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대한민국 도슨트 4
전석순 지음 / 21세기북스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난 여행을 좋아한다. 그냥 여행이 아닌, 그 땅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여행을 좋아한다. 해서 내 여행에는 언제나 그 땅의 역사를 알려주는 길라잡이가 있었다. 때로는 책이 길라잡이가 되었고, 때로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박종인 기자님이 그랬으며, TV에서 방영해주는 역사 다큐가 그랬다. 그런 나에게 또 하나의 길라잡이가 생겼다. 바로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다. 오늘 소개할 책은 이 시리즈의 네 번째 춘천편 이다.



나에게 춘천은 많은 추억이 있는 도시다. 내 할머니가 살고 있는 곳이며, 우리 아빠가 태어난 도시이고, 우리 엄마와 아빠가 결혼한 도시다. 뿐만아니라 주민등록초본에서 떡하니 보이는, 내 본적, 그 본적이 바로 여기, ‘춘천’이다(하지만 서울 태생이라는게 함정). 그래서 춘천은 나에게 여러모로 마음이 많이 가는, 그런 애틋한 도시다. 


춘천에 가면 어느 겨울에는 논에다 조성한 얼음 썰매장에서 아빠랑 동생이랑 신나게 놀았고, 어느 봄에는 큰아빠와 아빠 손을 잡고 동생과 함께 육림랜드를 갔다. 어느 여름 날에는 아빠 친구들과 함께 여름휴가를 떠났었고, 어느 가을 날에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춘천인형극제를 보러 가기도 했다. 내 어린시절, 춘천은 이토록 즐거운 추억으로 가득했다(물론 아픈 추억들도 있지만).


내 어린날을 가득 채운 춘천이었으나, 커가면서 점점 멀어졌다. 의식적으로 가지 않게된 것도 있었다. 분명 그 곳에는 할머니가 계시지만, 말 못할 가족사도 있고 하다보니 점점 발길이 닿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던 춘천이었다. 그랬었는데, 이 책 덕분에 저 밑바닥에 있던 춘천이 뭍으로 나왔다. 온갖 추억들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어린날 내 추억뿐만 아니라, 어려서부터 자주 들었던 아빠의 추억도 같이 떠올랐다.


춘천이라는 도시는 나보다 우리 아빠에게 더욱 각인되어 있는 곳이다. 춘천은 여전히 아빠의 고향이면서, 아빠의 엄마가 살고 있다. 아빠를 힘들게 한 형제들도 그곳에 있으며, 아빠의 친구들도 춘천에 있다. 무엇보다 젊은 날 아빠가 모진 고생을 했던 그 곳 역시도 춘천이다.


오래전부터 닭갈비는 서민과 가까운 음식으로 싸고 푸짐했다. 1970년대 닭갈비는 1인분씩 팔지 않고 1대씩 팔았다. 닭갈비 1대 가격은 100원이었따. 1978년 삼양라면과 초코파이가 50원 이었고, 1979년 서울 지하철요금이 60원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닭갈비는 갈비라는 이름치곤 무척 저렴한 편이었다. P 075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200m 남짓한 춘천 명동 닭갈비 골목은 그대로 남아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한자리에 있던 닭갈비집이 수두룩하다. 어지간하면 50년 전통이고 2대째나 3대째 이어져 오고 있는 곳도 많다. P 079


아빠가 젊을 적 친구들과 자주 갔었다는 명동 닭갈비 골목. 수중에 돈이 별로 없어도, 닭갈비 만큼은 저렴하여 친구들과 함께 소주한잔을 하며 고된 하루를 달랬다고 했다. 물론 그 때와 조금은 달라진 모습인 명동 골목이지만, 그래도 그때나 지금이나 명동 닭갈비 골목은 청춘들을 반겨준다. 


호반의 도시 춘천 답게 춘천에는 여러 댐이 있다. 지금은 유명한 관광명소가 되었다. 소양강변에 건립된 소양강 처녀상도 그렇고, 소양댐이 그렇다. 하지만 이런 댐 건설 이면에, 수 많은 마을들이 수몰되었다. 아주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의암댐)수몰된 마을 중에는 우리 아빠가 나고 자란 곳도 있었다. 난 할머니 집이 있는 유포리가 아빠가 나고 자란 곳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댐의 크기만큼이나 수몰 규모도 컸다. 춘천시를 비롯한 양구군과 인제군에 걸쳐 수몰 지역이 생겼다. 6개 면, 38개리가 잠기는 바람에 이주한 주민만 해도 1만 8,000여 명에 이르렀고 수몰된 집과 건물도 4만 5,000여 채에 달했다. P 041


꽤 많은 곳을 놀러다니면서 의도치않게 댐공사로 인한 수몰지역도 갔었는데, 정작 아빠가 어릴적 살던 집이 수몰되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땐 그 마음이 참 미묘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저 강 바닥에 가라앉았을까? 하지만 가라앉은 추억만큼, 더 많은 사람들의 추억이 지금도 소양댐, 의암댐, 춘천댐 등 곳곳에서 새로운 추억이 피어나고 있다.


콧구멍다리 아래는 소양강댐의 차가운 물이 보여있어 한여름에도 서늘한 기운이 맴돌았다. 그래서 여름에는 더위를 식히려는 사람들이, 겨울에는 빙어를 잡으려는 낚시꾼들이 콧구멍다리를 찾았다. P 220


콧구멍 다리는 철거를 앞두고 있다. 낡은 다리 대신 소양7교가 그 역할을 할 것으로 전해졌다. P 221


아빠의 어린날 추억이 저 강 아래에 있다면, 어린날 내 추억도 곧 사라질 듯 하다. 춘천 갈 때마다 아빠가 대려가줬던 콧구멍 다리, 겨울만 되면 빙어잡는 낚시꾼들이 즐비했던 그 다리가 철거된다고 한다. 이 곳에서 빙어를 처음 먹어봤었는데. 이렇게 어린 날의 내 추억이 어린 곳이 또 사라져 간다는 사실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이 책의 목적은 춘천을 알리기 위함도 있겠지만, 나처럼 사라져가는 추억을 대신 붙잡아주기 위함이 아닐까 싶었다.


​시기를 잘 맞추면 청평사로 들어서난 내내 사방에서 쏟아지는 낙엽에 걸음마저 무뎌진다. P 245


1,000년이 넘는 시간을 품은 청평사는 명승 제70호로 춘천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절터는 강원도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어 있다. 청평사는 고려 광종 24년에 영현선사가 세운 백암선원으로 시작되었다. P 247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한 15분 정도면 도착하는 청평사. 내 기억 속에서 제일 어렸을 적 찾은 사찰이 바로 청평사다. 당시 청평사에 대한 기억이 너무 좋아서, 꽤 오랜시간이 흐른 지금도 나는 사찰을 찾아다닌다. 산속에 있는 사찰을 찾으면, 언제고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해졌다. 하지만 이런 기억과 달리, 그 어릴적 청평사를 방문한 이유는 참으로 슬픈 이유였다. 청평사는 나의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떠나보낸 장소였다.


하지만 그땐 너무 어렸기에, 어린 내 눈으로 본 청평사는 그저 너무 멋졌고, 구송폭포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좋았고, 공주굴에 얽힌 상사뱀 전설이 놀라웠다. 할아버지를 보내드리고 할머니댁으로 돌아온 뒤, 어른들 모두가 침울해 있는데 나 혼자만 멋진곳을 다녀왔다고 그림을 끄적거렸던 기억이 있다. 한참 지나서야, 그날 그곳 청평사에서 할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내드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후로 나에게 그곳은 조금은 슬픈 장소가 되었다. 


그 이후 오랫동안 가보지 못한 청평사, 조만간 할아버지께 인사드리러 한번 찾아가야겠다.




이 책은 꽤 오랜시간 잊고 있었던 춘천, 그리고 어린 날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책은 정말 중국요리, 먹잘알들을 위한 책이다. 혹은 예비 먹잘알들을 위한 책일 수도 있다. 그리고 중국 여행을 하려는 누군가에게, 중국 먹방여행을 찍고 싶은 누군가에게 그 어떤 여행 가이드북 보다 0순위로 필요한 책이라 생각한다.

단순한 이론서나 개론서를 넘어서 이 책을 따라 가시면 미식을 테마로 한 제대로 된 중국 여행을 즐기실 수 있을 겁니다. 더 나아가서 맛보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 먹은 음식이 중국 요리의 어떤 계보에서 발달했으며, 그 수준은 어떤지 척 하고 가늠할 수 있는 든든한 내비게이션을 곁에 둔 셈이 됩니다.

책에는 중국 8대 요리의 역사, 지리적인 특징, 식재료의 종류, 향신료의 쓰임을 기본적으로 정리하였고, 이에 곁들여 중국 명인들이 전수하는 정통 레시피를 어렵게 얻어 귀하게 공개합니다. 이 책 한 권이면 중국 요리 초보도 전문가 이상의 식견을 가질 수 있으리라 자신합니다.

음식은 예술이자 학문입니다. 단순한 끼니의 문제를 넘어 인류의 역사를 가능케 한 위대한 창조물이지요. 이 안에는 전통과 문화, 생활상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공자는 음식을 중요시 여겨 "음식은 정교하고 섬세할수록 좋다"라고 제자들을 가르쳤습니다. _P 014

무쉬는 계수나무 꽃을 이르는 말인데 계란 노른자를 부서지게 볶은 모양이 노랗게 핀 꽃잎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계란은 중국어로 ‘지딴’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지’나 ‘딴은 모두 중국어의 욕설과 동음이므로 맛있는 음식에 이름으로 붙이기 꺼려 했지요. 그래서 계란이 들어가는 요리는 대부분 아름답고 향도 좋은 계수나무 꽃에 비유했습니다._P 049

이 요리는 얼굴이 곰보투성이인 진씨 아주머니가 만들었다 하여 마파두부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1862년 어느 날 유채기름을 파는 사람이 식당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돈이 없어 요리를 시킬 수 없으니 이것으로 두부라도 지져달라"고 하며 유채기름과 고기를 내밀었습니다. 마음씨 좋기로 소문난 진씨 아주머니는 기꺼이 즉석 두부요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혀가 얼얼할 정도로 맵고 뜨겁지만 두부의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유채기름 장수는 배불리 먹고 기운을 차린 후 식당을 나섰습니다. 지금도 쓰촨 청두에 가면 인심 좋은 아주머니의 ‘진마파두부’라는 식당이 성업중입니다. _P 077~078

쓰촨의 요리에서 매운 맛은 다양한 스펙트럼을 지닌다. 고추기름을 듬뿍 넣어 맛을 낸 홍유, 생선 향이 나는 위샹, 양귀비가 사랑한 과일 리치처럼 달콤하게 매운 리즈, 얼얼한 매운 맛 마라, 시큼하게 매운 맛의 솬라, 마늘을 넣어 향을 낸 쏸샹, 약초 맛이 강한 진피 등 그 종류만도 수십가지 이다. 매운맛이라는 것이 단순한 오미 중 하나요, 미각의 통증이 아니라 얼마나 다양한 맛으로 어우러지는 지 쓰촨에 가서야 비로소 느껴볼 수 있다.

차에 딤섬을 곁들이는 시간은 광둥인의 가장 큰 행복입니다. 1851년~1861년 사이의 약 10년간 제위한 청나라 9대 황제인 함풍제 시기에 광둥의 찻집문화가 시작되었습니다. _ P 107

찻집의 꽃은 차보다는 딤섬입니다. 딤섬은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의미로 모양과 조리법에 따라 참으로 다양합니다. _P 109

딤섬 문화는 중국 전역에 퍼져 있으나 지역마다 그 역할이 각기 다릅니다. 북방에서는 식후 간식으로 올라오고 저장과 장쑤지역에서는 차와 곁들이는 다과로, 광둥에서는 그 자체가 정식에 가까운 코스요리로 여겨집니다. _P110

중국의 정통 궈바오러우에는 찹쌀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돼지고기 안심에 옥수수 저분을 입혀 여러 번 튀겨내고 식초와 설탕, 맛술, 생강, 파 등을 곁들인 소스에 볶아 나옵니다. 궈바오러우는 중국요리의 튀김 기술을 잘 표현한 요리입니다. 1차로 돼지고기 안심에 옥수수 전분을 고루 묻혀 약불에 오래 튀겨 고기를 익힙니다. 2차로 센 불에 빠르게 튀겨 색을 입힙니다. 한꺼번에 많이 넣고 튀기면 고기가 엉겨 붙기에 기름을 가득 부은 웍에 몇 회식 나누어 튀겨야 합니다. 그래야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며 부드러운 식감의 고기튀김이 완성됩니다. 전분과 고기가 혼연일체를 이루지요. _P 3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은 시작부터 모순적이었다. 모순은 그 땅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들이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 그들의 삶의 방식이 되었다. 우리가, 주변의 여러국가가 모순적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삶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고 정상적인 삶이었다. 그건 일년이 흐르든, 십년이 흐르든, 시간이 흘러도 절대 변하지 않았다. 그렇게 일본은 그 모순을 들먹이며 이웃나라를 침략하였으며, 침략한 사유를 모순적인 가치관을 들어 정당화시켰다. 아니 지금도 정당화시키고 있다.

루스 베니딕트는 일본인들의 향후 행동을 미국 정부가 예측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했다. 일본이 전후 보다 자유민주적인 노선에서 재건될 수 있도록 계획했던 미국인들은, 일본인들이 패전과 천황의 변화된 역할, 미 점령균의 신탁통치에 어떻게 반응할 지를 알아야 했다. 연합군을 당황하게 만들었던 일 중 하나는, 죽음으로 싸울 것을 맹세했던 일본군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유순하고 우호적으로 변화한 사실이었다. - 서문 中

일본인이 사용하는 범주와 상징을 조금만 이해한다면, 일본인의 많은 행동적 모순은 이미 모순이 아니라는 점을 발견 할 것이다._ P 043

어떤 포로는 죽여 달라고 요청했고, "그러나 당신들의 관습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모범적인 포로가 되고싶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모범적인 포로 이상이었다. 오랫동안 군 생활을 한 극단적인 국가주의자였던 그들은 탄약고의 위치를 알려 주고, 일본군의 병력 배치 상황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미군의 선전문을 쓰고, 미군의 폭격이에 동승하여 군사 목표로 유도해주기까지 했다. 그것은 마치 새로운 페이지를 넘기는 것 같았다. 새로운 페이지에 쓰인 것과 낡은 페이지에 쓰인 것은 정 반대였지만, 그들은 새 페이지에 쓰인 구절을 한결같이 충실하게 실천했다. 물론 포로 전부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_P 071

12세기 이래 쇼균이 실권을 박탈당한 천황의 이름을 가지고 이 나라를 통치했던 것이다. 어떤 시대에는 직능이 극단적으로 분할되어, 유명무실한 주권자인 천황이 세습의 세속적 수장에게 위탁한 실권이, 그 수장의 세습적 정치 고문에 의해 행사되는 경우도 있었다. 기본적 권력은 항시 이중 삼중으로 위탁되었다. 도쿠가와 막부의 명백이 끊어지려는 최후의 시기까지도, 페리 제독은 일본 권력 구조의 배후에 천황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차라지 못했다. _P 102

성조기에 대한 충성이 정당 정치를 초월한 영역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황은 ‘침범할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는 만일 그것이 인간이라도 온당치 않은 것으로 생각할 정도로 국기를 정중하게 다룬다. 그런데 일본인은 더없는 상징성을 지닌 인간을 철저하게 활용했다. 국민은 공경을 다하고 천황은 거기에 응답했다. 그들이 천황이 ‘국민을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황송하여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폐하의 마음을 편안케 해드리기 위해’ 온 몸을 희생했다. 일본처럼 완전히 개인적 유대 위에 입각한 문화에서는, 천황은 국기 따위는 감히 미치치 못하는 충성의 상징이었다. _P 178

천황이 입을 열자 전쟁은 끝났다. 천황의 목소리가 방송되기 전에 강경한 반대자들은 궁성 주위에 비상선을 치고 정전선언을 저지하려 했다. 그런데 그 선언을 일단 발표한 다음에는 모든 사람이 그것에 승복했다. 만주나 자바의 현지 사령관도, 일본에 있던 도조(도조 히데키, A급 전범)도, 누구 하나 그것을 거역하려 하지 않았다. 미군은 비행장에 착륙하여 정중한 환대를 받았다. 한 외국인 기자가 서술한 바와 같이, 아침에는 소총을 겨누며 착륙했지만, 점심 때는 총을 치워버렸고, 저녁때는 이미 장신구를 사러 외출할 정도였다. 일본인은 이제 평화의 길을 따름으로써 ‘천황의 마음을 편안케’해드렸다. 1주일 전까지 그들은 천황의 마음을 편안케 해드리기 위해 죽창으로라도 오랑캐를 격퇴하기 위해 몸을 바치겠다고 했었다. P_181

현대 일본인이 자기 자신에게 행하는 가장 극단적인 공격 행위는 자살이다. 그들의 신조에 따르면, 자살은 적절한 방법으로 행한다면 자신의 오명을 씻고 죽은 후 평한을 회복하는 역할을 한다. 미국에서는 자살을 죄악시 하여 절망에 자포자기하여 굴복한 것으로 치부하지만, 자살을 존경하는 일본인에게는 명확한 목적을 지니고 행하는 훌륭한 행위가 된다. 자살이 이름에 대한 의리에서 당연히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가장 훌륭한 행동방식이 되는 경우도 있다. _P 2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평생을 한국 토박이로서 지극히 평범하고 조금은 가난한 소시민 집안에서 자랐다. 10대 후반에는 TV나 인터넷, 책에서 "꿈은 이루어진다.", "말하는 대로 된다.". "하고 싶은 걸 하라" 등등의 희망적인 메시지가 넘쳐나기 시작했고 나는 그 말들을 지심으로 믿었다. 그렇게 20대가 되었다. … 진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꿈이나 꾸면서 그 말들을 참 열씸히도 따르며 살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 말들과 판이하게 달랐고, 29살인 지금은 20살에 상상하지도 못했던 백수가 되어있었다.

그 동안 나는 얼마나 일 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20~29살, 10년 (120개월) 동안 내가 일한 기간이 얼마나 될까? 나름대로 아르바이트는 열심히 했었던 것 같은데. 평생 이렇게 한량으로 지냈던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대충 주말, 파트타임, 단기 아르바이트 등 전부 합쳐 55개월 (4년 7개월) 정도 일했더라. _P 021

30살이 가까운 성인이 돼서도 10대 때와 변함없이 부모님의 희생으로 살아간다는 게 참 비참한 거더라. 나이 먹을 만큼 먹어 놓고도 여전히 자기 인생 하나 간수하지 못하는 무능력함이 사람을 참 초라하게 만든다. 어쨌든 나는 부모님의 삶을 지불하고 나의 편안함을 누리고 있다. _P 025

20~24살 조금더 놀고, 이 고민 저 고민 하면서 정신 못 차리고 흐지부지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오래 딴짓을 해도 여전히 20대 초반일 것만 같았다. 그러다 어느 날 분득 내 나이가 몇인가 생각해 보니 어느새 20대 중반이 돼 있었다. … 20대 초반에 쌓았어야 할 스펙과 경력이 텅텅 비니까 20대 중반부터 줄줄이 안좋은 상황이 터지기 시작했다. _P 104

예전에 나는 20대 후반에도 20대 초반처럼 능숙하게 할줄 아는 일이 없어도 신입이어도 별 문제가 없을 줄 알았다. 그리고 특별히 좋아하는 일도 없고 전공으로 배운 것도 없다 보니 언제든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분야의 직업을 가질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0~23살에 하는 공부, 하는 일들이 20대 후반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생각을 딱히 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뭔가 하나를 특별히 배워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_P 108

나는 지금 동갑 친구가 0명, 서로 연락하고 지내는 지인은 1명이다. 대인관계가 1명이라는 소리다. 너무 심한가? 처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 하지만 지금은 서로의 가치관 차이, 오로지 가치관의 차이로 하나 둘 멀어져 갔다. _P 198

주변에 꼭 이런 사람 있다.

1. 기승전결 ‘세상에서 내가 제일 힘들어’인 사람

2. 심하게 부정적인 사람

3. 불행한 얘기만 하는 사람

그들은 일상에서 생긴 작은 스트레스부터 저 깊숙한 곳에 꾹꾹 눌러 있던 시커먼 고민까지 잔뜩 쏟아 놓고는 한다. _P 202

누구든 무조건 어른이 되면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게 되어 있다.

그 책임이라는 게 별것 아니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결과가 무엇이든

모두 본인이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룬샷 - 전쟁, 질병, 불황의 위기를 승리로 이끄는 설계의 힘
사피 바칼 지음, 이지연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과거의 나라면 절대로 읽지 않았을 경영서적. 하지만 회사 독서통신으로 『90년생이 온다』를 읽은 이후, 경영서적도 꽤 재밌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읽다가, 이번에 흐름에서 출간된 ★대작☆ 『룬샷』까지 손이 갔다. 룬샷, 이 책은 빌게이츠를 비롯하여 노벨상에 빛나는 대니얼 카너먼, 로버트 러플린, 에릭 메스킨등이 강력 추천하는 도서이기도 했다.


저명인사들의 어마어마한 추천사! 이 중에는 정재승 교수님(과학무식자 피로를 과학에 관심을 갖게해준 멋진 교수님! 흔한 알쓸신잡 애청자1)도 있다. 이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극찬하는 책이라고 하니, 읽기 전부터 두근반기대반! 본격적으로 읽어보려 하니, 바로 다음페이지에서 룬샷이 무엇인지를 알려준다. 아! 룬샷이라는 책 제목에는 별다른 생각을 안하고, 그저 유명인사들이 극찬하는 책이라는 사실에만 신경쓰고 있었다니, 조금 반성 ㅜㅜ


⑴ 룬샷 Loonshot : 주창자를 나사 빠진 사람으로 취급하고, 다들 무시하고 홀대하는 프로젝트(아이디어)


⑵ 문샷 Moonshot : 달에 우주선을 보내는 프로젝트, 아주 중요한 결과가 나올 거라고 다들 기대하고 많은 것을 투자한 프로젝트(아이디어)


⑶ 프랜차이즈 Franchise : 룬샷으로 탄생한 제품의 후속작 또는 업데이트 버전


이 책을 읽기 전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아, 정확히는 문과형 인간들이 주의해야할 사항이다. 이 책은 일부 과학적 원리를 꺼내와,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짜 듣도 보도 못한 물리학 용어 ‘상전이’와 ‘상분리’. 저자는 이 개념을 가지고 와서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렇다고 겁낼 필요는 없다. 나 같은 전형적인 문과형 인간 조차도 쉽게 이해했으니까. 


쉽게 말하면, 이런 물리학 법칙이 일어난 곳이 조직(집단)이라고 했을 때 ‘상전이’는 유지와 변화의 경계이며, ‘상분리’는 유지와 변화의 공존. 그러니까 한 조직에서 상전이와 상분리가 유지될 때, 그 조직에서 나온 룬샷은 폐기처분 되지 않는다. 오히려 여러 지원을 힘 입어 멋진 결과물을 내고, 이는 조직 또는 기업을 계속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그 어느 집단도 동시에 두 가지 상태의 행동을 할 수는 없다. 동시에 두 가지 상태로 존재할 수 있는 시스템은 없다. 그러나 예외가 하나 있다. 앞서 말한 욕조의 물이 정확히 0도일 때 얼음 덩어리와 액체 상태의 물이 공존한다. 0도보다 조금만 낮거나 높아서 전체가 얼어붙거나 액체로 변할 것이다. 하지만 상전이의 바로 그 경계에서는 두 가지 상태가 공존할 수 있다. P 034



잘 가꾸어진 룬샷 하나로 한 나라(또는 기업)의 운명이 바뀐다.


1922년 미국 엔지니어 리오 영, 호이트 테일러. 이들은 실험중 우연히 레이더 탐지기술(송/수신기)을 발견하였다. 바로 해군에게 전투에서 레이더 탐지기 사용을 제안하였으나, 해군은 즉각 거절. 하지만 엔지니어들은 끊임없이 실험하고 다듬어서, 조기경보 시스템을 만들어서 다시 한번 보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역시나 거절. 그렇게 시간은 허무하게 흐르다가 나중에서야, 조기경보 시스템을 테스트하기 시작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테스트 중이던 그날 일본군 항공기 353대가 미국 진주만을 기습공격했고, 이 날 2,403명이 전사했다.


두 엔지니어가 만든 이 기술은 룬샷이다. 하지만 룬샷은 변화/혁신의 다른말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조직은 혁신보다는 안정을 추구한다. 그 결과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후 미국은 변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버니바 부시, 안정과 혁신을 공존시킬수 있는 사람을 선택했다. 버니바 부시는 프랜차이즈를 잘하거나 룬샷을 잘하는 것은 조직의 ‘상태’때문이라는 사실을 직관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 부시를 선택한 루즈벨트 대통령은 그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보냈다. 


‘우리 육군과 해군은 다가올 전쟁을 이기는 데 꼭 필요한 기술 면에서 독일에 한참 뒤처져 있다.’ 군 스스로는 제때에 그 기술 격차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부시는 루스벨트에게 연방정부 내에 새로운 과학 기술그룹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부시가 수장이 되어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는 체제로 말이다. P 056


1939년 핵분열이 발견된 이후 첫 2년간은 대부분의 물리학자가 이게 아무런 실용적 용도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군사적으로든 다른 용도로든 말이다. 새로운 유형의 폭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아인슈타인의 저 유명한 편지를 받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소집한 과학위원회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1941년 영국의 어느 원자 물리학자 그룹이 만들어낸 새로운 결과는 부시가 다른 마음을 먹게 만들었다. 부시는 루스벨트 대통령과 핸리 스팀슨 전쟁부 장관에게 비록 핵무기가 만들어질 가능성은 낮지만, 독일이나 일본이 먼저 핵무기를 손데 넣는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루스벨트는 부시의 논리를 받아들여 그에게 이 문제를 맡겼다. 부시는 대대적인 연구 프로그램을 개시하고 군과 저치 지도자들 사이에 지지를 확보한 후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이 프로그램을 군에 이양했다. P 71~72


루즈벨트는 부시에게 끝없는 신뢰와 지원을 주었다. 루즈벨트는 새로운 형태의 룬샷(버니바 부시)을 폐기처분하지 않고, 룬샷(버니바 부시)을 아낌없이 지지하였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정치/행정은 타격이 없도록 안정을 유지했다. 이 책에서는 버니바 부시가 룬샷을 적절하게 활용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 눈엔 부시보다 더 뒤에있던 루즈벨트. 그야 말로 룬샷을 제대로 활용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룬샷도 함정은 있다. 위에서도 말했듯 룬샷을 성공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전이’와 ‘상분리’가 적절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바로 ‘동적평형’이다. 


정말로 성공을 이루는 사람들, ‘우연의 설계자들’은 그보다 덜 화려한 역할을 맡는다. 그들은 어느 한 룬샷을 열열히 지지하기 보다는 많은 륜샷을 육송할 수 있는 뛰어난 구조를 만든다. 그들은 예지력 있는 혁신가라기보다 세심한 정원사에 가깝다. 그들은 룬샷과 프랜차이즈 양쪽을 모두 잘 돌보며,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압도하지 못하게 한다. 서로가 서로를 성장시키고 지원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P 79


균형을 유지해서 어느 한 상태가 다른 상태를 압도하지 않게 하려면 필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룬샷을 도모하는 예술가와 프랜차이즈를 도모한느 병사가 똑같이 사랑받는다고 느껴야 한다는 것. 나약하고 모호한 소리처럼 들릴 수 있지만, 아주 현실적인 얘기이자 자주 간과되는 요소다. P 83


버니바 부시와 시어도어 베일은 기술 자체보다는 ‘기술이전’을 경영했다. 그들은 룬샷과 프랜차이자 사이의 균형과 소통을 중시했다. P 216



동적평형을 만들어내라.


쉽게 말하면 어느 한쪽을 편애하지 말라는 것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버니바 부시를 전폭 지원하면서도, 군이나 정치/행정도 균형적으로 바라보았다. 버니바 부시도 마찬가지다. 부시는 본인의 연구소 사람들을 지원하면서도, 힘을 합쳐야할 해군에 존경과 찬사를 보냈다. 이것이야 말로 한 팀을, 조직을 다스리는 리더들에게 제일 필요한 덕목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균형을 지키는 리더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처음에는 룬샷을 발견하고, 룬샷을 지원하는 멋진 리더였더라도, 그 룬샷에 목이 메여 균형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성공한 룬샷이 프랜차이즈가 되고, 다시 새로운 룬샷이 나오는 선순환. 어찌보면 좋은일 아닌가? 싶을 수도 있지만,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순환은 정확하게 말하면 ‘위험한’ 선순환이다. 


위험한 선순환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폴라로이드. 즉석 카메라라고 알려진 그 폴라로이드다. 랜드가 처음 폴라로이드를 발명했을 때는 그저 허무맹랑한 룬샷이었다. 하지만 결국 찬사를 받는 성공한 룬샷이 되었고, 프랜차이즈로 성공했다. 랜드는 폴라로이드의 성공에 힘입어 새로운 폴라비전이라는 즉석 영화 상영기를 개발했다. 하지만 이 룬샷은 실패했다. 이미 이 당시에는 홈 비디오가 대중화되어 있었다. 홈 비디어보다 간편하지도 않고, 비용도 많이 들었던 폴라비전은 그렇게 시장에서 퇴출되었다.


현장의 병사와 벤치의 예술가 사이에 오가는 균형 있는 아이디어와 피드백을 통해 가장 유리한 룬샷을 고르는 게 아니라, 오직 신성한 리더의 뜻에 따라 아이디어가 정지될 때, 팀이나 기업은 함정에 빠진다. 리더는 자신의 보좌진을 승진시키고, 바다를 갈라 선택받은 룬샷을 위한 길을 낸다. 위험한 선순환의 주기는 점점더 빨라진다. 룬샷과 프랜차이즈는 서로를 더 크게, 더 빨리, 더 많이 키운다, 전지전능한 리더는 전략상의 이점을 바탕으로 움직이는게 아니라 룬샷에 대한 애정에 따라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바퀴가 헛도는 일이 일어난다. P 174


회사를 떠나는 직원이 줄을 잇는 것은 회사 기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시어도어 베일은 ‘나머지를 희생시키면서 어느 한쪽을 무시하거나 편애한다면 반드시 전체의 균형이 깨질 것’이라고 했다.P 226

균형과 소통을 제대로 유지하려면 내부의 장벽을 극복하게 도와줄 손길이 필요하다. 어느 모세의 보좌진의 손길이 아니라, 정원사의 손길처럼 부드러운 손길이 필요하다. 아이디어가 이전되는 데 힘을 너무 받거나(추상적인 명령) 힘이 부족하면(아무 지원 없음), 유망한 아이디어와 기술도 실험실에서 썩게 도리 것이다. 그러면 조직은 그 기술을 상실하고, 시간과의 싸움에서 질 것이며, 그 기술을 발명한 사람의 충성심을 잃게된다. 핵심 인재는 회사에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이다. P 268


정말 씁쓸한 사실이지만, 내가 몸 담고 있는 조직에 버니바 부시 같은 리더는 없다. 팀이든 부서든 본부든 리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리더십 관련 경영서를 그렇게 읽었음에도 깨우친게 없는건지, 아님 책을 헛으로 읽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난 이렇게 또 한번 좋은 리더가 어떤 리더인지를, 언제쯤 이런 리더를 만날 수 있는지를, 아님 이번 생에 만날 수 있기나 한지를 생각하며 이 책을 덮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