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에 대하여 - 삶은 비운 후 비로소 시작된다
토마스 무어 지음, 박미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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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종종 ‘비어 있음’을 두려워합니다.
일이 끊기면 불안하고, 멈추면 뒤처질까 걱정합니다. 그래서 하루를 빽빽하게 채우며 살아가지만, 때로는 그런 하루의 끝에서 묘한 허무함이 찾아옵니다. 공허함은 결핍이 아니라, 어쩌면 우리 안에서 쉼을 요구하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공허에 대하여』는 그 ‘빈틈’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저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오히려 삶의 문이 열리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고 말합니다. 그 문장들이 내 마음의 속도를 잠시 늦추게 했습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p.35 “나는 인생 전반에 이런 여유 공간을 두려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하루 일정 속의 공백, 와달라는 요청이나 권유를 받은 장소에 가지 않는 것, 일자리 제한 거절. 이러한 것들이 내 삶의 창문이자 문입니다.”

하루 종일 숨 쉴 틈 없이 일하다 보면 뿌듯하기도 하지만, 문득 ‘무엇을 위한 노력인가’ 하는 허무함이 스칩니다. 그렇게 애쓰는 내가 안쓰럽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자의 말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는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내가 하는 일의 이유를 다시 묻고, 흐트러진 마음을 다듬을 수 있습니다. 그런 시간은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 다시 나를 세우는 여유의 틈입니다.

또 p.113 “내 삶은 일직선상에서 벌어지는 서사가 아니라, 수많은 사건이 한순간에 공존하는 ‘원’의 형태”라고 말합니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라는 존재가 결코 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지금의 나는 과거의 사랑과 배움, 누군가의 노력으로 쌓여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들 또한 서로의 사건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이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주의가 깊어지는 사회 속에서,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주 잊고 삽니다. 저자의 말은 그 잊힌 연결의 감각을 다시 떠올리게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p.258의 “공허가 주는 선물 중 하나는 침묵입니다. 삶이라는 연못에 뛰어들 때마다 굳이 소리를 낼 필요는 없습니다. 소란스럽지 않아도 깊고 단단하게 존재할 수 있습니다.”

공허하다는 말은 단순히 ‘비어 있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안에는 깨닫고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틈’이 있습니다. 저자가 말하는 공허는 결핍이 아니라, 나를 비우고 다시 채울 수 있는 공간으로 느껴졌습니다.

『공허에 대하여』는 그런 ‘틈’의 가치를 다시금 일깨워 주는 책이었습니다.
멈춤과 여백, 그리고 고요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단단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천천히 배워갑니다.

*한국경제신문 출판사에서 지원받아 주간심송에서 함께 읽고 필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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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당신의 죽음을 허락합니다 - 이토록 멋진 작별의 방식, ‘간절한 죽음이라니!’
에리카 프라이지히 지음, 박민경 옮김, 최다혜 감수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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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명절에 시댁에 갔을 때 간호사로 일하는 시누가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음식을 끊고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환자가 있었는데, 시누는 그 환자에게 “그렇게 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하며 식사를 권했다고 한다. 식음을 거부하면 콧줄을 통해 음식물을 넣어야 하고, 그 과정이 오히려 환자에게 더 큰 고통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연명치료 거부는 이미 손쓸 수 없는 상태에서만 시행되기에, 그 환자의 상황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생각했다. 물론 그 환자는 불치병에 걸려 곧 죽음을 앞둔 사람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오랜 고통과 피로 속에서 스스로 삶을 내려놓으려는 선택이었다면 그 결심은 어떤 의미였을까.

『아빠, 당신의 죽음을 인정합니다』의 저자 역시 “죽음의 선택”을 다루지만, 단순히 죽음을 돕는 사람은 아니다. 의사 자격이 정지되거나 취소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그는 이 일을 멈추지 않는다. 아버지의 수차례 자살 시도를 목격한 딸로서, 그는 타인의 마지막 선택을 돕는 조력사이자 상담사로 살아간다.

그녀가 하는 일은 죽음을 권하는 일이 아니라, 수많은 상담을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볼 이유’를 함께 찾는 과정이다. 그리고 모든 상담을 거친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가겠다”고 결심하는 이들에게 최종 조력 사망이 승인된다. 타인의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서 그들의 마지막을 돕는다는 것은 엄청난 무게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만의 신념과 철학으로 이 일을 감당해 나간다.

삶의 질이 극도로 떨어지고, 통증이 심해지며, 더 이상 인간다운 삶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마지막 선택의 권리가 주어진다면, 그것은 과연 존중받을 수 없는 일일까.
경제적 부담, 돌봄의 한계, 끝없는 통증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생각을 가지거나 죽음을 기다리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들의 시간은 “삶”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책 속에서 저자는 묻는다.

“중환자지만 이성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한 사람의 확고한 의지를 무시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 (p.76)

그리고 이어서 말한다.

“누군가 오랫동안 심사숙고 끝에 가지게 된 죽음의 의지라면 그것을 존중할 수 있고, 존중해도 되며, 나아가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p.118)

나 역시 그 생각에 깊이 공감한다. 단순한 좌절이나 순간의 고통에서 비롯된 결정이 아니라, 충분히 숙고한 끝에 내린 선택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막기보다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삶’을 묻는 책이었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켜보며 진정한 존중이란 무엇인지, 삶의 의미는 어디서 완성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아빠당신의죽음을인정합니다 #에리카프라이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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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죽음 #삶과죽음의경계 #조력사 #삶의의미 #존중에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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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 꼭 알아야 할 최소한의 한자 300 - 문해력 잡고 성적 올리는
권승호 지음 / 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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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쓰는 어휘의 70%, 공부할 때 쓰는 어휘의 90%가 한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저는 중학교 정규 수업에 한자 시간이 있었고, 네모칸이 있는 바둑판 공책에 한자를 빼곡히 쓰며 외웠던 기억이 있는데 1호를 보니 요즘 중학교에서는 한자를 배우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더라구요.
문해력과 어휘력에서 한자가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었기에, 1호 초등학교 때 한자 능력 시험을 보게 했었어요. 기초적인 7급을 열심히 공부해 합격했지만, 6급에 도전하면서부터 외우는걸 힘들어 하더라구요.저 역시 보기에 난이도 차이가 컸고, 결국 아이는 아쉽게 탈락한 후 한자 공부를 놓아버렸습니다.😑

지금은 가끔 아이가 “이 단어 무슨 뜻이야?”라고 묻곤 할때마다 저는 한자어를 풀어 설명해 주면서 “이런 의미야”라고 알려줍니다. 이렇게 단어를 이해하고 문해력을 기르는 데에는 결국 한자를 아는 게 필요하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청소년이 꼭 알아야 할 최소한의 한자 300』은 단순히 한자를 나열하고 외우게 하는 책이 아니라 6개의 주제별 파트로 나누어, 한자가 일상에서 어떻게 쓰이는지, 그 본래 의미는 무엇인지, 국어사전에서는 어떤 뜻으로 풀이되는지, 또 그 한자가 들어간 예시 단어까지 함께 보여줍니다.
단순 암기가 아니라 활용 속에서 자연스럽게 익히게 해 주는 구성이 인상적이었어요.

한자한자 읽어보며 생각했어요.
한자를 억지로 외우지 않아도, 단어 속에서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점을요. 그래서 저는 이 책을, 한자에 흥미를 잃었던 1호에게나 앞으로 한자를 좀 더 알아야 할 2호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외우는 부담보다는, 펼쳐보고 읽으며 자연스럽게 눈에 익히는 책으로 말이죠.

#청소년이꼭알아야할최소한의한자300
#권승호
#마이디어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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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론은 어쩌다
아밀 지음 / 비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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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멜론이였을까?

[식물학적 특성]
염색체수는 n=12이고 종자 · 잎 · 특히 꽃(성포현형)과 과일의 형태에는 다른 채소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유전적인 다양성이 있다. 과일의 모양 · 크기 · 색깔 · 반점 · 줄무늬 · 그물무늬 골의 유무 · 품질 등에 따라 변이가 크다. (N 지식백과에서)

가장 눈에 띄는 문장은 ❛유전적인 다양성❜ 이였다.


우리는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과 잣대로 사람을 쉽게 평가하고, 다르다는 이유로 배척하거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하지만 그 기준이 정말 옳은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 『멜론은 어쩌다』의 여덟 편의 단편은 그런 의문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존재의 다양성과 흔하지 않은 사랑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의 레즈비언 뱀파이어 친구〉
절친 미나의 고백과 변화,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영이 마주한 자기 감정의 진실이 그려진다. 다름을 부정하던 마음에서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확인하게 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어느 부치의 섹스 로봇〉
‘사랑이란 결국 서툴더라도 서로를 존중하고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하지 않아도, 정답이 없어도, 이해하려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사랑일 수 있지 않을까.

👩‍🎤〈아이돌 하려고 태어난 애〉
유전자 편집으로 탄생한 스타를 통해, “어떻게 태어났는가”보다 “어떻게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노 어덜트 헤븐〉
‘남자답다, 여자답다’라는 말이 얼마나 쉽게 아이들의 정체성을 가두는지, 부모의 단호함이 얼마나 큰 상처가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했다남성·여성이라는 이분법으로 정체성을 가두는 사회에서 인터섹스, 간성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틀린 게 아니라 다른 것’이라는 말이 깊이 다가왔다.


이 책은 흔히 보이지 않는 소수자의 삶을 드러내고, 그 속에 담긴 존중과 사랑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외면하거나 모른 척했던 다양한 삶의 방식들이 사실은 멜론처럼 수없이 다채로운 변주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와 함께 나 또한 그 힘겨운 길을 걸어가는 이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보내고 싶다.


다르다고 틀린 건 아니잖아. 존재의 무늬를 그대로 읽어내는 소설

#멜론은어쩌다 #아밀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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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모노스토리 2
이종혁 지음 / 이스트엔드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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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안나푸르나에 갔던 민철 삼촌은 5년 만에 사망 소식으로 돌아왔다.

유족이라 해봐야 부모 없이 할머니와 살다가 8살 어린이날 보육원에 맡겨진 현준이뿐이었다.
삼촌은 산악 전문가였으나 동료의 죽음 이후 3년간 침잠하다 홀연히 사라졌고, 돌아와서는 현준과 함께 살았다. 현준과 같은 날 버려진 친구 성민도 보육원 퇴소 후 함께 지내며 평범한 일상을 나누었다. 그러나 삼촌은 또다시 떠났고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이 5년 전이었다.

P36
2021.02.01
나는 절대 너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P37
자신 때문에 죽은 연수에 대한 죄책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집요함이 있었다. 그것은 간절한 사죄이자, 영원한 애도였다

현준과 성민은 삼촌의 유품인 수첩을 보며, 그를 안나푸르나에 남겨두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산업 잠수사로 일하던 성민이 바다에서 실종된다. 수색 끝에 찾지 못해 포기하려던 순간, 현준은 수첩 속 반복되는 문장을 떠올린다. “나는 절대 너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 다짐처럼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한 성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가족의 죽음과 상실의 아픔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다만 그 상처와 죄책감이 삶을 잠식하지 않기를, 남은 자들이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와 살아내기를 바랄 뿐이다. 죽음 이후 영혼들이 편안히 안식하길, 또 그 모습이 꿈에라도 찾아와 유족을 위로해 주길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작고 얇은 책이지만 가족의 의미, 희망과 용기, 나를 세우는 힘을 모두 담아낸 무겁고 큰 이야기였다. 읽지 않은 시리즈와 앞으로 나올 시리즈도 기대된다. 또한 작가 인터뷰가 실려 있어 내가 느낀 감정과 작가가 전하고자 한 감정을 비교하며 공감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P43 "우리를 구할 수 있는 건, 우리 스스로밖에 없어."

@eastend_jueol
@jugansimsong
@emmawy22_buchkalli 감사합니다.

이스트엔드에서 지원받아 주간심송과 함께 읽습니다.



#주간심송서평챌린지 #모노스토리 #시리즈 #단편 #소설
#북스타그램 #도서리뷰 #도서협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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