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분립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7-4 미치 랩 시리즈 3
빈스 플린 지음, 이영래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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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입대일이 91년 10월 17일(잊지도 못합니다.ㅋ), 한달 조금 안되는 시점(9월 20일경)에 영장을 받았던 것 같아요, 막상 가야된다는 생각에 하늘이 무너지는 듯 하더군요, 무섭기도 하고 애인이랑 헤어지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기도 하구요, 심지어 부친에게 결혼시켜달라고 말도안되는 억지를 부린 기억도 나네요, 푸훗,  차츰 기일이 다가올수록 못먹는 술도 먹고 애인은 저를 토닥거리면서도 돌아서서 눈물을 짓는 모습에 참 마음이 아팠던 추억도 있습니다.. 이렇게 헤어지는 것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서로 부둥켜안고 한없이 울었던 참 순수했던 그런 시절이었죠, 물론 군대가서 깔끔하게 헤어지게 되었습니다만, 라떼는 그랬습니다.. 남들 다 가는 군대 가는 것이 무어 그렇게 서러울 일이겠습니까만 잘나가던(?!) 대학시절의 절정기를 그렇게 단절해버린다는 사실에 아쉬움이 남았던 것 같습니다.. 입대 전날, 집 떠나와 열차타고 훈련소로 가던 날 부모님께 무심하게 인사하고 돌아서니 가슴속에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는 것은 아마도 부모님에 대한 생각홀로 남은 애인을 두고 가는 거였겠죠, 돌아서서 눈물짓는 어머니보다 홀로 떠나보내는 저를 보며 눈물짓는 애인에게 더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참 철없었죠, 게다가 그렇게 애절하게 붙잡던 손은 지금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지.....


    2. 자, 그렇게 풀 한포기 친구얼굴 모든 것이 새롭던 시간을 뒤로한 체 6주간의 군사훈련후 젊은 군인으로의 생을 다시 시작하면서 진정한 군인으로의 자세로 이등평의 편지를 쓰기 시작하죠, 사격으로 날아가는 비둘기를 잡았느니, 태권도로 막사 기둥을 내려앉혔니 하면서 어설픈 특공무술의 대가로 거듭나는 허세가 시작됩니다.. 북한 침투와 UDT(우리동네똥방위)를 전문으로 하는 스페셜포스에 뽑혔는데 눈이 나빠서 최종탈락을 했니하면서 말이죠, 말이나 됩니까, 여하튼 상남자로서 군인의 캐릭터는 얄짤없는 허세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보초설때나 총 한번 잡아보는 행정병인데 회의용 차트만드는거 잘했다는 이유로 일병 포상휴가를 받고선 나와서 친구들에 사격대회 일등사수로 일주일 포상휴가 받았다는 과감한 거짓말까지, 남자라면, 군대를 갔다왔다면 조금은 허세작렬의 추억이 남긴 하죠, 그렇다보니 막 밀리터리 액션이나 스릴러를 보면 상상속의 저의 설정에 힘을 보태어 현실적 이미지로 탈바꿈하기도 합니다.. 뭐 여하튼 총을 만져보고 쏴보기도 했으니까요, 여성분들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지만 남성으로서 이러한 장르의 매력은 대단합니다.. 그중에서도 최고중 하나는 빈스 플린 작가의 '미치 랩'시리즈이죠, 안타깝게도 너무나 일찍 타계하신 작가님의 미치 랩 시리즈는 전형적인 아메라카 국뽕스타일의 작품이지만 재미면에서는 과히 최상의 즐거움을 주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물론 과거 최애의 미드였던 '뎀 잇 클로이'의 불사신 잭 바우어를 탄생시킨 영향력을 보여준 작품이기도 하구요, 아무생각없이 뜬금없이 지금 다시 읽게 된 이 작품은 미치 랩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입니다... '임기 종료'라는 단행본에서 미치가 탄생하고선 그의 활약이 시작된 '권력의 이동'이후 '제3의 선택'에서 벌어진 상황이 본 작품 "권력의 분립"에서 해결이 됩니다..


    3. 미첼 랩이라는 인물은 기밀중의 기밀의 인간병기입죠, 나라가 만약 위태로울때 언제나 자신의 모든 것을 위기의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불태우는 인물입니다.. 끊임없이 세계의 위험속에서 자칭타칭 세계의 경찰을 자부하는 미국을 위해 한 목숨 바치는 애국자중의 애국자이죠, 소설은 그냥 소설로 보시면 됩니다.. 같잖으시면 그냥 나라와 인물만 우리나라를 대입하시면 됩니다.. 주인공을 그냥 남미철로 바꾸셔도 되구요, 여하튼 그렇습니다.. 3번째 시리즈는 전작에서 미치에게 주어졌던 임무를 행함에 있어서 누군가의 배신이 있었습니다.. 구사일생으로 미치가 살아나 미국으로 돌아오지만 그 배신자는 찾질 못한 체 작품이 마무리가 되었죠, 여전히 자신과 나라의 권력의 중심에 또다른 배후가 있다는 사실에 불안함을 가지고 있는 미치에게 애너와의 사랑은 더이상 그에게 과거의 기밀과 비밀스러운 임무와의 결별을 생각케 합니다.. 마침 CIA를 지키던 토마스 스탠스필드가 사망한 후 후임으로 아이린 캐너디가 발탁됨에 따라 그동안 자신이 믿어온 캐너디와의 자신의 미래를 고민하던 중 자신을 죽이려했던 스파이인 캐머런을 살해한 인물에 대해 확인한 후 그 배후를 밝혀내기 위해 미치는 이탈리아로 향합니다.. 이와 함께 이스라엘의 첩보국인 모사드에서는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병원의 지하벙커에 핵무기를 제조중인 사실은 미국에 전달하죠, 미국의 안보에 큰 위협이 될 핵무기와 관련한 상황으로 미행정부는 큰 혼란에 휩싸이는데, 동시에 이탈리아로 향했던 미치는 자신이 찾은 인물과 함께 정체모를 적으로 인해 위험에 처하는데......


    4. 이 작품의 설정과 서사는 단순한 밀리터리 액션의 범주에 놓여있지 않습니다.. 제목의 의도에 맞게 미국이라는 나라의 권력의 중심에서 이를 견재하고 균형을 잡기 위해 벌어지는 음모와 배신과 복수와 정의를 다루고 있죠, 미치의 활약은 그렇게 수면위로 오버스럽게 떠오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서사의 중심은 새롭게 CIA의 수장으로 발탁된 아이린 캐너디의 상황적 중심으로 흘러갑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주는 긴장감과 속도감은 아주 대단합니다.. 챕터와 시간적 구분으로 상황별 장소별 이끌어내는 이야기의 흐름은 빈스 플린이라는 작가의 소설적 재능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줍니다.. 게다가 모든 문장속에 녹아든 군사적 의미와 상황적 고증과 현실적 비유는 대단히 뛰어나기 때문에 독자로서 진정한 밀리터리소설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것이죠, 과거의 톰 클랜시의 모든 것과 함께 빈스 플린만의 간결함이 작품속에서 독자들에게 끝없이 드러납니다.. 어떻게 보면 두꺼운 장편의 흐름이지만 아주 짧고 한순간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부분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오히려 톰 클랜시처럼 조금은 상황이나 흐름에 있어 보다 구체적이고 드라마틱한 스토리를 추가해주었더라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죠, 무엇보다 이 시리즈의 장점은 미치 랩이라는 인물에 대한 아주 입체적인 이미지적 묘사에 있습니다.. 누구나 인정하는 유니버셜 솔져인 캐릭터임에도 한없이 바보같은 남자로서 그려내는 주인공의 이미지는 대중적인 면이 부각됩니다.. 소설을 읽을수록 애너 릴리라는 여인에 대한 짜증이......


    5. 이 작품의 출시 시점은 2001년으로 9.11테러가 발생하기 전의 이야기로 보입니다.. 제가 제대로 본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 작품의 이야기가 어떻게 그렇게 중동이라는 나라와 미국의 관계와 그 흐름을 잘 보여주는 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이 작품은 이라크를 중심으로 한 중동의 미국에 대한 관점과 미국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물론 미국의 관점이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중동내에서 가지는 입장과 그 영향력도 소설속에 상당히 구체적으로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전체적 이야기는 미국의 내부 권력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다고 봐야겠죠, 빈스 플린인 국뽕의 이야기를 전개하면서도 자신들의 중심에 놓인 적을 둡니다... 무엇보다 그들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암투가 우선적으로 적용되는거죠, 미국을 위협하는 세계속의 적들을 대척점에 두곤 있지만 이 적보다 더 문제는 내부의 적이라는 가장 소설적 합리를 내세우는겁니다.. 소설은 이러한 설정으로 수백 페이지의 이야기에 독자들을 끊임없이 끌어들입니다.. 마지막 몇페이지를 남겨둘때까지 이러한 문제의 해결은 쉽지 않아보입니다.. 그리곤 한순간에 훅하니 사건의 내막과 결과가 등장하게 되죠, 깔끔하고 순탄한 결말이긴 하지만 많이 아쉬움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상황이 주는 긴박감과 서스펜스가 인물적 활약과 상황적 액션들로 좀 더 살이 붙었더라면하는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으니까요, 특히나 이번 작품에서는 이러한 마무리적 측면에서 전반적인 긴장과 긴박감이 한순간에 털어내버리는 듯한 상황으로 끝내기에 더 감질맛이 났다고 봐야겠습니다.. 여하튼 이렇게 다음편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이제 3편째니까요,


    6. 빈스 플린은 2013년에 작고했습니다.. 여전히 미치는 그의 소설속에서 숨쉬고 있는데 그는 젊은 나이에 안타깝게 생을 달리했습니다.. 아마 저도 그때쯤 그 당시의 최근작인 미치 랩의 6번째 시리즈인 "제거명령"을 읽었나봅니다.. 미치와의 만남이 들쑥날쑥하긴해도 언제나 즐겁기만 합니다.. 물론 시리즈별로 순서에 이어보시면 가장 좋은 방법이겠죠, 또 안타깝게도 국내에서 빈스 플린의 미치 랩 시리즈는 7편인 "반역행위"이후로 아직까지 소식이 없습니다.. 6년이 지났습니다.. 쉽지 않아 보이네요, 더불어 미치 랩의 프리퀄인 '아메리칸 어쌔신'이 영화로 나와 선보여졌지만 폭망에 가까운 영향력을 보여준지라 국내에서 플린 작가 생전의 출간작이라도 다 볼 수 있을 지도 의문이기는 합니다.. 미국내에서는 현재 미치 랩 시리즈를 카일 밀스라는 유명 스릴러작가가 그대로 집필하고 있다곤 하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남은 플린 작가의 작품이라도 나오길 기대할 수 밖에 없을 듯 싶구요, 미치 랩 시리즈는 뛰어난 밀리터리액션스릴러소설입니다.. 뭣도 모르는 독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추천합니다.. 프레드릭 포사이드보다는 보다 대중적이고 톰 클랜시보다는 보다 현실적이며 수많은 현실적 정치음모를 담보한 밀리터리스릴러에 있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추천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합니다.. 잭 바우어의 강렬함과 잭 라이언의 현실감이 미치를 통해 전달되는 즐거움을 독자분들도 한번 경험해보시면 얼마나 좋을까요, 근데 이 시리즈가 꾸준히 출판되고 있는 지는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국내에는 시리즈의 6편까지 출시되었던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게 2015년이 마지막이네요, 미치를 이대로 묻을 수는 없는데....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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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2020-05-20 17: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90년 8월27일읗 잊지못합니다..,,ㅋㅋ
 
레이첼의 죽음으로부터
플린 베리 지음, 황금진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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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눈은 오지않는 지독히도 추웠던 크리스마스 이브날 그날따라 길거리에는 넘쳐나는 연인들로 가득차고 갈 곳 없는 솔로들은 끼리끼리 모여 술 한잔 걸치고 불콰하게 차오른 취기를 즐기며 술도 깰겸 걷는 길이 그렇게 나쁘지가 않았다.. 그 많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골목길 어귀 옆 누군가의 비명소리에 몇몇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만 내 일도 아니니 크게 신경쓰진 않는다.. 시린 귀를 매만지며 담배 한대를 다시 꺼내 물지만 바람에 불이 쉬이 붙지는 않고 고개를 숙여 애꿎은 라이터만 탓하는 사이 한 여성이 내가 지나쳐온 골목길에서 힘겹게 뛰어나온다.. 어쩔 줄 몰라하는 나에게 도움을 청한 여성을 따라 나온 힘깨나 쓰게 생긴 남자, 얼굴도 지랄같이 무섭게 생겼다.. 젠장할, 하필이면 이럴때 사달이 날 상황이 발생하다니, 그런데 어쩌나, 난 혼자가 아니라 친구가 두명이나 함께 있는걸, 아무말 없이 쳐다보고 있는 우리를 보곤 혼자서 온갖 쌍욕을 씨부리다가 알아서 꺼져주신다.. 바닥에 주저앉은 체 멍하니 있는 여성에게 그제서야 신경이 쓰인 친구가 자기 돕바를 벗어 덮어준다.. 아, 눈치 빠른 새끼, 그렇게 난 항상 늦다... 그리곤 혹시 담배 태우시냐고 묻곤 자기 담배 한대를 입에 물려주곤 불을 붙여준다.. 역시 빠른새끼,


    2.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이야기다.. 그때는 그랬다.. 아니 난 그랬다.. 우리들은 그냥 그러려니했다.. 자주 보아왔던 일들이고 그건 상황들이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까지 심각하게 고민하진 않았다.. 그날도 그렇게 서로 담배를 나눠 태운 후 여성분은 택시를 타고 자신의 길을 갔다.. 물론 친구는 그새 여성분의 삐삐번호를 낼름 받아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심각한 폭력이 벌어지진 않았고 그런 상황을 모면하긴 했지만 지금 그때 그 이미지를 떠올려보면 귀가 시릴 정도의 차가운 바람이 불던 도롯가 전봇대에 주저앉아 온몸을 떨던 여성에게 있어서 조금전의 폭력은 얼마나 공포스러운 상황이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와달라는 비명소리에도 지나가던 어느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던 그 순간 그녀는 어쩌면 죽음의 두려움까지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지나면 잊혀지고 머리속에서 사라질 기억뿐일테지만 지금 이순간 그 여성의 떨림이 생생하게 떠오르는건 그녀 못지않게 그 폭력적 상황을 뇌리속에서 잊지 못하는 공감이 있기 때문일게다.. 비록 당해보지 않았다손치더라도 말이다.. 그렇게 인간에게 있어 굴복하고 반항하지 못한체 극악한 폭력속에 놓여지는 공포는 평생동안 지워지지 않는 기억속 생채기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나는 비록 흔한 과거의 기억으로 치부하고 넘어가지만 그런 상황을 경험한 그때 그 여성에게는 어쩌면 지금 이순간도 어두운 밤길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 않을까,,


    3. 노라는 언니를 만나기위해 런던에서 말로행 기차를 탑니다.. 어릴적부터 언니인 레이첼과의 관계가 워낙 돈독하다보니 서로 의지하고 기대는 자매인게죠, 아버지라는 존재는 그들의 인생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물입니다.. 물론 어머니는 돌아가셨구요,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런던을 벗어나 조용한 언니의 집으로 향하던 노라에게 있어 언니는 안식처와 다름없는 공간입니다.. 그런 언니와 함께 많은 시간을 지내왔고 또 앞으로의 공유에 노라는 삶의 위안을 얻습니다.. 그러나 언니의 집에 도착한 노라에게 닥친 것은 언니의 죽음이죠, 누군가에게 살해된 언니를 모습과 함께 과거 무차별적 폭력에 평생의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가는 노라와 언니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누군가가 강도짓을 하고자 살해한 것이 아닌 어떤 분노와 집착과도 같은 폭행적 의도가 엿보인 언니사건에 대해 노라는 과거의 트라우마와 그로 인해 현재까지 이어진 그들의 혼란스러운 삶의 이면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언니와 관련된 인물들, 특히 남성들에 대한 노라만의 상상적 추리가 이어지죠, 마지막 언니의 모습을 보았던 키스라는 남자를 중심으로 15년도 지난 폭행사건으로 죽음을 당하기전까지 그들을 폭행한 인물을 찾고 그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던 이 자매의 삶의 파편이 조금씩 튀어나오기 시작합니다.. 노라의 진실찾기속에서도 경찰들이 보여준 신뢰는 여지없이 무너집니다.. 아무도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죠, 오로지 그녀만이 언니와의 삶의 답을 찾아나길 뿐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알게되는 진실은, 헉.....


    4. 노라라는 여성의 시점에서 보여지는 이 소설은 무척이나 혼란스럽습니다.. 그리고 대단히 고민스럽습니다.. 노라라는 인물을 실제 피해를 당한 당사자라기보다는 그 상황에서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공감자로서의 모습이죠, 오히려 극악한 상황을 직접적으로 겪어보지 못한 사람으로서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소외와 편견에 대한 이야기라고봐도 될까요, 하지만 직접적이지않다고 그게 아무렇지도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니죠,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의지하고 믿는 사람이 받는 상처와 두려움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대상이기 때문이죠, 그녀의 언니 레이첼이 당한 폭력적 트라우마는 노라에게 그대로 투영되어 그녀의 삶을 지배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언니가 아니기때문에 자신에게 투영된 언니의 모습과 감성만 느낄 뿐이지 레이첼이 되질 못하죠, 그렇게 뒤늦게 조금씩 알아가는 레이첼이라는 존재가 안고 살아온 세상의 온갖 혼란과 두려움을 노라는 언니의 죽음으로부터 하나씩 이해해나가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피해자입니다.. 사회적 피해자들이죠, 이들의 시선속에서 세상의 이치는 그렇게 올바르지 않습니다.. 어느 하나 제대로 맞춰진 것이 없어 보이죠, 세상의 모든 남성들은 그렇게 포용적인 모습으로 그려지지않죠, 편견과 이기심과 폭력과 분노와 특권이라는 사회적 권리속에 적응되어 차별적 시선으로 여성을 대하는 인물이 될뿐입니다.. 그들에겐 그럴지도 모를일이죠, 그들이 당한 사회적 불합리와 폭력적 범죄가 여전히 주변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발생하고 그렇게 남성들은 단죄보다는 또다른 기회를 부여받기 때문일겝니다.. 그로 인해 레이첼은 불필요한 죽음을 당했을 지도 모르죠, 노라는 그렇게 생각한 모냥입니다.. 대단히 세밀하고 농밀한 여성적 관점의 심리스릴러라할 수 있겠습니다..


    5. 이렇듯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상황이 주는 영향으로 한 여성이 심리적으로 대단히 위태로워지는 스토리를 따라가다보면 조금은 적응이 더딜 수도 있을테고 때로는 공감이 어려울 수도 있을겝니다.. 특히나 남성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소설속의 노라의 감성은 무척이나 예민하다는 인상까지 주기도 합니다.. 집착이라는 관점으로 바라볼 수도 있을테죠, 저도 어느 시점까지는 그런 생각이 없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모든 상황적 시각속에 놓인 노라의 시선은 무척이나 혼란스럽고 집요하기까지 하니까요, 언듯 노라의 주변에서 노라를 대하는 태도가 어느순간 변해지는 것과 다르지않게 저의 독서상의 심리적 상태로 그러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입니다.. 굳이 저렇게까지 끈질기고 집요하게 상황적인 예민함과 감성적 집착으로 주변에서 고립될 필요가 있을까하는 뭐 그런 생각이 듭디다.. 소설속의 노라의 추리와 단서찾기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직접적입니다.. 또한 개인적 상상력과 의도한 집착으로 보여지기까지 하죠, 그러한 노라의 심리와 압박에 대해 스스로 과거를 들추며 자신이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이유와 합리화를 이끌어내기도 합니다.. 그러한 문장의 이어짐은 심리스릴러의 끈끈함같은 스릴감을 주기도 하지만 사실 좀 지리해지는 경향을 어쩔 수는 없습니다.. 저같은 진득하지 못한 독자에게는 빠른 속도감과 흐름상의 단서찾기가 어느정도 드러나면서 이어지는것이 가독성에 좋거덩요, 하지만 작품은 끈기있게 노라의 심리와 시선을 중심으로 서사를 이어갑니다.. 그러다가 똭, 제가 예상하고 미스터리독자라면 한번씩 상상해보는 추리의 끄내기가 떡하니 펼쳐집니다.. 일종의 흔한 반전이죠, 하지만 이 흔한 반전의 전개와 함께 그제서야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면서 물벼락을 쏟아놓기 시작합니다..


    6. 조금은 여성적 심리스릴러로서 개인적인 심리와 여성적 관점의 폭력적 트라우마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미스터리물이라고 봐야겠습니다.. 어떤 상황에 대면한 당사자라기보다는 그 범죄의 중심에 놓인 관계자로서의 한 여성이 보여주는 서사는 대단히 농밀하면서도 구체적인 심리적 불안과 상황적 혼란을 그려냅니다.. 오히려 이러한 인물의 객관적 주관화는 살해된 대상이 가졌던 심리적 불안과 트라우마를 객관화시켜 보여주면서 그와 함께 공감한 주관적 감성까지 혼합되어 나타나게 되죠, 문장이 이어질수록 독자들의 사고가 소설속 인물의 심리적 공감과 가까워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전혀 과학적이지도 추론이 구체적이지도 않은 일반적인 한 여성적 관점속에서 그녀가 경험하고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그 대상들의 모습들이 우리네 삶과 인생속의 흐름과 다르지않다는 것에 독자로서 동조하게 되는 것이죠, 제목이 주는 의미처럼 한 여성의 죽음으로부터 밝혀지고 영향을 받고 그로 인해 진실에 다가가는 가족이라는 대상의 심리와 그 아픔의 투영은 죽음을 당한 존재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살아있으나 죽은 이로부터 전해받은 모든 기억의 파편들은 이제는 돌아오지 못하는 언니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와 아픔과 사랑으로 점철되어 소설속에서 끊임없이 되돌아옵니다.. 그리고 밝혀지는 진실은 레이첼이, 노라가 살아오고 살아가는 인생의 울타리가 얼마나 허술하고 위험하고 위태로운가를 알려줍니다.. 이시대를 살아가는, 그리고 살아갈 모든 여성들이 감내해야할 지도 모를 삶의 위태로움을 말이죠, 어쩌면 세상의 모든 여성들은 많은 것을 얻지 못한 체 여전히 부족한 삶의 허전함과 공허한 거짓 배부름속에서 이를 감내하고 살아가고 있는 지도 모르죠, 그러니 남성들이여, 가진자들이여, 배려하고 베풀고 포용하고 양보하고 이해하고 수용하고 무엇보다 사랑하라,,, 이야 이거 내가 적고도 좀 멋있다이..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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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멀 피플
샐리 루니 지음, 김희용 옮김 / arte(아르테)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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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간이라서 어쩔 수 없긴 하지만 참 우린 생각이 많다.. 살다보면 단순한게 가장 빠른 답일때가 많지만 우린 사람이라서 참 생각이 많다.. 항상 그렇다.. 소심하다고해도 되고 진지충이라해도 상관없고 느리다고 해도 어쩔 수없지만 모든 일에 있어서 생각이 많다는 것은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 대체적으로는 생각이 많아서 나쁜 것은 없다.. 개인적으로는 힘들지라도 내 생각을 남이 아는 것도 아니고 뭔가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으니 굳이 남들이 내 생각가지고 뭐라고 할 일은 없다.. 그래서 보통은 생각이 많은 사람은 뭔 일을 해도 웬만해서는 나쁜 결과를 초래하는 일이 드물기도 하다.. 워낙 생각이 많으니 가장 좋은 방법을 고민하고 사고하고 생각하고 되짚어보고 돌다리처럼 두드러도 보고 하느라 그 동안 자기 머리나 아플까, 남들 눈에는 그리고 일의 결과에 있어서는 탓할 부분이 그렇게 크질 않을게다.. 그러면 생각이 많아서 굳이 나쁠게 뭐냐, 자신이 힘들고 스트레스 받는거는 지가 원한 일이니 당연지사일테고 그럼 생각은 인간으로서, 사회인으로 나쁠게 그리 많지 않아보이는데.... 그렇지 않나, 그럼 가장 단순하게 생각하는게 제일 좋은 답안이라는 말은 어폐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과 사고와 차곡차곡 쌓아진 돌다리가 있음이 제대로된 답안을 마련하는 방법이거늘, 아닌가, 아니다.. 그렇다 아닐 경우도 많다.. 인간이기에 우린 어쩔 수 없이 관계속에서 살아간다.. 서로간의 역학적 관계속에서 생각은 언제나 복잡하기 마련이다.. 나만 생각하고 사는건 아니니 말이다..


    2. 그중에서도 남녀간의 친밀한 관계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참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아마 인간이라서 어쩔 수 없이 각자의 생각에 기대기 때문일게다.. 소통이라는 가장 대중적인 관계적 행위를 들먹이지 않아도 이들의 상호 교란관계는 시대를 불문하고 이어지고 화성과 금성을 왕래하고 있다.. 참 헷갈리는 관계이지, 자신을 고려한다면 그것으로도 문제가 되고, 상대를 배려한다면 또 방법적으로도 고민스럽고, 뭐 이런 남녀의 관계는 자신의 의지와 존재성과 맞물려 참으로 지랄맞게 엇갈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랑이라는 전제가 항상 깔리고 그 사랑속에서 서로를 확신하고 신뢰를 이어가지만 인간이라는 이 존재성이 자꾸 생각을 만들어내고 혼란을 일으키니 죽을 맛이긴 하다... 그래서 항상 남녀의 관계는 처음 시작한 그 시절, 그 순간의 감정이 가장 중요한 법인게지, 아마 그때 그 사랑의 시작점이 어떻게해서든 남아있다면 말이다.. 이렇게 참 생각많고 고민많은 한 시대의 성장을 만들어가는 남녀의 이야기를 보게되면 많은 생각이 든다.. 이제 세상의 흐트러짐속에서 자신을 부여잡고 판단을 제대로 하게되는 나이에서 어느듯 하늘의 명을 알게되는 대단히 멋진 나이로 접어든 중년의 배나온 아저씨로서 이렇게 갓 어른이 되어가는 한 남녀의 사랑과 그들의 복잡다단한 삶의 고민거리를 마주하고 있으면 그시절의 나의 삶으로 돌아가는 낭만과 그 시대를 살아온 경험자로서의 후회가 함께 몰아친다.. 비록 우리가 아닌 저 멀리 아일랜드의 한 소도시와 더블린에서 살아가는 한쌍의 남녀의 이야기일지라도, 샐리 루니의 "노멀 피플"


    3. 아일랜드의 소도시 캐릭클리에서 살아가는 코넬과 매리앤은 졸업을 앞둔 고딩들이죠, 메리앤은 변호사인 부자 부모를 둔 여학생이지만 학교에서는 소외되고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 항상 혼자인 여학생입니다.. 그리고 코넬은 그런 메리앤의 저택에서 청소일을 하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남학생이죠, 물론 이 둘은 공부를 잘합니다.. 코넬은 외모와 운동을 비롯해 모든 것에 뛰어남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잘난 아들입니다.. 메리앤은 가진거라고는 돈과 자신의 성적밖에 없는 누구나 싫어하고 소통하지 못하는 별난 존재입니다.. 그런 메리앤에게 자연스럽게 코넬은 다가옵니다.. 이들은 사랑이라고 느껴지는 가장 근원적인 친밀감으로 서로를 대합니다.. 메리앤은 일반적이진 않죠, 삶과 생각과 존재에 대한 자신만의 틀속에서 조금씩 자신을 찾아가려고 노력합니다.. 그 중심에 코넬이 있죠, 코넬 역시 다르지않습니다.. 모든 면에서 주변에서 인정받고 뛰어난 공부재능을 가졌지만 자기 스스로에 대해 자존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코넬 역시 메리앤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성을 제대로 느끼게 됩니다.. 이런 이끌림은 그들이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순간부터 끊임없이 되풀이됩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의지할 수 있는 존재임에도 이들은 단순한 사랑이라는 개념으로 묶이질 않죠, 자아와 사회적 관계의 혼란속에서 끊임없이 주변의 삶속에서 부침을 겪으면 성장통을 앓아가죠, 학내에서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메리앤을 코넬은 누구보다 잘 알지만 학교에서 그녀의 존재에 대해 스스로 외면합니다.. 또 그러면서 메리앤의 추천으로 그녀와 같은 더블린의 트리니티 대학을 선택하게 되죠, 부침이 심한 고딩시절을 보내고 성인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삶이 그들 앞에 다시금 펼쳐지면서 메리앤의 삶과 코넬의 삶은 또다른 시작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예전같지는 않죠, 모든 것이...


    4. 이 작품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끊임없이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그닥 가독성이 뛰어나지도, 그렇다고 달달한 로맨스가 펼쳐지지도 않는데 말이죠, 이야기의 흐름도 한 챕터를 넘기면 몇달 내지는 몇일이라는 시간을 건너뛰고 또다른 성장의 순간을 마주하게 됩니다.. 남녀의 관계와 그 사랑의 달달함에 대한 감성적 매력을 독자들에게 이끌어내려는 노력을 작가는 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만나고 또 서로를 오판하고 또 의지하고 그럼으로 편안해하고 다시금 불편하게 헤어지고 하면서 이들의 성장을 보여주고자 노력하죠, 어떻게 보면 참 재미없는 아이들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임에도 자꾸만 다음을 궁금하게 합니다.. 이 한쌍의 남녀인 코넬과 메리앤은 흔한 아이들이 아닙니다.. 누구보다 뛰어나고 누구보다 자존감에 대한 상처와 사랑의 치유가 필요한 아이의 상대적 영역에 속하는 인물들이죠, 주변의 시선속에서 이들은 부족함이 없어보이는 객관성을 가졌지만 이 아이들의 영역속에서는 언제나 고통받고 상처받고 힘겨운 삶을 살아가며 성장하는 사랑이라는 전제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꺠우쳐보려고 발악하는 방황하는 별들인게죠, 이 작품에서 눈을 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의 심리와 존재적 성장을 만들어가려는 이들읜 발악하는 젊음의 아픔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이끌어내는 감성은 아주 끈적끈적한 인간의 내면의 혼란과 영혼의 자리매김을 그려내기 때문이죠,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이 남녀의 사랑의 역학적 관계는 마지막까지 그 끈을 놓지 않습니다.. 가장 평범하면서도 가장 비범한 이 시대의 아이들의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답답하고 아프고 갑갑하면서도 행복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평범한 남녀의 사랑이라고 작가는 생각하는 모냥입니다.. 언제나 사랑은 답이 없는게 삶이죠,


    5. 젊기 이전에 우리는 어립니다.. 뭘 하던 서투르기 일쑤죠,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성장하는 어린 친구들에게 자신보다 먼저 타인에 대한 생각이 자리잡게 되면 혼란스럽습니다.. 그러면서 상대와의 관계에 대한 소중함을 착각하거나 오판하거나 무지하게 다가서게 되곤 합니다.. 그렇게 확신아닌 서로에 대한 믿음은 어느순간 혼란과 불편함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사랑이라는 감정과 함께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키는 동안 굳건한 사랑의 의미를 되찾게 되기도 합니다.. 자신이 누구보다 먼저 알게된 사랑이라는 가장 근원적인 감정과 믿음으로 자신이 만난 사람에게서 느끼는 충만과 편안함과 신뢰와 그로 인해 서로에게 있어 가장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찾아내기도 하니까요, 놓아주고 싶다가도 절대 놓치기 싫은 사람이지만 가장 사랑하지만 가장 불편한 존재로서 서로는 성장해나가게 됩니다.. 아무래도 사랑은 인간의 생각보다 더 깊고 넓고 가득한 아량을 지녔으니 충분히 이들의 관계는 좋은 결과가 되길 바라지만 또 모르죠, 세상의 대부분의 사랑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으니 말입니다.. 특히 첫사랑이라는 현실 착오적인 순수사랑의 영역속에서는 말입니다.. 코넬과 메리앤은 첫사랑의 운명을 그들의 삶속에서 어떻게 서로에게 맞춰갈 것인 지에 대해 작가는 가장 서투른 시절의 감성과 그리고 성인이 되고서 그들만의 감정을 넘어선 자아의 주체적 형성이 이 사랑을 아무렇게나 내팽개체는 과정속에서도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사람들에게 존재하는 흔한 사랑의 영속성을 이어나갈지를 고민한 듯 싶습니다.. 참 재미없는 문장이고 내용인데 희안하게 내용과 흐름에 집착하게 되더라구요, 좋은 작가는 뭐가 달라도 다릅디다.. 괜히 맨부커상 후보가 된건 아닌 듯..


    6. 사랑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게 되는 스토리입니다.. 물론 이들의 생각과 갑갑한 서로의 불통적 배려는 참으로 짜증스럽기도 합니다.. 왜 글케 복잡하게 고민하고 서로를 배려한답시고 자신의 입장인냥 합리화시켜 상대방을 오해하게 만들고 또 하고싶은 말도 해야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시간만 흘려보내고 상처인지도 모르고 어린 생각에 상대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말이죠, 이 모든 것은 단순하고 가장 편안한 서로의 신뢰와 소통만으로도 충분히 해결될텐데, 그렇다면 이 세상에 사랑속에서 아픔을 가지는 관계는 다 문제없을텐데,  근데 왜 인간은,,,, 아시다시피 세상의 인간은 자기와 서로와 주변의 관계속에서 대단히 고민스러운 생각으로 사로잡혀 살아가는 존재이니 항상 이러한 사랑은 깨어지기 쉬운 와인잔과 다르지 않습니다.. 시큼달달한 와인 한잔에 서로의 영혼이 녹아내리지만 잠시 한눈팔면 빠사삭하고 깨져버리는 와인잔처럼 말이죠, 조심해서 다루지 않으면 언제 상처가 날 지도 모르는 그런 사랑이 가장 평범한 우리의 이야기속에서 매력적인 와인빛을 내며 유혹하곤 합니다.. 이 작품도 그런 매력이 가득한 작품입니다.. 조금은 서툴고 조금은 혼란스럽고 조금은 자기 위주적인 사랑이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과 편안함과 변치않는 존재에 대한 사랑이 끊임없이 이들이 살아갈 힘을 만들어주는 그런 평범한 우리 주변, 아니 아일랜드의 서양 남녀의 삶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아프지만 즐겁고 슬프지만 행복한 이들의 사랑이야기 한번 경험해보시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습니다.. 언제나 영원한 사랑은 존재하는 거니까요, 나처럼.... 쿨럭...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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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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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상이 어수선하죠, 코로나19라 불리우는 감염성 바이러스가 세계를 마비시켰습니다.. 가장 먼저 발병한 곳으로 알려진 중국의 후베이성의 우한에서부터 몇개월사이에 전세게로 퍼져나가서 수백만명이 감염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디다.. 중국과 가까운 우리나라의 경우 유럽이나 다른 나라들보다 앞서 전염이 심각해졌드랬죠, 그렇다보니 뒤늦게 발병과 감염의 추세가 급격하게 발생하는 나라에 비해서 앞선 판단의 경험을 조금 더 가지고 국내적으로나 국외에서도 도움이 많이 되는 모냥이더군요, 근데 어익후, 이런 와중에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했습니다.. 입원기간동안 재미진 책과 함께해서 나쁘진 않았지만 아픈 아이나 간호하는 어른이나 힘들긴 마찬가지긴했죠, 더군다나 시국이 시국인만큼 감염이나 질병에 대한 예민함이 극도에 다다른 부모들의 입장에서는 상당한 스트레스였긴 합디다.. 비록 제 아이는 커서 간호나 챙기는 것이 입원이긴 하더라도 그렇게 어렵진 않았지만 어린 영유아들의 경우 대다수가 바이러스성 감염이다보니 부모님들이 신경쓰야되는 부분이 많아서 같은 병실을 쓰더라도  눈치도 보이고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렇더군요, 마스크없이 지나다니면 피하기 일쑤고 다인실인 경우에는 칸막이 커텐을 꽉 닫고 지내기도 합디다.. 갑갑하고 힘들긴하겠지만 아이의 건강이 우선인 부모들의 입장에선 당연한 것이겠지요, 밤새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어르고 토닥거려주며 편안하게 잠이 들게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엄마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겁고 힘들 지는 부모가 되어보지않고서는 알 수 없는 거니까요,


    2. 아이들은 바이러스 감염이 잘 일어나죠, 어른도 다르진 않지만 나름 자가 케어가 가능하다보니 어린 아이들의 경우에는 참 힘들죠, 제 아이는 세균성 장염이었는데 일주일이 넘게 힘들어했습니다.. 보통은 고열과 설사나 몸살을 동반하는 바이러스 감염은 항상 가장 많은 질병의 이유이기도 해서 이런 경우에는 감염이나 치료 목적으로 많은 항생제나 해열제를 사용하곤 합니다..집에서 하면 좀체 떨어지지 않는 고열도 병원에서는 잘 관리가 되다보니 빨리 낫는 경우도 있구요, 무엇보다 감염이 타인에게 옮을 가능성을 최소확시킴으로서 저의 가족에게는 가능하면 아이가 아프면 입원이 우선시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보니 십수년동안 아이와 함께 아파하고 낫고 또 아파하고 살아오면서 느낀 점은 세상의 부모들의 헌신은 단순한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죠, 그런 생명과도 같은 아이들인데, 혹여라도 세상이 무심하여 아이를 잃거나 이별하게 된다면 그 부모의 마음은 어떠하겠습니까, 앞선 독후감에서도 끄적거린 내용이기도 하지만 한순간에 생각지도 못한 이별을 당한 수백명의 부모들의 입장은 6년이 아니라 수십년, 아니 자신이 죽는 그순간까지 아이를 그리워하고 그 아픔을 놓지못하리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러한 아픔을 겪는 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려낸 스릴러 소설을 한편 아이의 배를 쓰다듬어가며 즐겁게 읽었습니다.. 딘 쿤츠 할배의 "어둠의 눈"이라는 작품입니다..


    3. 이 작품은 80년대 초반에 집필된 작품입니다.. 오래됐죠, 그리고 이 작품이 요즘 무척 화제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작품속에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전제하에 '우한'이라는 도시의 이름이 명명된 바이러스명이 등장하는거죠, 그것도 40여년전에 집필된 작품속에서 말입니다.. 홍보이자 광고의 목적이 적진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도시와 나라와 지역중에서 '우한'을 꼭 집어서 바이러스명을 정한 딘 쿤츠 할배(그때는 아저씨였겠지만)의 상상적 예측은 제법 소름이 돋게 합니다.. 어떤 이야기인 지 함 살펴 봅시다.. 라스베가스의 무대 기획자 크리스티나 에번스는 1년전 자신의 아이 대니를 교통사고로 잃습니다.. 아이를 잃은 고통과 슬픔속에서도 자신을 잃지않고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하죠, 티나의 재능인 무대기획과 제작은 이제 빛을 발할 때입니다.. 한해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자신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나면 그녀의 인생은 많이 달라집겝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년전 사고로 잃은 대니는 그녀를 여전히 힘들게 합니다.. 밤마다 악몽속에서 대니를 구하지 못하는 티나에게 대니는 평생 아물지 않는 상처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나는 조금씩 상처가 나을 방법을 찾죠, 자신이 일이 우선이고 자신의 삶에 대한 희망을 가집니다.. 그리곤 대니의 방을 정리하려합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대니의 방 보드에 메시지를 적어놓습니다...'죽지 않았어' 공포에 휩싸인 티나는 글씨를 지워버리지만 이튿날 다시 그 메시지는 보드에 적혀 있습니다.. 아이를 잃은 타나에게 누가 이런 잔인한 일을 벌이는 것일까요, 티나는 지금은 이혼한 전남편 마이클을 의심합니다.. 하지만 대니의 방에서 벌어지는 일이 티나에게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었죠, 티나의 집을 청소하는 비비안에게도 청소를 하는 동안 대니의 방이 지진이 난 듯 혼란에 휩싸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일종의 폴터가이스터현상처럼 말이죠, 조금씩 티나에게 이러한 현상의 전조가 닥쳐오기 시작하고 공포에 휩싸인 티나는 대니의 죽음과 관련하여 또다른 진실이 있지 않을까 고민합니다.. 그리고 엘리엇을 만나죠, 자신의 고민을 엘리엇에게 알린 순간,,,,,,,,


    4. 대단히 속도감 넘치는 작품입니다.. 하나의 사건, 말그대로 대니라는 아이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찾아나가는 이야기입죠, 자신의 아이의 죽음이 어떠한 상황에서 발생하고 벌어진 것인 지, 그리고 이 사건이 담고 있는 음모는 무엇인 지를 알아나가는 스릴러소설입니다.. 말그대로 초창기의 딘 쿤츠 특유의 초자연적이면서 공상과학적인 상상력이 가득한 사회음모론적 스릴러소설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단권이고 아주 깔끔하게 서사를 이어나가면서 한달음에 끝을 맺는 가독성과 흡입력이 뛰어난 작품이라꼬 생각합니다.. 이런저런 군더더기가 없이 주인공과 이를 추적하고 파괴하려드는 적과의 상황을 매우 흥미로운 긴장감으로 그려내고 있죠, 흔한 음모론이 가득한 아메리칸스타일의 스릴러영화 한편 즐기신다는 기분으로 작품을 대하시면 실망스럽진 않을겝니다.. 게다가 40여년전 작품임에도 전혀 거부감이나 꼰대같은 촌시러움이 없는 작품이올시다.. 앞서 말씀드린 '우한'도 등장하고 말이죠, 흔한 미국적으로다가 훅훅 넘기는 듯한 단순함과 함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영역에서는 딘 쿤츠의 단행본만한 작품들이 드물죠, 사실 이 작품은 인물이나 캐릭터에 대한 꼼꼼함은 찾기 힘듭니다.. 상횡과 인물들이 만들어가고 찾아가는 진실찾기에 대한 상황적 쫀득함이 가득하죠, 입체적인 캐릭터나 인물적 구도는 이 작품에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전형적인 스릴러구도의 우선순위인 아이를 둔 부모의 심리와 그 긴박성을 중심으로 진실을 찾는 감성만으로도 충분히 스릴감을 즐기기에 만족스럽습니다.. 이런 점이 킹쌤과 쿤츠 할배의 큰 차이중에 하나라꼬 전 봅니다.. 둘 다 대중적이긴 한데 인물에 집착하는 면이 강한 킹쌤에 비해 쿤츠 할배는 상황이나 설정에 큰 힘을 주는 듯 싶더군요.. 아님 말고,


    5. 그래서 딘 쿤츠의 소설은 매우 속도감이 넘칩니다.. 어떤 작품을 읽어도 속도감 하나는 어느 스릴러소설에 비해서 뒤지지를 않습니다.. 게다가 가독성이 뛰어나죠, 전형적이고 흔한 설정과 소재를 다룬 초자연적 스타일의 서스펜스스릴러라고 명한 쿤츠표 작품들이 너무 많아서 작가 스스로 아류작을 생산하는 듯한 느낌도 들 정도입니다.. 이 작품이 저 작품같고 말이죠, 쿤츠 할배가 엄청 다작하시거덩요, 엄청납니다.. 한해에 네댓 작품을 출시하시던 분이시라(게이고슨생보다 더 대단한 듯),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단행본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런 단행본은 급격하게 흘러가는 속도감에 비해 후반부의 허탈한 끝맺음이 많기도 하구요, 게다가 상황이나 서사에 대중적 재미를 두기 때문에 인물과 묘사의 섬세함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듭디다.. 그렇기에 독후감으로서의 머리속 남음이 적죠, 금새 잊어먹기 일쑤입니다.. 이번 작품도 사실 다르지않습니다.. 매우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시작점부터 중간의 상황적 쫀득함이 독자들의 눈을 놓아주지 않지만 후반부의 마지막에 이를때까지 설마 이렇게 끝나면 너무 아쉬운데라는 불안감을 가지게 되죠, 깔끔하긴 한 마무리지만 독자로서 그토록 쫀득한 긴장감을 한순간에 툭하니 갈무리하고 마는 작가의 의도에 짜증이 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작품에 이어지는 연작이 있는 지는 잘 모르겠으나 독자로서 이 작품만으로 끝내기에는 아쉬움이 적지 않습니다.. 사실 너무 쫓고 쫓기는 상황이 오랫동안 이어졌기 때문에 한순간의 해결적 모드는 힘빠지는 결말이기도 하죠, 1권으로 끝내야된다는 그런 강박관념이 있었나, 왜 그랬어요, 할배


    6. 이 작품은 서서히 달아오르는 그런 미스터리스릴러소설과는 좀 다르게 시작점부터 달려나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그 속도감은 늦추질 않죠, 그리곤 순식간에 끝을 맺습니다.. 뭔가 청룡열차(옛날 사람 티남)타고 훅하니 한순간에 이거머지,하고 끝나는 느낌과 그렇게 다르지않은 감상이라고 봐도 좋을듯 합니다.. 그래서 아쉬움과 더더더더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작품입니다.. 질주하는 순간이 느무 짧게 느껴지니까요, 그러니 재미있고 흥미롭고 즐거운 대중소설이라는 점은 말그대로 팩트입니다.. 중간중간 더 요구하고싶은 요구사항과 인물에 대한 꼼꼼시러움을 원할지도 모르지만 그냥 이런 상황에서 뭘 더 기대하고 원해, 그냥 차 뚜껑 열고 달려가는 바람날리는 속도감에 만족해...주변 정경이나 경치는 찬찬히 가는 버스나 기차타고 만끽하면 충분하니까라는 생각으로다가 즐기시면 되시지 않을까 싶네요, 딘 쿤츠의 "어둠의 눈"은 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이야기이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이고 한 여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는 딘 쿤츠가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추구한 가족애와 인간애와 주체적 여성과 인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지지리도 못나고 비겁한 남성적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아쉽지만 즐겁고 허무하지만 매력적인 스릴러소설입니다.. 아직은 밖이 만만치않은 시간입니다.. 이럴때 집에서 즐기는 스릴러소설로서 이만한 작품도 없지 않을까싶은데.. 싫음 말라고 해따이,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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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로드 - 사라진 소녀들
스티나 약손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음서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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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른들이 그럽디다.. 정말 징하게도 우려먹는다고(사골도 아니고 뭘 우려먹는다는건지), 벌써 6년이나 지났는데 허구헌 날 지나간 일을 부여잡고 허송세월만 보내고 나라 탓만 하고 있다고 말이죠, 이게 다 지금 정권에서 만들어놓은 프레임이고 언론 통제로 쟤네들이 정신 못차리고 끊임없이 이 시기만되면 니네 잘못으로 아이들이 어이없는 죽음을 당했으니 책임지라는둥, 잘못한 자들을 처벌하라는 둥 이제는 좀 놓아주고 넘어가도 될 법한데 너무 징하게 우려먹고 있다는 것이죠, 심지어는 이런 이야기를 이번 선거 전후로 도대체 몇번을 들었는 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정말 징할 정도로 끊임없이 잘못된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왜 제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씀을 드리느냐, 제가 전에도 몇번 말씀을 드린 적이 있겠지만 이 분들에게는 저들에게 닥친 지옥같은 고통과 이별의 아픔이 좀체 공감되지 않는 것이죠, 단순하게 멀리서 대중적인 관심만으로 그들이 당한 상황에 대한 사회적 공감만 있을 뿐이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내면과 가슴깊은 공감까지는 그들에게는 사치였을겝니다.. 그리고 그렇지 않더라도 1년, 2년이라는 시간들이 흘러가면서 자신과 무관한 고통은 망각하기 마련이고 망각은 언제나 인간의 제1순위의 자기보호의 본능입죠, 누구나에게 그렇습니다.. 탓할 수는 없는 일이죠, 허나 그렇다손 치더라도, 자신과는 상관없는 세상의 누군가의 아픔을 이제는 잊었다치더라도 그들을 향해, 그분들의 아픔을 바라보며 시간이 흘렀는데, 세월이 지났는데,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세상과 사회와 나라를 탓하고 책임을 지라고 억지부리는 일을 하지말아야된다는 그따우 빌어먹을 망발은 하지말아야죠, 절대로,


    2. 나라고 정권이고 나발이고 뭔 상관입니까, 내아이, 내가족이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 판에 당연히 책임을 져야될 필요가 있는 사람을 죄값을 받고 그에 상응하는 벌이 주어져야하지만 누가 제대로 이 상황에 대한 처벌이나 탓에 대한 어떠한 책임이라도 진 사람이 있습니까, 대통령이요, 그 사람이 지금 이 문제로 처벌을 받았나요, 어느 누가 우리의 아이들 수백명의 삶의 무게를 감당하는 그에 준하는 처벌을 받았나요, 세상은 죽음보다 더한 이별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지 못한 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부모와 가족에게 그 처벌과 상처와 고통의 무게를 덧씌운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는 1일이든, 10년이든, 삶이 남은 모든 매순간의 시간들이 지옥이고 고통이고 아픔이고 눈물이지 않을까요, 그들에게 시간은 의미조차 없는 것이겠죠, 징하게 우려먹는 것이 아니라 징하게 못잊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명색이 사회의 지도자로서, 나라를 이끄는 정치인으로서, 무엇보다 국민을 대변하는 공감받은 대리인들로서 그들이 끄집어내는 말 하나에도 의미를 두어야할 것이며 이 세상의 모든 자기 만족과 자기 위주와 보수와 기득권의 표상인 사회의 주변인들의 삶에서도 그따우 말같잖은 소리로 우려먹는다는 둥, 그만할때도 되지않았냐는둥의 토로는 하지말아야하는 거죠, 생각이야 누구나 할 수 있겠지만 그게 말로 튀어나오면 누군가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기 마련이니까요, 시쳇말로 자기 새끼, 자기 가족이 아니니 함부로 말할 수도 있을거라는 누군가의 한섞인 분노가 어지간히도 공분되는 며칠간의 시간동안 하필이면 읽은 작품이 또 아이를 잃은 부모의 절절한 심리를 그려낸 북유럽 스웨덴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작품이군요, 스티나 약손의 "실버로드" 부제가 사라진 소녀들입니다..


    3. 렐레의 딸 리나는 3년전 아침 자신이 직접 내려준 버스 정류장에서 단 몇분만에 실종됩니다.. 그리곤 현재까지 찾지 못한 체 미결로 남겨진 체 여전히 리나의 생사를 확인하고 그녀를 찾기 위해 렐레는 변함없이 매일 실버로드의 길을 나섭니다.. 그동안 렐레는 자신의 삶과 모든 것을 리나를 찾기위해 바치죠, 아내는 끝까지 리나를 지키지 못한 렐레를 탓하고 경찰들은 오히려 마지막 리나를 내려준 렐레를 의심하고 주변은 모든 사람들은 리나의 실종에 단서를 제공하지 못하죠, 끝없은 자괴감과 죄책감과 책임감에 고통받으며 죽음보다 더한 삶의 나락속에서 렐레는 하루하루 죽어가는 자신의 삶의 애착을 리나의 수색에 쏟아붓고 있는 거죠, 그렇게 렐레는 축축한 북스웨덴의 노를랜드의 실버로드의 숲과 습지속의 폐가와 어두움속에서 자신의 딸의 흔적을 찾아나섭니다.. 그리고 메야가 등장합니다.. 메야는 스톡홀름의 남쪽지방에서 북으로 올라온 어머니와 함께 실버로드의 축축한 습지에서 살아가는 한 남성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미혼모인 자신의 엄마의 정신적 문제를 관리하는 메야는 아직 열일곱살의 어린 소녀이죠, 음침한 남자 토르비요른과 살게 된 메야는 얼른 성인이 되어 그곳을 떠나고 싶어하죠, 그러던 어느날 숲속에서 자신 또래의 한 무리의 남자 아이들을 만납니다.. 칼 요한을 비롯한 남자 형제들은 메야를 친구로 받아들이게 되죠, 이들은 예란이라는 맏형과 페르라는 둘쨰, 그리고 칼 요한의 삼형제로서 숲의 외진 곳에서 현대 문물을 거부하고 자기들끼리만 살아가는 가족 공동체였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관심을 가진 메야는 칼 요한에게 빠져들고 그들과 가까워 집니다.. 이렇게 렐레와 메야는 동일한 시간속에서 실버로드의 삶속에서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가지만 결국 이들에게는,,,,,,


    4. 실종된 딸의 생사를 찾아 나서는 한 아버지의 처절한 슬픔과 분노와 고통을 절절히 그려낸 심리스릴러라고 보셔도 무방하겠군요, 3년동안 어떠한 목격자도 단서도 없는 상황에서 홀로 딸을 찾기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아버지의 모습속에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심지어 아내조차도) 그의 행동과 삶을 동정하고 이제는,,, 이라고 이야기를 하죠, 하지만 리나의 생사조차 알 지 못하는 렐레에게 있어서 삶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지 조차 모른거죠, 그는 자신의 삶과 리나의 삶을 동일시하는 듯 합니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바라본 리나의 모습이 그대로 그의 모든 것을 지배하고 그녀의 숨소리를 찾기 위해 끝없이 실버로드를 달려가죠, 하지만 그의 주변과 사람들은 리나가 아닌 그를 바라봅니다.. 그들의 눈과 생각속에서 어느듯 리나는 망각이라는 본능적 치유속에서 차츰 스며들게 되는거지요, 그래야지만 그들이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렐레는 그렇게 살아갈 이유가 없어보입니다.. 리나를 확인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하지만 소설은 렐레의 고통을 놓아줄 생각이 없나봐요, 끊임없이 렐레를 몰아부치고 사건을 끌여들여서 혼란에 이르게 합니다.. 새로운 실종사건이 발생하고 3년전의 리나와 비슷한 실종으로 한나라는 아이가 사라집니다..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북스웨덴의 노를랜드의 실버로드라는 공간속에서 펼쳐지는 축축한 습지와 진흙과 모기때와 함께 여름의 백야와 끊임없이 내리는 빗줄기속에서 내뿜는 고통의 입김이 느껴지는 감성이 매우 감각적입니다.. 렐레의 심리를 통해 보여지는 감성적 심리가 이러한 공간적 이미지와 잘 어울리는거죠,


    5. 이 작품은 렐레와 메야라는 캐릭터를 교차시키며 진행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렐레는 딸의 행방을 찾고 아버지가 없는 메야는 자신의 삶을 고민하죠, 그리고 이들은 결국 그들의 길에서 마주칩니다.. 좋은 구성입니다.. 렐레는 끊임없이 슬퍼하고 고통받고 아픔속에서 리나의 생사를 찾기위해 자신을 몰아가죠, 메야는 끊임없이 자신의 주변의 삶속에서 자신을 찾기위해 자신을 몰아가죠, 그렇게 이들은 각자의 삶에 대한 목적으로 삶을 몰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바라보는 그들의 삶의 끝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느끼게 해줄 가족의 위안과 평화와 안락이라는 것이죠, 렐레는 리나를 찾음으로서, 메야는 자신이 받지못한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신이 삶의 주체로서 살아감으로서 기나긴 고난의 아픔이 사라질거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시작점에서 마지막점까지 이러한 두 인물의 심리와 혼란을 고심하면서 놓질 않습니다.. 그렇다보니 소설은 두 인물의 이야기를 한데 뭉쳐가는데에 대한 곤란함을 느끼게 되죠, 사실 메야의 스토리는 소설의 전반적인 흐름속에서 겉도는 느낌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서사의 중심인 사라진 소녀들에 대한 사건의 영역과 미스터리조차 이들의 심리적 불안함과 의되속에서 묻혀버리기 십상입니다.. 2부에 들어서 사건의 중심으로 들어서긴 하지만 그조차도 크게 반전의 방식이나 의도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이 작품의 미스터리적 측면은 조금 많이 아쉽습니다.. 게다가 이야기를 진행함에 있어서 독자로서 설마하고 그렇게 진행은 하지 말았으면 하는 방식의 해결점이 그대로 그려지는 측면과 함께 마무리의 허전함은 전반적인 이 작품의 감성적 분노에 대한 답으로서의 부족함이 있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물론 제가 렐레라는 인물을 통해 느꼈던 절절함과는 별개로 말이죠,


    6. 이 작품이 보여주고자한 미스터리한 스릴러의 감성과 인물의 심리적 내면을 그려내는 끈끈함을 아주 매력적입니다.. 자신의 아이를 잃은 한 아버지의 절절한 심리적 극단성을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대중적이고 일반적인 공감의 형태로 받아들였습니다.. 누군가는 쉽게 포기하고 치유하게 될 지는 몰라도 가장 아픈 당사자로서 부모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그려낸 작품인 듯 싶어서요, 드러내지않고 보여지진 않지만 자신의 아이를 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 렐레의 행동과 마음과 모든 아픔과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자신의 어린시절의 렐레의 삶과 자신이 받은 기적같은 하늘의 선물인 아이를 대하는 그의 삶의 이유를 알게됩니다.. 유일한 삶의 목적이라고 단정킨 어렵겠지만 렐레에게는 자신과 다름아닌 아이의 생명인 것이지요, 아이의 실종이 생과 사의 답을 주지 않으니 그로서는 자신이 살아갈 목적이 리나라는 아이의 행방을 찾아서 살려내는 것인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살아갈 명분과 이유가 없을테니까요, 세상의 부모들이 모두 그러하진 않겠지만 대다수의 부모는 그렇게 자식을 죽는 그순간까지 놓질 않습니다.. 행동하지 않을 뿐이지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잊어야하니, 그만 울궈먹어라니, 이제는 놓아주라느니, 더이상은 끄집어내지말라느니, 자식 목숨값으로 산 생명이라도 좀 편안하길 바란다느니, 이런 개쓰레기같은 망발은 그만 좀 하면 어때,  여하튼 자신의 아이를 찾는 부모의 절절한 심리와 내면을 이렇게 멋드러지게 그려내는 작품, 나쁘지 않습니다.. 미스터리의 흐름이 조금 빨랐으면 더 좋았겠고 교차된 이야기가 서로 호기심을 조금 더 이끌어내었으면 더더 좋았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재미난 제법 좋았던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절절한 공감도 마찬가지고.. 땡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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