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제목 : 개의 날
◎ 지은이 : 카롤린 라마르슈
◎ 옮긴이 : 용경식
◎ 펴낸곳 : 열림원
◎ 2022년 7월 8일, 개정판 1쇄, 162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바게트는 별 맛이 없는 빵이다. 소를 넣지 않은 담백한 빵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건 갓 만든 빵의 경우고, 만든 지 하루가 지나 수분이 점점 말라가는 빵에게 애정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단지 먹을 게 전혀 없을 때 굶주림을 면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 말라버린 빵을 질겅질겅 오래도록 씹고 있으면 예상치 못한 것이 찾아온다. 바로 희미한 단맛.
이 책이 그랬다. 162쪽이니 한 시간이면 충분히 읽을 양이건만 중간에 집어던지지 않으려고 허벅지를 꼬집은 다음에야 끝을 보았다.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지만 꾸역꾸역 다 읽으니 찾아왔다. 아주 큰 그림 앞에 바짝 다가섰다가 점점 뒤로 물러나며 전체적인 윤곽을 마주한 경우라고 해야 할까? 너무 가까이 서면 무슨 그림인지 알 수가 없지 않은가.
줄거리를 한 줄로 쓰자면 이렇게 될 것이다. '개 한 마리가 고속도로 중앙 분리지대를 달리는 걸 본 여섯 명의 이야기.' 각각 여섯은 자신의 시선으로 본 개와 그 개를 본 순간 떠오른 생각들을 두서없이 늘어놓고 있다. 그러니 산만할 수밖에. 화자가 여럿인 장편도 꽤 많이 보아온 터이니 화자가 많다고 투덜댄다는 건 어불성설이나 그들의 생각 속을 함께 휘젓고 다니는 것은 쉽지 않았다.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던 트럭운전사는 자신을 인터뷰하러 오는 신문기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 개를 본다. 고속도로를 혼자 달려야 하는 그는 외롭다. 그래서 무언가를 자꾸 지어낸다. 그는 개 이야기를 써서 잡지에 기고할 예정이다. 그리고 그것을 기자에게 보내 그녀가 자신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신에게서 정력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늙은 사제는 수도원에서 만났던 소피( 단지 문학적으로만 통했던, 어딘가 다른 사람들과 달랐던)를 찾아 도시의 도서관을 헤맨다. 그러다가 소피가 돌아올 것을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과 지상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알려달라고 기도했고 그 개를 봄으로써 대답을 얻었다.
-지난 월요일 고속도로에서 그 개가 내 시야에 불쑥 나타남으로써 드러난 부활은 어쩌면 그에 앞서 나타났던 부활들처럼 내 몫의 고통과 경이인지도 모른다. 나도 그 개처럼 죽음에 맞서서 혼자 가리라. 죽음을 침착하게 수용하는 이미지보다 훨씬 더 잘 늙음을 정의해준 미친 질주, 그것이 내포한 눈먼 폭력과 더불어 죽음이 언젠가 내게 다가오리라. (68쪽)
빨간색 레인코트를 입은 여자는 애인과 결별식을 하려던 날 개를 본다. 유모가 자신의 오빠를 간호하기 위해 떠난 것을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는 여자. 그리하여 사랑을 믿지 못하는 여자는 또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버린다.
-사랑. 사랑은 항상 당신들을 버린다. 아무리 짧은 순간의 사랑이라 하더라도. 아니다, 사랑은 처음부터, 환희의 순간에도 당신들을 버린다. 그때 이미, 태양은 우물 속에 가라앉고, 검은 물 아래 버려진 개가 있는 것이다. (87쪽)
가게 주인에게 폭언을 퍼부은 뒤 실직자가 된 동성애자 필.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려 자전거를 타다가 개를 본다. 친구들에게서 떠나왔지만 다시 그곳(제멋대로의 열렬한 사회)으로 돌아오라는 초대를 받는다.
-나는 나약함으로 인해 자살을 하지 않기 위해서 달리기 시작했고, 따라서 이 모험의 목적은 아주 오랫동안 참을성 있게 달려서 자살의 개념 자체가 사라져버리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목적을 달성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즉 내 목숨을 구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그 개가 마치 내 눈 앞에서 자발적인 죽음으로의 질주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나타났던 것이다. (114쪽)
암으로 남편을 잃은 나는 버림을 받았다고 느낀다. 과부협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에 딸인 안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가다가 개를 발견한다. 아빠만을 사랑했던 딸은 그녀와 어떤 교류도 원하지 않았고 그녀도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른다.
-내가 본 적이 없는 어떤 개 한 마리가 내 앞을 가로질러 갔고, 이후 나는 마침내 어머니가 되었다. 나는 그 길을 피해서 갔음에도 불구하고 안을 낳았다. 나는 개에게 시선을 주기를 피함으로써, 안이 힘을 되찾게 해주었다. (137쪽)
아빠를 잃은 안은 힘들다. 너무 잘 지내는 것 같은 엄마에겐 슬픈 내색도 할 수 없다. 누군가 자신에게 어떻게 행동하라고 알려주었으면 좋겠고 너무 많이 먹는 자신을 일깨우고 가르쳐주기를 바란다. 안은 고속도로에서 개를 본 순간 그 개가 마치 자신 같다.
-불안한 표정으로 이야기하거나 구조를 모색하는 척하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나만, 오직 나만은 안을 내 가슴에 간직한다. 이제 나는 그 개가 무사히 살아날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울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약하지도 않고 벙어리도 아니다. 나는 강철 같은 근육을 가지고 있으며, 아무리 달려도 숨이 차지 않는 폐활량을 가지고 있고, 나를 지옥으로부터 구해낼 의지를 가지고 있다. (1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