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읽어드리겠습니다 - 유광수의 고전 살롱
유광수 지음 / 유영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스로 우리 고전을 자주 읽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주 가는 인터넷 서점 구입기록과 집 근처 도서관 대여 목록을 보고 깜짝 놀랐다. 대충 읽은 책, 발췌독 한 책까지 모두 합하면 올 한해 읽은 책이 최소한 200여권은 넘었을텐데 그중 우리 고전은 많이 잡아도 열다섯권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신간 '복을 읽어드리겠습니다'를 만났다. 저자는 팟빵 매거진 <월말 김어준> 고전문학 코너를 맡은 유광수 교수. 사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고전해석이라는 주제보다는 제목 때문이다. "복을 읽어드리겠습니다"라니. 뭔가 이 책을 읽고나면 없던 복도 내게 찾아올 것 같은 느낌?이었달까.

1관 행운의 여신은 뒷머리가 없다. <복돼지와 김진사>

행운을 서양에서는 '여신'이라고 부를 때 우리는 '업'이라고 불렀다. 집안에 깃들어 복을 주는 상서로운 귀신이나 동물 같은 것 말이다. 그래서 툇마루에 밑에 사는 커다란 구렁이를 절대 해코지하지 않았다. '업구렁이'이니까.

서양의 행운은 자신이 능동적으로 알고 잡으려고 해야 한다는 생각이고, 우리 복은 복이란 걸 잡을 생각도 없이 자기 할 일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 때가 되어 복이 올 거란 생각이다.

<복돼지와 김 진사>

2관 과정에 복이 있다. <구복여행>

시골 마을 고아 총각은 '사람이란 제 복이 있는 법'이란 노인의 말을 듣고 머나먼 서역국으로 복을 찾아 떠난다. 가다가 예쁜 부자인데 첫날밤에 신랑이 모두 죽어버리는 처녀, 열리지 않은 배나무를 가진 주인, 승천하지 못하는 이무기, 물고기가 잡히지 않은 아이를 만나 길을 묻고 서역에 가면 그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겠노라고 약속한다. 서역에 도착했을 때, 만난 노파는 복을 찾을 수 있는 곳이 어딨냐며 타박하지만 총각은 자신은 복을 못찾아도 괜찮지만 약속한 네명에게 받은 부탁이 있어 돌아가지 못하겠노라고 한다. 노파는 낚시하는 아이 뺨을 한대 갈기고, 이무기는 구슬이 두개라서 못올라가니 하나를 버리고, 배나무 주인은 배밭에 묻힌 걸 파내버리면 된다고 한다. 처녀는 동자삼, 여의주, 금덩이를 가진 남자를 만나야 잘 살수 있따고 전해 주면 된다 한다. 총각이 아이 뺨을 때리니 아이가 넘어지는데 가만 보니 사람이 아니라 어린이처럼 생긴 커다란 무(동자삼이겠지 뭘;;)였다. 배나무밭에 돌을 파낸 것을 가져오니 금덩이고 이무기가 버리고 승천한 여의주를 가지고 총각은 당연히 처녀와 결혼한다.

이거이거, 초등학교 때 집에 있던 책에서 읽을 이야기이다 ㅎㅎ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작가는 총각이 찾아 나선 복은 그의 여정에 담겨 있다고 말한다. 자기 스스로 복을 찾지 않으면 어떤 결과도 얻을 수 없다는 단순한 진실을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이 책은 제목을 참 잘 지었다. 부제는 "옹졸하면 귀신이 찾아온다"인데 5관의 제목이기도 하다.

5관 옹졸하면 귀신이 찾아온다. <옹고집전>

옹고집전 모르는 사람은 없을테고. 다 아는 내용인데도 우연히 읽으면 읽을때마다 재미있는데 그 이유가 뭘까? 옹고집이 나중에 크게 고생하다가 자기 잘못을 뉘우치는것이 쌤통이라서? 작가는 학대사가 옹고집을 혼내주기 위해 가짜 도플갱어를 만든 것에 핵심이 있다고 한다. 옹고집을 혼내주려 한다면 다른 방법도 있을 텐데 굳이 지푸라기 가짜를 만들어 한바탕 소란을 피우게 하다니. 옹고집은 부자인데도 같이 사는 부모의 식사가 아까워 주지 않은 저질이다. 그런데도 옹고집은 가짜에게 시달리는 정도의 곤욕을 당하다가 뉘우치고 제자리고 돌아간다. 우리 옛이야기에는 벼락 맞아 죽은 부자도 있었는데. 옹고집은 뭘 잘못했다고 후회하고 뉘우쳤느냐는 거다.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구나.' 아니 자기가 없어서 더 집안이 잘 돌아간다는 것을 알았다. 작가는 말한다. 옹졸해지지 말라고. 옹고집처럼 자기다움이 없으면 도플갱어에게 당한다고 이야기 한다. 아쉽다고 아깝다고 남들이 몰라준다고 옹졸해지지 말고 항상 커피값이라도 내고, 인사라도 먼저 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소개하는 이야기 말고 '내복에 먹고 살지' 등도 재미있는데 나머지는 직접 읽어보시라고 생략. 모두 13관으로 이루어져있다. 기억에 가물가물하지만 대개는 아는 이야기이다. 오랫만에 유쾌한 시간이었다. 한동안 청소년을 위한 우리고전읽기 시리즈에 빠져있다가 주춤했는데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이랑 다시 끝까지 읽어봐야겠다.

유명 작가님의 책답게 수월하게 금새 킥킥대면서 읽었다. 하지만 많은 이야기를 소개하려다보니 좀더 깊은 내용을 기대했던 나로서는 중간에 끊기는 것 같아 아쉬운 느낌도 없지 않았다. 다음 책은 조금 더 크고 두꺼워도 좋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