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1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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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책 제목부터가 <가난한 사람들>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사고방식, 태도, 심리 변화, 희망, 좌절 등을 자세하게 엿볼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의 가난을 지켜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외면하고 싶은 것들이 많다. 하지만, 적당한 외면도 필요하지만, 세상을 바로 직시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지 않을까? 꼭 남의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고, 이 세상의 구성원으로서 모두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을 줄 책임도 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의 첫 번째 소설이라고 한다. 가난한 하급 관리인 데부시킨과 가난한 여성인 바렌카의 편지 형식의 소설이다. <죄와 벌>을 읽을 때도 느꼈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정말로 사람의 심리를 표현하는데 탁월하다. 주고받는 편지들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의 심리 변화를 지켜볼 수 있었다. 


그 당시의 사회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최소한의 생활비를 벌지 못하고, 또는 돈을 벌여도 내 기준으로 봤을 때 쓸데없는 곳에 탕진함으로써 스스로 가난을 자초하는 모습이 답답했다.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러 받지 못해서 가난한 이유도 있지만, 그 이유 하나만으로 가난의 불가피함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가난의 이유는 많겠지만, 몇 번의 실수로 가난으로 떨어져도 최소한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이 사회는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과도한 욕심으로 투기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한탕주의를 경계하며 약자를 용기있게 쳐다볼 수 있는 건전한 사회가 필요하다. 우리도 언제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질 지 모른다. 


데부시킨은 자신에게 필요한 것에 돈을 안 쓰고, 바렌카를 위해 돈을 쓰면서 점차 생활고를 겪는다. 편지를 통해 자신은 아무 문제점이 없다고 하지만, 서로 옆집에 사는 바렌카가 모를 수 없다. 바렌카는 편지로 더 이상 자기를 위해 데부시킨을 희생하지 말라고 하지만, 데부시킨은 자신의 운명인 양 계속 나아간다. 데부시킨은 젊었을 때에 여배우를 따라다니면서 빚을 지고 어려움을 겪었는데, 사랑과 존경이라는 감정을 자신의 가난보다 더 중시하는 가치관을 가진 거 같다. 바로 그것이 가난의 이유이기도 하다. 

데부시킨을 통해 안 사실은 가난해지면 주변 사람들이 외면을 하고, 가난한 이는 그런 주변 사람들을 욕하고, 자신이 가난할 수밖에 없는 각종 이유와 핑계를 생각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을 멸시하고, 세상 탓을 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잊기 위해 술에 빠진다. 술에 빠진 자신을 혐오하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과 어울리면서 다시 술에 빠져든다. 악순환이 계속되고,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이다. 

그래도 데부시킨은 운이 좋았고, 사랑하는 바렌카를 위해서 최악의 위기를 넘기지만, 가난에 지친 바렌카는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죄와 벌>을 읽으면서 훈련이 된 것인지 한 페이지 넘게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이어가는 형식이 그다지 지겹지 않았다. 머릿속에 나타나는 단상들을 계속 글로 표현하면 이런 형식이 아닐까 싶은데, 나도 시도해 보지만, 표현력의 부재로 끊기고 만다. 생각들이 이어지지 않는다. 


이번에 구매한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전집 11권 중에 처음으로 읽은 책이다. 아직 10권이 남아 있다. <죄와 벌>은 이미 읽었지만, 한 번 더 읽어볼 생각이다. 

책장을 지긋하게 쳐다본다. 대충 1/3 정도는 아직 읽지 못한 책이다. 그래도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읽을 수 있어서 <책도둑>이 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위안을 삼는다.


2022.01.19 Ex. Libris HJK 

더없이 소중한 나의 바르바라 알렉세예브나!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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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1-19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월 순조롭게 11분의 1 시작하셨으니 2022는 전집 하나하나 읽어가시는 해가 되겠네요^^

아타락시아 2022-01-19 17:56   좋아요 0 | URL
쉽지 않겠지만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
 
책도둑 (합본 특별판)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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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마커스 주삭이 2005년에 출간한 <책도둑>은 베스트셀러이다. 그런데, 나는 몰랐다. 당시에 책도 별로 안 읽었고, 책 자체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당시는 한창 바쁜 시절, 출장을 밥 먹듯이 하고, 주말에도 회사를 출근하던 시절이었다. 

가끔 생각한다.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얼마나 책을 더 읽을 수 있을까? 젊었을 때부터 좀 더 책에 관심을 갖고, 좀 더 책을 읽었다면 어땠을까? 


이 책의 주인공은 어린 소녀이다. 공산주의자 아빠와 그녀의 남동생은 죽었고, 생활이 어려워 다른 집에 양녀로 간 소녀이다. 히틀러의 야욕으로 인해 전쟁이 발발하고, 유대인에 대한 극심한 탄압이 있었던 독일의 한 도시에서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가족의 이야기이다. 

특이하게 이 책에서 등장하는 '나'는 저승사자, 죽음의 신이다. 사람이 죽으면 다가와서 영혼을 데려가는 역할을 하는 존재가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나'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니 당연히 죽음이 주요 소재이고, 읽는 내내 죽음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처음에 잘 적응이 안 되었지만, 읽다 보면 '나'로 들여다 보는 어린 소녀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왜 책 제목이 <책도둑>일까? 이 책의 주인공인 어린 소녀가 바로 책도둑이기 때문이다. 소녀는 우연히 땅에 떨어진 책을 주어서 글씨를 배워 읽고, 쓰면서 책에 대한 갈증이 더해간다. 먹을 것을 구입할 돈도 별로 없었기 때문에 책을 살 돈도 없었다. 나치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책들을 소각할 때 훔치고, 세탁물 수거를 통해 알게 된 부자 시장의 집에서 책을 훔친다. 그리고, 이렇게 모은 몇 권의 책을 소중하게 여러 번 읽는다. 

책을 언제나 구할 수 있고, 사지 않아도 도서관에서 빌려 볼 수 있는 요즘, 책에 대한 욕구와 사랑은 이전보다 못하지 않을까?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에는 도서관이 없었다. 삶에 대한 무게가 부모님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도서관을 찾아서 나를 데려다줄 여유가 없었다. 유치원은 구경도 못했고, 집에 책도 별로 없었다. 

그래도 부모님은 어려운 와중에 동네 서점에 얼마의 돈을 내고 내가 책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서점이었기 때문에 책을 깨끗하게 보아야 했다. 당시에 열심히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책을 가질 수 없었으니 책에 대한 욕심이 더 크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서점 주인이 내가 책을 빌려 간 후에 다시 반납 안 했다고 주장하면서 서점으로의 여행은 종지부를 찍었다. 당시에 사건 결말이 어떻게 끝났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대여, 반납 시스템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단지 서점 주인에게 말만 하고 책을 가져갔기 때문에 증거는 없었다. 

암튼 어린 나이에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그 이후 그 서점은 절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새 책을 파는 서점에서 책을 어떻게 빌릴 수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전쟁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본다. 

이름을 말하면, 알만한 사람이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는 것은 위험하고, 어리석다. 전쟁에는 승자도 없고, 패자도 없다. 우리가 만들어낸 개념인 국가는 승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가의 구성원들은 과연 승리한 것일까?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할 때 독일 국민은 환호성을 질렀다. 독일 국민의 오기와 자만심은 하늘로 치솟았다. 하지만, 전쟁으로 인해 배급제가 되고, 사람들을 군인으로 징병하고, 서로 의심하고 감시하면서 무너지는 시간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독일 국민도 엄청난 피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현대전에는 전방과 후방이 없다.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세상이기 때문에 피난도 별로 의미가 없다. 내가 원하지 않는 전쟁 때문에 내가 죽는다. 이게 현실이다. 나의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 땅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싸우지 않고, 지킬 수 있다면 굳이 생명을 걸고 싸울 필요가 없다. 


몰입감 있고, 재미있는 책이면서 이것저것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어려웠던 시대적 배경속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는 '나'의 특수한 존재 때문에 긴장감을 더 느낄 수 있었다. 아직까지 읽어 보지 못한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2022.01.15 Ex. Libris HJK 


작은 진실 한 가지
당신은 죽을 것이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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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22-01-17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나라에 도서관이 지금처럼 자리를 잡은 건 한 이십년이 좀 넘었으려나... 책은 뭐 얼마나 있었게요. 그러고보면 참 눈부신 발전이에요. 이젠 아이들이 책을 지겨워할 만큼 쌓여있잖아요:-)

아타락시아 2022-01-18 06:57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이제 집에서 몇 번의 클릭으로 책도 쉽게 구할 수 있죠. 도서관에서 미리 예약하고 지하철 역에서 대출하는 기계도 있더라구요. ^^
 


한때 레고에 빠진 적이 있었다. 어렸을 때 장난감이 별로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 레고를 많이 좋아했다.

하지만, 한정된 공간으로 인해 점차 버거워졌고, 미니멀리즘을 실천한다는 생각에 레고를 많이 정리했다. 

어느 취미나 마찬가지 이겠지만, 레고의 끝판왕은 큰 집이다. ㅠ


많은 레고를 정리했지만, 소장하고 있는 레고들이 있다.  

1년마다 모듈러 엑스퍼스라는 카테고리에 집 한채가 신상품으로 나온다. 북유럽 스타일을 지닌 집인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레고 시리즈이다. 1년마다 나오는 집 한 채 가격은 평균 20만원에서 30만원 사이이다. 

레고는 더 이상 아이들 장난감이 아니다. 100만원이 넘는 제품들도 계속 나오고, 타이타닉 배는 80만원, 50만원이 넘는 자동차도 있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취미에도 어느 정도 절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에 구매한 제품은 2022년 1월 1일 출시된 뷰티크 호텔이다. 북유럽 스타일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기존의 집들과 나름대로 잘 어울린다. 이로써 총 12채를 소유하게 되었다. 이번에 구매한 뷰티크 호텔과 작년에 구매한 경찰서는 아직 박스 상태이다. 

1년마다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1년 동안 열심히 살았다고 위로하는 선물이다. 갑자기 코가 찡하다. ㅠ






그동안 모은 10채(조립한 집)을 오랜만에 사진 찍었다. 딱 한 개만 소장중인 소중한 레고 장식장이다.





2022.01.11 Ex. Libris. HJ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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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읽는 세계사 - 전면개정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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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부제를 나름대로 만들어 보자면, "외면하고 싶은 불편한 역사"라고 생각한다. 20세기를 흔든 대사건 위주이지만, 우리가 피상적으로 한쪽만의 일방적인 입장으로 알고 있는 역사를 담대하게 마주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첫번 째 이야기, 드레퓌스 사건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유대인을 탄압하고, 학대한 사람은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로 알고 있지만, 사실 19세기부터 유럽 전반적으로 유대인을 차별했다. 

프랑스 육군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독일과 내통한 반역자로 몰아 1894년 12월 22일 드레퓌스 재판을 통해 유죄판결을 내린 사건이다. 당연하겠지만, 이렇게 끝났으면 더 이상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았겠지만, 에밀 졸라를 비롯한 소수의 지식인들이 서로 연대하여 무죄를 주장하여 1906년 7월 12일 ~ 13일 무죄가 확정되었다.

나중에 드레퓌스는 무죄였음이 많은 증거와 진술을 통해 확인되었지만, 그가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것은 단지 그가 유대인이었고, 많은 프랑스 언론과 시민들은 유대인에 대한 안 좋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에밀 졸라 등은 탄압을 받기까지 했다. 박근혜 정권 때의 문화, 예술계에 적용된 블랙리스트처럼 말이다. 

유시민 작가는 이 사건을 지식인들의 연대를 통해 진실을 밝혀내고, 이런 기조를 20세기의 서막을 여는 중요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 정도까지 모르겠고, 유대인 차별이 독일만의 모습이 아니었고, 자유와 혁명의 프랑스도 지식인 탄압과 진실에 대한 외면이 만연했다는 사실이다. 

로마 교황청과 기독교인들은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인정하기 전 그들을 박해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중세기 내내 유대인을 박해했다고 한다. 자신들이 받은 박해를 그대로 유대인에게 전달하는 기독교인은 정말 올바른 것인가? 한 가지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이렇게 박해를 받았던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에게 자행한 만행이다. 2천년 전에 살았던 땅이니 내놓고 꺼지라는 식의 사고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 만약, 이런 생각을 모두 가지고 있다면, 지구는 전쟁으로 뒤덮일 것이다. 

박해를 받고, 박해를 주고, 20세기는 이런 행위의 반복적인 역사가 아닐까 싶다. 


홀로코스트라는 말은 본래 구약에서 희생물을 통째로 태워 버리는 특수한 종교의식을 가리키는데, 1948년 이스라엘공화국을 수립한 시온주의자들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지칭하는 용어로 공식 사용했다. 유대인의 역사는 유럽 기독교 문명의 어둡고 살벌했던 뒷골목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배신한 '유다 이스카이옷'만 유대인이었던 게 아니다. 나사렛 예수, 어머니 마리아, 다른 제자와 사도 바울까지 신약의 주요 인물은 모두 유대인이었다. 기독교는 팔레스타인 유대교에서 갈라져 나온 종파였지만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공인하고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국교로 선포한 이후 로마제국의 권력과 결합해 유럽 전역에 퍼졌다. 유대인의 '죄'는 예수가 오기 2천여 년 전부터 지닌 종교적 신염을 버리지 않은 것이었다. (P.194)


유대 군대가 도시를 어떻게 파괴했는지는 영국군이 주둔했던 항구도시 하이파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1947년 12월부터 산비탈에서 드럼통 폭탄을 굴려 내려보내고 도심에 박격포를 쏘았다. 영국군이 하이파를 물러난 1948년 4월 21일에는 도심을 집중 폭격하고 눈에 보이는 모든 아랍인에게 총을 쏘았으며 불에 타는 모든 것에 방화했다. 하이파 주민들은 물에 뜨는 것은 무엇이든 붙잡고 항구를 탈출했다. 밝혀 죽거나 버려진 아이들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유대 군대는 나사렛을 비롯한 다른 도시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파괴했는데, 주로 아랍인이 거주하던 예루살렘 동부까지 폐허로 만들었다. 동유럽 점령지의 유대인을 마을 단위로 학살한 나치 친위대 못지않게 잔인했던 것이다. (P.219)


역사에 대한 인식이 중요하다는 점을 사라예보 사건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사라예보 사건은 1914년 6월 28일 일요일에 보스니아에서 태어난 세르비아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와 황태자비인 조피를 암살한 사건이다. 이 사건이 유명해진 것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한 구실을 제공했고, 이로 인해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조금만 역사를 알았다면 일찍 죽음을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세르비아 민족 통일 원칙, 보스니아 주민 중 절반 이상이 세르비아 민족이라는 점, 세르비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갈등 관계 등을 고려할 때 그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를 굳이 찾아갈 이유도 없었고, 이미 폭탄 테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붕이 열린 차를 타고 이동을 했어야 할 이유도 없었다. 

사라예보 사건이 아니어도 제1차 세계대전은 필연적으로 발생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다른 나라와 땅을 빼앗아 식민지화를 진행하던 제국들이 더 이상 빼앗을 곳이 없으니 서로에게 본때를 보여주기 위한 전쟁이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개연성이 있다. 조선도 제국 식민지에 희생당한 나라였다. 당시 제국이 되느냐, 식민지가 되느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게도 조선은 귀중한 시간을 허무하게 보내고,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동경했던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모두 식민지 운영을 통해 성장한 제국주의 국가였다. 독일, 구 러시아도 마찬가지이다. 인도, 인도차이나, 필리핀, 아프리카 여러 국가들이 이들 국가에게 피해를 입었다. 식민지 운영을 원만하게 했더라도 이후 그 나라의 독립을 둘러싸고 많은 잡음이 나왔다. 일본이 이들을 모방해서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만주를 침략하고, 동남 아시아로 쳐들어갔다. 

끊임없는 전쟁을 겪으면서 살아남은 한국처럼 베트남 근대사도 대단하다. 베트남은 프랑스, 일본, 미국, 캄보디아, 중국과 차례로 전쟁을 했다. 침략을 받으면서도 많은 위기를 극복하고, 통일된 지금의 베트남 국가를 만들었다는 것에서 분명히 배울 점이 있다. 비록 그들이 공산국가라고 하더라도 스탈린의 대숙청이나 마오쩌둥의 문화대혁명 같은 야만행위는 없었다.  

한국도 6.25 전쟁 때 중공을 물리치고, 민주주의 통일 국가가 되었다면 지금보다 더 발전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마음 편하게 대동강, 금강산, 백두산을 구경할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내수 시장을 뒷받침할 인구수가 되어서 경제적으로도 발전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물론, 가정일 뿐이다.


20세기 미국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며 좋은 일도 많이 했지만, 그들도 언제나 옳았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들을 위해 모든 일을 계획하고, 운영했다. 

그들이 유대인의 국가 이스라엘을 지원해서 팔레스타인을 점령하도록 하고, 중국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장제스를 지원하고, 베트남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부정 부패로 찌든 남베트남, 베트남 공화국을 지원했다. 그리고, 일본의 조선 식민지화를 묵인했고, 그들에게 각종 무기, 석유 등을 제공했다. 일본이 점차 야욕을 드러내면서 미국의 이익에 영향을 미치자 일본에게 석유 수출을 금지했고, 일본은 진주만 침공으로 그에 대한 답을 했다. 

장제스가 대만으로 넘어가 원주민을 대량 학살하고, 땅을 빼앗은 것이나 베트남인들이 통일 베트남을 만들기 위해 그토록 엄청난 희생을 했다는 점,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한국의 엄청난 피해 등에 대해서 미국이 자유로울 수 있을까? 

미국이 우리에게 정말 고마운 나라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들이 우리를 좋아하고, 사랑해서 우리를 무작정 도와주고, 아직까지 한반도에 있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일 뿐이다. 


북아메리가 원주민을 대량 사살하면서 그들의 땅을 빼앗고, 아프리카의 주민들을 납치해 노예로 부린 국가가 미국이다. 심지어 당시에 모두 합법적이었다. 국가라는 것, 인종이라는 것도 모두 관념일 뿐이다. 유전자는 99.9% 이상 동일하다고 한다. 인종 개념은 생물학적 근거가 없다. 하지만, 백인이라는 우월성을 만들고, 다른 집단을 착취하고, 차별한 중심에 미국이 있었다.


미국 인종문제의 책임은 '소수인종'이 아니라 '백인'에게 있다. 그들은 인종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미국을 건립했으며 인종주의적 특권의식에 의거해 흑인 노예를 부렸다. 누가 백인인지는 자기들도 모른다. 처음에는 앵글로 색슨계 이민지만 백인이었다. 독일, 아일랜드와 북유럽 이민지가 뒤를 이었고, 이탈리아와 그리스를 비롯한 남유럽인과 동유럽 유대인이 합류했다. 그들은 피부색과 신체 특성이 모두 달랐고 자기네끼리 혼인해 유전자가 뒤섞였다. 백인의 경계는 불분명하고 내부 구성은 복잡 다양하다. '인종'과 마찬가지로 '백인'도 객관적인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사회적 발명품이라는 말이다. (P.303)


아직도 전쟁중이라는 국내외 인식을 바꾸기 위해 정전이 아니고 종전협정을 맺으려고 하는데, 누군가 그딴 것을 해봤자 떡이 나오냐고 반대하는 입장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이런 역사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다니 정말 한심하게 느껴진다. 종전 협정으로 인해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면 그 문제를 풀어야 하고, 그 문제를 정확하게 지적해야 함이 타당하다. 한 국가의 흥망성쇠, 그리고 그로 인한 국민들의 의식, 생활 수준, 사회 시스템은 단 1명 때문에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역사는 증명한다. 


20세기 처럼 21세기도 지구 전체적인 측면에서 다양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물론, 20세기에 비해서 과학과 기술의 발전, 전세계가 모두 연결된 네트워크의 힘 등으로 인해 보편적으로 좀 더 나아졌다고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위기는 여전하다. 중국과 대만의 갈등,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갈등 등으로 인해 전쟁이 날 경우 그 피해 는 20세기와 차원이 다를 것이다. 20세기와 달리 세계 대전으로 나아가면 곧 지구의 종말이 올 것이다. 전쟁 뿐만이 아니고, 기후 변화, 생태계 오염 등으로 인해 인간이 더 이상 지구에서 살 수 없는 시기가 올 지도 모른다. 국가, 민족, 종교 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서로를 적대시하고, 지구 환경과 생태계를 지키자는 공동의 노력을 외면하면 지구의 끝은 더 일찍 찾아올지도 모른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지구의 주인이자 생태계 파괴자인 호모사피엔스가 신이 되려고 한다면서, 힘은 세지만 책임의식은 없는 신이 가장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인간이 당장 신이 된다면 틀림없이 그런 신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인간이 신이 되리라고 보지 않는다. 인류가 유전자를 조작해 생명을 창조하고 파괴하는 능력을 확보할 때까지 살아남을 확률이 핵전쟁이나 기후변화로 그 이전에 절멸할 확률보다 높다는 보장이 없다. 만약 절멸의 운명을 피하는 데 성공할 만큼 인류가 현명해진다면 어느 정도 책임의식을 지닌 신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예상치 못한 결론에 이르렀다. 어떤 경우든 우리가 아는 '역사의 시간'은 머지 않아 끝난다. 논리적으로는! (P.386)

 

2021.01.09 Ex. Libris HJK




이 책은 20세기 세계사의 열한 가지 큰 사건을 다룬 보고서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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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1-09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정판에서는 유발 하라리도 인용되나봅니다! 판매지수가 굉장히 높은 책인지라, 궁금했는데 아타락시아 님께서 부제까지 제시해주시니 고맙습니다!

아타락시아 2022-01-10 13:54   좋아요 1 | URL
그동안 잘 몰랐던 부분을 알 수 있었고, 세상을 좀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물론, 쉽지 않겠죠. 댓글 감사합니다. ^^
유발 하라리는 맨 마지막 부분에 살짝 언급되네요. 인류의 미래를 이야기하다 보니 언급한 거 같아요. ^^
 
킹 세종 더 그레이트 킹 세종 더 그레이트
조 메노스키 지음, 정윤희, 정다솜, Stella Cho 외 옮김 / 핏북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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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는 특이하게 미국인이다. 그의 이름은 조 메노스키,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유명한 "스타 트랙"이라는 SF 드라마에 참여한 작가 겸 제작자이다. 조선 시대 임금이었던 세종에 대해서 외국인이 소설을 쓴다는 사실부터 나의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조선 시대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 2명을 뽑으라면, 세종 대왕과 이순신 장군이다. 두 분은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전혀 떨어지지 않는 위대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한국 문화가 대세이다. 드라마, 영화, 음악, 음식, 뷰티, 패션, 태권도 등 전 세계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다. 이런 현상은 자연스럽게 한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한글에 대해 알면 알수록 뛰어난 한글에 대해 빠지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그리고, 뛰어난 한글을 임금이라는 위치에서 백성을 위해 직접 만들었다는 이 놀라운 사실을 알면 세종 대왕에 대한 흠모가 생겨나지 않겠는가?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기의 이익을 위해 국가를 망하게 하는 권력자들이 있다. 국민을 위해, 민생을 위해, 국가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자신들의 기득권과 이익을 위해 이합집산하는 세력이 있다. 

세종 대왕이 훈민 정음을 발표할 때 힘이 없는 백성들이 쉬운 글자를 배워 글을 읽고, 쓸 수 있으면 나라를 망하게 할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처럼 백성들을 지배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한문을 배우고, 써야 한다는 기득권 세력들이 있었다. 백성들이 임진 왜란 때 조선을 지키지 않았던가? 나라에 고난이 닥쳤을 때 도망가지 않고, 의병을 일으켜 싸웠던 그들이 백성이 아니었던가? 

임금이 없으면 백성이 없는가? 아니다 백성이 없으면 임금이 없는 것이다. 백성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 임금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백성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알고 있는 그 분이 세종 대왕이다. 


이 책은 소설이다. 이 책의 줄거리는 조선의 임금, 세종 대왕이 훈민정음을 어떻게 만들고, 왜 만들었는지에 대한 과정을 중점적으로 다룰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이 책의 저자는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 주변 나라와의 관계까지 언급하며 세종 대왕의 위대함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외국인이 역사학자도 아니면서 이 정도의 지식을 가지고 글을 쓴다는 것이 놀라웠다. 


조선을 신하로 생각하는 명나라, 호시탐탐 조선을 노략질하려는 왜구, 명나라와 조선을 이간질 시켜서 명나라를 침략하려는 몽골 부족까지 등장시키면서 조선의 주변 역학 관계를 묘사하고, 세종 대왕에게 다가오는 위기를 고조시킨다. 동시에 세종 대왕의 인간적인 면모, 백성을 위한 끊임없는 열정에 대한 내용은 읽은 이로 하여금 세종 대왕에 대한 따뜻한 마음과 연민을 느끼게 한다. 소설로서의 재미가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극적인 클라이맥스를 위한 다소 과도한 연출도 있다. 저자는 드라마 작가이다. 기본적인 소설(드라마)의 구성 요소와 전개는 갖추었으니 재미있게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 세종 대왕에 대한 입문서로도 좋다.


책장을 살펴 보니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책 한 권이 보였다. 조 메노스키에게 창피함을 느끼면서 세종 대왕에 대해 좀 더 배우겠다는 다짐을 한다.





세종이 창제한 훈민정음은 유교 사상이 팽배혔던 조선에서 정식 문자로 채택되지 못했으며 공적인 문서에 사용되는 것도 금해졌다. 하지만 소멸되지 않고 여성 문인과 승려와 일반 백성 사이에서 문자로서의 기능을 유지하며 수 세기 동안 보존되었다가 20세기에 이르러 '한글'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정식 문자가 되었다. 현재는 칠천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한글을 사용하고 있다. (P.359)



2022.01.06 Ex. Libris HJK



수려한 용모의 세종은 사십 대 후반에 접어들며 자애로움이 더해졌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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