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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거리는 고요
박범신 지음 / 파람북 / 2023년 3월
평점 :
문학에 대한 사랑과 갈망도 전혀 줄지 않는다. 머리가 희어지는 속도보다 가슴이 더 빠르게 붉어지고 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할까. 가속적으로 늘어나는 흰 머리가 불변의 청춘으로 회귀하고 있는 속도를 드러내는 역설적인 표상일 수 있다는 걸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건 쉽지 않다. p.185~186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여름의 잔해>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박범신 작가, 그는 <토끼와 잠수함> <흰 소가 끄는 수레> 등의 소설집, <죽음보다 깊은 잠> <불의 나라> <은교> 등의 장편소설, <나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다> <힐링>등의 산문집 등 정말 많은 책을 출간하고 수많은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입니다.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펴낸 작가이자, 25편 이상이 드라마나 영화, 연극으로 제작되어 다양한 징르에까지 영향을 미친 작가이기도 합니다.
2023년 등단 50주년을 맞아 두 권의 산문집 <두근거리는 고요>와 <순례>를 동시에 출간했는데요. <두근거리는 고요>는 "신문이나 잡지, 팬클럽 '와사등' 홈페이지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발표한 글들을 묶은 산문집으로 소소한 일상, 문학에 대한 갈망, 자본주의에 잠식당한 현대사회의 불평등구조와 부조리를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1장 '홀로 가득 차고 따뜻이 비어있는 집 - 와초재 이야기', 2장 '나는 본디 이야기하는 바람이었던 거다 - 문학 이야기', 3장 '머리가 희어질수록 붉어지는 가슴 - 사랑이야기', 4장 '함께 걷되 혼자 걷고, 혼자 걷되 함께 걷는다 - 세상 이야기'까지 모두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든 연애는 필연적으로 '일상화'의 과정을 겪는다. (중략) 결혼을 통해 사랑을 지킨다고 생각하는 건 어떤 의미에선 착각에 불과하다. '연애'는 나날이 조금씩 까먹고 그 자리에 '우의'를 더께로 쌓는 것이 결혼생활일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꼭 쓸쓸해할 일만은 아니다. '연애'란 고도의 생물학적 긴장 상태일 터, 만약 계속 뜨거운 연예를 지속해야 한다면 일찍 죽게 될 게 확실하다. 연애의 '일상화'는 그러므로 우리를 오래 살게 만든다. 지혜로운 자는 오래 산다고 하지 않던가. '연애'를 '우의'로 바꿔 가는 걸 '지혜'라고 불러도 좋은 이유가 거기 있다. p.15
"홀로 가득 차고 따뜻이 비어있는 집", 논산 글방 '와초재' 이야기는 아내와 어머니 그리고 와초재를 찾아온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전업주부로 43년 동안 가족을 위해 헌신한 아내의 삶, 예쁜 나뭇잎을 주워 창호지에 덧붙이던 날이 일 년에 꼭 한번은 환한 표정을 짓는 날이었다는 어머니의 삶, 아내를 잃고 나서야 아내의 자리가 얼마나 큰지를 깨달았다는 한 남자의 삶 등등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로 인해 "나의 삶이 훨씬 더 향기로워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생을 이해하는 깊이가 나이순이 아니듯, 삶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 역시 그렇다. 어떤 이는 늙었어도 고슴도치처럼 여전히 가시를 외부로 뻗고 있고, 어떤 이는 젊었어도 가시를 제 몸 속에 쟁여 들키지 않는 사람도 있다. 또한 젊든 늙든 가시가 저 자신을 겨눈 자학적인 타입의 사람들도 늘 있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가시를 외부로 뻗치고 있는 것이 얼핏 용감하게 뵐지도 모르나 이는 삶에서 가장 하수이고, 가시를 저 자신에게 겨누는 태도는 스스로를 괴롭히니 행복해지기 어려울 뿐이며, 가시를 가지런히 내장해둔 채 가시 없는 선인장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삶과 세상을 대할 수만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삶에서 가장 상수라 할 것이라는 점이다. p. 84~85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의 전략적 도구"라 말하는 선인장의 가시, "고통, 인내, 상처, 죽음"과 같은 낱말이 떠오른다는 선인장의 가시, 선인장을 삶의 태도에 비유한 저자는 자신은 "어떤 문제가 생기면 늘 먼저 나 자신의 과오를 성찰하고 탓하는 자학형"이었다 말하는데요. 꿈오리 또한 지금껏 그런 삶을 살아왔지만, 요즘의 꿈오리는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외부로 뻗고 있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몇 십 년의 세월이 더 지나고 나면 "가시를 내장해 둔 채 가시 없는 선인장처럼 담담한 표정으로 삶과 세상"을 대할 수 있게 될까요?
오직 사람만이 효용성이 없는 추상의 가치를 이해하고 속 깊이 품는다. 영원성이 그러하고 사랑이, 신이, 행복이 그러하다. 우리 모두가 그리워하지만 기실 이것들은 손으로 만져본 적도 없고 눈으로 본 적도 없는 가치이다. 영원이든 신이든 행복이든, 따져보면 모든 게 사랑이라는 이름의 길로 통합된다. 그래서 나는 요즘 늘 이렇게 말하고 다닌다.
"사랑만이 가장 큰 권력이다!" p.258
"더 큰 아파트 더 빨리 달리는 자동차를 갖고 싶은 세속의 욕망, 불멸, 완전한 사랑, 신과 가까워지려는 초월적 욕망", 저자는 사람에겐 두 가지 층위의 욕망이 있다며, "욕망으로 쌓은 생의 기억들을 하나씩 하나씩 지우면서 가다보면 온몸이 나뭇잎처럼 가벼워질 것"이라 말합니다. "자본주의적 소비 욕망이 아닌 초월적인 욕망을 품고 살아야 참된 삶의 품격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는 저자의 말처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물질만능주의에 찌든 욕망에서 한 걸음씩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말도 있지만 그럼에도 '사랑'이 있기에 살아갈 수 있는 건 아닐까 합니다. 와초재, 문학, 사랑, 세상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는 책을 통해 만나길 바랍니다!
꿈오리 한줄평 : 소소한 일상 속에서 살아온 삶을 성찰하고 살아갈 삶을 통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