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티 보이즈 ㅣ 창비청소년문학 138
정보훈 지음 / 창비 / 2025년 7월
평점 :
스포츠를 업으로 삼으려는 청소년들은 한 번쯤은 큰 벽을 마주한다. 돈, 기록, 재능, 슬럼프 등등. 아주 많고 다양한 벽들을 마주하게 되지만, 무엇 하나 쉽게 넘어갈 수 없다. 자신의 한계를 마주하고, 결국 자신의 전부였던 것들을 포기하는 많은 청소년들은 이렇게 말한다. "처음엔 즐거워서 시작했는데, 더 이상 즐겁지 않아요.". 자신이 상상하던 즐거운 운동과는 달리, 결과에만 매달리는 차가운 현실을 몸소 느낀 결과였다. 하지만,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포기하는 이들도 있다면, 반대로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뚜렷한 목표와 강한 의지를 가지고 꿋꿋이 꿈을 이루는 이들도 있다. 차디찬 현실 속에서도 끝까지 달리기를 사랑하는 소년, 희재. 그의 이야기가 결과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힌 청소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설렘으로 뛰게 해줬으면 한다.
18살 이란 어린 나이에 희재는 육상 선수였던 아버지마저 여의고 혼자 세상에 남게 되었다. 아버지의 오랜 친구인 도철을 따라 서울로 상경한 희재는 그의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육상부에 들어가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아주 작은 대회에서 자신을 증명하고, 일진 무리들에게서 운동장을 되찾고, 하나가 될 육상부 부원들을 모으고. 희재는 달리기를 향한 자신의 애정 하나만으로 결국 도철의 반대를 꺾고 무너져가던 육상부, "시티 보이즈"를 일으켜 세웠다. 그런 희재의 굳센 의지가 전해지기라도 했는지, 육상부의 부원인 진우, 정민, 효진, 그리고 코치인 도철까지 하나둘 진심으로 육상에 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누군가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또 누군가는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또 다른 누군가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 육상이 단체 종목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아주 복잡하고 다양하게 얽혀있는 각자의 사연을 안고서, 끈끈하게 하나로 뭉친 그들의 크나큰 첫 번째 목표는 전국체전 고등부 400미터 계주 서울 대표 선발전 1등이 되었다. 울고 웃고, 가끔씩 크게 사고도 치며 우당탕탕 시간은 흘렀고, 어느새 선발전은 코앞으로 다가왔다. 모두가 목숨을 걸고 훈련해온 그 첫 번째 결과, 1차 라운드의 등수는 2초, 그 근사한 차이로 2등이었다. 실력이 부족했던 부원, 정민이 유력한 1등 후보 학교인 한북고 선수들과 큰 격차를 벌린 점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하지만, 육상부들에게 있어 정민은 하나의 팀원이었고, 희재에게 육상은 단체종목이었다. 혼자 강한 팀이 아닌, 모두가 함께 강한 팀. 희재가 무엇보다 바라는 팀이었다. 결국 도철과 희재의 노련한 분석으로 무진고의 남자 육상부, "시티 보이즈"는 각자의 장단점 보완하고 살리며 유력한 1등 후보였던 한북고를 재치고 당당히 1등을 차지했다. 그렇게 좋은 분위기 속에서 본경기인 전국체전 고등부 400미터 계주 서울 대표로 출전하게 된 희재의 머릿속엔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과연 아버지가 말한 좋은 선수가, 육상이 단체종목이라는 그 주장의 증명이 과연 1등뿐이었을까. 희재는 그 의문에 답이라도 알고 있다는 듯 씩 웃으며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이야기 속에서 희재는 자신과 팀의 노력으로 결국 1등이란 달콤한 승리를 얻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1등을 하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스포츠에선, 아니 거의 모든 것에선 결과가 아주 중요하게 여겨진다. 결과보단 과정이라느니, 최선을 다했으니 됐다느니 말들은 하지만, 결국 그들은 결과를 볼 수밖에 없다. 오랜 시간을 걸쳐오며 사회적으로 자리 잡은 시스템을 그저 무시하기에는 그 영향력이 크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에 더 이상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혹은 흥미가 있음에도 충분한 결과가 나오지 않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과연 무진고의 육상부, 시티 보이즈는 1등을 하지 못했다고 포기했을까? 난 그들이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들이 혼자서 육상을 이어나갔다면, 머지않아 포기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 함께 합을 맞추고 열심히 훈련했던 그 기억이 육상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스포츠에 있어 결과만큼 중요한 것은 과정이다. 하지만 난 아까 현실은 과정보단 결과를 중시한다고 말했었다. 그렇다면 난 지금 모순된 말을 하고 있는 걸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과정 그 자체보단, 그 과정을 즐기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과정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을 당사자가 즐기지 않는다면 그건 시간 낭비에 불가하다. 사회는 결과를 요구하더라도, 자신 스스로는 자신의 피, 땀, 눈물로 얼룩진 노력의 순간들에 애정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현실이란 벽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과정을 즐기는 마음이, 이 이야기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아닐까 싶다.
위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는 장면이 있다. 서울에 희재 아버지의 납골당 마련하기 위해서, 고향 사람들이 아버지의 물건과 함께 돈을 모아 택배로 보내주는 장면이다. 희재는 덕분에 서울의 납골당에 아버지를 모실 수 있게 됐다. 감동적이긴 하지만, 어찌 보면 육상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장면이다.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육상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하지만 육상을 하는 당사자, 희재에게는 큰 연관이 있다. 가끔 사람들은 자신이 성취한 것들이 전부 자신의 노력만으로 얻어낸 결과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매우 오만한 생각이다. 실제로 성공에는 그들의 노력이 상당한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도움, 운과 같은 많은 외부의 요인까지 최종적으로 결합하여 성공이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희재의 경우도 예선전 통과라는 결과를 만드는 과정에서 희재의 노력과 팀원들의 노력, 그리고 고향 사람들의 마음이 함께 시너지를 일으켰을 것이다. 고향 사람들의 마음은 육상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을지라도, 희재의 마음속 든든한 기둥이 되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큰 도움을 주었다. 개인의 성공은 모두의 노력이 들어갔다는 점이 잘 드러난다는 점에서, 매우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책에선 육상을 주로 다뤘지만, 책의 전체적인 주제는 육상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도 해당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동화와는 달리 가혹하고 매몰차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현실 속에서 계속 나아가는 과정을 즐기는 마음이다. 즐기는 자를 이길 사람은 없다고. 목표까지 나아가는 모든 과정을 사랑한다면, 결국 현실은 꼬리를 내리고 우리에게 달콤한 성취감을 맛보게 해줄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차가운 현실이 힘겹고 미래가 두렵다면, 직접 이 책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가독성이 좋아 짧은 시간에 읽을 수 있고, 중간중간 드라마 대본 형식으로 상황을 서술하니 질리지 않게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목표를 이루는 과정이 너무나도 힘들 수 있다. 그럴 땐, 내 주위의 사람들을 바라보자. 그들의 진심 어린 응원과 마음을 받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다 보면, 이 모든 과정이 아름답고, 행복했었음을 깨닫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이건 어디나 넣어야 될지 모르겠는데, 인상 깊은 장면에서 "결과는 혼자의 노력으로 이뤄낸 것이 아니다." 이랬잖아. 이게 육상이 단체종목이라는 이유인 것 같다.
#도서협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