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게 뭐라고
장강명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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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을 왜 다시 읽게 된거지,하고 돌이켜보면 학창시절에는 책이라하면 질색했던 것 같습니다.. 교과서 펼치는것도 짜증스러운데 만화를 제외한 책이라고는 존재의 가치가 없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마지못해 대학교재로 도이스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부터 시작해 그 단단한 벽돌같은 장편소설을 큰돈주고 장만해야될때에도 도저히 수긍하기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나마 톨스토이는 힘겹지만 읽는 재미라도 나름 있었지만 도스트옙스키를 읽느니 안드레이 타프코프스키의 작품을 하루죙일 보는게 덜 힘들 것 같던 그런 시절이었죠, 어릴적 전집으로 아부지가 사주신 위인전기에 딸려왔던 청소년 추리소설전집이 그렇게 즐겁고 행복했던 아이는 어디로 사라져버린걸까요, 어느샌가 읽기보다는 보기를 즐기고 듣기보다는말하기에 집착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무엇보다 타인보다 자신에게 더 집착하는 사람이 되어버린거죠, 성인이 되어가면서 직관적이고 습득하기 수월한 편안함에 자연스럽게 물들어 버린 것 같더군요, 그러다가 군대를 가게 되었죠, 그동안 읽어온 독후감에서도 여러번 밝혔지만 직관과 말하는게 쉽게 허락되지 않던 군대에서도 물론이고 휴가라도 받게되면 머나먼 집으로 향하는 길에 지겨움을 덜기 위해 무턱대고 한 권을 산 대중스릴러소설이 또다른 책읽기의 시발점이 아니었나 싶네요, 저에게 있어서의 흠뻑 빠져버린 작품이 옛날 잘나가던 고려원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왔던 '레드 드래건'이라는 토마스 해리스의 작품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되었으면 얼매나 조으련만, 복학을 하고 전공은 내몰라라하고 놀다가 IMF가 터지면서 취업이 어려워지자 더욱 책은 머리속에서 지워진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2. 또다시 세월은 흐르고 여차저차해서 돈벌이는 하게되고 누군가와 만나고 가정을 꾸리게 되었죠, 그래서 책을 못읽었다,라고 하면 핑계겠죠, 그 와중에도 읽기보다 보기에는 충실했고 듣기보다는 말하기에 능숙해진 사람이 되어버렸으니까요, 보는 것에 만족하고 말하기가 나의 능력인냥 떠들면서 누군가의 말에 귀기울여본 적이 얼마나 있었는가를 생각하면 참 어리석어 보이는 젊은 시절이군요, 누군가에게는 책이 삶과 다르지 않은 필수였겠지마 전 그렇지 않았습니다.. 십수년이 지난 어느날 우연히 중고서점에서 발견한 그 옛날 흠뻑 빠져들었던 '레드 드래건'이라는 작품을 다시 만나면서 조금씩 취미같지 않은 소설 읽기라는 독서라는 취미가 생겼습니다.. 그 옛날 아무렇지도 않게 취미란에 독서와 영화감상이라고 끄적거렸던 그 사기성 이력에 조금은 부합하는 어설픈 삶입죠, 근데 우린 왜 제대로 읽지도 않는 책을 수없이 두고서도 취미는 독서라고 자연스럽게 적어내려가는걸까요, 딱히 취미가 없는 삶에서 그나마 책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나름이 지적 이미지를 인지시켜줄 것이라는 흔한 선입견 때문일까요, 여하튼 그랬어요, 그 이후로 오랜 시간동안 거의 책을 옆에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남들처럼 인문서나 자계서나 에세이나 고급진 시문학과는 동떨어진 흔히 말하는 잔인하고 극악한 범죄소설이나 장르소설의 대중적 가벼움을 즐기면서 살지만 부끄럽지는 않습니다.. 읽지도 않을 인문서를 머리맡에 두고 세월을 보내느니 흔하지만 언제나 책읽는 사람이 되는 것이 더 나은 삶이라고 전 생각하니까요,


    3. 좋고 나쁘고의 독서와 책의 질이 있겠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전 책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것은 아주 복합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모든 책들이 각자의 영역에서 전인적인 입체적 능력을 향상시켜 주지만 개인적으로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주는 희열과 카타르시스는 조금 남다릅니다.. 허구이지만 현실을 빗대고 자극적이지만 삶과 동떨어지지 않은 우리의 인생과 주변에 대한 이야기는 수많은 생각과 판단적 확장에 도움을 줍니다.. 전형적이고 인간의 감정과 내면의 어두움을 보여준다고 특히나 교육적인 면에서 아이들에게 불친절하고 감성적 영향을 준다고 잘나디 잘난 성인들은 외면하고 무시하고 거리를 두는 문학들의 가벼움이 오히려 저에게는 삶이 주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책은 생각의 확장을 주고 삶에서 만나지못한 또다른 인생의 공감을 전달해줍니다.. 15세 관람가라고 버젓이 내세운 TV드라마를 초딩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보고 폭력과 피칠갑의 잔인한 묘사가 중학생들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에서도 어른이라는 존재들은 생각과 판단과 견해의 입체적 능력을 길러주는 책(그중에서도 장르소설류)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부반응을 보이는 현실이 참 아이러니합니다.. 그러니까 우린 '책'이라는 것에 대한 대단히 이중적이면서도 애매모호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건 아닌 지,, "책, 이게 뭐라고"........말이죠,


    4. 장강명 작가의 산문집이라 적고 에세이라 읽습니다.. 작가가 북이십일이라는 출판사에서 운영했던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경험한 생각들을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작품입니다... 젊은 세대에서는 나름 인지도를 가진 장강명 작가님이시고 팟캐스트 '책, 이게 뭐라고'이나 여러 라디오에서 패널로 참여하신 분이십니다.. 물론 아직까지 있는 그대로 대단한 베스트셀러로 사회적 인지도가 팍팍 올라가계신 저명한 작가님으로 인정받기에는 책을 멀리하시는 많은 분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기도 하죠, 여하튼 이 장강명 작가의 솔직, 담백한 삶에서 우러나는 책과 인생과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이나 재미집니다.. 소탈하고 있는 그대로의 적나라함이 담긴 이번 에세이속에서 그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책과 관련된 소통의 삶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 책이라는 사물이 주는 삶의 영향을 옆자리에서 맥주 한잔 거들면서 두런두런 이야기하는 것처럼 듣고 있으려니 무척이나 펀안합니다.. 기자로서의 삶에서 작가가 되고싶었던 시절과 그 작가가 되고서 그가 행하는 읽고 쓰는 세상의 깊이를 만나게 되는거죠, 그가 알아가는 읽고 쓰는 세상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수많은 다양한 작가들과의 이야기와 책을 중심으로 그의 삶에 저변에서 만나게 되는 인물들과 그가 경험하고 만난 수많은 작품속의 이야기, 그리고 그를 변화시키고 그를 성장시킨 좋은 작품들의 영향력을 우린 직접 만난 것처럼 그의 쓰기를 통해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되는거죠, 딱히 뭔가 의도하려거나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하진 않습니다.. 단지 장강명이라는 인간이 수년동안 한 팟캐스트를 진행하면서 시간과 함께 그에게 많은 것을 소통해준 세상 모든 것에 관한 이야기입죠, 재미집니다...


    5. 팟캐스트라는 것을 찾아서 듣진 않아요, 차에서 카세트 테이프를 꽂거나 cd를 넣고 음악을 듣고 라디오를 듣던 시절에서 블루투스로 연결된 음악의 세상을 만난 어중간한 시기의 중년의 아저씨에게 이러한 팟캐스트는 조금은 어색한 미디어적 영역입니다.. 그나마 적응하고 어쩔 수 없이 끊임없이 울려퍼지는 BTS의 전곡 퍼레이드를 반복적으로 들어야하는 선택권이 없는 뚱보 가장으로서는 일부러라도 찾아서 듣기는 어려운 영역입죠, 기껏해야 역사를 다룬 팟캐스트나 정치이야기에 조금 시간을 할애할까, 책을 읽는다는 사람이 책과 관련된 미디어는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책을 다룬 미디어속에서는 언제나 제가 사랑하는 대중소설의 그중에서도 스릴러소설류의 이야기는 뭔가 대중적으로 선호하지 않은 영역인 지, 여즉까지 제대로 만나본 적이 없다보니 더욱 외면하게 되는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국내 장르소설가가 진입하기 어려운 출판문화의 다양성의 부족과 함께 우리나라는 여전히 번역문학과 장르적 취향에 대해 상당히 많은 편견과 몰지식을 유지하고 있으니까요, 이러한 출판시장과 문화의 편협함은 시간이 지나도 딱히 달라질 것 같진 않기 때문에 더욱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강명 작가의 "책, 이게 뭐라고"라는 에세이속의 이야기는 조금씩 많은 독자층에서 다양한 매력을 선보여줄 좋은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더욱 공감이 갑니다.. 다양한 책의 세상, 누구나가 보고 말하기보다는 읽고 쓰고 듣기에 편안함과 행복을 느끼는 그런 세상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웃나라 일본의 다양한 출판문화와 서양의 장르적 취향에 대한 자연스러운 소통의 방식, 헤밍웨이와 스타인벡에 못지않게 마이클 코넬리와 할런 코벤이 인정받는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상상도 해보구요, 카뮈의 '이방인'과 헤세의 '데미안'만큼이나 네스뵈의 '해리'와 디버의 '링컨'이 대우받는 세상이 되면 좋겠네요, 그냥 그렇다구요,


    6. 작가가 제임스 엘로이를 칭송하고 '블랙 달리아'를 인생의 작품으로 이야기하고 '개의 힘'을 사랑하고 전 포기했지만 도스트옙스키의 '악령'에 환호하는 모습은 참 매력적입니다.. 그가 작가이자 진행자로서 책의 세상속에서 책과 관련된 수많은 사람을 만나 소통하고 경험하면서 이해한 이 작품 '책, 이게 뭐라고'는 누구나가 만날 수 있는 이야기이지 않을까요, 책이 주는 매력속에서 누구나가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 자연스럽게 책을 논하고 책을 비평하고 책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세상일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비록 저 역시 책을 사기보다는 얻어 읽고 공짜로 주면 더 좋고 누구에게나 좋은 평가를 해주고 싶은 어설픈 독후감 작성자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책을 읽습니다... 시원찮은 돈벌이에 요즘같은 세상 책 몇권 사는 것 조차 부담스러운 지경이니 이렇게 한번씩이라도 누군가가 이 책 재미져요, 함 읽어보세요,라고 던져준다면 옳거니하면서 덥석 받아서 즐겁게 읽고 가치없는 독후감이라도 이렇게 끄적거리며 살아가는 세상이 그렇게 나쁘게 느껴지진 않습니다.. 비록 의미없고 주절거림의 연속인 독후감이라도 한권의 책이, 하나의 작품이 세상 모든 이에게 버림받을 지라도 저에게만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쁜 선택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 책 읽고 나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해보는군요, 아마도 장강명 작가 역시 이러한 자신의 책과의 삶이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력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의도를 담은 편안한 책 에세이가 아니었는가 싶네요, 물론 제임스 엘로이의 소설을 다시 읽어라는 의도도 있다꼬 생각해서 조만간 '블랙 달리아'를 펼쳐보기로 하고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데 '책, 이거 뭐라고'말이죠,,,,,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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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트릭의 모든 것
니타도리 케이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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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노보노'는 참 생각이 많은 해달입니다.. 해달임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어떤 일을 저지르거나 궁금한게 있으면 묻는 것도 많습니다.. 단순한 너부리나 얍쌉한 포로리와 함께 그들만의 모험을 즐기지만 보노보노는 항상 고민이 많습니다.. 그런 그에게는 야옹이형이라는 슨생님이 있죠, 세상의 이런저런 진리와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지식을 잘 전달해주는 캐릭터입니다.. 그러니까 심지어 동물들도 이러할진데 인간인 우리는 얼매나 생각이 많겠냐구요, 이성이라는 사고의 능력은 정말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고차원의 선물인게죠, 이러한 이성은 논리적이고 상황적 추리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게 만들어줍니다.. 인간은 그래서 학습을 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이 논리적 추리의 영역은 대중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즐거움을 줍디다.. 단순한 사랑의 이야기와 역사를 알려주던 글의 영역이 인간의 사고에 즐거움을 더하는 추리의 재미까지 등장한 시기는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이러한 논리적 추리의 근거는 인간이 언어를 정리하고 문자를 만들어내어 자신들의 의도를 적시할 수있는 글이 존재하던 시기부터 있어왔겠지만 대중적 영역에서의 추리를 글로 풀어낸 이야기는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근대에 들어서 급격한 인구의 증가와 사회의 발전에 따라 인간들의 생각적 사고의 확장도 급격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나 싶기도 하구요, 여하튼 이러한 추리적 사고의 스토리의 구성은 대중성에 부합되어 아주 즐거운 소재가 되어 여전히 독자들에게 매력을 안겨주고 있죠,


    2. 그중에서도 추리의 장르는 끊임없이 반복적인 설정과 구성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는 장르입니다.. 코난 도일 할배와 아가사 할매를 거쳐서 근현대사에서 이러한 장르의 확장력은 엄청났습니다.. 그중에서도 본격추리의 사고적 즐거움은 대단한 지식적 카타르시스를 만끽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죠,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단서를 찾아서 조합으로 사건의 해결을 하는 서사의 구성은 변함이 없으나 그 단서를 만들어 결말을 이끌어내기 위해 전략을 차고 트릭을 이용하고 판단을 놓치게하는 장치들이 끝도 없이 창작되어지고 인간이 이끌어낼 수 있는 상황적 추론을 배신하게 만들기 위해 수많은 추리작가들이 각고의 노력을 거쳐 한권의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특히나 이러한 본격추리의 묘미는 근대에 들어 특히나 일본의 출판시장에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죠, 굳건히 하나의 장르로 사랑을 받아오고 있는 배울만한 독서문화의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솔직히 일본 문화중에서도 이러한 출판문화와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경험을 부럽기는 합디다.. 여하튼 이러한 추리 장르중에서도 '서술트릭'이라는 장르는 참 독자들을 허무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죠, 바보로 만들고 배신을 때리고 한번 읽은 책을 다시 읽게 만드는 재주가 뛰어난 방법의 추리적 영역입니다.. 사실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어떻게해서든 결말을 유추하고 예상함에 따른 자신의 판단이 맞아 떨어지는 것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을겝니다.. 맞으면 자신이 흐흠,하면서 나 이정도야,라고 할 정도의 지적 카타르시스를 맛 볼 것이고 만약 생각했던 예상과는 아예 다른 반전의 결말이 이루어진다면 배신의 헛헛한 작품적 매력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르죠, 보통은 후자에 작품에 대한 점수를 더 주곤 합디다.. 저도 그렇구요,


    3. '서술트릭'은 그러한 독자를 배신하고 속이고 숨기는 방식에 능한 장르입죠, 이 작품 "서술트릭의 모든 것"의 작가 니타도리 게이라는 분은 이러한 서술트릭을 상당히 즐겁고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자, 이제부터 서술트릭을 시작할테니 독자님들 절 따라오시데 어디쯤에서 당신의 판단이 맞아 떨어지는 지 함 보세요, 근데 아닐껄요,,, 라는 이야기로 작가는 서술트릭으로 이루어진 단편들을 선보여주죠, 그렇게 서문을 시작한 작가는 이어지는 단편들 속에서 각각의 서술트릭을 이용하여 독자들을 농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작가가 만들어낸 단편들의 소재와 그 설정의 유쾌함을 상당히 즐겁습니다라꼬 시작하면서 각 단편을 살펴봅시다.. 그 첫번째가 '뻥 뚫어주는 신'이라는 작품입니다.. 화장실의 변기를 뚫어준 이를 찾기 위한 탐정의 추리극입죠, 누군가로 인해서 변기가 막현 물이 넘쳤지만 어느순간 뚫려있었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단지 그 변기가 뚫기기전 화장실을 간 사람들과 변기를 뚫을만한 장비가 화장실내에 없었다는 일종의 밀실추리의 방법론이 적용된 것이죠, 황당하면서도 유쾌한 단편입디다... 다음은 '등을 맞댄 연인'이라는 로맨틱 추리소설입니다.. 풋풋한 대학생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죠,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상황에서 각각은 그들만의 홀사랑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주치기를 원하고 만나기를 혼자서 그려보는 남녀의 이야기입니다.. 어떻게보면 상당히 소심하고 답답해보이는 남녀지만 풋풋하다는 말로 바꿔서 표현할랍니다.. 그리고 이들을 마주하게 만드는 상황적 추리가 전개됩니다.. 물론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판단의 미스와 생각의 오류를 드러내는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감성적인 부분이 제법 좋았습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결론이 등장했지만 조금은 우리적 정서와는 다른 상황적 해결인지라 일본사람들이라면 쉽게 이해할만한 서술트릭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4. 세번째 작품은 '갇힌 세 사람과 두 사람'인데 제목을 보고 첫문장을 보자마자 이거슨 이러한 내용이 아닐까 싶었는데 대강 맞았습니다.. 그렇다고 다 맞춘건 아니지만요, 그렇다보니 흥미가 조금 사라진 단편이 되어버렸네요, 다음은 '별생각 없이 산 책의 결말'이라는 작품입니다.. 현실의 이야기속에 인물이 자신이 산 작품의 추리적 해결을 요구하는 스토리입니다.. 나쁘진 않은데 흔한 설정과 방법들인지라 그러려니 했습니다.. 다섯번째 작품은 '빈궁장의 괴사건'인데 이 작품 참 황당하면서도 유쾌하고 어이가 없는 헛웃음이 나오는 작품입니다.. 물론 이 헛웃음은 결말을 눈치채지 못했기에 나오는 것이죠, 그리고 솔직히 그걸 누가 알아챘겠느냐는 반문이 들 정도의 황당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재미있었습니다.. 야, 이걸 누가 눈치채,라고 하면서 아무도 모를껄... 했습니다.. 이어지는 마지막 작품은 '일본을 짊어진 고케시 인형'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조금 이전의 작품들과는 다른 구성과 방법을 드러내죠, 앞선 다섯작품에 대한 해결적 측면이 들어가면서도 그 단편 자체의 서술트릭도 제법 뛰어납니다.. 그 외에도 이 작품에서는 앞선 작품들이 조금은 단순한 일상적 유쾌함으로 가볍게 적용된 소재라면 이 마지막 단편속의 이야기는 생각보다는 진중한 사회적 문제가 담겨 있습니다.. 현재의 일본의 사회적 상황이나 시대의 흐름의 미숙함이나 사회적 인식 부재와 정치적 무관심에 따른 편향적 사고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게다가 정말 생각지도 못한 단편집 전체를 아우르는 서술트릭의 반전과 함께 단편속 트릭의 매력도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5. 이렇게 총 여섯 편의 작품과 함께 작가의 후기에 또다른 황당한 상황적 트릭을 이용한 가벼운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총 7가지의 서술 트릭을 우린 만나게 됩니다.. 사실 서술트릭이라는 장르에 큰 매력을 느끼지도 그렇다고 막 찾아 읽지도 않는 어설픈 독자의 입장에서 이 단편집은 조금은 가볍고 뭔가 황당한 헛웃음을 유발하는 코지미스터리의 서술트릭적 영역이지만 매력이 있습니다.. 그러니 진중하면서도 뭔가 꼭 독자들에게 당신들을 바보로 만들어보겠어라고 작심하고 서술트릭이라는 사실을 모른 체 고민과 머리털을 쥐어 뜯어면서 작가가 살인의 미스터리와 사건의 참혹성을 생각지도 못한 단서에서 드러내면서 반전의 충격을 주는 작품보다는 그 감성이 덜 할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각각의 단편과 단편집 전체의 서술트릭을 위해 작가가 꽤나 머리를 쥐어 뜯었지 않겠나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단편집 전체를 통해 한 인물의 이름이 등장합니다.. '벳시'라는 신기방기한 탐정이 드러내는 일탈적 유머와 기괴한 유쾌함은 이 작품의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죠, 그러니 이 단편집은 모든 이야기가 거짓말인겝니다.. 각각의 단편들을 읽으면서 아주 가볍고 아무것도 아닌 허술한 스토리처럼 흘려 넘길 수 있는 그냥 그런 느낌의 서술트릭을 이용했다라고 생각하실 수는 있으나 책을 덮고 이거 뭐지라고 돌이켜 생각해보신다면 상당히 뛰어난 작가의 구성력을 느끼실 수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단편집이니 각각의 단편의 묘미가 일본말로 '데코보코'를 치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긴 합니다..


    6. 막 고민하고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서술트릭의 코지미스터리의 방식인지라 즐겁습니다.. 유쾌하고 유치하고 어설픈 인물적 이미지지만 그 나름의 매력이 잘 담겨있는 작품입니다.. 미스터리를 고민하고 다가서는 그런 추리적 부담감을 주기위한 작품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상황을 즐기며 그 흔한 대중성속에서 생각지도 못한 반전의 서술트릭을 이끌어내는 흐뭇한 작품입죠, 전혀 자극적이지도 않고 전혀 진중하지도 않지만 있는 그대로 작가가 의도한 서술트릭이 뭔가를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오게끔 만든 설정과 소재와 참신함을 상당히 칭찬해줄 부분이라꼬 전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작가는 긍정적이고 행복함이 깃든 문장력으로 인물들을 그리고 그 상황들을 발랄하게 그려내려는 일상 미스터리의 의도를 고민한 흔적이 모든 이야기속에 담겨있어 아이들에게도 쉽게 권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그러니까 이런 류의 경쾌함이 오히려 항후 추리소설의매력에 빠져들고픈 초보 독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물론 수많은 사회적 비참함과 참혹함과 저질스러운 밑바닥의 범죄의 사실적 설정과 소재와 주제와 고통과 인간의 이중성과 비겁함을 맛본 장르 독자들중 하나인 저같은 뚱보 아저씨의 감성에서는 헛스러운 웃음을 유발하고 가볍게 느껴지긴 하지만 역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 작가 '니타도리 게이'라는 인물은 뭔가 유쾌발랄한 젊은 감성과 함께 독자들에게 쉽게 다가가는 방법을 아는 얍쌉한(?!) 인물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처음  만난 작가니 잘모르고 하는 말일 수도,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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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정 살인사건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임경화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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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자들의 차가 넘쳐납니다.. 있는 그대로 도로에 지나가는 수많은 차들중에 부자들이 탈만한 그런 외제 차가 수두룩합니다.. 어떻게 저런 차를 몰고 다니는거죠, 할부든 리스든 어쨌든 타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여유가 있는 분들이실까요, 그 차가 부러운 것이 아니라 항상 저런 차들을 타고 다니려면 도대체 한달에 얼마나 벌면 될 지, 혼자 고민을 해보곤 합니다.. 아니 그분들에겐 한달이라는 개념이 의미가 없을 수도 있겠군요, 그러니까 단순하게 도로에 넘쳐나는 부자차들만 보더라도 이 세상에는 정말 금전적으로다가 여유로운 사람들이 많다는건데요, 그럼 세상에서 돈에 치이고 돈에 묶이고 돈에 끌려가는 사람들은 도로에 다니는 차들만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반반 정도 -전 그렇게 보입디다- 되어야될텐데, 왜 우린 항상 돈돈하는걸까요, 있는 넘들이 더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참 돈없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이 암울한 사회속에서 남아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항상 쪼들리고 입버릇처럼 돈 없어,를 달고 살고 내가 없는건 괜찮은데 아이들에게 남들 다 신고 다니는 고급 운동화 한번 사주는게 이렇게 고민스러운 일이라는 자괴감이 꾸역꾸역 밀려들어오는 것은 참 현실속에서 감내하기 힘든 일이긴 합디다... 그렇다고 누굴 탓할 필요는 없죠, 가진 자들을 시기하고 그들의 삶과 세상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일 필요는 없는겁니다..


    2. 그냥 이 사회의 구조가 이해가 잘 안갈 뿐이죠, 물론 힘겹게 차라도 좋은걸 타야 주변에서 돈 벌 확률이 높아진다는 뭐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그래서 더 돈에 쪼달리며 살 수도 있겠지만 단순히 전 그럼에도 그들의 삶은 나름의 여유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는겁니다.. 살아가는데 돈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돈이 있어도 돈에 매몰되어 '돈돈'하는 사람들이 많죠, 위에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기도 합니다.. 이중적이지만 없이 사는 월급쟁이 인생에서 그런 사람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금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 밖에요, 사실 몇십만원의 여유만 있어도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사는 저같은 사람들에게는 말이죠, 아님 말구요, 여하튼 이러한 금전적 문제가 사회적 범죄의 가장 큰 목적이 되기도 합니다.. 어떤 빌어먹을 인간들은 돈 몇만원에 살인을 저지르기도 합디다.. 대한민국 재벌들의 유산 다툼이나 형제들간의 재산 다툼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죠, 물론 이러한 있는 자들의 탐욕과 욕망은 전세계의 자본주의 시장 어느곳에서도 벌어집니다.. 조금이라도 부모나 가족들중 돈 꽤나 있는 사람들이 남겨놓은 재산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이들은 드물죠, 한푼이라도 더 받고 싶어서 몹쓸 짓을 하는게 우리 인간이니까요, 이런 몹쓸 인간들을 표현하는데는 미디어적 상상력으로 현실을 구현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슨생도 자주 다르지 않네요, 그가 보여주는 소설속의 인간들의 내면과 그 탐욕의 본성은 참 지랄맞게도 현실과 다르지 않습디다.. "회랑정 살인사건"은 게이고 센세이의 초기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격추리에 가까운 작품이지만 이 초기작들에게서는 우린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감성과는 또다른 인간의 내면과 이야기에 촛점을 맞춘 작가의 의도를 알 수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재미진 소설들입죠, 재간된 이 작품은 국내에서는 2008년에 출시되었지만 일본에서의 출간은 1991년이니 30년 가까이 된 작품입니다.. 짧고 강하고 매력적인 추리소설입니다..


    3. 소설은 회랑정이라는 일본식 펜션인 료칸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입니다.. 서두에서 한 남녀가 불타는 료칸에서 사고를 당합니다.. 여성인 기리유 에리코는 자신이 사랑하는 지로와 함께 화염에 휩싸이고 지로는 죽게 되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기리유는 사고가 나기 전 지로로 인해 죽을 위기에 처합니다.. 목이 졸린체 기절했던 기리유가 깨어났을때에는 회랑정이 화염에 불타고 있었던 것이죠, 병원에서 깨어난 기리유는 사랑하는 지로가 왜 자신을 죽이려했는 지, 그리고 누군가가 그들을 죽이기위해 료칸을 불태웠는 지 궁금해합니다.. 경찰에서는 지로가 기리유를 찾아 회랑정으로 오기 전 누군가를 사고로 치어 죽이고 뺑소니를 한 체 회랑정에서 기리유와 동반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죠, 하지만 기리유는 이 사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모시던 이치가하라 사장의 병과 함께 이치가하라 집안의 사람들이 사장의 유산에 눈이 멀어 저지른 일이라는 사실을 비서인 그녀가 제일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기리유는 이치가하라 사장의 죽음 후 49제를 위해 모이기로 한 회랑정을 다시 찾습니다.. 이번에는 그녀 자신이 아닌 이치가하라 사장의 지인인 혼마 기쿠요라는 할머니로 변장을 하고 유산 분배를 위해 모인 회랑정으로 오게 된 것이죠, 이치가하라 집안의 어느 누구도 기리유가 혼마라는 할머니라는 사실을 알 지 못합니다.. 그리고 기리유는 이곳에서 그녀가 사랑했던 지로와 자신의 고통을 위해 복수를 다짐하게 됩니다.. 누군가 그들을 살해한 인물을 찾아서 복수를 하기 위해 혼마여사로 변장하여 참석을 하게 된 것이죠, 그리고 자신의 의도대로 자신을 죽이려고 한 살인자를 찾기 위해 혼마인 척 기리유가 남긴 유서를 유산 분배과정에서 제시한다는 말을 꺼냅니다.. 분명 기리유와 지로를 살해하려던 인물은 자신의 범죄를 숨기기 위해 유서를 훔칠테니까요, 그 범인이 바로 복수의 대상인 것입니다.. 사실 기리유는 사고 후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지만 복수를 위해 병원에서 탈출해 스스로 죽음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기에 어느 누구도 혼마 할머니가 기리유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다 모인 식사자리에서 혼마로 변장한 기리유는 자신의 유서를 보여주게되고, 그날 밤 자신의 방으로 몰래 들어온 인물을 확인하게 되는데,,,,,


    4. 상당히 깔끔하면서도 속도감 넘치는 스토리를 진행시키는 추리소설입니다.. 이런저런 본격에 걸맞는 추리적 요소들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스토리 위주의 복수극이라고 보시면 무난하시지 싶습니다.. 그리고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벌어지는 일들도 군더더기없이 상황에 맞춰 아주 긴장감 넘치면서도 기리유라는 여성의 복수적 시점에 자연스럽게 이끌려 나갑니다.. 회랑정에 모인 누군가는 범인이라는 사실만으로 본격 추리소설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그 내면의 이야기들은 대단히 드라마틱하면서도 감정적 공감을 이끌어내기에 충분합니다.. 기리유라는 여성의 시점이다보니 그녀의 삶과 그녀가 비서로 있었던 시기의 이치가하라라는 인물의 가족력에 대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죠, 상당히 전형적이면서도 흔한 치정극과 상황적 스토리가 강하지만 이 흔한 인간의 탐욕성과 그 자극적 이야기에 독자들은 충분히 감응하고 즐기게 됩니다.. 추리적 논리나 근거가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논거를 제시하고 답을 찾아나가는 부분에 있어서는 감정적 극단성과 상황적 현실성이 대신하고 있지만 그 설정이나 방식이 어설프지만은 않습니다.. 또한 중반부를 넘어서서 벌어지는 또다른 반전의 상황적 고비는 작품의 속도감과 더불어 대중소설이 주는 드라마틱한 매력에 흥미를 유발하게 됩니다.. 아무래도 복수극이고 요즘 시대에 맞는 말은 아니지만 쉽게 말해서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리게 되는 법이니까요,


    5.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이 소설은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통속적인 소재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탐욕에 물든 인간들의 이기적 욕망과 복수극을 주제로 돈 많은 재벌의 유산상속에 따른 용의자들의 행동들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자신을 속이고 변장을 한 인물이 자신의 복수를 진행하는 것 또한 아주 흔한 설정이고 전형적인 스토리에서 벗어나질 못하는데 왜 재미질까요, 게이고 슨생은 인간을 잘 압디다.. 그러니까 인간이 가진 속성과 그 내면의 더러움과 지고지순함과 같은 악함과 선함에 대해 이야기속에서 독자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는데 아주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지요, 전형적이지만 기리유라는 여성이 보여주는 복수에 대한 행동들 역시 대단히 입체적이고 현실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상황속에서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가도 여실하게 후반부와 결말에 드러내기도 하죠, 무엇보다 후반부의 반전과 결말의 극단적 마무리는 대단히 좋습니다.. 일반적인 해결의 의도보다는 애초에 드러낸 복수와 그 결과에 대한 판단을 독자들이 함께 느끼게 만드는 것 같더라구요, 이러저라한 상황에서 당신같으면 어떻게 마무리하겠느냐는 것이지요,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추리소설의 논리적 설정이나 구성면에 있어서는 질서정연하면서도 과학적인 추리적 논리를 원하시는독자에 따라서는 큰재미를 못느끼실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소설이 짧으면서도 내용적인 면이나 추리적 방식에 대해서도 여느 본격추리물에 비해 좋다고 할 수는 없는데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이 작품은 그 반면에 인물이 주는 감정적 동요와 그 파장의 동조가 워낙 뛰어나서 부족하다는 생각은 못했습니다.. 오히려 반전과 함께 결말 짓는 깔끔함이 오히려 저에겐 더 즐거움을 주었다고만 하고 싶네요,


    6. 사실 수많은 게이고 슨생의 작품에서 좋다 나쁘다라고 이야기하는게 참 의미없어 보입니다.. 그냥 이제는 게이고슨생은 그냥 게이고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단점도 떠오르지 않게 되는군요, 개인적으로도 수십권에 달하는 작가의 출간작중 반정도 읽은 것 같은데 한번도 지루하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전형적이든, 흔한 대중성이든 상관없이 항상 게이고는 재미집니다.. 가독성과 스토리의 드라마틱한 상황은 언제나 즐겁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이야기를 그린 작가의 인간 내면의 투영적 묘사와 심리의 공감은 항상 기억에 남습니다.. 아마 많은 독자분들께서도 이러한 인간에 대한 공감과 그의 현실적 투영들이 굳이 사회파적 감성과 설정을 끌어들이지 않더라도 현실속의 삶을 대변하는 작가의 이야기와 그 설정들의 다변성들이 주는 매력을 느끼지시라 여겨집니다.. 늘 동일하면서도 비슷한 소재를 이용해서 작품을 집필하지 않기에 작가의 노력과 그 문장의 능력에 대해 항상 찬사를 보내는 것이지요, 저는 그렇게 봤습니다.. 그에게 있어 인간이라는 존재는 참 아프면서도 감싸안하야되는 존재로 느껴지니까요, 수많은 작품들이 모두 그러하지는 않겠지만 제가 읽은 많은 작품들은 악하든 선하든 누구나 인간이기에 감내해야하는 그런 감성들이 공존하는 것 같더라구요, 물론 작품적인 리뷰나 전문가적인 영역에서 나름의 호불호의 판단이 있을 수 있으나 30년 가까이 된 작품을 다시금 읽어보면서도 있는 그대로의 현실적 상황에 대한 공감적 표현과 인간을 내면에 대한 작가의 의도가 와닿아서 저로서는 다작하는 작가는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말은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몇몇 작품들은 뭔가 성의없이 급하게 연재물처럼 느껴진 것들이 있지만 시국이 시국이라 일본에 대한 반감이 많은 우리나라의 상황속에서도 히가시노 게이고는 언제나 게이고라는 점이 그가 대단한 작가임을 보여주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35년 정도의 소설가로서의 출간작이 100권을 넘긴 작가중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고 또 즐기는 작가는 그렇게 많지 않을겝니다.. 그렇지 않나요, 근데 이번에 너무 게이고 센세이를 치켜세웠나, 이번에는 단순히 '회랑정 살인사건'이라는 작품보다는 작가에 더 집중한건 아닌지...... 아님 말구, 그래도 '슨생'이자나, 대우해줘야지,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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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망의 정원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고요한숨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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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얼마 전까지만해도 디스토피아니 종말론적 세상이니 하면 뭔가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머리속에 그려지기는하되 현실에서는 조금은 동떨어진 상상속의 세상처럼 들리곤 했습니다.. 많은 미디어매체들에서 현실의 삶과 인간의 이기적 판단들이 주는 미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그런 세상에서 인간이 얼마나 고통속에서 힘겹게 스스로를 지켜야하는 지를 나름 독창적으로 그려내곤 했죠, 이 모든 디스토피아의 세상은 현실과 우리의 지금을 기반으로 그려낸 것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을겝니다.. 그러다가 코로나바이러스가 세상을 뒤덮었습니다.. 갑작스런 바이러스의 발생은 한순간에 전세계를 공포의 세상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이러한 바이러스의 위험은 수개월이 지나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우리를 위협하고 두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를 가지 못하고 한여름의 폭염속에서도 마스크를 쓴 체 거리를 다니는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과거에 언듯 스쳐지나가듯 마주쳤던 디스토피아의 세상의 이미지와 많이 닮아 있습니다.. 아직은 현실의 자각이 세상속에서 그 역할을 제대로 해주고 여전히 코로나라는 심각한 바이러스가 생활 저변을 위협하더라도 고통스럽지만 나름 하루하루를 견뎌나가고는 있지만 세상은 이제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우리가 자각하는 현실의 모습이 과거의 누군가가 보고 있다면 이 순간이 그들에겐 디스토피아와 종말의 세계의 시작점으로 보일 지도 모를 일입니다...


    2. 아이가 물어보죠, 아빠, 엄마 밖에 나가서 친구들이랑 놀아도 돼,하고 말이죠 그럼 어른들은 안돼라고 말하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조만간 이런 통제의 고통이 사라질것임을 알고는 있지만 지금 이순간 아이들은 아주 단순한 삶의 세상을 잃어버린 것 같아 보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부대끼고 마주치고 껴안고 싸우고 땀을 흘리며 놀던 순간이 혹시 모를 위험으로 느껴지는 시기이니까요, 그나마 다행인 것이 아직은 스스로의 자각과 바이러스에 대한 경각이 주는 기준을 충실히 이행하면 나름의 일상이 가능하다는 것이겠지요, 아이들도 또래의 친구들이 모이는 것 자체를 이러한 자기 관리로 견뎌내고 학교생활도 많지는 않지만 등교를 하면서 그들만의 세상속에서 견뎌내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세상은 달라졌다는 것 또한 인지를 하면서 말이죠, 누군가 기침을 하거나 재치기를 하면 두려움이 앞서는 그런 세상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이런 상황적 대입을 우린 보통 미디어나 허구적 소설등에서 만나곤 합니다.. 이번에 읽은 작품은 설정이나 주제나 이야기가 현실과는 전혀 다른 판타지와 같은 환상소설임에도 저로서는 상당한 현실 상황적 대입이 되더군요, 쓰네카와 코타로 작가의 "멸망의 정원"입니다..


    3. 스즈가미 세이치는 오늘도 일상의 반복과 변함없는 일과와 현실에 힘겨워합니다.. 세상의 모든 이들은 그를 인정하지 않죠, 모두들 자신들의 욕심에 물들어 세이치에게 탓을 돌리곤 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봐야 돌아오는 건 무능력하다는 핀잔뿐이죠, 그의 의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그가 전차에서 한 여인을 만납니다.. 한순간에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녀를 따라 무작정 내립니다.. 어딘 지 모를 곳에서 바라본 세상은 전차를 타기전 그가 속했던 세상과는 다른 곳입니다.. 모든 것이 평화로운 곳에서 세이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속한 공간이 어디인 지, 또 무엇을 하고 살아야하는 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세이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줍니다.. 현실의 세상처럼 넓고 갈 곳이 많지는 않지만 그 공간속에서 세이치는 자신이 살아갈 편안함과 행복을 만나고 이전과는 다른 세상의 삶에 적응해나가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과거의 삶을 잊고 그가 속한 공간의 삶에 적응하게 되지만 언제부턴가 그가 속했던 현실속에서 그를 찾는 편지가 전해져오기 시작합니다.. 편지속에서는 세이치가 살던 지구의 세상은 세이치가 이공간의 세상속에 들어오면서 종말의 세상이 시작된 것이죠, 외계에서 온 듯한 미지의 존재로 인해 세상은 끝없는 혼란과 파멸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하지만 세이치는 지금 삶에 만족하며 외면하죠, 그에게 지구라는 현실속의 세상은 잊혀져버린 곳이니까요, 그러나 지구에서는 세이치가 미지의 존재의 핵의 가운데에 살아서 존재하는 것을 확인하고 세이치만이 핵을 제거하고 현실을 구원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어떻게해서든 세이치에게 연락을 하여 현실로 돌아오길 요청하지만,,,,


    4.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만화같은 스토리이고 동화책과 같은 상상력으로 그려진 작품입니다.. 한 남자가 뭔가 과학적이고 논리적이고 추론 가능한 현실적 방법이 아닌 갑자기 공간을 초월하여 이계의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니까요, 그리고 그가 만난 세상은 그림 동화책에서나 봄직한 모든 이들이 선하고 서로에게 자유로우며 모든 것이 편안한 그들만의 아늑한 공간이니까요, 생각하고 필요하면 언제나 만나게되는 동화속의 세상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동화속의 세상이 만들어짐으로 인해 현실의 세상은 파멸로 나아갑니다.. 한 남자의 삶의 행복을 가져오기 위해 그를 제외한 세상은 종말의 시간으로 나아가는 것이죠, 하지만 인간은 그를 함부로 제거할 수 없습니다.. 그는 현실과는 다른 공간속에서 살아가는 자이니까요, 현실같으면 어땠을 지 불을 보듯 뻔한거죠, 그리고 그러한 주인공의 이야기와 함께 이어지는 현실속에서의 종말의 상황들의 모습은 참 현실적입니다.. 종말로 나아가는 상황들이나 미지의 존재들의 소재들은 대단히 희화적이고 비현실적이고 비이상적으로 보이지만 푸니라는 존재의 비이성적 설정과 함께 현실의 아이들과 삶을 그려내는 방식은 무척이나 공감스러운 감성을 이끌어내죠, 현실의 이야기의 인물들은 아이들입니다.. 그리고 종말의 세상속에서 성장하면서 그들이 겪게 되는 현실적 상황을 대단히 매력적으로 그려내고 있죠, 현실과 잘조화된 비현실적 경계를 표현한 일본풍의 만화을 보는 듯 합니다.. 그리고 그게 아주 재미집니다.. 저는 그렇더군요,


    5. 소설은 두개의 세상을 그리고 있죠, 세이치가 속한 미지의 존재가 만들어낸 이공간과 나머지 세상의 모든 이가 속한 지구의 현실의 대조는 무척이나 좋습니다.. 그리고 이 두 경계의 이야기가 아주 멋드러지게 현실과 비현실이 얽힌체 진행되는 구성도 나쁘지 않습니다.. 현실속의 지구를 구하기 위한 인물들이 등장하죠, 그리고 이러한 영웅들은 이공계의 차원을 통해 세이치의 공간으로 이동을 하면서 그 세상속에서 괴물과 같은 존재로 인식되어집니다.. 그리고 세이치로 인해 또는 세이치와 함께 만들어진 이공간의 세상은 세이치로 인해 무너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 영웅들은 이공계로 이동하여 그 차원의 세상을 파멸로 이끌어야지만 현실의 세상이 종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후반부에서 이루어진 상황의 정리에서 이러한 인물들의 이야기와 그 소재들이 조금 헐거워진 면이 아쉬움을 남긴 합니다.. 생각해보면 참 단순한 문제입니다.. 한 사람의 삶을 위해 존재하는 그 공간을 지구의 종말을 막기위해 파괴하는게 당연함에도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저는 그러지 말았으면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현실의 참혹함과 인간에게 닥친 위기를 충분히 감응하면서도 세이치가 속한 세상의 파멸은 보기 싫더라구요, 참 아이러니하죠, 이 작품은 이러한 감정선의 애매모호함을 아주 적절히 이용하는 감성적 판타지소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행복과 불행과 단순함과 복잡함의 경계와 현실과 비현실의 영역이 얼마나 부질없는가에 대한 생각도 들구요, 이렇게 현실속의 이야기와 비현실의 세상을 따로 똑같이 놓고 벌이는 이 소설의 스토리는 결말부에 가서는 우리가 과연 선택한 것에 대해, 또는 현실속에서 외면당하고 아픔을 겪었던 한 개인이 경험한 행복을 감히 어떠한 잣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가라고 말이죠,


    6. 인류가 종말에 가까워지면 어떠한 판단을 하게 될까요, 소설에 드러난 현실속의 종말이 다가온 혼란은 세상은 있는 그대로의 종말적 상황을 겪으면서도 나름의 현실을 자각하면서 생존하려 노력합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세상속에서도 인간은 그들만의 삶을 이끌어나가려고 하는거죠, 아이들은 종말이 다가온 현실과 이전의 세상과의 단절속에서도 주어진 현실속에서 나름의 판단과 삶을 이끌어냅니다.. 푸니라는 미지의 존재가 인간을 위협하고 해치는 상황속에서도 인간은 그 상황에 적절한 생존의 방식을 만들어내고 심지어 인간이 어떻게 푸니와 적응하고 삶의 영역을 지켜나가게 되는가도 이 소설은 제시합니다.. 황당할 수도, 흔한 상상력에 준하는 만화같은 이야기로도 느낄 수 있지만 현실의 우리의 모습속에서 보여지는 코로나의 시대와 상황적으로 투영되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입니다.. 작가가 이 작품을 집필할 시점에는 이러한 코로나가 세상을 뒤덮은 일도 없거니와 상상속의 미래의 경각만 생각했을테니 지금 이 소설이 주는 황당하고 만화적 스토리가 오히려 현실적이고 상황 대체적 물음으로 다가오는 것은 또다른 의미로 여길 수도 있겠습니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이 소설은 재미집니다.. 종말론의 세상을 다루지만 참 편안합니다.. 현실에서 참혹한 죽음이 인간을 위협하지만 이 종말속에서도 인간은 나름의 삶과 그들만의 감정과 현실을 인정하고 살아갑니다.. 또한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가 주는 두렵지만 그 이미지의 편안함과 이 소설의 감성적 매력에 한몫을 한다는데 칭찬하고 싶습니다.. 여느 종말을 다룬 소설과는 다른 동화적 상상의 디스토피아세상을 그려낸 매력적이고 편안한 판타지소설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어차피 세상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는겁니다.. 이 지구에 살아가는 모든 인류의 세상은 각각의 세상입니다.. 그러한 세상이 80억 가까이 되는거죠, 나머지 세상을 위해서 나의 세상을 버릴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안그런가요, 좋은 작품입니다..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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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소녀의 거짓말 - 구드 학교 살인 사건
J.T. 엘리슨 지음, 민지현 옮김 / 위북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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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살아온 인생으로 보면 고등학교 몇년의 시간은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닙니다.. 기껏해야 초딩 6년의 반밖에 되지 않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인생의 모든 면에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시기가 고딩 3년이 아닌가 싶습니다.. 삶을 지탱하고 의지하는 친구의 대부분도 그 몇년의 시간동안 함께 한 이들이 가장 많죠, 딱히 잘난 것 없고 배운 것 없이 지내온 시절이지만 저라는 인간의 모든 것의 틀을 만들어준 시절과 원동력이 고딩동안의 시간동안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도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십년도 지난 그 시절의 삶과 시간과 이야기들이지만 절대 잊혀지지 않고 되새김되는 추억의 공간들이죠, 그렇다보니 여전히 하이틴 무비나 청소년들의 세계를 다룬 스토리를 좋아라합니다.. 아직까지 세상속에서 완전한 자신을 찾기 전에 스스로 성장해가는 어른같은 아이들의 이야기들이니까요, 학교라는 공간은 그들이 되고싶고 닮고싶고 따라하고 싶은 어른들의 세상의 축소판입니다.. 부모의 영향력과 학교의 권위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거나 대립하거나 반항하거나 추종하거나 그 나름의 틀속에 존재하는 시스템속에서 그들만의 세상을 자신이 머무는 시간동안 만들어나가는 것들이죠, 아마도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그들이 자의든 타의든 경험하고 배우는 것들은 그들이 살아갈 세상의 기준이 될테니까요,


    2. 각각의 세대들에 따라, 또는 학교의 특성에 따라, 학창시절의 삶과 그 기억은 달라질겝니다.. 말 그대로 제가 다녔던 학창시절은 말 그대로 잔혹사로 불리울만큼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대단히 획일적인 시간들이었죠, 물론 그 시대의 우리나라가 그러했던 이유도 있지만 참 말 안되는 학교만의 권위와 선생님들의 비이성적 행동들과 폭력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러한 관행과 행동들은 수십년이 흘러서 조금씩 변화를 가져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아직도 초등학교를 벗어나서 몇몇 일반적인 사립중,고등학교에서는 그들만의 공간속에서 시대와 타협하지않고 그 시절을 지내온 선생님들의 고지식함과 꼰대적 방식속에서 아이들에게 획일적이고 편견들이 난무한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진 않나 하는 노파심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현상이 국내에만 있는 것은 아니죠, 사실 허구헌 날 자유와 평등을 떠들어대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도 교육정책의 평등적 기준을 벗어난 사립고등학교들의 권위가 심하다는 이야기도 많더군요, 사회 상위층의 재력과 권력들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립고등학교에서 그들만을 위한 특수목적의 사립고를 운영하고 그 아이들이 대다수의 뛰어난 대학을 입학하고 여전히 사회의 중심에 서는 양극적 순환의 신분들이 자연스럽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듯 합니다.. 뭐 우리나라라고 다르진 않죠, 이런 이야기를 다룬 스토리는 재미집니다.. 물론 대다수가 전형적인 드라마틱한 신데렐라식 이야기들이지만 이번에 읽은 작품은 미스터리스릴러소설입니다.. 아주 매력적인 미스터리와 감성적 스릴러가 잘 조합된 작품이라꼬 전 생각합니다... 뭔가 이런저런 약력이 대단한 작가님이신 J.T. 엘리슨이라는 분이시더군요, 제목은 "착한 소녀의 거짓말"입니다.. 부제가 '구드'라는 사립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죠, 줄거리 갑시다..


    3. 오랜 전통을 가진 명문사립 고등학교인 구드 기숙학교는 지역 전통의 상류층의 여성 자제만으로 운영하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졸업한 학생들은 그들의 부모들의 재력과 권력과 권위의 비호아래 명문 대학을 비롯한 상류계급의 입지를 공고히 만들어주는 곳이죠, 쉽게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뛰어난 재능과 재력과 권력을 가진 자들만의 공간인거죠, 이러한 곳에 영국의 한 여학생이 전학을 오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로 인해 사건이 발생하게 되죠, 그녀가 전학오기에 앞서 시작부터 이 학교에서 발생한 한 살인사건이 등장합니다.. 한 여학생이 교문의 철탑에 매달린 채 발견된거죠, 물론 살해된 체로 말입니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훼손된 시체를 구드 학교의 교장인 포드는 맞닥뜨리게 되죠, 그리고 충격속에서 학생들은 신원을 알 수 없는 시체를 보며 한목소리로 속삭입니다... 애쉬, 애쉬하고 말이죠, 여기서 대강 짐작하시겠지만 이 '애쉬'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가 전학을 오게된 학생입니다.. 영국에서 뛰어난 피아노의 재능으로 면접을 거쳐 구드학교로 오게된 애쉬는 전학을 오기전 자신의 부모들이 죽음을 당하는 아픔을 겪습니다.. 오랫동안 자신을 학대해오던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이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어머니까지 이제 애쉬에게 있어서 남은 것은 그녀의 미래를 보장해줄 '구드 학교' 밖에 없는 거죠, 전학과 동시에 수많은 상류층 집안의 여학생들과의 괴리감을 느끼는 애쉬, 그들과 같지 않은 자신을 그들 역시 거부감을 표현하기 시작하고, 애쉬가 숨겨왔던 그녀의 집안의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고통으로 점철된 자신의 과거를 잊고 이름마저 바꾸며 새롭게 시작하고자한 애쉬에게 또다시 시련과 미스터리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생각지도 못한 죽음과 만나게 됩니다..... 과연 애쉬는 도대체 어떤 비밀을 가진걸까요,


    4. 전반적인 배경이 주는 전형적 설정은 이 소설을 읽어내려가는데 아주 매력적인 호기심과 집중을 이끌어냅니다.. 귀한 집 자식들이 그들만의 세상속에서 차별과 학대와 배신과 음모와 왕따를 시키면서 그들의 자리를 공고히 지켜나가려는 하이틴 여자아이들의 가식과 위선들이 넘쳐나죠, 그런 와중에서 이 작품은 끊임없는 미스터리한 상황들이 연출됩니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국소녀 애쉬의 이야기속에서 독자들은 한순간도 그녀의 심리와 과거와 현실속의 이야기를 놓칠 수가 없습니다.. 뭔가 분명히 있는데 작가는 쉽게 알려주지 않으니까요, 이러한 궁금증속의 미스터리한 심리적 강박은 마지막까지 변하지않고 독자들을 잡아 놓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상류층 집안의 자제들만 모인 상류 사립학교의 실체가 어느정도 현실성을 부여하면서 독자들은 그 내면의 음모와 그들만의 은밀한 세상의 비밀을 공유하게 되죠, 또한 그들속에 속하고 싶은 어린 여학생의 심리적 고립과 외로움도 상당히 농밀한 심리속에서 독자들에게 어필하게 됩니다.. 물론 무엇보다 제목과 부합하는 거짓말과 살인사건의 미스터리적 설정은 이 작품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임은 말 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주 끈끈하면서도 끈질기게 독자들에게 미스터리한 연속적 상황들을 끌어들이기에 저로서는 상당히 집중해서 읽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각각의 연결고리와 실체적 존재감이 스쳐가는 인물이라손 치더라도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더라구요, 그게 부각되지 않은 조조연급의 인물들조차 그러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의 서사와 인물의 끈끈함이 더 찰지게 느껴진게 아닌가 싶습니다요,


    5. 제목이 주는 이중적 의미가 소설을 읽어나가면서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흔한 이미지로 보면 분명 이 주인공은 자신을 숨기고 비밀을 감춘 대단히 이기적이면서 가식으로 점철된 나쁜 여학생의 이미지임에도 제목에는 버젓이 '착한 소녀'라고 명명하고 있죠, 원제에서도 '굿 걸'이잖아요, 좋습니다.. 제법 애매모호한 주인공의 실체를 읽어나감에 따라 조금씩 다가가는 흥미유발적 추리도 큰 몫을 차지하는 것도 중요하죠, 그리고 벌어지는 참혹한 상황속에서도 학교라는 시스템의 공간이 주는 현실적 소재와 그 상황들은 전형적이지만 무척이나 재미집니다.. 언제나 드라마틱한 학생들간의 위험한 감정들의 간극은 집중과 가독성을 주는 장점이 있죠, 거기다가 구드학교라는 곳의 교장이자 학장이라 불리우는 여성인 또다른 주인공은 '포드 웨스트헤이븐'의 상황과 심리와 감정과 현실적인 학교 시스템에 대한 명문을 고집하는 설정들도 소설적 소재와 구성적 연결고리에 잘 맞아뜨리지게 적절하게 배치하면서 독자들은 충분히 즐겁게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있습니다.. 특히나 후반부로 나아갈수록 더욱더 과격해지고 참혹해지는 학교내 상황과 비밀스러운 아이들의 이야기는 무척이나 재미지죠, 이러한 전반적인 배경과 함께 범죄가 조합을 이루며 상황의 강박과 서스펜스와 숨막히는 진실을 들춰나가기 시작하는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서사의 종점에 이르러서 드러나는 진실에 대한 마무리는 소설의 완벽한 미스터리적 매력을 조금 잡아먹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에필로그와 마무리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주는 아쉬움은 아무래도 너무나 끈끈하게 이어져왔던 서사의 대부분이 좋았기에 조금 부족해 보이는 면도 없진 않습니다.. 흔한 이야기에서는 절대 나쁘지 않은 마무리지만 이 작품에 있어서는 개인적으로 보다 과격하고 파격적인 충격적 결말이 이어졌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거죠, 물론 저만 그럴 수도 있습니다.. 이게 다 소설이 좋아서 그래,


    6. 하이틴 드라마적 설정에 스릴러적 요소가 아주 매력적으로 적용된 긴장감 넘치는 뛰어난 미스터리스릴러소설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소설을 읽는 동안 인물에 대한 애매모호함과 진실에 대한 경계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워 더욱 흥미진진하게 읽어내려간 작품이기도 하죠, 무엇보다 여주인공인 애쉬라는 영국 소녀가 보여주는 이야기속 심리와 그 혼란의 감성은 대단히 뛰어납니다.. 또한 주변 인물들인 학생들이 보여주는 전형적이지만 현실적이고 이기적이고 자기 본위의 가식적인 세상을 대하는 방식들도 무척이나 즐겁습니다.. 권위적이고 욕망에 스스로를 내맡긴 상류층의 세상속에서 길들여진 아이들의 모습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거죠, 이 소설은 거짓에 대한 이야기이고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이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무엇보다 성장의 중심에 놓인 위태로운 아이들의 감성과 감정과 자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죠, 학교라는 공간속에서 자립하고 경험하고 스스로를 위해 미래를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어른이 되기 전에 이미 파악해버린 이중적이고 가식적이고 권위적이고 욕망덩어리의 어른들의 이기적 못난 본성에 대한 투영이기도 합니다.. 적절한 미스터리적 감성과 스릴러의 매력과 서스펜스와 긴장감 넘치는 상황적 혼란이 주는 즐거움이 가득한 작품입니다.. 스토리를 이어나가는 작가의 문장력과 인물들에 대한 입체적 이미지들도 이 작품을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근래들어 좋은 작품들이 많은데, 적절한 장르적 감성과 가볍지만은 않은 설정과 소재와 이야기의 매력은 만나시기에 아주 적합한 작품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 읽고 일말의 후회는 없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난 그랬어,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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