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10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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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은 자신의 세계관을 사물에 투영한다. 자신이 바라보는 것들에는 지극히 자신의 감정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같은 그림을 보더라도 각기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아래의 그림을 보도록 하자.
 


 

무엇으로 보이는가?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이는가 아니면 체스말과 유사하게 보이는 흰빛의 기둥이 보이는가. 처음에 당신이 본 것은 무엇인가 살펴보라. 사람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볼 수 있다. 가령 위 그림에서 당신은 당신이 보고자 하는 모습에 집중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결정은 의식 중에 혹은 무의식 중에 이루어지며 이는 당신만의 시각을 반영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경아는 위와 유사한 경험을 하게 된다. 소설 속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으로 등장하는 환쟁이(화가) 옥희도씨가 그린 그림을 보고 말이다. 그녀는 그 그림을 처음 볼 당시에는 고목(枯木)으로 보았으나, 훗날 환쟁이(화가) 태수와 결혼한 뒤 옥희도씨 유작전시회에서 볼 때에는 나목(裸木)으로 인식하게 된다.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枯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p.284)
 
그것은 왜였을까? 이는 옥희도씨를 바라보는 그녀의 관점이 변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는 사물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초래한다. 우리는 이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세상은 변하는가, 우리를 둘러 싼 세계는 변하는가? 여기에 우리는 어떠한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실제로 우리를 둘러싼 세계가 변화할 수 있다. 그러한 변화는 실제적이므로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어떨까?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실제적인 변화가 없는 경우 말이다. 이럴 경우에도 우리는 세계가 변화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감히 '그렇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우리는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을 바라본다. 또한 우리가 가진 세계관(혹은 관점)의 변화는 우리 자신이 인식하는 세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즉 관점이 바뀌었을 때 우리는 물리적으로 아무런 변화가 없는 사물을 보면서도 그것이 변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여자친구가 선물해준 적당한 가격의 시계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그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었다면?  여전히 똑같은 시계일까? 헤어지기 전보다 그 시계의 가치는 한없이 떨어지고 말 것이다. 물리적이며 실제적인 변화가 그 시계에 없다고 하더라도...
 
어떠한 경우에도 세상은 변할 수 있다. 실제로 변화가 있을 경우에도,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말이다. 우리가 지닌 관점(세계관)의 변화가 있을 때에 우리자신을 둘러싼 세계도 함께 변화되기에.
   
당신은 어떠한 세상을 원하는가? 당신이 바라보는 세상은 당신의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 당신은 위에서 살펴본 그림을 볼 때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물을 볼 때에도 또한 세계를 바라볼 때에도 모두 당신 자신만의 고유한 관점을 통해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에게 당신 자신이 원하는 세계를 꿈꾸길 도전한다. 당신의 생각이 당신의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으므로.
 
2.
이번에 읽은 나목은 박완서씨의 초기작품이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저자의 개성과 완숙미가 넘치는 문장들을 살펴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초기작품이라는 풋풋함과 앞으로의 소설들에서 드러날 작가만의 필체를 가늠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또한 한국전쟁(6.25사변)을 경험한 작가의 경험들이 이 소설 속 인물들과 배경 곳곳에 손때묻어 있으니 더욱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3.
현재의 이야기 - 나와 사람들
                     (가족: 큰아버지댁, 어머니 / 직장동료들 : 환쟁이들, 사장, 미숙, 다이아나)
과거의 이야기 - 아버지가 돌아가신, 오빠들이 죽게된 이유(폭격, 꿈틀대는 고깃덩어리) 
                      큰아버지가 우리집에 미안해 하는 이유.
                      어머니 曰 '어쩌다 계집애만 살아남았노'
다시 현재의 이야기 - 어머니를 미워하는 나(애증) 또한 큰집에 신세지지 않으려는 나,
                              계속된 방황의 종지부를 찍다(태수와의 결혼, 옥희도씨의 유작전)  
  
 

4. [밑줄긋기] 

 
p. 38
전쟁은 누구에게나 재난을 골고루 나누어주고야 끝나리라. 
 
p. 97
「엄마. 우린 아직은 살아 있어요. 살아 있는 건 변화하게 마련아녜요. 우리도 최소한 살아 있다는 증거로라도 무슨 변화가 좀 있어얄 게 아녜요?」
「왜? 이대로도 우린 살아 있는데」
「변화는 생기를 줘요. 엄마, 난 생기에 굶주리고 있어요. 엄마가 밥을 만두로 바꿔만 줬더라도..... 그건 엄마가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이잖아요. 그런 쉽고 작은 일이 딸에게 싱싱한 생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다는 걸 엄만 왜 몰라요?」 
 
p. 150
아아, 전쟁은 분명 미친 것들이 창안해 낸 미친 짓 중에서도 으뜸가는 미친 짓이다. 
  
  
p. 290
남들은 잘도 잊고, 잘도 용서하고 언제 그랬더냐 싶게 상처도 감쪽같이 아물리고 잘만 사는데, 유독 억울하게 당한 것 어리석게 속은 걸 잊지 못하고 어떡하든 진상을 규명해보려는 집요하고 고약한 나의 성미가 훗날 글을 쓰게 했고 나의 문학정신의 뼈대가 되지 않았나 싶다. - 박완서, '나에게 소설은 무엇인가' p.123
 
그때 내가 미치지 않고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그래, 언젠가는 이걸 소설로 쓰리라, 이거야말로 나만의 경험이 아닌가라는 생각이었다. 그건 집념하고는 달랐다. 꿈하고도 달랐다. 그 시기를 발광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정신의 숨구멍이었고, 혼자만 본 자의 의무감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세상이 살 만해지고 나 또한 보통사람으로서의 무사안일을 누리는 동안 그건 짜릿한 예감이 되어 나의 안일에 잠복해 있다가 발병처럼 갑자기 망각을 들쑤성거리곤 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세상에 글장이로 선을 보이게 되었을 때의 감상도 꿈을 이루었다든가, 노력한 결실을 거두었다든가 하는 보람보다는 마침내 쓰는 일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안도와 체념에 가까운 거였다. - 목마른 계절, 작가의 말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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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한다 나는 살아야 한다
마르틴 그레이 지음, 김양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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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 추천하는 책이다.

페이지 수가 많아서 힘들 수는 있겠지만, 끝까지 읽는다면 분명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독서노트]

 

"살아남아라, 마르틴."
 
이 책은 2차세계대전의 포화를 견뎌낸-홀로코스트로부터 살아남은- 마르틴이라는 한 유태인 소년의 성장소설이자,  인권·환경·문화 관련 운동가이자 여러 책의 저술가인 마르틴의 자서전이다. 
(그는 살아있는 역사이며, 오래된 말로 역사의 산 증인이다)
 
하루하루가 지옥같고, 한순간의 실수가 죽음을 부르는 곳에서
그는 자신을 위해서 또한 헛되이 희생된 사람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살아남기로 다짐하고
온갖 힘을 다해 살아남는다. 그 이야기가 이 책 속에 하나하나 스며들어 있다.
 
그에게 있어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삶은 늘 기적과도 같은 기회를 허락하지만, 그것을 붙잡는 것은 언제나 준비된 자의 몫이었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살아 남기를 선택했다.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살아남는 것보다
더 달콤하게 느껴지는 상황속에서도 말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나는 현대를 사라가는 사람들이 자살을 기도하는 것이 참으로 사치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피해갈 수 없는 일이지만 이를 스스로가 허락 한다는 것은 얼마나 호사스러운가!  제2차 세계 전쟁 가운데 살고 싶어도 살지 못하고 무참히 학살되었던 유태인들을 떠올려보면 말이다. 그들에게는 오직 억지스러운 죽음만이 허락되었을 뿐이다. 물론 그 상황 속에서 자살한 사람이 있긴 하지만, 이 자살은 현대인의 자살과는 그 무게감이 다르다.
 
기를 쓰고 살아 남기를 간절하게 원해도 그것을 붙잡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온갖 힘을 다해 죽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둘을 단순 비교하는 것이 바람직 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전쟁, 전쟁이란 참으로 잔혹한 것이다. 인간의 존엄이란 찾아볼 수 없게 만든다.

묵직한 공기, 희망이 없는 절망의 무덤속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인 마르틴과 같이 살아남기로,

도망치기로 선택하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 일 것이다. 죽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상황 속에서, 살아 남는다는 것은 억지스러운(?) 생명과 삶을 계속해서 이어간다는 의미가 되어버리니깐 말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 속의 자살은 오히려 각 개인 스스로가 가지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해본다.
 
한편 지금의 세계-대다수의 나라들-는 범죄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단계까지 나아왔다. 살인자의 생명까지도 사형제도를 통해 함부러 죽여서는 안된다고 말하기 까지 하다. 그러나 이는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가.  나는 범죄자들이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참으로 좋은 세상에서 태어난 것이다. 전쟁 가운데 태어나 범죄자로 잡혔다면, 아마 너무나도 손쉽게 개처럼 놀림당하고 총살당하지 않았을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인간은 늘상 그래왔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른체 살아가곤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같은 일인지 알고 있는가?  또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도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도 흔하디 흔한 것이 되어버렸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접하는 매체들은 손쉽게 죽음을 이야기 하고, 기적을 이야기 한다. 우리는 원치 않게 그 단어들에 대해 익숙해져 버렸다. 더 자세히 말해, 우리들은 그 단어들에 대해 질려버렸다.
 
현대 사회는 가치 있는 것들을 가치 있게 바라 볼 줄 모른다. 가치 있는 것,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지켜나가야 할 것들은 어디로 갔는가? 수많은 말만이 덩그러니 빈 껍데기를 쓴채로 남아 있고, 그 의미는 점점 퇴색되어 갔다. 심지어 같이-함께 함, 공동체-의 가치를 외치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닌 광고였다. 광고라니...! 
 
이야기가 길어진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안에 들끓어 오르는 내면의 꿈틀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저 주저 앉을 수 없다. 그렇게 속으로 되뇌이고 되뇌였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마르틴(저자)의 삶의 이야기들은 생(生)의 가치를 모르는 나를 힘껏 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나는 이에 내 몸과 마음을 맡기고 마음껏 휩쓸렸다.  
 
살아 있는가, 살아 남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에게 주어진 '기적'임을 기억하라.
그리고 스스로에게 그 기적을 일깨우고, 타인에게 나누어라. 
당신의 삶을 통해서 다른이의 삶 또한 기적임을 보여주라.
 
당신은 내게 있어서 '기적'일 수 있고,
나는 당신에게 있어서 '기적'이 될 수 있다.
 
나와 당신은 이 순간 망설일 수 있다. 하지만 기억하라.
앎이란 이를 깨달아 실천에 옮기지 않는 이상 '고인 물'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러한 앎은 썩어 들어가기 마련이다. 자기 합리화라는 사유와 함께...
또한 왜 망설이는지를 생각해보라. 내가 포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떤 점이 나를 힘겹게 하는지를 떠올려보라.
아마도 나와 당신은 무언가를 가지고 저울질 하고 있을 것이다.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두려움이 엄습해올 것이다. 하지만 늘상 그래왔듯 처음 한번이 어려운 것이다. 우여 곡절 끝에 한번 시도하고 나면 그 다음은 쉽다.
 
이미 수많은 말을 해왔으므로 더이상 긴말 하지 않겠다.
앞으로의 나와 당신에게 건투를 빈다. 훗날 우리 같은 길 위에서 만날 수 있기를...



[독서 中]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너무나도 사치스럽게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게 주어진 시간들, 하루하루가 기적임을 망각하고 원망만 하고 사는 것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그 말도 안되는 상황들 속에서, 그는 차라리 죽는 것이 더 편함에도 불구하고 살고자 마음먹는다.
자신의 동족인 수많은 유태인들이 헌신짝만도 못하게 죽임당하고 버려지는 것을 그는 살아남아서 고발하고 증언하고자 한다. 


하루하루 살아 가기가 벅차다. 너무나도 가혹한 인생이다. 15살의 어린아이인 주인공이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행하는 모든 행위들이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기도 또한 한편으로는 처참하기 짝이 없다.  살기 위해서 몸무리치면서도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 그 모습에 감탄하기도,
또한 그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기에 선택하게 되는 모든 행위들 -그것에는 인간의 존엄이 남이 있지 않고 그저 살고자 하는 욕구밖에는 없는 행동들- 때문에 가슴아프기도 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그러나 나의 정신은 썩은 것이 아닌가.
나르시즘에 빠져, 자기애적인 경향이나 보이며 또한 세상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전혀모르면서
그것쯤이야 하는 생각에 빠져있지를 않나,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자기합리화 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자신은 창의적이며 똑똑하며 어딜 가나 쓰임 받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나의 모습은 바람직 한 것일까.


삶이 사람을 만들어 낸다. 삶이 허락한 상황이 우리를 길러낸다.
나는 그러한 삶의 영역에 안주하고 싶었던 것이다. 약간의 가혹함이 있더라도 안정될 수 있는 그런 삶에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보면서 나는 그 안주하려는 마음이 나를 목조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곳에서 계속 머물러 평안함을 즐기려 하다보면, 마음이 썩어들어가고 정신이 혼미해지며, 
또한 육체까지도 망가지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내일부터 나는 어제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
하루하루의 삶을 어제와 다른 삶이 되게 하겠다.
상황을 변화시키려 노력할 것이며, 설사 주어진 환경을 바꾸지 못할 지라도
그 속에서 나는 나를 변화시켜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바꾸어보겠다.


지나친 컴퓨터 사용과 TV 시청이, 또한 생각없이 무작정 읽어대는 독서 혹은 활자중독이
또한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배우려 하지 않고 그저 시간만 떼우면 된다는 어리석은 게으름이
나를 망치고 있다. 결국 나는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 나는 살아야 한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첫번째 기회가 마지막 기회임을 명심해야 한다. 
기회는 한번 놓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지도 모른다.
머리를 명민하게 정신을 맑게 하고 있자. 육체를 움직여두어 채력을 비축해두는 것도 필수적이겠지


..........................................................  



[밑줄긋기]


 
p.179
* 트레블린카(Treblinka, 트레블린카 수용소. 바르샤바 북동쪽으로 100킬로미터 지점, 폴란드 도시 시에들체와 말키니아 중간 트레블린카의 철도 마을 부근에 있었다. k. 이곳에서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유대인들이 살육당했다...)
 
트레블린카.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다른 목소리, 다른 단어들이 필요하다. 단어 하나하나마다 사라진 수천 명의 삶을 추모해야 하며, 그 삶과 함께 사라진 기쁨과 인생의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기려야 한다.
 
절망감이 우리 모두를 휩쓸고 있었다. 나는 자발적으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에게 휩쓸려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나는 그 절망적인 흐름에 맞서 싸웠다. 내가 의지할 건 내게 계속 말을 거는 방법뿐이었다. 나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 내가 사랑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 복수를 하고 세상에다 대고 트레블린카가 죽음을 뜻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p.281
아버지) "마르틴, 힘내라, 마르틴. 우는 걸 겁내면 안 돼."
            "마르틴, 우리는 계속 견뎌야 한다." 
"마르틴, 너는 투쟁해야 한다.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이지. 우리는 끝까지 싸워야 한다. 우리 대부분은 죽을 거야. 너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아라, 마르틴. 우리 모두를 위해 살아남아." 
  
 
p.326
우리는 결코 원수를 갚을 수 없었다. 살육자들을 죽인다고 죽은 가족들이 다시 살아나는 건 아니었다. 복수란 언제나 쓰디썼다.
...
나는 그들이 우리를 더 죽이지 못하도록 그들을 죽여야 했다. 인간의 탈을 쓴 그 짐승들을 죽여야 했다.
"우리도 사람을 죽이고 있어, 볼레크. 우리도 사람을 죽이고 있다고."
"하지만 그럼 달리 무슨 일을 하겠니?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미에테크" 
    
 
p. 374
약한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불가능해 보이는 법이다. ... 내 인생은 그런 불가능한 일들로 가득차 있었다. 나는 안 다녀본 곳이 없었지만 어디에서나 "불가능하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나는 여기 나는 살아 있지만 그들은 죽었다. 나는 언제나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리라고 믿었다. ... 하지만 소심하고 자만에 차 있는 대령과 같은 부류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시키는 대로 복종하는 일뿐이었다.
 
p.376
정의를 실천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p.382
사람이란 모름지기 사태를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계획을 수정하려고 애쓰며,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배워야 하는 법이다.
 
내 형제들이여. 나는 그대들의 원수를 완전히 갚는 일에 실패했다. 그리고 내가 복수를 했더라도 그대들의 생명을 되살려 놓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실패했다. 죽은 자를 되살릴 수는 없다. 오로지 새로운 생명만이 그 죽음이 잊히게 할 것이다. 새로운 다른 생명들. 
  
p.399
나는 박해받았기에 증오와 비참함에 익숙했다.
유일한 기쁨이자 커다란 기쁨이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었다.
 
p.401
돈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자유를 준다는 걸 나는 이미 게토에서부터 알고 있었다. 
  
  p.404
바르샤바, 잠브로프, 자렘비, 어느 곳에나 살육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나치 친위대의 얼굴을 하거나 폴란드 작은 도시의 시장, 소련군 대령, 또는 도둑질하는-kg을 속여서 파는- 미국인 정육점 주인의 탈을 쓰고 있었다. 그들과 상대하는 건 어떤 대가를 치르든 피해야 했다. 그리고 살아남아서 자기만의 요새를 세우려면 지금은 그들의 공범자가 되지도 말고 그들과 맞서는 것조차 피해야 한다는 것도 배워야 했다. 모든 도시의 중심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어느 곳에나 인간다운 인간과 살육자를 갈라놓는 전선이 형성돼 있었다.
 
p.405
나는 지지 않기 위해, 기계에 묶이지 않기 위해 싸워야 했다. 자기의 삶을 선택하고 그 음울한 작업장과 먼지 나는 창고에서 벗어나려면 싸워서 이겨야 했다. ... 새 생명을 만들고 가족을 보호할 능력을 가지려면 빨리 갈 길을 정하고 돈을 벌어야 했다. 
  
p.412
가족이 살아 있을 때 해줄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제정신이 아닌 일이었다.
죽음이 가족을 앗아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것이 바로 미친 짓이었다.
 
p.422
"삶을 좀 즐기도록 해봐. 자네는 늘 싸우고 있어. 살아가는 방법도 배워보라고. 자네는 아직도 몰라."
 
"자네가 살아남기 원했기에 살아남은 것이야."
 
p.429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도 거리를 두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p.447
언제나 첫 단계가 가장 어려운 법이다. 바르샤바에서도 전차가 움직이기 시작해 매달려야 했을 때, 승강구에 있는 폴란드 경찰이 어떻게 행동할지 몰랐을 때, 게토의 담을 한 번도 넘어보지 못했을 때, 그런 때가 가장 어려웠다. 첫 단계를 뛰어넘으면 그 후에는 모든 게 쉬워졌다. 
 
p.507
내가 타인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면 인생의 의미가 어디 있겠는가?
 
살아가고 끝까지 버텨내면 언젠가는 다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 나의 죽음과 내 가족의 죽음을 보상해서, 우리의 생명을 영원히 이어가게 되는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한 누군가가 남아서 내가 사랑한 사람들을 위해 그 이야기를 전하고 증인이 돼 줄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이것은 나의 운명이다.
 
p.508 에필로그) 내가 사랑한 것들을 위하여
나는 우리가 바탕은 모두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모두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 내가 삶에 기여한 모든 것이 곱절이 돼 돌아온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의 경험과 운명이 우리 스스로를 인도한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를 전진하게 하고 어떤 일을 하게 만드는 운명 말이다.
 
만약 내가 손을 내밀어 남을 돕지 않는다면 내 삶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복잡하고 개성적인 한 명의 인간은 인간 공동체라 불리는 전체의 더없이 귀중한 일부분이다.
 
" 인간 공동체를 받들어야 하고 모든 인간의 복지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 개인의 이익은 공공의 이익이 돼야 하고, 상호의존을 통해 공공의 이익은 개인의 이익이 돼야 한다는 것은 자연이 정한 원칙이다. 사람들 사이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유대감이 있는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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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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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서로에게, 누구나 외계인이다. ('코리언 스텐더즈' 중에서)

 

이 책에는 총 10개의 단편소설이 묶여져 있다.

그리고 그 중에서 나는 '카스테라'와 '고마워, 과연 너구리야'와 그리고 '갑을고시원 체류기'가 기억에 남았다.

 

역시나 박민규이다. 그저 그이기에 이런 책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뭐랄까 그만의 독특한 발상은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것이리라.

아, 블랙코미디라는 건 머리가 똑똑하지 않으면 웃기 힘든 건가 보다.

아직 적응이 안되는 걸로 봐서는 아, 나는 아직 머리가 덜 익은 것이 아닐까.

 

조금 아쉽다. 박민규의 소설은 분명 메시지가 있고, 유머가 있다.

그러나 이 두마리 토끼를 다 잡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혹은 이 두마리 토끼에 대한 독자의 기대가 그의 소설을 어렵게 하는건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나는 아쉬움이 남았고, 푸욱 빠져들기 보다 겉만 실컷 햝은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뭐, 그래도 읽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고. . . 저자에 대한 예의는

글쎄, 좀더 생각을 해보자. . .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

1. 문을 연다

2. 코끼리를 넣는다.

3. 문을 닫는다.

 

아, 이게 뭐야-

이건 고전 유머이고, 단지 이게 '카스테라'라는 소설에 나온다는 것 뿐이다.

 

냉장의 세계에서 본다면, 이 세계는 얼마나 부패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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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DO 2011-08-08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sevi님, 안녕하세요 :-)

연극 <카스테라>의 대학생 기획팀 'MODO'입니다.



sevi님께서 작성하신 리뷰, 잘 읽어 보았습니다. 문화예술의 입지가 점점 좁아져만 가는 요즈음, sevi님의 글에서 저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와의 교집합을 발견해 반갑고 감사한 마음으로 메일을 보냅니다.



sevi님이 포스팅하신 박민규 작가 관련 리뷰를 쭉 훑어보면서 저희는 참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독서와 문화예술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는 요즘 세상에, 문화예술의 향유를 위해서는 '인도자', 혹은 '정보 제공자'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감했습니다.



그렇기에 저희 MODO팀은 연극 <카스테라>의 '정보 제공자'로서 sevi님께 공연을 소개하려 합니다. 연극 <카스테라>는 잘 알고 계시는 박민규 작가의 소설 <카스테라>를 원작으로 한 공연으로서 그 작품성과 가능성을 인정받아 원작자이신 소설가 박민규님과 밴드 '카스테라', 그리고 서점 '알라딘'의 지지와 후원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훌륭한 작품성만으로 '승부'를 볼 수 없는 곳이 이곳 대학로 연극계의 현주소입니다. 7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올리는 작품이니만큼 연극 <카스테라>는 관객과의 소통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sevi님께 연극 <카스테라>에 대한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리는 동시에 <카스테라> 관람을 권하려 합니다.



저희 MODO팀은 연극 <카스테라>에 관련한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희 공식 블로그에 방문해 주시면 여러 이벤트를 통해 연극 <카스테라>를 할인된 가격에 보실 수 있도록 배려해드리고 있습니다. sevi님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읽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신선하고 놀라운 연극 <카스테라>와 함께 즐거운 여름 보내시길 바랍니다:-)




http://blog.naver.com/aptory



대학생 기획팀 'MODO' 드림
 
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이레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수학의 목적은 오로지 진실을 밝혀내는 데 있어" 

"도중에 그만두면 정답은 영원히 찾아낼 수 없어."

박사가 사랑한 수식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박사는 무엇을 찾고자 한 것일까? 
 
이 책에는 수학자인 박사와 그의 미망인 형수, 그리고 새파출부와 그의 아들 루트-박사가 부르는 애칭-가 등장한다. 이야기 속에서 박사는 교통사고로 뇌를 다쳐, 기억이 1975년에 멈춰져있다. 더이상 새로운 기억은 기록되지 않으며, 다만 지금 이순간 80분, 즉 1시간 20분씩만 기억할 뿐 말이다. (이러한 설정은 메멘토와 같은 영화에서 많이 보았던 것인지라, 낯설음이나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박사는 숫자와 수식에 집착하고 있었다. 아니, 아마 그에게는 이것들이 가장 친숙한 것이었을테니 당연한 것일까. 새파출부와의 첫만남에서 던진 대화가 '신발 사이즈가 어떻게 되나?' 에서 시작해서, 꼭 누군가의 첫만남에서는 '숫자'를 물어본다거나 수식과 연관시켜 대화를 이끌어 나간다.  
 
새파출부와 그녀의 아들 루트, 그리고 박사.
이 셋이 만들어 가는 사소하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들.

숫자와 수식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려는 박사의 모습과,
야구라는 매체, 즉 기억장애가 있는 박사와의 접점을 만들어 
그와 시간을 공유하려 했던 새파출부와 그 아들 루트의 이야기는 감동적이었으며, 
한편으로는 정말 눈물겹다고 밖에는 말하지 못하겠다.
(글에서는 이 상황이 눈물겹다기 보다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그려져있다.) 
 
스스로 가장 친숙한 것을 통해 세상과의 이야기를 시도하는 모습, 그런데 이것이 고지식함이 아니라 친근감으로 다가온다는 점에서 소설 속의 박사는 매력적인 인물임에 틀림없다고 나는 평가해본다. 나머지 파출부와 그의 아들 루트도 꽤나 따뜻한 가슴을 지닌 사람들이고.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내게는 소설이 주는 즐거움과 함께 또다른 이점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더이상 수학의 수식들이 공포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더이상 나를 괴롭히던 성격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즉, 과거 골치아픈 수학문제들을 풀기위해 존재하던 것이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 된 것이다. 이로써 나는 입시 수학이 주었던 거짓공포에서 벗어나 진실에 가까워 진 것일까.
 
마지막으로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참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찾은 진실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것은 아마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진심'은 아니었을까... 
 
p.s) 참고로 이 소설을 영화로한 동일한 제목의 영화가 있다.
      기회가 되면 꼭 보시라! 나도 봐야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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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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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자 2명, 차량을 탈취해 탈출. 1명 검거
지난 17일 오후, 정선군 소재 H병원에 수용된 정신질환자 이모씨(24)와 류모씨(24) 등 2명이 종이봉투를 수거하러 온 봉고차 기사를 폭행 감금하고 차량을 탈취해 탈출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 (중략) .......
- <강원일보> 2004년 9월 18일자 사회면
 
시신 없는 정황상 자살, 자살방조죄 성립될까?
지난 9월, 정선 H병원을 탈출한 후 실종된 류승민 씨에 대해 경찰이 정황상 자살로 결론을 내린 가운데, 폭행 감금과 차량 탈취 및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된 동행 환자 이수명 씨에 대한 첫 심리가 이달 18일 오후 강원지법에서 열릴 예정이다. ....(중략).....
- <강원매일> 2004년 10월 18일자 사회면
 
* 위 신문기사 내용은 책에서 인용한 것이다.
 
  세상에는 하나의 사건에 대해 여러 시각들이 있으며, 이에 따라 수많은 의견과 견해의 차이가 발생한다. 오늘 소설에서 만나게 되는 두 인물, 즉 주인공인 수명과 승민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이 소설을 읽으며 두 사람의 상태와 정황을 파악하게 되면 이 두 사람이 한 행동이 수긍되어지고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허나 그들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위의 신문기사와 같이 생각할 수 밖엔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내 심장을 쏴라!'는 소설 속 승민의 대사이다. 세상은 자신을 가두려 하지만, 자신은 결코 죽지 않는 한 그 속에 갖혀 있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한 말이다. 왜 이런 말을 하게 된걸까.
  자,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라도 승민에 대해 좀 살펴보자. 소설 전체 내용을 두고 승민을 판단해 보면 분명히 그는 세상이 우려할 만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는 과거 어떤 물류창고의 방화범 용의자였으며, 또한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이었다. 세상은 그런 이유들로 그를 규정화하고 판단내려버린다.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말이다. 거기에는 희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이 그를 긍정적으로 바라봐주지 않는다는 말이다. 단지 애물단지 혹은 골치거리로만 바라볼 뿐! 그래서 세상은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것이다. 이는 좋게 말해 입원이지, 골치거리로 여겨지는 그를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가둔 것이다. 세상은 그의 사정에 대해서 관심가져 주지 않는다. 세상은 그를 도구다루듯 다루려고만 하지 결코 이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그는 갑갑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고, 자신을 가두려고만 하는 세상에 저항할 수 밖엔 없었던 것이다.
  결론으로 가보자. 좀 이상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우리는 한 사람을 바라볼 때에 최대한 긍정적으로, 혹은 희망적으로 바라봐 줄 필요가 있다. 그의 과거가 어찌되었든 말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따스한 시각, 즉 사랑만이 그 존재를 흔들어 놓을 수 있기 때문에.
  앞서 이야기 한 내용이 좀 이상적이었기에 이번에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조금더 이야기를 심화시켜보면, 범죄자와 정신적 문제를 가진 이들의 '인권문제'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답게 살아갈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 같은 것들이 오늘 이 소설에 등장하는 수명과 승민에게 있다면, 그것을 타인에게 해가되지 않는 이상은 적극적으로 보장해줘야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가 범죄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어떠한가? 정신적 문제를 가진 이들에 대해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느냐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효율이라는 문제도 있겠지만, 한 곳에다 몰아넣고 통제하고 관리하는 것이 과연 인격적인 것일까? 그 고민을 나와 우리, 그리고 사회가 해나가야 할 것이다.
 
p.s)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특히 초반부분은 지루한데, 이는 그 소설 속의 상황으로 빠져들기 위한 준비단계라고 생각하면 괜찮을 것 같다. 또한 한번씩 지겨울 때가 있는데, 느긋한 마음으로 책을 계속해서 읽어나간다면 별다른 문제는 되지 않을 것 같다. 나의 감상문이 지루한 내용으로 이루어져있는데 반해,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테니깐...         

p.s 2) 이 소설은 '운명이 내 삶을 침몰시킬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작가의 말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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