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힐러리가 손 쉽게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거라는 모두의 예견을 뒤집고 트럼프가 당선되었다. 이로 인해 지난 몇 년간 전 세계는 많이 달라졌는데 트럼프가 추구하는 우파적 포퓰리즘은 중국과의 신냉전을 촉발 시켰고, 세계 경찰로서의 미국의 지위는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미국인들은 이런 포퓰리스트를 대통령으로 선출하게 된걸까? 아니, 선거 내내 압도적인 언론의 도움과 초기 미국인들의 강력한 지지에도 불구하고 힐러리는 지게 된걸까?
정치적 올바름
영어로는 ‘Political Correctness’이다. 일반적인 선의 관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인종차별은 나쁜 것이다. 남녀차별은 나쁜 것이다. 소수자에 대한 억압은 나쁜 것이다. 이런 류의 올바름은 직관적으로 올바르게 느껴질뿐더러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문명인들이라면 대부분은 동의할 수 밖에 없는 내용이다.
이런 정치적 올바름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유토피아적이기 때문에 현실성이 결여되어있으며 공격의 무기로 사용되고, 또 사익의 수단으로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와 같은 과거의 잘못은 끝없이 파해쳐진다. 왜냐하면 그 현상들은 반성되어야만 하는 사실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정치적 올바름 문제를 가져오면 위안부 문제와 비슷하다.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과의 갈등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매번 정치권에서는 선거철이 되면 반일 운동을 벌인다. 이것이 과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런것인지, 아니면 선거 표를 얻기 위해 선동하는 것인지 불명확하다.
프랑크 푸르트 학파, 포스트 모더니즘
마르크스를 추종하던 자들은 20세기에도 내내 있었다. 안토니오 그람시와 루카치와 같은 서구 마르크스주의자 후에 프랑크 푸르트 학파가 있었다. 잘 알려진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벤야민, 마르쿠제, 하버마스가 이곳 소속이다. 이들은 서구 문명을 억압의 역사로 보았던 마르크스의 사상을 변형시켜 문화적 요인에 억압이 내재화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사상은 20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68혁명에 큰 영향을 끼쳤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라는 구호를 내걸며 사회 곳곳에 숨겨진 권력 관계를 무너뜨리려는 시도였다.
그리고 이 때 쯔음, 구조주의에 반기를 들며 정해진 중심과 도식은 없다고 주장하는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이 등장했다. 이들 또한 기존의 권력관계를 허물고 새로운 모습을 만들려 시도했다.
우리는 상대주의와 PC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좌익들의 이론들은 청년 세대들을 매혹시켰고, 상대주의와 정치적 올바름을 내재화한 사람들이 정치권에 진출하자 많은 것이 달라졌다. 남녀, 노동, 난민, 인종, 제 3세계와 같은 문제들은 급격히 왼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결과의 평등을 추구하는 좌익들의 정치적 시도는 군중들의 표를 얻어냈다.
이들이 지배하는 세상 속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은 좌파적 이념들을 몸 속에 내재화 하게 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는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일 뿐이다. 백인 남성으로 태어난 아니는 선천적으로 억압 구조의 계승자이다.
허무주의라는 유령
저자 홍지수는 상대주의와 다문화 주의가 가져오는 문제점을 약 반페이지에 걸쳐 기술하는데 압권이다. 인상적이기에 그대로 옮긴다.
“… 그러나 모든 가치체계와 사회적 구조에는 현명한 군주와 폭군이라는 양면이 존재한다. 그런데 데리다는 가치체계에는 오직 폭군적인 요소만 있다고 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가치체계는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삶에서 나아가야 할 방향이나 추구해야 할 목표가 없으면 아무 것도 다른 것에 우선하지 않으므로 삶은 무의미해진다. 고통은 인생에 내재되어 있고 벗어날 방법도 없는 인간의 숙명이다. 이에 맞서려면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방법 밖에 없다. 문제는 개인이 목표 지향적인 가치구조 안에서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제약을 받게 되고 자신의 일부를 억누르고 다른 사람들 일부를 배제하게 된다. 가치체계의 배타성과 다른 사람들을 그 체계에 포용하려는 욕구 사이에는 끊임없는 긴장관계가 존재한다. 그런데 가치체계를 파괴해버리면 달성하려고 노력해야할 목표도 없고 삶은 무의미해지므로 모든 것이 밋밋하고 무감각해지고 오로지 고통만 남게 된다. 포스트모더니즘에는 바로 이러한 깊은 허무주의가 내재되어 있다.(p56)”
세계에 내던져진 인간이라는 존재는 방향을 정하지 못하면 살지 못한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은 정의라는 명목하에 모든 것을 해체하고 있으니 허무주의가 기승을 부릴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비판이란 인류의 진보를 가능하게 만드는 인간 이성이 아니던가? 허무주의로 인해 삶이 망가지더라도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 인류의 고귀한 목표가 아닌가? 하지만 이런 사회 철학과 정치 철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개인에게 요구하는 바는 추상적일뿐더러 개인의 심성이란 복잡해서 왠만한 인격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경지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런 탓에 이런 사회 철학은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악용될 수 있는 여지 또한 존재한다.
세뇌되는 청년들 그리고 이슬람
앞서 말했듯 좌파에 장악당한 문화, 교육, 예술계는 청년들을 PC로 물들인다. 좌파적 이념은 통념이 되었다.(이것에 사람들이 동의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런 연유로 페미니즘과 다문화주의가 득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직관에 의지한 채 논리와 현실성을 무시하는 직관 이성의 횡포는 우리 시대를 괴롭히고 있다.
그 어떤 종교보다도 여성 혐오적이고 배타적인 이슬람은 상대주의와 다문화주의라는 이름 하에 서구 사회에서 보호의 대상이 되고 있다. 누구보다 난민을 받아드렸던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은 지금 고통 받고 있다. 이슬람들이 자기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들며 국가의 일원이 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꽁짜 복지혜택만을 누리며 각종 범죄를 누리고 있다. 강간, 살인과 같은 흉악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주로 이슬람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고 있다. 좌파적 이념에 물들은 언론은 사회를 정화시키는 커녕 더욱 어지럽히고 있다.
좌경화된 언론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힐러리를 치켜세우고 트럼프에 대한 악의적인 보도를 하는 언론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미국의 언론 지형은 좌경화 되었기에 트럼프에 대해 악의적으로 누락하고 왜곡하는 기사들이 많았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가짜 보도들이 트럼프를 당선시키는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PC에 반감을 가진 사람들 때문이었다.
PC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날린 미국 국민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는 좌우 진영 정치계, 재계, 언론계, 연예계 등 기득권층 전체의 위선과 이중성에 넌더리가 난 국민들이, 그들의 숭고한 포용적, 인도주의적 정책, 국경 없는 유토피아 정책에 우려를 표하자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매도당한 국민들이, 그들의 비현실적인 이상주의가 초래한 후유증을 겪고 뒷감당을 해야 하는 국민들이, 이슬람 앞에 앞 다퉈 무릎을 꿇고 서구 문명의 가치와 피 흘려 얻은 자유를 헌신짝처럼 던져버리는 서구진영의 모든 기득권세력에게 보란 듯이 하늘을 향해 찌른 커다란 가운데 손가락이라고 본다. '엿 먹어, PC도(Fuck you, fuck PC too)'라고"(p.493)
인간은 누구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고 그런 측면엔 선악의 판단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그리고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매 순간 희생하고 관용의 정신을 베풀수도 없다. 우리 시대의 병 중의 하나인 위선이 폐혜가 서구에서 이미 드러났다. 한국에서도 PC의 폐해가 조만간 선거를 통해 드러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한국의 PC도 어느정도 책임감있는 제도와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한국 또한 PC 테제가 급격히 유입되고 갈등을 유발하고 있다. 좌파와 우파는 새의 날개와 비슷하다고 한다. 한 쪽만 득세해서는 새가 잘 날아갈 수 없다. 오른쪽으로 기울었던 과거의 한국 정치 지형은 대통령 탄핵을 기점으로 급속도로 왼쪽으로 기울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좌파 진영이 너무 PC 테제에 매몰 되는 순간 미국과 비슷하게 우파 포퓰리스트에게 표심이 갈 수 있을 듯 하다.
*참고
유튜브에서 정치적 올바름에 과도할 때 벌어지는 일을 풍자하는 영상이 있어 링크를 건다.
www.youtube.com/watch?v=SDQ8CVZ51fM
https://larus3.tistory.com/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