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살인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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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가지 의혹도 하나의 증거는 될 수 없다.


-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중에서 -


책을 다 읽은 후에 잠시 멍해졌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중간중간 받기는 했지만, 이건 정말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었다.

'이치로이 고즈에'는 1997년 11월 6일 밤에 괴한의 침입을 받아 죽을 뻔 했지만 기지를 발휘하여 범인에게 타격을 입혔고 살아났다. 괴한은 도망쳤고 경찰들은 주변을 탐문했지만 범인을 찾지는 못했다.

고즈에의 증언과 범인이 떨어뜨린 학생수첩을 근거로 범인은 고등학생인 '구츠와 기미히코'로 밝혀지지만, 그는 이미 사건 발생 전인 2월 15일부터 가출 혹은 실종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학생수첩에 적혀 있던 다른 피해자들에 대한 내용이었다. 수첩에는 고즈에를 포함한 4명의 이름, 나이, 직업, 연락처 등과 함께 살인에 대한 내용이 적혀 있었는데, 그것이 실제 발생했던 살인사건들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용의자인 구츠와 기미히코의 행방을 전혀 알 수 없는 가운데 사건은 해결되지 못한 채 4년이 흘렀다.

그리고 2001년 12월 31일, 고즈에 사건을 이야기하기 위해 미스터리 창작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교류 겸 스터디를 위한 모임인 '연미회' 사람들 5명이 모인다.

사실 고즈에가 가장 알고 싶었던 것은 범행 동기였다. 자신은 구츠와 기미히코와 일면식도 없었기에 왜 타깃이 되어야 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범인의 행방이 묘연한 지금 범인에게 직접 그 동기를 들을 수는 없으므로 연미회 사람들의 추리에 기대를 품게 된다.

이 날 모인 연미회 사람들은 미스터리 작가, 사립 탐정을 하는 전직 경찰, 범죄 심리학자 등이었는데, 유명한 사람들도 포함되어 있어 고즈에는 이번에야말로 동기를 알 수 있으리란 큰 기대를 갖는다.

각 탐정(멤버)들은 사건 자료 혹은 조사를 통해 알게 된 사실들을 근거로 자기만의 추리를 펼친다. 누군가의 추리쇼가 끝나갈 즈음엔 기존의 추리를 뒤집는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나면서 또다른 누군가의 추리쇼가 시작된다.

고즈에의 입장에서 그들의 추리는 저런 부분까지 생각을 하다니, 라며 놀라는 부분들도 많지만 대부분은 우연에 의지해서, 또는 약간의 억지를 붙여 추리쇼를 펼친다. 우리가 생각하는 능력있는 탐정은 사소한 우연에 의지하지 않고 작은 빈틈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인과관계를 따지는데 말이다.

그리고 마침내 밝혀지는 범인은 뒤통수를 후려치는 반전이었다. 사실 책을 읽다가 몇 차례 위화감을 주는 문장들을 느꼈는데, 그래도 이런 결말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 친구 뭔가 이상하다, 싶은 그런 기분은 분명 느꼈는데 말이다.

요즘 세상에는 동기도 이유도 공감이 가지 않는 사건들이 많다. 이 책 역시 그런 의미에서 범인(들)의 살해 동기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런 범죄들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기에 그저 소설 속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만도 없다. 

 

다 읽고 나니, 무섭고 끔찍한 제목 <끝없는 살인>의 의미가 크게 와 닿는다. 아직은 끝난 게 아니야... 란 섬뜩함을 던져주는 제목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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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여행자들 오늘의 젊은 작가 3
윤고은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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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을 상품화한 여행 상품을 파는 '정글'에서 여행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요나', 그녀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일하고 있었다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직장에서의 위치가 흔들리고 있었다. 회사에서의 위치를 잃은 퇴물들만 성추행 대상으로 삼던 상사 '김'이 그녀를 노골적으로 성추행하고 기획업무에서 빼고 신입들이 할 만한 허드렛일을 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오랫동안 근무해 온 회사에서 더 버티려 했지만 지쳐버린 요나는 사표를 내고, 김은 휴가 처리를 해 주겠다며 회사에서 검토중인 여행 상품 중 하나를 다녀와 머리도 식히고 상품의 존폐여부도 결정하라고 한다.

그렇게 요나는 '사막의 싱크홀'이라는 상품을 선택하고 '무이'라는 섬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무이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던 날, 요나는 전날의 과음으로 인한 숙취로 기차의 다른 칸 화장실을 이용하게 되고 그 사이 기차의 칸이 분리되어 일행들과 떨어진다. 요나는 전혀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서 배터리마저 간당간당한 휴대폰으로 '폴'을 찾으라는 문자를 받고 여차여차해서 다시 원래의 무이로 돌아오게 된다.

직장에서의 성추행, 머리를 식히기 위해 떠난 여행 등 이야기의 소재가 될 만한 것들이 어느 정도 나왔다고 여겼고, 그래서 그런 요나의 여행과 심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설이겠거니 생각했다.

아뿔사, 완전한 나의 착각이었다.

본격적인 소설은 어쩌면 요나가 일행들로부터 이탈해 다시 무이로 돌아와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았다.

무이의 유일한 리조트인 '벨에포크'의 매니저는 요나에게 리조트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요나는 외출했고 일행들과 여행자로서 보냈을 때와는 다른 마을의 모습을 하나하나 발견한다. 거기다 트럭이 사람을 치고, 다시 밟고 가는 모습을 목격한 요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요나가 정글 여행사의 직원인 것을 알게 된 매니저는 한가지 제안을 한다.

재난 여행지로서의 매력이 떨어진 무이를 다시 재난의 한가운데에 두어 새로운 재난 여행지로 만드는 것.

재난이라는 건 그냥 찾아오는 것이지,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라고 보통 생각한다.

그런데 이들은 그 재난을, 싱크홀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피해자를 만들고, 그 안에 감동적인 스토리를 입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자 한다.

- p. 122

재난은 그저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다. 어느 날 발밑이 갑자기 폭삭 무너지는 것처럼 우연이라기엔 억울하고 운명이라기엔 서글픈, 그런 일.

그런데 그런 일을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을까.

- p. 129

진짜 재난이 뭔 줄 아십니까?

바로 재난 이후의 상황입니다. 그때 삶과 죽음이 또 한 번 갈라니까요.

재난 이후에 올 진짜 재난에서 최대한 무이를 살리는 것, 그게 고요나 씨의 몫입니다.

그렇게 누군가는 타인들에게 더 감명을 주기 위한 재난의 시나리오를 만들어내고, 누군가는 그 재난 지역을 대상으로 한 여행 프로그램을 짜고, 누군가는 인위적 재난을 위한 피해자들을 트럭으로 치어 죽인다.

재난을 인위적으로 만들고 불필요한, 쓸모없는 주민들은 시나리오에서 이름조차 부여받지 못하고 남자1 혹은 여자1, 대사조차 없는 악어1 등으로 불리며 계획된 재난의 날에 던져진다.

다행이랄까(사실은 다행은 아니지만), 이기적인 목적을 가지고 위장된 재난을 만들려던 그들의 계획은 거대한 자연의 힘, 진짜 재난 앞에서 속수무책 당할 수 밖에는 없다.

일상에서 겪을 수 있는 직장 내 문제와 휴식을 위한 여행에서 시작된 요나의 무이에서의 생활은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타인의 재난을 대하는 보통의 사람들의 심리에 약간은 뜨끔했고, 거대한 재난 프로젝트를 계획하며 많은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들의 극악한 이기심에 놀랐다. 그리고 사람들은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결국은 하찮은 존재일 뿐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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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매기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8
김금희 지음 / 현대문학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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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훈과 매기의 사랑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일반의, 상식의 눈으로 그들을 간단히 '불륜'이라는 이름으로 정의해도 되는 걸까?

프라이빗한 사랑이라도 세상에 당당하게 '쇼잉'할 수 없는 그들의 연애는, 왜 이리 애잔하고 먹먹한 마음이 드는 걸까...

- p. 60

매기와 나와의 관계에서 선택이란 가능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빗물처럼 손바닥을 적시듯 매기가 내 인생으로 툭툭 떨어져 내렸다는.

재훈과 매기는 대학 시절 연인이었으나 재훈이 군대를 간 이후 헤어지게 되었고, 14년 정도가 지난 이후에 재회하게 된다.

이미 결혼을 해서 남편과 아이가 있는 매기와 재훈은 다시 육체 관계를 가지는 사이가 되고, 재연배우인 매기는 육지로 촬영을 올 때마다 재훈의 방에서 묵고 간다.

혹여나 재연배우인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몰라 매기는 밖을 다닐 땐 재훈과 거리를 두고 걷고, 당당하게 자신의 연애와 사랑을 드러내고 싶은 재훈은 그런 매기가 야속하고 서운하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유지되는 듯 하다 거리를 두고, 또 유지되는 듯 하다 결국엔 끝을 맺는다.

사실은 소설의 줄거리를 어떻게 써야할 지 잘 모르겠다.

재훈은 대학에서 매기를 만나 친해지고 사귀게 된 상황, 그 뒤 매기와의 연애의 에피소드를 하나씩 끄집어낸다. 그러나 정당한(어찌되었든 우리나라는 일부일처제이고, 재훈과 매기마저 당당하지 못한 연애였으므로) 연애가 아니다보니, 그들 사이의 에피소드는 사랑의 무한한 행복이나 기쁨을 보여주기보다는 조금 먹먹하다.

재훈이 세 들어 살던 2층집에서 사랑을 나눌 때 풍기는 1층 레이디치킨의 기름냄새, 여의도의 유명한 복집에서 정작 매기와 매기의 친구가 회덮밥을 먹었던 이유, 문자나 연락처 등을 정식 이름으로 기재할 수 없어 만든 '매기'라는 별명, 재훈이 '매기'라는 별명을 그녀에게 지어준 순대국밥집 등등 흔한 맛집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하고 자신들의 연애를 마음껏 드러내고 즐기지 못한다.

하지만 어쩌면, 결국은 이렇게 끝이 날 연애가 아니었을까...

책을 읽어가면서도 이들의 연애가 끝끝내는 행복해지겠지, 라는 생각이 든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 p. 112

나는 우리가 자꾸 어긋나고 상대를 향한 모멸의 흔적을 남기게 된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고 매기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냥 그것은 시작과 동시에 숙명처럼 가져갈 수밖에 없었던 슬픔이라고.

그러니까 우리가 덜 사랑하거나 더 사랑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고.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서로에게 생채기만 낸 것 같은 아픈 사랑이었지만, 누군가를 가슴에 품고 사랑한 행위가 스스로를 예전과는 다른 사람으로 성장시킨다면... 어쩌면 재훈과 매기에게 있어 함께 한 사랑의 추억은 오래도록 그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을 것만 같다.

- p. 124

어쩔 수 없이 손가락들이 스쳤다. 나는 그것을 주고받았을 때의 느낌을 아마 긴 시간이 흘러도, 어쩌면 매기와 관련한 기억들 중에서 가장 무거운 무게로 가져가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어디에도 미뤄지지가 않는 것이었다. 매기에게도 정권에게도 이 세상이나 어느 사랑에게도.

아무리 동산 수풀은 사라지고 장미꽃은 피어 만발하더라도, 모두 옛날의 노래를 함께 부르고 시간이 지나 나의 사랑, 매기가 백발이 다 된 이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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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현모양처의 죽음 해미시 맥베스 순경 4
M. C. 비턴 지음, 전행선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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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평화로움을 찾은 로흐두 마을, 날씨마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날들이었다. 그랬던 로흐두 마을의 비어 있던 월릿츠 씨의 집에 토머스 부부(폴 토머스, 트릭시 토머스)가 이사오면서 마을의 분위기가 변한다.

토머스 부부는 자신들이 너무 가난해서 실업수당을 받는 중이라며, 이 곳을 민박으로 운영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해미시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에게 가난을 빌미로 동정을 사면서 마을 사람들의 집에 있는 골동품들을 공짜로 혹은 아주 싼 가격으로 얻어낸다.

트릭시는 집안일도 척척이고 언변도 좋아 금새 마을 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트릭시가 마을 부인들의 선두에 서서 이들을 이끌며 흡연 반대, 채식과 건강식, 보호종인 박쥐 보호 등을 주장하면서 기존의 생활을 뒤엎으려고 하자 마을 남자들은 그녀를 무척 불편해한다.

그렇게 트릭시를 죽이고 싶을 만치 분노를 느끼는 마을 남자들이 늘어나던 중, 트릭시가 자신의 집에서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채 발견된다.

그리고 트릭시의 살인 사건을 조사하는 중, 마을의 점성술사인 앵거스 맥도날드 역시 뒷문에 누군가 놓고 간 독이 든 위스키병을 마실 뻔한 사건이 일어난다.

트릭시를 죽이고, 앵거스를 죽이려고 한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책 제목인 현모양처는 바로 트릭시를 가리키는데, 책 속에서 트릭시는 못하는 집안일이 없을 뿐 아니라 약간은 무능력해 보이는 남편 폴보다 모든 일을 더 잘한다. 그래서 폴은 전적으로 트릭시를 믿고 의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많은 집안일을 해 오면서도 남편에게 크게 인정받지 못하던 주부들인 마을 부인들은 자신들조차 알지 못하는 불만이 마음 속에 숨어 있었던 듯 하다.

그런 그녀들이 트릭시를 만나면서 변화한다. 적어도 그녀들이 느끼기에는 말이다.

- p. 212

난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인 듯 느끼며 살았어요.

글래스고나 에든버러나 인버네스 같은 곳에 가면 늘 사람들이 직업이 뭐냐고 물어봤거든요. 그럼 난 가정주부라고 얘기했어요. 그럼 사람들이 '그게 다예요?'라고 물었죠.

그런데 트릭시는 가정주부 일이 아주 고결한 직업이라고, 제대로 하기만 하면 대단히 큰 만족을 느낄 수 있다고 얘기했죠.

나는 그 모든 일과 위원회 같은 데 완전히 매료됐어요. 꼭 술에 취한 기분이었다니까요.

그녀는 늘 칭찬을 해 줬는데 지금까지 아무도 내게 그렇게 해 준 사람이 없었거든요.

음.. 하지만 마을 부인들의 대대적인 지지를 받고 마을의 지주인 할버턴스마이스의 신뢰까지 받던 트릭시의 실체는 전혀 달랐는데...

촉이 무척 좋은 해미시는 트릭시를 처음 본 날부터 그녀에 대해 꺼림칙한 느낌을 가졌지만 말이다.

역시나 해미시와 프리실라의 관계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말이다. 이번 편에서 프리실라는 마을에 돌아오고 일주일이 넘어서야 해매시를 만나러 오는데, 이번에도 역시 마을에 혼자 돌아온 것이 아니었다. 썸을 타는 중인 잘생긴 증권 중개인인 존 벌링턴과 함께 마을에 온다.

그 참... 그러고 보면 프리실라는 늘 런던에서 새로운 남자를 데려온다. 알쏭달쏭한 프리실라와 해미시의 관계...

프리실라는 이번 편에도 해미시와 함께 있을 때는 존 생각을 하지 않고, 해미시에 대한 마음이 있다는 기색을 많이 내비친다.

질투도 하고 말이다.

- p. 111

트릭시가 거짓말을 한 게 분명하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과거 해미시가 여기저기 추파를 던지고 다녔던 사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프리실라는 자신이 해미시 맥베스에게 끌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해미시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가 이따금씩 그녀를 어린 철부지처럼 생각한다고 간주했다.

그런데, 그런데... 프리실라가 과연 그런 말을 할 입장인가?^^;;

아까도 언급했지만, 새로운 이야기마다 새로운 남자를 데려와 해미시의 마음을 아프게 한 건 프리실라가 아니던가?

그리고 해미시와 프리실라의 '행복'에 대한 기준이 서로 달랐던 듯 하다. 로흐두 마을에서 평화롭게 스스로 만족하며 살길 원하는 해미시와는 달리 프리실라는 해미시가 자신의 일에 야망과 야심이 없다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을 넘기며 해미시가 스스로 이뤄낸 행복을 보는 것 같아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음... 프리실라는 남자 보는 눈이 너무 없는 걸로... 지금껏 제대로 된 마을로 데려온 남자 중 제대로 된 남자는 없었던 듯... ^^

- p. 228

날 여기 묶어 두는 게 내 아둔함이나 수줍음 같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언제쯤이나 당신 머리가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난 로흐두를 사랑하고, 로흐두 사람들도 좋아하고, 여기에 있는 게 행복해요.

내가 왜 사회의 통념에 맞춰 로흐두 밖으로 나가 승진을 하고 돈을 벌고 하는 식의 성공을 해야 하는 거죠?

난 성공했어요, 프리실라. 요즘 나처럼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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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와 나오키 3 -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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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지 않아. 이 빚은 반드시 갚아줄 거야.

... 당하면 두 배로 갚아줘야지.

- <한자와 나오키 3> 55쪽 -

 

 

일본에서 경이적 시청률을 자랑하며 최고의 인기를 끈 드라마 '한자와 나오키', 드라마는 보지 못했지만 한자와의 역할을 맡은 배우 '사카이 마사토'의 연기를 좋아했던 터라 드라마의 인기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이번 3편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은 2020년 4월경 방영 예정인 <한자와 나오키 시즌2>의 원작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한자와가 어떤 통쾌한 한 방을 선사해줄 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은행에서 좌천된 한자와 나오키는 '도쿄센트럴증권'에서 부장으로 근무중이다. 어느날 유망한 IT벤처기업은 '전뇌잡기집단'의 히라야마 부부가 도쿄센트럴증권을 찾아온다. 그들은 전뇌잡기집단과 쌍벽을 이루는 IT벤처기업의 대표주자인 '도쿄스파이럴'을 인수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업계 경력이 짧아 M&A 실적이 별로 없는 도쿄센트럴증권의 모로타 쇼이치 차장은 이런 대형 프로젝트일수록 고액의 자문료를 받고 입지를 쌓을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러나 한자와는 쉽지 않은 현실을 알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선뜻 결정하지 못한다.

모로타 차장의 강행으로 한자와도 마지못해 허락하게 되고, 모로타 차장은 인수합병 프로젝트를 위해 팀을 꾸린다. 그런데 원래 전뇌잡기집단을 담당했던 모리야마는 모로타 차장의 눈 밖에 나서 이 프로젝트에서 제외된다.

그러나 2주 후 전뇌잡기집단으로 인수합병 프로젝트를 설명하러 간 도쿄센트럴증권은 모회사인 도쿄중앙은행 증권영업부에게 자문회사 자리를 빼앗기고 만다.

눈 앞에서 프로젝트를 뺏긴 한자와는 이 빚을 반드시 갚겠다라고 결심한다.

한자와와 모리야마는 도쿄중앙은행이 이 프로젝트를 알게 된 경위, 전뇌잡기집단이 실적이 약간 도쿄센트럴증권에 맨 처음 일을 맡기려고 한 경위 등에 의문을 품고 조사를 해 나가고 진실에 조금씩 접근해 간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잃어버린 세대', 즉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는 1994년부터 2004년에 걸친 취업 빙하기에 세상에 나온 젊은이들을 가르킨다. 이전 세대가 '거품'이라고 할 만큼의 기이한 시대를 만들어내고 붕괴시켰음에도 취업도 제대로 못하고 손해를 보는 건 현재 젊은 세대들이었다.

책에서도 능력있는 모리야마 등의 젊은이들은 능력이 없어보이는 거품 세대인 모로타 차장이나 미키에 의해 중요한 프로젝트에서 제외된다.

 

- P. 34

거품이 붕괴한 뒤, 세상 전체가 불경기라는 이름의 터널로 들어가 출구를 발견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괴로워했던 지난 10년, 1994년부터 2004년에 걸친 취업 빙하기에 세상에 나온 젊은이들. 그런 그들은 나중에 모 신문에서 사용한 명칭에 따라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 즉 '잃어버린 세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거품 세대를 밥벌레 세대라고 부정적으로 봐 온 모리야마였지만, 한자와와 함께 도쿄중앙은행과 전뇌잡기집단의 실체를 접하고 진실을 캐 나갈수록 다른 시선을 갖게 된다.

은행의 증권부 사람들은 끊임없이 한자와를 궁지로 몰기 위한 계략을 꾸미지만, 실력과 정정당당한 정면승부로 한자와는 그들에게 당당히 대응하며 그들의 부당한 방법들을 막아선다. 조직의 힘을 내세워 한자와를 압박해도 한자와는 자신이 생각하고 추구하는 길을 간다.

정말 한자와같은 저런 상사가 있을까?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보신을 위해 부하 직원들을 압박하고, 부하의 공을 가로채고, 일의 책임에선 한 발 물러서는 '답 없는 꼰대' 상사들은 분명히 여기저기 많이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이번에도 역시 나쁜 놈들에게 통쾌한 한 방을 먹였다. 책을 읽다 너무 속 시원해서 웃어버렸다. 비록 소설이지만, 이런 사람도 있다는 건 큰 위안과 용기를 준다.

한자와처럼 세상의 부당함에 당당히 맞서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부당함을 인지하고 그것에 쉽게 물러서거나 고개 숙이지 않는 것... 눈 앞의 이익에 취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눈이 흐려지지 않는 것... 그렇게라도 조금은 살만한 세상에 한 발 내딛을 수 있도록 한자와와 모리야마의 앞길을 응원한다. 그들 앞에 꽃길이 펼쳐지길...

(4편에서도 한자와는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겠지만~~ ^^)

 

 

- p. 257

그럴지도 모르지. 조직에도 휘둘리고 세상에도 휘둘리고.

하지만 때로는 그런 것과 정면으로 싸워야 할 때도 있어. 힘 앞에 굴복하기만 하는 건 시시하지 않나? 조직의 논리쯤이야 얼마든지 덤비라고 해!

이 세상에는 압력이 없는 일은 없어. 일뿐만 아니라 뭐든지 마찬가지지. 폭풍우가 있으면 가뭄도 있어. 일을 제대로 하려면 그런 걸 극복하는 힘이 있어야 해.

모리야마, 세상의 모순이나 부조리에 물러서지 말고 철저하게 싸워. 나도 그렇게 해왔으니까.

- p. 449

자네들은 달라. 자네들에게는 사회에 대한 의문이나 반감이라는, 우리 세대에는 없던 필터가 있고 뿌리 깊은 문제의식이 있으니까.

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자네들일 거야. 잃어버린 10년 사이에 세상에 나온 자만이, 또는 그 밑에 있는 세대만이 앞으로 10년 사이에 세상을 바꿀 자격이 있을지도 모르지.

잃어버린 세대의 역습은 지금부터 시작될 거야. 하지만 세상이 받아들이게 하려면 비판만 해서는 안 돼.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대답이 필요해.

-

비판은 이제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해. 그러니까 앞으론 자네들의 비전을 보여주게.

왜 단카이 세대가 잘못되었는지, 왜 거품 세대가 틀렸는지. 세상을 어떻게 만들면 모두 받아들이고 행복해질 수 있는지. 회사 조직을 포함해, 자네들은 그런 틀을 만들 수 있을 거야.

-

모리야마, 싸워. 나도 싸울 테니. 그런 식으로 누군가가 싸우고 있는 한, 그래도 세상은 살아갈 만하니까. 그렇게 믿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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