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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가난이 온다 - 뒤에 남겨진 / 우리들을 위한 / 철학 수업
김만권 지음 / 혜다 / 2021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SNS 등을 통해 사회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사고, 문제제기 등을 실시간으로 접하면서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를 가난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지금의 내 현실은 그저 돈이 없는 것이지 않을까? 물론 저축해둔 목돈도 많은 재산을 물려줄 수 있는 돈 많은 부모도 없지만 오늘 같이 정보가 빠르고 멀리 퍼져가는 디지털 시대에서 디지털로 전해지는 정보와 혜택을 상당히 많이 누리고 있는 내가 과연 '가난'이란 말을 사용해도 될지 의문이 들었다. 가난을 남들이 다 누리는 권리를 누리기 쉽지 않은 것이라 정의한다면 나는 가난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제서야 이 정보의 바다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신분제도가 없는 세상이지만, 정보를 얼마나 얻기 쉽냐로 신분이 다시 나뉘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김만권 교수의 [새로운 가난이 온다]는 지난 시간 동안 내가 인공지능과 로봇, 그리고 노동에 대해 가졌던 의문들에 대해서 쉽고 친근한 말투로 말을 걸어 오는 반면, 절대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 빠르게 학습하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가는 시대 속 빠른 디지털화와 플랫폼 기반의 경제구조 속에서 변하지 않는 구식 제도와 사고 방식, 그로 인해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책을 읽는 내내 암담한 기분이었다.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변해가는 시대를 보면서 머리 속으로만 생각했던 모호했던 개념들이 정리되면서도, 너무나도 발빠르게 변해가는 지금에 대한 두려움이 앞섰다.
저자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세가지로 압축하자면 다음과 같다고 생각한다. 첫째, 이제는 노동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좌우하지 말자. 둘째, 인간과 로봇의 파트너쉽을 맺자. 셋째, 연대 하고 우리의 목소리를 높이자.
솔직히 책을 읽기 전까지는 '노동' 그 자체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세상 물정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부터 노동이 있었고 나도 당연히 노동을 해야하며 그것으로 나를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노동은 구시대, 즉 제1기계 시대에서는 충분히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었지만 지금같이 자본이 중심이 되는 시대에서마저 노동을 기준으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디지털 시대에 사라질 직종과 생겨날 직종의 수가 거의 맞먹는 수준이지만, 사라질 직종들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생겨날 직종에 종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을까?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직종들은 대부분 컴퓨터를 다루는 일일텐데 사라질 직종의 대부분은 디지털과 무관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모두가 디지털 시대의 직종에 종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일할 능력은 있지만 일을 구할 수 없는 '잉여'들이 넘쳐나게 될텐데 노동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들을 노동이 곧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사고에 가둬버리는 것은 제2기계시대에 옳지 못하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이제는 노동과 능력, 노력이 인간의 존엄성을 좌우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인간과 로봇의 파트너쉽도 이런 노동에 대한 저자의 생각의 연장선에 있다. 어차피 로봇으로 대체될 인력이라면 로봇이나 인공지능을 이용하는 기업에서 로봇세를 걷고 그것을 인간에게 복지나 소득으로 환원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냐는 것이다. 인공지능을 다루는 IT기업에서 일하고 있지만 인공지능과 로봇이 세상의 많은 일들을 대체하게 될것이란 말에는 굉장히 부정적이었다. 책에서 사용된 말처럼 '잉여'가 되어버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이며 이렇게 자동화가 되어버린 세상을 긍정적으로만 보기에는 해결해야할 의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생각하고 인간을 위협하면 어떡하냐는 문제보다 로봇이 노동을 대체하기 시작한다면 남겨진 인류가 그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를 생각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한다. 로봇이 내 일자리를 뺏어간다고 생각하기보다 로봇과 파트너십을 맺어 그로 인해 얻는 이득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마냥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대안이지만 충분히 고려해볼만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마무리는 연대다. 저자는 본인이 책에서 제안하는 일들이 실천되려면 첫째도 연대 둘째도 연대 셋째도 연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책에도 잠시 언급되는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난 18세기 말, 프랑스의 재정을 짊어지고 있던 것은 국민의 90%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평민들이었다. 솔직히 프랑스대혁명에는 긍정적인 면 이외에 부정적인 면도 많지만 18세기 말 프랑스의 평민들은 불공평에 맞서기 위해 다같이 일어나 연대했고 인민의 권리를 위해 싸웠다. 지금 우리가 시민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전에 어딘가에서 보았던, 세상을 바꾼 건 상위 계층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말처럼, 빠르게 변해가는 시대에서 인간이 인간을 지키기 위해서는 평범한 우리가 연대해야한다는 말에 매우 동의한다. 함께 뭉쳐서 함께 싸울 필요가 있다. 하지만, 뉴스에서 보게 되는 현실은 연대를 한다고 해서 세상이 변할까 싶을 정도로 참혹하다. 노동과 능력만으로 사람을 나누지 않고 모두가 존엄할 수 있는 시대를 과연 평범한 사람들의 힘으로 이루어낼 수 있을까.
어린 아이도 '내것'이 생기면 좋아하는 사람이지 않는 이상 그것을 쉽게 나누려고 하지 않는데 이미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된 상위 계층이 자식이나 가족이 아닌 완전한 타인인 하위 계층을 위해서 움직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기본소득, 로봇세, 디지털 시민권, 기계와의 파트너쉽 등등... 이런것들이 하나둘씩 이뤄지면 조금씩 세상이 바뀔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국가와 기업, 그리고 시민들 사이에 사회적 합의가 확실하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저자는 연대한다면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말하지만 지금처럼 정보가 빠르게 움직이고 의견이 모아지지 않는 시대에서 하나의 총알이 되는 게 가능할까?
요즘 너무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아서 조금이라도 철학적인 사고를 하고 싶다는 마음에 선택한 책이었지만 책에서 제기된 것 이상으로 많은 질문과 문제제기가 떠올라서 머리가 아팠다. 이런 류의 책을 찾아보는 사람들도 결국 이런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 뿐이지 않은가. 나름대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책이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다. 그래도 저자의 마지막 말처럼 이런 위기의 시대에 뒤쳐지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저자가 제시하는 아이디어에 마냥 긍정적이지 않다보니 이런 내 생각이 모순적일지 몰라도, 없는 사람들에게 더 관대한 세상이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 서평이벤트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