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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언니 시점 - 삐뚤어진 세상, 똑부러지게 산다
김지혜 외 14인 지음 / 파람북 / 2022년 12월
평점 :

개인의 기록 속에서 우리는 시대를 읽어내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같이 분노하고, 같이 기뻐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기록한 일상이 개인의 노트에서 뛰쳐나와 공유되는 순간 그 글은 글쓴이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보여주는 퍼즐 조각이 되는 것 같습니다. 퍼즐 조각을 맞춰보면서 우리는 우리가 '혼자'나 '따로'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곤 합니다. '책을 열며' 중~
제목과 더불어 표지 그림이 시선을 사로잡는 <전지적 언니 시점>, 이 책은 열다섯 명의 작가가 들려주는 자신들의 삶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자 "삐뚤어진 세상 똑부러지게 사는 언니"들의 이야기입니다. 처음엔 "일곱 명의 여자 사람들이 모여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써서 나누는 프로젝트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작가들도 합류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언니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개인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나'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것만으로도 묘한 연대감이 생기면서 때론 함께 분노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 받기도 하는데요. <전지적 언니 시점>의 이야기 또한 그러하답니다.
이 책은 1장 '언니의 결정적 혹은 격정적 순간', 2장 '무례한 세상을 대하는 언니의 자세', 3장 '불혹을 매혹으로 사는 슬기로운 언니 생활', 4장 '언니가 되고 보니 사랑만 한 게 또 없더라'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두 44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요. 특히 꿈오리에게 더 많은 공감을 불러온 이야기는 2장 '무례한 세상을 대하는 언니의 자세'속 이야기들입니다.
삶은 살아가야 하고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살을 맞대고 가정 주변부에 일어나는 일들과 내부의 안에서 일어나는 숱한 '살기 위한' 일거리들을 처리하기 위해선 끊임없는 협상이 필요하다. 협상이란 건 곧 인격의 반쯤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고 각자의 가치를 어디까지 내놓을 것인가 스스로와도 싸워야 하며, 결론은 당연히 쉽게 나지 않는다. p.55
사랑에 유효 기간이 있다면 얼마일까요? 흔히들 2년~3년이라고 하는데요. 연애할 때 씌인 콩깍지는 신혼 생활을 지나 육아를 하게 되면서 조금씩 걷히기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결혼 생활이란 것이 그저 두 사람만의 일이 아닌 양가 집안을 다 아우르는 것임을 알게 되는 순간, 그동안은 잠잠했던 무언가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되고 사소한 일임에도 예기치 않은 충돌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때 서로의 가치관이 얼마나 다른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하는데요. 알콩달콩 깨소금 냄새가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남을 줄 알았던 그런 시절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그럼에도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또 살아갑니다. 굳이 꿈오리 이야기는 아니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당신 딸이 제 아이의 앞길을 망쳤어요. p.65
예기치 않는 임신으로 예기치 않은 결혼을 해야만 한다면, 아기를 위해 자신의 꿈을 포기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다면, 창창한 남의 아들 앞길을 망쳤다고 말하는 예비 시어머니의 말을 들었다면, 그때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엄마 혼자 출생신고를 하고 아이를 키움에도, 기저귀나 분유 값조차 주지 않으면서 나중에 양육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들은 이은주 작가의 말처럼 "그런 말을 입에 담는 순간 인간으로서 자격을 잃은 것"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은주 작가의 큰조카, "사랑하는 사람의 아기를 가졌지만, 지금은 혼자서 돌보고 있으니 뽑아만 준다면 정말 열심히 일하겠다" 말할 수 있는 그녀의 삶을 응원하게 됩니다.
어머! 이게 누구야! 너무 어울린다. 정말 자연스럽다~!
붓기도 안 빠졌는데 이만큼이면 다음 주엔 더 예쁘겠어. p.85
예고 입시를 치른 중3 학생이 쌍꺼풀을 만들고 왔을 때, 이미 수술까지 하고 왔는데 "하지 마라. 자연스러움이 최고다." 라고 말하는 건 꼰대짓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구경희 작가는 "비포, 애프터를 나란히 찍어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의 눈을 강탈하는 성형외과 광고들을 볼 때마다 소름이 끼친다."면서 지하철 신사역과 강남역은 가능한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성형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성형이 많이 일어나는 우리나라, 작가의 말처럼 쌍꺼풀은 애교 수준, 그 무섭다는 양약 수술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에게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거울을 들여다본다. 그들의 잣대로라면 내 얼굴은 양심이 없는 상황이다. 리프팅도 필요하고 돌출 입도 거슬린다. 어느 의사는 내게 돌출 입을 수술하면 김태희 부럽지 않을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오래 보면 예쁜' 그런 얼굴이라며 거절했다. p.87
어머나, 세상에! 이건 혹시 '꿈오리' 를 두고 말함인가 싶어 빵 터지고 말았습니다. 돌출 입을 수술해도 절대 김태희 부럽지 않을 외모가 될 수 없음을 알지만요. 하얀 피부에 커다란 쌍꺼풀과 높은 코, 무엇보다 얼굴형부터 눈, 코, 입의 비율이 균형을 맞춰 조화로운 얼굴이 아름다움의 기준이라면, 저자의 말처럼 "남은 생 내내 외모에 대한 열등의식"을 안고 살아가야할지도 모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제 그런 외모를 부러워하지 않을 나이가 되었다는 것, 나태주 시인의 <풀꽃>처럼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면 사랑"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냥 살아가렵니다.
꿈오리 한줄평 : 개인의 기록이자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 세상에 나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것만으로도 묘한 연대감이 생기면서 때론 함께 분노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를 받기도 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