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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 ㅣ 창비교육 성장소설 13
보린 지음 / 창비교육 / 2024년 12월
평점 :

큐브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정육면체 그리고 여섯 면을 같은 색깔로 맞추는 장난감입니다. 그렇다면 책의 제목인 큐브는 무얼 의미하는 것일까요? 혹시 여섯 면의 색을 맞추듯 무언가를 맞춰야만 탈출할 수 있는 그런 공간에 갇힌 것은 아닐까요? 보린 장편소설 <큐브>는 이런 저런 상상을 하게 만듭니다. 만약 정육면체 큐브에 갇혀 의식이 통제되고 창밖으로 지구가 보이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이야기는 독감에 걸려 교실에 남아 있던 연우가 환각에 빠진듯한 모습을 보이며 시작합니다. 연우는 그것이 감기약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때 연우의 눈앞에 "당신은 채집되었습니다."라는 글자가 나타납니다. 홀로그램 공 한가운데에 쓰인 글자, 이건 도대체 무얼 뜻하는 걸까요? 잠시 후 빨간 공이 투명한 공으로 바뀌며 "먹이가 근처에 있습니다."라는 글자가 떠오릅니다. 연우는 그곳을 벗어나고자 했으나 그럴 수 없었습니다. 운동장에 반 친구들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창문으로 다가간 연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연우의 눈앞에 보이는 건 운동장이 아닌 커다란 지구였으니까요. 밖으로 나가고 싶으나 나갈 수 없는 연우, 강제로 잠들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하는 사이, 유부초밥이 든 도시락은 화수분처럼 계속 채워지고 또 채워집니다.
빨간 공, 언제나 같은 자리, 정육면체 한가운데 떠있다. 홀로그램 비슷한 것으로, 연우가 깨어날 때는 투명한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모래시계처럼 아래에서부터 빨갛게 차오른다. 가끔 매미 소리를 낸 다음 메시지를 보여 준다. 넌 채집되었다, 근처에 먹을 게 있다, 의식을 통제할 거다, 내용은 딱 세 종류다. 공이 완전히 빨갛게 채워지면 큐브 안팎의 모든 것이 처음으로 돌아온다. 연우 자신만 빼고. p.19
투명한 막으로 박힌 정육면체(큐브)에 갇힌 연우는 친구들을 볼 수 있지만, 친구들에겐 연우가 보이지 않습니다. 불안과 공포에 휩싸이는 연우는 큐브를 빠져나가려 발버둥 쳤지만, 상황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러는 사이 서서히 큐브에 적응하게 됩니다.
그렇게 나름 큐브에 적응해가던 연우는 악몽을 꾸게 되는데요. 짜장면 속에서 나온 하리보 젤리, 젤리 곰들은 실험복까지 갖춰 입고 회의를 합니다. 채집, 먹이, 환경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젤리 곰들, 그들은 또 누구일까요?
항상성 붕괴......부적합......조사 종료.......,
우리는.......생존할......라이카......찾습니다.
조사에......응해 주셔서......고맙습니다.
서식지로 돌아갑니다. p34
다시 교실로 돌아온 연우, 더 이상 보이지 않는 홀로그램, 쉴 새 없이 뜨는 알림, 운동장으로 나간 연우를 본 2학년 아이들은 깜짝 놀라고 맙니다. 고3 수험생으로 9월 모의고사를 두 달 앞 둔 시점에 사라져 행방불명자가 된 연우가 눈앞에 나타났으니까요.
1년 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연우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는데요. 거기에 더해 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은 대학생이 되거나 재수생이 되거나 직장인이 되어 있었지만, 연우는 그렇지 못했기에 진로에 대한 고민까지 하게 됩니다. 좋아하는 친구 해고니를 떠날 수 없어 고향에서 무언가를 하려 하지만, 그 또한 해고니에겐 부담으로 느끼는 일이 됩니다.
"난 대단히 정상이야. 그저 의식이 젤리 곰 속에 담긴 것뿐이라고."
젤리 곰은 자신이 연우의 복제된 자아라고, 설명하기엔 간단하지 않고 믿기에는 더더욱 간단하지 않은 소리를 했다. p.71
게다가 큐브에서 나왔지만 채집 때문에 갖게 된 장치와 거기에 입력된 복제된 자아(젤리 곰) 그리고 항상성 시스템으로 인해 불안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연우를 심리적, 물리적으로 안정시키는 항상성 시스템은 비가 오면 비를 막아주고 더위나 추위 또한 막아주기에, 그것이 없다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늘 불안해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장치를 벗어던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항상성 시스템에 대한 불안과 진로에 대해 고민에 빠져 있던 연우는 해고니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습니다. 해고니도 트라우마를 갖게 만든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는데요. 그 순간 파도가 그들을 덮치고, 두 사람은 파도에 휩쓸리게 됩니다. 연우는 채집된 이후 가지게 된 장치와 항상성 시스템이 구해낼 수 있겠지만, 해고니는 그럴 수 없을 텐데....,연우와 해고니는 어떻게 될까요? 연우를 채집 한 존재들은 누구일까요? 연우는 그 모든 것들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큐브>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이라면 누구나 고민할만한 학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 그리고 풋풋한 첫사랑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SF적 장치를 이용하여 현실의 이야기를 그려냅니다. 고3 수험생이었던 연우는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존재들에게 채집되어 투명한 큐브에 갇히게 됩니다. 모든 것이 되풀이되는 큐브 속에서의 삶에 적응해가던 중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데요. 연우는 그 사이 1년의 시간이 흘렀음을 알게 됩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 자신의 길을 가고 있던 친구들을 보며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무엇보다 채집 때문에 갖게 된 장치로 인해 불안감에 휩싸이게 되는데요. 연우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나'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어쩌면 큐브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놓은 틀일지도 모릅니다. 누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처럼 만들어 놓은 틀, 학생들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초중고 12년 동안 오로지 공부에 매달려야 하며, 그렇게 들어간 대학에선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하며, 그렇게 졸업을 하고 좋은 회사에 들어간 다음엔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면 아이를 낳아야 하며, 아이를 낳으면....., 우리들 모두는 그 틀을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연우가 갇혔던 투명한 큐브,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큐브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꿈오리 한줄평 : 우리는 저마다의 큐브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