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potato4님의 서재 (potato4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3230180</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 /><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25 Apr 2026 13:18:46 +0900</lastBuildDate><image><title>potato4</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0.gif</url><link>https://blog.aladin.co.kr/743230180</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potato4</description></image><item><author>potato4</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시민 불복종 - [시민 불복종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수필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3230180/17230200</link><pubDate>Tue, 21 Apr 2026 16:1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3230180/1723020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2701X&TPaperId=1723020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41/42/coveroff/893102701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102701X&TPaperId=1723020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시민 불복종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수필집</a><br/>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26년 04월<br/></td></tr></table><br/><br>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개인적인 리뷰입니다.​6.3 지방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이든 국회의원 선거이든지 간에 선거는 한 개인이 국가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강력한 방법 중 하나이다. 그렇기에 투표권을 가지게 된 이후로 지금까지 한 번도 투표에 참가하지 않은 적이 없다. 투표를 통해 드러나지 않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 나의 의견을 알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정부에 힘을 실어주고, 때로는 정부에 반대한다는 그런 메시지를 전하면서 말이다. ​개인적으로 가슴 한견에 항상 품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인 헨리 데이비스 소로의 《시민 불복종》을 읽었다. 대학교 다닐 때 그의 작품 《월든》을 수업 시간에 발표한 이후로 처음 읽는 작품이니 참 오랜 세월이 흘러 마치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소로의 작품은 잔잔하다. 잔잔하다 못해 때로는 아무 움직임도 없는 듯하다. 《월든》이 그랬다. 추운 겨울날 아랫목에 앉아 고구마 한 입 먹으면서 한 페이지 읽는 고요한 모습, 그게 소로의 작품을 읽던 내 모습이었다. 이 책도 그랬다. 책 제목은 뭔가 강렬하면서도 반항적인 무언가를 툭 던져주는 느낌인데 실제 책을 읽고 난 느낌은 전혀 달랐다. 강렬하지는 않지만 쉽게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에 기대고 있어 결코 넘어지지는 않겠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소로가 이 책에서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모습을 전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저자는 국가 혹은 정부라는 가장 강력한 존재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아니 무너지지 말아야 할 가장 강력한 힘이 바로 개인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의 생각이 너무나 당연하기에 처음에는 별다른 움직임이 일지 않지만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그 말이 너무나 크게 다가온다.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 국가가 제대로 설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단 한 명이라도 존중할 줄 아는 국가가 진정한 국가다. 민주주의, 법치주의 등 모든 제도가 좋지만 무엇보다 올바른 세워진 개인이 가장 중요하다. 문득 성경에서 소돔과 고모라를 벌하려는 하나님께 했던 아브라함의 물음이 떠오른다. 의인 열 사람이 있어도 그 도시를 멸하겠냐는. 하나님은 분명하게 말하신다. 의인 열 명으로 인해 그 도시를 멸하지 않겠다고. 우리가 사는 사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의로운 사람 한 명이 제대로 서 있다면 그 나라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나는 어떨까? 내면 깊숙한 곳의 목소리에 온전히 반응하는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면 눈앞의 권력, 이익 앞에 손쉽게 무릎 꿇는 그렇고 그런 인간일까?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41/42/cover150/893102701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414258</link></image></item><item><author>potato4</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스스로 깨어라 - [스스로 깨어라 - 헤르만 헤세 청춘소설 3부작,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3230180/17215886</link><pubDate>Tue, 14 Apr 2026 11: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3230180/1721588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137262&TPaperId=1721588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93/7/coveroff/k72213726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722137262&TPaperId=1721588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스스로 깨어라 - 헤르만 헤세 청춘소설 3부작,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싯다르타』</a><br/>헤르만 헤세 지음, 송동윤 옮김 / 스타북스 / 2026년 03월<br/></td></tr></table><br/><br>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개인적인 리뷰입니다.​《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아》, 《싯다르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이다. 이 대표작들을 한 권에 묶어 스타북스에서 《스스로 깨어라》라는 이름으로 출간하였다. 청춘소설 3부작이라는 부제가 있지만 자신을 뚫고 한 걸음 더 앞으로 걸어 나가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고 공감할만한 작품들이다. 나 역시 중고등학교, 대학교를 거치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기에 처음에는 이 책을 딸아이가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옛날의 나처럼. 그러다 문득 생각해보니 딸아이뿐 아니라 나 역시 여전히 청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리적인 시간이나 나이는 물론 아니지만 무언가에 여전히 도전하고 만들어가고 뚫고 나가고자 한다면 나 또한 청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내가 먼저 책을 들었다.​오래 전에 읽은 소설들이라 내용은 그렇게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들어 묘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였다. 뭔가 나도 모르게 다시 젊어졌다는 느낌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세 작품은 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발견하고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세워 가는지를 마치 아이가 자라가는 모습을 담은 사진처럼 독자에게 들려준다.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자신을 제대로 알기는 힘들다. 진정한 내 모습과 보여주고 싶은 내 모습 사이를 여전히 오고가면서 살아가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그런 내게 내면의 깊은 심연에서 들려오는 희미하지만 분명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 목소리가 지금까지 쌓아온 견고한 나만의 세계를 파괴하고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러운 완전히 새로운 길로 이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했지만 아빠로서 딸아이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성장했듯이 딸아이도 그렇게 성장한다. 이는 결국 내 품에만 품고 있을 아이가 아니라는 말이다. 때로는 아이가 성장해가는 모습이 못내 섭섭하기도 하지만 헤세의 말처럼 자신을 찾아가는 그 길, 그 길을 아이에게 들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니까. ​한참 자라나는 아이들도, 그 아이들과 함께 또 한 걸음을 나아가는 부모님들도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 한 존재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그 여정에 기쁨으로 함께하면서 말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793/7/cover150/k72213726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7930763</link></image></item><item><author>potato4</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인간이란 무엇인가 - [인간이란 무엇인가 - 노벨상 과학자가 평생 붙잡은 질문]</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3230180/17215864</link><pubDate>Tue, 14 Apr 2026 11: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3230180/1721586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137108&TPaperId=1721586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72/96/coveroff/k97213710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137108&TPaperId=1721586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간이란 무엇인가 - 노벨상 과학자가 평생 붙잡은 질문</a><br/>알렉시스 카렐 지음 / 페이지2(page2) / 2026년 03월<br/></td></tr></table><br/><br>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개인적인 리뷰입니다. 알렉시스 카렐. 이번에 처음 들어본 인물이다. 혈관 봉합술과 장기 이식 연구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고 한다. 생리, 의학 분야에는 그렇게 관심이 있지 않아서 그 이름을 처음 봤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세상에 외친 이 책의 내용은 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아니 너무나 알고 싶은 분야였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 끝을 알 수 없는 기묘한 존재이다. 혈액형이나 MBTI 등 여러 가지 검사로 성격이나 능력 등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인간은 여전히 얽히고설킨 실타래와 같은 존재이다. 물론 저자가 말했듯이 아주 세분화된 생리, 의학적인 측면에서는 많은 부분들이 밝혀졌지만 인간의 본질이라고 불릴만한 영역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이다.  저자는 1900년대 초반에 이미 그런 사실을 깨닫고 생리, 의학적인 범주를 넘어 철학, 사회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밝히고자 한다. 저자는 현대 학문이 인간을 수많은 조각으로 해체해 버렸다고 지적하면서 해부학, 생리학, 심리학, 사회학 등 각기 다른 학문들이 인간의 특정한 단면만을 잘라내어 연구할 뿐 이 모두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완전체로서의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저자의 이런 통찰력은 그보다 100년이 지난 오늘날의 세계에도 여전히 적용되는 사실이 아닌가 싶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인간의 참 모습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까? 어느 부분에서는 그렇지만 그리스도인인 내게는 인간은 분명한 존재이다. 여기에서 종교적인 설명을 덧붙이지는 않겠지만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그렇지만 그 관계를 버린 채 살아가는 서글픈 존재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은 어떨까? 우리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환경일까? 아니면 그 환경 때문에 자신을 파괴하면 살아가게 될까? 안락함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현대 문명이 오히려 인간의 자연적인 면역력과 정신적 저항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저자의 지적은 모두가 다시 한 번 돌아보아야할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싶다.  로봇과 AI가 인간을 대체한다는 불안 속에 살아가는 오늘날의 시대는 어쩌면 우리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할 시기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결코 물리적인 무언가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그 너머의 무언가가 진정한 인간이 가진 영역이다. 우리는 바로 그 영역에 놓인 온전한 인간을 찾아 나서야한다. 바로 지금 말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72/96/cover150/k9721371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729666</link></image></item><item><author>potato4</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인간존엄성 - 개념의 기원과 형성 - [인간존엄성 - 개념의 기원과 형성]</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3230180/17139797</link><pubDate>Mon, 09 Mar 2026 13: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3230180/171397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136571&TPaperId=171397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05/70/coveroff/k36213657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62136571&TPaperId=171397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인간존엄성 - 개념의 기원과 형성</a><br/>디트마르 폰 데어 포르텐 지음, 김정로 옮김 / 북캠퍼스 / 2026년 02월<br/></td></tr></table><br/><br>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개인적인 리뷰입니다.​인간 존엄성이란 어떤 의미일까? 일반적으로 인간 존엄성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은 그 존재 가치가 있고, 그 인격은 존중받아야 한다는 개념을 말한다. 인간 존엄성은 단순한 도덕적 개념이 아니라 헌법, 인권선언 등에서 인간의 기본적 가치로 규정된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인간존엄성을 깊이 있게 분석을 책이 있다. 바로 디트마르 폰 데어 포르텐의 《인간존엄성 -– 개념의 기원과 형성》이다.​앞서 말했듯이, 인간존엄성이라는 개념은 헌법과 각종 국제 협약에서 최고의 자리에 놓인 절대적 원칙이다. 특히 인공지능이 일상에 깊숙이 개입하고 유전자 편집과 같은 첨단 기술이 상용화되는 오늘날에 이 개념은 단순한 추상적 관념을 넘어 실질적인 법적 기준이자 윤리적 방어선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인간존엄성이라는 권리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며, 어떤 역사적 굴곡을 거쳐 지금의 위치에 도달했는지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 역시 그렇다. 그렇기에 이 책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더욱 중요하지 않나 싶다. 법철학∙사회철학 교수인 저자는 인간존엄성이라는 개념이 지닌 역사적 뿌리와 철학적 구조를 명쾌하게 해부하면서 별다른 감흥 없이 흘려보내는 인간존엄성이라는 개념을 다시 한 번 깊이 성찰하게 만든다.​존엄성이라는 개념은 어느 날 갑자기 뚝 튀어 나오지 않았다. 저자는 로마 시대의 ‘디그니타스’라는 개념에서 시작해 기독교적 사상과 칸트를 넘어 내적이고 불변하는 자기 결정권으로서의 존엄성이 어떻게 명문화되었는지를 세세하게 설명한다. 이 모든 과정을 살펴보면서 인간존엄성은 수많은 격동의 시간을 거쳐 다듬고 다듬어진 역사적 산물임을 알게 된다. ​문제는 우리가 얼마나 인간존엄성을 삶에서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우리의 지표로 삼고 있느냐이다. 내 자신만 보아도 그렇지 못할 때가 너무나 많다. 아주 가벼운 무시에서부터 세상을 뒤집어엎을 정도의 시끄러운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인간존엄성이 무시되는 경우는 너무나 많다. 그런 순간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현실적이고 예민한 문제들을 세밀하게 살펴보며 우리에게 결코 가볍지 않은 화두를 던진다. 당신은 인간존엄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인간이라는 존재의 절대적 가치가 끊임없이 시험받는 시대에, 이 책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보면 어떨까 싶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605/70/cover150/k36213657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6057027</link></image></item><item><author>potato4</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뉴욕타임스 죽이기 - 현실적 악의 - [뉴욕타임스 죽이기 - 현실적 악의]</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3230180/17139781</link><pubDate>Mon, 09 Mar 2026 13: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3230180/171397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135980&TPaperId=171397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98/4/coveroff/k87213598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72135980&TPaperId=171397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뉴욕타임스 죽이기 - 현실적 악의</a><br/>서맨사 바바스 지음, 김수지.김상유 옮김 / 푸른길 / 2026년 01월<br/></td></tr></table><br/><br>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개인적인 리뷰입니다.​《뉴욕타임스 죽이기 –- 현실적 악의》.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뉴욕타임스 죽이기’라는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이 뭔가 쎄하다. 뉴욕타임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 연결해보면 이건 분명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무언가와 관련된 내용임에 틀림없다. 현실적 악의라는 표현도 익숙하지는 않지만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할 개념임에는 분명하다.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 이제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뉴욕주립대 버펄로 로스쿨 교수인 서맨사 바바스는 이 책에서 1964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주요 판례인 '뉴욕타임스 대 설리번 사건'의 배경과 진행 과정을 상세하게 분석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언론의 자유가 불과 반세기 전만 해도 전혀 그렇지 못했다는 사실은 누군가에는 충격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일은 여전히 일어나고 있을지도 모른다. 권력 앞에 자유롭지 못한 순간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책에서 다룬 사건은 이렇다.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광고를 당시 지역 공공업무위원인 설리번이 광고 내용 중 일부 오류를 근거로 거액의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다. 당시의 명예훼손법에 근거해 백인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은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린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런 판결에는 언론사를 재정적으로 압박하고 외부의 비판적 보도를 차단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더욱 깊이 생각해봐야 할 법리가 나온다. 바로 '현실적 악의'라는 개념이다. 대법원은 고위 공직자가 언론 보도로 인한 명예훼손 배상을 청구할 경우, 단순히 보도 내용이 허위라는 사실을 넘어 언론사가 그것이 허위임을 사전에 인지했거나 진실 여부를 무모하게 무시했다는 '현실적 악의'를 엄격히 입증하도록 판결했다. 저자는 언론사 내부 문서와 재판연구원들의 기록 등 1차 사료를 활용하여, 이 판결 기준이 마련되기까지의 법리적 논의 과정을 세밀하게 재구성하여 설명한다. ​'현실적 악의' 기준이 도입된 이후, 기자들은 소송에 대한 두려움 없이 권력층의 부패와 비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파헤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이것이 단순히 언론이라는 특정 산업의 승리가 아니라, 시민들이 공적인 사안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비판할 수 있는 공론장의 영역을 획기적으로 넓힌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하나의 법적 판결이 사회 전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보여주면서 법이 지닌 가장 기본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반세기 전과 오늘날의 사회는 결코 동일하지 않다. 분명 많은 부분에서 진보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비슷한 사례들을 보게 될 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법이 지닌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그 법이 과연 누구를 보호해야 하는지를 말이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398/4/cover150/k87213598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3980420</link></image></item><item><author>potato4</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회심 - [회심 - 톨스토이의 《참회록》 러시아어 완역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3230180/17103013</link><pubDate>Fri, 20 Feb 2026 13: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3230180/1710301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12135315&TPaperId=1710301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96/74/coveroff/k01213531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12135315&TPaperId=1710301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회심 - 톨스토이의 《참회록》 러시아어 완역판</a><br/>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이충우 옮김 / 대경북스 / 2026년 01월<br/></td></tr></table><br/><br>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개인적인 리뷰입니다.​세계 3대 참회록인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루소의 《고백록》, 그리고 톨스토이의 《참회록》. 그 중 하나인 톨스토이의 《참회록》을 대경북스에서 러시아어 원어를 번역하여 새롭게 출판한 책이 《회심》이다. 개인적으로 회심이라는 책 제목이 참 마음에 든다. 물론 참회록이라는 제목도 나쁘지는 않지만 기독교인인 내게는 회심이라는 표현이 더 깊이 다가온다. 돌아선다는 회심이라는 표현이 번역가인 이충우님의 말처럼 이 책에서 톨스토이가 말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 내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오래 전에 읽었던 기억을 되살리며 한 장, 한 장 읽어나가는데 예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 그 모든 내용들이 톨스토이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있는 바로 내 이야기라는 점에서 쉴 새 없이 화들짝 놀라곤 했다. 아니, 톨스토이의 말처럼 나뿐만 아니라 어쩌면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라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한 번쯤 삶이 어떤 의미인지를 알기 위해 몸부림친 적이 있으니까 말이다. ​이성에 대한 톨스토이의 자각은 수많은 철학자들뿐 아니라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이들에게도 결코 다르지 않다. 죽음에 대한 깨달음도 역시 그렇다. 인간은 이를 이겨낼 수 없다. 평범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진리를 찾는 과정에서 결국 신의 존재와 마주할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그랬다. 죽음과 인간의 한계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님만이 참 소망이심을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 ​톨스토이의 고백은 기독교인에게만 던져진 화두가 아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과연 지금 무엇을 붙들고 있는지 돌아보라고. 그리고 바른 길로 돌아서라고.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496/74/cover150/k01213531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4967413</link></image></item><item><author>potato4</author><category>마이리뷰</category><title>일곱 괴물이 사는 마음 - [일곱 괴물이 사는 마음 - 과학으로 헤쳐 나가는 죄악의 세계]</title><link>https://blog.aladin.co.kr/743230180/17081472</link><pubDate>Mon, 09 Feb 2026 15: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743230180/1708147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7937&TPaperId=1708147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07/31/coveroff/896596793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7937&TPaperId=1708147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일곱 괴물이 사는 마음 - 과학으로 헤쳐 나가는 죄악의 세계</a><br/>가이 레슈차이너 지음, 이한음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01월<br/></td></tr></table><br/><br>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개인적인 리뷰입니다.​아주 오래 전에 《세븐》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성경에 나오는 일곱 가지 죄악을 따라 발생하는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내용이었다. 영화 자체도 나름 재미있었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죄에 대해 깊이 생각하면서 고민했던 점이 더욱 기억에 남는 영화였다. ​최근에 《세븐》이라는 영화처럼 기억에 남을 만한 책 한 권을 읽었다. 가이 레슈차이너의 《일곱 괴물이 사는 마음》이라는 책이다. 저자는 기존의 시각과는 전혀 다른 과학이라는 관점에서 과연 죄가 무엇인지를 밝히고 있다. 신경과 전문의인 저자는 자신이 경험한 수많은 환자들의 이야기와 다양한 사례들을 일곱 개의 죄악과 연결해서 풀어나가는데 실제 사례를 가지고 설명하기에 굉장히 흥미롭게 다가온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성격 파탄'이나 '도덕적 타락'이라 손가락질하던 행동들을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하나씩 해부해 나가는데, 분노, 탐식, 색욕, 질투, 나태, 탐욕, 교만이라는 익숙한 죄목들이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도덕의 부재가 아니라, 뇌의 특정 회로가 끊어지거나 과부하가 걸린 결과라고 말한다. 이는 누군가가 잘못된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이 그 사람의 자유 의지와는 관계가 없다면 과연 그를 죄인이라고 불러야할지 심각한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게 한다. ​뇌과학적 분석은 어떤 면에선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진다. 타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 갑작스러운 분노, 기이한 집착, 무기력—을 보면서 그 사람을 비난하기보다 과연 저 사람의 뇌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에게 인간에 대한 또 다른 관점을 보여주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저자가 말하는 죄의 문제는 기독교인인 내게는 너무나 명확하다. 저자가 말하듯이 개인의 의지적인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손상된 뇌로 인한 문제라고 할지라도 이를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에서 말하는 정죄하지 말라는 의미를 또 한 번 마음에 새기게 된다. 우리는 그 죄의 근원에 무엇이 있는지를 결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조금은 더 타인에게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한 걸까? 모두가 깊이 고민해보면 좋겠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507/31/cover150/896596793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5073150</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