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시가 한 권의 소설보다 값지게 외치는 때가 있다.
쳇바퀴 굴리듯 바삐 살아가다가도 덜컥 멈추게 하는 호흡들.
고작 한 장의 종이위에 몇 개의 글자들로.
그런 점에서 시야말로 인생을 닮지 않았나 싶다.
떠나가기 전 한 편의 시를 쓴다면 어떤 시를 쓸 수 있을까.
적어도 허수경 시인님의 시처럼 덤덤한 어조였으면 좋겠다.

*사진은 이 책에 부록으로 따라온 인쇄된 메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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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 있다.
무엇보다도 고요하게 걸어와서 와장창창 깨뜨리고야 만다.
너무나 고요해서 방심하던 차였는데 와장창.
이젠 좀 견고하겠지 하던 차에 와장창.

더 이상 책은 선물로 받고 싶지 않다.
나는 책은 쉽사리 버릴 수가 없는 사람이라 어쩔 수 없이 그 시집을 책꽂이에 뒀는데 그 책이, 지나갈 때마다 슬쩍슬쩍 마음을 비집고 들어온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울음이 터진다.

오늘은 밥을 먹다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것을 보고
한강의 시가 생각나서 다시 울음이 날뻔 했다.
모든 순간들이 지나가버리고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나 서글픈 적이 없었다.

최근 글에 ‘혼자서 마음을 들여다 보는 사람’에 대해 썼는데 그게 어쩐지 내가 되어버렸다.
마음이란 게 이렇게 아플 일인가 싶다.

내일은 마음을 챙겨서 바람이라도 쐬어야지.
그간 몸을 안전하게 한다고 마음을 내동댕이쳤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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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수학이라면 - 내 인생의 X값을 찾아줄 감동의 수학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3
최영기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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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4 쓰고보니 독후감 아니고 빈정거리는 글.

1. 수학과 관련된 학과를 나온 사람들의 특징. 수학과 관련된 좀 유치한 문장을 쓰고 그게 꽤 괜찮다고 착각한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러지 않았을까. 내 인생의 x값을 찾아줄 감동의 수학 강의라니. 아아, 출판사가 쓴 문장이려나. 저 문장 때문에 버스 안에서 읽기가 초큼 창피했다.

2. 대학교 전공 시험 중 하나였던 복소수 함수론 시간에는 5문제를 푸는데 5시간의 시간을 주셨다. 정확히 말하자면, 풀고 싶을 때까지 풀라고 하셨다. 나중에는 감독이 좀 지치셨는지 조금씩 눈치를 주셨지만.....ㅎ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오랜 시간 고민하며 문제를 풀었던 시간이 도움이 됐다 싶다. 특히나, 위상 수학 시험 시간에 고난도 문제에 대한 아이디어가 퍼뜩 떠올랐던 기억은 만화처럼 전구에 불이 켜지는, 끊어졌던 전깃줄이 이어지는, 마지막 퍼즐 조각을 딱 끼우는, 정말 그런 느낌이어서 지금까지도 그 감각이 명확하게 떠오른다. 그때의 희열감이란.

3. 우리나라 학생들이 수학을 잘한다는데 왜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 수상자는 없는 것이냐. 그건 냉정하게 말해서, 물을 가치도 없는 질문이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수학을 못한다. 계산연습을 많이 해서 계산을 잘할 뿐이지.

3-1. 필즈상을 못 받는 또 하나의 이유. 우리나라는 천재들이 버려지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게임 캐릭터로 따지자면 좀 극대화해서, 힘이 400 민첩 50 체력 50 인 애가 힘이 100 민첩 100 체력 100인 애한테 지는 꼴이랄까. 전과목을 두루두루 잘하는 애가 수학만 몰빵으로 잘하는 애보다 수학과에 들어가기가 쉽다. 수시 제도는 사실 천재들을 발굴하기 좋은 방법이지만 떨어진 교권과 생기부를 가지고 민원을 제기하는 학부모 군단때문에 좋은 말 적어줄 수밖에 없는 현재 상황 + 수시에 걸맞는 교사의 평가 전문성과 냉정함이 부족한 상황 등 때문에 사실상 수시제도는 불평등을 낳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정말 짜증이 치솟는 상황.

4. 근데 그게 애들 탓이냐, 하고 물으면 당연히 아니다. 그럼 교사 탓이냐, 하면 그것도 당연히 아니다! 문제는 이 거대한 시스템인데.(솔직히 학부모 탓은 조금 하고 싶다) 수학을 잘 하려면 깊이 있는 수학을 고민하도록 해야 하는데 현재 이 수능체계로는 학생들의 사고가 닫혀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문제다. 이대로는... 아마 우리나라의 현실은......(노코멘트) 아니, 노코멘트를 취소하고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교육 후진국인데, 비유하자면 최신 노트북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선진국에 비해 우리는 386컴퓨터를 가지고 뼈빠지게 일하고도 야근을 하면서 그 양을 채우고 있는 거다. 애들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미친듯이 문제를 풀고 있다. 말이 공부고 학습이지 사실은 그저 노가다를 하고 있는 거다. 애들만 죽어나지, 진짜. 이건 모두가 책임의식을 좀 느껴야하는 문제......

5. 가끔씩 아, 얘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으면 수학 좀 했겠는데, 싶은 아이가 흔치는 않지만 나타나는데 하나같이 수학 성적이 좋은 학생은 아니었다. 작년에도 한 명 있었다. 왜 그런가 봤더니 공부보다 재밌는 게 세상에 너무 많댄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는 열심히 참여하고 수업이 끝난 후에 슬며시 나한테 와선 다른 풀이에 대해 설명을 하길래 너 이 문제에 대해 다양한 풀이를 풀어서 나한테 가져와 봐, 라고 했더니 공부할 시간 없다는 놈이 정성스럽게 프린트를 제출한다. 읽어보니 정말 웃기는 애다. 그 다음부터는 수업이 끝나고 나면 칠판 앞에 나와서 자기는 이런 식으로 문제를 풀어봤다며 칠판에다가 자기 풀이를 설명하는데, 공간 지각 능력이 월등하다. 가끔씩은 나도 생각지 못한 풀이를 내민다. 그럼 나도 신이 나선 코멘트를 해준다. 그러다 또 잔소리가 나온다. 야, 너 수학 공부좀 하지 왜 안했냐아아. 그러면 또 자기는 공부하기 싫다고.

6. 천재는 좀 그래야 된다고 생각한다. 자기만의 뚜렷하고 독특한 개성을 잃지 말아야 하고 자기만의 풀이를 떠올려야 하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즐거움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수학의 아름다움을 깨닫는다. 그 아이는 뭐가 되도 될 아이라는 생각을 했다. 대학 가려면 이것도 좀 챙기고, 저것도 좀 챙기고, 하고 진로 선생님이 잔소리를 늘어놨더니 그 다음부터 아예 진학설명회 조차 참여를 안했단다. 좋은 대학 가면 좋지 않겠냐, 하고 물었더니 좋은 대학 가기 싫어요, 하고 웃으면서 말한다. 진짜 웃기는 애야. 우리의 천재들은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어디에선가 살아간다. 대학이 아니라도 언젠가 스스로 빛을 내지 않을까, 기대한다.

7. 수학 개념서라기보다는 수학과 인문학을 섞어 쓴 교양서라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수학과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에게 추천하고 싶다. 여기에 나오는 내용들은 수학과, 수학교육과에서 배우는 내용 중 일부이다. 고등학교 수학과는 차이가 있다. 훨씬 더 아름답고 고귀하다. 수직선은 실수의 완비성을 기하적으로 나타낸 공간이다. 실수가 빈틈없이 채워져 있다는 사실은 사실상 수직선이 주는 연속성 때문에 너무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그리 만만한 성질은 아니다. 갈루아 이론도 마찬가지다. 현대 대수 과목은 사실상 갈루아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그 앞의 내용들을 배우는 것이나 다름없다. 책을 읽으며 이게 뭐야, 차라리 문제 푸는 게 낫지, 라는 생각이 든다면 수학 관련 진로로 가선 안 된다. 하지만 그게 뭐지? 라는 호기심이 든다면 수학을 향해 다가가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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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
베른하르트 슐링크 지음, 김재혁 옮김 / 시공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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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번역가를 탓하거나 작가를 탓하거나 헤르바르트의 참고 모델로 보이는 실존 인물을 탓할 수 밖에.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올해 처음으로 읽은 소설과 더불어 독일의 역사가 담긴 글을 읽은 건데, 번역투로 인해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1,2부까지는 번역의 한계를 많이 느끼지 못했는데 정점을 찍어주어야 할 3부에서 올가의 편지 내용은 정말, 정말, 정말 별로였다. 고민없이 번역되었거나 애초에 작가가 너무 편하게 쓴 글이리란 확신이 든다.) 어쩌면 더 리더가 너무 좋았어서 작가에 대한 기대치를 너무 높게 잡았었는지도 모르겠다.

더군다나 작가가 이 책에 쓴 것처럼 거대한 것에 그리 연연하지 않으려면, 작가 스스로가 역사보다는 이야기에 대해 더 말했어야하지 않나? 이건 역사서가 아니라 소설이니까. 좀 더 이야기의 힘을 믿었어도 됐지 않았나.

편지를 통한 반전은 이미 봐왔던 것들이라 새롭지도, 그리 충격적이지도 않았고 그리 아름답지도 못했다.
356쪽에 달하는 이 소설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결국 이것이다.
(p.176)”자신이 앞세우는 도덕만큼 그렇게 위대한 사람은 없어.”

현재 기준으로 평점이 9.8로 되어 있는데, 3부까지 전부 다 읽고 매긴 것이 맞는지 조금 의심스러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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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1 (20주년 특별 기념판) - 개정증보판
로버트 기요사키 지음, 안진환 옮김 / 민음인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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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연말마다 읽은 도서 목록을 확인하며 편독을 아쉬워한다. 작년의 목표 중 하나는 경제 책을 5권 이상 읽는 것이었는데 ‘사이다 경제’ 한 권을 읽은 후로 읽은 것이 전무했다. 그러던
중 최근 가까운 이가 내게 이 책을 선물했다.

책 제목은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제목에서 괜한 반감이 들어서 읽지 않으려 했는데 선물한 이가 말하길, 이 책은 전략이라기보다는 돈에 대한 철학이 담긴 것이라 해서 읽기 시작했다. 두껍지만 그 사람의 말대로 돈에 대한 틀을 잡아주는 느낌이라 부담스럽지 않고 빠르게 읽혔다. 좋은 책이었다. 그럼에도 별점이 낮은 건, 20주년 특별 기념판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사이사이에 같은 내용을 반복하며 정리한 부분이 책의 두께를 잡아먹고 가격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책에 있어서는 명품이나 짝퉁같은 것이 없이 매대 전략이나 책의 디자인과 관련된 전략, 두께 등 최소한의 전략이 들어오고 있는 것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자신의 친 아빠인 가난한 아빠와 친구의 아빠인 부자 아빠를 대비시켜 이야기하는 데다가, 어린 아이의 시점에서 쓰여 졌기 때문에 재미있게 읽힌다. 경제 분야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공감이 되거나 배우고 싶다고 느껴진 부분은,
1. 자산과 부채는 다른 것이다.
2. 연금을 믿지 마라.
3. 남을 위해 일하지 말고 자신을 위해 일하라.
4. 실수는 배움의 기회다.
등등인데 이렇게 풀어 써서는 뻔한 자기계발서같은 느낌이 든다. 정리된 것보다는 후루룩 이 책 전체를 읽는 것이 낫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는 책을 선물해준 사람의 성향이 생각났고, 그의 말대로 투자를 하지 않더라도 금융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중요하며, 그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극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이다 경제는 경제 전반의 이해를 돕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었다면 이 책은 돈에 대한 주체성을 기르도록 동기를 부여해주는 느낌이다. 좀 더 어렸을 때 이런 책을 읽었으면 좋았겠다, 라고 아쉬워했더니 충분히 빠른 시기라며 그가 말해주었다. 다시 한 번, 좋아하는 것들을 이루기 위해 금융 공부를 할 필요성을 느끼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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