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는

빈 틈 없는 구도로 겨울 풍경을 그리고 있다

 

하늘엔 바림 넣은 비층구름이 두꺼운 암막원단으로 겨울 빛을 차단한다 선염(渲染)에 딱 알맞은 날씨다 바다는 수감색 파도 끝에서 흰 거품을 뽑아내며 스스로 묵향을 숙성시킨다 모래사장은 맨살을 드러낸 채 파도소리를 가슴으로 쓴다 도끼로 내리패듯 한 붓 그은 침식단애 노근법(露根法)으로 굽은 노송이 일렁이는 물안개를 행운법(行雲法)으로 다스린다

 

노송 품은 암벽, 짙은 먹색으로 좌편향 구도로 세우고

묵호 바다는 남은 수평을

무한한 여운으로 까마득히 풀어 놓아 화폭의

공간을 무시하고 있다

인간은 찰나의 영상을 화선지에 모사하지만

파도는 물안개 어우러져 무량 출렁이고

구름을 흘려 넣는 수려한 구상

온전한 감상을 위해서 영겁을 허락 받아야만 한다

 

작품의 백미는

몽당붓으로 주름 넣은 바위 끝에

날개 쉬는 갈매기 한 마리

바닷물에 멱감은 회색 깃털, 보기에 흡족하도록

팽팽한 생기를 불어넣는다

새는 황금분할 구도를 조감하려 솟아오르지만

새는 비상마저도 그림 속 풍경인 걸 모른다

 새는 명작의 불후를 감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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