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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와 함께 독립의 길을 걷다 - 독립운동가들의 숨겨진 이야기
이만근 지음 / 스타북스 / 2024년 8월
평점 :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개혁과 애국계몽운동에 헌신한 도산 안창호 선생, 그분의 이야기를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시험공부에 급급하던 그 시절엔 그나마 기억이라도 하고 있었겠지요? 2016년 모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한 안창호 선생, 평생 아버지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막내아들 안필영과 외손자 필립 안 커디가 들려주는 안창호 선생의 이야기에 많은 분들이 눈시울을 붉혔으리라 생각됩니다. "먼 타국에 있는 작은 한인회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라는 말에 많은 분들이 역사를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다가 또 잊어버리고 살고 있겠지요? <도산 안창호와 함께 독립의 길을 걷다>는 이런 연유로 읽게 된 책입니다.
<도산 안창호와 함께 독립의 길을 걷다>는 '도산 안창호와 뜻을 함께 한 독립운동가들의 숨겨진 뒷이야기'로 25명의 애국지사들과 안창호 선생 가족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25명의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안창호 선생의 가족들까지, 모두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분들의 헌신과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도산이 빼앗긴 조국을 되찾고자 하는 '독립의 길'에는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동고동락, 생사고락을 함께하면서 몸과 마음을 바쳤고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가족은 물론이고 도산과 결의형제, 의남매를 맺고 또 아들처럼 도산을 섬기며 그늘진 곳에서 도산을 빛나게 한 숨은 조력자가 많았다. 그동안 그들의 헌신이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p.8
이 책은 1장 '힘이다, 힘을 기르자', 2장 '독립과 구국 운동에 나서다', 3장 '공부보다 동포가 먼저다', 4장 '새 국민 새 국가 건설', 5장 '나의 사랑 한반도야', 6장 '민족 전도 대업의 기초', 7장 '임시정부 통합을 이루다', 8장 '다시 미주 동포를 찾아가다', 9장 '독립운동 근거지 모범촌 건설', 10장 '송태산장 '서벽사'에 들다', 11장 '깊은 밤, 큰 별 지다', 12장 '가족이 힘이다'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안창호 선생, 그와 함께 독립의 길을 걸었던 25명의 독립운동가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나는 밥을 먹어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 잠을 자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 해 왔다. 이것은 내 목숨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p.17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안창호, 16세 때인 1894년 "나라와 겨레에 대해 깊이 깨닫는 큰 사건"이 일어나는데, 바로 동학농민전쟁과 청일전쟁입니다. "일본 군대와 청나라 군대가 남의 땅, 우리나라에서 싸우면서, 힘없는 우리 백성이 수없이 피를 흘리고 죽고 유적이 불타거나 훼손되고 강토가 폐허가 되는 것"을 보고 분개하게 되는데요. 이 사건은 그의 가슴에 잠들어 있던 민족의식을 일깨워주는 동시에 자아 성찰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안창호는 이혜련과 혼인한 다음 날인 1902년 9월 4일 교육학을 전공하여 교육자가 되어 교육으로 조국을 힘 있는 나라로 이끌겠다는 청운의 뜻을 품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p.69
신교육 운동의 일환으로서 계몽학교 점진학교를 세운 그는 교육학을 배워 고국에 돌아와 동포에게 서양의 새로운 학문을 가르치기로 결심하고 미국 유학길에 오릅니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멸시당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노동 주선과 생활 태도를 고쳐 스스로 문명 국민이요 독립한 국민임을 주변 미국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에 투신"하기로 하고, 노동자의 문명 퇴치를 위해 야학을 운영하고, 미국 최초의 한인촌을 건설합니다. 이때부터 '도산'이라는 아호를 천명하고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1905년 9월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11월 을사늑약으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보호국이란 미명으로 반식민지로 우리나라를 강점"하기 시작하자, "당초에 계획한 교육학 공부의 꿈을 접고 조국으로 돌아가 국권 회복을 위해 투쟁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비밀결사를 조직하기로 하였는데, 바로 '대한신민회'입니다. "국권 회복 운동과 자유 독립국을 세우는 공화정치를 목표로 출발한 신민회는 비밀 조직으로 강연회와 학회 활동을 통해 애국 계몽 운동을 전개하고, 일제의 눈을 피해 학교 설립을 통한 교육 구국 운동, 잡지와 서적 출판, 회사 설립 등 민족 실업 운동을 추진하며, 해외에 독립군 기지를 건설하는 방안까지 구성"하였습니다.

도산 스스로 자기를 낮추고 희생해 가면서 치밀한 조직력으로 온갖 반대와 갈등을 극복하며 험난하고 힘들어 보였던 임시정부 통합을 마침내 이루어냈다. p.190
도산은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블라디보스토크 대한국민회의, 한성 임시 정부 등 3개 임시정부의 통합을 주도했으며, 마침내 1919년 9월 11일 통합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 공포되었습니다. "도산은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서 반드시 실행해야 할 6대 사업으로 군사, 외교, 교육, 사법, 재정, 통일 등을 제시"하였으며, "독립운동 6대 사업과 방략은 임시정부가 1945년 광복 때까지 수정하고 발전시켜 가면서 실행한 것으로 한국 독립운동사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1937년 6월 6일에 일제가 이른바 '동우회 사건'을 만들어 회원들을 서울, 평양 등지에서 동우회 간부와 회원 150여 명을 검거하고 투옥하였다. 일제가 중일전쟁을 앞두고 최후의 발악으로 민족주의 진영을 탄압하고자 사건을 날조한 것이다. 동우회는 같은 해 8월 7일 종로경찰서 취조실에서 강제로 해산 도장을 찍게 되었다. p.296
일제가 날조한 동우회 사건으로 도산도 '서벽사'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울 종로경찰서로 이송 수감되었는데요. 종로경찰서와 서대문 감옥을 오가며 잔혹한 고문과 취조, 갖은 학대에 시달리던 도산은 건강이 극도로 나빠졌습니다. 이에 도산의 옥사를 우려한 일제는 재판 도중인 12월 24일 병보석으로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부속병원에 입원시켰습니다. 하지만 병세는 점점 악화되어 "1938년 3월 10일 0시 5분, 경성제국대학 부속병원에서 잠자듯 편안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향년 60세를 일기로 서거"하였습니다. 도산의 유해는 망우리 공동묘지에 매장되었으나, "1973년 11월 10일 망우리 공동묘지 도산의 유해와 미국 이혜련의 유해를 도산공원에 이장하여 합장"하였습니다.
청소년기 안창호가 민족주의 사상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주었고,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데도 많은 도움을 주었던 필대은, 열과 성을 다해 학생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준 밀러, 독립운동가의 주치의이자 대부분의 수입을 독립군 군자금으로 기부했던 김필순, 교육진흥과 모범촌을 추진하였으며 신민회 창립을 함께한 이승훈, 연해주 독립운동을 이끈 안태국, 여성 교육에 힘쓴 도산의 의남매 조신성, 단 한 편의 친일 문장도 쓰지 않은 작가 한흑구, 독립운동가의 내조뿐만 아니라 스스로 독립운동을 한 도산의 평생 동지였던 여장부 아내 이혜련, 할리우드의 별이 된 장남 안필립을 비롯한 오남매와 더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는 직접 책을 통해 만나길 바랍니다!
<도산 안창호와 함께 독립의 길을 걷다>는 '도산 안창호와 뜻을 함께 한 독립운동가들의 숨겨진 뒷이야기'로 25명의 애국지사들과 안창호 선생 가족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요. 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25명의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안창호 선생의 가족들까지, 그분들 모두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분들의 헌신과 희생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자유와 평화를 누릴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시절이 하 수상하니 "나라가 없고서 어찌 한 집과 한 몸이 있을 수 있으며, 민족이 천대받을 때 나 혼자만 영광을 누릴 수 있겠느냐!(p.114)"는 안창호 선생의 말을 다시금 되새겨야 할 듯합니다.
꿈오리 한줄평 : 도산 안창호 선생과 25명의 독립운동가 그리고 가족들의 숨겨진 이야기, 조국의 독립을 위한 헌신과 희생, 절대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우리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