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직장인 열전 - 조선의 위인들이 들려주는 직장 생존기
신동욱 지음 / 국민출판사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전에 「어른의 한자력」 이라는 책의 서평을 쓴 적이 있다. 그 책을 읽으려고 펼쳤는데, 문득 눈에 들어온 저자의 이름. 어딘가 익숙한 이름인데? 싶었기에, 바로 내 책장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발견했다. 조선사 역사책이 꽂혀있는 책장 한켠에서. 그렇다. 나는 이미 이 저자가 쓴 역사책을 구입한적이 있었던 거다.  그 역사책은 바로 「조선 직장인 열전」. 물론 읽지는 못했었지만. 본디 책이란.. 사는 속도와 읽는 속도가 엇박자를 일으키니까^_T. 


뭐, 이유야 어찌돼었든! 이제서야 「조선 직장인 열전」을 읽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역사적 인물들은 나라의 녹을 받는 직장인(일종의 공무원) 이었다! 오, 놀라워라. 매일 그들의 공/과를 따지고, 그들의 행적에 대해서만 보았지, 직장인으로서의 그들을 생각해 본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는 사실에 소오름. 그렇게 역사적 인물들을 ‘직장인’ 으로써 마주하는 순간, 왠지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존경심은 저 멀리 날라가고 측은함이 저절로 샘솟았다. 그도 그럴것이, 현대의 직장인들은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진짜!)모가지가 날라가지는 않지만, 조선의 직장인들은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진짜!!) 모가지가 날라갔으니까. 뿐만이랴, 삼대가 멸문을 당하는 경우까지도 왕왕 있었다. 정말 조선시대의 직장인들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른, 살얼음판을 걷는 직장생활을 해왔던 것이다. 



이야, 다시 생각해도 소름이네. 만약 당시 CEO가 연산군이었으면? 오우. 정말 수백의 직장인 모가지가 날라가는 걸 눈 앞에서 보거나, 혹은 내 모가지가 날라가거나. 반대로 CEO가 세종이었다면? 거기다 만약 일잘러였다면? 퇴계 이황처럼 늙어 죽을 때까지 노동착취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반대로 내가 너무 뛰어난 인재였다면? 주변 동료들의 모함으로 아주 참혹한 정리해고를 당했을지도 모른다. 주식회사 조선의 직장생활은 정말 모 아니면 도. 차라리 현대의 직장인이 백번 낫다. 



1n년간 직장에서 온갖 상황을 마주하며, 이제는 더 마주할 인간 유형(?)도 없고, 그 어떤 상황에 마주해도 당황하지 않을거라 자부한 나였건만, 그건 나의 오만이었고 오판이었다. 지금보다 더 험난했던 직장생활을 한 그들에게서, 다시 한번 배우고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복직해야지!  



이 책에는 여러 직장인(?)을 소개한다. 정도전이나 황희, 김육, 이황 등 대체로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을 법한 역사적 인물이자 직장인(ㅋㅋㅋ)들이며, 우리가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배울만한 점이 있는 직장인들이다. 반대로 홍국영이나 허균처럼 반면교사 삼을 비운의 직장인도 소개한다. 난 이 책에 실린 여러 직장인 중, 주식회사 조선의 최고의 직장인과 반면교사 삼아야할 직장인을 단 한 명씩 선택하라고 한다면 아래와 같이 선택하고 싶다.




눈치를 잘 보는 것도 실력이다. 하륜

- 실력과 처세 능력을 동시에 갖추어 누구보다 조직 생활을 잘할 수 있는 인재라고 자부합니다


제 1,2차 왕자의 난부터 시작하여 태종의 치하 기간은 왕권에 위협이 되는 그 어떤 인물도 남겨놓지 않았던 숙청의 피바람이 불던 시기다. 그런 엄혹한 시대 속에서도 하륜은 70세 일기로 천세를 누리다 세상을 떠났다. 어떤 처세 비법이 있었기에 정리해고 한 번 당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p 097


하륜은 향리집안 출신으로 명망가 출신은 아니었으나, 하륜이 과거급제 했을 당시 그를 눈 여겨 본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권문세족이자, 당대 권력가였던 이인임의 형, 이인복. 이인복은 그의 동생인 이인미의 딸과 하륜을 결혼시킨다. 결과적으로 하륜은 이인임 가문과 사돈이 되었다. 그렇다고 하륜이 권문세족의 편으로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륜은 이색의 제자였기에, 당연히 또 다른 이색의 제자들인 신진사대부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정몽주와 정도전.



여말선초, 우리가 드라마로도 봐왔듯 공민왕/우왕/창왕에 이어 조선이 개국되고 이성계가 조선 초대왕이 되었다. 당대 권력가였던 이인임이 쫓겨나면서 하륜도 권력의 뒷편으로 밀려났지만, 결과적으로 그 덕택에 그는 자신의 몸을 보전할 수 있었다. 이성계가 쓰러졌을 당시 정몽주가 잠시 권력을 잡았을 때나, 이방원의 선죽교 사건(?)이 있었을 때나, 조선 건국 후 정도전의 숙청의 칼날등에서 말이다. 



하지만 하륜은 똑똑히 보았다. 동문이었던 정도전이, 자신의 스승과 또 다른 동문들을 어떻게 숙청해나가는지를.


하륜이 정도전과 제대로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바로 ‘표전문 사건’이다. 명나라 황제 주원장이 조선의 외교문서가 불손하다며 심각한 외교 갈등을 야기한 것이다. 명나라에서는 이 문제의 발단을 정도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그의 압송과 해명을 요구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 그럼에도 정도전은 움직이지 않았다. 도의적으로라도 직접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의지를 보이기는 커녕 전혀 관련도 없는 하륜을 사신으로 보내버리고 만다. 정도전을 제거할 기회로 본 하륜이 당사자인 정도전이 직접 가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정도전에게 오히려 보복을 당한 셈이었지만 하륜은 명나라 황제를 훌륭히 설득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왔다. 이 사건으로 하륜의 명성은 올라간 반면 정도전에 대한 비난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었다. p 040



정도전이라는 못된 선배를 둔 하륜은 어떻게 대처했을까? 처음에는 정도전에 맞서 투쟁하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태조 이성계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는 정도전으로부터 돌려 받은 건 이전보다 더 강해진 견제였다. (…) 사실 견제를 받는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실력이 있다는 반증이다. 그 선배는 실력 있는 내가 자신을 앞서갈까 두려운 것이다. 일단 그것으로 위안을 얻자. 그리고 선배에 맞서 투쟁하기보다는 묵묵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자. 분명히 기회는 올 것이다. 마치 하륜이 새로운 상사 이방원을 만나게 된 것처럼 말이다. p 041



정도전과 맞서는 족족 실패한 하륜은 마음을 바꿔 먹었다. 다름아닌,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정도전이 그랬던 것 처럼. 그렇게 하륜은, 정도전이 걸었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방원과 손을 잡았고, 때를 기다렸다.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한다. 바로 하륜이 이방원과 손을 잡았다는 사실이다. 이방원이 누구인가? 가장 존경하던 선배, 그리고 고려 사수파로서 정치적 입장을 함께 했던 정몽주를 죽인 장본인이 아닌가. (…) 이방원을 군주로 모신다는 것은 변절의 끝판왕이라 불릴만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손을 잡았다. 공동의 적 정도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p 044



하륜은 누구와도 손을 잡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신진사대부였음에도 권문세족인 이인임의 후광으로 출셋길을 달렸다. 정몽주와 손을 자복 고려 사수파에 섰다가 고려가 멸망하자 곧 조선의 신하가 된다. 그리고 존경하는 선배 정몽주를 죽인 이방원과 손을 잡는다. 정도전이 좀 더 포용력을 가지고 다른 이들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인물이었다면 아마 하륜은 정도전과도 손을 잡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만 옳고 다른 사람들은 다 배제해 버리는 정도전의 성격상 그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신 하륜은 이해관계가 일치한 이방원과 손을 잡았고, 마침내 임금 다음가는 실권자가 된다. p 045



여기까지만 봐도 하륜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선배이자 정적인 정도전이 그러했듯, 하륜도 기다렸고 성공했다. 하지만 하륜이 선택한 남자는 이방원이다. 이성계는 정도전을 무한 지지했지만, 이방원은 달랐다. 이방원은 선죽교 사건과 왕자의 난에서도 보았듯, 잔혹한 군주이기도 했다. 왕위에 오른 뒤에는 자기에게(또는 후대의 왕에게) 걸림돌이 될만한 사람이라면 최측근은 물론, 처가, 사돈댁을 거의 몰살 시켰다. 하지만 그런 피바람 속에서도 하륜은 아주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하륜의 직장 생명력을 이해하는 데에는 그가 태종에게 생명의 은인이었던 점도, 정치적으로 많은 업적을 남긴 훌륭한 신하였따는 점도 중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상사의 의중을 눈치껏 이해하면서도 절대 선을 넘지 않는 탁월한 처세 덕분이었다. p 048



하륜은 태종의 언어를 정확히 이해한 신하였다. 태종은 “왕위를 넘길게”라고 말했지만 사실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왕위는 털끝만큼도 건드리지마” 였다. 하륜은 신하의 본분을 지킨다는 마음이 있었기에 그 말의 진의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었고 이숙번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따. 이것이야말로 하륜이 서릿발 같은 태종의 치세에서도 오랫동안 평탄하게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인 셈이다. p 051



상사가 업무에 대해 정확히 지시하고, 언제까지 끝내라는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함께 주면 실무자 입장에서는 정말 일하기 편하다. 그렇지만 상사의 스타일에 따라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상사가 “이거 좀 한번 알아봐요”라고 흘리듯 이야기했고 부하직원은 별것 아닌 것으로 지레 짐작하고 뭉개버렸다고 하자. 그런데 며칠 후 갑자기 상사가 그 건에 대해 다시 물어본다면 그 앞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서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상사가 아무리 대충 흘러가듯 이야기하더라도 일단 지시하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면 즉시 나의 주요 업무로 삼아야 한다. 결국 이것은 ‘직장인의 눈치 보기 능력’과 매우 관련이 높다. p 052




“인생은 하륜처럼” 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무엇보다 한동안은 내 인생의 모티브가 “인생은 하륜처럼” 이기도 했고. 



따지고 보면 한 나라를 무너뜨리고 새 나라를 세운, 킹메이커 정도전도 대단한 직장인이다. 심지어 정도전이 한 많은 것들이 조선 오백년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의 말년은 너무 뻣뻣했고, 성급했다. 때를 기다릴 줄 알았던 정도전이 사라지는 순간, 정도전은 수많은 적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는 참혹한(?) 정리해고. 



하륜은 조선이라는 직장에서 정도전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정도전이 그랬듯이 ‘미리 준비하며, 때를 기다릴줄 아는’ 것을 배웠고, 그대로 실천했다. 뿐만 아니라, 전 직장인 고려에서 체득한 처세술을, 조선이라는 직장에서 십분 활용하여 곳곳에 아군을 만들었다. 거기다 까다로운 상사인 이방원의 언어의 참 뜻도 헤아릴 줄 알았다. 그 결과 하륜은 모든 직장인이 바라는 평화롭고 안정적인 삶과 정년퇴임을 얻었다. 




평판관리가 중요한 이유. 허균

스스로 몰락을 자초하다.


홍길동전은 허균이 쓴 고전소설로 세상에 알려져 있다. 최초의 한글소설이라는 점도 파격적이지만 당시 조선사회의 모순을 과감하게 비판한 최초의 사회소설이었다는 점에서 허균은 시대를 앞서간 천재로 불릴 만하다.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난 엄친아였지만, 결국 역적죄로 사형당하고 만 허균. 무엇이 그를 지독한 불운으로 몰고 갔을까? p 106



홍길동의 저자 허균. 그는 조선 선조 때 문신인 허엽의 아들이자, 허난설헌(허초희)의 동생이다. 뿐만 아니라 아비를 비롯하여 형인 허성을 비롯하여 누이인 허난설헌까지 줄줄이, 그의 집안은 아비고 자식이고 문장가로써 이름을 날렸다. 이 말은 곧, 허균은 마음만 먹으면 나는 새도 훨훨 떨어뜨릴 수 있는 자리까지도 쉽게 올라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허균은 그러지 못했다. 외려 주식회사 조선에서 참혹하게 정리해고를 당했다(여기에서 말하는 정리해고는 말그대로 진짜 모가지 댕강^^). 그가 참혹하게 정리해고를 당한 이유야, 모두가 다 알듯 ‘역모죄’라는 누명을 썼기 때문이다. 심지어 허균과 같이 일하던 수많은 사람들도 누명이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하지만 그 누구도 허균을 도와주지 않았다. 



허균은 과거에 급제하고 예문관 검열 겸 춘추관 기사관 등의 관직을 거쳐 30세 때 황해도 도사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한양 기생을 데려와 같이 살고 무뢰배들과 어울리며 청탁을 일삼는다는 이유 등으로 1년도 되지 않아 파직된다. 또한 어머니가 별세했음에도 찾아가 보지 않고, 유교 예법에 따라 삼년상을 치르기는 커녕 상중에도 고기를 먹어 세간의 비난을 샀다. 당시에는 이단으로 여겨지던 불교에 관심을 가진 것도 그의 평판을 떨어트리는 요인이 되었다. p 107



또 광해군 2년 때에는 허균이 시험관으로 참여한 과거 시험에서 일어난 부정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과거 합격자의 상당수가 시험관의 자제, 조카사위, 동생, 사돈들이었는데 이 중에 허균의 조카와 조카사위도 끼여 있었다. 조카는 정처 없이 떠도는 승려였고 조카사위는 이미 불합격 판정을 받았음에도 기어이 다시 합격자 명단에 끼워 넣었다. p 107



무엇보다 허균은 스스로 많은 적을 만들었다. 자신보다 상관이던 심희수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노골적으로 망신 주어 그의 원한을 샀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는 스스로 고립되는 것을 자처했고, 결국 역모자로 몰렸을 때 누구도 그를 위해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p 108



기자헌은 원래 허균과 정치적 동지였고, 그 아들 기준격은 허균의 제자였으나 허균의 공격으로 아버지가 유배를 가자 격노한 기준격은 허균이 평소 역모를 꾸몄다는 탄핵을 한다. 거기에 허균과 가까이 지냈던 곽영도 그를 격렬히 비난하는 상소를 올리고, 언론기관인 사간원과 사헌부에서도 동일한 내용의 상소를 올린다. 허균의 평한이 얼마나 최악에 도달했는지 짐작이 된다. p 110



나라의 녹을 받기 시작한 허균은 일반적인 직장인과는 조금 다른 생활을 했다.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본인의 이미지 메이킹에 신경을 쓸법도 한데, 허균은 달랐다. 이미지 메이킹은 커녕, 자기 자신의 부정적인 평판을 무한 생산했다. 심지어 몸소 나서서 적군을 대량 생산하기까지! 자기의 상사를 공격하는 건 기본이고, 자기 동료와 동료의 부친까지도 공격했다. 본인 스스로 아군까지 내치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거기에 더해, 간신 중의 간신인 이이첨의 손을 잡기까지 했다. 



이이첨과 손을 잡은 후에 허균은 반대 세력 제거에 앞장섰다. 본인 스스로 아군도 잘라낸 허균이다보니, 반대세력 제거에 앞장 설만도 하다. 이후 허균에게 역모죄 누명이 쓰여졌다. 손을 잡았던 이이첨 마저도, 자신이 저지른 잘못까지 허균에게 언지며, 허균을 손절했다. 한마디로 토사구팽. 그 누구도 허균을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다.



이쯤되면 비교되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조선 초, 청백리로 이름난 맹사성이다. 맹사성도 정치적 위기에 몰린 적이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동료들이 앞다투어, 맹사성을 구하겠다고 나섰다. 자칫 잘못하면 본인들까지 연루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말이다. 맹사성은 그 정도로 만인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고, 만인의 존경을 받을만한 사람이었다. 내미는 발길 족족 적을 만들어내는 허균과는 달리.



평판이란 조직 내에서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의 문제다.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써야 하는 것은 사실 별로 유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나에 대한 평가가 내려질 때는 업무 성과와 더불어 평판이 함께 반영된다. 내 노력에 대한 보상, 즉 월급과도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평판 관리는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더 나아가 나의 직장 생활 수명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평판이다. p 111



무엇보다 좋은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중요하다. 부하 직원이라고 함부로 대하거나 무시하는 행동은 반드시 주의해야 한다. 물론 부하 직원뿐만 아니라 상사나 동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다. 협력업체나 거래처 직원에게도 주의해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말자. p 113



만약 허균이 삐딱선을 타지않고 맹사성 처럼, 동료들을 존중할 줄 알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허균의 인생은 적어도, ‘누명’을 써서 참혹하게 정리해고 당한채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직장은 정글이다. 절대로 자기 혼자 살아남지 못한다. 좋든 싫든 웃어야하고, 토악질나는 사내정치도 어느정도 견뎌야 한다. 누군가가 나를 공격한다면, 그 자리에서 날카롭게 받아치기 보다는 유연하게 흘러 넘기는 법도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누군가 비판을 한다면, 귀담아 듣고, 비판받은 행동에 대해 고치는 자세도 중요하다. 



이제 평생 직장이라는 말은 옛말이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 내에서 필요한 모습은 과거나 현재나 달라지지 않았다. 평생을 다닐 직장이든, 2~3년만 다닐 직장이든, 직장에 몸을 담고 있는 동안에는 적을 만들지 말고, 누구나가 존중해주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퇴사를 하는 제일 큰 이유는 바로 ‘사람’ 이니까. 그러기 위해선 본인 역시도 동료들을 존중해주는 것은 기본이다. 두번째가 바로 성과. 성과에 따라 보상이 귀결되는 사회이니, 이 만큼 중요한게 또 있을까. 뭐... 동료들의 존중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사람은 일잘러에, 평판도 엄청 좋은 사람이라는 말이긴 하다.



인생을 하륜 처럼 살 것인지, 허균 처럼 살 것인지, 선택은 당신의 몫!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원시의 신사를 찾아서 - 일본·류큐·제주도 제주학연구센터 제주학총서 27
오카야 고지 지음, 이예안.이윤주 옮김 / 제이앤씨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나는 역사에 관심이 많은 만큼, 민속학에도 꽤나 흥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외국 출신 신神을 추종하는, 그 중에서도 유독 개신교로 점철된 우리나라를 보고 있노라면 대체 무엇이 문제이기에 우리 고유의 민속신앙은 이토록이나 처참하게 무너졌을까 싶기도 했다. 그래도 어렸을 적에는 시골에 가면 당산나무가 있었고, 서낭당도 있었고, 가족과 마을을 지켜주던 가택신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 흔적조차도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제 한반도 내에서는 우리 고유의 민속신앙을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다. 하지만 나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지, 많은 사람들은 우리 고유의 신앙에 살아숨셨던 신들은 잊은채 외국 신에 열광한다. 외국 출신 신을 받드는 종교도 종교거니와, 그리스/로마/북유럽 등의 외국신화에도 열광한다. 그렇게 내가 발 딛고 사는 땅에 살았을, 우리를 지켜주었을, 우리만의 신들은 그렇게 사라졌다. 아니,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아직 제주도에는 신이 남아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래서 나는 제주도 신화와 관련된 책도 여러 권 읽어보았고, 제주 여행을 다닐 때는 제주의 신화와 관련된 곳을 일부러 찾아다니기도 했다. 본토에는 찾기 힘든 민속신앙을, 제주도에서는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제주도만큼은 아직 신화의 나라이며, 그네들의 전통을 잘 보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왠걸. 내가 본 제주도의 신들도, 이미 수 많은 신이 사라진 뒤였다. 그 사실을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사람들 눈에 띄지않게 꼭꼭 숨어있는, 본토처럼 난개발에 사라지고 있는 제주도의 ‘당’을 보고나서야 알았다. 뭐, 이 책의 주제는 사라지는 전통신앙에 대한 것은 아니니, 이 이야기는 일단 여기서 멈추고.




이 책은 일본인 저자가 제주도, 한반도 서남해안, 오키나와, 일본 본토의 신사를 답사하며 연구한 결과물이다. 제목은 「원시의 신사를 찾아서」. 



한줄로 요약하자면 “일본 본토의 신사의 원형은 오키나와의 ‘우타키’로, 그럼 이 우타키는 어디서 온 것인고 하니, 제주도의 ‘당’”이다. 물론 이렇게 한줄로 요약하기엔 그 내용이 꽤나 방대하긴 하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한일고대사를 너무나 좋아할 뿐더러, 관련 역사책을 비롯하여 일본에 갔다 하면 도래인의 흔적을 찾으로 여기저기 다니던 나다. 그런 나에게 이 책은 그야말로 보물과도 같은 책이었다. 아니, 이 책을 왜 이제서야 읽었지? 산지는 꽤 되었는데. 육아하느라 시간이 없다고 미루고 미루고 계속 미루다가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는게 후회될 정도로 너무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을 좀 길게 요약하자면 이렇다.



1. 일본의 신사의 원형을 오키나와의 우타키로 보고 있는데, 이 우타키의 원형은 제주도의 당으로 추정된다. 우타키나 당은 성스러운 숲, 여성사제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2. 제주도의 당 문화는 바다건너 서, 남해안에도 퍼져있을 것으로 보이나, 제주도와는 달리 본토는 미신타파 등 토종신앙 박해등으로 당문화가 급속도로 쇠퇴하여 지금은 흔적을 찾기 어려운 곳이 많다.


3. 그렇다면 오키나와의 우타키 문화만 제주도의 당 문화가 비슷한 것인가? 아니다. 제주도와 바다를 사이에 둔 오키나와 뿐만 아니라 일본 본토 규슈 해안가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적어도 고대에는 쿠루시오 해류가 흐르는 해안가를 주변으로 동일한 문화권으로 묶여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제주도의 풍습 역시도 오키나와나 쿠루시오 해류가 흐르는 해안가 마을과 비슷하다. 즉 제주도인과 오키나와인, 그외 큐슈 해안가 사람들의 교류가 빈번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4. 고대의 일본 신사는 오키나와 우타키처럼 신사 건물이 없었다. 즉 성스러운 ‘숲’이나 나무, 바위 등을 모셨다. 신사에 대한 제일 오래된 기록은 한반도 도래인이, 자국의 신을 모시기 위해 세운 신사에서 시작된다. 


5. 일본 내에 있는 신사에서 출토된 제일 오래된 물품은 야요이 토기인데, 야요이 문화는 한반도 도래인의 선진문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사에 대한 최초의 기록과 그외 수많은 도래인이 세운 신사의 기록을 볼 때, 일본 내의 많은 신사의 성립 과정에서 한반도 도래인은 어떠한 경로로든 개입이 되어 있을 것이다.


6. 제주도의 당과 오키나와의 우타키는 기본적으로 ‘성스러운 숲’, 즉 신수신앙에 대한 인식이 깔려 있는데, 신수신앙에 대한 시작은 아무래도 신라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그 근거로 『삼국사기』에는 신라의 성스러운 숲에 대한 기사가 많이 실려있다. 또한 당시 고대 일본의 권력은 신라계 도래인이 쥐고 있었다.


7. 제주도의 당(본토 성황당 등)과 오키나와의 우타키(본토 신사)는 그 시작은 비슷했으나, 결과는 너무나 달랐다. 일본의 신사와 오키나와의 우타키는 일본 관광책자에는 무조건 실려있는 관광 명소가 되었지만, 제주도의 당이나 본토의 성황당등은 많은 수가 사라졌거나, 있어도 유명무실하며, 실제로 있는지 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일본은 기본적으로 자국의 문화를 중요시하였고, 타종교를 들여왔어도 박해를 하지 않았으나, 한반도는 달랐다. 고려 불교 오백년, 조선 유교 오백년, 현대의 새마을운동등을 거쳐 한반도 토종 민속문화는 거의 절멸하였다.


8. 한국의 토종신앙과 일본의 신사 사이에는 분명한 연결고리가 있으며, 일본에는 명확하게 검증된 고대 도래인이 세운 신사들이 많이 남아있지만 이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은게 현실이다. 제일 큰 이유는 아무래도 한국의 토종신앙을 미신으로 치부하며 타파한 유교문화이지 않을까. 그러다보니 신사가 일본 고유의 문화인 것마냥 알려지게 되었지만, 실상 일본 신사의 시작은 한반도다.




정말 이 책을 읽은 나를 너무 칭찬한다. 특히 한일고대사에 매우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나에게는 이만한 책이 또 어디있을까? 정말 이 책에 실려있는 모든 내용이 흠잡을 데가 없다. 정말 역사책은 ‘ㅇㅇ총서’ 정도는 되야 흠잡을 데 없고, 번역에 대한 가독성도 높아서 읽기도 좋다. 



나 역시도 일본의 신사의 시작은 고대 한반도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이렇게 생각한 근거를 들자면, 일본에 갈 때마다 한반도 도래인이 세운 신사와 사찰, 도래인들이 꾸려나간 지역들을 찾아다니면서 보고 들은것과, 한일고대사를 공부하면 할수록 보이는 고대 일본의 권력 중심세력이 한반도 도래인들이었다는 점이랄까? 다만 이것만으로는 그저 나만의 ‘카더라’에 지나지 않기에, 그냥 입 밖으로는 내지않고 혼자만 생각하던 것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내 이런 생각들이 그저 헛된 생각이 아니었다니. 흑. 이런 연구를 하는 연구자가 있었을 줄이야, 그것도 바로 일본에! 요즘의 일본은 자국에 있는 신사와 사찰에서 도래인의 흔적을 지우고, 도래인의 흔적이 남은 지명조차도 바꾸었기에, 일본에서는 이런 연구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다. 만약 이런 연구를 한다면 극우파에 협박에 시달리지않을까 싶기도 하고 말이다. 뭐, 여기까지 각설하고!



한반도 도래인에 관해선 대충 규슈는 가야/신라, 관서는 백제/신라, 관동은 고구려 도래인 계열이 주를 이루었다고 알고는 있었다. 그 도래인들이 각 지방에 설립한 신사나 사찰에 대해서도 유래나 뭐 이런 건 대충은 알고 있었는데, 이 책 덕분에 대충 알고있던 사실을 제대로 알게 된 부분이 꽤 많았다. 특히 이세신궁과 신라의 연관성은 단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던 터라, 와. 생각해보면 신라나 이세신궁에 대한 각각의 내용은 다 알고 있던건데, 왜 난 이걸 연관짓지 못했을까 싶기도 하고. 이래서 사람은 꾸준히 계속 배워야 하나보다.



이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이 총 10개의 챕터로 되어 있다.


-제주도 당과의 만남

-한국 다도해의 당

-제주도 당과 제

-오키나와의 우타키

-제주도와 류큐

-신사와 한반도

-신사를 둘러싼 몇 가지 문제1 (조몬, 야요이와 신사)

-신사를 둘러싼 몇 가지 문제2 (신사는 무덤인가)

-성스러운 숲의 계보

-신사, 우타키, 당



이 챕터중 일부를, 특히 내가 기억하고 공부하고자 하는 부분을 아래에 발췌했다.




▶ 제주도 당과의 만남


당은 결코 제주도만의 것이 아니다. 적어도 과거에는 신사나 우타키와 마찬가지로 한반도 어느 마을에나 있던 것 같다. 하지만 유교를 국료로 하는 조선시대 500년 동안 크게 변질되었고, 특히 최근에는 근대화(예를들어 새마을운동)나 기독교의 보급으로 한국 본토에서는 급속히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p 012



내가 본 최초의 당은 잊을 수 없다. 그곳은 서귀포시 북쪽 교외 호근동이라는 마을의 당으로 감귤밭 속 작은 숲이었다. 『제주도 고대문화의 수수께끼』에 실려있는 사진과 똑같은, 아니 우타키의 숲 그대로였다. (…) 『니혼쇼키』와 『고지키』에 나오는 스이닌텐노의 명을 받아, 다지마모리가 바다 저편 이상향인 도코요노쿠니에 구하러 갔다는 도키지쿠노가쿠노미는 제주도의 감귤이라는 설이 있을 정도다. 다지마모리는 신라에서 건너간 아메노히보코의 후예로 알려진 인물이며, 게다가 감귤이 자라는 곳은 한반도 안에서 오직 제주도뿐이라고 하니 이설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p 018



당은 신사나 우타키와 비교해서 일반적으로 청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청결하지 않다. 처음에는 신앙의 쇠퇴가 그 이유로 보였지만 한마디로는 정리할 수 없는 것 같다. 제를 지낼 때 이외에는 함부로 출입해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금기가 있고, 또한 사람들은 일단 신에게 바친 제물은 쉽게 가져가거나 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러한 데에서 난잡함의 일부가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p 021



길에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던 네, 다섯 명의 할머니들에게 물으니 이 마을의 당은 해안가에 있었는데 새마을운동으로 파괴되었다고 했다. 새마을이란 새로운 마을을 의미하며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지시에 의해 시작되었다. 농어촌 구습을 타파하고 시대에 걸맞은 마을 만들기를 목표로 하는 운동으로 당 신앙 등은 미신으로 규정하여 배제 대상이 되었다. p 026



 



▶ 한국 다도해의 당


한산도에 가는 페리안에서 일본어를 잘하는 제승당 이사장과 함께 있었기에 당의 주소를 물어보았는데 “없어요” 라고 단번에 부정을 하는 바람에 나는 섬을 돌 의욕을 잃어 제승당만 보고 다음 페리를 타게 되었다. 연화도에서도, 욕지도에서도 내 입에서 나오는 당이나 신당이라는 말에 주민들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단지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 그리고 작은 마을에 개신교, 천주교를 포함해 네 개나 되는 교회가 있다는 사실은 놀라웠다. 최근 한국에서 기독교, 특히 개신교의 보급은 우리 일본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으며, 예를 들어 상점 하나 없는 작은 섬에도 지붕에 십자가가 반짝이는 교회만은 있다고 할 정도이다. p 039



나는 소매물도에서 처음으로 당, 정확히 말하면 당의 흔적을 보았다. (…) 그러자 주인은 나를 가게 밖으로 데려가더니 왼쪽 작은 산 정상 가까이의 산등성이에 우거져 있는 벌목된 것 같은 작은 숲을 가리키며 “옛날에 저곳에 당이 있어 제를 지냈었는데, 지금은 아무도 가지 않게 되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곳까지 올라가 보았따. 잡목이 우거진 숲 속에는 거대한 바위가 있었고, 그 앞에는 희미하지만 제사를 지냈던 흔적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사라진 당이었다. p 040



한려수도의 섬에서는 제주도와 비교해서 당 신앙의 자취가 매우 옅고, 당의 형태도, 그 제祭도, 제주도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p 044



(신안 지도) 당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 아직 초목의 마른 빛깔이 남아있는 밭 속에 있었는데 주위의 평범한 풍경 속에 있어 유달이 눈에 띄는 숲이었다. (…) 신목이라고 생각되는 숲 중심에 솟아있는 커다란 팽나무 밑가지에 금줄이 쳐져있을 뿐이었다. 당은 보편적으로 마을의 뒷산과 가까운 산, 작은 산이나 조금 높은 곳에 입지하는데, 내가 처음으로 본 당인 제주도 호근동의 당과 이곳처럼 밭 가운데 있는 경우는 비교적 적다. 이런 당을 들당이라고 한다. 당이 상당과 하당으로 나누어져 있는 경우 신사의 야마미야와 사토미야과 같이 상당은 산이다 다른 높은 곳에 있고 하당은 마을이나 그 주변에 있는데, 대천리에서는 이 들당이 상당이고 마을안에 하당이 있다. p 048



비금도에서는 섬 남서부에 있는 내촌리의 당을 보러갔다. 마을 뒷산 중턱에 제를 지낼 때 제물 등을 준비하는 낡은 오두막이 있고, 그곳에서 40~50m 정도 더 올라간 곳에 돌담으로 둘러싸인 한 구역이 있었다. 그 안에 높이 1m정도의 돌로 만들어진 신기한 신상이 평평한 자연석 위에 모셔지고 있었다. 이목구비와 가슴 앞에 모은 두 손만을 매우 단순한 저부조로 새긴 반신상으로 어딘가 오리엔트나 이집트의 신상을 떠올리게 했다. 『다도해의 당제』에 의하면 먼 옜날 한 학자가 딸인 소녀를 데리고 이 마을에 유배되었다. 아버지는 어느 날 바다에 고기를 잡으러 가서 익사하고 딸은 아버지의 죽음을 모른 채 산 정상에서 아버지를 기다리는 나날을 보내는 사이 죽게 된다. 머지않아 마을 사람의 꿈에 신이 나타나 딸의 영혼을 모시라고 고했기에 모시게 된 것이 이 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는 소녀상인 것이다. p 051



내가 이 섬을 방문하고자 한 이유는 외나로도의 신금리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상록수 숲이 있어, 그 속에 마신馬神을 모시는 당이 있다는 것을 『남해안』이라는 한반도 남해안 가이드북을 보고 알았기 때문이다. 그 후에 최덕원씨의 「나로도의 당제」라는 글도 접하게 되었다. 최씨에 의하면 1986년 조사 시점에서 나로도 30개 마을 중 16개 마을에서 당제를 행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재작년 내가 돌아본 몇 개의 당 중에 2곳은 폐당 혹은 제를 지내지 않아 현재 당으로써 남아있는 마을은 드물 것이다. p 055



남해와 서해 섬들의 당을 돌아보고 깊이 느낀 점은 제주도 당의 분포가 높다는 점, 대부분이 당사를 두지 않는 작은 숲으로 되어 있다는 점, 여성이 제사를 주관한다는 점으로 다른 섬들의 당과 비교해서 상당히 이색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질적이라는 것은 아니다. 제주도의 당과 남해, 서해 섬들의 당, 특히 신안지역 섬들의 당 사이에는 상충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차이점도 두드러진다. 높은 분포를 보인다는 점에 대해 말한다면, 옛날에는 다른 섬들 즉 어느 섬의 어느 마을에서도 한 곳 이상의 당이 있었다고 생각되며 실제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 하지만 왜 섬에서 당이 이정도로 소멸되었고, 제주도에만 아직도 많이 남아있으며 게다가 그 신앙이 계승되고 있는 것일까. p 059



 


▶ 제주도 당과 제


일본에서는 ‘민간신앙과 그들의 국가 종교가 대부분 직결’되어 있는 반면, 한국에서는 ‘민간신앙이라고 하면 바로 반사적으로 미신과 타파라는 말이 튀어나온다’며 장주근씨는 약간 노기 서린 어투로 말한다(『한국의 향토신앙』). 실제로 일본의 오랜 역사 속에서 신사가 국가로부터 박해를 받은 사례는 거의 발견되지 않고 우타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쓰마번의 류큐정벌 이후, 번의 직할령이 된 아마미의 섬에서 우타키와 같은 신산과 그 신앙이 탄압을 받아 관리의 손에 의해 산신의 나무가 베어지는 일도 있었고, 메이지정부가 한때 우타키를 신사화 하려고 도모한 적도 있었으나 모두 극히 일시적이고 한정된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에 불가하다. 이것도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주도의 당 입지가 이러한 박해의 역사과 관계가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실제로 신사나 우타키와 같이 마을 안쪽 눈에 띄는 장소에 입지하는 경우는 드믈고 대부분은 외딴 곳에 숨어 있듯이 존재한다. p 066



제의 주체가 여성이라는 점에서 제주도의 당과 오키나와 우타키는 비슷하지만, 우타키의 경우 사제자인 노로, 쓰카사도 여성에 한정되어 있다는 데 반해 제주도 당제의 사제자는 남녀 누구나 될 수 있다. 과거에는 오히려 박수 중심이었는지 17세기 초반에 병자호란 때 제주도에 오게 되었던 김상헌의 『남사록』이라는 저서에는 ‘이 지방 풍속에는 예로부터 여자 무당이 없고 귀신을 모시고 기도하는 일은 다 남자 무당이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p 072


▶ 오키나와의 우타키


여성 사제자는 오키나와, 아마미 외에 일본 곳곳 변두리에 아직 그 존재를 겨우 유지하고 있다. 이를테면 도카라열도의 네시, 쓰시마의 묘부, 이즈칠도의 하치조섬과 아오가섬의 미코, 무녀들이다. 모두 낙도 이야기이며 본토에서는 거의 모습을 감추었다고 여겨진다. 다만 고대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신사 제사에 여성의 영향이 커진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이세신궁의 제사에 미혼의 여성 황족을 사제로 봉사시키는 사이구제도, 가모신사의 같은 제도 사이인은 그러한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두가지 제도는 당시 다른 신사에서도 제사가 여성 중심이었다는 사실을 추측하게 한다. p 103



이러한 우타키를 대표하는 게 세이화우타키이다. 이곳은 류큐왕조의 최고 신녀, 왕비, 왕의 자매, 왕녀 등이 임명된 기코에오키기의 즉위식과 오아라우리를 행했던 곳으로 이세신궁과 견줄만한 성지이다. 지금은 가이드북에도 실려있고 주차장도 있어 관광 명소의 하나가 되었지만 과거에는 통제가 심했다. 특히 남자 엄금으로 남자가 어쩔수 없이 들어가게 되었을 때는 여장해서 들어갔을 정도의 장소이다. p 109



오키나와에서 현재까지 제사의 중심이 여성이라는 사실은 류큐왕조가 있던 시기에 기코에오키미를 정점으로 하는 확고한 신녀 조직을 구축한 점이 그 커다란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여성의 영적 우위를 인정하고 자매를 형제의 수호신으로 하는, 이른바 오나리신 신앙이 아마미, 오키나와 지방에 넓게 나타나는 것은 야나기나 구니오가 「누이의 힘」에서 다룬 이후 잘 알려지게 되었다. ‘오나리’란 형제가 자매 즉 여자형제를 이르는 말로 자매가 남자형제를 이를 때는 ‘에케리’라고 한다. p 111



(…) 세 명의 신녀가 있어 류큐왕조의 판도를 세 개로 나누고 각각 구역을 관리, 통괄했다. 그들 하에 있는 것은 하나의 마을 혹은 몇 개의 마을마다 한 명씩 둔 ‘누루’(노로라고도 함)이다. 누루는 임명제이긴 했으나 왕부에서 파견되는 일은 거의 없고 지역 구가 여성이 선택되었다. 부계를 따르는 세습으로 백모, 숙모에서 조카딸에게 이어지는 계승이 전형적이다. 현재도 누루, 쓰카사 제도는 오키나와 전역에 남아있기는 하지만 소멸 직전에 놓여있다. 이제는 경제적으로 공적인 지원을 받을 수 없고 제사 수는 많아 여러가지 제약을 받는 누루, 쓰카사를 자진해서 떠맡으려는 여성은 극히 드물다. p 112



 

▶ 제주도와 류큐


제주도와 일본의 관계는 고대부터 서로 이주와 혼혈이 반복되어 왔다는 것은 틀림없다. 특히 거리적으로 가까운 고토열도, 쓰시마에서는 그러한 일이 일상적이었다고 여겨지며, 한반도 남해와 서해의 섬들과 현해탄의 섬들은 한 때는 동일 문화권에 속해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제주도와 쓰시마에 대해 살펴보면 제주도에서 자리돔, 갈치 등 연안어업과 해조류 채취에 지금도 사용되는 떼배는 쓰시마에 현존하는 떼배와 매우 유사하다고 한다. 그리고 작은 말은 일본에는 쓰시마, 도카라 열도, 요나구니 섬에 있는데 한국에는 제주도에만 있고, 쓰시마의 말은 제주도에서 건너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p 129



『제주도 무속연구』의 저자 현용준씨에 의하면 제주도에서는 제를 지낼 때 심방이 ‘대로 만든 채롱 위에 북을 세로로 세워 올려 고정시키고, 북채를 양 손에 들어 오른쪽 고면 만을 치는 것이다’라고 하는데 현씨가 쓰시마섬, 이키섬 조사 때 신사의 제의에어 신관이 이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북을 치는 것을 몇 군데 견학한 일이 있다고 한다. p 129



부언하자면 다니가와씨가 이 책에서 한반도에서는 정월 보름에 줄다리기를 하는데 제주도만은 구마모토, 가고시마에서 남도에 걸친 지역과 마찬가지로 음력 팔월 보름날 밤에 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이러한 사실은 제주도가 이 지역과 마찬가지로 쿠로시오 문화권에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제주도 역사학자 김태능씨는 제주 여성아 한반도 본토보다 오히려 일본에 가까운 습속으로 ‘바느질 방법, 아이를 업는 방법, 물건을 등에 지고 머리 위에 올리지 않는다’는 점을 들며 예로부터 떠돌아다니는 성향이 강해 타지에 진출하는 규슈 시마바라반도와 아마쿠사섬의 여성들이 제주도에 건너간 것은 아닐까 추측한다. p 131



김철준 교수는 ‘제주의 삼성설화는 이 지석묘 영조자들의 설화였다고 생각된다’고 까지 말한다. 삼인의 일본 여성이 안에서 나타났던 나무상자의 표착지는 제주도 동남쪽 온평리로 알려져있다. 이곳은 규슈 서부지역에 가장 가까운 장소로 한때는 열운리라고 불렸다. ‘열운리의 여는 일본의 별칭인 이에 혹은 요와 비슷한 음이며, 이에인 즉 일본인들이 상고시대부터 이주해 온 장소라고 생각된다’고 김태능씨는 말한다. p 133



이러한 습속 외에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 독립국이었는데 결국 본토에 귀속되어 지속적으로 차별을 받았다는 점, 최근에는 본토 사람들에 의해 제주도는 43사건, 오키나와는 오키나와 전투라는 비극에 휘말린 역사가 있다는 점에서도 제주도와 오키나와는 매우 닮아있다. p 140




▶ 신사와 한반도


제주도의 풍습도 포함해 당이 우타키와 관계가 있다면 우타키는 신사의 ‘원시형식’이기 때문에 당은 신사와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아니, 야요이 시대부터 고대까지 한반도 남부와 일본 본토, 특히 기타 큐슈와는 동일 문화권을 형성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당과 신사의 관계는 멀리 떨어진 오키나와 우타키의 경우보다 훨씬 밀접했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조차 든다. p 153



신사의 역사가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신사의 신역에서 야요이 토기가 출토된 사례가 많다는 사실에서 야요이시대까지 올라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렇다면 야요이 문화는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전한 문화이기에 그늘이 신사의 성립에 관련이 없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그들은 벼와 철이라는 이른바 선진문명의 전수자이기도 했고, 신을 모시는 방법만 토착민들(조몬인)에게 배웠다는 일은 있을 수 없다. p 154



『하리마국풍토기』 이보군이세노조에 ‘기누누히노이테, 아야히토노도라라의 조상’이라는 백제에서의 도래인이 ‘여기에 살려고 신사를 산기슭에 세워 신을 받들어 모셨다’라는 구절이 있으며, 또한 『고고슈이』에도 오진텐노 부분에 ‘진, 한, 백제에 종속하는 백성이 각각 많다. 감탄할 만 하다. 모두 그들의 신사가 있지만 아직 제물을 바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어, 도래인이 신사를 세운 사실을 전하고 있다. p 155



무라야마 마사오씨의 「조선관계신사고」는 「신명장」에서 도래계라고 추정되는 신사를 표로 정리해 싣고 있고, 그 수는 140여 곳에 이른다고 한다. 게다가 히라노신사, 마쓰오타이샤 등 이미 도래계로 확실히 알려진 신사는 제외한 것이니 실제수는 「신명장」 2,861사의 10퍼센트 가까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신사 명과 제신, 기록, 항간에 전하는 유래를 통해 사실로 판명된 것들이다. 하지만 중고시대 이후 신사 측에서 한반도와의 관계를 꺼리는 경향이 강해져 이들 중에도 신사 명의 표기나 발음을 바꾸고, 제신도 원래 제신을 폐하고 『니혼쇼기』와 『고지키』의 신으로 하는 사례가 눈에 띈다. 따라서 이들 이외에도 도래계였던 사실을 지금은 알 수 없는 신사도 많다고 할 수 있다. p 155



신사에 대해 말하자면, ‘교토에서 가장 도래된 절인데, 전부라고 하면 과장이 될지도 모르지만 많은 부분에서 한반도 도래인의 신앙이 밀착되어 있다’라고 어느 좌담회에서 우에다 마사아키씨는 말했다. 실제로 가모신사, 히라노신사, 마쓰오타이샤, 후시미이나리타이샤, 야사카신사 등 교토의 유명한 신사의 대부분의 창사에 도래계 사람들이 어떤 형태로든 연관되어 있다. p 161



…이나리라고 칭하게 된 유래는 하타노나카쓰헤노이미지키 등이 먼 조상의 하타씨족 이로구는 벼농사로 유명했다. 그런데 떡을 갖고 과녁으로 하여 활을 쏘았는데 떡이 백조로 변하여 날아가 이 산에 내려와 벼가 되었으므로 이를 신사 명으로 했다. 『야마시로국 풍토기』 中 인용


후시미이나리가 있는 주변은 하타우지 세력의 중심이었던 곳으로, 신사가 진좌한 이나리산과 그 주변에는 몇 개의 고분이 있다. 이 고분의 일부는 하타우지의 고분이고, 이나리 신사는 그 고분에 묻힌 하타우지의 선조를 모시기 위해 만들어서 후에 농업신이 되어 널리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고 고증하고 있다. 하타우지의 창사에 관련이 있는 교토의 신사로는 이외에도 마쓰오타이샤와 하타노사케키미를 모시는 우즈마사의 시키나이샤 오사케신사가 있다. p 162



야사카 신사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해지고 있는데, 여기서 하나하나 소개할 여유는 없기 때문에 신사에서 나오는 『야사카신사 유서 약기』의 한 구절만을 인용하기로 한다.


…야사카 신사의 창립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사이메텐도 2년 고구려에서 일본으로 온 부사인 이리시오미가 신라국 우두산의 스사노오미코토를 야사카 지방에 모셔, 야사카즈쿠리 성을 받은 것에서 시작했다는 설은 니혼쇼키에 스사노오미코토가 아들 이소타케루노카미와 함께 신라에 내려가 소시모리에 있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신찬성씨록에 야사카즈쿠리는 고구려인 시루쓰마노오리사의 자손이라는 기록과 추정을 합하면 거의 이치에 맞는 창립이라고 볼 수 있다. p 164



이세신궁도 한반도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동안 그런 사실은 사라지거나 감춰져 이젠 거의 눈에 띄지 않지만 향후 연구를 통해 점차 밝혀질 것이다. 김달수 씨의 『일본 속의 조선문화』 4에는 신궁 근처 이세시 구스베의 가라카미산을 찾으러 가는 도중 신궁사청에 오랫동안 근무하다가 퇴직 후에 지방사 연구에 볼두하고 있는 사람의 집을 방문하니 그 사람이 “조사를 하면 할 수록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그대로였어요”라고 했다. “모조리 조선 분위기가 풍긴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면 신궁사청이 곤란해진다는 거죠”라고 대답하는 흥미로운 장면이 나온다. 덧붙여 이스즈강을 따라가는 가라카미산은 신궁의 네기(신관)의 묘지였던 곳으로 커다란 고분이 있었지만, 다이쇼 초기 이스즈강 개수 공사로 파괴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산에는 가라신사의 작은 사당이, 그리고 가까운 숲에는 구니쓰미오야신사, 오쓰치미오야신사라는 두 개의 신사가 있다. 신궁 네기의 무덤이 있던 산이 왜 가라카미산으로 불리는지, 왜 근처에 선조를 의미하는 미오야라는 이름이 붙은 신사가 있는것인지 의문만 깊어간다. p 167



이세신궁의 신궁이라는 명칭 자체가 신라에서 먼저 쓰였다는 설이 몇몇 사람들에 의해 나왔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소지마립간 9년 봄 2월조에 ‘신궁을 나을에 설치하였다. 나을은 시조가 처음 태어난 곳이다’라고 되어있는데, 이를 신궁의 첫 기록이라 한다. 그 전까지 역대 왕은 제 2대 남해왕 때 창건한 시조묘에서 제사를 지냈지만, 이후 시조묘라는 이름이 사라지고, 왕이 제를 지내는 것은 신궁이 됨에 따라 시조묘를 신궁으로 개명했거나 개편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삼국사기』 잡기 제1, 제사조에 남해왕이 시조 혁거세의 사당을 세웠다는 것을 기록한 후에 ‘사계절에 맞추어 제사를 지냈는데 친 누이동생 아로로 하여금 제사를 맡게 하였다’라고 하니, 이세의 제궁제를 떠올리게 하여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p 167



마에카와 아키히사씨는 「이세신궁과 신라의 제사제」라는 논문에서 ‘이세신궁이 신사에서 신궁의 칭호가 붙게 된 전화의 계기는… 신라의 제사성의 영향에 의한것은 아닐까 생각된다’고 설명하며, 이세신궁은 제사제도까지도 신라에서 배웠다고 한다. (…) 덴무도 이후 거의 정기적으로 복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적어도 제도로서 확립된 것은 덴무텐노시기로 보인다. 덴무텐도는 그 출신이 신라의 왕족이라는 설이 나올 정도로 신라에 가까운 텐노였다. 진신의 난이 덴지텐노의 친동생과 제1황자의 황위계승을 둘러싼 난이라는 종래의 설을 부정하고, 신라의 세력을 배후에 둔 오아마황자와 백제의 세력을 등에 업은 오토모황자의 싸움이라는 오와 이와오씨의 설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이 설이 맞다면 진신의 난 이후 덴무조에서 신라의 문물이 많은 분야로 들어왔다고 충분히 생각할 수 있고 이세신궁도 예외는 아니다. 게다가 이세, 시마 지방에는 그 이전부터 많은 신라계 도래인이 거주하고 있었던 것 같다. p 168



이런 신라의 신의 숲은 당의 숲으로, 그리고 진수의 숲, 그러고 나서 우타키의 숲으로 이어졌음에 틀림없다. 신사와 한반도의 관계를 구체적인 사례에 입각해 추적해왔지만 끝이 없기 때문에 이정도로 해 두겠다. 그렇다고 해서 나라, 교토의 신사가 특히 한반도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데 무라야마 마사오씨의 「조선관계신사고」에서 조선과 관련 있는 시키나이샤가 가장 많은 곳은 이즈모로 11곳, 다음은 오미 10곳, 야마토와 이세, 에치젠은 8곳으로 3위, 야마시로와 가와치, 무사시가 6곳으로 4위였다. 이주모는 지리적으로 한반도 특히 신라와 가까워 신라와의 관계에는 예사롭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 p 169



약간 농담濃淡의 차이는 있으나 일본 대부분 지역에서 고대 도래인의 흔적과 그들과 연관 있는 신사를 찾아낼 수 있다. 그러므로 신사의 성립을 고찰할 때 한반도를 무시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p 171



신라의 신수신앙에 대해서는 앞에서 언급했지만, 좀 더 보충해보자.


신라의 시조 혁거세는 숲 속 우물 옆에 놓인 커다란 알에서 태어났고, 제13대 미추왕이 속한 김씨의 시조 알지는 계림에 하늘에서 내려온 금궤 속에서 나왔으며, 또한 수도 경주는 원래 계림이라고 불렸으니 이 나라는 수림樹林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실성왕 시대에 경주 부근 낭산에 구름이 일어났는데, 향기가 가득 퍼져 오랫동안 없어지지 않으니 왕은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믿어 낭산을 성지로 하여 나무를 베는 일을 금했다고 한다. p 180



당과 신사 사이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 둘이 거쳐 온 역사이다. 신사 신앙도 우타키 신앙도 모두 시종일관 국가의 신앙으로 국가의 두터운 비호를 받으며 박해를 받은 사례는 없었다. 그에 반에 당은 유교를 국교로 하는 조선시대 500년 동안 음사로 배제되고, 때로는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제주도 당의 박해 사례는 제1장에서 언급했지만, 그것은 제주도만의 일이 아닌 한반도 전체의 일이었다. p 181



일본에서 나오는 한국 가이드북에서 당을 접할 수 있는 책은 눈에 띄지 않는 것에 반해, 일본의 이세신궁이나 이즈모타이샤, 이쓰쿠시마신사 등에 대한 기술이 없는 한국 가이드북은 적다. 당의 자취는 희미하고, 그 존재는 없는 것과 같아보인다. 그렇기에 신사는 일본 고유의 것이라는 의식이 나타나게 된다. 한국인 스스로 손수 다룬 당과 당제에 대한 연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마침내 본격화되고 있고, 향후 연구가 진행되면 당과 신사가 숨겨진 형제 혹은 자매라는 점이 서서히 밝혀지게 될 것이다. p 183



 

그리고.....책 내용과는 조금, 아니 매우 관계없는 TMI



그러고보니, 이 책의 저자는 김달수 씨의 저서를 많이 인용하였는데, 그 김달수 씨의 저서가 우리집에도 있다. 그 책들은 여차저차해서 겨우 구하긴 했는데, 아직 읽지는 않았던 터라, 이 정도의 책을 쓴 저자가 인용할 정도면 그 내용도 정말 깊이가 있겠구나 싶다. 늦장 그만부리고 김달수 씨 책도 얼른 읽어봐야지(김달수 씨는 한일고대사에서 ‘도래인’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한 재일동포).



그러고보니22


이 책의 출판사가 제이앤씨다. 문득 내 책장에 일본사, 한일고대사에 관한 역사책들이 꽂혀있는 책장을 봤는데 놀랍게도 제이앤씨에서 출판된 책들이 여러권 있었다. 뭐지 이 출판사..? 눈여겨 봐야겠어!



그러고보니333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책은 번역이 꽤나 잘 되어 있다. TMI이긴 한데, 내가 읽어본 일본인이 쓴 책의 번역본 중 반 이상은 정말 가독성이 매우 떨어진다. 물론 나 역시도 제약논문 번역을 하면서, 번역이 어렵다는 것은 몸소 깨달았지만 그럼에도 뭐랄까. 책을 번역하는 사람들은 돈받고 하는 일일텐데, 그정도로밖에 못하나? 싶은 마음이 아주 수백번 드는건 어쩔 수 없달까. 헌데 이 책은 그저 그런 교양서도 아니고 학술총서인데, 이 정도의 매끄러운 번역이라니! 이런 번역본들만 있었으면, 내가 굳이 원서를 읽을 일들이 없었을 건데^_T.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발칙한 이솝우화 - 삶의 자극제가 되는
최강록 지음 / 원앤원북스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솝우화, 아주 어린 시절 읽었던 책이다. 그냥 어렸을 때도 아니고, 한창 동화책을 보던 코흘리개 시절말이다. 그래서 이솝우화는 당연이 아이들이 읽는 책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머리통이 커진 이후로는 더더욱 읽어볼 생각조차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이솝우화의 ‘이솝’이 저자라는 것도 몰랐다. 거기다 이솝우화가 고전소설 이라는 인식도 없었다. 그정도로 나에게 이솝우화는 그저 어린아이들이 읽는 책이었고, 앞으로도 읽을 일이 없던 책이었다. 




이솝우화에 대한 나의 인식이 저 정도였기에, 이 책을 받았을 때는 좀 반신반의 했다. 어른들을 위한, 어른을 독자로한 이솝우화라, 어른에게 이솝우화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래도 도움이 되겠지? 라고 생각하며, 이 책 「삶의 자극제가 되는 발칙한 이솝우화」를 읽기 시작했다. 



※이솝에 대해서


『이솝우화』의 저자는 고대 그리스의 ‘아이소포스(기원전 620년~564년)’입니다. ‘이솝’은 아이소포스의 영어식 발음이죠. 그에 관해 알려진 정보는 매우 적습니다. 입담은 재치 있었으나 외모가 흉측스럽고 말을 더듬었따는 설이 있습니다. 헤로도토스의 『역사』에 따르면, 이솝은 도시 국가인 사모스 시민 이아드몬의 노예로 이야기를 잘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어 주인을 많이 도와줬다고 합니다. 훗날 자유인이 된 그는 각지를 돌아다니며 지혜가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환영을 받았으나, 그를 질투한 델포이의 시민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전해집니다. 그가 남긴 우화는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후대에 문서로 만들어졌습니다. 노예 출신이었으니 우리가 알고 있는 고전의 저자 중 신분이 가장 낮은 사람이었던 거죠. 그래서인지 그의 우화는 매우 실제적입니다. 착하고 바르게 살라는 도덕적인 교훈만 담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거칠고 잔인하며 처절하기까지 한 현실적인 이야기가 많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사형 집행을 앞두고도 탐독했을 정도니까요. p 007~008



놀랍게도 태초에 이솝우화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고전이 아니었다. 이솝이 만든 우화는 이솝이라는 노예가, 생존을 위해서 자신이 쓸모를 알리는 수단으로 사용한 도구였던 것이다. 처음부터 이 우화의 독자는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었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서 잔혹한 마더구스나 그림형제 이야기가 어린이 동화가 되었듯, 이솝우화도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동화가 되었던 것이었다.



이솝의 배경을 알고나서야, 저자가 이 책의 책머리에 쓴 이솝우화에 대한 말이 이해가 되었다.


정치인이 읽으면 예민한 민심을 포착하는 심리서로, 


사업가가 읽으면 세상의 흐름을 짚어내는 경영서로, 


종교인이 읽으면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울로, 


교육자가 읽으면 배움의 이치를 깨닫는 교과서로…


 


그저 동물들이 나오는 이야기라, 막연하게 아이들의 동화책이라 생각했던 이솝우화는 놀랍게도 일종의 풍자소설이었다. 노예였다가 훗날 자유인이 된 이솝은 분명 갖은 고생을 했을 것이고, 살면서 만났을 수 많은 인간들을 만났을 것이다. 특히 노예 때 만난 인간들, 자유인이 되어서 만든 인간들, 바운더리가 다른 인간들을 수 없이 만났을거고, 자신이 보아온 인간들의 삶을 이야깃거리로 만든 것이 아닐까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는 이솝의 이야기를 말그대로 ‘인간’에 빗대서 해설한다. 정확히는 인간의 ‘군상’, ‘심리’등을 통해서 말이다. 저자가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여서 그런건지, 우리 주위에 있을 법한 인물 군상들이 이솝우화에서, 저자게 해설해주는 여러 일화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이솝우화는 그저 아이들의 동화책이 아니었다. 아주 오래된 고전인 동시에, 살면서 있을 법한 여러 상황을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힌트를 제공해주는, 어른을 위한 이야기책이었다.




 




이 책은 여러 이솝우화를 총 4개의 챕터로 구분했다. 각 챕터 속에서도 또 여러 소주제가 있어서, 내가 원하는 이야기만 골라 읽는 것도 가능하다.



1. 내 마음의 주인이 되는 이솝우화: 불안


2. 좀더 성숙한 어른을 위한 이솝우화: 성장


3. 전환점을 마련하고 싶을 때 이솝우화: 성숙


4. 복잡한 삶이 홀가분해지는 이솝우화: 활기




아래는 이 책에 실려있는 이솝우화와 저자의 해설을 일부 발췌하였다.




▶내가 먼저 물러나는 건 결국 나를 위한 일이다: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두 염소



실제로 차 한 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이나 시골 마을 오솔길 혹은 외진 산자락에 난 협로에서 마주 오는 차와 맞닥뜨리면 곤란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어느 한쪽이 두 차가 비켜갈 만큼 넉넉한 공간이 나올 때까지 뒤로 물러나줘야만 평화롭게 해결이 날 수 있습니다. 두구든 먼저 양보하는 게 가장 빨리 가능 방법입니다. 그런데 왜 이게 어려운 걸까요? 비단 운전만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또는 각종 단체나 모임 등에서 나와 타인 사이에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질 때가 많습니다. p 063



‘양보하면 지는 거야.’,  ‘여기서 물러서면 나만 바보 되겠지?’, ‘조금만 더 버티고 밀어붙이면 내가 이길 수 있어.’


마음속을 들여다보면 이런 생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대인관계에서 벌어지는 일을 두고 승부를 가리는 게임 혹은 승패가 판정나는 경기로 생각하는 것이죠. ‘양보=패배’, ‘고집=승리’라는 편견에 사로잡혀있는 것니다. (…) 손해보고 싶지 않는 마음, 양보를 꺼리게 만드는 심리를 ‘손실회피편향’ 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대부분 내가 얻게 될 이득보다 내가 보게 될 손해에 더 주목하며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합니다. 이득으로 인한 기쁨보다 손해로 인한 두려움이 크다는 것이죠. 기쁨은 순간이지만, 쓰라린 기억은 상당히 오래갑니다. p 064~065



내가 먼저 물러서고 양보하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면, 지금 당장 손해인 것 같아도 결국은 그 영향이 내게 긍정적 결과로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두 염소 중 한마리가 이렇게 말했더라면 어땠을까요?


“내가 뒤로 물러날 테니 네가 알고 있는 맛있고 싱싱한 풀 있는 곳 한 군데를 알려줄래?” 


그랬더라라면 맞은편 염소도 이렇게 대답하지 않았을까요?


“좋아, 알려주지. 그리고 다음에 외나무다리에서 또 만나면 그땐 내가 먼저 물러날게.”


두 염소 모두 죽지 않고 맛있고 싱싱한 풀을 나눠 먹는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작은 것 하나를 더 얻으려다 큰 것까지 전부 잃게 되는 건 알량한 이기심과 욕심 때문입니다. p 066~067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며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개구리와 황소



우화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입니다. 새끼 개구리들에게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엄마 개구리의 눈물겨운 모성애는 한편으로 이해되는 측면도 있으나 아무리 그래도 개구리가 황소만해지려 했다는 건 용기보다 만용에 가깝습니다. 전혀 근거 없는 잘못된 믿음을 ‘망상’ 이라고 합니다. 상황이나 사태를 잘못 해석해 갖게 된 지각이나 경험을 두루 포함합니다. p 126



엄마 개구리는 자신이 황소처럼 커질 수 없단느 사실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새끼 개구리들의 기대와 응원을 받으며 ‘그까짓 것 왜 못해?’, ‘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지.’ 하고 한껏 부풀려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과대망상에 빠진 것이죠. 그런 다음 헤어나지 못하고 실제 행동으로 옮긴다.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이런 증상은 열등감, 패배감, 불안감 등을 보상하고자 노력하다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스스로 보상받기 위해 현실을 왜곡시키고 강하게 믿으면서 결국 현실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이죠. p 129



과대망상을 치료하려면 약물 치료와 심리 치료를 병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며 현실을 직시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평소 현실 감각을 잊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고민과 걱정은 적정한 선에서 멈춰야 하며, 적당한 자신감은 필요하지만, 지나친 자만심은 경계해야 합니다. 과대망상에 빠진 사람이 가족이나 친구 혹은 동료일 경우 지나치게 나무라거나 야단쳐서 고쳐보겠다고 나서는 건 위험합니다. 그가 과대망상에 빠지기까지 겪어야 했던 쓰라린 열등감, 깊은 패배감, 힘겨웠던 불안감 등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진정한 공감과 위로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p 131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깊이 공감하는 태도: 고깃덩어리를 입에 문 개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다른 개라고 착각해 입에 문 고깃덩어리를 뺴앗으려다 자신의 고깃덩어리마저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개에 관한 우화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거나 들으면 누구나 개의 어리석음에 혀를 찹니다. 그리고 과도한 욕심을 경계하죠. 하지만 현실로 돌아와 나 자신을 돌아보면 어리석은 개처럼 과도한 욕심과 지나친 탐욕에 사로잡힐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p 166



없어서 소유를 갈망하는 게 아닙니다. 충분히 있지만, 타인이 가진 게 더 좋고 멋지고 탐스러워 보여 그것까지 다 갖고 싶은 욕심을 내는 겁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심리로 개인이 불행에 빠지고, 가정에 불화가 생기며, 사회에 불안이 잉태됩니다. 부족과 부족,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 사이에 다툼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 내가 조금이라도 더 가지려 하기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내가 장남아니까, 내가 모셨으니까, 내가 제일 친하니까, 내가 제일 가난하니까 더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속내는 욕심 뿐 입니다. p168



정신분석학에선 자신에게 지나치게 애착을 갖는 태도를 ‘나르시즘’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리비도(인간의 생물학적인 성적 에너지)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우리말로 ‘자기애’라고 번역합니다. p 169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며 내가 아닌 타인과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정서와 태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이긴 하지만, 내 부족한 점을 깨닫고 인정하며 늘 겸손한 자세를 갖추는 건 오랜 훈련과 연단이 필요한 일입니다. 과도한 욕망과 탐욕을 내려놓고 현재에 자족할 줄 아는 지혜 역시 쉽게 얻어지지 않습니다. p 171



‘소탐대실’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작은 걸 탐하다가 큰 손실을 당한다는 뜻이죠. 내 재주와 노력과 능력과 분수 이외의 것을 과도하게 욕심내거나 지나치게 추구하다 보면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자족할 줄 아는 게 행복한 인생을 사는 지혜입니다. p 172



다시금 깨닫는다. 이솝우화는 어린이 동화책이 아니라, 삶의 이치와 깨달음을 담고 있는 고전이라는 사실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루하나 365일, 챌린지 인생 문장 - 1년은 사람이 바뀔 수 있는 충분한 시간
조희 지음 / 리텍콘텐츠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번에도 어김없이 하루 1 페이지씩 읽어나가는 책을 읽어버렸다. 물론 책의 모토와는 달리, 하루만에 다 읽었다는게 함정이지만.




이 책 「하루하나 365일, 챌린지 인생문장」은 방대한 양의 독서를 한 저자가, 지금까지 만난 책 속의 명언들을 하나 둘 모아두었다가,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보따리를 풀 듯이, 그 많은 독서명언들 중에서 추천하고픈 365개의 명언을 선정하여 이 한 권에 꽉꽉 담았다. 뿐만 아니라 명언과 함께 독자로 어떤식으로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첨언을 실었다. 책 제목만 봤을 때는 독서 명언집 정도라고 생각했었는데, 읽고보니 이 책은 자기계발서였다. 자기계발서는 자기계발서 이상의 매력이 없으면 잘 안읽는 편인데, 다행스럽게도 이 책은 자기계발서 이상의 매력이 있었다. 그 매력은 바로 독서명언!



어쩌면 누군가는 평생토록 읽지 않았을 책 속의 명언 한 줄, 그 명언들이 이 책 덕분에 세상 밖에 나온 것이다. 무엇보다 ‘누군가는 평생토록 읽지 않았을’은- 바로 나다. 정말 내가 평생토록 읽지 않았을 법한 책의 존재가,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충격적이게도 이 책에 나온 수많은 명언을 품은 책들 중, 내가 읽은 책은 단 한 권이다. 그 단 한권은 박종인 기자님의 「행복한 고집쟁이들」. 자타공인 박종인 기자님 팬이다보니, 기자님의 저서는 거의 다 가지고 있는 편이다. 뭐랄까, 기자님이 쓴 한 줄이 나 뿐만 아니라, 이 책 저자의 마음도 울렸던 것이다. 역시 달라!(전지적 더쿠마인드ㅋㅋ)



흠흠흠. 결과적으로 이 책 속의 독서명언들은 내가 읽은 책 단 한 권을 제외하면, 내가 읽지 않은 책들의 명언들이다. 덕분에 난 이 책을 독서명언, 자기계발서로 보기보다는 ‘어떤 책을 읽어볼까?’ 하는 마음으로 읽게 되었다. 적어도 이 책 속에 실린 수 많은 책들은, 저자가 믿고 추천하는 그런 책들일테니까. 


그러다 문득 머릿속에 스쳐지나간 생각이 있었다. 이 책의 저자도 나 못지 않게 독서편식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보아하니 이 책 「하루하나 365일, 챌린지 인생문장」 속에 실린 수 많은 명언들이 나온 책들은, 대다수가 자기계발서다(저자의 독서편식..?). 아 물론! 이 책에 제목이 실린 자기계발서들은 베스트셀러에 손꼽히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대표적인 자기계발서 추천도서다(특히 직장인들에게). 나 역시도 제목들은 거의 다 아는 책들이었으니까. 거기다 자기계발서 중에서도 대체로 성공/자기관리/경영/리더쉽/처세 관련한 자기계발서들이 많아보였다. 직장인들이라면 한 권 이상은 읽었을 법한, 회사 추천 도서로 억지로 읽었을 법한 책들도 있어보였다. 우리 회사 독서통신에도 있는 책들이 꽤나 많기도 했고. 물론 나 역시 이 책들 중 일부는 읽어보려고 손까지 댔으나, 완독은 못했다(이건 아무래도 내 독서편식 성향때문인듯T_T). 여튼, 이 책 덕분에 조금이나마 그 책들의 속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되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것에 만족을 표하고 싶다.



이 책은 총 4개의 챕터로 명언들을 구분해놨다. 


1. 운명에 맞서 개척하는 인생, 도전의 계절

2. 달콤한 환상 꿈같은 사랑, 열정의 계절

3. 어떨 때는 배반하는 인생, 인내의 계절

4. 흐르는 시간 영원한 사랑, 이성의 계절



뭔가, 챕터만 봤을 때는 굉장히 감성적(?)인 듯한 느낌이 들지만, 꼭 그렇지많도 않다. 특히나 잊을만 하면 나오는 뼈를 때리는 듯한 문장들은, 나를 반성하게 만든다. 



아참참!! 이 책 초입에는 사용설명서가 있다. 뜬금없이 왠 사용설명서인가? 싶을지도 모르지만, 사용설명서가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보통 1일 1페이지 읽는 책들은 대충 읽고 덮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그런 단점을 보완하기라도 하듯 ‘챌린지 미션’을 숨겨놓았고, 그 미션 달성을 위한 사용설명서를 책 속에 실은 것이다. 덧붙이자면, 이 미션은 일종의 출판 이벤트다. 미션완수 후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상품★도 있다. 이 책의 미션, 즉 사용설명서 내용은 생각보다 쉽다. 



매 페이지, 그러니까 한 주제당 세 개의 체크박스가 있는데, 이 체크박스들은 이 책을 보다 효과적으로 읽게 하기 위한 수단이다. 세 개의 체크박스는 ‘읽기’, ‘결심하기’, ‘인생문장’ 으로 구분되어 있다. ‘읽기’ 는 말 그대로 읽었는지를 체크하는 것이며, ‘결심하기’는 해당 주제를 읽음으로써 내 마음상태의 변화에 대해 체크하는 것이고, ‘인생문장’은 이 책에 실린 365개의 문장 중 유독 맘에 드는 문장을 체크하는 것이다. 인생문장 체크까지 끝났다면, 이 책 마지막에 실려있는 <부록>에 본인이 선정한 인생문장 중 20개를 선정해서 필사를 하고, 이를 출판사에 인증하는 것!



하지만 난.... 책은 깨끗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그런 옛날마인드를 가진 사람인지라(메모조차도 안함) 미션완수는...포기하는 걸로^_T.


미션 완수는 못하지만, 그래도 기록삼아 내 뼈를 때리고,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그런 문장 몇가지를 옮겨본다.




▶ DAY16 어떤 대가를 치를 것인가


좋은 습관을 지키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때론 쾌락과 기회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나는 오늘부터 달라지기로 결심했다_그레첸 루빈>


과정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란 쉽지 않은 대가를 요구하죠. 결과를 뻔히 알면서도 당장은 쉬운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선택에서 등을 돌려야 비로소 좋은 습관을 들일 수 있습니다. 오늘은 달라지기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를 것인지 생각해보세요. 결과만을 원하지 말고 그 과정을 받아들이세요. p 029



▶DAY21 지속성의 힘


꾸준한 지속성이 실력입니다. <나를 천재로 만드는 독서법_서상훈>


꾸준하다는 말은 무엇일까요? 꾸준함과 동일어는 매일매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일매일에 충실할 수 있을 때 실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지속성은 쉽게 갖출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꾸준한 노력과 주의를 기울여야 얻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매일 약간의 고통을 뛰어넘어 실천할 수 있다면 당신도 당당한 실력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p 034



▶DAY39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물처럼 사는 인생이 가장 아름답다. <도덕경_노자>


물처럼 사는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 의미는 바로 낮은 곳을 향해 흐른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사람들은 낮은 자리를 싫어합니다. 하지만 물은 기꺼이 그 낮은 곳을 향해 흐르죠.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삶은 아름답습니다. 바다가 넓은 것은 모든 물을 포용하기 때문이죠. 오늘은 바다처럼 넓은 마음으로 너그럽게 타인의 실수를 용서해보세요. p 052



▶DAY58 제물되지 않기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증명하려는 순간 그들의 제물이 되기 쉽다. <모두에게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_웨인 다이어>


인정 욕구는 부모의 재롱 욕구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면 부작용이 발생하죠. 모든 행위의 기준이 나의 만족이 아니라 남의 만족이 되어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는 남에게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눈치보지 말고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보세요. 충만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p 071



▶DAY82 최악을 가정하라


최악의 경우를 예상하고 있으면 막상 일이 닥치더라도 견뎌낼 수가 있다. <거래의 기술_도널드 트럼프>


우리는 긍정적인 사고를 무조건 좋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긍정적인 사고 뿐만 아니라 부정적인 사고 역시 중요합니다. 그것은 일의 거래에서 특히 필요한 일이죠. 최악의 경우의 수를 예상하면 상황이 나쁘게 흘러가더라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최악의 경우부터 예상하세요. 당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줄테니까요. p 095



▶DAY93 친구라는 착각


회사에서 같이 근무하는 동료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 혼자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커리어 독립 플랜_김경옥>


사람들과의 관계 설정은 처음에 어떤 사이로 시작했느냐가 아주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물론 우정이 사랑으로 발전할 수도 있고, 회사 동료가 어려움을 함께 헤쳐나가는 친구가 될 수도 있죠. 하지만 친구가 연인이 되는 것보다 회사 동료가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회사 동료가 나를 배신하더라도 덤덤하게 이겨내세요. p 107



▶DAY101 공짜는 없다


자신감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피나는 노력으로 기본기를 채워갈 때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이다. <잠깐 멈춤_고도원>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을 보면 부럽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자신감을 가질 수 있나 궁금합니다. 하지만 그 자신감의 밑바탕에 얼마나 많은 연습과 노력이 있는지 알고 나면 그렇게 부럽지만은 않을거에요. 자신감이 있는 사람은 실력이 있습니다. 수많은 연습과 노력으로 땀방울을 흘렸기에 얻을 수 있는 실력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실력을 쌓기 위해 분투하는 노력을 배워야 합니다. p 115


▶DAY113 투자의 본질


자산을 늘리는 힘은 현재 시장의 분석이 아닌, 더욱더 폭넓은 세계사 지식의 ‘축적’과 ‘응용’이라는 사실이다. <최고의 투자자는 역사에서 돈을 번다_ 쓰카구치 다다시>


역사의 흐름을 알면 돈을 버는 방법은 저절로 보입니다. 아시아 금융 위기 때 막대한 부를 거머쥔 조지 소로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 때 150억 달러라는 엄청난 수익을 올려 유명해진 존 폴슨은 하락 국면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성공을 거머쥐었습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힘은 바로 거시적 안목으로 현재를 분석하는 힘, 즉 ‘세계사관’에 있습니다. 오늘부터 세계 경제 뉴스에 관심을 가져보세요. p 127



▶DAY119 손이 없는 삶 속에서


손이 없는 대신에 사랑을 알았고, 마음의 변화를 가져왔고, 새롭게 살게 되었다. <행복한 고집쟁이들_박종인>


소금장수 강경환 씨는 손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는 손이 없다는 것에 대해 절망하지 않고 세상에 감사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손이 없는 대신 사랑을 알았다는 말은 그의 깨달음을 나타냅니다. 손이 없는 삶 속에서 그는 한결 성숙해질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을 바라볼 수 있었고 한 번 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부터는 인생에 닥친 불행을 불행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내 마음을 바꾸는 계기로 삼아 한 걸음 더 나아가세요. p 13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른의 한자력 - 1일 1페이지, 삶의 무기가 되는 인생 한자
신동욱 지음 / 포르체 / 202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은 독서편식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안읽는 분야의 책이 있으니 그게 바로 자기계발서다. 사견이지만..자기계발서는 독자들에게 도움을 준다고는 하지만 막상 읽어보면 조금이나마 성공했다거나 혹은 자신의 위치에 만족해하는 사람들이 쓰는 자기자랑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진짜로 도움이 되는 자기계발서도 분명 있다. 지금 리뷰하려는 자기계발서처럼. 뭐, 여튼 대체로 정말 도움이 되는 자기계발서는 생각보다 드물고, 찾기도 힘들뿐더러 무엇보다 대다수의 자기계발서들은 대부분 비슷하다보니 자기계발서를 잘 안읽게 된다. 하지만 오늘 리뷰하는 자기계발서 「어른의 한자력」은 앞서 살포시 이야기했듯, 진짜로 도움이 되는 자기계발서다. 특히 문해력, 어휘력이 떨어지는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더더욱. 거기다 직장생활을 하는 2030세대라면 더더더더더욱!!



가끔 서평을 쓸때마다 이따금씩 ‘문해력’에 대해 이야기를 한적이 있다. 아마도. 요즘 젊은 친구들은 문해력이 부족하다는 뉘앙스의 내용이었던것 같다. 예를 들자면 ‘사흘나흘’을 모른다던지, ‘심심한 사과’를 모른다던지, ‘금일, 차주’를 모른다던지 뭐 그런거? 심지어는 뉴스에서도 요즘 젊은 세대들이 문해력, 어휘력이 부족하다며,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물론 문해력 부족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글쎄, 과연 그럴까? 나만해도 회사에서 문해력 부족한 동료들을 여럿 보았다. 심지어 회사메일, 상부에 보고하는 기안문 등등등 혀를 내두를 정도의 문장들이 많았으니까. 정말 다양한 사례가 있지만, 할말하않이다. 정말로....왜! 어찌하여!! 유독!!! 젊은 세대에서 문해력, 어휘력 부족 현상이 나타나는걸까? 심지어 나도 젊은 세대인데?



나와 같은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문해력, 어휘력 부족 문제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봤다. 결론은 금방 나왔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독서가 부족하고, 한자를 잘 모른다는 것. 우리가 기성세대라 부르는 세대들은 지금과는 달리 한자가 중요한 사회였기에(신문에 반 이상이 한자였을 정도), 젊은 세대처럼 독서가 부족하다고 한들 지금처럼 사회적 논란이 일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다르다. 과거와 달리 한자의 위치는 급격하게 떨어졌다. 뿐만인가? 학교 정규수업에도 한자가 없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일상생활에서 한자로 된 단어를 쓰는건 아직도 비일비재하다. 다만 한자가 아닌 한글로 쓸 뿐. 여기서 이미 어휘력이 뚝 떨어진다. 만약 한자의 뜻을 모른다면? 앞뒤 문맥 또는 상황에 따라 판단 또는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라도 있어야 한다. 문해력이다. 하지만 이런 능력은 독서로 향상시켜야 하는데, 요즘 젊은세대들은 숏폼 같은 영상 매체들의 발달로 인해 독서를 안한다. 여기서 문해력도 뚝 떨어진다.



그렇게 어휘력, 문해력이 뚝 떨어진 채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한 세대가 바로 지금의 젊은 세대다. 어휘력, 문해력이 떨어지니 직장생활에 알게모르게 어려움이 생길게 분명할테고. 그런 어려움을 타파해보고자 책이란 것을 읽어보려고, 베스트셀러 진열대에 있는 자기계발서를 고른다. 하지만 베스트셀러라는 자기계발서마다 하는 말들은 거의 비슷하고, 그렇게 책을 덮어버린다. 아마 수많은 20대, 30대들이 반복하는 상황이 아닐까?



그런 그들에게 난 이 책 「어른의 한자력」을 추천하고 싶다. 제목만 봤을 땐 자기계발서가 맞나? 싶을지도 모르는데, 일단 표면적으로는 자기계발서가 맞다. 하지만 흔한 자기계발서와는 시작부터 다르다. 제목에서 눈치챘을 지도 모르지만, 이 자기계발서는 ‘한자’에서 직장생활, 사람과의 관계 등 인생의 해답을 찾고자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책에서 인생의 해답을 찾으면서, 한자도 공부하고, 한자에 담긴 속 뜻까지도 생각하게 한다. 이런 건 그 어떤 자기계발서에서도 하지 못한 일이다.



책 부제가 ‘1일 1페이지, 삶의 무기가 되는 인생 한자’인 만큼, 하루 한장씩 끊어 읽으면서 한자를 눈에 익혀도 좋다. 물론! 이 책은 어디까지나 자기계발서다. 한자책이 아니라. 다만 한자에서 인생의 길을 찾는 것 뿐이다. 그래서 한 편당 마지막 장에는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매번 다른 질문을 던진다.



저자가 한자에서 어떻게 인생의 길을 찾아가는지, 아래에 일부 발췌해본다.



노동을 의미하는 ‘勞’는 ‘熒(등불 형)’ 밑에 ‘火(불 화)’ 대신 ‘力(힘 력)’을 넣은 한자다. 등불(火) 2개 아래 밤 늦게까지 힘써 일하는 일꾼의 노고를 보여주는 듯 하다. 고대 사회에도 우리네 직장인들처럼 야근이 잦았나 싶어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 지금은 주 52시간 제도가 법제회 되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OECD에서 근무 시간이 가장 긴 축에 속한다. 동시에 노동 생산성은 매우 낮다. 熒을 켜고 늦게까지 오래 일하면 잘한다고 칭찬받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따. 낮이든 새벽이든, 사무실이든 카페든, 시간이나 장소에 상관없이 회사가 기대하는 성과를 충분히 이루면 일을 잘하는 것이다. 회사를 위해 있는 힘껏 力을 다하되, 반드시 熒을 켜고 밤늦게까지 일해서 만든 결과일 필요는 없다. 주어진 몫만 제대로 잘 해내면 1시간을 일하든 10시간을 일하든 충분한 보상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정상적인 회사고 정상적인 사회다. p 026



형식을 의미하는 한자, ‘形’은 ‘幵(평평할 견)’과 ‘彡(터럭 삼)’이 합쳐진 모습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한자는 幵이다. 두개의 ‘干(방패 간)’이 나란히 그려져 비슷한 모양임을 표현하면서 ‘모양’이란 뜻이 생겼다고 한다. 이 한자를 보면 쌍방이 서로 같은 것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매개가 형식이란 생각이 든다. 누군가 干이라 말했는데 상대방이 千(일천 천)이라 알아들으면 이해시키는 데 실패한 것이다. 상대방도 똑같이 干이라고 이해하도록 돕는 수단이 바로 형식이다. 형식이 중요한 이유는, 보고서의 본질이 결국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형식에만 집착하면 안 되지만, 본질만 보라며 형식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도 좋은 자세는 아니다. p 066


고등학생들이 담배 심부름을 거절한 할머니에게 폭언하고 조롱하는 영상이 국민적 공분을 샀던 사건이 있다. 어른 공경의 차원을 떠나 사람에 대한 존중이 사라져가는 시대임을 실감한다. ‘공경(恭敬)’은 ‘공손히 섬긴다’라는 의미이다. ‘恭’은 ‘共(함께 공)’과 ‘忄(마음 심)’이 합쳐져 ‘함께 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인간이라면 공손해야 한다. 상대방이 아이든 어른이든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가져야하는 마음이다. p 106



어른이 되면서 스스로 ‘덜 상처 받는 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찾은 방법은 이것이었다. ‘그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 ‘원래 그런 것’이라는 뜻을 가진 한자들이 있다. ‘자연(自然)’이란 단어에 쓰인 한자 ‘然’도 그중 하나다. 이 한자는 만들어진 과정이 좀 특이하다. ‘犬(개 견)’, ‘肉(고기 육)’, ‘火(불 화)’가 결합한 모습인데, 그대로 해석하면 개고기를 불에 구워먹는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 개를 구워먹는 게 너무 당연해서 이 한자가 생긴 것이 아닐까 싶다.(…) 한자의 유래로 본다면 ‘그러려니’ 한다는 것은, ‘이건 그냥 개고기 구워먹는 정도의 일이야. 누구나 그렇게 하니까’로 치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런 일을 당하는 개에게 안타까운 심정을 가져 본 일이 있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스스로 둔감해지는 동안, 다른 누군가의 상처에도 둔감해지지는 않았는가? p 185


누구나 행복한 미래를 꿈꾸지만 잠시 행복했던 오늘이 지나면 내일의 고민이 또 생긴다. 힘든 시간을 거쳐 잠시 행복했다가, 다시 힘든 시간이 반복되는 것이 인생의 본질이 아닐까. 오늘 찾아온 행복은 오늘 잠시 허락될 뿐이다. ‘다행’이나 ‘행복’의 뜻을 가진 ‘幸’이란 한자 유래에 대한 해석은 여러가지 지만, 내 눈에는 ‘辛’ 위에 ‘十’이 쓰인 것 처럼 보인다. 노예 표식을 새기는 도구 모야에서 유래했기에 辛에는 ‘괴롭다’, ‘고통스럽다’는 뜻이 있는데, 열 번이나 반복되어야 비로소 幸이 된다. 인생은 잠깐의 행복을 위해 그보다 훨씬 지난한 고난의 시간을 견뎌야 한다. p 2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