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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전 시집 : 건축무한육면각체 - 윤동주가 사랑하고 존경한 시인 ㅣ 전 시집
이상 지음 / 스타북스 / 2023년 7월
평점 :
학교 다닐 땐 시나 소설, 수필 등등 그 어느 작품이든 그저 시험공부를 위한 강제적인 읽기와 점수를 얻기 위한 강제적인 정답 찾기에만 몰두하여 글에 담긴 의미까지 달달 외우고는 했었습니다. 이상 시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시 <오감도>와 <거울> 그리고 소설 <날개>인데요. 당연히 이 작품들도 자신만의 느낌과 감상이 아닌 시험공부용으로만 암기를 했었겠지요? 특히 <날개>는 가장 첫 문장과 가장 마지막 문장만 기억날 뿐, 어떤 내용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데요. 아마도 그 당시 학생들에게 <날개>는 무척이나 파격적인 내용일 수도 있었기에, 전문을 수록하지는 않았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무엇보다 이상 시인의 시는 그때도 지금도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몇 달 전인가 우연히 김상욱 교수님이 이상 시인을 괴물 시인으로 지칭하며 그의 시 <1933, 6, 1> <보통기념> <선에 관한각서1> <AU MAGASIN DE NOUVEAUTES> 등에 담긴 4차원의 개념, 상대성 이론, 행렬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듣고 나니 정말 "천재라는 수식어가 박제된 유일한 시인"이라는 말을 수긍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건축과 문학, 외국어 그림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하니, 더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이상'이라는 필명으로 작품 활동을 한 김해경, 그는 현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의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조선총독부 내무국 건축과 기술사로 취직하여 근무했다고 하는데요. 그러한 연유로 그를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는 전체주의와 군국주의를 매우 혐오한 사람이었으며, 그가 친일행위를 한 행적도 없으며, 단순히 생계를 위해 일을 했을 뿐이라고 합니다.
이 시집은 <이상 전집> 제2권을 초판본 순서 그대로 정리한 것이며, 기존의 초판본 시집의 느낌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게 현대어를 따랐다고 하는데요. <오감도>부터 '미발표 유고' 시까지 이상의 시 작품 전체를 담았으며, 대표 소설인 <날개>와 수필 <권태> <슬픈 이야기> <동경>을 부록의 형식으로 실었습니다.
이상의 작품들은 난해하고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이유로 생전에는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다. 이상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오감도> 역시 처음 조선중앙일보에 실렸을 때도 그 난해함과 추상성으로 인해 독자들의 거센 반발을 받았고 결국 15편을 끝으로 연재를 중단했다고 한다. p.6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로 시작되는 <시제1호>부터 "나는거울없는실내에있다"로 시작하는 <시제15호>까지 <오감도>는 기본으로 띄어쓰기가 되어 있지 않는데다가 같은 단어들이 반복적으로 나열되어 있어서 읽다보면 어느 부분을 읽고 있었는지 헷갈리기도 하고, <시제4호>같은 경우에는 뒤집힌 숫자가 나열되어 있는데, 도대체 이 시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정말 너무나 알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듭니다. 여러 번 읽다보면 '나'만의 느낌을 담은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요?
오감도
시詩제1호
13인의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13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건축무한육면각제' 중~
거울
거울속에는소리가없소
저렇게까지조용한세상은참없을것이오
거울속에도 내게 귀가있소
내말을못알아듣는딱한귀가두개나있소
거울속의나는왼손잡이오
내악수를받을줄모르는-악수를모르는왼손잡이오
거울때문에나는거울속의나를만져보지못하는구료마는
거울아니었던들내가어찌거울속의나를만나보기만이라도했겠소
나는지금거울을안가졌소마는거울속에는늘거울속의내가있소
잘은모르지만외로된사업에골몰할게요
거울속의나는참나와는반대요마는
또꽤닮았소
나는거울속의나를근심하고진찰할수없으니퍽섭섭하오
'건축무한육면각체' 중~
이 책의 서문에 "이상의 시에서 정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있는데요. 그걸 핑계삼아 <오감도>와 <거울>에 대한 느낌이나 생각, 의미 해석 등은 슬쩍 생략하고 넘어가고, 많은 분들이 한번은 읽었거나 들었을 <날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중략)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힌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p.181~214
꿈오리에게 <날개>는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부터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까지라고 할 만큼 내용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작품입니다. 이번에 <날개>의 전문을 다 읽고 나니, 교과서에 모두 수록하기에는 조금 파격적인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야기속의 화자인 '나' 는 매춘부 일을 하는 아내에게 기생하여 무료하게 살아가고 있는 남편인데요. '나'와 아내의 관계는 일상적인 부부의 관계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엔 너무나 기이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듯합니다.
'나'는 "한 번지에 18가구가 어깨를 맞대고 늘어서서 창호가 똑같고 아궁이 모양이 똑같은, 흡사 유곽같은" 33번지에 살고 있습니다.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할 필요도 불행하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이 그저 "그날그날 펀둥펀둥 게으르고만 있으면 만사는 그만"인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가 살고 있는 방은 가운데 장지로 인해 두 칸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윗방인 '나'의 방은 볕도 들지 않는 방입니다. '나'는 아내가 외출하면 아내의 방인 '아랫방'으로 가서 돋보기로 불장난을 하기도 하고, 아내의 손잡이 거울을 가지고 놀기도 합니다.
왜 아내의 내객들이 아내에게 돈을 놓고 가나 하는 것이 풀 수 없는 의문인 것같이, 왜 아내는 내게 돈을 놓고 가나 하는 것도 역시 나에게는 똑같이 풀 수 없는 의문이었다. p.193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지 알 순 없으나, 아내는 외출도 할 뿐만 아니라 내객도 많습니다. 내객이 많은 날은 종일 볕도 들지 않는 방에서 이불을 쓰고 누워있어야만 하는데요. 그런 날 아내는 '나'에게 오십 전짜리 은화를 줍니다. '나'는 왜 아내가 자신에게 은화를 주는지, 내객들이 왜 아내에게 돈을 주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돈을 쓸 일이 없는 '나'는 아내가 준 돈을 넣어둔 저금통을 변소에 갖다 버리는데, 아내는 화를 내기는커녕 계속해서 은화를 머리맡에 두고 갑니다.
나는 아스피린으로 알고 그럼 한 달 동안을 두고 아달린을 먹어 온 것이다. 이것은 좀 너무 심하다. p.208
'나'에게 감기약이라며 건네 준 아스피린, 하지만 그것이 아스피린이 아닌 아달린(수면제)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나'는 충격으로 집을 나가는데요. 아내와 아스피린 그리고 아달린에 대해 생각하던 '나'는 가지고 나온 아달린 여섯 개를 모두 먹은 후 잠이 듭니다. 하루가 지난 후 깨어난 '나'는 아내가 왜 자신에게 아달린을 먹였는지, 자신이 자는 동안 무엇을 했는지 궁금해 하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 이야기는 미스꼬시 옥상에 올라간 '나'가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라고 외쳐보고 싶었다며 끝이 납니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에게 방은 어떤 의미일까요? '나'의 외출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나'와 아내는 어떤 관계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라는 외침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질문을 하고 나니, 괜스레 시험공부를 하던 그때처럼 정답에 근접한 답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과 더불어 문학 작품에 굳이 정답을 강요하는 공부는 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 또한 듭니다. 꿈오리 한줄평은 책속 문장으로 대신합니다.
이상의 시에서 정답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시가 어려운 이유는 정답이 있다고 믿고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정답이 없는데 찾으려고 하니 당연히 시를 읽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 시의 답은 시인에게 있지 않고 독자에게 있다. p.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