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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 하나를 가운데 두고 바라본 바다는 좋았다.

칼바람이 옷깃 사이를 마구 헤집으며 들어오겠다고 성화를 부리다 안 되니 눈으로, 손으로, 맨 얼굴을 향해 돌진한다.

이럴 때 창 넓은 찻집이 많은 월미도는  바다 구경하기엔 최적이다.

무한정 리필이 되는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노을이 질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낮에 보는 바다는 동해 바다 같지 않아서 옥빛도 아니고 푸른빛도 아닌 누르스름한 색이 황하를 떠올리게 하지만

노을이 질 무렵이면 인천바다도 먹색으로, 연보랏빛으로, 붉은 기운 도는 은빛으로 황홀하게 빛날 줄 안다.

 



 

이럴 즈음 내 마음의 체 질은 시작된다.

성냄과 우울함과 기분 나쁨과 의기소침함 따위

있어봐야 하나 소용 닿지 않는 것들을 꺼내 체를 치면 굵은 틈새로 모두 다 빠져나가고

따뜻한 기운만이 희미하게 가슴 밑바닥에 고이는 걸 느끼게 된다.

몇 잔이고 마셔댄 커피 기운으로 화장실이라도 한 번 다녀온다면 금상첨화다.

마음과 몸의 찌꺼기가 모두 빠져나간 상태이므로.

 

자꾸 일렁이는 마음을 다독여 고요한 마음으로 돌아왔으니  또 몇 달은 즐거이 버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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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 잠들어버리는 버릇이 있는 내게 일요일은 늦잠을 잘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참 좋은 날이다.

어제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들과 차이나타운을 돌아 월미도 바닷 바람을 쐬고,

다시 부천으로 가서 교수님과 뜨끈한 온돌방에 앉아 회로 저녁까지 거하게 먹은 후

온 몸에 남아 도는 알콜 기운이 채 해소되기도 전에 일어나 맨 얼굴로 가면 또 혼날까 저어하여

대충 찍어바르고 아침 찬 바람을 휘적휘적 주물러가며 엄마네 집으로 가 방바닥에 앉은 게 9시 30분.

이 시각이면 정말 최고로 일찍 준비한 셈이 된다.

그래도 얼굴이 부석부석해보였는지 정곡을 찌르는 엄마의 한 마디.

"너, 어제도 술 마셨냐?"

에고..아시면서..뭘.

 

아버지는 일찌감치 상 앞에 만두피  미는 기계를 붙들고 씨름중이셨고

나보다 항상 먼저 도착하는 막내 동생이 아는 체를 하는 옆으로 보이는 반죽 덩어리들과

김치 냉장고에 들어가는 김치통으로 하나 가득. 그것으로도 모자라 이미 덜어 놓은 그릇 두 개에 꽉 찬 만두 속.

"이번엔 조금만 했다. 밀가루 8kg 밖에 안 했으니까 엄살 떨지말어"

윽.

만두라고는 잘 모르고 자라신 충청도 아줌마 우리 엄마는 이북 태생이신 울 아버지가 만두를 즐겨하신다는

그 이유만으로 매번 만두를 이리 만드신다. 사실, 나는 만두를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서

만두를 만드는 날 하루 이외엔 거의 먹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니 내가 먹지도 않을 만두를 만드느라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게 늘 불만인 내 입을 막기 위한 엄마의 선제공격인 셈이다.

며느리 없는 게 다행이라니까. 불쌍한 올케 구제했다. 우리가..낄낄.

매번 이렇게 수다를 떨면서 만들다보면 점심 잠깐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꼬박 오후 4시까지 앉아서 만들어야

그 작업이 끝이 나는데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큰 동생이 일하다 말고 회사 일로 불려나가고

그나마 만두피를 제공하시던 울 아버지도 점심 약속에 불려나가시고 나니 일꾼들이 줄어들어 일은 더욱 더딜밖에.

입 큰 사람은 한 입에도 들어갈 만큼 작은 만두는 이북 만두가 아니라고 우리가 수차례 건의를 해도

울 엄마의 작은 만두 사랑은 여념이 없다.

기를 쓰고 만들어서 뒷설거지까지 끝내놓으니 5시. 어깨가 욱신거리고 허리도 아파온다.

나는 먹지도 않는 만두지만 그래도 울 아들 맛있다고 먹어주고, 울 아버지 기쁘게 드시니

그래. 그것으로 위안을 삼자.

아이고..허리야, 어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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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하고 싶은 일본소설 베스트는?

내가 지독한 애국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말로 무슨 확신이라든가 신념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지만

왠지 일본소설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외국영화배우나 가수 이름은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머릿속에 각인이 되면서도

무슨 일에선지 책에 나오는 일본 주인공 이름들은 영 어색한 게 자꾸만 헷갈려서 책을 보는 중간에도

'어라, 얘는 누구였지?' 하면서 앞 페이지를 넘겨다 보는 게 수도 없이 많았고 그러다보니 내용에 몰입이 안 되어

책 자체에 대해 올바른 평가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만난 게, <모래의 여자>

 모래를 보면 쉽게 발을 넣고 싶지 않게 만든 책이긴 하지만,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모래와

사람의 집념과 절절한 광기를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나는 기꺼이 아베 코보의 책 중 1위에 올려놓을 테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번뜩이는 눈빛처럼 날카로운 책 <일식> 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책 <달>

가슴 아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는 나를 눈멀게 했다.

 

 어느 순간에도 빠지지 않을 책. 마루야마 겐지의 <물의 가족>

나를 내려다보는 나의 느낌이 강렬한 전율을 흘리게 만든 책.

 

 

이 책 이후 많은 온다 리쿠의 작품을 만나고 비슷비슷함에 그에 대한 사랑이 식어갔지만

이 책에 대한 느낌은 여전히 좋다 <삼월은 붉은 구렁을>

 

 

 기괴함을 만나고 싶다면 이보다 더한 책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쿄고쿠 나츠히코의 <우부메의 여름>

 

 

다카노 가츠아키의 <13계단>

추리소설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책.

 

 

 뒤에 따라 나오는 그의 많은 작품들의 같은 경향에 좀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제일 먼저 만났던 이 책은 나를 아주 유쾌하게 만들어주었지.

오쿠다 히데오 <공중그네>

 

아직 많은 일본 작가들을 만나지 않은 터라 다양하지 못한 게 흠이지만, 내가 읽은 책을 정리해보는 느낌으로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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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당신의 추천 도서는?

책은 정말 언제 읽어도 좋다.

시간이 들쑥날쑥 엉망일 경우 내가 제일 선호하는 공간은 지하철이지만,

지금처럼 바람이 시원하고 하늘이 높을 때는 남아 도는 의자면 충분하다.

혼자 밥을 먹을 때나, 버스를 기다릴 때, 누군가와 만나기로 했는데 조금 시간이 남았을 때

가장 좋은 일은 역시 책을 읽는 일이다.

10월이 되었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지만 그래도 이 계절이 선사하는 걸 기꺼이 즐기자.

1. 짬을 내어 읽어야 할 때는 뭐니뭐니 해도 시집이 제격이다.

 이성복 시인의 <아, 입이 없는 것들>

- 초기의 시들과는 많이 달라져서 굉장히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2. 여유 시간이 한두 시간 정도 될 때


 산도르 마라이의 <유언>, <열정>

- 격렬하면서도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탁월한, 내 생을 돌이켜보게 만드는 책이다.

 

 

 


3. 보다가 말다가 해도 다음 장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선 책이 넘쳐나지만 그 중에 한 권을 고른다면

 마루야마 겐지의 <물의 가족>

- 죽은 내가 '나'를 내려다보면서 담담히 써내려가는데 침을 꼴깍꼴깍 삼키면서 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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