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변 직후 궁핍한 시절
왜 그리도 잔병치례가 심했는지
취학통지서도 아직 안 나온 손주는
장딴지 피부병이 손바닥만 해져야
할머니 손에 끌려 도립병원엘 갔다
손주를 꼭 잡고 있으라고 했을 때도 몰랐다
보랏빛마저 도는 새파란 물약
진물 난 상처에 바르자
처음 맛본 공포였다
꼭 피부를 벗겨 내는 따가움이었다
팔팔 뛰는 손주의 울부짖음에
우리 강아지 얼마나 아플꼬 얼마나 아플꼬
그렁그렁 눈물 가득한 손주는
의자 앞 쪼그려 제 두 무릎을 꼭 잡고
불이 난 상처
호호
불어주는 할머니 황망한 손을 보았다
숨마저 잊어버렸던 순간
제 몸의 통증과는 또 다른 통각 때문
놀란 손주는 울음을 삼켰다
그 후 할머니의 아픔은 내 눈물이 되지 못해
참으로 애달픈 기억이다
꼭 한 갑자의 시간이 흘렸다
그 기억 속의 나이만한 어린 손녀와 꽃씨를 뿌린다
엄지와 검지만으로도 다 집을 수 있을 것 같은
봉지 속 석죽씨앗
땅을 골라주고 뿌리라고 했더니
누구에게서 배웠을까
작고 통통한 제 손바닥에 꽃씨 모아 들고
호호
철모르는 여린 입김을 불어 넣는다
올 해부터
무더기무더기 핀 석죽 꽃을 보는 사람들
모두 다 행복할 것이다
석죽은 제 온몸을 감싼 다스한 입김을
모두의 가슴에 향기로
호호
불어 넣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