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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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 하는 데서 나온다. - P131

물론 지는 것보다야 이기는 쪽이 훨씬 좋다.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경기의 승패에 따라 시간의 가치나 무게가 달라지지는않는다. 시간은 어디까지나 똑같은 시간이다. 일 분은 일 분이고, 한 시간은 한 시간이다. 우리는 누가 뭐라 하든 그것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시간과 잘 타협해서, 최대한 멋진 기억을 뒤에 남기는 것 그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 P147

그녀는 지금까지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못생긴 여자였다-라는 말은 아마도 공정한 표현이 못 될 것이다. 그녀보다 추한외모의 여자는 사실 그 밖에도 많을 테니까. 하지만 내 인생과어느 정도 친밀한 관련을 맺고, 내 기억의 토양에 나름대로 뿌리내린 여자들 중에서는, 그녀가 제일 못생겼다고 해도 큰 지장이없지 싶다. 물론 ‘못생겼다‘ 대신 ‘아름답지 않다‘고 완곡히 표현할 수도 있고, 그편이 독자에게 특히 여성 독자에게는 한결거부감이 덜할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굳이 ‘못생겼다‘라는 직접적인(다소 난폭한) 어휘를 이 글에서 쓰려고 한다. 그편이 그녀라는 인간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테니까.

-사육제 - P151

나는 아름다운 여자도 몇 명 개인적으로 알고 있다. 누구나
‘이 사람은 예쁘다‘고 인정하고, 시선을 빼앗길 만한 여자들이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 아름다운 여자들은 적어도 그중 많은 이가 자신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무조건적으로 덮어놓고 즐기지는 못하는 듯했다. 나는 그 사실이 적잖이 신기했다. 미모를타고난 여자들은 늘 남자들의 관심을 끌고, 같은 여자들에게서는 선망의 눈길을 받으며, 은근히 추어올려진다. 비싼 선물도 많이 받을 테고, 연애 상대를 만나는 데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그녀들은 좀더 행복해 보이지 않을까? 왜 어떤 때는우울해 보이기까지 하는 걸까?
관찰한 바에 따르면, 내가 아는 아름다운 여자 중 많은 이는자신의 아름답지 못한 부분 인간의 신체 환경에는 반드시 그런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이 불만스럽거나 거슬리는 탓에 항상 심적으로 시달리는 것 같았다. 아무리 사소한 단점도, 잘 보이지도 않는 흠결 하나조차 그녀들은 그냥 넘기지 못했다. 어떤경우에는 속앓이까지 했다. - P153

"제가 생각하기에, 사랑이란 우리가 이렇게 계속 살아가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연료입니다. 그 사랑은 언젠가 끝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결실을 맺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설령 사랑이 사라져도,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다, 연모했다는 기억은 변함없이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것 또한 우리에게 귀중한 열원이 됩니다. 만약 그런 열원이 없다면 사람의 마음은 그리고 원숭이의 마음도 풀 한 포기 없는 혹한의 황야가 되고 말겠지요. 그 대지에는 온종일 해가 비치지 않고, 안녕安寧이라는 풀꽃도, 희망이라는 수목도 자라지 않겠지요.
저는 이렇게 이 마음에 (라고 말하면서 원숭이는 털투성이 가슴에 손바닥을 댔다), 한때 연모했던 아름다운 일곱 명의 여자 이름을 소중히 품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저 나름의 소소한 연료삼아, 추운 밤이면 근근이 몸을 덥히면서, 남은 인생을 그럭저럭살아볼 생각입니다."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 P203

나 스스로도 언젠가 그것을 시험해볼지 모른다 잠이 오지않는 밤, 뜬금없이 그렇게 부질없는 생각을 품어볼 때가 있다.
나는 연모하는 여자의 신분증이나 이름표를 구해와서, 의식을
‘일심불란하게 집중해서 그 이름을 내 안에 거둬들이고, 그녀의일부를 남몰래 소유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아니, 아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워낙에손재주가 없고, 남이 가진 무언가를 몰래 훔쳐낸다는 게 가능할 성싶지 않다. 설령 그 무언가에 형체가 없고, 그것을 훔치는 행위가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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