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가, 여행기자, 사진가 박종인의 인문기행.

당신이 살고 있는 이 땅, 이 하늘에 관한 이야기"



기행의 흔적을 모아보았다. 역사에 일천하고 아직 돌아보지 않은 곳들이 허다하지만, 적어도 내 신발 자국이 밟힌 곳들에 대해서 만큼은 이렇게 조금 다른 흔적들을 남겨보았다. 잘난 척하려는 은근한 자만심도 없지 않다. 여행자들께서는 이 자만심에 물을 끼얹어 더 훌륭하고 더 깊고 더 울림이 큰 여행을 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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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오랫동안 인문학에서 금기시 되어왔던 명사들의 사생활을 파헤쳤다. 위에서 언급한 안기영도 그렇지만,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의 한 명이었던 박희도의 삶도 그렇다. 당대에는 친일보다 성추행을 더 금기시 했나보다. 박희도의 친일행적은 현대에 들어와서 속속들이 밝혀졌지만, 그가 전 조선을 뒤흔든 ‘여 제자 정조 유린 사건‘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을 기록한 책은 없었으니...

조선 귀족 대부분은 작위를 받은 지 겨우 10여년 만에

그 많던 재산을 모조리 탕진하고 심각한 생활고에 허덕였다.

1930년대까지 재산을 유지한 귀족은 토지왕 민영휘 자작,

이완용의 장손 이병길 후작과 차남 이항구 남작,

박영효 후작, 고희경 백작, 윤덕영, 한창수, 이달용, 이풍한 김사철 남작 등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나머지 귀족들은 재산을 송두리 째 들어먹고 오늘은 이왕직, 내일은 총독부로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드나들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깡통만 안 찼을 뿐이지 거지나 진배없었다.

나는 그때 조선의 이혼, 결혼제도에 커다란 불만을 갖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사랑하는 이와 정식으로 결혼할 수 없는 비애 !

싫은 아내와 이혼할 수 없는 고민!

이 때문에 젊은 조선 청년 남녀의 고민이 그 얼마나 컸을까요?

-안기영, 김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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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과거부터 수많은 자연재해가 일어난 나라이다. 과연 그런 나라의 땅에서 천년 전의 역사를 얼마나 찾아볼 수 있을까?
일본의 가옥 특징은 목조 건물이다. 하여 지진에 취약하고, 화재에 취약하다. 역사적으로 일본에선 수많은 대지진과 대화재가 일어났다. 하여 천년 전의 가옥, 사찰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러한 자연재해에 전부 아스라지고 말았다. 하여 매번 복구하고, 또 복구한 그러한 도시가 교토인 것이다. 뭐 따지고보면 우리나라도 경주를 천년고도라고 부르니 할 말은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교토의 사람들의 칠전팔기 정신을 꽤 높이 사고 싶었다. 도시의 동력을 잃게 되었을 때, 그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능력이 정말 너무 탁월했다. 심지어 그 위기가 여러차례 왔는데, 그 모든 것을 다 기회로 바꿨다는 것이 정말 와.. 오뚜기정신인가 ㄷㄷ
진짜 정말 이런 면은 확실히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뭐 ... 나만 그렇게 생각하면 뭐하나 ... 매번 일본의 안좋은 점만 배우고 좋은점은 1도 배우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태반인데...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한국과 일본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각각 개성이 풍부한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한국은 일본의 고대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일본은 한국의 근대 문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문명의 교류는 평화롭게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침략을 통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런 우여곡절을 거쳐 한국과 일본은 지구상에서 인종적, 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가 되었다. 미국의 저명한 문명사가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라는 명저에서 이런 한국과 일본을 ‘유년기를 함께 보낸 쌍둥이 형제’로 비유했다. 역사 인식을 둘러싸고 갈등과 대립을 되풀이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에게 한일 관계의 역사를 새롭게 인식하라고 촉구하는 그의 경구(警句)에 백 퍼센트 동의할 수는 없지만 교토의 유적.유물에는 그런 충고를 뒷받침해 주는 사연이 너무나 많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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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의 역사 2권은 1권에 비하여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의 내용이 많이 있다. 친일파에 대한 분량도 상당하며, 정권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간 민초들에 대한 부분도 상당하다.. 이러한 면에서 볼 때 정말 박종인 기자님이 왜 조선일보에서 연재를 하는건지 ㅠㅠ 큽.. 아 어쩌면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걸까?



TV조선에서 방영된 ‘땅의 역사‘에서 거창 양민학살에 대하여 조명했을 때, 박종인 기자의 울분을 기억한다. 그리고 이 책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아마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거창 양민학살사건, 여순 양민학살사건, 정권에 의해 빨갱이로 규정되어 억울하게 죽어간 양민학살 사건을 본다면 아마... 그래서, 너무 잔혹하고 믿고 싶지 않아서, 국민을 지켜야할 국가가 자행한 일이라는게 너무 충격적이라 기억속에서 지우고 싶은 걸 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이때의 국가의 모습은, 국민을 학살하던 국가의 모습은 일제강점기 때의 일본과 다를바가 없었기에... 일제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기에.

은인자중(隱忍自重)하여라우리는 나라를 등진 사람이니라

민초, 우리들

"나는 죽어도 되니, 대를 이을 우리 남극오빠는 살려줘요"

오빠 백남극은 살았고, 여동생 백순례는 들판 건너 꽃쟁이 마을에서 총살됐다.

우리 고모님은 좌익이 아니다.

작전 중 미 복구지대의 적 수중에 들은 주민은 총살하라

잊힐까 서러워땅에 새겨둔다.

사람이 총을 쏘니까 막 내 위로 엎어질거아니야. 그 사람들이 막아줬어

어머니는 저쪽, 우리 형은 요쪽, 피만 위에서 내리 쏟아진 거 그것만 덮어 썼지.

그냥 위에서 막 뭐 넘어지니까 막 피가 입으로도 눈으로도 다 들어갈 거 아니야.

사람의 피가 참 냄새가 지독해. 어째 그런고, 그래도 거기서도 냄새가 지독하단 생각은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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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난 그 어떤 사학자, 교수님들보다 박종인 기자님의 기록들이 더 맘에 와닿는다. 그리고 나의 여행에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고.

내가 원하는 역사가 담겨있는 여행이란 바로 이런 것이었으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 대한 역사, 그 지명이 남아있는 유래, 이 땅에서 살았던 촌부들의 이야기...... 겉으로 나와 있는 역사가 아닌, 속에 감춰져있는 역사를 이렇게 알려준다는 게 너무 감사하다.

찬란한 5000년 역사만 알고 있는 우리를 위해 책을 썼다. 역사는 입체적이어서, 찬란하지만도 않고 추잡하지만도 않다. 그 빛과 어둠이 합쳐서 만든 역사 위에 우리가 산다. 앞으로도 우리는 그런 역사를 만들 것이다.

위대한 배달민족이 남긴 찬란한 역사만을 알고 있는 분들은 심호흡을 하고 페이지를 넘기기 바란다. 소인배의 행태에 분노하다가 대인들이 행한 덕행에 위로받기 바란다. 역사는 우리가 우리 손으로 만든다. 이 땅에는 그 역사가 온전하게 남아있다. 땅의 역사다.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 이외에서 진리를 찾으려 하므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 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다.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곡하려 한다.

-신채호 <1925/1/2 동아일보 - 낭객의 신년만필>

※1910년 10월 일본에 의해 조선의 귀족 된 양반※



1. 후작: 이재완, 이재각, 이해창, 이해승, 윤택영, 박영효

2. 백작: 이지용, 민영린, 이완용(을사오적)

3. 자작: 이완용(위와 동명이인), 이기용, 박제순, 고영희, 조증응 등등

당신들은 조선에서 13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우리는 조선에서 잡초제거, 뗄감 베어오기, 양반집 구경거리,

그리고 먹을거리를 구걸하는 것이 전부였소

그냥 관광객 모으려고 근사하게 나제통문이라고

내가 이름 붙인거지. (중략)

그런데 역사로 기록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

군청에 가서 이야기했지, 이건 잘못된거라고

그랬더니 이러더라고 ?

알지만 관광이에요. 여기가 경상도에서는 수학여행길이에요.

백제를 평정할때 김유신이 여기로 지나갔다고 해야지요.

여기를 1925년도에 뚫었다고 하면 안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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