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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올리비아 개트우드 지음, 한정아 옮김 / 비채 / 2025년 11월
평점 :
5년 동안 텅 비어 있던 유리로 된 인형의 집에 불이 켜지던 날, 미티는 이상하게도 낯선 긴장감을 느꼈다.
그 집은 늘 ‘밖에서 보기만 하는 곳’이었고, 그 속에 들어가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레나와 세바스찬이라는 한 쌍이 그곳에 이사 왔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미티의 세계는 아주 천천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미티는 10년째 함께 살아온 베델 이모와 서로의 삶을 붙들어주며 지낸다.
현실에 적당히 적응했고, 조심스럽게 타인의 세계를 바라보는 여성.
원하지만 다가서지 못하고, 느끼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내향적인 성격.
그녀에게 레나의 등장은 마치 유리벽 너머로 비춰지는 또 다른 가능성이었다.
레나는 작고 화사한 생명체처럼 보인다.
온순하고 순응적이도록 길러진 여성의 전형처럼 보이지만, 그 눈동자에는 분명 어딘가 불완전한 질문이 떠다닌다.
남성에게서 배운 취향, 남성에게 배운 말투, 남성에게서 허락받은 창의력. 완벽하게 가꾸어진 유리집은 사실 레나의 감정과 욕망을 가둬둔 ‘온실’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미티와 레나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았음에도 비슷한 고민을 품고 있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 일.
누구에게나 있지만 말로 꺼내기 어려운 질문들.
그들은 서로를 통해 자신을 비추는 거울을 얻었다.
레나의 혼란은 미티의 침묵을 흔들었고, 미티의 조심스러운 관찰은 레나의 둔탁한 감정의 결을 깨웠다.
하지만 변화가 온 건 두 사람에게만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 미티는 베델 이모의 늙어가는 모습을 뒤늦게 깨닫고 마음이 아려왔다.
사랑하고 의지해온 사람이지만, 자신은 그동안 그녀의 변화를 보지 못했다는 사실.
그 장면에서 ‘여성에게 강요된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이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게 자신을 가둬왔는지도 새삼 깨닫는다.
책 속에 등장하는 케이블카의 유래인 경사를 오르다 죽어간 말들의 이야기는 섬뜩했다.
그 장면은 AI·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에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과도 닿아 있었다.
말을 혹사시키던 시대에서 기술이 등장했듯, 규범과 통제가 여성을 조용히 길들여온 시대에도 변화는 찾아온다는 암시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두 여성은 마침내 깨닫는다.
침묵은 단지 조용함이 아니라, 타인에게 나의 선택권을 넘겨주는 일이라는 것을.
레나는 자신이 가진 취향들,좋아한다고 믿어왔던 모든 것이 사실은 세바스찬이 가르쳐준 것임을 깨닫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기 시작한다.
“나는 누구였지? 무엇을 원하지?”
미티 또한 레나의 혼란을 지켜보며 자신이 짊어지고 살아온 죄책감과 불안을 천천히 벗겨낸다.
결국 이 이야기는 미티와 레나 두 사람이 서로를 통해 자신에게 다시 돌아오는 여정이다.
그들은 서로에게 빛이 되는 대신, 서로를 통해 자기 내면의 어둠을 바라보고 그 어둠 속에서 새로운 길을 찾는다.
시인인 저자의 문장은 짧고 정확하며, 말하지 않은 여백이 많다.
그 여백 안에서 인물들의 감정은 확실히 전달된다.
어느 순간에는 시처럼 느껴지고, 어느 순간에는 스릴러처럼 긴장감이 흐른다. 결말은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철학적이면서도 감각적이고, 불안하면서도 아름답다.
시인의 소설은 이런 것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비채서포터즈3기 로 도서를 협찬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