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기둥 하나 잡고
  내 반평생
  연자매 돌리는 눈먼 말이었네
  
  아무도 무엇으로도
  고삐를 풀어주지 않았고
  풀 수도 없었네
  
  영광이라고도 하고
  사명이라고도 했지만
  진정 내겐 그런 건 없었고
  
  스치고 부딪치고
  아프기만 했지
  그래,
  글 기둥 하나 붙들고
  여까지 왔네
  
  ―박경리, '눈먼 말' 전문.

5월 5일..푸른 빛이 진짜로 푸른 빛으로 되살아 나는 5월, 이 좋고 따뜻한 날에

다른 푸른 빛을 확인이라도 하고 싶으셨던 걸까? 아픈 몸을 버려두고 멀리 떠나셨단다.

<김약국의 딸들>로 시작된 그분과의 만남은 고교시절 내내 이어져 서가 안의 작품을 몽땅 뒤지게 만들었고,

그때부터 시작한 통영에 대한 그리움은 아직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남아 농도가 더 진해졌는데..

<김약국의 딸들>에서 나온 탓에 호기심이 일어 생선을 먹지 않던 나도 즐기게 된 대구!

오늘은 대구탕이라도 먹으면서 그런 분을 우리 곁에 살다 가게 해준 것에 감사를 해야겠다.

이제 연자매 돌리던 고된 노역에서 벗어나 편히 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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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보러 안 가실래요?"

오후 1시경 제부한테 문자가 왔다.

아들놈은 막내동생 놀러가는데 딸려서 보낸 후 한가롭게 방을 지키고 있던 참이었는데

비가 올 것 같았지만, 뭐 어떠랴. 싶은 마음에 따라 나섰다.

SK 와이번즈와 우리 히어로즈의 경기.

다들 태평양 유니폼을 입은 걸 보니 옛날 생각이 물씬 나더만.

태평양 돌핀스, 삼미 슈퍼스타즈, 청보 핀토스..

먹으러 온 건지, 응원을 하는 건지 여기저기 사람들을 둘러보니

맥주에 떡볶이, 과자, 치킨, 음료수와 오징어 등등 한 사람도 입을 쉬는 사람이 없었다.

물론 나도 그 대열에 합류하느라 경기 보는 내내 화장실을 들락거려야했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중간에 40여 분 동안 경기가 중단되었고

다른 사람 응원하는 걸 따라하느라 재미붙였던 조카 녀석은 재미없다고 언제 하냐고 채근이다.

경기를 속개하라는 요구는 점점 커지고, 빗방울은 사그러들 줄은 몰랐지만

다시 시작. 이기고 있던 경기는 비로 인해 잠시 쉬는 동안 판세가 역전되어 우리 히어로즈 타선에 불이 붙었다.

으..홈런까지!

결구 6:1로 지는 상황에서 마지막 9회를 남기고 경기장을 나섰지만

사실, 인천 팀이 져서 아깝긴 하지만 목이 터져라 응원하고 먹고 떠들고 웃을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오늘도 경기가 있다는데 또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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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선생님이 타계하신 지 1년이 되었다.

오늘 그의 유언장을 보면서 웃었고, 울었다.

**

유언장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은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쯤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 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 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 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일

쓴사람 권정생

 

**

평생 가난하고 아픈 속에 살다 가신 선생님.

환생하면 벌벌 떨지 않고 연애를 잘 하고 싶다는 이야기 속에 외로움이 묻어 나와 가슴이 아프다.

그러면서도 인세는 아이들을 위해 써달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경건해진다.

평생 모든 5000만원으로 옥수수를 사서 북한 어린이들에게 보내 달라는 게 마지막 가시는 길에 남긴 말씀이란다.

우리는 이런 어른을 또 뵐 수 있을까?

부디, 평안하시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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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을 실감한다.

고등학교 다닐 무렵에 유행했던 스키니진이 다시 돌아왔다.

작년만 해도 무릎 아래로 갈수록 넓어지는 나팔바지가 아무렇지도 않더니

요새는 이걸 입어도 될까? 망설여지니 스키니가 대세다.

날씨도 좋다 하고 이쁜 샌들을 자랑도 할 겸 오늘은 나도 몸에 쫙 붙는 스키니에

그럴싸하게 보인답시고 윗도리는 헐렁헐렁하면서도 광택이 나는 셔츠를 받쳐 입고 나섰다.

허리가 어딘지 모를까봐 벨트도 느슨하게 하나 차고 하루종일 돌아다니다가

마지막 수업에 갔는데 한 녀석 왈,

"벨트 하니까 배 나와 보여요"

윽..

얼른 벨트를 풀었는데도 하루종일 볼록나온 배를 구경한 사람들의 시선이 남아 있는 것 같아

집으로 오는 길이 민망했다. 왜 그렇게 길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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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귀는 당나귀 답게>, 아지즈 네신, 푸른숲

이 책은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그리고 다시 읽을 때면 더욱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아지즈 네신이 우리나라에 다녀간 거 아닐까?'

오늘은 <거세된 황소가 우두머리로 뽑힌 사연>을 다시 읽었다.

왕국시대에서 왕인 사자가 죽으면 그 사자의 큰아들이 그 자리에 앉도록 되어 있었지만,

왕국 시대가 막을 내리고 대통령 또는 수상이라는 이상한 지위가 생기자

동물들도 자신들의 우두머리를 직접 선출하기로 한다.

선거를 하기 위해 후보자 추천을 받으니 사자와 호랑이가 경합을 하게 된 것,

둘다 서로에게 지기 싫은 나머지 물소를 칭찬하기 시작했고 물소가 후보 자리에 올랐으며

물소와 경쟁 관계에 있던 하마도 입후보하고,

이 둘은 상대방에 왕이 되는 걸 보기는 죽어도 싫은 까닭에 곰을 칭찬했고 덕분에 멧돼지가 입후보 하고,

또 둘은 당나귀를 추천, 말도 경쟁에서 밀리기 싫어 입후보 하고 ,

이런 식으로 하다보니 결국 거세를 해서 암컷도 숫컷도 아닌 터라 누구도 자신과 경쟁상대로 보지 않는

황소가 우두머리가 되고 말았다.

숲속 동물들은 그러고 나서야 자신들이 중대한 실수를 저질렀다는 걸 알게 되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 결국 다음 선거까지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결국 황소가 우두머리였던 시기는 동물들의 역사에서 몹시 수치스런 한 페이지로 남게 되었다.

이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이 가슴을 덜컥 치고 지나간다.

설마, 이런 일이 여기서 일어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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