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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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살고 있는 서울 집으로 이사오고 나서 얼마 안 지나였을 때다.

TV 채널을 돌리다 문득 눈에 띈 홈쇼핑 채널의 요란한 방송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0권과 책장까지 준다는 솔깃한 쇼 호스트의 멘트에 혹해서 덜컥 구입

200권 중 얼마나 읽었나 되돌아보니 별로 소득이 없다.

그 전에 이미 읽었던 책 몇 권 제외하고, 순서 상관없이

그때 그때 내 눈에 들어오는 녀석들 위주로 읽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 읽기 편하게 보이는 얇은 두께의 책들이 선택

이제는 분량이 제법 되는 것 아니면 제법 묵직한- 무게가 아니라 주제나 내용,

작가의 성향이 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책들만 남았다.

 

서머셋 모옴이 쓴 이 책 '인생의 베일'은 책 분량(330페이지)때문이 아니라

예전에 읽었던 모옴의 소설이 크게 와 닿지 않아서 뒤로 밀렸던 것이다.

와 닿지 않았다는 건 지나치게 통속적이고 가볍다고 느꼈었기 때문이다.

 

올해는 세계문학전집을 천천히 꾸준히 읽기로 하자고 맘 먹고 2014년 두 번째

독서 목록으로 오르게 되었다.

 

'인생의 베일'은 1920년대 영국과 중국을 배경으로 '키티'라는 젊은 여성이

결혼과 외도, 배신과 아픔, 남편과 가족의 죽음 등을 겪으며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줄거리 요약 ----

키티는 전통적인 가치관 아래에서 나이에 쫓겨 사랑하지 않는 세균학자 '월터'의 청혼을

거절하지 못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

월터의 근무지인 홍콩에서 건조한 나날을 보내던 키티는 파티에서 세련된 외교관 '찰스'를

만나게 되고 둘은 각자 가정이 있음에도 밀애를 즐기게 된다.

이전에 한번도 사랑의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는 키티는 찰스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데,

결국 남편인 월터가 둘의 사이를 알게 된다.

키티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월터는 배신감에 절망하고, 자진해서 콜레라가 창궐한 죽음의 도시

메이탄푸 행을 자원한다.

이제 월터가 떠나면 자유롭게 찰스를 만나게 되리라 흥분한 키티에게 월터는 함께 갈 것을 강요한다. 그리고 키티에게 또 다른 옵션을 제안하는데, 만약 찰스가 그의 부인과 헤어지고 일주일안에 키티와 결혼한다면 이혼을 해주겠다는...

키티는 찰스가 당연히 그렇게 할 거라고 믿고 그를 찾아가지만, 찰스는 그녀가 월터와 메이탄푸로 떠나기를 바란다. 자신의 아내와 이혼할 생각은 없으며 더더욱 키티와 결혼할 의사는 전혀 없는 찰스. 결국 키티는 찰스의 배신으로 월터와 함께 메이탄푸로 향한다.

둘의 사이는 냉정과 침묵으로 일관되고, 월터는 콜레라를 잡기 위해 병원 일에만 매진하고,

키티는 워딩턴과 우정을 나누며 수녀원 사람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메이탄푸의 끔찍한 실상을

목격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수녀원에서 자원 봉사를 하며 서서히 마음의 상처와 배신의 아픔을 치유해가는 키티.

그러다 자신이 임신했음을 알게 된다. 여전히 월터에 대한 애정은 없지만,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고 용서와 화해를 원하는데.

반면, 월터는 더더욱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키티에게 마음을 닫아버리고

키티를 외면한다.

콜레라에 감염된 월터에게 키티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지만 결국 월터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홀로 서기를 위해 키티는 영국으로 가기 위해 다시 홍콩으로 돌아온다.

홍콩에서 어쩔 수 없이 재회한 찰스,

인생의 쓰라린 맛을 알고 깊은 성찰을 통해 사람을 보게 된 키티는 찰스의 속물근성과

어리석음밖에 보이질 않지만, 찰스의 유혹에 결국 넘어가버린 자신을 자책한다.

한시라도 빨리 홍콩을 떠나기로 결심하는 키티.

부모님과 가족이 있는 영국으로 가는 도중 결국 어머니의 죽음을 접하고

늘 자식과 가정을 부양하는 존재로만 여겼던 아버지와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아버지와 딸은 처음으로 진심어린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키티는 이제 더이상 온실속의 화초처럼 아버지나 남편에게 기대어 돌봄을 받는 존재가

아니다. 이제 그녀는 희망과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늙은 아버지를 보살피고 함께 살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고,

곧 태어날 자시의 아이가 딸이기를 희망한다고 말한다. 자신에게는 기회조차 없었지만,

그녀의 딸에게는 자유롭고 자기 발로 당당히 설 수 있도록 키우겠다고 말한다.

키티는 아버지와 함께, 곧 태어날 자신의 아이와 함께

변화된 모습으로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아버지의 새 직장이 있는 섬으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스스로의 주인으로서 독립된 인격체로 자유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게으름뱅이의 소감

1920년대라면 유럽 또한 전통적인 가치관 아래 여성의 삶이란 남편에게 예속되는 아내의

역할 정도만 있었을 것이리라. 서머셋 모옴은 키티 페인이라는 여성을 통해 나약하고 편협한

인생관에 틀어 박혀 있던 평범한 여성이 잘못된 사랑과 그에 따른 배신의 상처에 절망하다가

개보다 못한 죽음을 당하는 전염병의 참상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게 살았는가를 스스로 

깨달아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내고 있다.

분량은 제법 되는 소설이지만, 모옴 특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전개 방식으로 인해 책장을

중간에 놓기는 어렵다.  

 

중국의 가상 도시 메이탄푸, 그곳이 어디더라도 장대한 중국의 자연 풍경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절망하던 키티는 죽음의 땅으로 들어섰다고 생각한 메이탄푸에서 오히려

상처를 치유받게 된다. 또한 종교는 다르지만 그곳에서 인류애를 실천하는 프랑스 수녀들의

헌신적인 활동을 보면서 감화를 받게 되면서 자신뿐만 아니라 월터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심지어 찰스의 상황마저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대자연은 그녀를 정신적으로 성장시켜주고

죽음의 공포는 그녀를 강하게 만들어준 것이다.

 

키티가 이렇게 정신적으로 성장해 가는 반면, 월터는 그 반대로 죽음을 향해 간다는게

대조적이다. 세균학자이면서 콜레라에 감염되었다는 건 한편으로는 스스로 감염을

택한 건 아닌지 하는 의심이 들게 한다.

- 워딩턴의 말에서도 이러한 느낌이 들도록 작가가 의도적으로 설정해 놓은건 아닌지?-

"하지만 난 도대체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 외과의 말이, 그가 실수로 감염된 것이 아니라면

그가 스스로를 실험 대상으로 삼았을 수도 있다고 하는군요."

 

자존심 강하고 진심으로 키티를 사랑했던 월터는 그 사랑을 배신한 키티를 용서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런 사랑의 아픔을 극복하고 용서로 이끌어내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나서, 웹 검색을 해보니 이 책을 원작으로 한 '페인티드 베일'이라는

영화가 제작된 것을 알았다.

 

간단히 서치한 영화의 결과는 소설과는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영화에서도 월터는 결국 죽음을 맞게 되지만,

위 영화 포스터의 카피에서 보듯이-엇갈린 운명끝에 찾은 영원한 사랑-

영화에서는 키티가 월터를 사랑하게 되는 걸로 끝나면서 로맨스 영화로

전락시켜버린 느낌까지 든다.

- 물론, 영화를 직접 보지 못한 게으름뱅이의 성급한 판단일 수도 있다.

인터넷 TV로라도 꼭 볼 생각이다. 원작과 영화의 차이를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 -

이 소설을 읽으면 결단코 영원한 사랑이라는 카피가 나올 순 없다.

오히려 '상처받고 절망한 인간에 대한 용서와 화해를 찾아가는 이야기' 정도가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던 메이탄푸의 자연 풍광이 영화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 하는 건 즐거운 기다림으로 남을 것 같다.

 

책 속에서...

 

1. "알겠지만, 평화는 일이나 쾌락, 이 세상이나 수녀원이 아닌 자신의 영혼 속에서만

    찾을 수 있답니다."

   키티는 움찔했지만 원장 수녀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P. 190

  ☞ 키티가 수녀원 일을 돕기로 하자, 원장 수녀의 말. 앞으로 키티가 자신의 영혼속에서

    평화를 찾을 거라는 걸 알려주는 듯한....

2. "난 뭔가를 찾고 있지만 그게 뭔지 잘 몰라요. 하지만 그것을 아는 건 분명히 내게 무척

    중요해요. 그리고 내가 그걸 알아내면 모든 게 달라질 거예요........"

    (중략)

   "그걸 알고 있나요?

    그가 미소를 짓더니 어깨를 으쓱 올렸다.

    "도(). 우리들 중 누구는 아편에서 그 '길'을 찾기도 하고 누구는 신에게서 찾고

     누구는 위스키에서, 누구는 사랑에서 그걸 찾죠. 모두 같은 길이면서도 아무

     곳으로도 통하지 않아요."  ----p.234~235

    ☞ 워딩턴의 애인 만주족 귀족 여인을 만난 후 키티는 뭔가를 찾는다고 말하고,

      워딩턴은 키티에게 '도'에 대해 말한다. 여기서 서머셋 모옴은 동양의 '도'사상을

      언급해서, 누구나 삶을 살아가지만 각자의 길, 각자의 삶의 방향이 다름을

      말한다. 만주족 여인은 아편에서, 수녀들은 신에게서, 워딩턴 자신은 위스키에서

      그리고 키티는 사랑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다는 걸....

3. "마음을 얻는 방법은 딱 하나입니다. 자신이 사랑을 주고 싶은 대상처럼 자신을 만들면

    되지요"   ---p.244

4. "그것은 '길'과 '길을 가는 자'입니다. 그것은 모든 존재가 걸어가는 영원한 길이지만,

    어떤 존재도 그것을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것 자체가 존재이니까요. 그것은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것 자체가 존재이니까요. 그것은 만물과 무()이지요. 그것으로부터 모든

    자라나고, 모든 것들이 그것을 따르며, 마침내 그것으로 모든 것들이 돌아갑니다......

     (중략)----------  ---p.268 

   ☞ 키티에게 '도'에 대해 설명하는 워딩턴

5. "죽은 건 개였다.' 그가 무슨 뜻에서 그런 말을 했을까요? 그게 뭐죠?"

   "그건 <골드스미스 애가>의 마지막 구절입니다."  ----p.269

   ☞ 월터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키티에게 했던 말의 의미를 묻는 키티. 18세기 영국 작가

      올리버 골드스미스의 시 <미친 개의 죽음에 관한 애가>. 어떤 마을에 사는 남자가 개에

      물리자 사람들이 미친 개에 물린 남자가 죽을 거라고 법석을 떨지만 남자는 상처가 낫고

      정작 개가 죽었다는 내용이다. 키티는 용서를 구했지만 끝내 용서할 수 없었던 자신이

      콜레라(시 속의 남자)를 선택하고(물었고)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는 뜻일까? 아니면

      키티가 스스로 치유되어 가는 반면, 그렇지 못한 자신의 상황을 개에 비유한 걸까?

6. 역병의 도시는 그녀가 탈출한 감옥이었다. (중략) 자유! 그게 바로 그녀의 가슴속에서

   울려퍼지는 생각이었고, 비록 미래는 아주 희미했지만 아침 햇살이 드리운 안개 낀

   강물처럼 다채롭게 빛났다. 자유! 답답한 속박으로부터의 자유일뿐 아니라 그녀를

   짓눌렀던 애증 관계로부터의 자유였다. 자유, 위협적인 죽음으로부터의 자유, 그녀를

   땅으로 끌어내렸던 사랑으로부터의 자유, 모든 정신적 속박으로부터의 자유, 유체 이탈된

   한 영혼의 자유, 그리고 자유, 용기. 무슨 일이 생기든 개의치 않는 씩씩함이 그녀와

   함께헸다.   ---p. 264

  ☞ 메이탄푸에서 돌아오면서....

7. "안그래요. 전 희망과 용기가 있어요."

   과거는 끝났다. 죽은 자는 죽은 채로 묻어 두자. 너무 무정한 걸까? 그녀는 온 마음을

   다해 자신이 동정심과 인간애를 배웠기를 바랐다. 어떤 미래가 그녀의 몫으로 준비

   되었는지 모르지만 어떤 것이 닥쳐오든 밝고 낙천적인 기백으로 그것을 받아들일 힘이

   자신의 내부에 자리잡고 있음을 느꼈다.  (중략) 모든 인간의 번뇌가 하찮게

   쪼그라들었던 그때, 태양이 안개를 헤치며 떠올랐고 구불구불한 길이 논 평원 사이를

   뚫고 작은 강을 가로질러서 시야가 닿는 곳까지 쭉 펼쳐진 장면이 그녀의 눈에 선했다.

   굽이치는 자연을 뚫고 지나간 그 길은 그들이 가야할 길이었다. 그녀가 저지른 잘못과

   어리석인 짓들과 그녀가 겪은 불행이 아마도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제

   희미하나마 가늠할 수 있는 그녀 앞에 놓인 그 길을 따라간다면, 친절하고 익살맞은

   늙은 워딩턴이 아무 곳에도 이르지 않는다고 말하던 길이 아니라 수녀원의 친애하는

   수녀들이 너무나 겸허히 따랐던 길, 평화로 이어지는 그 길을 간다면 말이다.

 

키티는 아버지에게 희망과 용기를 역설하며, 자신앞에 놓인 길을 당당히 씩씩하게 걸어가리라.

 

맺으면서....

 

나는 소설속에서 나약한 여성상보다는 늘 강인한 여성상을 동경해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속 여성이 '제인 에어'인 것처럼. 보잘 것 없고 나약하기 그지 없어 보이는 존재지만

역경과 아픔을 이겨내고 운명에 굴하지 않고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선택하는 여성들. 그들이 가장 아름다운 여성이 아닐까 싶다. 나도... 그들을 닮고 싶다.

 

여성 작가가 아니지만 키티의 섬세한 내면의 갈등과 심리를 잘 묘사한 작품

이라는 느낌. 오지에서 만난 늙은 워딩턴은 비록 영국인지만, 동양적 사상(도와 무위)을

전파하는 도인의 이미지다. 동시에 작가인 서머셋 모옴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

 

2014.1.11 by 책 읽는 게으름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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