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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당신의 죽음을 허락합니다 - 이토록 멋진 작별의 방식, ‘간절한 죽음이라니!’
에리카 프라이지히 지음, 박민경 옮김, 최다혜 감수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10월
평점 :
이번 명절에 시댁에 갔을 때 간호사로 일하는 시누가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음식을 끊고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환자가 있었는데, 시누는 그 환자에게 “그렇게 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하며 식사를 권했다고 한다. 식음을 거부하면 콧줄을 통해 음식물을 넣어야 하고, 그 과정이 오히려 환자에게 더 큰 고통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연명치료 거부는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태에서만 시행되기에, 그 환자의 상황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생각했다. 물론 그 환자는 불치병에 걸려 곧 죽음을 앞둔 사람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오랜 고통과 피로 속에서 스스로 삶을 내려놓으려는 선택이었다면 그 결심은 어떤 의미였을까.
『아빠, 당신의 죽음을 인정합니다』의 저자 역시 “죽음의 선택”을 다루지만, 단순히 죽음을 돕는 사람은 아니다. 의사 자격이 정지되거나 취소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는 이 일을 멈추지 않는다. 아버지의 수차례 자살 시도를 목격한 딸로서, 그는 타인의 마지막 선택을 돕는 조력사이자 상담사로 살아간다.
그녀가 하는 일은 죽음을 권하는 일이 아니라, 수많은 상담을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볼 이유’를 함께 찾는 과정이다. 그리고 모든 상담을 거친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가겠다”고 결심하는 이들에게 최종 조력 사망이 승인된다. 타인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그들의 마지막을 돕는다는 것은 엄청난 무게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만의 신념과 철학으로 이 일을 감당해 나간다.
삶의 질이 극도로 떨어지고, 통증이 심해지며, 더 이상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마지막 선택의 권리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과연 존중받을 수 없는 일일까.
경제적 부담, 돌봄의 한계, 끝없는 통증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생각을 가지거나 죽음을 기다리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들의 시간은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책 속에서 저자는 묻는다.
“중환자지만 이성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한 사람의 확고한 의지를 무시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p.76)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누군가 오랫동안 심사숙고 끝에 가지게 된 죽음의 의지라면 그것을 존중할 수 있고, 존중해도 되며, 나아가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p.118)
나 역시 그 생각에 깊이 공감한다. 단순한 좌절이나 순간의 고통에서 비롯된 결정이 아니라, 충분히 숙고한 끝에 내린 선택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막기보다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삶’을 묻는 책이었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진정한 존중이란 무엇인지, 삶의 의미는 어디서 완성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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