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 - 제15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75
이로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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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믿기지 않는 참사, 누군가에겐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 일이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참혹하고 가슴 아픈 일로 남아 있습니다. 가까운 이들을 잃은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 역시도 그러합니다. 어쩌면 그들의 시간은 참사가 일어났던 그 시간에 멈춰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사람들의 아픔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그들의 마음에 남겨진 슬픔과 아픔을 치유할 수 있을까요. 슬픔과 고통 속에 남겨진 이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넬까 고민하지 말고 그저 그 사람의 말을 가만히 들어주는 것은 어떨까요? 그것이 마음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치유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는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로 참사로 희생된 사람들과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 그리고 남겨진 유족의 아픔을 통해 기억과 애도 그리고 연대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가던 학생들과 일을 하러 가던 어른들,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 축제를 즐기려던 젊은이들에게 일어난 참사, 희생자들과 유족들 그리고 생존자들이 겪었을 고통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모두가 한 마음으로 바라볼 순 없겠지만, 최소한 비난과 혐오의 시선을 보내지는 말아야하지 않을까요. 누군가는 잊힐 권리가 있다지만, 누군가에겐 잊히지 않을 당연한 권리를 지켜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나를 '배려'하면서 자의식을 공고히 하려는 사람들을 마주하면 짜증이 났다. 배려받을 사람과 배려받지 못할 사람을 구분할 자격이 자신에게 있다고 믿는 사람들. 나를 싫어하는 순간, 그들은 생존자를 싫어하는 고작 그런 사람이 된다. p.13

 

이 책의 화자인 연서는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입니다. 사람들은 연서가 참사의 기억을 잊고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바라지만, 그때와 지금의 연서는 같을 수가 없습니다. 진상 조사를 외치는 친구 호정이, 마음먹기에 따라 이겨낼 수 있다는 아빠, 피해자다움을 바라는 사람들, 혐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잊히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과 잊힐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 모두가 연서를 일 년 전 그날로 데려다 놓습니다. 그렇기에 일 년이 지났어도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세심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아빠는 그날 이후 연서에게 엄청난 신경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연서를 알려고 노력하는 대신 모든 문제를 연서 탓으로 돌리던 그 아빠가 말이죠. 하지만 상담을 받고 약을 먹는 연서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보다는 모든 것은 마음먹기 나름이라며, 연서가 강한 아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 있는 추모공간을 없애라는 항의 전화도 합니다. 추모 공간을 없앤 사람이 아빠라는 것을 알게 된 연서는 방송부와 학생회, 그리고 유가족과 생존자로 이루어진 교내 추모 준비단 활동을 그만둡니다.

 

어둠 속에 한 쌍의 눈동자가 있었다. 그건 사람의 눈이었다. 새하얀 흰자와 조명을 받아 쪼그라든 동공이 나를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검은 물 위로 얼굴만 둥둥 띄운 채 입을 뻐끔거렸다. , , 하는 울음소리가 입술 움직임에 맞춰 울려 퍼졌다. p.25

 

잠이 오지 않는 밤, 하천 산책로를 따라 걷던 연서는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를 찾아갑니다. 하수구 밑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정체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연서는 놀라서 도망치고 맙니다. 혹시 괴담으로만 전해지는 '반 인간 반 파충류'와 같은 존재인 걸까요?

 

다시 찾아간 하수구에서 만난 건 지상 사람이랑 얘기를 하고 싶었다는 소년이었습니다. '왝 왝'소리의 정체는 맹꽁이지만, 굳이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 그 친구에게 연서는 왝왝이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소년은 왜 그곳에 있는 것이며, 왜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는 걸까요? 나중에 드러나게 될 소년의 정체를 알고 나면, 왜 자신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는지를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그날 이후 연서와 왝왝이는 사소한 이야기로 크고 작은 언쟁을 벌이기도 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기도 하며 여느 친구와 다름없는 날들을 보냅니다. 그러다 하수구 덮개를 사이에 둔 만남이 아닌, 진짜 만남을 위해 왝왝이가 있는 지하 세계로 갑니다. 왝왝이는 자신이 지내는 곳은 아무 고통도 없고, 누구도 자신을 힘들게 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데요. 정말 그곳에 살면 슬픔도 고통도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런데 왜 왝왝이의 눈가는 어두운 것일까요?

 


그날의 일을 그냥 천재지변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너희가 그날 그곳에 있었어도 그렇게 쉽게 말했을 거냐고 따지고 싶었습니다. (중략) 그러니까 저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었습니다. (중략) 비로소 알았어요. 잊을 수 없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것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이 잊지 말라고 소리를 질러야 잊어 가는 사람들이 한 번이라도 돌아본다는 것을. p.141~142

 

자신은 잊히고 싶지도, 잊고 싶지도 않음을 깨닫게 된 연서는 다시 준비단에 들어가고 교내 추모제에서 낭독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해나갈 수 있는 일을 하리라, 자신을 잊어버린 존재가 된 그 소년을 지상 세계로 데려오리라 다짐합니다. 이야기는 연서와 친구들 그리고 한때 왝왝이였던 소년이 참사 추모 음악회를 진행하며 끝이 납니다. 지금도 왝왝이가 있던 하수구 철창 밑에는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그래서 스스로를 잊어버린 수많은 왝왝이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왝왝이가 그곳에 있었다>는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이야기로 참사로 희생된 사람들과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 그리고 남겨진 유족의 아픔을 통해 기억과 애도 그리고 연대의 의미를 생각하게 만듭니다. 버스를 타고 학교로 가던 학생들과 일을 하러 가던 어른들,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 축제를 즐기려던 젊은이들에게 일어난 참사, 희생자들과 유족들 그리고 생존자들이 겪었을 고통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모두가 한 마음으로 바라볼 순 없겠지만, 최소한 비난과 혐오의 시선을 보내지는 말아야하지 않을까요. 누군가는 잊힐 권리가 있다지만, 누군가에겐 잊히지 않을 당연한 권리를 지켜줘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스스로를 잊어버린 채, 하수구 철창 아래서 살아가는 수많은 왝왝이들이 그들이 살았던 세계로 돌아오기를, 비난과 혐오가 아닌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주기를, 그래서 수많은 왝액이들이 존재했다는 것조차 모르게 잊히는 이들이 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꿈오리 한줄평 : 존재했다는 것조차 모르게 잊혀지고 있는 왝왝이들에겐 잊히지 않을 당연한 권리를 지켜줘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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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문이 사라졌다 - 제25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95
김은영 지음, 메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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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바깥으로 통하는 모든 문이 사라졌다면? 현관문과 창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엔 오로지 벽만 있을 뿐이라면? 외부 세계와 완전히 차단된 집안에서 지내야만 한다면? 그때 우리는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어느 날 문이 사라졌다>는 제목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문이 사라진 집안에 남은 남매 해리와 해수의 이야기입니다. 현관과 창문이 사라진 것은 물론 인터넷, 전화, 텔레비전 등등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진 집안에 남겨진 남매는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집안에서 맞닥뜨린 재난 상황, 해리와 해수는 위기를 극복하고 집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요?

 


모든 게 그대로였다. 현관문도 창문도 모조리 벽으로 바뀌어 버렸다는 것만 빼고. 마치 집이 통째로 택배 상자 안에 밀봉된 것 같았다. p.10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현관문과 창문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 자리엔 단단한 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전화도 인터넷도 인터폰도 안 되기에 어느 누구에게든 구조를 요청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엄마가 아침밥을 지어놓고 출근하는 그 짧은 시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혹시 엄마가 문을 다 막아 버린 것은 아닐까? 해리는 문득 엄마에게 화를 내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애지중지하던 애착인형을 말도 안 하고 버린 엄마에게 화가 났던 것이었지요. 하지만 밥도 해 놓고 간 엄마가 그럴 리는 없습니다.

 

안했슈 TV의 안해수입니다. (중략) 지금 누나와 둘이 집 안에 갇혀 있어요. 전화도 안 터져서 구조 요청을 할 수도 없어요. 이 영상을 보신 분들은 우리 엄마나 119에 연락해 주세요. 문 없앤 거 내가 안 했슈! 안했슈 TV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p.16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걸까요? 온 집안을 구석구석 샅샅이 뒤진 끝에 현관 옆 끝방 천장 근처에서 와이파이 신호가 잡힌다는 것을 알게 된 해수는 아이튜브 계정에 현재 상황을 보여주는 영상을 올립니다. 실종 신고를 받고 온 경찰도 갇힌 상황에서 아이튜브 놀이를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습니다. 아이튜브 계정을 구독한 사람들은 응원의 댓글도 달았지만, 주작이라며 악플을 달기도 했습니다.

 


해리는 먹는 둥 마는 중 젓가락만 휘저었다. 드디어 혼자 라면을 끓여 보았지만 기뻐할 수가 없었다. 조금 전 상황이 얼마나 위험했는지를 떠올리면 아찔했다. 지금 집에는 문이 없다. 불이 나도 탈출할 수 없다는 뜻이다. p.37

 

해리는 난생 처음으로 라면을 끓였습니다. 가스레인지를 켜고 라면을 끓이려다 휴지에 불이 붙어 큰일 날 뻔 했지만요. 세탁기로 빨래도 하고, 화장실 청소도 합니다. 해수도 난생 처음 설거지를 합니다. 밥그릇을 떨어뜨리기도 했지만요. 누나 해리는 엄마 대신 동생을 재우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해리와 해수도 위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튼튼한 동아줄을...., 아니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문을 받을 수 있을까요?

 

내가 깨면 병아리, 남이 깨면 프라이라는 말 몰라? 스스로 나올 수 있게 놔둬야 해. 사람이 깨 주면 금방 죽는대. p.108

 

집안에 갇혀 지내는 상황을 아이튜브로 보여주는 해리와 해수, 나름 적응하며 살아가고는 있지만 언제 탈출할지 모르는 상황이니 미래를 위한 대책도 세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유정란으로 병아리를 부화시킬 계획을 세우는데요.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정성을 다해 돌봅니다. 드디어 알을 깨고 나오려는 병아리, 몇 시간의 사투 끝에 혼자 힘으로 껍데기를 깨고 나오는 병아리의 모습은 해리와 해수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해줍니다.



해병이도 꽉 막힌 알에서 껍데기를 깨고 나왔잖아. 문이 없으면 우리가 문이 되는 거야. p.128

 

병아리 해병이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는 모습을 본 해리와 해수는 문이 없는 집에 문을 만들어 내기로 결심하고, 두려운 마음에 차마 용기내지 못했던 어둠속으로 한 발짝 나아갑니다. 어둠의 끝에는 분명 빛이 있을 테니까요.

 

가장 안전해야 할 집에서 불시에 일어난 재난은 가족과 함께 하는 평범한 날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줍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서 몰랐던 평범한 일상, 저녁이면 모두가 돌아와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곳, 피곤하고 지친 몸과 마음을 편히 쉴 수 있는 곳,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집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스스로가 만들어 낸 내 안의 벽은 무엇인지, 왜 그런 벽을 만들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합니다.

 

<어느 날 문이 사라졌다>는 제목 그대로 어느 날 갑자기 문이 사라진 집안에 남은 남매 해리와 해수의 이야기입니다. 현관과 창문이 사라진 것은 물론 인터넷, 전화, 텔레비전 등등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사라진 집안에 남겨진 남매는 무얼 할 수 있을까요? 집안에서 맞닥뜨린 재난,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해리와 해수는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며,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고 최선의 방법을 찾으려 합니다.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아이들이라서 가능한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어른들이었다면 재난 상황에서도 문제를 해결하려 함께 노력하는 대신, 책임을 전가하며 서로를 비난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꿈오리 한줄평 : 문을 열고 나갈 용기만 있다면 문은 어디에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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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스 코드: 더 비기닝
빌 게이츠 지음, 안진환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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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로 소프트 창업주이자 세계 최고의 갑부 중 한 명이며, 은퇴 이후 자선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 바로 빌 게이츠입니다. 세계 최대 개인용 컴퓨터(PC) 소프트회사를 일구어낸 그를 모르는 이가 있을까요? 하지만 그의 유년 시절을 알고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합니다.

 

<소스 코드 : 더 비기닝>은 빌 게이츠의 성공담을 들려주는 것이 아닌,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그쳐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기 전까지의 성장기를 회고한 자서전입니다. 이 책이 조금 더 특별한 것은 대부분의 인물들이 자서전을 대필하는 것과 달리 본인이 직접 집필했다는 것입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엘리트지만, 그의 성장기는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창 시절엔 지진아로 불리기도 했으며, 사회적 상호 작용에 관심이 없는데다가, 기대치가 높은 어머니와 갈등을 겪었다고도 합니다. 어머니와의 말다툼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식탁의 물컵을 들어 그의 얼굴에 끼얹었다고 하는데요. 이때 그는 "샤워, 고맙네요."라며 싸늘하게 반응했다고 하니, 그 또한 나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어린 시절엔 독서와 수학, 혼자만의 사색 시간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런 모습들이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이 보기에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아이로 보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책에는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기 전까지의 성장기와 그의 성장기에 영향을 준 가족을 비롯한 친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열세 살 무렵, 몇 명의 소년들과 어울려 정기적으로 시애틀 주변의 산에 며칠씩 하이킹을 다니기 시작했다. 우리가 서로 알게 된 것은 보이 스카우트 활동을 통해서였다. (중략) 그 시절 나는 또 다른 친구들과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같은 학교에 다니던 켄트와 폴, 릭이 함께 어울리던 멤버였다. (중략) 표면상으로 하이킹과 프로그래밍은 전혀 닮은 구석이 없는 활동처럼 보였다. 하지만 둘 다 나에게는 일종의 모험이었다. p.11~14

 

빌 게이츠의 부모는 아들이 사회성을 기를 수 있도록 컵 스카우트 등의 외부 활동을 권유하며 사람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스카우트 활동을 통해 만난 친구들과 하이킹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아들이 또래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독립성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레이크사이드 스쿨에서 만난 친구들, 켄트와 폴, 릭은 그의 삶에 누구보다 많은 영향을 주고받은 인물들입니다.

 

레이크사이드에는 "학생들이 전화선을 통해 메인프레임 컴퓨터에 접속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10대들이 어떤 형태로든 컴퓨터를 접한다는 것 자체가 희귀한 일이었다."고 하는데요. 그 당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말처럼 유복한 환경 덕분에 누린 특권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독서를 통해 나는 온갖 종류의 것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한 가지 답을 찾으면 더 많은 질문이 떠오르기도 하고, 깊이 파고들수록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p.87

 

어린 시절 큰 영향을 끼친 인물 중 할머니 가미가 있습니다. 그녀는 빌 게이츠가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어 주었으며, 혼자 힘으로 책을 읽는 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또한 함께 카드 게임을 하면서 "아무리 복잡하고 불가사의해 보이는 무엇이라도 결국에는 알아낼 수 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빌 게이츠에게 할머니 가미는 부모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어른의 한계에 대한 나의 인식은 가족 내 역할을 규정하던 암묵적 합의를 악화시켰다. 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다면, 굳이 부모님의 의견이 왜 필요할까? (중략) 나의 이러한 변화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사람은 어머니였다. p.96~96

 

물질적인 것부터 정서적인 것까지 모든 것을 제공하고,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제공하고 있는 부모님, 하지만 빌 게이츠는 왜 부모님이 모든 것을 주도하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에게 반항을 하기 시작했으며, 그럴수록 점점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학교에서도 몇몇 흥미로운 과목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런 연유로 성적은 들쑥날쑥했으며, 급기야 언어 치료사는 그를 지진아라고 부르며 1년 유급시킬 것을 권하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이 그 결정을 따르지 않았다는 것이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부모님과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상담 치료까지 받게 됩니다. 그도 어린이에서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도기적 시기라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고 있었던 것이었지요.

 


레이크사이드에서 나를 알았던 사람들이 그 시절의 나에 대해 묘사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외톨이, 너드, 다소 불쾌한 친구......., 아마 나는 그 모든 것에 해당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고 나서 보니 내가 그 시절 정체성을 찾기 위해 참으로 무던히도 애쓰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p.143

 

빌 게이츠는 사립학교인 레이크사이드에 입학하게 되고, 지대한 영향을 주고받았던 친구 켄트, , 릭을 만나게 됩니다. 특히 미래지향적 사고를 하는 켄트와는 매일 전화를 주고받는 각별한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텔레타이프 기계를 마나게 되면서,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했는데, "프로그래밍은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끊임없는 욕구를 자극"했다고 합니다. 훗날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 창업하게 될 폴을 만난 것은 어쩌면 운명이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켄트와 릭이 집으로 돌아간 후에도 폴과 빌 게이츠는 남아서 각자의 프로젝트에 몰두했으며, 한밤중에 몰래 집을 빠져나가 밤새도록 컴퓨터와 씨름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친구들과 첫 번째 소프트웨어 제품을 완성하며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으나, 각별한 친구였던 켄트를 사고로 잃게 되는 슬픔을 겪기도 합니다. 켄트는 "다른 사람이 나를 더 나아지도록 도울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깨달음"이라는 우정의 유산을 남기고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어느 날, 레이크사이드 스쿨의 친구 중 한 명인 폴 앨런이 내 기숙사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획기적인 컴퓨터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뜬 목소리로 알렸다. 나는 우리가 그 컴퓨터를 위한 BASIC 언어를 작성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전에 그런 작업을 해본 경험이 있었기에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나가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그 끔찍했던 로 디바이드 고개에서의 하루를 되짚으며 그때 작성했던 평가기 코드를 기억 깊은 곳에서 불러오는 것이었다. 나는 그것을 컴퓨터에 타이핑했고,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큰 회사 중 하나와 새로운 산업의 출범을 이끌어 낼 씨앗을 심었다. p.20

 

<소스 코드 : 더 비기닝>은 빌 게이츠의 성공담을 들려주는 것이 아닌,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그쳐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기 전까지의 성장기를 회고한 자서전입니다. 이 책이 조금 더 특별한 것은 대부분의 인물들이 자서전을 대필하는 것과 달리 본인이 직접 집필했다는 것입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자란 엘리트지만, 그의 성장기는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학창 시절엔 지진아로 불리기도 했으며, 사회적 상호 작용에 관심이 없는데다가, 기대치가 높은 어머니와 갈등을 겪었다고도 합니다. 어머니와의 말다툼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식탁의 물컵을 들어 그의 얼굴에 끼얹었다고 하는데요. 이때 그는 "샤워, 고맙네요."라며 싸늘하게 반응했다고 하니, 그 또한 나름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어린 시절엔 독서와 수학, 혼자만의 사색 시간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 외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하는데, 어쩌면 그런 모습들이 선생님을 비롯한 어른들이 보기에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아이로 보였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 책은 자서전 3부작 중 첫 번째 책으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기 전까지의 성장기와 그의 성장기에 영향을 준 가족을 비롯한 친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PC 세대들에겐 왠지 모를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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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사망법안, 가결
가키야 미우 지음, 김난주 옮김 / 문예춘추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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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부터 자주 접하는 뉴스 중 하나는 바로 저출산과 고령화입니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고령화를 가속시키며, 이렇게 진행되면 50년 후엔 고령 인구가 전체 인구의 절반을 차지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들면서 경제 성장률은 떨어지고, 국민연금 재정에도 영향을 끼쳐 기금 소진이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 예측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제목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70세 사망법안, 가결>50대 가정주부 다카라다 도요코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들여다보고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이웃나라 이야기지만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한 경제 성장률 저하와 국민연금 재정 고갈 등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야기라는 생각도 듭니다. 가키야 미우는 결혼난, 저출산, 고령화, 주택대출 등 현대사회의 문제를 바라보는 글로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고 하는데요. <며느리를 그만두는 날>, <노후자금이 없습니다>, <이제 이혼합니다>, <결혼 상대는 추첨으로>, <파묘 대소동> 등등 그의 대표작들의 제목만 봐도 그 내용을 유추할 수 있을 듯합니다.

 

70세 사망법안이 가결되었다.

이에 따라 이 나라 국적을 지닌 사람은 누구나 70세가 되는 생일로부터 30일 이내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 예외는 황족뿐이다. 더불어 정부는 안락사의 방법을 몇 종류 준비하여, 대상자가 그중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배려할 예정이다. (중략) 1차 시행 연도의 사망 예정자는 이미 70세가 넘은 자를 포함해서 약 2,200만 명, 2차 시행 연도부터는 해마다 150만 명 전후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p.8

 

70세가 되면 황족을 제외하고 누구라도 30일 이내에 죽어야 한다는 사망법안, 이는 저출산과 고령화가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진행되면서 연금제도가 붕괴되고, 국민의료보험은 바닥을 드러내기 직전이며, 장기요양보험은 재원이 충당되고 있지 않는 현실을 반영하여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인권 침해의 극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는 사망법안은 전 세계로부터 비난을 받게 되었으며, 폐지를 촉구하는 성명이 빗발치고 있는 상황입니다.

 

사망법안은 13년 동안 시어머니 병수발을 들고 있는 55세 가정주부 다카라다 도요코 가족의 일상에도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다카라다 도요코는 정신은 멀쩡하지만 움직임이 불편한 시어머니의 배변 기저귀를 가는 것뿐 아니라 밤낮없이 호출하는 통에 수면 부족은 물론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고단한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아내의 일상에 관심조차 없습니다. 사망법안이 가결되자, 남은 자신의 삶을 즐기겠다며 조기 은퇴하고 세계여행을 떠났습니다. 할머니 병수발을 도와달라는 엄마의 말에 독립하여 따로 살고 있는 딸은 아이러니하게도 공공 노인 요양원에서 일하고 있으며,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입사한 아들은 인간관계를 힘들어하며 직장을 그만둔 상태로 3년 째 은둔형 외톨이로 살고 있습니다. 두 명의 시누이는 유산에만 관심이 있을 뿐, 자신의 엄마를 돌볼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가족 중 어느 누구도 다카라다 도요코의 고단한 삶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이는 없습니다. 다카라다 도요코에게 한줄기 희망으로 다가온 사망법안, 이제 2년만 잘 견디면 되는 걸까요?

 

겨우 15.......

아아, 자유롭고 싶다.

내일부터라도. 아니, 지금 당장.

어떻게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지?

이 집을 뛰쳐나가는 길밖에 없다.

그렇다면, 가출?

그러니까 그 말은....... 이혼?

하지만 혼자서 살려면 돈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좋지? p.63

 

어느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수고로움, 사망법안 가결 후 더 깐깐해진 시어머니, 남은 생을 즐기겠다며 세계여행을 떠난 남편,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꼬투리만 잡는 시누이들..., 다카라다 도요코는 가출을 결심합니다. 가족들 중 누구라도 도요코의 입장을 헤아려 봤더라면, 고령화 문제가 자신의 삶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해 봤을 것입니다. 방관하던 가족들에게 도요코의 가출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옵니다.

 

70세 사망법안 가결은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저출산과 맞물린 고령화 사회의 현실적 문제를 실감하게 하고, 문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만들며,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가게 만듭니다. 도요코네 가족들도 병수발과 살림이 자신들의 몫이 되자 어떻게든 해결 방법을 찾으려 애를 씁니다. 그러는 과정을 통해 도요코의 입장을 헤아리게 되고, 그녀가 얼마나 힘들었을지에 대해 절로 공감하게 됩니다.

 

고도성장을 이끌어낸 세대라는 것을 앞세우며, 70 살이 되면 죽으라는 법안에 동의할 수 없다는 노인들, 월급에서 꼬박꼬박 연금보험을 떼고 있지만 연금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것에 화가 난다는 젊은 사람들, 그들 모두를 만족시켜줄 방법이 있기는 한 것일까요? 개인들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도 파탄에 이른 현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경기 대책밖에 없다는데, 경제대국으로 다시 살아날 방법은 무엇일까요?

 


이야기는 도시락 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도요코가 주부 경험을 살려 판매 전문가로 나아가는 모습과 더불어 가족들 또한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끝이 납니다. 2년 후에 시행될 예정인 70세 사망법안은 어떻게 되었을지에 대한 궁금증은 책을 통해 확인하길 바랍니다.

 

<70세 사망법안, 가결>은 저출산과 맞물린 고령화로 인한 경제 성장률 저하, 연금 기금 고갈로 인한 세대 간의 갈등은 물론 근로자들을 착취하는 악덕 기업,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려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자식들, 유산 상속을 둘러싼 다툼, 전업주부의 가사 노동에 대한 가족들의 인식, 노인 돌봄 문제, 경력단절로 취업이 쉽지 않은 중년 여성들의 이야기 등등 현대사회의 문제를 보여주며,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무엇보다 이웃나라 이야기지만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이야기는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합니다.

 

꿈오리 한줄평 : 엄마이자 아내이자 며느리로 살아가는 중년 여성 도요코의 삶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현대사회의 문제를 들여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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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 별사
정길연 지음 / 파람북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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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양반전>, <허생전> 등의 작품을 쓴 작가이자 박제가, 홍대용과 더불어 18세기를 대표하는 북학파 실학자, 바로 연암 박지원입니다. 교과서나 역사책에서 자주 접하는 인물이지만, 그의 삶에 대해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을 듯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의, 별사>는 조금 더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된 소설이기는 하지만,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이 등장하여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과 재미를 더합니다.

 

연암 박지원이라면 가장 먼저 실학파를 떠올리고, 이어 당대 최고의 문사이자 저 놀라운 <열하일기>의 저자로 기억하고, 나아가 꽤 알려진 특유의 호방한 기질과 처세와 풍모를 언급한다. 안의 현감으로 42개월을 재직한 사실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고 있지 못하거나, 알고 있더라도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다. 연암의 글이나 그곳에서 벗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제외하면, 오늘날의 함양군 안의면에 실체적 궤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까닭도 있겠다. <안의, 별사>에서 그 시간과 공간을 구현해보고 싶었다. '작가의 말' ~

 

안의, 별사(安義, 別辭)는 안의에서 이별하는 이야기(직역하면, 안의에서 이별의 인사)라는 뜻으로 연암 박지원과 한 여인과의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장편 역사소설입니다. 1792년부터 4년 동안 안의현 현감으로 재직할 당시에 있었던 실제 역사 이야기에 은용이라는 가상의 여인과의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가미하여 몰입감을 선사하는데요. 2층으로 된 창고를 헐어 연못을 만들었다든가 아전들의 비위를 감독하여 횡령한 곡식을 환수하였다든다 송사 문제를 해결하였다든가 흉년이 들 때면 백성들과 함께 죽을 먹으며 동고동락했다는 이야기는 잘 모르고 있던 연암 박지원의 삶과 더불어 현재를 살아가는 권력자들이 갖추어야할 덕목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연암 박지원과 안의현 과수(寡守 남편을 잃고 혼자 사는 여자) 연주가 은용이 번갈아 화자로 등장하여 들려주는 이야기는 안의현 현감 박지원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자, 재가 대신 자결을 선택하여 열녀가 되기를 바라던 시대를 살아야했기에 연모의 정으로만 끝내야했던 한 여인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대중없지는 않습니다. 제집에서 건너간 매화목이 아닌가요. 그리고........ 오늘이 어떤 날인가요. 되돌아온 매화라, 이처럼 확실한 언명이 또 어디 있겠는지요. p.23

 

이야기는 체직으로 안의현을 떠나는 박지원이 보낸 매화목과 편지를 받은 은용이 이별에 대한 슬픔을 견디어낼 것임을 드러내며 시작합니다. 어쩌면 두 사람의 인연은 은용의 당호 '인연 없는 집'처럼 맺어질 수 없는 인연이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서녀로서 받는 차별, 혼인한 지 두 해 만에 남편을 잃은 과수, 열녀가 되어 가문을 빛내주기를 바라는 아버지와의 인연을 끓어낸 딸이라는 아픔을 지닌 은용, 그렇게 내려온 외할아버지 댁에서 운명처럼 만난 이가 바로 현감으로 내려온 박지원입니다. 가족과 백성을 향한 애민과 연민의 마음이 컸던 박지원이었기에 비록 허구의 이야기일지라도 두 사람은 맺어질 수 없는 인연이었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아내는 쉰한 살에 들어서자마자, 그리고 내가 막 선공감 감역으로 첫 음직을 얻어 겨우 양식 근심이나마 덜게 되자마자, 마치 평생의 과업을 마친 사람처럼 급히 시들었다. 백 약첩이 무효했고, 하늘이 무심했다. 아니다. 무심하기로는 지아비인 나를 첫손에 꼽아야 할 터인즉, 회한이 가슴을 친다. p.53

 

고생만 하다가 세상을 떠난 아내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형, 맏딸 그리고 큰 며느리까지 잃은 그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그럼에도 "처참하고 낙담한 표정을 감추어야 하는 상황", 슬픔조차도 애써 참아야 하는 시대의 아픔이 드러나는 듯합니다. 남편과 사별해도 재가가 금지되고 자결로 열녀가 되기를 강요하던 시대, 재가로 낳은 자식은 관직에 나갈 수 없었던 시대를 살아간 여인들의 아픔 또한 마찬가지겠지요?

 

'이용'이란 무엇인가. 이롭게 쓴다는 뜻이다. 백성들이 도구나 재화를 사용하여 그들의 일상생활을 편리하도록 꾸리는 것이다. '후생'이란 무엇인가. 넉넉하고 윤택한 삶이다. 의복이나 음식이 부족하지 않게 되면 백성들은 저절로 행복하여 콧노래를 부를 것이다. '정덕'이란 무엇인가. 바른 마음이다. 백성들에게 아름다운 도덕을 가르치면 말하지 않아도 바르게 살리라. p.128

 

박지원은 안의현 현감으로 재직 당시 "이용한 뒤라야 후생할 수 있고, 후생한 뒤라야 정덕을 할 수 있다"며 백성들의 구휼에 힘쓰고, 물레방아를 설치하는 등 이용후생 사상을 실천하려 했습니다. 무엇보다 아전들이 백성들의 구제를 위한 관의 재물을 횡령한 범죄를 드러내어 벌하는 것이 아닌, 녹봉이 없어 겪어야만 하는 아전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횡령한 곡식을 환수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은 백성들을 향한 애민과 연민의 마음이 아닐까 합니다. "관인이든 관속이든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그 본래의 임무는 백성의 삶이 나아지도록 권고하는 것(p.145)"이라며, 사사로이 관속을 동원하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고 하니, 이런 애민의 마음이야말로 관직에 있는 이들이 가져야할 기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은용은 장악원 악사였던 외할아버지로 인해 현감이었던 박지원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일가친척 없는 픙진세상에 외손녀를 혼자 두고 떠날 수 없었던 할아버지는 박지원과 인연을 맺기를 바라기도 했지만, 두 사람은 끝내 인연을 맺지 못하였습니다. 이야기는 은용이 박지원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후, "인연이 다하였으니, 세초하려 하네.(p.558)"라며 박지원과 인연이 된 것들을 떠나보내며 끝이 납니다.

 

안의, 별사(安義, 別辭)는 안의에서 이별하는 이야기(직역하면, 안의에서 이별의 인사)라는 뜻으로 연암 박지원과 한 여인과의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장편 역사소설입니다. 1792년부터 4년 동안 안의현 현감으로 재직할 당시에 있었던 실제 역사 이야기에 은용이라는 가상의 여인과의 만남과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가미하여 몰입감을 선사하는데요. 2층으로 된 창고를 헐어 연못을 만들었다든가 아전들의 비위를 감독하여 횡령한 곡식을 환수하였다든다 송사 문제를 해결하였다든가 흉년이 들 때면 백성들과 함께 죽을 먹으며 동고동락했다는 이야기는 잘 모르고 있던 연암 박지원의 삶과 더불어 현재를 살아가는 권력자들이 갖추어야할 덕목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꿈오리 한줄평 : 역사적 사실에 허구를 가미한 이야기를 통해 가족과 백성들을 애민하고 연민한 박지원의 삶을 들여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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