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수분/사랑 손님과 어머니/백치 아다다 글누림 한국소설전집 18
전영택.주요섭.계용묵 지음 / 글누림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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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누림이 펴낸 한국소설전집 18권에는 열 편이 넘는 소설이 몇몇은 익숙한 이름으로 몇몇은 낯선 이름으로 자리를 채우고 있다. 한 장씩 넘기면서 오랜만에 느끼는 정서가 익숙하기도 하면서 또 새로웠다.

 

 

지난 시대상을 그대로 옮겨 놓은 소설 속 분위기가 지금의 것과 이상하게 많이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가장 놀랐는데, 전영택의 <운명>과 주요섭의 <추물>이 대표적이었다. <운명>에서 일평생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어느 한 곳에 마음을 내어준 적 없던 주인공 동준이 떠돌기는 했으나 사랑이였던 감정을 잃은 후에 자신을 저버린 연인을 증오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동준의 불안한 가정관이 눈에 들어왔다.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성장기를 보낸 사람이 가정을 이룬다는 것에 회의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 떠난 여자로 인해 사랑에 대해 더욱 큰 불신을 갖게 되는 과정이 인상 깊었다. <추물>에서는 못생긴 여자 언년이가 주인공이다. 흉하게 생긴 언년이의 얼굴 때문에 생기는 그녀의 불행을 자세히 담고 있어 그 당시의 외모 지상 주의를 짐작하게 하였다.

 

여성의 정조를 중시하는 당시의 엄격한 사회적 배경을 다룬 소설도 있었다. <아네모네의 마담>, <사랑 손님과 어머니>가 그것이었는데, 참 신기한게 예전에 몇 번 읽은 소설인데도 머리가 크고 나서 다시 보니 느낌이 많이 달랐다. 사회의 시선을 이겨내지 못한 등장인물들의 안타까운 선택이 어쩌면 옳은 선택일 수도 있겠다, 이해가 된다고 할까.

 

그밖에도 <인력거꾼>, <독약을 마시는 여인>, <백치 아다다>, <북소리 두둥둥>은 시대적으로 불행했던 과거가 가감 없이 잘 드러난 소설이었다. 특히 <인력거꾼>은 책의 소설 중 가장 인상깊은 작품이었는데, 8년 동안 인력거를 끌었던 한 하층 노동자의 하루로 비참한 삶이 너무 슬펐다. 그의 종교적 고뇌와 마지막 또 다른 인력거꾼의 비극을 암시하는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단편선을 읽는 동안, 그 시기의 비극을 담담하게 그렸으나 불행과 슬픔을 보듬고 감싸고자 하는 작가들의 한국적인 정이 느껴져서 단편을 오래 두고 보는 편인데도 손을 놓지 못했다. 생각과 여운이 많이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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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상자 어른을 위한 동화 18
한강 지음, 봄로야 그림 / 문학동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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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칠흑 같은 눈동자는 늘 촉촉하게 젖어있다. 햇빛에 반짝이는 잎사귀, 늦은 밤 퍼지는 피리소리, 이마를 스치는 바람의 촉감... 따라 흐르는 눈물은 아이의 뺨을 적신다. 눈물을 달고 사는 아이의 별명은 울보고, 눈물단지다.

 

어느 날, 눈물상자를 손에 든 아저씨와 푸른 새벽의 새가 눈물단지를 찾아온다. 세상의 모든 눈물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눈물, 아이의 눈물방울을 담고 싶다는 아저씨는 이상하지만 특별하다. 눈물단지의 눈물을 기다려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아저씨와 푸른빛의 새와 함께 길을 나선다.

 

“내가 찾고 있는 건 순수한 눈물이야.”

“순수한 눈물이요?”

“자기가 울고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면서 흘리는..... 특별한 이유가 없지만, 또한 이 세상의 모든 이유들로 인해 흘리는......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물이란다.”(p17)

 

그리고 울지 못해 외로이 살아오던 할아버지의 첫눈물을 보고서 눈물의 가치를 깨닫는다.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더이상 눈물단지는 자신의 눈물이 부끄럽지 않다.

 

“그 기억을 마지막으로, 그림자눈물샘이 얼어붙었던 것 같습니다.”(p58)

 

짧은 동화나, 눈물의 소중한 가치는 충분히 전해진다. 세상의 모든 빛을 담은 순수한 눈물은 어떤 차가운 것도 녹이는 보물 같은 것이다. 눈물은 소중한 것이다.

 

그걸 모르고 지냈다. 감상적이고 예민한 나한텐, 조울증까지는 아니어도 그 비슷한 게 찾아올 때가 있다. 눈물 한번 쏟으면 젖은 종이처럼 한동안 마음 상태가 흐물흐물해져서 우는 건 되도록 참으려했었다.

 

때때로, 예기지 않은 순간에 우리를 구하러 오는 눈물에 감사한다.(p71)

 

그림자도 눈물을 흘린다는 말을 읽으며, 차마 겉으로는 흘릴 수 없어 마음속으로 쏟는 눈물이 그것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마음에서 흐르는 눈물이 뺨을 타고 방울방울 태어나는 순간을 부끄러워할 게 아니란 사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한 거짓의 눈물이 아니라 진실한 빛을 담은 최고의 눈물이란 걸 깨달았다.

 

그동안 흘린 내 눈물색은 어떤 빛이었을지 궁금하다. 여기 나온 여러 빛깔의 눈물이 탐이 난다. 여러 색을 담은 눈물을 흘려보고 싶다.

 

“순수한 눈물이란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눈물을 말하는 게 아니야.

모든 뜨거움과 서늘함, 가장 눈부신 밝음과 가장 어두운 그늘까지 담길 때,

거기 진짜 빛이 어리는 거야.“

 

“오히려, 네 눈물에는 더 많은 빛깔이 필요한 것 같구나. 특히 강인함 말이야. 분노와 부끄러움, 더러움까지도 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그렇게 해서 눈물에 어린 빛깔들이 더욱 복잡해질 때, 한순간 네 눈물은 순수한 눈물이 될 거야. 여러 색깔의 물감을 섞으면 검은색이 되지만, 여러 색깔의 빛을 섞으면 투명한 빛이 되는 것처럼."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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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팥쥐전
조선희 지음, 아이완 그림 / 노블마인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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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동화의 오싹한 분위기를 현대식으로 재구성했다 하여 펼친 책이 <모던 팥쥐전>이다.

 

콩쥐팥쥐전, 여우 누이, 선녀와 나무꾼, 우렁각시 등 익숙한 동화를 새로운 관점으로 각색했다는 데에 매력을 느껴 한 장 한 장 넘겨보기 시작했다. 멀리서 봐도 한눈에 띄는 기묘한 표지를 열고 보니 으스스하고 공포스러운 이야기가 동화의 틀만 빌린 채로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죽은 남자친구의 영혼을 항아리에 담으려하는 콩쥐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고 나이를 먹지 않은 어머니에게서 자개함을 빼돌려 달라는 친구의 정체와 젊은 부부에게 얽힌 옷 한 벌의 이야기도 기억에 남았다. 뒤에 나오는 반전이란 게 참 찝찝하고 꺼림칙한 걸 빼면 그래도 읽는 재미가 있었다. 둥글게 둘러앉아 무서운 이야기를 듣던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괜히 작은 소리에도 민감해지고 한기가 팔뚝에 옮겨붙는 것 같은...

 

그래도 낚인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가장 최근에 나온 모던 아랑전까지 해서 이 시리즈에 눈길이 갔던 이유는 동화를 현대식으로 풀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거의 몇 날 밤잠을 설쳤던 것을 떠올리면 공포 소설은 안 읽는 게 낫지만 음산하고 어두운 콩쥐팥쥐전만은 현대적으로 정말 만나보고 싶어서 펼쳤는데, 거의 대부분 무슨 동화를 모티브로 했는지 말해주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내용 전체가 너무 달랐다. 우리가 아는 익숙한 이야기를 현대에서 만나보자 했으면서 단어 몇 개빼면 정작 어디에서 빌려왔는지 모를 정도니 책소개에 제대로 낚인 게 이거 아닌가 싶다. 

 

본래의 동화 속 분위기를 만나지 못해 너무 아쉽기는 했지만 재미로 읽기에는 나쁘지 않은 책이었다. 나같이 무서운 거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이 정도 공포가 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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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 정진홍의 900킬로미터
정진홍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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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려놓지 못했던 것들을 걸러내고 어디로 떠날 수 있는 여유, 처음에는 부러워 샘이 났다. 떠난 곳이 험난한 순례길이고 그게 사실은 인생길과 비슷하다는 걸 알았을 때는 겁이 나기 시작했다. 매서운 눈보라를 뚫어야 하고 차가운 얼음바닥에 누워 자야하고 심지어 죽음까지 각오해야 걸을 수 있는 길. 이게 사실 인생길이라니! 피하겠다, 떠나겠다 굳이 다짐하지 않아도 누구나 한가운데 서 있는 곳이 모험의 길임을 마주하고 나니 쓸쓸함, 공허함이 몰려왔다. 그렇다면 난 왜 이렇게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있었을까? 

 

 

정진홍 작가를 따라서 마음으로 그곳을 천천히 걸어 보았다. 산티아고 순례길 위의 사람들, 그들이 길 위에서 삶을 걷고자 한 이유, 그리고 새롭게 찾은 산다는 것의 의미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게 힘겹고 괴로운 탐색의 시간 이후에 온 값진 것임을 알고 나니 어느새 순례길의 시린 겨울바람이 궁금해지는 게... 어쩌면 나도 삶에 대해 배낭을 덜어볼 각오를 해볼 수 있겠다 싶다.

 

 

처음의 두려운 마음을 가다듬으니 길 곳곳에 남겨진 시간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고 순례자의 설움과 기쁨이 전해졌다. 삶의 행적을 한눈에 본 기분이다. 읽는 동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순례자의 비애가 더 가깝게 느껴져서 많이 쓸쓸했지만 나 자신을 사색하는데 좋은 계기를 마련한 것 같아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래도록 책을 통해 전해진 감정들이 여운으로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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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인간
KBS 공부하는 인간 제작팀 지음 / 예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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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외부 세상을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자신의 것으로 바꿔 습득하는 과정이다. 생애 전반을 걸쳐 이루어지는 아주 익숙한 행동이면서 인간에게 있어 생존의 이유와 도구가 되기도 하는 공부. 이렇듯 모든 인간은 공부를 한다. 그런데 공부는 모두가 하지만 하는 과정과 덧붙이는 목적이 다르다. 사회에 따라,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이유가 뭘까?

 

이 책 <공부하는 인간>은 KBS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엮어 만든 책으로 공부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파헤친 책이다. 공부하는 사람들을 집중 취재해서 지적 활동의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배경을 자세히 살피고 있다.

 

다양한 나라의 학생들을 취재한 결과 공부라는 게 한 사회의 사상과 문화와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문화적인 자산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책 속에 소개된 각 나라 학생들의 학습 동기와 과정은 두 가지 양상으로 크게 나누어졌는데, 예를 들면, 손이 많이 가는 벼농사를 지어 온 동양인들은 공부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을 노력과 의지로 보았고, 비교적 수월한 밀농사를 지어 온 서양인들은 재능과 능력을 더 중시했다. 이들의 공부 방식의 차이는 역사적인 이유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완전히 알기 전에는 묻는 것보다는 제대로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유교식 공부 방식이 동양의 사고방식에, 질문하고 토론함으로써 사고의 폭을 확장시키고 자존감을 키우는 걸 중요시 한 그리스 교육 방식이 서양의 사고방식에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공부는 오랜 시간을 걸쳐 만들어진 문화이고 역사였다. 오랫동안 형성되어온 하나의 가치이고 자산이니 어떤 공부 문화가 옳다 그르다라 말할 수 없다. 그렇지만 책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현대 시대와 많은 대학들이 원하는 건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사람이라고. 장기적으로 볼 때 시간이 오래 걸려도 질문을 던져 가며 생각하는 공부가 자신의 탐구 정신에도 미래에도 좋다고 바라보는 것이다.

 

책 속 공부 전쟁에 시달리는 한국, 중국, 인도, 일본 학생들을 보면서 그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내게도 전해지는 게 어떤 식으로든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입시 외의 공부는 쓸모없고 불필요하다고 여기는 인식이 먼저 바뀌었으면 한다. 앞으로도 계속 공부해야 할 학생으로서 낙오될까봐 두려워서 공부하는 게 아니라 정말 즐기면서 공부하고 싶다.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봐야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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