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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
셸비 반 펠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3월
평점 :
셀 수도 없는 수많은 바다생물들이 살고 있는 아쿠아리움, 가끔은 그들이 더 넓은 바다에서 자유롭게 살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과 더불어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들이 아쿠아리움에 살고 있지 않았다면, 우리가 그렇게나 많은 바다생물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었겠죠?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수조 속 바다생물들이 초대장을 보낸 듯한 표지 그림,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기 전에 얼른 그곳으로 들어가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드는데요. 그곳엔 왠지 신비한 이야기가 가득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듭니다.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은 아쿠아리움 야간 청소부인 70세 할머니 토바와 아쿠아리움에 사는 거대태평양문어 마셀러스의 우정과 그들이 만들어낸 기적 같은 일을 봄햇살처럼 따스하게 그려낸 이야기입니다. 55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놀라운 흡입력으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지 않고는 책장을 덮을 수 없게 만듭니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아쿠아리움은 소웰베이라는 작은 마을에 위치하고 있는데요. 누군가의 이야기는 어느 샌가 마을 사람들에게 소문인 듯 소문 아닌 듯 퍼지는 작은 마을입니다. 그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의 끈끈한 유대감으로 서로를 돌보며 살아가는 마을이기도 합니다. 아무 것도 내세울 게 없는 빈털터리 백수 캐머런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숍웨이 주인 이선, 혼자 10대 아들을 키우며 살지만, 딱해 보이는 캐머런에게 아무 거리낌 없이 20달러짜리 유기농 제품을 나눠주는 패들보드숍 주인 에이버리, 혼자 남은 토바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는 니트-위츠 친구들, 알고 보면 츤데레인 아쿠아리움 사장 테리 등등 소웰베이 사람들과 70세 아쿠아리움 청소부 토바, 그리고 누구보다 스마트한 문어 마셀러스의 이야기,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어느 샌가 소웰베리 마을 어딘가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거대태평양문어가 수조를 탈출하는 인터넷 영상을 보고 문어 마셀러스를 떠올렸다."는 저자, "팬데믹 초기에 이 작품을 쓰고 있었던 터라 외로움과 고립감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는 저자, 그래서 "아쿠아리움을 배경으로 설정하고 실제로든 비유적으로든 어딘가에 갇혀 있거나 무언가에 얽매여 있는 인물들을 등장시켰다."고 합니다. (p.7~8)
<아쿠아리움이 문을 닫으면>의 화자는 거대태평양문어 마셀러스입니다. 이야기는 마셀러스가 수족관에 감금된 지 1,299일째 되는 날부터 자유를 찾은지 1일째 되는 날까지의 이야기 그리고 토바와 소웰베리 사람들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전개되는데요. 감금 1,329일째를 맞는 마셀러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독자들은 알고 있지만 정작 알아차려야 할 토바와 캐머런은 모르는 상황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함께 할 시간이 아주 짧을 거라는 점을 알려주어야겠다. 안내판에는 한 가지 정보가 더 적혀 있다. 문어의 평균 수명, 바로 4년이다. 내 수명은 4년 1,460일이다. 청소년기에 이곳으로 왔다. 이 수조 안에서 죽게 될 것이다. 내 형이 끝날 때까지 기껏해야 160일 남았다. p.14
이야기는 마셀러스가 아쿠아리움 수족관게 감금된 지 1,299일째 되는 날, 자신이 이곳에 어떻게 오게 되었으며,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며 시작합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마셀러스가 이곳에 오게 된 특별한 이유가 밝혀지기는 합니다.
아쿠아리움 야간 청소부인 70세 할머니 토바, 그녀는 마셀러스가 전선줄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것을 보고 도와주게 되는데요. 이후 토마와 마셀러스는 둘만의 비밀을 공유하는 친구가 됩니다. 무엇보다 토바와 마셀러스는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들이 간절히 바랬던 기적 같은 일을 만들어주는 결정적인 인물들이 되는데요. 마셀러스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고 나면 둘의 만남이 운명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합니다. 거대태평양문어가 어떻게 혼자서 수족관을 빠져나올 수 있는 것인지, 왜 수족관을 빠져 나온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비밀로 남겨둡니다.
그런데 왜 인간은 무엇을 원하는지 서로에게 속 시원히 말하기 위해 자신들이 가진 수백만 개의 단어를 사용할 수 없는 걸까? p.80
마셀러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인간들이 수족관에 갇힌 마셀러스를 보러 오는 것이 아닌, 수족관에 갇힌 마셀러스가 인간들을 관찰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정말 인간은 왜 무엇을 원하는지 서로에게 속 시원히 말하지 않는 걸까요?
내 아버지가 아니었어요. 소웰베이에 온 이유가 그 사람 때문이었는데. 지금껏 찾아내려고 그 난리를 쳤는데. 그냥 엄마의 옛 친구더라고요. 그 사람 반지도 아니었어요. p.494
엄마의 유품에 있는 사진과 반지를 보고 자신의 아버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남자, 그 사람을 찾아 소웰베이까지 온 캐머런, 하지만 그 사람은 아버지가 아닌 그저 엄마의 아주 친한 친구였을 뿐이라는 말을 듣게 되는데요. 아홉 살 때 이모에게 자신을 맡겨두고 간 엄마, 그리고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아버지, 캐머런은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까요? 캐머런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고 나면, 캐머런의 엄마가 왜 어린 아들을 언니에게 맡겨 두고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에게 헛된 희망을 주는 것은 아니다. 내 죽음은 임박해 있다. 하지만 아직 죽은 것은 아니다. 바다의 광활함을 누릴 정도의 시간은 허락되었다. 하루 어쩌면 이틀 정도, 해저 밑바닥 깊은 어둠을 한껏 즐길 시간이. (중략) 인간들. 대체로 멍청하고 어리석다. 하지만 한 번씩 놀랍도록 똑똑한 생명체가 되기도 한다. p.539~540
이야기는 마셀러스가 토바와 운명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되는 그곳으로 떠나고, 토바 또한 장기 요양 센터로 가려던 계획을 접고 소웰베이에 남아 행복한 노후를 보내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각자의 아픔과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소웰베리 사람들의 이야기, 70세 할머니와 거대태평양문어 마셀러스의 우정, 그리고 전혀 다른 종이 만들어낸 봄햇살처럼 따스한 기적,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소통'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수족관의 벽을 넘어 우정을 나누고 기적을 만들어낸 토바와 마셀러스처럼, 단절의 벽을 깨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건 어떨까요?
꿈오리 한줄평 : 70세 아쿠아리움 청소부 할머니와 문어의 우정,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낸 봄햇살처럼 따스한 기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