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토리만 가지고 소설을 판단하면 안된다. 풀냄새, 풀벌레 소리가 들릴 것 같은 그런, 뜯어서 보관하고 싶은 문장들로만 가득 채운 한 챕터가 있을 수 있는거고,,, 겉으로 드러난 스토리가 아닌 정말 하고 싶은 얘기를 숨겨뒀다 찌르는 경우도 있다. 드라마를 봐라. 스토리 라인은 거기서 거기다. "왕좌의 게임"이 미드 중 1위를 한건 왕국들끼리 왕좌를 놓고 싸웠더라는 얽히고 섥힌 스토리때문이 아니고 19금 자극적인 장면들이 많아서다. "셜록"이 영드 중 1위를 한건(그랬을 것이다, 아마도) 뽀뽀해주고 싶을만큼 캐릭터를 멋드러지게 연기한 배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책도, 특히 소설도 이렇게 그냥 스토리만 가지고 좋다, 나쁘다를 얘기하면 안된다. 인간이 짜낼 수 있는 스토리는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스토리가 일으킬 수 있는 감정은 거기서 거기가 아니다. 다른 각도로, 미처 모르고 지나갈 뻔한 그 감정을 "너도 느껴봤잖아" 해줘야 진짜 울림이 있는 소설이다. 원더보이는 훌륭한 성장소설이기도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 가기엔 아깝다.


# 지면이라는 자원 활용 #


예전에 베르나르베르베르 신(2011)의 결말 부분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있었다. 결말 부분에서 우주선(?)을 타고 우주의 끝을 향해 날아가다가 어디에, 구체적으로 말하면 백지 같은 것에 부딪히고 어떤 눈이 자기를 지켜보고 있음을 깨닫는다. 그 백지는 바로 책, 눈은 독자의 눈이었다. 그 부분이 어색하고 유치하단 사람도 있었겠지만 나는 속으로 외쳤다."쥐니어스, 부릴리언트, 오썸!!" 영화에 "음악+영상" 짬뽕 무기가 있다면, 책은 지면이 있다. 하지만 여태 그 종이를 활용한 책은 별로 없었다. (내가 읽은 책에서는...작아지는 목소리..) 책은 여태껏 검정색 활자에만 집중해왔지 삽화, 백지, 여백 등은 그저 거드는 축에 속했다. 작가는 활자만 적으니까. 하지만 원더보이에서 이런 부분이 나온다. 에혀, 이럼 영화로 못만들잖아요.




#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


누가 죽은 적이 있나보다. 진짜로. 작가가 그런적이 있나보다. 아빠죽지마아빠죽지마아빠죽지마,, 오래된 눈물이 났다. 




꿈에서 깨어 엉엉 울었던 그 때 그 기분. 죽으면 하늘의 별이 된다는 것만큼이나 와닿지 않았던 천국에 대한 위로. 공룡, 별, 역사를 보다가도 죽으면 끝인 덧없는 존재에 대한 생각과 동시에, 찰나와 같이 짧고 덧없기에 신기하고 소중한 생명에 대한 고마움. 슬프다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우스개 소리를 하다가도 다시 슬퍼지는게 반복되다가 결국 농담과 슬픔이 섞여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거세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기분. 그 플라스틱맛.


아빠가 이 지구상에서 인간으로 존재했던 시간은 고작 42년.

그나마 나의 아빠로 존재했던 기간은 14년.

그건

해도 해도, 

너무한 일이에요.


해도 해도.

달도 달도.

별도 별도.



# 문제의식 #


유희적 수준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기능을 다하고 있다. 억지스럽거나 부담스럽지 않게.

그리고 1978년 여름이 되자,

베드로의 집에서 국영수를 가르치던 형들이 우리에게 말했다.

이제 우리가 살아갈 세상은 완전히 다를 거라고.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만약 누군가 그런 짓을 하려고 든다면,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라고.

뭐라도 할 것이라고.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 거라고.

우린 혼자가 아니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력중독 - 인간의 모든 어리석음에 관한 고찰
에른스트 푀펠. 베아트리체 바그너 지음, 이덕임 옮김 / 율리시즈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에이, 우리 이런 책은 안내기로 약속해요. 제목 네 글자만 있어도 될 것 같은 책. 

피로사회 느낌 기대했다가 금방 내려놓은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통의 존재
이석원 지음 / 달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 친구, 평안


덕분에 오랜만에 이런 단어들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사랑, 남편에게 잔소리 끝에 "사랑하니까 이런 얘기 하는거야" 해봤더니 비실비실 웃으며 넘겨준다. 친구, 나도 친구가 별로 없고, 그다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데 별로 외롭지도 않아서... 돌아보니 가족이나 동료들, 친구들이 다 친구였구나 싶었다. 그리고 나의 과거나 다른 사람들에 비해 지금 내가 참 평안하단 생각도 들었다. 당장 암투병을 하더라도 - 좀 극단적이지만 - 병가낼 수 있는 직장, 설령 내가 투병 끝에 죽더라도 우리 아들 잘 키워줄 남편, 틈틈히 책 읽고 독후감도 쓸 수 있는 여유가 있으니 말이다. 양철북 읽는 와중 무겁고 어려운 마음을 가볍게 "괜찮슈" 해주는 고마운 책. 참, 그리고 난 이석원이 가수인지 몰랐다. 글만 보고도 이 사람 좋더라. 음악도 들어볼까 했다가 관뒀다. 그래도 이석원이란 사람은 내가 이 책을 좋아했단 사실로 좋아할 것 같다. 안들어봐도 노래가 좋을 것 같다. 언젠가는 듣겠지 싶다. 아, 그 책 그 사람 이러면서.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거서 2016-02-13 2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K 님 덕분에 이석원이란 사람에 대해 호감 모드 돌입~ ^^
 
설국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1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유숙자 옮김 / 민음사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1948)

이러한 그의 일본춤 이야기가 여자로 하여금 그에게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은 그의 지식이 모처럼 현실적으로 쓸모가 있었다고나 해야 할 처지였지만, 역시 시마무라는 자신도 모르게 여자를 서양무용 취급을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따라서 자신의 무덤덤한 여수 어린 한마디가 여자의 생활 한가운데 급소를 찔렀다고 느끼자, 여자를 속이고 말았군 하고 뒤가 켕길 정도였는데,

"감상을 써두는 거겠지?"
"감상 따윈 쓰지 않아요. 제목과 지은이, 그리고 등장인물들 이름과 그들의 관계 정도예요."
"그런걸 기록해 놓은들 무슨 소용 있나?"
"소용없죠"
"헛수고야"
"그래요"하고 여자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밝게 대답했으나 물끄러미 시마무라를 응시했다.

전혀 헛수고라고 시마무라가 왠지 한번 더 목소리에 힘을 주려는 순간, 눈이 울릴 듯한 고요가 몸에 스며들어 그만 여자에게 매혹당하고 말았다. 그녀에겐 결코 헛수고일 리가 없다는 것을 그가 알면서도 아예 헛수고라고 못박아 버리자, 뭔가 그녀의 존재가 오히려 순수하게 느껴졌다.

열아홉이나 스무 살 먹은 시골 게이샤의 샤미센쯤이야 들어보나 마나 뻔하다, 객실인데도 마치 무대에 선 것처럼 켜고 있질 않나, 나 자신이 산에서 느끼는 감상에 불과하다, 라고 시마무라는 생각하려 애썼다. 고마코는 일부러 구절을 단조롭게 읽어내리기도 하고, 여기는 천천히, 성가시다며 건너뛰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신들린 듯 소리가 높아지자, 발목 소리가 얼마만큼 강하고 맑게 울리나 싶어 시마무라는 무서워져서 허세를 부리듯 팔베개를 하고 드러눕고 말았다.

간진초가 끝나자 시마무라는 겨우 숨을 돌리고 아아, 이 여자는 내게 반했군,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이 또한 왠지 처량했다.

<이런 날은 소리가 달라요>하고 눈 온 뒤 맑은 하늘을 올려다본 고마코가 말한 적이 있었다. 공기가 다른 것이다. 극장 벽도 없고 청중도 없고 도시의 먼지도 없어, 소리는 다만 깨끗한 겨울 아침을 맑게 지나며 멀리 눈 쌓인 산들까지 곧바로 울려 퍼졌다.

자신도 모르게 늘 산골짜기의 드넓은 자연을 상대로 고독하게 연습하는 것이 그녀의 습관이었던 탓에, 발목 소리가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고독은 애수를 짓밟고 야성의 의지력을 품고 있었다.

"그럼 인연이 있으면 다시 봄세" 처녀에게 말을 남기고 기차에서 내렸다.

시마무라는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자신도 깜짝 놀랐다. 그래서 더욱 여자와 헤어지고 가는 길임을 실감했다.

두 사람이 그저 우연히 합승한 사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다. 남자는 행상인쯤 되리라.

곰처럼 단단하고 두꺼운 털가죽이라면 인간의 관능은 틀림없이 아주 다르게 변했을 것이다. 인간은 얇고 매끄러운 피부를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샤미센 발목이 든 통이며 겉옷이며, 무엇이건 가져와서 그의 방에 두고 가길 좋아했다.

올려다보고 있으니 은하수는 다시 이 대지를 끌어안으려 내려오는 듯했다.

거대한 오로라처럼 은하수는 시마무라의 몸을 적시며 흘러 마치 땅끝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도 주었다. 고요하고 차가운 쓸쓸함과 동시에 뭔가 요염한 경이로움을 띠고도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양장)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용의자X의 헌신 처럼 시간과 인물이 서로 잘 얽혀 있는 잘 짜여진 구성, 알고보니 엄청난 희생과 사랑이 있었더라 하는 감동이 있다. 사피엔스를 읽고 난 직후 읽어서 그런지 "기적"이라든지 하는 것에 완전히 빠져들진 못했지만 재미있긴 정말 재미있었다.


영화 중에 비슷한게 떠올랐는데, "시월애(2000)".. "말할 수 없는 비밀(2007)".. 그리고 성격은 좀 다르지만 "러브 액츄얼리(2003)" 같은 따뜻함.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수인 2017-08-11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에도 나미야 할아버지가 있었어요!
책을 읽는 내내, 나에게도 ‘나미야 할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페이스북에 ‘나미야 잡화점을 현실로‘라고 검색하니 실제로 누군가가 익명 편지 상담을 운영하고 있더라구요.
namiya114@daum.net 여기로 편지를 받고 있고, 광주광역시 동구 궁동 52-2, 3층 나미야할아버지 로 손편지를 보내면 손편지 답장도 받을 수 있다고 하네요.
아마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이라면 대부분 저같은 생각을 한번쯤 해보셨을 거라 생각돼 이곳에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