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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은, 불꽃을 쫓다 ㅣ 설자은 시리즈 2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월
평점 :

"680년대 후반 통일신라를 배경으로 기록과 유물의 빈틈을 파고들어 완전히 꾸며낸" 이야기,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준 이야기, 바로 정세랑 작가의 역사 미스터리 추리소설 '설자은 시리즈'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는 죽은 오빠를 대신해 남장을 한 후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 설자은이 망국 백제 출신 장인 목인곤과 함께 금성으로 돌아와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이야기로 설자은이 남장여자임을 알고도 모른 체하는 백제사람 목인곤과의 케미가 이야기의 재미를 더했는데요. 매초성 전투, 길쌈 대회, 월지 등 신라시대임을 유추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들의 등장으로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더했다지요. 그래서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고 고대하며 기다렸었는데, 드디어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 <설자은, 불꽃을 쫓다>가 출간되었습니다.

<설자은, 불꽃을 쫓다>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해결하던 설자은이 왕의 부름을 받아 집사부 대사로 임명된 후의 이야기입니다. 특히 이번 이야기에는 목인곤을 비롯하여 설자은을 호위하는 말갈인 삼형제, 오빠(사실은 언니지만) 설호은과 여동생 설도은, 죽은 자은의 연인이었던 산아, 자애로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왕, 왕족이지만 서자의 서자의 서자인 김노길보 등등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으로 더욱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또한 구서당과 지귀 설화, 월성과 남천, 오소경 등 신라시대임을 유추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재미를 더합니다. 하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는 것, "없었던 사람들의 없었던 사건들"임을 미리 고지하고 시작합니다. "OO은 가구가 아닙니다"처럼 시험을 보다 혼란을 느낄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처음에 설자은은 매가 새겨진 검이 상징인 줄로만 알았다. 하늘에서 땅으로, 어느 한 점을 향해 맹렬히 몸을 던진 칼자루의 매 형상은 보면 볼수록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흰 매는 살아 있는 것만 같았고, 저만의 의지가 있는 것 같았다. p.11
이야기는 설자은이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검을 배우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자은은 흰 매가 새겨진 검으로 무엇을 베어야 하는지를 알지 못했지만, 왕은 "너는 무엇을 베어야 할지 보는 순간 알 것이다.(p.17)"라고 했습니다. 왕의 말처럼 사건이 일어나고 무엇을 베어야 하는지를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죠.
백제인이었던 자도, 말갈이이었던 자도 이제 신라인입니다. 그 점을 부정한다면 삼한일통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신라인의 잃은 목숨만큼 죄인의 목숨을 거둬야 할 것입니다. p.153
자은이 처음으로 마주한 사건 <화마의 고삐>는 금성에서 일어난 원인 모를 연쇄 화재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밤새 불타올라 잿더미로 변한 집에서 발견된 네 구의 시신, 연이어 일어난 화재로 발견된 여섯 구의 시신, 두 사건의 공통점은 모두가 잠든 시간을 노린다는 것, 당한 이들이 나란히 누운 채 발견되었다는 것 그리고 기름을 써서 불을 지른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풍족한 형편으로 보이지 않는 집에서 묘한 고기 냄새가 난다는 것, 두 집에서 나는 기름 냄새가 묘하게 달랐다는 것은 의문을 더했습니다. 거기에 더해 연달아 화재가 발생하자 저자에는 "더러운 금성을 불로 깨끗이 정화"시키기 위해 불귀신 지귀가 돌아올 거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하는데요. 불귀신 지귀는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요? 자은과 인곤은 사건에 얽힌 진실을 밝혀내는 과정 중에 통일신라에서 살아가고 있는 백제인, 말갈인 등 타국 출신들이 차별 대우를 받는 것을 알게 되는데요. 화재 사건과 타국 출신에 대한 차별 대우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요? 만약 그렇다면 자은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자네는 몸이 축난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지 않나? 서라벌에 자네를 죽이고 싶어 하는 이들이 셀 수 없이 늘었으니. p.194
두 번째 사건 <탑돌이의 밤>은 소원을 빌기 위해 흥륜사에서 탑돌이를 하던 설도은에게 천으로 쌓인 돌멩이가 날아오면서 시작됩니다. 그것은 자은을 데리고 있다며 몸값을 요구하는 협박문이었는데요. 함께 탑돌이를 하던 산아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도은은 자은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누군가의 인질이 되었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인질범들이 요구하는 것을 모두 들어주고자 하는데요. 어찌된 일인지 납치된 줄 알았던 자은이 제 발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렇다면 인질범에게 잡혀 있는 자은은 누구이며, 도은에게 협박문을 보낸 이들은 누구일까요? 자은과 인곤, 도은과 산아는 인질범의 정체를 밝히고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요?
만약에 제가 이것을 썼더라면, 다치고 죽은 인명과 잃은 재산에 대해 더 절절히 썼을 것입니다. 분통함이 앞섰을 테고 사태의 비경함을 전하기 위해서라도 그랬을 테지요. 이 청들은 하나같이 무엇을 빼앗겼는지가 빠져 있습니다. 어째서일까요? p.246~247
세 번째 사건 <용왕의 아들들>은 왕의 명으로 오소경으로 떠난 이들의 신고로 시작됩니다. 산적 떼에게 습격을 당했다는 것인데, 이상한 것은 신고문에 무엇을 빼앗겼는지가 적혀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사건 해결을 위해 오소경으로 향한 자은은 그들이 빼앗긴 것이 재산이 아닌 여자들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이 사건의 공통점은 산적이라고는 하지만 용모는 산적처럼 보이지는 않았다는 것, 간단하게 혼례도 치른 후에 데려갔다는 것, "용왕지자에게 딸을 맡겼으니 광영인 줄 알고 살라"는 말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용 모양의 탈을 쓴 그들은 누구이며, 왜 재물이 아닌 여자들만을 데려간 것일까요? 사건을 해결하며 자은은 예상치도 못한 인물로부터 배신을 당하게 되는데요. 그는 누구이며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된 것일까요?

<설자은, 불꽃을 쫓다>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해결하던 설자은이 왕의 부름을 받아 집사부 대사로 임명된 후의 이야기입니다. 구서당과 지귀 설화, 월성과 남천, 오소경 등 신라시대임을 유추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하고, 고래기름, 쌀가루로 만든 화장분, 비늘을 닮은 유리 잔과 목걸이 등등의 단서를 통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묘미를 더합니다. 특히 이번 이야기에는 백제인이었지만 자은을 돕는 목인곤을 비롯하여, 설자은은 호위하는 말갈인 걸마지 삼형제, 오빠(사실은 언니지만) 설호은과 여동생 설도은, 죽은 자은의 연인이었던 산아, 자애로움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왕, 왕족이지만 서자의 서자의 서자인 김노길보 등등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으로 더욱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자은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악명을 얻기도 하고, 예상치도 못한 인물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옳은 길을 가려는 마음과는 다른 길 앞에 고뇌하기도 하지만 시련을 이겨내고 성장해 갑니다.
꿈오리 한줄평 : 역사에 이야기를 더하다, 역사서에 기록된 통일신라의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