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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통제할 수 없지만 인생은 설계할 수 있다 -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기술
비탈리 카스넬슨 지음, 함희영 옮김 / 필름(Feelm) / 2025년 3월
평점 :
매일같이 쫓기듯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저 아침이면 눈을 뜨고, 저녁이면 눈을 감는 일상 속에서 “의미” 따위는 대체 어디에 숨어 있을까.
병원 복도에서, 혹은 강의실 뒷자리에서 누군가는 다시 묻는다.
“나,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이 질문 앞에 늘 주저하던 내가, 어느 날 우연처럼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재테크 비법이나 인생역전 스토리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다만, 지겨운 자기계발서 대신 누군가의 “실수와 좌절”이 조금은 웃프게, 때로는 진지하게, 살아있는 이야기로 다가왔으면 했다.
작가는 본디 금융쟁이였다.
숫자와 시장, 리스크를 말하며 살아온 사람이 어느 날 ‘영혼’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다.
여기서부터 내 마음에 작은 불신이 싹텄다.
아니, 돈과 투자로 세상을 재단하던 사람이 갑자기 인생의 본질을 논한다고?
그런데 이 사람, 의외로 꽤 솔직하다.
러시아의 극지방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와,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뿌리내리며 겪은 이방인 콤플렉스, 가족과의 갈등, 번아웃, 일상의 무상함을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마치 흑백 필름처럼 건조하게, 때로는 냉소적으로, 하지만 끝내 유머를 잃지 않는다.
어차피 인생이란 ‘망가짐’의 연속이니, 너무 비장하게 살지 말라는 듯.
이 책은 일종의 ‘실패 자서전’같다.
영광의 순간보다 쪽팔리고, 후회스럽고, 가끔은 돌아보고 싶지도 않은 일들을 담담히 펼쳐놓는다.
거창한 자기계발서들이 늘 말하는 “성공 비법”, “습관 만들기” 같은 포장지는 여기서 쓸모 없다.
오히려 무너짐과 미련함, 우유부단과 두려움이 반복된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그래도 내 식대로 살아보겠다”는, 작가의 악착같은 고집이 묻어난다.
나는 이런 구질구질함이 좋았다.
영혼에 대해 말하면서도, 영혼 따위 금세 닳아 없어지는 게 인생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이야기는 곳곳에서 스토아 철학, 고전 음악, 일상의 소소한 발견을 끌어와 “의미”라는 거창한 단어를 우리 곁에 앉힌다.
“사람은 왜 살지?”라는 질문에, 작가는 특별한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아들이랑 놀다가 발에 밟힌 장난감에서, 혹은 세탁기 속 양말 한 짝에서, 자잘하고 흔해 빠진 순간들 속에 의미를 건진다.
삶은 대부분 ‘복잡하고 구차한 순간들의 합’이라고 말한다.
무언가 대단한 깨달음이 아니라, 하루하루 견뎌내는 과정 자체가 인생의 예술임을 보여준다.
가끔은 실수하고, 상처받고, 뻘짓하고, 그러다 다시 웃으며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만 발견되는 기쁨.
작가는 이걸 ‘영혼을 건 삶’이라 부른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이 책이 끝내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싸움이 있다는 걸, 인생의 문턱에서 다들 몇 번씩은 미끄러진다는 걸 담담히 인정한다.
오늘 하루도 나의 작은 실패를 곱씹다가, 내일은 조금 더 의미 있게 살아보겠다는 ‘쓸데없는 다짐’을 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위로이자 농담.
그래서 이 책은 스스로에게 “내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를 묻는 사람,
너무 잘 살려고 애쓰다 지친 사람,
인생의 ‘엉망진창’이 주는 비극과 희극 사이에서 실컷 구르며 살아보고 싶은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다.
나 역시도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라, 한 번쯤은 이런 책이 필요했다.
영혼을 건다는 건 거창한 승부가 아니라, 망가지고, 실수하고, 때로는 멍청한 선택을 하면서도 다시 “내가 나인 채로 살아간다”는 고집 그 자체라는 걸, 이 책을 덮으며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뭔가 대단한 성공담에 지쳤다면,
이번에는 실패와 실수를 사랑하는 법, 인생의 작고 사소한 순간에 영혼을 담는 법을 배워보라고,
나의 삶을 걸고 조용히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