbarek

 

I've lost all my pride
I've been to paradise
And out the other side
With no one to guide me
Torn apart by a fiery will inside

I won't hurt you
I won't hurt you
I won't hurt you
I won't hurt you

I'm an untouched diamond
That's golden and brilliant without illumination
You're mouth's a constellation
Stars are in your eyes
I'll take a spaceship
And try and go and find you

I won't hurt you
I won't hurt you
I won't hurt you
I won't hurt you

My pale blue star
My rainbow;
How good it is to know you're like me
Strike me with your lightening
Bring me down and bury me with ashes

I won't hurt you
I won't hurt you
I won't hurt you
I won't hur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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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2-01-11 09:49   좋아요 0 | URL
'찬찬히 풀어놓을 법도 한 근황 대신 한 손으로 나를 막고 자꾸 밥을 떠넣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문장, 왜 이렇게 찔리는지.. 음.. 그 와중에 또 배는 고프고요. ㅎㅎ

Forgettable. 2012-01-11 11:57   좋아요 0 | URL
히융 이런 글도 괜찮을 때나 읽을 수 있지, 마음 상태가 말이 아니니 공감을 넘어서 버겁네요.
시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혼자라는 기분에 즐겨 읽지 않아요. 요즘은 아예 모든 글을 즐겨읽지 않나;;; ㅋㅋ

책가방 2012-01-11 13:47   좋아요 0 | URL
접힌 부분이 펼쳐지지 않네요. 요즘 제 컴이 좀 느려지긴 했습니다..^^
시라는 거..
전 잘 안 읽어지던데.. 이렇게라도 시를 접할 수 있어 좋네요.
혼자 남는 데 익숙해져야 한다는 말이 엄마를 생각나게 했습니다.
년초에 친정갔다가 9일에 돌아왔거든요.
시끌벅적하다가 모두 가버린 후 혼자남을 엄마가 새삼 안타깝게 다가옵니다.

2012-01-11 1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케 2012-01-11 15:05   좋아요 0 | URL
저도 류시화는 노코멘트.. 이병률의 글과 시는 글 잘쓰는 여고 3학년생 분위기여서 늘 저에게 약간의 닭살을 ㅋ
아직 엄동지절이라 '對影成三人'의 즐거움은 봄까지 미루셔야 겠습니다.ㅎㅎ

다락방 2012-01-11 15:30   좋아요 0 | URL
(생뚱)저 몇년전에 소개팅했을 때 애프터를 받고 또 만났던 남자가 그 두번째 만남에서 약속시간에 좀 늦었거든요. 밤샘근무를 하고 오후에 나오는거라 좀 늦었다고 했는데, 그때 그가 들고 나왔던 책이 이병률의 [끌림]이었어요. 착한남자였는데, 어딘가에서 좋아하는 사람과 잘 살고 있는지 이 페이퍼를 읽다보니 문득 궁금해지네요. 그런데 그의 이름도 생각나질 않아요, 이제는.
전 이병률이란 이름만 들으면 바로 그 남자로 연결되어 버려요.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인데도 말이지요.

Forgettable. 2012-01-11 16:08   좋아요 0 | URL
나도 누군가의 차에서 이 책을 발견했어요. 근데 이름도 얼굴은 커녕 누군지도 잘... -0-

라로 2012-01-11 15:43   좋아요 0 | URL
님 덕분에 시를 읽게 되네요,,,요즘 왜 이러고 사는지,,,^^;;

2012-01-11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파란놀 2012-01-11 16:48   좋아요 0 | URL
새해부터 시집을 즐거이 읽으셨네요.
즐거이 읽는 시집은
마음을 잘 달래 주지 싶어요.

프레이야 2012-01-11 21:38   좋아요 0 | URL
'바람의 사생활'은 이상하게 마음에 착착 감기질 않았어요.
'그늘과 사귀다'는 표지가 달라졌네요. 이 시인의 시 좋던에요

근데 전 마음이 허기져도 먹는 것 찾아 마구 먹어요.ㅎㅎ
거짓허기라지요. 운동은 안 하고 먹기만ㅠ

cyrus 2012-01-11 22:02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이 주신 책 선물 덕분에 송경동이라는 시인의 글을 알게 되었어요, 나무꾼님 덕분에
요즘 시집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고 있어요. 저도 류시화 시인을 좋아하고 이병률의 <끌림>을 감명깊게
읽었는데 다시 한 번 류시화의 시집을 읽어보고 싶네요 ^^

마녀고양이 2012-01-13 17:35   좋아요 0 | URL
"나도 벼랑 끝에 살며 당신처럼 핏발의 냄새 풍긴 적 있기 때문이다"
나 이 구절 너무 좋아, 왜냐하면 나 역시 핏발의 냄새를 풍긴 적 있으며, 지금은 택시 기사가 되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며, 그리고 언젠가 또다시 핏발의 냄새를 풍기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그때 누군가 나의 택시 기사였으면 싶기 때문에..... ^^

글구, 전에 불에 가까이 가면 화상만 입을 뿐이니 적절한 거리에서 쬐어야 한다는 문구 정말 맘에 안 들었는데,
이번에 그 밑의 문장들을 보니....... 너무 기뻐, 한아름 내려놓은 것 같아서. 내가 기뻐하는거 보여?


2012-01-18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1-23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