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와 나오키 3 -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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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은행은 전적으로 있는 자를 위한 곳간이라는 생각을 자주합니다.. 조금 삐딱한가요, 근데 그럴 수 밖에 없는게 대출이니, 예금이니, 이자니 아무것도 모르고 안전빵이랍시고 서민들 코 묻고 때 묻은 푼돈을 우린 은행에 허구헌 날 있는 돈, 없는 돈 만들어서 예금하고 적금을 들고 합니다.. 공과금이니 온갖 사회 비용들도 은행에서 납부처리하곤 하죠, 사실 서민에게 있어서 은행이라는 자본의 매개는 없어서는 안되는 곳입니다.. 허나 이 은행은 서민을 위한 공간이되어야함에도 항상 사회 자본의 대규모 흐름에 집중할 수 밖에 없죠, 푼돈 백날 예금해봐야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 푼돈을 백명이든 천명이든 끊임없이 끌어모은다고 해봐야 대규모 기업의 큰거 한방이면 은행에서는 나쁘지 않죠, 어쩔 수 없는 천민 자본주의가 이렇게 꾸준하게 합법적으로 생성되어지는 것입니다.. 많이 삐딱한가요,​ 근데 이럴 수 밖에 없는게 이런 경험을 우린 당해보니까요, 개인적 푼돈은 그렇다치더라도 지역 사회의 기반과 지역의 경제와 함께 성장하는 은행과 기업의 경우에도 은행은 외면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업을 해보시고 자영업을 해보신 분들이시라면 어느정도 공감을 하시겠지만 있는 놈들에게는 굽신거리며 빌려주는 은행돈을 없는 인간에게는 의심하며 빌려주는 은행돈입니다.. 은행은 그냥 돈을 빌려주질 않습니다.. 여러가지 안전장치를 하죠, 특히나 없는 이들에게는 최대한 끌어모을 수 있는 배경을 확인하고 빌려줍디다.. 근사하게 등기부에 떡하니 빌려돈 돈의 120%를 설정을 잡죠, 하지만 위험성이 다분한 사업의 기준에 있어서 큰 기업과 중소 기업의 영역에서 똑같은 가능성이라면 은행은 중소기업을 외면하곤 합니다.. 왜일까요,


    2. 사업과 관련된 거대 자본을 지출하기 위해서는 꼼꼼하고 섬세한 설정 절차를 거쳐서 심의를 통과한 후 자금 운용이 집행됩니다.. 은행은 그렇죠, 몇몇 사람의 의견으로 그 절차나 방법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불거지는 허술한 대출의 운용과 방법들은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업자나 자영업자들의 가슴에 못을 박곤 합니다.. 은행의 기본적 가치가 천민 자본주의에 기인한다는 삐딱한 저의 편견을 여지없이 믿게 만들어주는거죠, 그러지 말았으면 하지만 여전히 이 나라의 은행들이 하는 짓거리란, 돌려받지도 못할 돈을 무너져가는 대기업이니, 공기업에 끊임없이 밀어넣고 애써 모은 서민들 코 묻고 떡진 머리기름 바른 돈, 먼지 가득한 돈으로 메꾸고 있습니다.. 그리고 경기와 경제가 어렵고 힘들다는 이유로 아기들 분유값에도 못미치는 이자를 지급한다고 생색내곤 하죠, 그리고 이런 서민들은 예금창구에서 월말에는 자기 차례를  끊임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많이 삐딱하고 잘못된 시선이다라고 하시더라도 은행이 일반 서민을 대하는 방식이나 태도나 행태의 세상에서 제가 그들에게 좋은 소리는 못할 듯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소리가 나오게끔 만들려고 노력하는 일본의 한 소설을 보면 우리도 저런 사람이 있을텐데라는 나름의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한자와 나오키가 그런 사람입니다.. 옳고 그름의 판단, 정의와 불의에 대한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는 깐깐한 시선, 조직이라는 유기체속에서 그들의 적이 되지만 그 조직을 먹여 살리는 세상에 있어서는 정의로운 사람인 한자와 나오키의 시리즈 3편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편은 읽질 못했지만, 대강 들어보니 오사카에서 지점에서의 불합리한 상황을 정의롭게 해결한 한자와가 도쿄 본점으로 전근가면서 벌어지는 일이 있었더군요, 그리고 3편에서는 또 다시 정의롭다는 이유로 조직에서 눈밖에 나 자회사인 증권사 도코 센트럴 증권으로 발령받고 벌어지는 일입니다..


    3. 한자와 나오키는 도쿄중앙은행 본점의 조직내부의 파벌 싸움과 의도에 휘말려 또다시 내쳐지죠, 앞서 말씀드린 도쿄센트럴증권이라는 자회사의 영업부장으로 발령받습니다.. 일종의 좌천임에도 언제나 한자와는 늠름합니다.. 그리고 이곳에 부임과 함께 큰 자문 의뢰가 이루어집니다.. 잘나가는  IT기업인 전뇌잡기집단이 자신의 기업 확장을 목적으로 후발업체는 도쿄스파이럴이라는 IT기업을 M&A를 하겠다고 나선 것이죠, 도쿄센트럴증권과 거래를 하곤 있지만 아무런 실적이나 실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은 전뇌잡기집단의 대표이사의 방문과 함께 대규모의 사업관련 자문과 프로젝트가 계약과 함께 이루어지게 되자 한자와는 담당 차장인 모로타와 함께 제대로 진행해보기로 합니다.. 하지만 원 담당자였던 모리야마는 모로타의 의도로 프로젝트에서 제외되고 그 자라에 미키라는 모로타의 심복이 차지합니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진행되던 어느날 전뇌잡기집단은 제대로된 자료수집 및 설명이 되지 않았다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자문사를 모회사인 도쿄중앙은행의 증권영업부로 옮겨버립니다.. 갑자기 프로젝트 일체를 빼앗겨버린 한자와는 이 사건에 어떠한 배후와 음모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파고 들던 중 M&A의 대상이었던 도쿄 스파이럴이라는 기업체가 가진 전망과 가능성을 확인하게 되죠, 그리고 그 기업의 대표인 세나가 과거 모리야마의 절친임을 알게 됩니다.. 그렇게 또다시 한자와는 자신이 놓쳐버린 프로젝트의 진실과 불의에 대해 도쿄 스파이럴을 중심으로 새로운 프로젝드를 기획하고 자신의 업무를 아무렇지도 않게 빼앗고 무시하고 압박하는 도쿄중앙은행과의 일전을 벌이게 됩니다.. 


    4. 이번 작품은 은행이 할 수 있는 보다 광범위한 영업적 영역을 다룬 작품입니다.. 제법 확장되고 전문적인 이야기의 흐름이 이어지죠, 조금은 사회의 경제적 흐름과 주식이나 기업합병과 관련된 지식이 있다면 충분히 즐거울 수 있는 매력적인 작품입니다.. 게다가 시선과 중심이 은행과 증권사의 갑을의 전쟁처럼 느껴지죠, 그것도 모회사와 자회사의 개념속에서 자식이 부모에게 대들어서 부모의 흠결을 끄집어내려는 이야기입니다.. 부모가 잘못하는 것을 자식이 가르쳐주는 방식이죠, 부모라고 언제나 옳고 진실되고 확실한것은 아니니까요, 배울것은 배우고 알더라도 외면했던 것을 고집과 부모라는 이유로 핍박하고 거부하고 괄시하고 무시하면 안되는 것이라는 것을 이번에 자식들이 확실히 알려줍니다..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케이도 준의 기본적 소설의 설정방식이이기도 하죠, 단순합니다.. 정의와 진실과 옳음은 언제나 승리한다는 것이죠, 시리즈의 제목들이 주는 의도에서부터 우린 알 수 있습니다.. 1편에서는 약자라는 이유로 당한만큼 제대로 갚아준 이야기였습니다.. 2편은 읽질 않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진실에 대한 복수를 끝까지 버티고 지켜내는 자가 승리한다는 이야기일테고 이번 3편은 말그대로 기득권과 가진자들과 앞선 자들의 독선과 아집과 탐욕을 아무것도 가지지 못하고 힘겹게 살아가는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으로 앞으로 살아갈 이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자리를 잡게 해주고자 하는 목적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자와는 기득권과 앞선 자들에 편입되지않고 자신의 올바름과 가치를 펼쳐내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기본적인 존재의 가치죠, 그래서 이 작품은 재미집니다..


    5. 사실 이 시리즈는 대단히 비현실적인 내용입니다.. 매우 바른 결말의 방식이고 그렇게 되어야함에서 우리의 사회는 쉽게 용납하지 않죠, 이런 류의 조직에서 눈밖에 난 정의로운 사람이 발 딛을 곳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이기도 하죠, 세상은 끊임없이 불의와 음모와 배신과 따돌림으로 점철된 곳이니까요, 그러한 곳에서 힙겹게 싸우고 끊임없이 저항하는 누군가는 또 있기 마련입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온당히 받아야할 대우조차 받지 못하고 한없이 내쳐지는 경우가 허다하죠, 흔히 말하는 줄을 잘 서야된다는 조직의 가장 기본적인 연줄의 방법에서 통용되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그래서 이 한자와 나오키라는 작품의 시리즈는 묵직합니다.. 대단히 진중한 인간의 사회적 가치를 드러냅니다.. 그 배경이 되는 곳이 은행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의 중심이 되는 전쟁터인 것이죠, 이들에게 있어서 은행은 긍지와 함께 권리의 영역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준이 된다는 사실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아는 조직이자 사회적 이익집단입니다.. 이 시스템과 조직속에서 인간의 가장 근원적이고 기본적인 원칙을 추구하는 누군가가 가지는 교과서적인 진리는 대부분의 조직의 구성인들에게 고구마를 천개씩 선물한거나 진배없을겝니다.. 그들에게는 고구마의 달달함과 포만감보다는 목메임과 뜨거움만 가득할테니까요, 이 작품이 주는 매력은 사회적 무게감을 아주 열혈적 복수의 쾌감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는 것이죠, 어디 하나 유쾌한 문장이나 내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상황과 인물들이 내보이는 경쾌함과 대중적 공감에 매우 만족하고 즐거워하게 됩니다.. 당연한 이야기에 독자들은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그런 작품이에요,


    6. 직선적인 작품이죠, 상황을 꼬이게 만들거나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 아닙니다.. 아주 어려울 수 있는 주식시장의 시장개념과 은행의 기업합병등의 전문적 영역을 다루고 있음에도 일반적인 지식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게 만들어주는 작품입니다.. 아무래도 이 작품의 중심에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조직적 대치가 있기 때문일겝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느 기업소설의 형식처럼 집필되지 않은 것이죠, 제목인 한자와 나오키라는 인물에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배경으로 적용된 은행이라는 사회적 공간속에서 벌어지는 인간들의 그릇된 시선과 행태를 한 인물 캐릭터를 통해 정의가 무엇인 지 또다른 정의로운 대중들과 그 진실을 이끌어내는 이야기입죠,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즐거울 수 밖에 없습니다.. 흥미로운 사회적 기업과 그 내면의 인간들의 탐욕을 드러내며 그들의 부정과 불의에 맞서 진실과 올바름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니 재미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도 반복되면 조금은 지리해질 수도 있음에도 아직까지는 작가의 의도가 각각의 상황들이 주는 매력속에서 잘 살려져있어 매우 속도감 넘치고 매력적으로 읽힙니다.. 비유가 어떨 지 모르지만 폭력적이지 않은 월급쟁이 은행원 잭 리처라고 비유해도 될까 모리그씀돠.. 아님말고,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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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스토리콜렉터 79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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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을 읽다 잠이 들었습니다.. 모두 잠든 시각이다보니 어중간하게 잠이 든 모냥입니다.. 가위가 눌렸죠, 간만에 눌린 가위다보니 한결 무서움이 강했습니다.. 반백살이 되어도 무서움은 어릴적과 다르지 않더군요, 잠이 들자마자 거실의 공기가 변한 것 같더라구요, 따뜻하고 편안한 조금 전의 상황과는 다른 축축하고 습기가 가득한 느낌이 후욱하고 느껴지는 뭐 그런 상황에서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다가옵니다.. 서서히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지지만 고개를 돌릴 수가 없죠, 숨이 막혀오고 답답함에도 눈조차 뜰 수 없는 상황에서 모든 것은 느껴집니다.. 악의가 가득하고 죽음이 바로 다가설 것 같은 두려움속에서 숨죽여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죠, 몸의 일부분이라도 움직이면 이런 빌어먹을 꿈에서 깨어날 수 있으리란걸 아니까 말이죠, 하지만 맘대로 몸이 움직여주질 않습니다.. 그리곤 알수 없는 악의에 가득찬 무엇인가는 나를 지나쳐 옆자리에 잠든 아이에게 다가갑니다.. 그 순간 여태껏 살아오면서 느꼈던 가위눌림의 고통과 공포와는 다른 두려움이 몸 전체에 가득찹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그런 두려움이죠, 꿈속에서 악의가 아이에게 다가가는 것을 느낌에도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그 감정적 두려움은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곤 꿈에서 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아무도 없는 무저갱으로 끝없이 떨어져내리는 것이죠, 그 순간 이 세상에 살아남아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은 나뿐이라는 생각에 극악한 슬픔이 닥칩니다.. 이미 아이들과 가족은 악의에 가득찬 형체의 어둠에게 먹혀버린 것을 인지한 체 슬픔과 고통의 무덤속으로 끝없이 떨어져내리는 것이죠, 그러다 잠이 깹니다.. 헉헉거리며 조금전까지의 상황을 또렷하게 기억하면서 옆자리에서 잠이 든 아이들을 바라보며 살며시 체온을 느낍니다.. 그렇게 채 10분이 지나지 않은 시간이 저에겐 지옥보다 더한 두려움의 시간이었습니다..


    2. 공포물을 그렇게 싫어하진 않습니다.. 대중적 흥미를 자극하는 공포 장르에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죠, 미디어나 소설적인 감성속의 공포가 주는 카타르시스는 저에게 나름의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상당히 무서움을 많이 타는 성격임에도 이러한 장르의 재미를 거부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근래들어 이제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웬지 모르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기가 쉽진 않더군요, 조금은 과장되고 과한 설정의 공포물이 주는 거부감이 들기 시작하더라구요, 예전에는 있는 그대로 그러려니했던 장치나 설정의 모양새가 이제는 오바스럽고 유치하고 자극적인 부분으로 너무 치우친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인간의 근원적 두려움을 드러내는 그런 감성적 공포는 쉬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많더라구요, 그런 의미에서 국내의 몇몇 작품들이나 일본의 미쓰다 신조 작가의 민속신앙이나 토속적 공포의 감성을 꾸준히 드러내는 작가들의 작품은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는 저의 입맛에 잘 맞습니다.. 특히나 미쓰다 신조의 공포의 집 시리즈는 어린 아이들의 입장에서 그려내는 공포감을 내세워 그 감성이 무척이나 와닿습니다.. 누구나 어린시절 한번쯤은 경험한 비현실적 두려움에 대한 공포가 떠오르는 것이죠, 전작들인 '흉가'나 '화가'에서도 이러한 작가적 감성은 충분히 즐거웠습니다만 이번 작품 "마가"는 이러한 공포감과 더불어 색다른 반전의 매력이 담긴 재미가 가득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더군다나 읽다가 제가 가위까지 눌렸잖아요, 제법 느낌이 좋은 공포소설이라고 봐야죠, 저로서는


    3. 세토 유마는 소설가인 아버지와 엄마와 살다가 아버지의 죽음 이후 힘겹게 살아가던 엄마의 재혼으로 오사카에서 도쿄로 이사를 옵니다.. 새아빠는 대기업의 임원으로 재직중인 부유한 사람이죠, 유마는 그렇게 도쿄의 대저택으로 이사를 오고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무뚝뚝하고 정이 없는 새아빠와는 달리 유머스럽고 배려가 많은 새아빠의 동생인 삼촌으로 인해 나름 적응을 하며 살게 되죠, 그런 삼촌이 유마에겐 더 아빠같은 존재로 여겨집니다.. 그러던 어느날 새아빠의 해외 주재와 관련하여 자신의 거주가 고민이 된 상황에서 삼촌과 함께 여름방학동안 지내기로 하면서 유마는 삼촌의 별장인 가미하큐쇼의 고무로 저택으로 향합니다.. 가는 도중 삼촌에게 고무로 저택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유마는 저택의 뒷편 사사 숲과 관련된 과거의 미스터리와 공포감에 사로잡히죠, 그리고 유마는 그동안 자신이 경험한 이계의 비현실적 체험을 기억해냅니다.. 어린 시절 현실속에서 순식간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은 공간으로 옮겨간 유마는 현실이 아닌 공간속에서의 미지의 형체에게 쫓기는 두려움을 경험한 바가 있죠, 그리곤 도착한 별장에서 느끼진 공포감과 두려움의 불안은 첫날 밤부터 시작됩니다.. 자신을 데리고 온 삼촌은 그의 동겨녀인 사토미와 함께 유마를 두고 다시 사업으로 인해 도쿄로 돌아가버린 것이죠, 유마는 자신이 읮하는 삼촌이 없는 것에 대한 불안과 동시에 늦은 밤 요의를 느껴 깨어난 뒤 어둠속에서 고무로 저택의 공포와 맞닥뜨리게 됩니다.. 유마는 알 수 없는 형체의 무엇인가를 인지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히지만 제대로 알 수 없죠, 그리고 침실로 돌아온 유마는 두려움속에서 잠이 들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합니다.. 그리고 저택의 밖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누군가를 만나게 되죠, 그리고 듣게 된 또다른 사사숲의 비밀은......


    4. 공포의 집 시리즈는 대단히 공감가는 공포감을 선사하는 작품입니다.. 아주 어린 아이가 아닌 어느정도 감성적 경험이 이루어진 어린 아이라는 점이 공감을 주는 주 요인이죠, 누구나 그 시절 - 보통은 초 5년 이상 - 에 한번 이상은 유령이나 미스터리한 두려움에 휩싸여본 적이 있을테니까요, 그러한 감성과 함께 집이라는 아주 아늑하고 편안하고 안전한 공간이 주는 이율배반적인 공포감을 이끌어내니 이 작품 시리즈의 재미는 기본 이상은 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나 이번 작품은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불안감 외에 지역적 특생과 토속적 신앙의 호러적 감성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어 공간적 두려움이 배가되는 느낌이 무척이나 좋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 "마가"는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후반부의 색다른 반전의 매력이 기존 작품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오죠, 단순한 공포감을 넘어서는 스릴러적 감성까지 작품은 무척이나 즐거운 마무리까지 이어집니다.. 사실 그동안 개인적으로는 일본의 토속적 호러 괴담속에서 벌어지는 감성이 풍부한 신조 작가의 작품을 그렇게 선호하지는 않았지만 근래들어서 보다 현실적이고 대중적인 호러적 감성을 이끌어내는 작품으로 선보여지는 집필작들의 재미가 개인적으로는 좋더군요, 특히나 작품속에서 어떠한 공포적 상황속에서 벌어지는 급박한 심리적 불안감을 표현하는 문장들이나 서스펜스적 묘사들이 주는 짜릿함은 작품속의 상황으로 빠져들기에 충분합니다.. 집 시리즈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시점에서 벌어지는 공포적 상황들이 주는 몰입감이 아주 뛰어나다는 것이죠, 이번 작품 '마가'에서도 이러한 성향은 독자들에게 충분히 선보여집니다.. 특히나 비현실적 상황에서 느끼는 공포적 감성의 불안감을 공감하기에 부족함이 없죠, 덕분에 가위도 눌리고 말이죠


    5. 이런 일반적 공포의 감성이 가득한 작품이 주는 재미와는 달리 시리즈가 이어지면서 느껴지는 반복적 감성은 또 다른 느낌이 들더군요, 뭐랄까요, 읽는 동안 충분히 감응하는 두려움임에도 이전에도 느껴봤던 작가적 의도가 그대로 이어진다는 뭐 그런 무난함같은 것 말이죠, 색다른 공포적 충격이나 극악한 공포감은 없는 편안한 두려움같은 뭐 그런 상황들이 이어지는 아쉬움이 들게 됩디다.. 그러니까 이 작품만의 특출함이 느껴지지는 않는다는 말이죠, 즐겁고 매력적인 호러가 가득하지만 그 뿐이라는 아쉬움, 전작들과 다른 점을 그렇게 느껴지지 않은 비슷한 부류의 이야기를 끜없이 재탕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아쉽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자체의 이야기가 읽는 동안 그것만으로도 즐거움이 가득하긴 했지만 조금 나은 이어짐이 보이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일종의 설정 자체가 다르지 않은 특성이 있기 때문에 느껴지는 안타까움이겠죠, 그런 이유로 시리즈의 다음편에 대한 기대감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죠, 뭔가 색다름을 원하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후반부의 감성과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거부감에 대해서 느껴지는 반전은 생각보다 깊어서 역시 작가의 밑밥 작업은 끝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았어요, 비현실적인 상황의 연결들이 현실적 경계를 넘나들며 인간의 관계와 인간의 무서움까지 함께 드러낸다는 점이 무척이나 좋았다고 봐야겠죠, 하지만 마지막 유마의 한마디는 하지 않았다면 좋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번전이 주는 무게감과 매력을 그 한마디가 뭉개버리는 듯 한 것이 굳이 하지 않았다면 좋았을껄, 아니면 상황의 전개와 대상을 바꾸었더라면 더 좋았을껄하는 아쉬움이 묻어나는 대목이었죠,


    6. 이 작품이 이 시리즈으 완결판의 형식인가 봅니다.. 그렇다고 보면 이 작품으로 세 작품은 끝을 맺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 작품 "마가"가 주는 재미는 충분하다고 말씀을 드려야겠네요, 시리즈가 각각의 특성과 설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전반적인 감성적 느낌은 대동소이한 면이 없지않았지만 마지막 '마가'가 보여준 것으로 전작들인 '흉가', '화가'의 매력까지 떠올리게 하는 장점도 있으니 삼부작으로의 마무리는 딱 좋다라고 생각듭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세 작품을 하나의 시리즈로 연결된 방식으로 이어나가셔도 충분히 즐거우실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어린 주인공의 입장에서 벌어지는 공포적 상황들의 공감들이 독자들에게는 그동안의 미쓰다 신조의 작품의 설정과 비슷하면서도 보다 현실적인 공포적 불안감을 선사하는 느낌이 들게 만들어줍니다.. 그리고 후반부의 상황적 반전의 매력도 충분히 즐거우니 독자의 입장에서 즐기며 만날 수 있는 편안한 미쓰다 신조의 작품이 아닐가 조심스레 추천해봅니다.. 어둠이 가득한 생소한 공간속에서 문득 섬짓함과 싸늘함이 느껴지면 그건 당신과 나의 주변에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죠, 미쓰다 신조는 이러한 대중이 가지는 공감적 두려움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뛰어난 공포소설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감성이 니나내나 우리나 모두들이 경험하고 겪는 것이라면 그게 과연 비현실이고 미신이고 비이성적 두려움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알지 못하는 실재함이 있는 미지의 존재는 아닐까요, 그게 아주 악의로 가득할 지, 아님 선의로 도움을 줄 지는 잘 모르겠지만, 물론 결국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존재는 우리들 인간이라는 사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식하지만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니 비현실이 오리혀 두려운것이겠죠, 암요,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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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살인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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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떠한 경우라도 본인과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이야기의 진실은 모르는 것이죠, 하나의 범죄사건이 발생하고 이에 대한 쌍방의 객관적 판단을 가지는 경우 그 진실의 시작과 끝은 사실과 증거에 근거한 수많은 정황과 심증들이 톱니바퀴처럼 들어맞아야 그 틀을 들고 당사자에게 진실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며 그 진실을 외면할 경우에는 법에 근거한 최소한의 기준에 맞는 진실의 아귀를 맞춰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어떠한 상황에서도 진실이 호도되고 꾸며져서는 안되는 일이죠, 악랄한 살인자가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확증할 수 있는 모든 사실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손 치더라도 그들은 끝까지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지만 보여지는 정황증거와 사실에 근거한 자료들로 죄인을 취급받기도 하죠, 그렇기 때문에 범죄를 다루는 판단의 중심이 되는 이들의 결정은 엄청난 권력과 권한과 의무를 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의 판단으로 인해 감춰진 악마의 진실을 밝혀낼 수도, 선한 인간에게 악을 덧씌울 수도 있는 것이죠, 사회의 시스템속에서 우린 그들에게 그러한 힘과 권한과 권력과 의무를 지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개개인이 다룰 수 없는 부분을 사회의 울타리가 되어주는 규범이라는 틀속에서 그 울타리를 단속하고 관리하고 보호하는 이들에게 준 것이죠, 하지만 그들에게 주어진 의무이자 역할이 어느순간 권력으로 돌변하고 아집으로 변질되어버리면 누군가는 피해를 입게 마련입니다.. 아니 몇몇의 이러한 문제를 가진 이들만 있다면 뭔 문제겠습니까, 이러한 인간들이 자신들이 꾸준히 만들어놓은 권력과 아집의 결정체를 놓치지 않으려고 기득권이라는 이름으로 울타리속에 그들만의 또다른 성을 만들어버리는 것이 문제죠,


    2. 자연은 언제나 항상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게 늘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는 태생적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도 이러한 태생적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모든 것이 균형과 틀이 무너지면 누군가는 어떤 것에서는 문제와 피해가 발생하고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니까요, 일개의 개인부터 시작해서 가정과 사회와 나라와 지구의 모든 것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잘난것도 아는 것도 없는 놈이 너무 확장해서 멀리 가지맙시다.. 나와 가정과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회적 이슈와 범죄와 세상의 삶만 바라봅시다.. 전혀 상관없는 이들이 어쩔 수 없이 부대끼고 마주치고 스쳐가고 이제는 익명과 가려진 선을 통해 소통하는 세상입니다.. 나의 모든 것이, 우리의 모든 것이 누군가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살아가긴 어려운 부분입죠, 저 역시 이러한 독후감 한 편이(물론 몇분 읽으시지도 않겠지만) 누군가에게 거부감을, 또 누군가에게는 동질성을 줄 수 있을겝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소통과 부대낌과 함께함이 있을 지라도 진실의 끝에는 언제나 본인이 있죠, 보여지는 사실의 이야기 역시 가려진 진실의 끝인 숨겨진 본인에게 그 진실의 토로가 이어져야 합니다.. 허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린 수많은 거짓과 익명과 감춤으로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곤 합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고, 그래야함 했다고, 누구나 그런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거라고,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똑같이 했을거라고, 그리고 한쪽은 무너집니다.. 균형을 잃죠, 사회는 세상은 자연은 균형을 맞추려고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가 주는 이중성은 쉽게 자연스럽게 그 균형을 만들어내질 못합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자체로 스스로에 대한 항상성을 가지니까요,, 그게 아주 악랄하고 극악한 범죄이든, 스스로의 진실을 끝까지 지켜내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3. 말을 하다가 이상한대로 샛네요, 아니 처음부터 그럴려고 작정하고 샛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우리의 현실속의 사회의 모습이 15년전이나 지금이나 기득권이라는 성속에 꼭꼭 숨은 체 끝없이 만족해오던 족속들이 변함없이 그 행우지를 하는걸 보느라니 참 힘듭니다.. 여전히 일부는 수긍하고 누군가는 거부하고 누군가는 외면하고 살아가는 이 현실에 대한 환멸도 느껴지구요, 뭐 그러타는 이야깁니다.. 길게 하면 끝없는 주절거림이 될 터이니 작품 이야기를 해야되는데...... 이 작품은 니시자와 야스히코라는 일본 작가님의 작품입니다.. 개인적으론 다양한 소재와 설정으로 만난 작가님이신데 이번에는 본격 추리의 설정을 들고 오셨군요, 제목은 "끝없는 살인"입니다.. 한 여성에 대한 살인 미수 사건과 관련하여 벌어진 범죄사실을 토대로 추리를 다루는 한 모임의 역할론이 지배적으로 이루어지는 작품입니다.. 바로 줄거리를 봅시다, '이치로이 고지에'라는 여성은 퇴근 후 현관문을 여는 순간 뒤에서 습격한 한 남성으로 인해 죽음을 당할 위기에 봉착합니다.. 그가 휘두른 덤벨에 머리를 다치고 그가 비닐 끈으로 목을 조르면서 바라보는 증오가 가득한 눈동자로 인해 자신의 죽음과 직면하죠, 하지만 우연히 자신의 옆에 놓인 덤벨을 들어 가해자를 치고 벗어나 급하게 경찰에 신고를 합니다.. 그리곤 정신을 잃죠, 범인은 범행 과정에서 흘린 학생수첩을 그대로 둔 체 도망을 칩니다.. 그리고 도착한 경찰들은 의식을 잃은 체 누워있는 고지에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수거한 수첩에서 뜻밖의 진실이 드러나죠, 여성을 살해하려던 남성은 이전에 세건의 연쇄살인을 저지른 살인마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고지에의 몽타쥬와  밝혀진 신상으로도 살인마를 잡지 못한 체 시간은 흐릅니다.. 그렇게 미결로 4년이 흐른 후 고지에는 살인마가 누구인 지, 자신을 살해하고자한 동기만이라도 알고 싶어서 담당 형사였던 나루토모에게 부탁을 하고 나루토모는 이 사건을 공식적이 아닌 추리와 미스터리에 정통한 작가들의 모임인 연미회에 의뢰를 해 새해가 다가오는 마지막날 그들의 모임에 고지에를 초대하여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진실과 그 살인마에 대한 추리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하나둘씩 추론한 정황과 추리적 연결들이 진실에 다가가기 시작하는데.....


    4. 단순한 설정과 이야기입니다.. 어떠한 살인미수 사건이 발생했고 그 미수에서 살아남은 주인공과 증거로 가해자가 연쇄살인마임을 알게되고 그 살인마는 오랫동안 그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사건은 미결로 남겨지고 답답한 마음에 담당형사가 추리를 전문적으로 토의하고 취미로 탐정 역할론을 벌이는 모임에서 이 사건을 다루면서 진실에 조금 다가가보자는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사건을 두고 모임의 회원들이 각자 자신의 생각을 쏟아내면서 억측과 추측과 가정이 난무하는 상황이 이어지는 것이죠, 이 작품은 단순한 사건의 사실과 근거에 줄기를 두고 각각의 가설을 주장하는 바가 큽니다.. 사실을 토대로 자신만의 가정을 진실을 만들어나가보려는 의도가 짙은 작품입니다.. 여는 탐정소설과는 다른 역할론과 의도가 이루어진 작품입죠, 본 작품속의 탐정 역할을 하는 모든 이들은 흔한 일반적 추론과 다를 바 없는 진행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생각하지 못하고 경찰조차 밝혀내지 못한 사실과 근거와 증거적 정황들이 들어나고 숨겨진 이야기의 이면을 조금씩 끌어내게 되죠,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은 구성이고 설정이고 방법론입니다.. 작가은 애초부터 마지막의 결론에 대한 스토리의 진행을 고민하고 결말에 연계된 반전의 진행방향을 고려하고 서사를 이어나갔겠지만 저로는 정황에 따른 가정과 추측이 난무하고 극단적인 상황적 증거의 반전들이 들어나는 것이 억지스러웠습니다.. 밝혀진 사실들을 토대로 자기만의 추리를 이어나가기 위한 다양한 상황적 논거들이 인물의 이어짐에 따라 드러났다 사그러지고 또 반전을 거듭하며 후반부에 이르게 되지만 솔직히 답답하고 어줍잖은 상황의 연결이 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구마 몇천개의 추리적 역할론으로 인해 밝혀지는 결말의 진실의 충격을 아주 상당합니다.. 사실 이러한 결말의 반전적 충격을 이끌어내기 위해 끝없는 고구마의 살인이 이어진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더군요,


    5. 어렵지 않는 범죄 사실의 근거가 상황과 정황과 추측과 가정으로 얼마나 다양한 진실의 틀로 이끌어내어지는 지 우린 이 작품을 통해 보게 됩니다.. 이러한 억지와 주장이 예를 들어 법을 집행하는 이들의 판단과 잣대와 그들만의 권한으로 누군가를 옥죄여온다면 그 끝을 어떻게 확정할 수 있을 지, 두려움마저 듭디다.. 작가가 의도했든 아니든 상관없이 단순한 일반 모임이기에 망정이지 이러한 그들만의 가정과 추측들이 주는 거짓된 진실의 무게감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 지 제대로 알게된 작품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특히나 이러한 미스터리적 역할론으로 인해 밝혀지는 결론의 진실의 반전은 아주 큰 반향을 줍니다.. 짧은 순간 반전에 대한 또다른 반전의 끝맺음을 이 작품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지 싶습니다.. 그러니 이 작품은 마지막이 살린 것이지요, 본격 추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시라면 한번쯤을 즐겨보셔도 좋을 작품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굳이 추천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너무 짜맞춰진 미스터리의 설정과 구성이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반전이 주는 충격 이면에 인간으로서 그리고 공감이라는 대중적 판단의 이유로서도 이 작품은 크게 와닿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면서 받아들여지는 우리의 현실과 상황들이 주는 세상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해주는 감성적 측면에서는 조금 칭찬해주고 싶었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작품들의 독창적 세계관과 특수한 설정과 관계를 그런 전작들이 조금 더 생각나더군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하지만 반전과 또다른 반전의 마지막을 두고두고 추천해도 될 만큼 좋다는 점 하나는 끝없이 말씀드립니다..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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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경찰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하빌리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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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 작품 전에 읽었던 작품 독후감에서 제가 수입차와 관련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거리를 운전하고 다니다보면 많은 수입차가 예전에 비해 상당히 많이 보인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저의 입장에서 수입차를 타시는 분들의 경제적 여유와 빈부의 차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수입차라고 다 비싸고 좋은 것만은 아니죠, 국내 자동차에 비해서 저렴한 차들도 많은 것으로 압니다.. 그렇다고 모든 수입차를 싸잡아서 이런 외국 자동차를 타시는 분들은 다들 좀 사시고 금전적으로도 서민들보다 나은 삶을 사시는 분이라고 선을 그을 필요는 없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말씀 드린 바 있지만 그중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수입차를 타시면서 국산차의 가격 대비 저렴한 성능과 거부감을 해소하기 위함일 수도 있을테고 경제활동을 위함일 수도 있을겝니다.. 뭐 이유가 있겠죠, 물론 많은 분들은 일반 대중보다 조금 나은 경제적 능력으로 성능이나 안전성이 우수한 수입차를 선호하기도 하실테구요, 저도 여유가 있고 금전적으로 조금만 받쳐주면 비슷한 금액의 국산차보다는 조금 유지비가 더 들더라도 수입차의 성능을 우선시 하길 원합니다.. 사는게 다 그런거 아닙니까, 저 역시도 그런데 굳이 쪽지까지 날리셔서 수입차 타는 사람들 싸잡아서 나쁜 사람 만들지 말라고 하시지는 마시고, 여하튼 지금 이 세상은 자동차의 지옥같은 곳처럼 느껴집니다.. 엄청나죠, 일가족 일차가 지난 지가 한참 된 듯 합니다.. 평군 일가족 이차는 되는 듯 싶더이다.. 뭐 개중엔 월세 살더라도 차는 뽀다구 나는 모냥새를 갖춘 분들도 제법 있을테구요, 맞벌이는 어쩔 수 없이 차로 패턴을 이어가시는 분들도 많을겝니다.. 그렇게 우리 인생에서 차를 빼면 뭔가 허전해집니다..


    2. 그렇다보니 저의 입장에서는 하루에서 가장 분노가 많이 치밀때가 운전중일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운전을 업으로 삼는 사람도 아님에도 아이의 등교길이나 출퇴근길에 마주하는 교통과 차들의 이기적 행태의 지옥에서 욕은 수시로 목까지 치밀어 오릅니다.. 물론 저 역시 그들과 다르지않을겝니다.. 제가 우선적으로 지옥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타인들에게는 제가 느끼는 분노가 치밀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배려는 하고 사려고 노력하죠, 조금 양보하고 조금 이해하고 조금 더뎌가면 서로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그럴수록 운전이라는 도로속의 지옥에서는 바보가 되어가는 듯해서 더 분노가 치밀죠, 이리저리 운전은 정신건강에 해롭다는 생각을 자주하곤 합니다.. 그렇다보니 원하지 않는 사고가 나기도 합니다.. 아무리 제가 잘못한게 아니어도 항상 교통사고는 일방이라는 개념으로 판단하질 않더군요, 좁은 소방도로에 아무렇게나 주차된 차를 비켜가다가 약간 스크래치가 나더라도 제 잘못입니다.. 양방향으로 주차위반한 차를 이리저리 헤쳐가며 앞에 오는 차와 힘들게 비켜가다 조금 긁혀도 먼저 움직인 차가 잘못입니다.. 아파트의 좁은 통로상에 편하다는 이유로 아무렇게나 주차해둔 차를 나도 모르게 스크래치내고 가버렸다가 블박으로 신고가 들어가면 여지없이 뺑소니가 되어버립니다.. 화나고 미치고 팔짝뛰고 돌아버릴 일은 항상 차로 인해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자동차가 존재하는 곳 어디에서나 생깁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슨생 역시 지금으로부터 약30년전에 이런 단편을 만드셨네요, 그네들이나 우리나 다를 바없는 참 짜증나는 교통지옥의 시간들입니다.. 게이고 슨생의 단편집 "교통경찰의 밤"입니다..


    3. 총 여섯편의 단편으로 그려진 교통사고의 현장속에서 수없이 발생하는 사건사고의 내면을 바라보는 경찰들의 이야기입니다.. 보통은 이 소설속의 이야기는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원인에 대한 사회적 문제와 양심 그리고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쌍방에 대한 객관적 잣대를 이용한 인간의 이중성을 다루고 있죠, 인간은 그렇습니다.. 자신이 사고를 내든 사고를 당하든 스스로의 잘못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특히 차라는 매개가 있다면 더욱 심하죠, 하지만 그 이전에 우린 인간이기에 어떠한 상황에서 피해가 발생했다면 우선적으로 그들을 돌보는게 원칙이기도 합니다.. 이 작품속에서는 그런 양심을 가지지 못한 가해자의 모습들이 잘 그려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입장에서 드러나지 않는 진실이라는 일반적인 교통사고의 현장속의 스토리를 꾸며내기에 적합하기 때문이죠, 순식간에 벌어지는 그 현장의 상황에서 누군가 객관적인 목격이 없다면 진실은 언제나 쌍방으로 향하죠, 보지 못한 이가 결정을 내릴 수는 없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본 자들의 의견은 항상 자기를 향하고 있기 때문에 경찰들은 누구의 말이 진실이라고 단정짓지 않습니다.. 물론 이 소설이 집필되던 시점에는 블랙박스가 없었습니다.. 91년은 휴대폰마저 없던 시절입니다..


    4.  '천사의 귀'라는 단편은 시각장애를 가진 한 여학생의 오빠가 교차로의 사고로 사망한 후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역시 교차로의 사고 당시 정확한 상황을 목격한 이가 없는 경우 가해자의 잘잘못을 판단하기 어려울 때 당시에 발생했던 청각적 증거와 주변의 상황들로 진실을 밝혀내는 이야기죠, 추리적 기법과 상황이 주는 매력이 가득한 작품입니다.. '중앙 분리대'는 택배를 하는 성실하게 살아가는 한 운전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다룬 작품입니다.. 이 역시 타인을 배려하지 않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죠,  '위험한 초보운전'은 저 역시도 그런 적이 없는 지 고민을 해본 단편입니다.. 우린 뒷창에 스티커로 초보라는 이야기를 하는 차들을 봅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안전하게 주행을 하면 답답해하고 쉽게 생각해버립니다.. 조금 더 경험을 가졌다는 이유죠, 하지만 이런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는 것 자체만으로 상대에게는 죽음보다 더한 공포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반성해야죠, '건너가세요'라는 단편은 말그대로 우리가 아무렇게나 좁은 동네의 소방도로에 주차를 하곤 하는 행태를 다루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집과 가까운 곳에 두기 위해 소방도로에 소방차조차 진입하지 못하게 주차를 할 수 밖에 없는 도로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죠, 이 경우에는 급한 상황에서 차를 빼지 못해 발생한 안타까운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연결로 이어지는 상황을 그리고 있습니다.. 당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이니까요, 다음은 '버리지 말아 줘'라는 작품입니다.. 운전중 아무렇지도 않게 창밖으로 물건을 버리는 우리의 모습 그 자체죠, 뒷차에서 어떤 위험을 느낄 지도 모르는 체 쓰레기나 물건을 밖으로 내던지는(보통은 담배꽁초등) 행위는 지극히 위험한 일입니다.. 예전 제가 담배를 태우던 시절에도 앞에서 던진 담배꽁초가 뒷좌석에 들어가 시트가 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이 단편은 전체 단편들중 가장 미스터리하면서도 매력적인 스릴러의 맛을 볼 수 있는 재미진 작품입니다.. 마지막 작품은 '거울 속에서'입니다.. 가장 흔한 교통사고중 하나인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접촉사고죠, 특히나 외부로 노출된 오토바이 운전자의 경우 심각한 피해를 입을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사고 즉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조사에 임한 가해자의 숨겨진 진실을 다루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있는 교통사고의 이면의 진실을 다룬 좋은 단편집입니다..


    5. 이 작품은 미스터리적인 측면이 부각된 작품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삶과 현실속의 이야기라고 보시면 될 듯 싶습니다.. 누구나가 한번쯤은 겪어본 이야기들입죠, 가해자든 피해자든 상관없이 교통의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주변에서 늘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가슴아픈 이야기일 수도, 답답한 거짓의 분노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게이고 슨생은 아주 자연스럽게 편안하게 풀어냅니다.. 각각의 작품들이 주는 감흥은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이라면 그리고 삶속에서의 부대낌속에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아픔을 다루고 있죠, 가해자로서는 거짓을, 피해자로서는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미스터리를 푸는 방식으로 작품은 이어지지만 결국 그 진실의 답이 상황을 깔끔하게 마무리지어주지는 않습니다.. 그게 우리의 삶이고 인생이니까요, 벌어지지 않아야될 일들이 벌어져버린 상황에서 진실이 밝혀진 들 피해자의 아픔에 어떤 편안함이 주어지겠습니까, 돌이킬 수 없는 사고의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조금이라도 사고라 발생하고 벌어지지 않도록 경각심과 위험에 대한 조심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작가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이 가진 이중성과 가면을 인간의 관계속에서 스스로 벗겨내지 못하면 누군가는 그 가면의 줄을 끊어버려야한다는 것도 알려줍니다.. 지금 나에게 닥친 불행으로 아픔을 당하는 것에 대한 바라보는 이의 가면속에 이것이 언젠가는 너의 불행일 수도 있다는 진실의 가위를 들이대야하니까요, 특히나 자동차속에 숨어버린 인간의 양심이 나만 아니면 돼라는 가면속에 갇혀버리지 않게 우리가 인간임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잘 읽혀요, 우리의 이야기고 우리의 삶속에서 늘 있고 있어오고 있을 일들이니까요,


    6.  재미진 작품입니다.. 쉽게 읽고 그 의미를 자연스럽게 받아들릴 수 있는 좋은 작품입죠, 인간적이고 매력적인 교통예방소설로 봐도 무방합니다.. 청소년들에게도 충분히 즐겁게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저의 아이들에게 추천할 생각입니다.. 아직까지는 장편으로 긴 호흡의 작품보다는 단편이 주는 깔끔함을 선호하는 아이에게 좋은 선택일 가능성도 높구요, 우린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도 피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운전을 하고 운전하는 이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누구나 벌어질 일이죠, 아이의 등굣길에 앞서가는 오토바이를 타신 어르신이 휘청휘청거리는것을 보다가 위험해보여 옆차선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러자 어르신은 갑자기 제 방향으로 오토바이를 틀고 차에 부딪혀 쓰러지셨습니다.. 마침 차에는 블랙박스도 고장난 상태였죠, 급하게 119를 불렀고 아이는 걸어서 학교를 보냈습니다.. 물론 이런저런 상황을 아이가 본 후였지만 크게 다친 곳이 없는 것에 안도하며 아이는 학교를 갔습니다.. 하지만 어른은 병원에서 말을 바꾸셨습니다.. 제가 끼어들었다구요, 자신이 차선을 변경하는데 뒤에서 와서 받았다는거죠, 심지어 헬멧조차 쓰시지도 않았고 이른 아침임에도 음주를 하신 것이 확실한데도 심각하게 화를 내시며 자신을 죽이려고 들었다는 말씀까지,,, 어떻게 되었을까요, 상황이 주는 객관성은 언제나 쌍방입니다.. 저의 잘못이 크다는 것이죠, 앞서 위에 말씀드린 이야기와 이 경험과 이 작품의 의도는 다르지 않습니다.. 늘 그렇습니다.. 아이는 이해를 못합니다.. 전혀 이해를 못했습니다.. 바라보는 진실이 보여주는 결과물에 대한 거부감이 들 수 밖에요, 하지만 현실이죠, 그렇게 아이는 어려서부터 교통지옥의 현실을 경험합니다.. 그런 아이에게 이 작품은 좋은 선택이 아닐까 싶습니다.. 역시 제가 히가시노 게이고를 왜 슨생이라고 부르는 지 다시한번 느낍니다.. 게이고 센세이, 좋아,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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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사람들
박영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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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언제부턴가 도로에서 돌아다니는 차들의 반 이상이 수입차로 보입디다.. 저런 차들 몰려면 최소한의 돈이 있어야될텐데, 난 죽으라고 내 시간도 없이 일해서 먹고 살기도 바쁜데, 저런 사람들은 어떻게 저렇게 좋은 차들을 타고 다니지라는 의문을 가지는 분들, 저를 비롯해서 참 많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방에도 그러할진데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는 오죽하겠습니까, 우리랑, 아니 나랑 다른 삶을 살아가시는 분들이시니 그런 금전적 여유가 있으시겠죠, 물론 겉모습과는 다르게 어쩔 수 없이 이런저런 이유로 비싼 수입차를 타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여겨지지만 그런 속이야 저로서는 알 수 없으니 겉으로 보여지는 이미지만으로는 그런 수입차를 타시는 분들은 나름 경제적으로나 금전적으로 상당한 여유를 가지신 분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너무 많아요, 세상이 살기가 많이 나아졌나라는 생각도 해봤는데, 저의 개인적인 삶으로 보면 젊은 시절보다 지금의 삶이 더 퍽퍽하고 가난하고 여유가 줄어들었는데, 그리고 심심찮게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사회면의 뉴스에는 하루에도 많은 비관 자살의 안타까움을 경험하곤 하는데, 제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주변의 삶과는 다른 분들의 세상이 우리와 함께 있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는 조금은 이질적인 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어려운 말로 빈부의 격차가 심화된 것인가요, 사회는 여전히 있는 자, 가진 자, 무엇보다 상속받은 자, 받을 자들이 이끌어나가고 그들의 삶에서 100마넌짜리 패딩 한벌은 아무렇지도 않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강남의 한 가게에서 후드 티 한장에 88만원을 하는 걸 보면서 제가 느끼는 감정과 그 후드티를 만지작거리며 색상이 마음에 안든다며 발렌시아가를 40만원 더 주고 사는 사람들의 감정은 완전 다른 세상의 이야기겠죠, 하지만 버젓이 우린 그들과 숨쉬고 이야기하고 만나고 살아갑니다.. 그것도 아주 가까운 곳에서 말이죠,


    2. 이런걸 흔히 문학적 비유로 빛과 그림자, 뭐 이런걸로 표현하곤 하죠,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기 마련이다.. 뭐 그런겁니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갑니다.. 나라 경제의 많은 부분이 지하 경제의 사채나 현금 유동성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걸 모르질 않죠, 화려함속에 가려진 어둠의 그림자속 세상은 숨죽임과 속삭임속에서 하나 둘 그림자속에서 묻혀가기 마련입니다.. 대다수의 대중은 그런 그림자속과 빛의 경계선에서 한발씩 걸치고 살아가는 것이죠, 누군가에게는 절대 다가오지않을 그림자의 선을 우리 대부분의 서민이 막아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대로 그림자속의 세상에 갇힌 이들 역시 쉽게 빛의 공간으로 넘어오질 못하죠, 그나마 우린 이름이나마 존재하죠, 우리가 모르는 어둠의 그림자속 세상속에서는 이름마저 분실되고 기억하지 못한 체 버려진 존재들이 수두룩하다는 사실을 우린 경계선에서 빛만 바라보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할 뿐입니다.. 이 작품은 그런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듯 합니다.. 박영 작가의 "이름없는 사람들"입니다.. 삶의 나락에서 멈춰버린 인간들의 존재성을 알려주는 것이죠, 이름을 잃어버린 이들은 단순히 자신의 존재만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누군가에게 전달될 뿐입니다.. 자, 소설속으로 들어가봅시다..


    3. 나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고 이름을 잃어버린 나는 심부름꾼입니다.. '재'라는 인물의 사채업을 돕는 직원이죠, 나는 '재'에게 사채를 빌려쓰고 갚지 못한 체 세상에서 외면당한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이 사라지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사채를 빌리며 자신의 생명보험증을 맡기죠, '재'는 그런 그들이 빚을 갚지 못하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합니다.. 그리곤 그들이 실종된 후 3년이 지나면 생명보험금을 수령하게 되죠, 결국 빚을 진 이들은 자신이 사라짐으로 인해 빚을 탕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하는 나조차도 '재'에게 빚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맡은 일을 마무리하면 더이상 '재'에게 갚을 빚은 없는 것이죠, 그동안 아버지로 인해 벌어진 빚을 탕감하기 위해 '재'의 수족이 되었지만 이제 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기회가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사라질 마지막 사람을 만나러갑니다.. 하지만 일은 예상한대로 흘러가질 않습니다.. 그를 찾아 문을 두드리고 들어간 순간 그는 이미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이죠, 오히려 자신이 할 일이 줄어들어 다행으로 여긴 나는 죽어버린 그를 캐리어에 담습니다.. 그리곤 집을 나서려는 순간 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 자살하기 직전 자신의 죽음을 신고한 모냥입니다.. 어쩔 수 없이 표적 처리가 불가능해진 나는 캐리어들 둔 체 집을 벗어납니다.. 그리고 마지막 빚정리가 어려워지죠, '재'는 그런 나에게 현재 사용중인 이름을 버리고 새로운 이름을 부여할때까지 기다리라고 합니다.. 나 역시 이름이 없는 존재였으니까요, 그렇게 숨어지내던 어느날 다시금 '재'에게서 연락이 옵니다.. 더이상 실패를 인정하지않을 듯, 재는 나에게 역시나 사라져야될 존재들을 세상에서 버려진 식인귀가 살아가는 B시에 버리고 오길 원합니다.. 누구나 그곳으로 향하길 두려워하는 B시는 나에게 또다른 죽음을 안겨줄 것만 같은 곳입니다.. 하지만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꼭 해야만할 일이죠, 나는 '재'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4. 사회의 어두운 세상의 삭막한 삶의 모습을 담아낸 느와르소설같습니다.. 느와르라함은 어둡다는 말이죠, 이 작품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어둡습니다.. 인간의 악하고 메마르고 비정한 삶의 내면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은 인간이 어쩔 수 없이 가지는 탐욕적 욕망과 그 본질적 파괴의 감성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각각의 인물들의 내면과 빚을 진 세상의 존재들의 탐욕과 그들로 인해 살아가는 또다른 욕망덩어리의 인간들의 생존의 본능과 이로 인해 세상은 화려하고 거대한 외면속에서 병들어가는 내면의 아픔을 간직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공간적인 묘사에 있어서 하나시라는 거대한 메트로폴리탄의 세상은 빈민과 판자촌의 세상을 파뒤집고 그 생존력을 땅으로 묻어 새로운 빛을 가져다줍니다.. 그 속에 갇혀서 끝내 벗어나지 못한 존재들은 그림자속에 갇혀 사라져버린 것이죠, 하나시의 빛의 중심인 T타워라는 곳에서 바라본 세상의 빛은 화려하기만 하죠, 하지만 주인공들이 숨쉬는 달동네와 판자촌같은 곳은 어둠속에서 철저히 가려져 있습니다.. 또한 세상에서 격리된 B시의 이야기속에서도 다르지 않습니다..  경제가 무너지고 노동자들은 생존을 위해 싸우고 그런 시위가 사회를 위협한다는 생각을 가진 기득권자들과 빛의 세상속의 존재들은 경계선속의 인물들의 선을 무너뜨려버립니다.. 그리고 그들을 어둠속을 가둬버리죠, 그렇게 사라져버린 존재들의 도시가 되어버린 B시는 식인귀의 세상속으로 아무도 찾지않고 버려진 곳으로 만들어집니다.. 누구도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고립된 곳에서 죽음을 만나는 모습괴 상황들이 주는 암울한 세상의 내면은 또다른 세상의 공존을 방식을 이해하게 만듭니다..


    5.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러한 문학적 감성과 상황적 매력인 넘치지만 이야기 자체의 공감은 딱히 많진 않습니다.. 이름이 없는 존재인 나의 이야기가 주는 감흥은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하지만 전형적인 부분을 벗어나질 못하죠, 그리고 이야기는 '나'라는 존재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질 못하고 한계에 부닥칩니다.. 개인적으로 '재'라는 인물이 주는 카리스마와 그 내면적 감성이 무척이나 와닿았지만 소설은 나에게서 느껴지는 재의 모습외에 '재'라는 인물 자체가 주는 스토리는 전혀 느껴지지 않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한 서유리라는 색다른 인물의 출현과 더불어 발생하는 반전의 상황들도 그렇게 독창적이다거나 상황적 매력을 안겨주진 않더라구요, 흔한 스토리의 극적 재미에 국한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작품의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전개에 필요한 부분이긴 했지만 무엇보다 이 작품의 인간의 내면을 표현한 감성과 사회적 갈등과 현실들이 드러내는 감각적 표현들이 아주 뛰어나기 때문에 서사가 일부분 묻혀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헀습니다.. 또한 소설은 처음부터 가진 감성적 기조를 끝까지 유지하고 이어지죠, 허나 후반부의 반전에서 발생하는 모든 상황들은 대체적으로 예상가능한 부분임을 우린 읽다보면 눈치채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감각이 무디더라도 그정도 센스는 이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충분히 파악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렇다고 그 반전이 어색하다는 것은 아니구요, 충분히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스토리의 반전인지라 그러려니한 것이고 전반적인 작품의 감성에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보다 암울하고 비극적인 스토리의 국면을 맞이하였더라면 이 작품의 느와르는 읽은 후에도 끊임없이 머리속에서 되내여졌을 것 같은데.. 좀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6. 그렇게 길지 않은 작품이지만 작품이 주는 무게감은 상당합니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지리하거나 재미없지도 않습니다.. 일반적이고 드라마틱한 인간의 삶의 어두움을 농밀하게 잘 드러낸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진득한 인간의 이야기를 아주 장르틱하게 잘 그려내진 작가님, 칭찬해.. 그렇다보니 조금 더 원하는 부분이 생길 수 밖에요, 서유리와의 관계와 그 스토리나 B시와 관련된 확장력이나 무엇보다 '재'라는 인물이 주는 조금은 과격한 감성적 느와르와 같은 부분이 '나'라는 인물의 관조적 시선속에서 비정하게 드러났으면하는 그런 아쉬움들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충분히 장르적이고 대중적 감응과 동조를 일으킬 수 있는 문장적 매력이 넘칩니다.. 작가는 대중적이되 자신의 의도를 놓치지 않으려고 헀습니다.. 인간의 삶속에서 가려진 내면과 그 어두움을 깊게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동일하게 사회의 어두움 역시 말이죠, 많은 이야기를 드러내진 않았지만 소설이 주는 감성과 그 진지함은 독자에게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오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능하면 후속작도 이 스토리의 연결선에서 나와주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제목은 '이름 찾는 사람들' 아님 말구요,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이라는, 아시죠, 모름 말구,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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