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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 ㅣ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은모든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2월
평점 :
안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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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책에는 저마다의 세계가 담겨있다. 그 세계를 만나는 건 가끔은 편안하기도, 가끔은 짜릿하기도, 가끔은 알 수 없는 뭉클함에 저절로 눈물이 나기도 한다. 이 책은 뭉클함에 눈물이 나는 책이었다. 나를 너무나도 사랑해주셨던 우리 할머니가 계속 마음에 떠올랐다 . '우리 두꺼비' 할머니만이 불렀던 나의 애칭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할머니의 '두꺼비'였고, 할머니는 나의 '뚜꺼비할머니'였다. 너무나도 맑으셨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을 때, 한 달음에 마산으로 달려가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배웅해드릴 때 그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진 문장에 눈물이 저절로 흘렀다.할머니의 작고 가녀린 몸에서 시작된 우리들은 이렇게 모여서 할머니를 추억했었다. 나는 북적거리는 그 곳에서 한 사람의 '숭고함'에 대해서 생각했었다 .
그때 내가 느낀 숭고함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세계 속에서 나의 이야기를 만날 때, 책의 축복을 느낀다. 이 책은 사실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쉽게 판단하기도, 말하기도 어렵다. 인간의 마음으로 되지 않는 두 가지, 생명이라는 것과 사랑이라는 것이 얽히면 말할 수 없는 아픔이 생겨나는 것 같다. 그저 나에게는 내 소중한 할머니를 추억하는, 그 숭고함을 다시 한 번 떠올리게 해주는 책으로 충분했다 .
📚 나의 할머니 이금래 씨. 할머니는 오 남매 줄 셋째로 태어나 걸음마를 떼면서부터 집안일을 도왔고, 유년 시절 내내 동생들을 건사하느라 분주했다. 열아홉에 가정을 이룬 뒤에는 세 자매를 키우면서 시어머니의 식당 일을 돕느라, 자녀들에 성장한 후에는 시가의 식당에서 독립해 차린 밥집을 운영하느라 눈코 뜰 새 없에 바빴다. 또한 여든을 넘기고 가게 일에서 물러난 뒤에는 곳곳에 탈이 나는 자신의 몸을 돌보느라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러나 스스로 선택한 마지막 순간, 할머니의 표정은 편안했다. '개운하게 가겠다'라던 결심이 그대로 이루어진 듯 모든 짐을 내려놓고 떠나는 할머니의 입 끝에는 희미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