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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위한 침묵 수업 - 소란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침묵의 뇌과학
미셸 르 방 키앵 지음, 이세진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5월
평점 :
현대인은 소음 속에서 살아간다. 눈을 뜨면 스마트폰 알림이 울리고, (중략) 이처럼 외부 자극과 정보가 끊이지 않는 시대에, '침묵'은 잊혀진 개념이 되었다. 아니, 어쩌면 불편하고 낯선 존재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뇌는, 아이러니하게도, 자극을 멈추었을 때 비로소 회복을 시작한다. 인간의 뇌는 자극을 처리하는 데 놀라운 능력을 가진 기관이지만, 동시에 끊임없는 작동에는 대가가 따른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정리하고, 감정을 소화하고, 기억을 저장하고, 판단을 내리느라 뇌는 하루종일 분주하다. 시각적 자극은 눈을 감으면 되지만 귀는 귀꺼풀이 없으므로 자극을 막지 못한다. 뇌에게 쉬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는 ‘침묵’이 필요하다.
최근 신경과학은 이 ‘침묵의 시간’이 뇌에 실제로 치유와 회복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뇌에는 ‘글림프 시스템(Glymphatic System)’이라는 독특한 배수 시스템이 존재한다. 이는 림프와 글리아 세포(glia)의 합성어로, 뇌의 노폐물을 제거하는 역할을 한다. (중략)
그렇다면 우리가 말하는 ‘침묵’은 단지 청각적 무음을 뜻하는 것일까?
(중략)‘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니라 ‘아무 자극도 받지 않음’이 중요한 것이다. 이 침묵의 시간 속에서 뇌는 정보를 재배열하고, 쓸모없는 감각 잔재를 제거하며, 감정적 자극을 정리하고, 창의적 사고를 준비하는 공간을 만든다.
침묵은 단지 정서적인 평온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침묵은 생물학적으로도 뇌를 재정비하는 ‘기회’이다. 자극이 차단되었을 때 뇌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을 중심으로 활동을 재구성한다. 이 부위는 자기 성찰, 창의성, 도덕적 판단, 복잡한 의사결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침묵의 상태에서 전전두엽이 활성화되며,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하게 된다. 외부의 소음이 줄어들 때 비로소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고, 수많은 정보 속에 파묻혀 있던 고유의 관점이 떠오른다.
우리의 뇌가 혹시 쉬지못하는 것은 우리가 침묵을 두려워해서는 아닐까?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 침묵이 흐르면 어색함을 느끼고, 혼자 있을 때 침묵이 이어지면 외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침묵은 고립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연결의 시작일 수 있다. 타인과 연결되기 이전에 자기 자신과의 연결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과의 대화는 떠들썩한 환경 속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오직 조용한 상태에서만, 내면의 질문과 기억, 욕망, 가치가 얼굴을 드러낸다. 침묵이란 단지 말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존재의 깊이를 회복하는 시간이다.
현대인의 삶은 빠르다. 너무 빠르다. 효율과 생산성, 연결성과 속도만이 강조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멈추는 법’을 잃어버렸다. (중략) 중요한 것은 ‘자극을 제거한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침묵은 사치가 아니다. (중략)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말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침묵을 견뎌낼 수 있느냐이다. 침묵을 견딜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의 목소리와 자신의 진실 사이에서 균형을 찾을 수 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속도나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더 깊은 침묵이다. 현대인의 삶은 외적으로는 점점 더 연결되고 있지만, 내적으로는 점점 더 분열되고 있다. 그 단절을 회복하는 길은 말이 아닌 침묵에 있다. 우리는 모두, 말이 아니라 침묵을 통해 비로소 제 자리를 찾는다. 침묵은 우리를 ‘우리 자신’으로 되돌려 놓는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마침내, 다시 살아난다.
고요함
적막함
정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