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발해고 - 잊혀진 제국 발해를 찾아서, 오래된 책방 11 ㅣ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11
유득공 지음, 정진헌 옮김 / 서해문집 / 2006년 1월
평점 :
926년 발해가 멸망했다. 거란 요나라가 처들와 발해의 수도 홀한성(상경용천부)을 함락시켰다. 요나라는 발해의 땅에 괴뢰국을 세웠다. 발해유민들은 일부는 요나라로, 일부는 대거 신생국가 고려로 유입되었다. 엄청나게 넓은 영토를 다스리던 발해가 한 순간에 멸망했다는 사실은 조금 의아하다. 예전에 한 다큐에서 백두산 대 폭발에 대한 내용을 본 적이 있다. 물론 『발해고』에는 이러한 내용이 없긴 하지만, 현재 백두산 대폭발 추정연도를 보았을 때 930년 ~ 940년, 『고려사』와 당대 일본의 기록을 비추어 볼 때 946년 이다. 뭐 백두산 대폭발을 정통으로 맞지 않았다고 해도, 대폭발 이전의 전조 현상은 분명 있었을 거고, 그런 전조현상은 일종의 자연재해로 민심이 이반되고, 국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거기다 지속적으로 거란이 침입하고 있었으니 업친데 덥친격. 그렇게 발해가 멸망한 게 아닐까? 라는 사심 100% 담긴 추정이다.
명실공히 우리의 역사 발해, 하지만 잊혀진 역사 발해. 중국이 발해를 자국의 역사로 바꾸는 동북공정을 보며 역사왜곡을 한다며 중국 탓만 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발해를 모르고 있다. 발해를 지키기 위해서는 발해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유득공의 『발해고』가 더욱 특별한 이유다.
유득공은 신라의 통일을 강조하여 한국사의 판도를 한반도로 위축시킨 종래의 역사 인식을 바꾸어, 우리 민족의 역사 무대를 발해의 영역이었던 만주 일대로 확대시켰다고 할 수 있다. 실제했으나 그 당시에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던 잃어버린 발해사를 우리 역사 체계로 편입시킨 것으로서, 그의 상대주의에 입각한 북학 사상이 역사학에서 표출된 것이라고 판단한다.
요컨대 북학 사상은 이용과 후생을 통해 정덕이라는 유교적 이상 사회를 이룩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으로 중국의 문물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중국에서 규격 벽돌을 만들고, 수레를 스며, 물이 스미지 않는 배를 만드는 기술, 그리고 상업을 장려하는 등의 제도들을 배우자는 것이다. - P14
고려가 발해사를 짓지 않은 것을 보아, 고려가 부진했음을 알 수 있다. - P37
부여 씨가 망하고 고 씨가 망하자 김 씨는 남쪽을 차지했고, 대 씨는 그 북쪽을 차지하고서 이름을 발해라고 했는데, 이 것이 남북국이다. 그러니 마땅히 남북국사가 있어야 하는데도 고려가 이를 쓰지 않았으니 잘못이다. 무릇 대 씨는 어떤 사람인가? 바로 고구려 사람이다. 그들이 가졌던 땅은 어떤 땅인가? 곧 고구려 땅으로 그 동쪽, 서쪽, 북쪽을 물리쳐서 크게 했을 뿐이다. 무릇 김 씨와 대 씨가 망하게 되자 와아 씨가 이를 통합해서 소유했으니, 이것이 고려다. - P37
끝끝내 발해사를 짓지 않아서 토문 이북 지방과 압록강 이서 지방이 누구의 땅이 되었는지 몰랐다. 여진을 꾸짖고자 했으나, 할 말이 없었고, 거란을 혼재려고 했지만 그 근거가 없었다. 고려가 끝내 약소국이 된 것은 발해의 땅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참말로 한탄스럽구나! - P38
발해는 당나라 때부터 자주 여러 학생을 경사로 보내어 태학에서 고금의 제도를 배우게 했다. 그래서 낭다라에서는 발해를 해동성국이라고 불렀다. - P62
고려 태조 17년 7월에 수만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서 고려로 왔다. 태조가 왕계라는 성명을 내려주고, 왕실의 종적에 덧붙였다. 원보로서 백주를 지키게 했고 제사를 받들게 했다. - P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