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김명남 엮고옮김 / 바다출판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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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책 날개의 작가 소개에 의하면, 그의 두 번째 장편 <무한한 재미>는 ‘20세기 말 미국 문학을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문제작’이며, <타임>지 선정 ‘20세기 100대 걸작 영어소설 중 하나’였다고 한다. 그만큼 중요하고 세간의 이목을 한 몸에 모은 작가지만 나는 이 에세이집을 통해 처음 접한 작가이다. 표지에 웬 텁수룩한 아저씨가 반다나를 머리에 질끈 묶은 그림을 보고 선뜻 손이 가지 않았지만 제목이 던지는 궁금함-과연 뭐길래 재밌다고들 하지만 두 번 다시 하기 싫을까?- 그리고 트위터 친구 쮸의 강력 추천으로 글을 읽게 되었다.

소감 : 와.
2차 소감 : 우와.
3차 소감 : 대애박.
4차 소감 : 소설 번역 좀 해주세욜 소설 번역 좀 해주세욜 소설 번역 좀 해주...(사실 번역이 된다 해도.. 과연 <무한한 재미>가 번역된다고 내가 읽을 수 있을까? 그 전에 정보손실 적은 우리말 번역이 가능하긴 한 걸까?)
5차 소감 : 북플에 독후감 적으로 옴.

총명하다. 번역가 김명남님은 애정이 듬뿍 담긴 뜻에서 ‘제 뇌에 갇힌 헛똑똑이 백인 남자’라고 작가를 표현했지만 내 느낌은 총명이란 말은 이 작가를 위해 존재하는 말이었구나, 아니 영어 화자니까 intelligence라 그래야 하나? 아무튼 이 단어는 이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단어였구나 하는 생각을 가졌다.

책은 총 9편의 에세이를 담았다. 각각 다른 에세이 단행본, 잡지 기고문 등에서 번역자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여 엄선한 글들이다.


-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잡지 <하퍼스>의 청탁으로 호화 크루즈 여행을 한 경험을 옮긴 것이다. 돈으로 산, ‘응석받이 당하기’식 현대인의 휴식 내면에 배어든 자본주의의 씁쓸한 뒷모습을 참 구석구석 잘도 파헤치는데, ‘으음..’하고 심각하게 읽은 것이 아니라 ‘그만해 이 미친 자얔ㅋㅋㅋㅋㅋㅋㅋㅋ’ 하며 읽었다. 물론 그는 미치지 않았다. 맑은 이성과 도덕심이 있어야 이런 유머를 구사할 수 있다.


- 카프카의 웃김에 관한 몇 마디 말
카프카 문학의 해학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리고 그를 통해 성취한 카프카의 문학적 업적이 무엇인지에 대한 강의이다.

“차라리 학생들에게 카프카의 모든 이야기를 일종의 문으로 상상해보라고 요구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 문에 다가가서 두드리는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우리는 점점 더 세게 두드리고 또 두드리는데, 그냥 들어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꼭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정확히 그 절박함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그 문으로 꼭 들어가야 한다는 필사적인 절박함을 느끼고 있고 그래서 문을 두드리고 들이받고 찬다고. 그러다 이윽고 문이 열리는데... 문이 바깥쪽으로 열린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내내 그토록 들어가고 싶었던 곳에 그동안 내내 들어 있었던 거라고.”

엑스포메이션(Exformation 소통에서 표면적으로는 지워져 있지만 그 소통을 통해 수신자의 마음속에서 환기됨으로써 특정한 연상 관계가 폭발적으로 맺어지도록 만드는 핵심 정보)이란 훌륭한 단어를 알았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


- 권위와 미국 영어 어법
가너의 <현대 미국 영어 어법 사전> 서평이다. 월리스는 이 글에서 사전의 서평뿐 아니라 문법을 올바로 지킨, 표준 영어 구사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한다. 규범주의자 vs 기술주의자의 논쟁을 소개하는 와중에 스티븐 핑커를 포함한 구조주의자•기술주의자들이 문법나치(라고 본인이 자칭)인 작가에 의해 도륙이 나는 참상을 구경할 수 있다.


- 톰프슨 아주머니의 집 풍경
911 테러 당일 작가는 톰프슨 아주머니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이 집에 모인 이웃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서술하며 사건의 비극성과 미국이란 국가의 정체성에 대해 넌즈시 이야기한다.


- 랍스터를 생각해봐
생각해보자. 랍스터는 끓는 물에 산 채로 삶길 때, 고통을 느낄까 느끼지 못할까.


- 조지프 프랭크의 도스토옙스키
조지프 프랭크가 평생을 바쳐 달성한 도스토옙스키의 전기에 관한 서평과 도스토옙스키의 인생과 작품, 그리고 작가의 인생과 그가 속한 시대와 작품을 어떻게 연관시켜 평론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한다.


- 페더러, 육체이면서도 그것만은 아닌
테니스 선수 페더러에 대한 예찬. 내가 스포츠 쪽은 문외한이라 그냥 설렁설렁 읽었다.


- 픽션의 미래와 현격하게 젊은 작가들
창작 아카데미를 통해 양산되고 있는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에 관한 통찰.


- 재미의 본질
픽션 창작을 통한 자기 통찰과 그에 따르는 재미에 관한 설명. 중간에 새옹지마 고사가 인용되어 있는데 중국의 이야기인지 한국의 이야기인지 헷갈려 한다.




* 김명남님 번역. 포텐이 터진다는 게 이런 의미구나 느낄 수 있다. ‘느리터분’ ‘응석받이 당하다’ 같은 단어 선택도 좋지만 월리스가 운율을 담아 쓴 문장의 경우 그 운율을 반영하는데 우리말 문장으로도 나무랄 데가 없다.

*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1962-2008. 우울증으로 힘들어 했고 항우울제 복용, 전기충격요법 등의 치료 과정에서 부작용이 있었다고 한다. 세 번째 장편소설 <창백한 왕> 집필 중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 빌려보지 말고 사 읽을걸. 아~~~~~ 사서 읽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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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8-08-18 1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책이 읽고 싶어지는 리뷰는 오랜만이네요^^

조그만 메모수첩 2018-08-19 21:04   좋아요 1 | URL
독서,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ㅎㅎ 특히 첫 에세이 배꼽 실종 주의보..

CREBBP 2018-08-18 14: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 4차 소감까지가 저랑 똑같네요. 저는 아직 끝에 몇 개 덜 읽었지만.
한 가지 아쉬운게, 엄선했다는게, 엄선했기 때문에 영문판의 여러 에세이집에 수록된 다른 에세이들을 한글로 만날 기회가 적어진다는..
읽고서도 그걸 한 마디로 정리하기는 불가능해보였는데, 이렇게 정리가 가능하군요. 대단하십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18-08-19 21:10   좋아요 1 | URL
수록되지 않은 다른 에세이들이 다른 책으로 번역되어 나오길 기대해보네요!

레삭매냐 2018-09-15 14: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오자 마자 사긴 했는데...

좀 사서 읽다 말았네요. 그닥 재미가
없는 것 같더라구요.

무한한 재미도 원서로 사서 잘 모셔
두고 있습니다. 나중에 번역서 나오면
대조해 가면서 읽으려구요.

역시 독서와 구매는 차이가 있는 모
양입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18-09-15 17:30   좋아요 0 | URL
무한한 재미.. 를 읽을 수 있는 날이 제게 과연 올까 싶습니다 ㅠㅠ 월리스의 에세이를 좋아하는 것과 별개로, 무한한 재미는 언젠가 올려주실 레삭매냐님의 리뷰를 읽는 걸로 대신...
 
제5도살장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0
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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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까먹는 게 싫어서, 정말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이 말 말고는 정직하게 쓸 말이 없구나, 진짜 싫어서 아껴 아껴 읽었다. 읽다가 남은 분량을 체크하고 일부러 앞부분으로 돌아가 좋아하는 장면을 다시 읽으며 최대한 독서를 마치는 시기를 늦췄다. 일단 제 지인분들은 제 원망을 좀 듣습니다 왜 나한테 이거 읽으라 안 그랬니...

작가 커트 보니것은 1944년, 그가 22세때 제2차세계대전에 징집되어 전쟁에 나갔고 그 해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혀 독일군에게 끌려갔다. 이듬해 드레스덴은 연합군에 의해 폭격당하고, 그곳에서 살아남은 미국인은 7명이었다고 하는데 작가 보니것은 그 중 한 명이었다. 당시의 경험은 1969년 <제5도살장 혹은 소년십자군 죽음과 억지로 춘 춤>(이하 제5도살장)의 자양이 된다.

<제5도살장>은 액자식 소설이다. 바깥 액자엔 작가 자신이 등장하며 소설을 적게 된 이유를 밝힌다. 미국으로 돌아온 이후 작가는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생활전선에 나서지만 드레스덴의 기억은 항상 그의 머리를 짓누른

(여기까지 적고 힘이 없어진다. 보니것의 문체는 살짝 물러서서 체념을 담아 우물거리지만 그 와중에 할 말은 또박또박 다 하기 때문에 그 갭에서 유머가 생긴다. 이런 글을 내가 ‘~이랬다’ 하고 독후감을 적으니 작가에게 누를 끼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하지만 시작했으니 어쩔 수 없이 글을 계속 이어간다 ㅠ)

다. 그러던 중 옛 전우 버나드 V. 오헤어를 만나 전쟁을 회고하고, 오헤어의 아내인 메리의 일침을 듣고 작품의 성격을 반전소설로 바로 고정한다. 이 장면은 소설에서 통틀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면이다.

—-
”두 사람은 전쟁 때 아이에 불과했다고요-위층에 있는 저애들처럼!”
나는 사실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실제로 전쟁 때 어리석은 숫총각들이었으며, 유년의 맨 끄트머리에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쓰지 않을 거죠, 그렇죠.” 이것은 질문이 아니었다. 비난이었다.
“어-모르겠는데요.” 내가 말했다.
“글쎄요, 나는 알아요.” 그녀가 말했다. “틀림없이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었던 척할 거예요. 영화라면 프랭크 시나트라와 존 웨인, 아니면 다른 매력적이고 전쟁을 사랑하는 추잡한 늙은 남자들이 두 사람을 연기하겠죠. 그럼 전쟁은 그냥 멋지게 보일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또 많이 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그 전쟁에 위층에 있는 애들 같은 어린 아이들이 나가 싸우게 되겠죠.”
—-

이어 소설은 안 액자로 들어간다. 안 액자의 이야기의 주인공은 빌리 필그림이란 이름의 남자로 작가와 동갑이며(작가도 ‘나’로 작중 등장인물이다) 직업은 검안사이다. 그 역시 드레스덴 폭격의 생존자이며 이후 경제적으로 풍족한 삶을 살지만 정신은 언제나 그때 그곳, 드레스덴에 매여 있다. 그는 트랄파마도어라는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관찰되고 그들의 세계관을 받아들여 시간에서 ‘풀려나게’ 된다. 즉 본인의 의지는 아니지만 과거-현재-미래 어느 시점으로든 이동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소설의 시간은 마구 엉켜있다.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혔나 하면 다음 순간 미국의 보훈병원에 누워 있고, 이어 트랄파마도어의 동물원에 감금되어 관찰되기도 한다. 소설의 구성 역시 트랄파마도어의 순환적 시간관을 반영하여 시작과 끝이 바깥액자 첫머리에 제시되어 있고, 독자는 서술자가 제공하는 시간에 수동적으로 끌려다닐 필요가 없다.

여기서 의문은, 왜 보니것은 목적론적 세계관-테드 창의 <네 인생의 이야기>에 나오는 헵타포드의 세계관과 유사하다-을 택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전쟁의 불가항성, 뜻도 없고 이유도 없이 당하게 되는 전쟁이란 재난을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일 것 같다. 전쟁발발에 조금도 기여하지 않은 개인이 전쟁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저 세상은 부조리하고, 부조리하며, 부조리할 뿐이다. 호박 속에 갖힌 무당벌레처럼 우주의 모든 존재의 시간 속 사건은 이미 결정되어 있고 자유의지란 허용되지 않는다. 그저 전쟁은 벌어지고, 그저 사람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그저 우주는 종말을 맞이한다. 이 모든 것의 집약이, 소설에 106번 등장한다는 서술자의 추임새 “뭐, 그런 거지(So it goes)”에 담겨 있다.

그렇다면 개체는 어디서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트랄파마도어인이 그 해법을 제시한다.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그저 머무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저 그 순간 속에서 영원히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빌리는 어떠했던가. 그에겐 선택권이 없다. 빌리는 뜻하지 않게 이 시간대, 저 시간대로 끌려다니며 끊임없이 전쟁을 경험한다. 용감했던 군사 에드가 더비가 찻주전자를 훔쳤다는 사소한 일로 처형당하는 것을, 그가 죽은 후 묻기 위해 삽을 들고 기다리고 있어야 하며, 굶주린 채 공장의 몰트시럽을 몰래 떠먹어야 하고, 죄없고 힘없는 생명들과 동물들이 무참하게 죽어나가는 것을 감정없이 지켜봐야 한다-만일 일일이 감정적인 대응을 하다간 빌리의 영혼은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모든 것이 이미 결정된 부조리의 세계에서, 트랄파마도어인과 같은 4차원의 감각을 타고 나지 않은 인간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이 부분에서 강력한 반전의 메시지가 뿜어져 나온다고 생각한다. 부조리로 설명할 수밖에 없는 부조리의 세계와 그 비극을 인지한 독자들의 자유의지가 서로 반응을 일으키며 전쟁은 인간이 초래할 수 있는 가장 큰 야만임이 밝혀지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제5도살장>이 문학으로서 가진 힘의 1/10쯤 된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2/10은 내가 미처 발견 못한 의미에서, 나머지 7/10은 보니것 특유의, 힘 뺀 블랙유머가 가득 담긴 문체의 힘에서 나온다. 다음 주엔 원문으로 도전을 해봐야지.

마지막으로 <스콧 니어링 자서전>의 한 부분을 인용할까 한다. 보니것도 동의하며 읽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
˝사람들이 나에게 어느 편을 선택하겠냐고 물으면, 나는 평화를 선택하겠다고 대답했다. 조지 커크패트릭처럼 나는 왜 전쟁을 하느냐고 되물었다. 어느 나라가 이기든, 피해를 입고 고통받는 쪽은 양국의 민중들이다. 실제로 전쟁에서 이기는 쪽은 군수품 제조업자들이고, 지는 쪽은 민중들이었다. 민중들은 전장에서는 죽음과 고통으로, 후방에서는 걱정과 사별로 대가를 치렀다.˝
—-






* 트랄파마도어는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정말 존재한다고 할 수도 있고, 현실을 회피하기 위한 빌리의 망상일 수도 있다. 둘 다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망상이라는 생각이다. 보훈병원 입원 당시 옆 침상의 동료 로즈워터가 읽던, 킬고어 트라우트의 SF소설 내용이 빌리의 세계와 비슷하다는 점, 비행기 사고로 두개골에 금이 가는 사고를 당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그렇다.

* 커트 보니것 만세! 커트 보니것 만세! 커트 보니것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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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8-08-12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감사합니다^^ 커트 보니것의 유머와 문체 눈물나게 좋죠^^

조그만 메모수첩 2018-08-12 20:41   좋아요 0 | URL
독후감 쓰자마자 고양이라디오님 리뷰부터 제일 먼저 찾아보고 고개를 주억거렸었어요. 보니것 만세입니다 ;ㅁ;

노란가방 2018-08-14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은 책장이 줄어드는 게 아깝게 느껴질 정도로 즐거운 독서셨군요.
읽어야 할 책 목록에 넣어둬야겠네요.^^

조그만 메모수첩 2018-08-15 00:11   좋아요 1 | URL
보니것의 다른 작품들과 에세이도 찾아 읽어보려구요. 제5도살장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말투가 상당히 광고말투네요 ㅎㅎ)

북극곰 2018-09-17 14: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만세! 부르고 가요. ㅎ

조그만 메모수첩 2018-09-18 22:53   좋아요 0 | URL
만세!!!! ㅎㅎ
 
고양이 대학살 - 프랑스 문화사 속의 다른 이야기들 현대의 지성 94
로버트 단턴 지음, 조한욱 옮김 / 문학과지성사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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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제목. 찬이란 이름의 고양님을 모시고 있는 집사로서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ㅠㅠ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은 18세기 프랑스의 문화를 바탕으로 역사를 재구해나가는 책이다. 구전되던 민담(보통 동화라고 알고 있는), 인쇄공들의 고양이 대학살, 도시를 바라보는 당대 부르주아의 시각, 경찰이 쓴 지식인에 관한 보고서, 한 시민의 서적주문서 등을 사료로 당대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미시사를 다룬 교양서적들이 그러하듯, 이 책도 인용한 예시들과 그들을 통해 밝힌 시대의 통찰이 상당히 흥미로우며 책의 전체 구조가 탄탄하다. 병렬식으로 연결된 각 챕터들은 서로 손을 잡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챕터들의 순서가 바뀌면 전체구조가 망가진다. 서문에서 책의 개요를 밝히고 각론을 거쳐 결론에서는 기존 역사학과 문화 연구의 한계를 짚고, 이 책이 그들을 어떻게 극복, 보완했는지 보여주며 또한 이 책이 받게 될 비판에 대해서도 잘 기록해두었다. 챕터의 끝에는 챕터에서 인용한 사료 원문을 밝혀 독자들의 능동적 독서를 더욱 잘 도와준다.

민담엔 아이들의 아름다운 환상을 지켜주기 위함이 아니라 위험으로 가득 찬 세상의 모습과 그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가에 관한 처세법이 담겨 있다. 18세기 프랑스 농민들의 비참한 삶과 엮어, 다음 챕터에서는 고양이 대학살로 나타난 노동자계층의 부르주아에 대한 상징적 처단과 증오를 다루고, 이는 다음 챕터에서 부르주아들의 특징-마르크스 등이 정의한 모습과는 사뭇 다른, 산업을 이끌어 나간 계층이라기보다 연금이나 토지수익으로 생활해 나가는 기득권들-을 밝힌다. 그리고 이어지는 챕터에서 그들 중 지식인 저자들, 계몽주의자들의 특징을 사상범을 감시하던 경찰의 보고서를 통해 살펴보고 한 교양인의 서적주문서를 통해 장 자크 루소가 <신 엘로이즈>를 통해 개척한 새로운 독서법을 분석하며 지금과는 다른 근대인들 정신의 한 분야를 바라볼 수 있다.

<치즈와 구더기> <마르틴 게르의 귀향>과 엮어 읽을 예정.



* 앞으로 교양서적은 도서관에서 빌리지 않고 그냥 사 읽기로. 책에 밑줄 치고 싶어서 혼났다.

* 아무리 착취자가 미워도 고양이는 죽이지 맙시다 ㅠ 아니 동물을 학대하지마 제발

* 초반에, 민담(서양 동화)을 통시적 고려를 하지 않은 채 분석한 프롬이나 베텔하임 같은 학자들에게 가하는 필자의 비판엔 동의할 수 없음. 물론 그 이야기의 역사를 무시한 것은 맞지만, 이야기는 왜 오늘날의 모습으로 진화했을까? 거기에 반영된 무의식을 탐구한 것으로도 볼 수 있잖을까

* 역자 서문에서 밝힌 두 가지 미담이 있다. 역자가 번역작업을 반쯤 했을 때 동시에 함께 번역하는 선배(후배였나? 기억이..ㅠㅠ)가 있음을 알게 되었는데 그 선배(혹은 후배)가 기꺼이 양보해줬다고. 그리도 한국의 출판사정을 알던 단턴 교수가 자신의 저작료를 포기하며 출판을 독려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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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8-08 15: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책인데, 번역문을 매끄럽게 다듬은 개정판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

조그만 메모수첩 2018-08-08 18:27   좋아요 0 | URL
읽으면서 번역이 이상한 건지, 원문이 원래 그런 건지 헷갈려했네요. 번역가가 공들였다고 하니 그런가보다 하고 읽었는데.. 역시. 장정도 새로 해서 개정판 나왔으면 좋겠어요

세상틈에 2018-08-09 16: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좋은 외서들은 항상 번역에서 아쉬움이...

조그만 메모수첩 2018-08-10 22:43   좋아요 0 | URL
개정판 요망합니다..
 
파과
구병모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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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조각. 투우. 강 박사. 셋은 과거의 상처로 인해 정상의 궤적에서 벗어나 소외된 삶을 살아간다.

먼저 조각. 아들을 낳기 위해 키울 능력 없는 가난한 집안임에도 불구 딸을 줄줄 낳은 부모의 둘째 딸로 태어났다. 입을 덜기 위해 부자 친척집으로 식모살이를 가게 되고, 거기서 도둑으로 몰려 쫓겨난 후 류와 조라는 부부를 만나 미군부대 근처에서 일을 하다 신산고난한 과정을 거친 후 촉망받는(?) 살인청부업자가 된다. 현재 65세. 여전히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투우. 조각의 에이전시에서 최근 뜨고 있는 기대주 살인청부업자. 그 잔인함이 어떠하든, 고객의 니즈에 적확한 결과를 내놓는 깔끔한 일처리가 특징이다. 어릴 때 살해당한 아버지의 시신을 목격한 후 탈출하는 살인자를 보며 양가감정을 가진다.

마지막 강 박사. 대학 병원에서 안정적으로 근무하던 의사였으나 아내의 죽음을 초래한 의료사고에 항의하다가 조직의 압력에 좌절, 이후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는 페이닥터이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딸을 키우며 재래시장에서 과일가게를 하는 부모님과 함께 산다.

주인공은 조각이다. 여러 면에서 드문 성질을 가진 캐릭터이다. 여성, 노령, 킬러라는 직업. 이 세 부분에서 교집합을 가진 인물은 내가 읽거나 본(영화로) 범위 내에서는 조각뿐이다. 비인간적인 직업을 지고 평생 살아왔지만 그녀가 살아온 시간은 자비롭고 휴머니즘 가득찬 인간적인 품성을 안겨주었다. 작가는 이 모든 이야기들, 그리고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을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라 감각으로 하나 하나 느끼며 공감할 수 있게, 긴 문장 속에 담아놓았다.

작가 구병모가 이 소설을 창작하게 된 동기는 냉장고 속에서 잊혀진 채 삭아가는 과일을 발견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破果). 하지만 작가 후기에서도 밝혔듯, 제목 파과에 한자는 달아놓지 않았다. 제목의 정확한 의미는 독자들의 것이다. 소설 속에서도 주인공 조각이 냉장고에서 사놓고 잊어 뭉크러진 복숭아를 찾아내는 장면이 나온다. 그 외의 장면에서도 복숭아는 자주 등장하는데, 뭉크러진 외양이 남긴 잔상은 은은한 빛을 가진 반듯함일 것이란 추측을 갖게 하는 소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읽은 것은 초판이다. 개정판에서 부분부분 첨삭된 부분이 있다고 들었다. 그리고 작가 후기가 없다고도 들었다.

*만약 영화화된다면, 조각으로 누가 좋을까. 생각할 것도 없이 문숙 배우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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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8-07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엇보다 노년의 여성 킬러라는 점이
정말 파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작가가 여성이다 보니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던 걸까요. 이런
파격이 주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18-08-07 15:36   좋아요 0 | URL
기발하다고 생각했어요. 젊은 남자들에게 돌아가곤 했던 역할을 뒤집으니 이렇게 참신하네요. ~하시게,하는 조각의 말투도 재미있었어요
 

구병모 <파과>, 단턴 <고양이 대학살> 다 읽고 오늘 대출한 책들. <인간실격>을 읽고 싶었는데 다 대출되어 <여학생>으로.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의 산문집은 빌릴 계획이 없었는데 서가에 꽂힌 것을 보고 충동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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