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지음 / 더숲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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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책의 끝 부분에 소개된 ‘갈리브 하벨리’라는 시인의 글을 알려준 것만으로도 내게 만점짜리 책이다. 세상에서 글을 가장 잘 쓰는 사람이 시인이고 시인만큼 쓰지 못하는 이가 소설가가 되고 그보다 못한 이가 평론가가 된다는 말을 들었다. 갈리브의 시를 읽고 맞다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화려하고 감성적인 겉으로 잘 꾸며진 듯한 글이 아니라 핵심을 찌르면서 짧은 시간에, 짧은 문장으로 깨달음을 주는 글. 그런 갈리브의 글이야말로 잘 쓰여진 글이 아닐까.

류시화 시인의 에세이는 이 책 전에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때도 느꼈지만 범상한 인물은 아닌 것 같다. 어쩐지 도인에 가까운 느낌. 가짜 아니고 진짜 글쟁이인 느낌.(물론 글이 풍기는 느낌과 그 글을 쓴 사람이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글은 어른들을 위한 동화책에 가깝다. 몇몇은 직접 지어낸 이야기인 것 같고 어떤 것들은 인도 혹은 그 외의 어딘가에 살고있는 지인들로부터 모은 것인 듯 하다. 그야말로 이야기꾼인 것이지. 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더 나은 사람과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책을 덮고나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이병률 시인과 류시화 시인의 에세이를 연달아 읽으면서 어쩐지 다른 두 사람의 차이가 재밌기도 했다. 한 명은 어떤 고통이나 상실에 사무치게 몸부림치며 아파하면서도 다시 그 길을 가려하고 다른 한 명은 고통이나 상실을 초연히 맞이하며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둘 다 멋진 사람들이다. 류시화 시인이 좋아진다. 꾸밈이 없고 멋진 척 하지 않고 구린 듯 구리지가 않다. 정작 그의 시집은 읽어보지 않았다. 어쩌면 시가 좋아질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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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 지음 / 달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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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 시인의 글을 읽어본 적이,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조금 기대했다. 기대해서인지 실망했다. 사실 내게 별점은 절대적인 의미가 없다. 많이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경우엔 별점이 짤 수밖에 없고 기대하지 않았는데 꽤 괜찮다싶으면 나도 모르게 통이 커지는 것 같으니까. 특히나 에세이에 좋은 별점을 주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젠 예전에 비해 좀 더 살아봤다고, 경험 좀 해봤다고 나름의 인생철학이 생긴 것인지 웬만한 자기계발서나 에세이는 지긋지긋하다. 30년 넘게 잔소리가 쌓여서 내가 만들어졌는데 거기에 얼마나 더 얹을 잔소리가 있겠냐는 거다. 시인의 시집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런 시를 쓰겠구나, 라는 생각은 들었던 것 같다. 자기가 온정을 품은 사람에 대해 따스하고도 따스한 사람. 따스한 마음에 같은 마음으로 대응할 줄 아는 사람. 그러나 따스한 사람에게 실망하고 서툴렀던 경험에 이제 그러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또 한 번 서툴러지는 것에 설레는 사람. 이병률이라는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읽는 마음으로 에세이를 읽었다. 재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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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의 이름이 되는 것이라고
신유진 지음 / 1984Books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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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신유진 작가의 에세이를 읽은 후 그녀의 글을 여기저기에 추천하고 다녔다. 누군가는 그녀의 책을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고 누군가는 너무 어렵다고 했다. 이런 마음이 들 수 있느냐고 왜 같은 말을 어렵게 하는거냐고 내게 물었다.

누군가에겐 쉽게 읽히는 글이 누군가에게는 타지의 글만큼이나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지는 건 우리가 사는 삶이 단 하나라서 그런 게 아닐까. 그건 취향의 문제라기보다 살아온 인생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 난 그녀의 글이 너무나 쉽게 읽혀서, 내 마음이 그녀의 마음을 따라 휘었다가 꺾였다가 부러지기도 해서 그래서 참 슬펐다.

절망하는, 절망하려는 고독이 내 삶의 어느 시절에 담겨 있다. 이 책은 자꾸만 그때의 마음을 그때의 고독을 끄집어 올리고야 만다. 다리 너머를 향해 10초 안에 뛰어가려는 아이의 마음 같은 것은 내게 이해하기 쉬운 일이지만 국수를 먹고 다리 위를 휘청거리는 사내의 마음 같은 것은 내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두 마음을 작가가 한 데 이어 ‘얼룩이 된 것들’이라는 소설로 남기자 어쩐지 나는 그 사내가 된 기분이었다. 잘 쓴 글은 이런 글이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모르는 타인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보라고 소리치는 이런 끈질긴 글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라도 더 읽어보려 애쓸 삶의 과제여야하지 않을까.

신유진 작가의 에세이를 그토록 좋아하고도 단편소설을 느리게 읽은 것은, 두 가지 마음에서였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가 행여나 단편소설에서는 실패하지 않을까 라는 조바심이 첫 번째 마음이었고, 혹여나 그 작품이 너무나 좋으면 아끼고 아껴서 정말 그 글이 내게 필요해질 때 읽고 싶다는 마음이 두 번째 마음이었다. 다행히 그리고 역시나 좋았다.

첫 번째 소설인 ‘그렇게 우리의 이름이 되는 것이라고’를 읽으면서 뒤로 갈수록 재미없는 글이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단편집 이름을 딴 소설이니만큼 작가에게 가장 자신있는 작품이리라 생각했다. 두 번째 소설인 ‘끝난 연극에 대하여’를 읽으면서는 그녀에게 나도 모르게 편견을 가졌다. 그녀가 쓰는 글은 비슷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런데 세 번째를 거쳐 네 번째, 다섯 번째 글을 읽으면서 그런 편견도 사라져버렸다. 그녀가 쓰는 글은 일관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ㅡ 그래서 이 단편집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지게 만들면서ㅡ 다양한 사람들을 말한다. 어딘가 닮은 듯 하면서도 묘하게 다르고, 다른 듯 비슷한 듯한 그 삶의 무게가 어쩐지 너도 힘들지, 너도 힘들지 하고 모두를 다독이는 기분이라서 나는 찐빵을 사오는 아버지였다가 이안을 떠올리며 휘청거리는 소은이 되었다가 불쌍해서 나를 좋아하냐고 외치는 세계가 되어 펑펑 운다.

최근 박상영 작가의 글에 감탄했었는데. 박상영 작가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이런 글이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물론 가장 좋은 건 모든 글이 널리 읽히는 거지만.

그녀가 어서 장편소설을 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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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icbegins 2019-11-18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덕분에 작가님 소식을 알아가요 ^^
 
역사의 쓸모 - 자유롭고 떳떳한 삶을 위한 22가지 통찰
최태성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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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학창시절, 국사가 싫어서 이과를 갔었다. 단순한 암기 내용이 싫었고 이미 지나가버린 것을 배우는 데에 왜 현재의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특히, 사건이 일어난 연도를 암기하고 사람의 이름을 암기하고 수많은 사건과 이름을 외우기만 할뿐 ‘왜 배우는지 모르겠는’ 것들만 모아놓은 것. 그게 나한테는 국사였다.

수학을 가르치는 지금은, 아이들이 되려 내게 묻는다. 수학을 대체 왜 배워야되는지 모르겠다고.

모든 배움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최태성을 통해 배웠다. 단지 그것을 깨닫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 배경을 이해하게 해야한다는 것도. 역사 안에 있는 인물의 삶에 대해 그들의 선택에 대해 감정을 이입하고 함께 고민해봐야 의미가 있다는 것을. 수학공부도 수학자들의 사고 방식을 그대로 따라가야 의미가 있다. 왜 그런 공식을 만들어야 했는지 어떤 환경에서 그들이 그런 결론을 지어야 했는지. 때로는 멍청해보이는 그 결과가 왜 필연적으로 따라야만 했는지. 교육을 한다면서 나부터 교육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던 거다.

하나도 이해되지 않는 과거의 인물들을 최태성을 통해 만난 시절이 있었다. 아마 뒤적거리다보면 그 옛날 최태성에게 남겼던 후기글 정도는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그 좋은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사교육에 의지하는 친구들도 최태성의 무료 강의를 찾아 들었다. 그 덕분에 형편에 구애받지 않고 차별받지 않고 그의 강의를 들었다. 괜스레 떳떳했다. 그땐 차별받는다는 것이 꽤나 부끄러웠던 모양이다.

어떤 과목을 사랑하게 되는 데에는 그걸 가르치는 사람이 얼마나 그 과목을, 그 학문을 사랑하는가 또한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열정을 보면서 역사가 좋아졌고,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젠 다른 의미에서 떳떳하게 강단에 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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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빌트


이 책을 읽고 나면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달라질 것이다. 건축학에 대한 아주 얄팍한 동경 같은 것이 고등학생 때 있었다. 건축학과 간다고 하면 뭔가 멋있을 것 같고, 내가 그린 도면대로 건물이 지어지면 멋있을 것 같고.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단순하게 건물이 지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안다. 수많은 이익이 개입하고 또 조율의 단계를 거쳐 현실 가능한 디자인으로 만들어내기까지 여러 사람의 노력이 들어간다는 것도. 건축학자 한 명의 작품이 아니라는 걸 말이다.

이 책은 구조공학자인 저자가 건물을 만들 때 필요한 조건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각 장의 이름을 보면 층, 힘, 화재, 벽돌, 금속, 바위, 하늘, 땅, 지하, 물, 하수도, 우상, 다리, 꿈 이라고 되어 있는데 각 장의 이름에서 이미 이 책의 매력을 파악했으리라 믿는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건축물이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수많은 능력치를 알게 되면 새삼 그 소중함과 고마움에 감동을 받을지도 모른다.

요즘 우리 집 앞에 건물 하나가 새로 올라가고 있는데, 처음에 지어질 때만 해도 저 시끄러운 놈들, 이라는 생각으로 민원을 넣었다. 최소한 퇴근 시간 이후로는 공사를 멈췄으면 좋겠다고. 담당자가 하는 말이 그게 권고사항이긴 하단다. 그런데 그러던 중 이 책을 읽으면서 그 공사 현장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저 철근이 왜 들어가는 건지, 시멘트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저기에 쓰이는 것인지, 저 호스는 왜 저기에 들어가 있는 건지 등등. 하나의 건물 안에는 우리의 편의를 위한 건축가와 구조공학자의 노력이 담겨 있다. 그 섬세한 배려심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35.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박상영 작가에 대해서는 익히 들어왔다. 나와 비슷한 또래라는 점에서 호기심이 있기도 했고 몇몇 단편집에서 이름을 봤기에 더 궁금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본 작품이 이 책에 실려 있는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인데, 그땐 이보다 더 뛰어나고 커 보이는 작품들이 있었던지라 이 작품이 잘 쓰인 글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이번 제 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대상을 받은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을 읽으면서 참 재밌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문창과를 나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디에서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공부해서 우럭을 먹는 과정을 우주를 맛본다고 쓴 것인지 그것 참 나랑 비슷한 생각하는 사람이네, 하고 생각했고 그 다음에는 근데 제대로 알고 쓴 건가? 하는 의심도 살짝은 들었던 듯 하다. 어쨌든 그 작품을 계기로 그의 단편집을 구입한 것이 이 책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가볍고 이상한 사람들이 등장하는 작품들이다. 그러나 그런 가벼움 속에 그의 인생 철학이 담겨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실력있는 작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세라믹이나 조의 방 같은 작품은 좀 더 다듬어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가 사유한 것이 어떤 내용인지 도무지 전달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작가든 화가든 그 어떤 예술가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좀 더 깊은 사유를 할 의무가 있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릴 의무 또한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의무’라는 말은 강제성의 의미라기보다는 자기 작품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에 가깝다. 최소한 자신의 책을 산 독자에게만큼은 이 작품이 뭘 말하려는 것인지 오롯이 전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세라믹이나 조의 방 같은 작품은 아쉬운 점이 많았다. 사실 세라믹에 대해서는 더 논할 수가 없는 것이, 더 이상 읽고 싶은 의지가 들지 않아 읽다가 관두었다. 재미도 없었고, 그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해답도 얻지 못했다. 아니, 13,500원에 인생의 해답을 알려달라면 사기꾼이지.. 그래.. 해답은 아니어도 최소한 그가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전달되었어야 맞지. 그가 얼마나 고민하고 쓴 작품인지 궁금하다.

그의 작품집을 읽으며 느낀 그의 글의 특징은 성관계인데, 그 또한 꼭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든다. 사실 소설에서 그런 장면들은 때로는 꼭 필요하기도 하다. 이를 테면 아니 에르노의 ‘집착’에서 화자가 남자의 성기를 잡으면 안도감을 가진다는 장면은 맥락상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 책은 어떤가. 두 인물의 깊은 관계를 서술하기 위해 관계 맺는 것 말고는 다른 식으로 표현할 줄 모르는 것 아닌가라는 의구심까지 들게 한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이 책에 대한 신뢰감이 있었다. 그리고 박상영 작가에 대한 믿음도 스믈스믈 생겨날 듯 했다. 그가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것이라는 믿음이. 그래서 누군가 그의 작품세계를 비판했을 때 당당하게 그를 지지하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런데 뒤의 작품을 읽으면서 아차, 했다. 지지하지 말 걸.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작품을 쓸 것 같다고 말했는데. 아, 그러지 말 걸. 하고 후회했다.

최근에 나온 대도시의 사랑법은 어떨까. 좀 더 나아진 그의 작품세계를 볼 수 있을까. 아직은 읽고 싶지 않다. 차후에 다른 작품이 나왔을 때 다시 그를 읽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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