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파의 시간 - mRNA로 세상을 바꾼 커털린 커리코의 삶과 과학
커털린 커리코 지음, 조은영 옮김 / 까치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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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서 내가 읽고 내가 느낀 대로 쓴 리뷰

이 책은 한번에 읽을수 없다. 카탈린 카리코의 삶은 페이지마다 무게가 있었고, 나는 그 무게를 내 삶의 어떤 구간에 얹어보며 천천히 댓글다는 심정으로 내 코멘트를 달았다.

헝가리 시골에서 수도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집에서 출발한 한 여성 과학자의 여정은, 익숙하지 않은 세계일지라도 이상하리만큼 나와 닮은 감정을 품고 있었다. ‘쫓겨난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는 비단 실험실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카리코는 말한다. 연구비가 없어서 실험실에서 쫓겨났고, 직장 상사에게 인정받지 못했고, 수많은 ‘거절’ 속에서도 mRNA라는 믿음을 놓지 않았다고. 이 얼마나 익숙한 말인가. 나 역시 비슷한 감정을 껴안고 살아왔다.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면 늘 누군가는 말한다.

“왜 하필 그 길이야?”
“어떻게 그렇게 똑같은 길을 힘든 길만 골라가냐”
“남들이 갔던 그런 길 가면 되잖아.”
“연구가 다가 아니야”

이런 이야기가 모두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분명 카리코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카리코는 그런 모든 말들에 대꾸하지 않았을 것이다. 온갖 개들이 짓는다고 다 대꾸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 대신 실험을 했고, 실패했고, 다시 했고, 다시 실패했고, 또 다시 실험했고,또 다시 실패했다. 연구비는 떨어져갔고, 계약기간은 코앞에 다가왔다.

(중략)

그 속에는 분명 현실에는 존재하지만 차마 입에 답지 못하는 이야기, 그렇기에 텍스트로 남기지 못하는 그런 이야기가 돌파에는 존재한다. 🤣
노벨생리학상을 탄 사람의 힘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이 책은 마냥 숭고한 연구자의 이야기가 아니다. 숭고보다 절절하고 처절하다. 연구가 얼마나 자본의 힘에 휘둘릴 수밖에 없고, 연구자에게 자본을 포기하고 자신의 가슴이 이끄는대로 연구를 이어가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치열하게 보여준다.

연구를 하기 위해 정치를 해야한다면 어떻게 생각해?(피드참조)

참... 유구무언이다. 내가 뭐라고 커리코를 설득하겠는가. 연구를 포기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사람에 맞춰 살 수도 없다면, 도대체 이런 부류는 어디에 서야 하는 걸까.

이 책은 과학자의 이야기이지만, 동시에 인간 카탈린 카리코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연구실 밖에서 치른 모성의 시간들, 시민권을 얻기 위해 쌀을 담은 봉지에 현금을 숨겨 입국했던 장면, 그리고 늘 냉대와 의심 속에서 자신이 택한 길에 의미를 부여해온 그녀의 단단한 내면까지. 그녀는 ‘성공한 여성 과학자’가 아니라 ‘계속 하고 싶었던 사람’으로 남는다. 웃픈장면도 많지만, 나의 상황과 너무 절묘하게 맞는 부분은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엎드려 흐느낄 수밖에 없었다. 난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맞을까.

(중략)

누군가의 뒤에 숨지 않고 버틸 자신이 있는가?
더 솔직히 말해, 돈 없이 살 자신이 있는가?
무수한 실패 속에서 무너지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가?

무언가를 '뚫고 나간' 사람의 기록은 늘 찬란해 보인다.
하지만
『Breaking Through:돌파』는 그 찬란함 이면의 진짜 이름이 '의심과 끈기와 외로움, 타들어가는 불안 그리고 생계의 팍팍함'임을 조용히 말해준다.

지금 그 이름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이 책은 뜬구름같은 거창한 명언이 아니라 버티는 삶에 필요한 생존의 문장들로 채워져 있다.

내가 혼자 버텼다고 믿었던 모든 순간에,
사실은 누군가가 또 다른 자리에서 조용히, 함께 버티고 있었다는 것.
내가 버텨온 시간, 그리고 앞으로 버텨야 할 시간들 역시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
그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은 내게 충만함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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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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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서 내가 읽고 내가 느낀 대로 쓴 리뷰


알쓸별잡 그 심채경 박사 맞다.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가장 인상깊은 이야기는 연구비다.
참.......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아이에 대한 생각이다.
왜 일하는 엄마는 꼭 이런 죄책감을 가지고 있어야 할까.
아주 부분이지만, 그럼에도 껄끄러운 건 어쩔 수 없다.

글은 그 사람을 보여준다는 말을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닫는다.
크게 감정의 동요 없고,
현실에서 자기가 할수 있는 일을 차분히 해낸다.

이런 성격이 원래 연구를 잘한다.

별에 대한 이야기에서 자신의 분야라는 것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심박사는 자신의 전공에 대해 특별한 에피소드가 없다고 하지만,
그게 더 심박사다운 에피소드 같았다.

또 몰랐던 최초 우주인에 대한 뒷이야기.

여성으로
대한민국에서
일하면서
공부하면서
산다는게,
여기에 더해 공인이라면
겪지 않아도 되는 수많은 일을 겪는다는 뜻은 아닐까.

이 세상에
자본주의에 순응하며, 때론 저항하며

공부를 업으로 삼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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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새 언덕의 마법사
오키타 엔 지음, 김수지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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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단편 – 종달새상점을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
“스이”
1. 봄_화상흉터
2. 여름_통증
3. 가을_기억
4. 겨울_재능
5. 시작-이어짐.. 연승, 계승

‘라이트 문예(경문학)’와 ‘로우 판타지’ 장르의 경계 안에서 조용히 빛나는 소설이다. 세계의 균형을 뒤흔드는 대단한 마법은 없다. 대신, 일상의 틈 사이로 스며든 작은 기이함과 슬픔, 그리고 아주 조용한 회복이 있다. 이 작품은 그만큼 가볍게 읽히지만, 읽고 난 뒤에도 이상하게 마음속에 한 문장이 오래 머문다. 나에게 이 책은 그런 종류의 소설이었다. 일본 소설 특유의 정서와 전개 방식, 그리고 어디선가 본 듯한 캐릭터들과 사건들은 익숙했고, 어쩌면 심심할 정도로 무난했다. 그러나 무난하다는 건, 예상대로 잘 읽힌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5개의 단편을 묶은 단편집같다.
하나의 줄로 꿰어놓은 목걸이같은.....

1편 소꿉친구 간, 화상자국
2편 시한부 화가 이야기
3편 소설가 창작활동
4편 형의 그리움
5편 마법사 스이

가장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글을 써달라고 부탁하는 한 소설가의 이야기였다. 그 장면을 읽으며 나는 GPT를 떠올렸다. 글을 써달라고 부탁해놓고, 막상 받아든 글을 보며 “이건 내 글이 아닌데” 하는 이상한 거리감.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글의 문제가 아니라, '나'가 아직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모른다는 감정의 투영인지도 모른다. 이 에피소드는 단순한 창작 고민을 넘어, ‘타인의 손을 빌린 자기 서사’가 과연 진짜 자신의 것일 수 있는가를 조용히 되묻는다. 요즘처럼 AI가 텍스트를 대신 쓰는 시대에, 놀랍도록 현실적이기까지 한 장면이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마지막 이야기, ‘스이들의 이야기’였다. 책의 처음부터 등장한 마법사 스이는 알고 보면 단 한 사람이 아니었다. 스이라는 이름은 계승된다. 마법사가 마법으로 이름을 지어주고, 마지막 마력을 담아 제자에게 건넨다. 이것은 누군가에겐 정체성의 이양이자, 삶과 죽음의 연결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장면에서 감동보다 조금은 낯선 감정을 느꼈다. 이름을 물려준다는 것, 누군가가 나와 같은 이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루이 14세는 그저 외우기 쉬워서 좋았는데, 이게 현실로 다가오니 느낌이 좀 달랐다. 그 장면은 내게 감동이 아니라 질문으로 남았다.
‘정체성이란 이어질 수 있는 것인가?’
‘이름이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지우는가?’
말보다 오래 남는 것은, 어쩌면 그런 설명되지 않는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래 남는 것은 ‘돌’이다.
왜 하필 돌이었을까.
나무도, 불도, 새도 아니고, 보석처럼 반짝이지도 않는 돌.🪨
그것은 마법사가 가지고 태어나는 유일한 물건이며, 버려도 돌아오고, 색이 바래면 죽음을 알린다.
말이 없고, 가만히 있으면서도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돌.
그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마음속에 품고 살아가는 감정, 기억, 상실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잊고 싶어도 돌아오고, 계속 쥐고 있자니 무거운 어떤 것.
그 돌 하나가 이 이야기 전체를 설명해주는 것 같았다.
『종달새 마법상점』은 화려하지 않다. 구조적으로 실험적이지도 않고, 반전을 즐기는 소설도 아니다.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거기까지는 아니었다. 그냥 슴슴하다.
(중략)

이 책은 마치 물 같다.
돌이라는 소재가 등장했을 때, 이상하게도 나는 곧장 물을 떠올렸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냥 물이었다.
간이 센 것도 아니고, 자극적인 향이 나는 것도 아니고, 달지도 않은 물.
하지만 그런 물이 때로는 마음을 가장 조용히 적셔주는 것처럼,

이 소설도 내 마음속에 어떤 격한 돌도 던지지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바람 같았다. 살랑이는 바람.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시작으로 이어지는 다섯 편의 이야기는 무언가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아마도 삶도, 마법도, 그리고 이름도 그렇게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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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글씨책] 나의 미친 페미니스트 여자친구
민지형 지음 / 나비클럽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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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 년 전,
오디오북 샘플로 이 책을 처음 접했다.
처음엔 그냥 웃겼다. 그런데 읽다 보면, 어딘가 모르게 마음에 잔잔한 파문이 일어난다. 이상하게 불편하다. 그 불편함이 무언지 생각해보니, 그게 바로 '시선'이었다.

“아, 이런 게 시선이구나.”“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구나.”“왜 그렇게 '보이는 것'에 신경 쓰는 걸까?”

이야기의 주인공은 페미니스트 여성을 사귀게 된 평범한 남자친구다. 겉으로는 다 이해하는 척하지만, 속으로는 끊임없이 딴생각을 한다. 표현하지 못하고 머릿속에만 물음표를 가득 품은 그의 모습이 우습고도 짠하다. 그런 앙큼하고 어정쩡한 태도에 자꾸 웃음이 났다.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은데, 왜 안 만들었을까?

생각하자마자 『82년생 김지영』 영화가 떠올랐다.그 영화처럼 이 작품도 어느 세대의 초상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읽으며 마음속에 물음표가 계속 생겼다.

"도대체 뭘 그렇게 지키고 싶은 걸까?“
"왜 20대 남녀는 그렇게까지 다른 세상에서 사는 것처럼 갈라졌을까?“
"그들에게 작용한 건 어떤 조건이었을까?“
"그런데 왜 40대 이후는 남녀 갈림이 덜할까?“

결국은 잘 모르겠더라. 나도 반백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

작년 12월 3일 저녁부터 유튜브의 그 넓고도 좁은 세계를 접했다. 팸코 라는 단어를 얼마전 바바리맨 발언을 한 젓준스톤을 통해 알게 되었다.
대선 후본데 그런 .... 아.......
40대인데 근로소득을 받아본적 없는데, 자꾸 젊은이들의 마음을 이해한데...... 어이없다.

 이 책은 20대의 연애 안에서 드러날 수 있는 젠더 감각의 미세한 충돌과 오해들을 소소하게, 때론 유쾌하게 그린다.그리고 중요한 건, '페미니스트'에 대한 편견을 슬쩍 비트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중 남자 주인공이 던지는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근데 페미들은 섹스 같은 거 싫어하는 거 아니었어?”

이런 편견이 아무 비판 없이 확장되면, 정말 온라인 커뮤니티의 혐오 담론에 자연스레 편입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문득 내 20대 시절, 내 남자친구들 중에도 이런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있었을까, 떠올려 보게 됐다.

📌 이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평범한 20대 남성 주인공은 어느 날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하는 여자친구를 만나게 된다.
처음엔 당황하지만 그녀를 좋아하게 되며 연애를 시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성별 역할, 페미니즘, 젠더 감수성이라는 주제를 마주하게 된다.
남자 주인공은 혼란스러운 내면을 꾹 참고 '착한 남자친구'인 척하지만, 머릿속엔 물음표가 한가득이다.
이야기는 웃기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이 둘 사이에 벌어지는 일상의 에피소드를 통해
현대 사회의 젠더 인식 차이를 꼬집는다

페미니즘은 남성의 권리를 침해하려는 운동이 아니다.그것은 단군 이래 지속된 구조적 불평등 속에서 여성의 권리를 회복하려는 운동이며, “남자는 이래야 해”, “여자는 이래야 해” 같은 성역할 고정관념을 비판하고 저항하는 일 역시 페미니즘의 핵심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렇게까지 페미를 불편해할까?

나는 정치처럼 페미니즘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고 본다.급진적 흐름부터, 일상 속 성찰형까지. 마치 채식주의자의 여러 단계처럼 말이다.

세상에 갈등은 늘 존재하지만, 그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갈라치기나 혐오, 조롱이라면 나는 반대다. 그렇다고 양비론도 반대다. 틀린 건 틀린거다. 전국민을 상상대로.... 하지말자.
세종대왕처럼 끊임없는 질문과 대화, 논의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이제 곧 성인이 되는 아이와 가치관이 달라질까 봐 솔직히 두렵다.그래서 늘 말한다.

“난 코치야. 선수는 너야. 난 네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고, 잔소리를 가장한 조언만 할 뿐이야. 판단은 네 몫이야. 지금은 책임도 같이 지지만, 언젠가는 모든 책임이 네 것이야. 잘 판단하길 바란다.”

그래서 이 책을 언젠가는 아이에게도 꼭 읽히고 싶다.(고2지만, 살짝 야한 부분이 있어 조금 더 크면... 사실 고전문학에도 더 야한 내용은 많다.)

🌊“우리는 아직도 페미니즘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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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통제할 수 없지만 인생은 설계할 수 있다 - 내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기술
비탈리 카스넬슨 지음, 함희영 옮김 / 필름(Feelm)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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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쫓기듯 살아가는 우리에게,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저 아침이면 눈을 뜨고, 저녁이면 눈을 감는 일상 속에서 “의미” 따위는 대체 어디에 숨어 있을까.
병원 복도에서, 혹은 강의실 뒷자리에서 누군가는 다시 묻는다.

“나,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이 질문 앞에 늘 주저하던 내가, 어느 날 우연처럼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재테크 비법이나 인생역전 스토리를 기대한 건 아니었다.

다만, 지겨운 자기계발서 대신 누군가의 “실수와 좌절”이 조금은 웃프게, 때로는 진지하게, 살아있는 이야기로 다가왔으면 했다.

작가는 본디 금융쟁이였다.
숫자와 시장, 리스크를 말하며 살아온 사람이 어느 날 ‘영혼’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다.
여기서부터 내 마음에 작은 불신이 싹텄다.
아니, 돈과 투자로 세상을 재단하던 사람이 갑자기 인생의 본질을 논한다고?
그런데 이 사람, 의외로 꽤 솔직하다.
러시아의 극지방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건너와,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 뿌리내리며 겪은 이방인 콤플렉스, 가족과의 갈등, 번아웃, 일상의 무상함을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마치 흑백 필름처럼 건조하게, 때로는 냉소적으로, 하지만 끝내 유머를 잃지 않는다.
어차피 인생이란 ‘망가짐’의 연속이니, 너무 비장하게 살지 말라는 듯.

이 책은 일종의 ‘실패 자서전’같다.
영광의 순간보다 쪽팔리고, 후회스럽고, 가끔은 돌아보고 싶지도 않은 일들을 담담히 펼쳐놓는다.

거창한 자기계발서들이 늘 말하는 “성공 비법”, “습관 만들기” 같은 포장지는 여기서 쓸모 없다.
오히려 무너짐과 미련함, 우유부단과 두려움이 반복된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그래도 내 식대로 살아보겠다”는, 작가의 악착같은 고집이 묻어난다.

나는 이런 구질구질함이 좋았다.
영혼에 대해 말하면서도, 영혼 따위 금세 닳아 없어지는 게 인생이라며 너스레를 떤다.

이야기는 곳곳에서 스토아 철학, 고전 음악, 일상의 소소한 발견을 끌어와 “의미”라는 거창한 단어를 우리 곁에 앉힌다.
“사람은 왜 살지?”라는 질문에, 작가는 특별한 해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아들이랑 놀다가 발에 밟힌 장난감에서, 혹은 세탁기 속 양말 한 짝에서, 자잘하고 흔해 빠진 순간들 속에 의미를 건진다.
삶은 대부분 ‘복잡하고 구차한 순간들의 합’이라고 말한다.

무언가 대단한 깨달음이 아니라, 하루하루 견뎌내는 과정 자체가 인생의 예술임을 보여준다.

가끔은 실수하고, 상처받고, 뻘짓하고, 그러다 다시 웃으며 일어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만 발견되는 기쁨.

작가는 이걸 ‘영혼을 건 삶’이라 부른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이 책이 끝내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구나 자기만의 싸움이 있다는 걸, 인생의 문턱에서 다들 몇 번씩은 미끄러진다는 걸 담담히 인정한다.

오늘 하루도 나의 작은 실패를 곱씹다가, 내일은 조금 더 의미 있게 살아보겠다는 ‘쓸데없는 다짐’을 하는 우리 모두를 위한 위로이자 농담.

그래서 이 책은 스스로에게 “내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를 묻는 사람,
너무 잘 살려고 애쓰다 지친 사람,
인생의 ‘엉망진창’이 주는 비극과 희극 사이에서 실컷 구르며 살아보고 싶은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다.
나 역시도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라, 한 번쯤은 이런 책이 필요했다.

영혼을 건다는 건 거창한 승부가 아니라, 망가지고, 실수하고, 때로는 멍청한 선택을 하면서도 다시 “내가 나인 채로 살아간다”는 고집 그 자체라는 걸, 이 책을 덮으며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뭔가 대단한 성공담에 지쳤다면,
이번에는 실패와 실수를 사랑하는 법, 인생의 작고 사소한 순간에 영혼을 담는 법을 배워보라고,
나의 삶을 걸고 조용히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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