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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조선조 최고의 위인을 둘만 꼽으라면 문치의 전성을 이룬 세종대왕과 무관으로서의 충무공을 거론한다. 그러나 충무공 이순신의 영정을 보면 무인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온화하고 단아한 선비상이다. 구국의 영웅, 삼도수군통제사라는 무인 최고의 지위에서 모함을 받아 옥고를 치르고 간신히 죽음의 함정에서 빠져나와 백의종군하신 분, 전함 12척의 절대적 열세에서도 명량대첩의 기적적 승리를 이룬 분, 마지막 노량해전에서 아쉽게 목숨을 잃는 파란만장의 삶을 산 분의 모습만은 아니다. 추앙받는 위인이 갖추어야 할 내적인 숭고함까지 모두 갖추어 흠결 하나 없는 위인의 모습이 성웅 충무공 이순신이다.

 

<생각의 나무>에서 출판한 칼의 노래(소설 이순신)‘는 신화 속의 인물을 현실로 끌어내려 피와 살과 뼈를 가진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작가 김훈은 이충무공의 난중일기 행간에서 고통받는 인간의 신음을 들었던 것이다.

 

소설은 이충무공이 백의종군에서 시작, 노량해전의 전사에서 끝난다. 작가는 영웅의 행적이나 전쟁의 승리를 기록하려는 것이 아니라 생애 최대의 고비에서 겪은 인간내면의 고통을 형상화하려는 것이다. 사형선고를 받은 후 석방되어 죽음의 문전에서 물러 나오는 인간의 내면 풍경은 어떠할까? 의금부에서 풀려났을 때 심문과정에서 맞은 곤장의 장독으로 엉망이 되었던 몸보다 마음이 겪는 상처가 심했을 것이다. 난중일기에서 충무공은 작은 탄식소리, 희미한 한숨 하나 내지 않는다. 이충무공은 적개심, 증오심, 외로움을 일축하고 오직 오늘 옥문을 나왔다.’라고만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작가는 고통의 신음소리 하나 내지 않는 이충무공의 내면세계를 칠천량해전에서 쑥대밭이 된 한산 통제영을 통해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충무공은 원균의 패전으로 잿더미가 된 한산 수군을 재건하는 것으로 황폐한 절망적인 내면세계를 추스린다.

장군은 백의종군하라는 명을 받고 순천에 권률 도원수에게 신고하러 내려가는 도중 어머니의 부음을 듣는다. 신화 속의 영웅이 절망적이고 인간적으로 울부짖는 장면이 나온다. 모함에 의해 무고한 충무공이 의금부로 압송되어, 이를 노심초사하던 모친이 돌아가신 것이다. 효심이 지극했던 충무공이 겪어야할 내면의 갈등을 작가는 애써 외면한다. 난중일기에서 이충무공이 인간적인 모습을 직설적으로 기록한 이 장면은 자가는 오랜 전란으로 흉폭해진 인심과 아노미상태를 황폐화된 남해 포구로, 절제된 시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충무공은 어머니의 죽음 앞에 한탄한다. 나라의 명을 어길 수 없어 장례도 지내지 못하고 일찍 길을 떠나며 어머님 영 앞에 하직을 고하며 울부짖었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천지간에 나 같은 사정 또 어디 있을 것이랴. 어서 죽을 것만 같지 못하구나.’(정유 419) 충무공은 울부짖지만 곧 분노와 절망을 무섭게 억제하고 감정을 절제한다.

슬픔과 절망의 극한에서 자신을 억제할 수 있는 힘은 임금에 대한 복종과 정적에 대한 단순한 두려움만은 아니다. 적에 대한 첩보는 캄캄하고, 군대는 흩어졌고, 백성들은 전란 속에서 구명도생만을 기다리고, 언제든지 자신을 문초하여 죽일 수 있는 조정의 기대는 압력으로 다가온다.

이충무공이 한계상황의 절망을 견디어 낼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었을까? 작가는 이것을 로 보고 있다. 살인의 무기인 칼을 가슴 속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증오의 칼, 허무의 칼, 죽음의 칼. 그래서 이충무공은 새로운 길을 깨닫게 된다. ‘살 길과 죽을 길이 다르지 않다.’며 삶도 죽음도 하나로 긍정하는 것이다.

 

충무공은 육신이 아프다. 끊임없이 식은땀이 흐르고 몸은 곤하다. 몸의 아픔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힘이다. 삶과 공존하는 고통은 세상에 내가 살아 있음을 깨닫게 해주고, 동시에 세상에 대한 증오의 힘을 길러준다. 때문에 동시에 그의 마음은 한없이 허무하다. 어머니의 죽음, 아들 면의 죽음으로 이어지는 가족의 불행은 운명적으로 다가오는 개인의 불행이다. 이는 충무공을 더 할 수 없는 허무와 고뇌의 늪에 빠뜨린다. 삶의 가치와 목적을 상실케 하며 절망스런 현실의 전면에 홀로 서게 한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겪어야 되는 치욕과 모멸과 절망과 허무는 회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방법은 모멸을 모멸로 여기지 않고 절망을 절망으로조차 인정하지 않는 길뿐이다. 모멸과 절망이 없는 헛된 유토피아를 꿈꾸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시지프스의 프로메테우스를 연상케 한다. 그러나 시지푸스는 신화일뿐이지만 난중일기는 사실의 기록이다. 작가는 이 사실의 기록을 바탕으로 이충무공의 절망과 허무에 대한 분노를 칼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삶에 대한 절망과 허무에 대한 분노는 삶과 죽음을 하나로 다루어 삶도 죽음도 초월하고 있다. 몸의 고통이 크면 클수록, 허무감이 크면 클수록 자신의 임무를 철저히 한다. 육신이 쇠잔할 수록 정신은 더욱 뚜렷하게 목표를 설정한다. 완벽주의자의 결백성과 같은 의무감이 불타오른다. 그리고 나만이 이 어려운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충무공은 자신의 지위에 따른 역할 수행을 충실한다. 삶의 허무와 절망을 이겨내는 방법은 오직 전쟁의 승리뿐이다. 멈추면 쓰러질 것 같고, 곧 한계에 이르러 끊어질 활과 같은 모습이다. 현장을 확인하고 부하를 단속하고 격려하고 벌은 준다. 무오류 인간의 연전연승이라는 신화가 탄생하는 것이다.

 

신화 속 무오류의 영웅이 아닌 인간 이순신의 가치는 무엇일까? 삶과 죽음은 하나라고 생각하여, 허무를 승화시켜 나가기 때문일까? 그에게 삶과 죽음은 하나이기 때문에 타협할 수 없는 것과는 타협하지 않는다. 절대적 가치의 유지는 죽음과 교환하는 것이다. 이충무공은 퇴각로를 열어달라는 적의 협상을 거부하고 노량해전에서 하나의 칼날이 되어 날아간다.

문학적 작업은 인간의 삶을 다루는 것이다. 위대한 문학적 작업은 한계상황의 인간 삶에 내면 깊은 공감을 준다. 작가와 독자가 동시에 가지는 공명현상이 절망이든 희망이든지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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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증후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읽고 동작동 국립묘지를 찾는 고등학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국가유공자 묘역에 묻혔다는 이휘소 박사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서이다. 이 책이 얼마나 많이 청소년들에게 읽혔는지, 감수성이 예민할 때 책이 주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그리고 현실감이 부족한 청소년에게 잘못된 관점의 책이 얼마나 위험한지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참고로 이휘소 박사는 미국 시카고 교외 글렌알린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이휘소 박사는 77616122분 콜로라도주에서 아스펜으로 가는 케오네시 근처 인터스트리트도로 80번 상에서 자신의 차 (75DART)74년산 대형유조트럭과 충돌하는 사고로 사망했다.)

본교에서도 여러 학생에게서 이 책의 사실성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실제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설의 저자가 글을 쓰면서 내용의 사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책날개에 이휘소 박사라는 실명을 거명했고, 소설 속에서 이휘소 박사의 편지를 담아 논픽션인 것처럼 꾸몄는가 하면, 또 기타의 역사적 실존 인물이 등장하여 픽션이 사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싶다. 이는 소설가의 하나의 테크닉이고 이 책은 그 장르가 소설이니까 말 그대로 허구이다. 또 학생의 입장에서 이용후라는 소설적인 인물처럼, 그런 천재성과 민족애를 갖춘 영웅이 실제 있었으면 하는 감정에서 소설의 모든 내용이 사실이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질 수도 있겠다고 할 수 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많이 읽히는 이유

최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같은 한-일간의 전쟁을 다룬 유형의 책이 쏟아지게 된, 그리고 이런 유형의 책이 많이 읽히는 사회적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대한민국이 큰 힘을 소유하여 국제사회에서 주역이 될 만한 강대국으로 성장하였으면 하는 국민적 열망이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 또 주변에 초강국으로 성장하는 일본의 국력과 이에 비례해서 언론에서 비판하는 것처럼 일본 내의 극우세력의 등장을 염려하는 시각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북한 핵문제가 크게 이슈화하였고, 특히 주변 나라들이 핵보유국이거나(미국, 중국, 러시아) 잠재핵보유국(북한, 일본)인 이런 환경에서 한국은 핵무기도 없이 어떻게 생존하느냐 하는 염려도 이유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경제력이 성장하고 국제사회에서 활동영역이 넓어지면서 강대국의 견제도 많이 받고 있다. 국제 사회의 행태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강대국의 횡포와 독주에 반감도 많았을 것이다. 특히 통일 문제, 북한의 핵문제 등에 당사국인 한국이 제외되어 있는 듯한 느낌에서 오는 소외감, 우려 등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베스트셀러의 조건

현실적으로는 국제 사회에서 한국과 관련된 모든 정치경제 문제를 우리가 주도적 입장에서 우리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 결정한다든지, 당장 핵무기를 개발 소유하여 주변국과 당당히 힘으로 대결한다든지, 적어도 우리의 이익을 위협 당하지 않을 정도의 위치에 선다는 것마저도 매우 어려운 일처럼 보인다.

국제사회에서 통일문제이든, 경제문제이든 한국이 소외되어 있다는 답답함이 이 소설 속에서는 다르게 나타난다. 한국은 극적인 승리자의 입장에 있으면서도 인도주의 입장에 확고히 서 있다. 일본에 대해서도 승리자만이 맛보는 통쾌한 카타르시스가 마련되어 있다. 이런 것들이 이 소설을 베스트셀러에 올려놓은 확실한 배경이 된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알맞은 독서거리를 권하려해도 그 수준에 맞으면서도, 독서 욕구에 맞는 책을 발견하기가 매우 어렵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국가관, 민족관, 국제 정치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그러면서도 진취적인 사고방식을 기를 수 있는 읽을 거리는 더욱 찾기 어렵다. 이 책은 청소년들이 인식의 폭을 넓혀 가는 때 관심을 가질 만한 민감한 문제를 모두 다루어 흥미유발과 판매에 성공한 경우라고 보인다.

 

무궁화꽃의 또 다른 재미

이 소설은 청소년이 흥미를 끌 수 있었던 것은 다음과 같은 여러 요인들도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책은 남북통일의 과제와 상호 대립 구조적 문제점에 대하여 순수한 민족애라는 모두가 공감되는 문제 해결의 열쇠를 제공하고 있다. 통일 남북분단과 대립은 우리 민족이 해결해야 하는 민족 최대의 중요 과제이다. 이 소설에서는 동포애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로 당면한 어려운 문제를 불가사의할 정도로 손쉽게 해결하고 있다.

국제 정치에 대해서도 그 이면을 심도 있게 조망할 수 있다. 일본의 우익 등장, 미국의 자국이익 추구과정을 적나라하고 어렵지 않게 묘사, 설명하여, 국제 사회의 국가 이기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 민족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해답을 시사하고 있다.

최근 북한의 핵개발 문제가 중요한 국제적 초점으로 부각되고 일본의 플루토늄 비축 등도 우리의 관심사로 등장했다. 이 소설은 시사적으로 관심이 높고 민감한 부분인 핵개발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소설 속에서 성장하는 국력에 대한 자부심, 긍지를 갖도록 한다. 이념대결의 지루하고 잔인한 대립 구도의 밑에 진하게 깔려 있는 형제애를 바탕으로 한 일본에 대한 통쾌한 승리, 그리고 그것을 위한 한 인간의 생명을 내던진 값진 희생. 아름다운 여인의 순애보, 극적인 반전 그리고 추리적 기법을 이용한 것 등등이 소설적인 흥미를 더욱 높여 주고 있다.

 

소설의 줄거리

4공화국 때 박정권은 대내외적으로 고립되어 있었고, 국제 정세도 닉슨 독트린 이후, 주한미군 철수 등으로 체제 유지에 고단한 때였고, 북한의 남침 위협과 국제적 위상 변화를 위해, 우수한 해외 두뇌를 유치하여 핵무기를 개발하려 했고, 그에 대하여 강대국의 철저한 방해 공작이 있었고, 그로 인해 중심인물인 이용후 박사가 살해돼 교통사고로 위장되어 유기 됐고, 이를 끈질기게 추적하는 기자가 있었고, 박정권 때 극비리에 입수하여 보관하고 있던 플루토늄으로 북한과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에 착수하고, 아시아의 패권주의에 눈 먼 일본의 침략이 있게 되자 남북의 두뇌가 모여 개발에 성공한 핵무기로서 일본을 극적으로 굴복시킨다는 것이 줄거리의 대강이다.

 

이 소설에 대한 노파심

학생에게 책을 권하면서 학생이 책의 내용을 어떻게 수용할까가 항상 염려스러웠다. 저자들은 학생의 독서 능력을 염두에 두면서 쓰지 않기 때문에, 학생이 독서를 하면서 균형 있는 현실적 감각으로 책의 내용을 수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성장하면서 책 속에서 잘못 받아들인 부분은 스스로 깨우치기도 한다. 그래도 학생의 성장과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크다고 하겠다. 때문에 책의 잘못된 내용을 바로 비판할 수 있는 균형 있는 관점이 있어야 하겠고 어른의 세심한 지도가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책이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난데 비하여 그에 대한 적절한 교육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 소설의 전체 흐름에 나타나는 저자의 관점에는 몇 가지의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된다. 핵무기 개발 문제, 통일 문제, 민족주의적 관점의 문제, 그리고 외교적인 측면의 문제 등등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지적함으로써 이 책을 읽은 사람이나 혹은 앞으로 읽을 청소년들을 위한 저자와는 다른 다양한 시각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핵 무기는 꼭 가져야 하는가

한국정부는 비핵선언을 했다. 그리고 남북한이 함께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공동선언을 했다. 대내외적으로 중요한 이 문서에는 한반도에서는 핵무기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아니할 것을 함께 약속했다. 물론 여기에는 플루토늄 비축, 재처리시설 금지도 포함되어 있다.

물론 비핵선언을 할 때 많은 문제점이 제기됐다. 오래지 않아 결국은 핵에너지 시대가 올 것인데, 재처리시설이나 플루토늄 비축 등을 포기하는 것은 핵에너지 시대에 뒤떨어져서 강대국의 핵연료 공급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 또 핵무기 개발은 최첨단 기술을 소유, 개발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갖는다는 것인데, 비핵선언은 이 미래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냐?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견제 명분으로 비핵선언을 하게 된 것이 민족 전체의 이익이 무시되고 정치적 측면만 강조된 것이 아니냐? 주변 강대국이 핵보유국이고 일본도 잠재 보유국으로 플루토늄을 비축하는 상황에서 우리만 안 가진다고 문제가 해결되느냐? (살벌한 전쟁터에서 백기를 들고 알몸이 된다고 누가 관용을 베풀겠느냐?) 냉혹한 국제 정치의 현실을 너무 무시한 것이 아니냐? 그리고도 북한 핵 개발의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 아니냐? 등등의 문제가 제기되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평화적인 목적의 핵에너지에 대한 연구는 지속되어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하고 있는 현실이다.

저자도 현재까지 진행되어 온 대한민국의 정책에 근본적인 이의를 제기하고, 우리가 절대적으로 핵무기를 개발, 소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약 강대국의 견제나 핵확산 금지 조약 등으로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비밀리에라도 개발 소유해야 된다는 관점에서 소설을 전개하고 있다. 또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을 영웅시하고 있고,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진정한 민족주의자라고 보고 있다.

 

소설 속의 이용후 박사는 민족주의자인가?

그러나 나는 소설 속의 이용후(이휘소 박사가 아닌)라는 사람은 진정한 민족주의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4공화국 시절 고단한 국제환경과 북한의 남침 위협, 그리고 미군 철수 때문에 북한 남침을 억제하고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려고 했다고 한다.(소설 속에서, 그리고 현실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루머 속에서) 이 핵무기를 누구에게 사용하고자 개발하려는 것이었을까? 좁은 한반도에서 동족을 겨냥하는 핵무기 개발이 민족애에서 싹튼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난센스가 아닌가? 핵무기 개발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책에서 읽은 장개석 총통의 일화가 생각난다. 과거 대만에서도 중국에 대항하기 위해 핵무기를 개발하자는 논의가 있었지만 장개석 총통은 단호히 거부했다고 한다. 중국 민족 문제는 핵무기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는 신념 때문이었다고 한다. NATO 회원국인 서독도 미국의 핵무기가 배치될 때 반핵단체와 의회가 강력히 주장해서 서독에 배치된 핵무기는 동족인 동독을 향해 겨냥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서독 내의 핵무기 진입을 허용했다고 한다. 소설 속의 이용후라는 사람의 핵무기 개발 참여는 위의 두 가지 예와 극히 대비된다고 본다. 물론 후일 이 플루토늄은 민족애로 한 몸이 되어 남북이 함께 개발하고 이것이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민족을 구한다는 이야기로 전개되지만.

미국 핵무기 개발의 주역이었던 오펜하이머 박사는 핵 실험이 최초로 있던 날 나는 죽음의 아버지, 세계의 파괴자가 되어 버렸다!’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그리고 말년에는 신의 잘못이다. 신이 이런 것(핵무기)을 만들게 한 것이 잘못이야라고 말한 것은 과학자의 윤리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과학자는 인도주의 입장에 서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민족주의라도 우리 민족 만이라는 국수주의가 아니라 보편적인 인류애라는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해야 제2의 보스니아 사태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인류애라는 라이트로 비출 때만 과학이란는 자동차는 올바른 방향으로 사고없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닐까?

 

핵무기 개발이 외교의 왕도인가?

핵무기 개발은 힘이 있어야 평화도 추구할 수 있다!’는 논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힘없이 평화를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발상임을 스위스의 철벽안보에서도 볼 수 있다. 저자는 동북아에서 러시아와 중국이 핵을 소유하고 있고, 일본도 플루토늄을 비축하고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짧은 기간 내에 핵무기를 완성할 능력이 있다고 염려하고 있다.

현재의 국제 상황은 힘이 지배하고 있고 정치인은 힘을 통한 협상을 선호한다. 이들에게 있어 핵무기는 힘의 상징적인 것이다. 그러나 핵무기 개발 문제에는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핵무기는 개발 소유하는 것만으로는 힘이 되지 못한다. 반드시 사용을 전제로 상대를 위협할 때만 힘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핵무기를 앞세운 국가간의 협상은 자국과 가상적국 백성들의 막대한 생명을 담보로 한, 위험한 도박인 것이다.

핵무기가 국제사회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사실이다. 프랑스가 국제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으면서도 핵실험을 강행하는 것은 힘을 과시하려는 것이다. 즉 국제적인 여론의 화살은 아프지만 나라를 망하게 할 만한 치명상은 절대 아니라는 배짱일 것이다. 주변국의 침공을 받았을 때 스스로 지키지 못하게 되어 치명상을 입는 것보다 국방을 튼튼히 다져 두는 것이 장기적인 측면에서 국익이라는 속셈일 것이다. 더구나 핵확산 금지조약(NPT)에 의해 다른 나라가 갖지 못한 핵무기에 대한 노하우를 소유함은 국제적인 힘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는 생각인 것이다. 그러나 핵무기는 비록 사용하지 않더라도 개발이나 소유 자체가 이미 비윤리적이고 비인도적인 것이다.

우리는 비록 나이가 들어 현실을 이해하고 현실에 적응하게 되더라도 청소년 때는 이상주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젊은이의 이러한 이상이 그들만의 특권이고 이러한 이상주의자들의 힘으로 인류를 오늘까지 발전시켜 온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핵무기 개발 문제를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사고의 전개를 해야 한다. 핵무기는 자국의 안보를 확고히 하고 힘의 우위를 차지한다는 생각에서 개발했지만 지금은 강대국 모두가 소유하여 언제 어디서 핵폭탄이 터질지 몰라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이제는 핵무기가 안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공멸의 위험을 가져오므로 기존의 핵무기를 없애야 한다는 인식과 합의가 인류의 보편적 양심의 명령이다. 핵무기가 없는 세상이 공멸의 위협에 떠는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일 것이므로 앞으로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의무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비밀 핵개발은 비난해야

국제 외교는 단기간에 이익을 생각해서는 안 되며 장기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국가간의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비핵선언을 했고, 이는 평화를 추구하는 우리 민족의 스스로의 선언이기도 하지만 외교적인 선언이므로 우리는 이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한국 정부의 비핵선언과 남북한간의 비핵선언은 남북한의 긴장 완화는 물론 동북아의 평화 유지에 큰 공헌을 했다. 우리는 이를 바탕으로 중국의 핵실험, 일본의 플루토늄의 비축 등에 대해 도덕적으로 비난, 감시할 수 있었고 이것이 세계 여론에 힘입어 동북아 평화유지의 한 축이 되었다고 본다.

핵개발 자체에도 문제가 있지만, 소설처럼 비밀리에 핵개발을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본다.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결정은 여론을 바탕으로 국민이 결정해야 된다. 국민의 여론을 바탕으로 공개 행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 민주국가의 기본이다. 아무리 목표가 바람직하고 좋더라도 비밀주의는 곤란하다. 더구나 핵문제 같이 민족의 운명에 종언을 고할 수 있는 것을 비밀리에 몇몇이서 밀실에서 결정하고 집행한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물론 국가의 모든 정책 결정을 모두 공개하는 것만이 바람직하냐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특히 국방 문제에 있어서는 사실 모두를 공개하는 것은 적과의 싸움에서 알몸을 내보이는 것과 같다고 해도 비밀주의는, 특히 핵개발 문제는 위험한 소설 속의 발상임을, 모험주의적 소영웅주의적 발상임을 명심해야 한다. 민주 정치는 나도 모르게 내 머리에서 핵무기가 투하되어서는 안되도록, 개인과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문제에는 국민 모두가 참여토록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소영웅주의와 모험주의에 대한 국민의 보편적 이성의 견제를 기본 바탕으로 하여 운영되는 정치 원리인 것이다.

 

한국이 플루토늄 암시장의 수요자?

구소련의 붕괴 이전 철저했던 플루토늄 관리 체계가 소련의 붕괴과정에서 무너져 플루토늄이 암시장에서 거래되고 밀수출되고 있다고 한다. 누가 그 암시장의 구매자인가? 북한, 이라크, 리비아 같은 테러 국가가 대표적인 수요국가라고 한다. 핵무기는 지금 아주 손쉽게 제작할 수 있어 최근 태러단체도 구매할 가능성이 있다고 세계 양심은 경고하고 있다. 국제 외교 협상의 과정을 살펴보면 약소국일수록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NPT에도 문제가 있지만 그 기본 축은 사용가능성이 높은, 핵사용 통제가 불가능한 약소국으로의 핵확산을 막자는 것이다. 또 장기적으로는 지구상에서 핵무기의 소유와 그 사용을 영원히 없애자는 것이라고 본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한국이 국제적 신의를 저버리고 플루토늄 밀수입국이 되어서 비밀리에 이를 개발하여 이를 사용하려 한다는 소설보다도 못한 만화적인 발상 자체에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특히 소설에서 처럼 플루토늄을 국가가 아닌 개인적인 관리에 맡겨 개인적인 노력이나 친분으로 구입할 수 있다면 조만간 가공할 핵태러가 현실로 나타나지 않겠는가?

핵무기 확산 방지는 인류애적인 측면에서 세계가 모두 함께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 부분인데, 자랑스런 우리 나라가 국제 신의에 어긋나게, 또 스스로 한 자신의 약속을 어기고 비밀리에 인류를 말살할 핵무기를 개발하고 이를 사용한다는 발상은 충분히 엄중한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닐까?

한국은 공인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핵 무기 보유가 통일에 도움이 되는가?

언젠가 학급에서 북한 핵문제을 다룰 때 어떤 학생이 다음과 같이 기발하고도 재미있는 착상을 한 적이 있다. 한국이 개방경제 속에서 핵무기를 개발하겠다면 강대국들의 경제적인 보복 등의 간섭으로 핵모기의 개발 소유가 불가능하지 않느냐? 북한은 한국보다 국제 경제 봉쇄 등등에서 타격이 적어서 북한은 핵무기를 가지려면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소유하고 남북이 통일되면 자연스럽게 한국이 핵보유국이 되어서 국제적으로 핵무기라는 강력한 힘을 소유하고 국제 사회에서 행세할 수 있지 않느냐고.

그러나 한반도의 남북 어느 쪽이든지 핵무기를 보유하는 순간부터 한민족의 분단은 영원히 고착된다고 본다. 남북한은 군사력 면에서 각각 별개로 해도 세계 5위권 안팎에 드는 강국들이다. 남북한이 서로 대치하는 상황이어서 군사력을 외부로 발산할 여유가 없어서이지 현재의 군사력만으로도 주변국에 위협적인 존재인 것이다. 어느 나라나 이웃에 군사 강국을 두면 밤잠이 없어지는 법이다. (물론 이러한 군사력은 엄청난 오랜 기간에 걸쳐 국민의 복지와 경제력, 좋은 교육 환경을 희생한 바탕 위에서 이루어진 것들이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소유하고 있고 남한의 경제력과 남북한의 외형적 군사력이 바탕이 된 미래가 예상된다면 아마 주변국은 직접적으로 국가이익과 관계되기에 지금보다도 더 강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한반도 분단 고착화 정책을 집요하게 추구할 것이다.

당장 한국의 입장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가지면 대한민국도 핵무기를 개발 소유해야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그래야만 통일 협상을 위한 대화 파트너가 될 수 있다. 핵무기를 미국만이 소유했을 때 이것을 담보로 하여 영구적인 세계평화가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곧이어 소련도 개발하고 그 결과로 미-소간의 핵군비경쟁이 국민의 희생과 인류의 핵공포를 아랑곳 않고, 무한 경쟁으로 치달리지 않았던가? 아마 한반도도 어느 쪽이든 핵보유가 확실히 되는 날부터 다른 한쪽도 핵무기 개발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고, 양쪽은 상대보다 핵우위에 서기 위해 국민의 생존과 복지를 담보로 하여 무한대의 핵확장 경쟁을 할 것이다.

, 통일을 방해하는 나라나 분단고착화를 꾀하는 나라를 핵무기라는 위력으로 제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난센스가 아닐 수 없다. 통일은 무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협상과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성취되어야 통일에서 얻어지는 모든 과실을 온전하게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일본과의 전쟁은 역사적 필연인가?

일본을 대하는 감정, 태도도 문제라고 본다. 물론 일본이 최근 경제적 초강국으로 등장하면서 다시 고개를 드는 극우파라든지, 전쟁에 대하여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죄 한 번 제대로 하지 않고 변명으로 일관하는 그들도 문제이다. 유엔 평화유지군이라는 명목 아래 일본 자위대의 해외 파병, 아시아에서 경제력을 배경으로 다시 패권을 장악하려는 망상은 주변국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일본은 미국의 힘에 얹혀서 국방에 무임승차하면서 모든 힘을 경제 발전에 쏟아 넣어 오늘날의 경제부흥을 이루어 냈다. 이제 일본의 힘이 강해지면서 일본이 염려하는 것은 일본 경제의 생명줄이 되는 자원의 수송로를 일본이 장악해서 목줄을 남에게 넘겨주지 않겠다는 계산이다. 그래야 진정 패권국가로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니까. 최근 일본 극우파의 등장, 일본의 경제적 대국으로 등장하면서 우려와 경계의 눈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아마 가장 경계의 눈초리로 일본을 보는 나라의 하나가 우리 나라라고 본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한다. 100년 주기설을 주장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19세기말에 힘을 비축한 일본은 아시아를 제패하려는 헛된 꿈으로 아시아 주민들에게 극심한 죄를 지었다. 20세기말 일본은 또 한 번 일어나 힘을 비축하고 주변을 살피고 있다. 전죄를 충심으로 사죄하고 다시는 역사의 죄과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자세를 지금의 일본에게서는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러나 일본과의 감정에 앞서 이 책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일본은 영원한 이웃국가이다. 미우나 고우나 역사적 문화적으로 인접한 경쟁 파트너이고 협력을 유지하고 선린우호 관계를 유지해야 이웃이다. 일본과의 전쟁을 생각하기보다는 우리는 일본과 영원한 평화를 누리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양국민간의 우호 증진을 강구하고 지난 적대 감정을 청산하고 문화교류 등으로 상호 이해를 증진시킬 방안만이 진정 평화를 유지하는 길이다.

 

페이퍼 윈(paper win)을 경계해야

물론 극일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역사적 숙제이다. 그러나 현실이 아닌 소설 속에서 이기는데 열광한다면 영원히 현실에서는 일본을 이기는 길을 찾을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현실감이 없는 이상은 허약한 것이다. 약하고 병들은 자만이 백일몽을 통해 모든 것을 이루려고 꿈속으로 도피하는 것이다. 일본과 생존을 걸고 민족의 흥망을 건 투쟁과 경쟁도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미국은 일본에 히로시마와 나까사키에 원폭을 투하하여 엄청나게 많은 인명을 살상했지만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하기에 원자폭탄을 무인도에 투하한다는 식의 이런 승리는 소설에서나 얻어지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일본의 과학적인 진보 상태나 경제력으로 보아 특히 플루토늄의 비축과 증식원자로 몬쥬의 가동 등으로 볼 때 현실과는 반대되는 상황(핵무기를 제조하고 투하한다는 발상은)이 연출되는 것은 아닌가 한다. 현실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이나 이룰 수 없는 것을 꿈에서 도피하여 이루겠다는 것을 백일몽이라고 한다. 그리고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것을 만화나 소설에서 이루는 것을 페이퍼 윈(PAPER WIN)이라고 한다. 결국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소설은 현실을 망각하고 백일몽을 꾸는 것이 아닌가 싶다.

 

감상적 민족주의를 경계해야

일본과 분쟁이 일어났을 때, 북한은 같은 민족이기에 한국과 한편이 되어 일본에 대항하고, 한민족을 괴롭혔던 일본에 통쾌한 승리를 거둔다는 발상은 50년간 적대적으로 대립하고 싸운 현실을 망각한, 동일 민족이라는 감정만을 앞세운 것이다. 현실을 망각하고 감정적으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것, 민족 감정이라는 것이 만병통치약처럼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 일본은 무조건 싫고, 남북의 두 국민이 한 몸이 되어 서로 얼싸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생각, 이런 모든 것을 통틀어 감상적 민족주의라 이름 붙일 수 있다.(이런 감상적 민족주의도 극복해야 할 것이다.)

최근 감상적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일본을 적대시하여 가상적으로 하여 쓴 소설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 소설의 공통점은 선한 측인 한국이 악한 측인 일본인에 대해 한국민의 우수성을 드러냄으로써 통쾌한 역전극을 연출하여, 최후의 승리자는 항상 한국이라는 플롯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을 적으로 가상하는 사고 방식이나 소설 속의 승리에 열광하는 자세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민족주의 감정을 앞세워 소설 속의 승리를 구사하는 것에 우리 학생들이 열광해서는 절대 안된다.

중앙청을 헐고,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바꾸는 것이 일본을 이기는 길이며, 이 땅에 일본의 잔재를 몰아낼 수 있다고, 그것에서 일본에 대한 승리감을 만끽한다면 우리 민족의 주체성은 다시 되살리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소설 속에서 승리에 만족감을 즐기고 있는 동안, 일본의 국력은 이미 세계 최강으로 까마득히 치닫고 있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처럼 일본에 대한 적대감을 품고 있을 때 한-일 민족간의 감정은 통제하지 못할 지경에 다다를 것이다. 민족주의 감정이란 도깨비 방망이와 같다. 이 감정을 자극하는 사람에게는 원하는 것을 주기도 하지만 너무 두들기면 터지는 뇌관이 되기도 한다. 보스니아 사태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어야 한다.

감상적 민족주의를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이나 야심을 위해 사회 지도층이나, 언론이 부채질하는 이상 우리 민족이 일본을 극복하는 방법은 영원히 찾지 못하리라 생각한다. 극일은 이제 우리의 현실적 과제인 만큼 냉철한 이성으로 현실에서 그 해결 방안을 찾아내야만 한다.

 

진정한 민족주의는 무엇일까?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민족주의란 도깨비 방망이와 같은 것이다. 민족주의 감정을 잘 이용하면 정치인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국민을 그들이 원하는 만큼 단결시킬 수 있고(특히 일본과의 민족감정을 이용하면), 정치적 현안으로부터 국민의 관심을 외부로 돌릴 수도 있다. 소설가에게는 명성과 돈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민족의 감정을 너무 많이 이용하면(너무 자주 두들기면-너무 많이 얻고자 하면) 너무 두들겨 터지는 뇌관과 같이 터지게 되는 것이다. 민족주의 감정은 한 번 분출하면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활화산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는 민족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창조적인 에너지를 제공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민족주의 감정을 자극하면 개인의 자유를 희생시키게 되고 타민족과의 분쟁을 야기시킨다. 민족주의는 양쪽에 날을 가진 칼과 같다. 잘못 다루면 국민(개인)과 다른 민족(세계)을 해치기 쉽다. 그래서 민족주의는 편협한 배타주의, 고립주의로 흐를 위험이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란 이데올로기는 어떠한 정치적 사상과도 쉽게 접목되는 위험이 있다. 히틀러의 경우나 최근의 보스니아 사태를 보아도 독재주의, 전체주의 등의 위험한 정치이념과도 쉽게 결합된다. 민족주의는 과거의 민족적 전통과 현재의 민족적 이익, 그리고 미래의 민족적 이상이 결합되어 민족이 자신감이 있고 자긍심이 있으면 과거와 미래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고 현재의 이익을 실속 있게 추구한다. 병든 민족주의만이 열등의식의 발로로 과거의 영광을 들먹이거나 민족적 사명이라는 명분으로 미래를 내세우기도 한다. 결국 맹목적인 민족애는 민족을 진흙탕 길로 이끄는 것이다.

진정한 민족주의를 갖춘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자질을 갖춘 사람이어야 하는가?. 그는 장기적 안목을 가지고 냉철한 이성을 바탕으로 하는 지혜 있은 사람이어야 하며 현실 감각이 있는 그러면서도 민족애에 충만한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 또한 진정한 민족주의자는 내부적으로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고 외부적으로는 민족간의 평등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청소년들은 진정한 민족주의자로서 지도자의 길은 무엇인가를 냉철하게 생각하고 이 책 속에는 없는(아니 책의 행간에 있는) 진정한 민족주의자의 길을 찾아야 한다.

 

세계화 속에서 청소년의 관점은?

베스트셀러가 양서의 기준은 절대 아니다. 많이 팔리고 많이 읽힌다고 좋은 책이라고 판단하고 그 내용을 무조건 수용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베스트셀러라는 것은 그 내용보다 시류에 맞추고 독자의 구미에 맞추기 일쑤인 것이다. 최근 출판인이나 저자들이 모든 것을 자본주의 논리로 따져 수입과 지출을 염두에 두고 대대적인 광고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국제 정치의 감각을 익히면서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힘의 논리가 판치는 국제사회에서 진정한 평화를 정착시킬 방안을 생각해야 한다. 정치인은 항상 힘을 선호하게 마련이다. 오늘날 국력으로 상징되는 것들, 그 중에서도 특히 핵이라는 것은 위험하면도 가장 효과 있는 상징적인 힘으로 보여진다. 우리는 이 책에서 정치인의 핵무기 사용에 대한, 핵무기를 어떻게 통제해야 되는가를 배워야만 한다.(저자의 의도와는 정반대이겠지만)

핵확산금지는 인류애에 입각한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정치인이 현실의 이익을 지나치게 중시하여 양심이 무디어지 것에 제동을 거는 일은 시민의 보편적이고, 보통의 상식적인 사랑(휴머니즘)과 아직 현실의 때가 묻지 않은 학생의 이상주의로서만 가능하다고 믿는다. 평화를 사랑한다는 우리 민족이 플루토늄을 밀수입하여 비밀리에 핵무기를 만들고 이를 사용한다는데, 그래서 일본을 이긴다는데, 학생이 열광한다면, 특히 상대가 얄미운 일본이기에 이러한 행태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판단할 이성이 마비되었다면 우리의 앞날과 인류의 앞날은 진정 암담하다고 하겠다.

남북이 지금처럼 분단되어 대립된 상태에서는 우리는 국제 정세에 항상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주변국이 남북 분단 대립 상태를 이용하게 되면 남북은 서로 외교적 우위에 서기 위해 주변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고, 결국 민족의 이익은 계속 줄어드는 것이다. 우리 운명을 우리 스스로가 결정하고, 외교무대에서 주역이 되기 위해서라도 통일은 되어야 한다. 통일된 한반도의 모습만이 주변국을 안정시키고 주변의 아시아와 세계 평화를 지키는 핵심 추의 역할을 할 것이다.

그러나 통일이라는 목표를 앞세워 조급한 마음에서 절차나 과정을 무시하면 안 된다. 동족이기에 모든 현실적인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리라는 감상에 젖어서는 안 된다. 감정이나 감상만으로 모든 산적한 문제가 해결되던가?. 50년 동안 체제를 굳힌 대립적 국가 체제는 동포애만으로 해결하기엔 너무 큰 장벽임을 이제는 절실히 느끼야 하지 않을까?

대일 관계에 대해서도 지나친 감정의 표출은 더 이상 바람직하지 못하다. 특히 소설 속에서이지만 인접국을 사악시하여 적대 감정을 유도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일 양국 국민은 정치적 술수나 이해관계를 넘어 서로의 이해를 깊이하고 평화를 유지하는 길 모색이 필요하다.

국제화 시대에 맹목적인 민족애는 스스로 파멸의 길을 재촉하는 것이다. 감정을 극복한 이성으로의 역사적 판단과 현실적인 진로 모색이 중요하다.

청소년기에는 인류애라는 이상의 불씨를 꺼지지 않도록 간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국가이익이나 개인이익은 교육 없이도 스스로 챙긴다. 눈앞의 현실적 이익을 버리고 양심과 윤리에 따르는 이상주의 길은 많은 교육적 투자를 해야 어렵게 유지되는 것이고, 그래서 그만큼 더 소중한 가치인 것이다.

좁아지는 국제사회에서, 열린 사회 속에서 생존하고 번영하기 위해서는 사고의 유연성, 확장성이 필요하다. 열린 생각, 공존하는 사고 방식이 필요하다. 고립된 국가적 이기주의보다는 공존의 길, 감정보다는 이성의 길, 대결보다는 대화의 길, 전쟁보다는 평화의 넓은 길로 나가는 판단과 이성의 노력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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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는 할머니가 늘 창피해 미웠다

 

가슴 설레던 소풍에 몸빼 입은 채 학교에 와

삶은 달걀 든 도시락 건네던 할머니가 창피했다

머리에 쓴 수건은 더 창피했다

만원버스에서 누가 자리 양보라도 하면

손주 이름 큰 소리로 불러 앉히고 당신은 서서 가셨다

손주는 얼굴이 벌게서 할머니가 미웠다

 

구더기 기는 떨이 꽁치 호박잎으로 벅벅 씻어

염천에 땀으로 구워내

맛있다고 입에 넣어주던 할머니

짜디짠 거짓말에 도리질 쳤다

쉬어터진 보리밥 덩이 찬물에 흔들어

풋고추 된장 찍어 먹는 입맛은 더 싫었다

삭정이 같은 손마디로 건네주던 학사금

다시는 독촉하지 못해

몇 개월 미납자 명단에 첫 째로 오를 때마다

손주는 할머니가 미웠다

 

천근만근인 눈꺼풀에

소금 얼룩 밴 적삼 이불 두른 채

손주 밥 먹는 소리가 미소되는

흙발인 할머니 목침 위 낮잠

발뒤꿈치 굳은 살 갈라터진 틈에 비친 피가

제 목구멍에 혹으로 맺혀

손주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쓰디쓴 익모초로도 다스리지 못하던

할머니 서증(暑症)

누가 벼이삭에 맺힌 새벽이슬이 특효라고 해

손주는 사기그릇으로 갓밝이에 벼를 훑었다

이슬은 대접에 채 고이기 전 검정 고무신에 먼저 찼다

무논에 미끄러져도 그릇을 둘러엎을 순 없었다

해 뜨기 전 마셔야 약이 된다기에

조바심이 턱까지 차오르던

어린 손주의 반 십리 길

 

벼꽃 후후 불어 마시면서

그까짓 그까짓 이슬 반 대접이 뭐라고

할머니 눈가에 번지던 습기가

구부려 밥 먹는 제 볼에서 방울 맺혀

손주는 할머니가 정말 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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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자 2016-04-15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손주는 할머니가 창피하고 미웠지만,,, 어른이 되어서 이제는 그 할머니의 사랑을 알고 있네요... `아버지`라는 시가 함께 생각납니다....

진희 2016-04-15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가슴이 아리네요. 할머니의 무조건적 희생적 사랑과 손자가 할머니의 사랑을 알아가고.... 마지막 연에 할머니는 손주으 효성에 감동하고 손주는 할머니에게 드린 것이 그까짓 별것 아니 것 같은(할머니 사랑에 비해).... 정말 사랑했지만 정말 미웠다는 역설적 표현!!!!!!!!!!

김영순 2016-04-19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우리들에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묻어나오는 이 한편의 시속에서 제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내 엄마의 모습과 내 할머니의 모습을 봅니다
나 역시 이 시속의 손주처럼 촌스러운 내 엄마의 모습을
또 내 할머니의 모습을 창피하다고 생각했던 어린시절이 있었습니다
한편의 시를 통해 내 마음을 들여다 보고 또 나와 관계맺고 있는
사람들을 들여다 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이 시를 읽으면서 할머니를 창피해 하는 손주들 같았던
어린 우리들에게 손주를 사랑하는 할머니 같은 마음으로
시를 가르치시던 푸르른 소나무 같았던 젊은 선생님의
마음도 함께 보았습니다

2016-04-20 1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몇해전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오릅니다. 조막손으로 나는 무얼 해드렸나 기억해봅니다. 다 큰 성인이 되어서도 그 미운 마음을 갚지 못했네요. 그러며 살았구나, 싶습니다. 할머니의 사랑과 손주의 사랑이 같은 크기일 수는 없을 것 같네요.

lingeronyou 2016-04-20 1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손주를 향한 할머니의 사랑과 그 할머니에 대한 손주의 마음이 절절하게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다만 할머니를 미워하게 된 계기들에 대한 설명이 여러 작가들이 옛날을 추억하며 자주 등장하는 다소 상투적인 상황들인 것 같아 아쉬움이 듭니다.

스당 2016-04-20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겪은 듯 생생한 글이네요.

가족은 고마움과 미안함과 창피함 같은 것을 한꺼번에 갖게 되는 존재이지요. 미웠다로 시작해 미웠다로 끝나지만, 할머니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 느낀 글쓴이의 심정이 느껴집니다.

할머니는 그렇고... 그 시절에 대한 미움은 진짜인 것 같으네요 ㅎㅎ 하긴 지난 시절이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죠. 솔직한 글 잘 읽었습니다.

지영 2016-04-21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눈물이 멈추질 않네요
어렸을적 환경미화원이었던 아버지가 창피했던적이있었지요
자전거로 학교등교해주셨는데 정문앞에서 내려달라고해도
학교안까지 태워주시던 아버지
지금은 그 따뜻한 등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가슴시리지만 사랑과 그리움이 담긴 글 잘 읽고 갑니다.

토토로 2016-05-02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슬프지만 아름다웠던 추억에 대해 생각해 보게끔 하네요~
옛날을 떠올리게 하는 질박한 시어들과 유려한 문체가 잘 어울립니다.

꽉 찬 시라는 느낌... 하여 내용이나 형식에서 여백의 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강성일 2016-10-10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버지, 어머니께서 결혼하신 후 6년 3개월만에 태어났습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태어난 손자라 할아버지, 할머니께서는 사촌 형과 누나들보다 유독 저를 이뻐 하셨지요. 문득 돌아가신 그 분들의 품이 그리워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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