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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음, 안정효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평점 :
책을 읽고 나서 든 가장 강한 느낌은 놀라움이다. 내가 놀란 것은 저자 올더스 헉슬리가 오늘날의 현대 문명사회를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그려냈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소설 속에 그린 세계국의 모습은 오히려 어떤 면에선 그렇게 현대적이지 않아 보인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놀란 이유는 그가 그려낸 미래 사회의 모습이 문화적으로 오늘날의 현대 사회를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첫 장면에서 시험관 아기를 통해 똑같은 모습을 가진 수 천, 수 만 명의 쌍둥이들을 생산하는 모습에서 획일화된 교육을 통해 태어난 우리의 현재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획일적인 교육에 반대하여 대안 학교나 자유학기제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여전히 주류 교육은 정형화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교육의 모습은 소설 속에서 이렇게도 표현된다.
6만 2,400번의 반복은 하나의 진리를 만든다. 백치들!(p.092)
소설 속 알파, 델타, 감마 등의 계층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최면 학습을 통해 고정 관념을 가지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똑같은 생각, 똑같은 행동을 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획일화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인간이라고 불러야 할까, 로봇이라고 불러야 할까? 소마를 먹으며 많은 감정을 억제하고 없애는 이들의 모습이 다시 한 번 인간의 얼굴이 아닌 로봇의 얼굴을 떠오르게 한다.
‘공동체, 동일성, 안정성’이라는 세계국 표어가 결국 멋진 신세계와 미래를 대변하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이 표어가 책을 읽고 난 내게 너무나 무섭게 다가왔다. 과연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의 이상향이 세계국의 표어가 말하는 것과 동일한 것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에 있는지.
그렇다고 뉴멕시코 보호 구역 안의 삶이 인간다운 삶일까? 글쎄다. 존의 삶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존은 어머니 린다로 인해 공동체에서 외면당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는 그 자신으로서 대접받지 못한다. 세계국에서 살던 버나드 역시 마찬가지다.
“난 차라리 나 자신 그대로 남이 있고 싶어요, 불쾌하더라도 나 자신 그대로요. 아무리 즐겁더라도 남이 되고 싶지는 않아요.”(p.149)
미래 사회가 어떻게 펼쳐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헉슬리가 상상했던 모습 중에 이미 현실이 된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과학적 발전은 어떠하더라도 인간은 인간다워야 한다. 버나드의 말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